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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6 18:33:52

앙헬 살라스 라라자발

앙헬 살라스 라라사발(Ángel Salas Larrazábal : 1906년 10월 1일~1994년 7월 19일)
1. 개요2. 출생과 입대3. 내전에서4. 2차 대전 참전5. 종전 후

1. 개요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국군 소속으로 17대를 격추시키는 활약을 펼친 에이스 파일럿으로, 내전이 끝나고 곧 발발한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스페인 의용 조종사들로 편성된 "푸른 비행단(Escuadrilla Azul)"의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스페인 역사를 통틀어 격추수 3위에 해당하는 그는 618회 출격하며 비행시간 1,215시간에 49회의 실제 공중전을 경험했다.

2. 출생과 입대

소싯적 아명이 살라스로 불린 그는 1906년 10월 1일에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주의 오르두나(Orduña)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15살이 되던 1921년에 군사학교에 입학한 그는 장교로 훈련받은 후 갓 스무 살에 되던 1926년에 포병 중위로 임관했다가, 1927년에 관측수로 병종을 바꿔 공군으로 소속을 옮겼고 1928년에 정찰 훈련을 마쳤다. 그가 군복에 조종사 뱃지를 단 것은 1930년이었다. 앙헬 살라스가 대위로 진급하고 모로코에서 파견 근무하던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터졌다. 그는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스페인 국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하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3. 내전에서

내전 초기에 그는 복엽 날개의 쌍발 여객기인 드 해빌랜드 드래곤 래피드(De Havilland Dragon Rapide)을 몰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상관 에밀리오 몰라 장군은 여러차례 민간기를 몰고 있는 살라스 대위에게 이 비행기에 기관총이나 폭탄을 실을 수 없겠냐고 물어왔다. 그가 몰던 드래곤 래피드는 전투용이 아니라 영국 노선을 오가던 여객기를 그대로 스페인으로 몰고 가져온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압박은 계속되었고, 결국 그는 동체 옆에 전방을 향해 사격할 수 있는 기관총을 거치하는 개조를 한 다음 오랜 친구인 델 몬테(Del Monte) 대위에