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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3:16:23

에드워드 오헤어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에드워드 오헤어
Edward O’Hare
파일:1549292949757.jpg
본명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
Edward Henry O’Hare
출생 1914년 3월 13일
미국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사망 1943년 11월 26일 (향년 29세)
길버트 엘리스 제도 근처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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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NNNcm, NNkg, 혈액형
가족 이름 (관계)
학력 초등학교 (졸업·중퇴)
중학교 (졸업·중퇴)
고등학교 (졸업·중퇴)
미국해군사관학교 (학과1·학과2[복수전공] / 학사)
종교 종교
직업 군인
소속 소속
서명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1. 개요2. 어린 시절3. 소위 임관4. 태평양 전쟁 개전5. 활약6. 엄청난 환영7. 자취를 감춘 영웅8. 기념 사업9. 서훈1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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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투기 조종사.

2. 어린 시절

남달리 큰 체격 덕분에 "부치(Butch : 사내)"라는 별명으로 불린 에드워드 H. 오헤어(Edward H. O’Hare)1914년 3월 13일에 세인트루이스에서 마피아 보스인 알 카포네와 관련된 일을 하던 변호사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Edward Joseph O'Hare : 1893~1939)와 아내 셀마 오헤어(Selma O'Hare)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년이 열 살이 채 안되던 날, 우연히 낮게 날며 곡예 비행을 펼치는 비행기를 보게 되었고 그 때부터 조종사를 동경하게 되었다. 아버지 조셉 오헤어는 비록 알 카포네가 거느리는 마피아 갱단의 세금 포탈을 도와주는 더러운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2]그는 아들만큼은 똑바르게 키우고 싶었기에, 13살 먹은 에드워드를 서부군사학교(Western Military Academy)로 보냈다. 이곳에서 사격에 매우 뛰어난 적성을 보여 명사수로 이름을 날린 에드워드는 해군사관학교로 진학했다. 그가 군사학교에 재학하던 16살 무렵에 찰스 린드버그대서양 단독 횡단에 성공했고, 이 빅뉴스에 매료된 그는 다시한번 비행사야말로 자신이 갈 길이라고 마음먹게 된다.

3. 소위 임관

1937년 6월 3일에 애너폴리스를 졸업하고 해군 소위로 임관해 USS 뉴멕시코(USS New Mexico BB-40)에서 함선 근무로 군 생활을 시작한 그는 거의 2년이 지난 1939년에야 해군 비행사 훈련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해 11월에 에드워드의 아버지는 운전을 하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카포네가 보낸 살인청부업자로부터 샷건 세례를 당해 죽고 말았다.[3]

슬픔에 잠겨 부친의 장례를 치른 그는 1940년 5월 2일에 모든 비행 훈련을 마쳤고 오헤어 소위는 항모 USS 사라토가(USS Saratoga CV-3) 소속의 VF-3 비행대에 배치되어 함상전투기인 브루스터 F2A 버팔로를 타게 됐다. 함선 근무를 하면서는 구식 기종인 그루먼 F3F 복엽전투기 조종 훈련도 마쳤다. VF-3 부장 존 태치 중위는 새로 들어온 신참 오헤어가 탁월한 조종 솜씨를 지녔음을 즉시 알아보고 멘토가 되어주었다. 태치는 훗날 비행 성능이 앞서는 제로센에 맞설 수 있는 타치 위브 공중 전술을 개발해 오헤어를 비롯한 VF-3의 파일럿들을 훈련시켰다.

1941년 7월 21일 월요일 아침, 오헤어 소위는 처음으로 그루먼 F4F 와일드캣을 몰아보았다. 9월 6일 토요일에는 피닉스에 있는 세인트메리 성당(St. Mary's Catholic Church)에서 간호사인 리타 우스터(Rita Wooster: 1921~2000)와 결혼식을 올렸고 한동안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었지만, 전운은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었다.

4. 태평양 전쟁 개전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다. 일본군은 그때까지 열강 해군에서 보조 함정으로 평가받고 있던 항공모함을 이용해 전사에 남을 기습 작전을 성공시켜 미국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지만, 함선 수리시설과 연료 저장고 같은 필수 설비들은 그대로 남겨두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게다가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의 항공모함 3척은 모두 진주만을 벗어나 있었기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전함순양함들이 몽땅 가라앉아 본의 아니게 함대의 주력이 된 미국 항모들은 싫건 좋건 일본 제국과의 싸움에서 선봉에 서야만 했고, 오헤어 소위 또한 최전선에서 싸우게 된다.

1942년 1월 11일 하와이 남서부를 초계하던 오헤어와 다른 VF-3 조종사들이 항모 사라토가의 장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때, 일본 순잠형 잠수함 I-6가 쏜 어뢰에 맞아 기관실이 침수되고 선원 6명이 사망했다. 함체 후미에 구멍이 뚫린 사라토가는 16노트까지 속도가 떨어졌고, 이틀을 쉬지 않고 돌아가 진주만에 귀환했다. 항모 수리에 5개월이나 걸렸기 때문에 VF-3은 1월 31일부로 USS 렉싱턴(USS Lexington CV-2)으로 전속되어 재배치됐다.

5. 활약

2월부터 USS 렉싱턴은 라바울로 향하는 일본군 수송선단을 저지하는 위험한 임무를 시작했다. 2월 20일 아침에는 장거리 정찰 임무 중이던 일본 해군의 H6K 비행정이 렉싱턴을 발견했고, 무선 연락을 받은 라바울 지상기지에서는 렉싱턴을 공격하기 위해 1식 육상공격기(미츠비시 G4M Betty) 17대로 구성된 공격 편대를 즉각 출격시켰다. 렉싱턴의 장병들은 대공포와 함재기로 1차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뒤이어 제4연합항공대(第4連合航空隊)의 1식 육공 9대가 2차 공격을 가해왔다. 이미 적기를 쫓아내기 위해 공중전을 한바탕 치른 에드워드 버치 오헤어 중위와 윙맨 매리언 두필로(Marion William Dufilho: 1916~1942) 소위의 F4F 와일드캣은 연료와 탄약이 모자랐지만, 250 kg 폭탄을 2발씩 실은 일본 폭격기들은 9마일 부근까지 접근해 있었기 때문에 오직 그 둘만이 막을 수 있는 위치, 즉 항모의 최종 방어선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윙맨 매리언의 기관총마저 고장나버리자,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에 탄 장병 2,800명을 구해내야만 했다. 명사수로 정평이 난 오헤어는 실탄을 아끼기 위해 뛰어난 비행 솜씨로 정확히 적기의 취약한 후방에서 접근하며 엔진과 날개의 연료 탱크를 겨냥해서 짧게 사격해 1대를 먼저 격추시켰다. 또다시 침착하고 정확한 조종술로 적기를 포착한 그는 점사로 하나 하나 1식 육공을 6대나 격추시켰고, 마지막 1대는 실탄이 떨어져 손상을 입히는데 그쳤다.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함한 오헤어의 와일드캣 주위로 온 장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고, 정비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오헤어가 몰았던 F-15호기는 좌측 날개에 총알 구멍이 하나 뚫린 걸 빼면 완전히 멀쩡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때 오헤어가 탄 와일드캣(BuNo 4031 White F-15)은 적 폭격기 1대를 격추시키는데 50구경탄을 평균 16발 밖에 쏘지 않았다.

훗날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에야 알려진 것이지만, 이 역사적인 공중전에서 오헤어가 떨군 적기는 6대가 아니었다. 3소대 바바 토키하루(馬場時明), 우치야마 스스무(内山進)와 1소대 이토 타쿠조(伊東卓造)가 조종한 1식 육공 3대였다. 왼쪽 엔진이 꺼진 편대장 와타나베 쥬조(渡辺什造) 준위의 기체는 미군 항모에 육탄 공격을 펼쳤으나 뜻대로 조종이 되지 않아 바다에 빠져 버렸고, 오헤어의 공격으로 손상된 2대 중 모리 요스다(毛利便)의 기체는 라바울로 돌아가다가 렉싱턴으로부터 40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VF-3의 노엘 게일러(Noel Gayler : 1914~2011 / 5킬) 중위에게 덜미를 잡혀 격추된 것이다. 이 날 2차 공격대에서 무사히 돌아간 것은 마에다 코지(前田幸二) 비조 뿐으로, 기체 고장으로 부나카나우 비행장(Vunakanau Airfield)[4]에 비상 착륙했었다.

그렇다고 오헤어의 공적이 퇴색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3대를 떨궜든 6대를 떨궜든 간에 그는 방위 라인을 뚫고 들어온 1차 공격대의 1식 육공 4대와 9대로 구성된 2차 공격대를 혼자서 물리쳤는데, 이때 렉싱턴의 갑판 위에는 연료와 무장을 가득 채우고 발진 대기 중인 함재기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만일 폭탄 1발만 명중했더라도 순식간에 격침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6. 엄청난 환영

이 무공으로 오헤어는 중위에서 단숨에 2계급 특진해 소령으로 승진했고, 의회 명예 훈장을 처음으로 받은 해군 조종사가 되었다. 개전 초기에 일본군에 의해 수세에 몰리면서 승전 소식에 목말랐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오헤어 소령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부인과 어린 딸 캐서린(Kathleen)과 함께 전시 채권 판매를 홍보하며 신병들에게 비행술을 가르치도록 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3월 26일, 수많은 기자들과 라디오 아나운서가 모여든 진주만에서 오헤어 소령의 환영식이 열렸다. 4월 8일에는 F4F 와일드캣을 생산하고 있는 그루먼의 베스페이지 공장(plant Bethpage)에서 열린 환영회에서 근로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오헤어가 즐겨 피운다는 카멜 담배 230,000개피를 모아 기부했다. 오헤어는 베스페이지 직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여러분들이 제가 탄 와일드캣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비행할 것이며, 절대 패하지 않겠습니다."

4월 25일 토요일에 고향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한 명예 훈장 수상자 오헤어를 환영하는 퍼레이드가 열렸다. 신문 헤드라인에는 시민 6만명이 영웅 오헤어를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라고 대서특필했다. 유별나 보이지만, 당시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던 미국인들에게는 살아있는 영웅이 필요했다. 사나이 오헤어는 젊고 잘 생긴 해군 비행사에다 일본기 6대를 단숨에 떨군 에이스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선전 모델로는 제격이었고, 전시 채권 모금 투어에 한달이나 더 참가해야 했다.

원대로 돌아간 오헤어 소령은 1943년 8월 마커스섬(Marcus Island), 10월에는 웨이크섬에서 임무를 수행해 연말에 또 다시 훈장을 추가했다.

7. 자취를 감춘 영웅

1943년 11월 26일에 길버트 제도에서 야간초계 임무를 수행하던 오헤어 소령이 모는 F6F 헬켓 전투기(BuNo 3986 White F-13)가 USS 엔터프라이즈의 TBF 어벤저 뇌격기와 일본군 1식 육공의 기총 사격을 동시에 받았다. 마침 오헤어는 어두워서 후방에서 접근하고 있던 1식 육공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오헤어의 앞에서 날고 있던 어벤저의 후방 사수 앨빈 커난(Alvin B. Kernan : 1923~2018) 하사가 그 적기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동시에 일본 폭격기쪽에서도 기수의 기총 사수가 오헤어를 향해 불을 뿜었다. 마치 두 비행기 사이에 앞뒤로 샌드위치처럼 낀 상태에서 거의 동시에 사격을 받은 것이다. 그가 탄 헬캣은 서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천천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벤저를 몰고 있던 필립스(Phillips) 중위가 목이 터져라 오헤어를 반복해서 불렀지만 무선망에는 침묵만이 흐르고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미 해군은 부근 해역에서 대규모 수색/구조 작전을 전개했지만, F6F의 파편이나 낙하산, 구명정 같은 어떤 잔해나 흔적도 찾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당일 오헤어가 어벤저의 후방사수 앨빈 하사의 오인사격에 의해 격추됐는지, 일본 폭격기의 기총 사수가 쏜 사격에 의해 격추되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160노트라는 저속으로 추락하는 광경을 직접 본 앨빈 하사와 무선수 헤이즌 랜드(Hazen B. Rand)의 증언과 아무런 잔해도 찾지 못했다는 정황을 종합해보면, 1식 육공이든 어벤저였던 간에 기관총탄이 캐노피 정면 안쪽에 대어진 방탄 유리를 피해 얇은 플렉시글래스를 뚫고 들어와 오헤어의 머리를 직격해 즉사시켰거나, 의식을 잃게 만든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8. 기념 사업

1945년 6월 22일, 영웅 에드워드 버치 오헤어 소령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된 기어링급 구축함에 USS 오헤어(USS O'Hare)라는 함명이 붙여졌다. 이 배의 진수식에는 어머니 셀마 오헤어가 참석했다.

1949년 9월 19일에는 2차 대전의 영웅 오헤어를 기념하기 위해 시카고의 오차드 디포트 공항(Orchard Depot Airport)이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전쟁 당시 함재기 훈련을 하던 미시간 호에서 인양한 F4F 와일드캣을 복원해 오헤어가 직접 몰았던 F-15호기로 재단장해 오헤어 공항 2번 터미널에 전시하고 있다. 이 기체는 옛 주인을 기다리는 의미에서 외형만 복원한 것이 아니라 비행이 가능하게 완벽하게 수리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9. 서훈

10. 기타

스트라이크 위치스 시리즈 중 수오무스 문제아 중대캐서린 오헤어의 모티브가 되었다.

전함소녀에서 에이스 기체로 등장한다. 대공+14로 매우 우수한 성능이다.


[복수전공] [2] 결국 내부고발자로서 알 카포네 구속에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그 대가였는지 시카고 시내에서 백주대낮에 총에 맞아 죽는다.[3] 이 때 그는 더 이상 아들에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기를 결심하고 알 카포네의 정보를 정부 수사관들에게 넘겨 알 카포네가 수감되도록 협력하고 난 뒤였다.[4] 원래 호주 공군이 만든 비행장이었는데 1942년에 일본군이 점령한 후 2년 간 라바울 기지를 보조하는 비행장으로 쓰였다. 이곳에 주둔했던 폭격기 부대는 미자와 항공대, 702공, 705공, 751공이 있었고 전투기 부대로는 제로센을 운용한 타이난 항공대와 겟코를 이용한 252공, 그리고 육군 항공대로는 하야부사를 운용했던 제1전대, 11전대, 그리고 2식 복좌 전투기의 제13전대, 3식 전투기 히엔의 제68전대와 78전대였다. 1944년 3월에 미군의 B-24 폭격기에 의해 완전히 분쇄된 이후 버려졌다.[5] 명예훈장 바로 밑의 해군 최고의 훈장[6] 공군십자훈장과는 다른,격이 더 낮은 훈장이다. 육군,해군,공군,해병대,해안경비대에 소속되어 항공작전에서 용감히 싸우면 수훈받았다.[7] 보통은 중요한 작전에서 전상을 입으면 수훈받았다. 오헤어 소령은 전사하여서 사후 수훈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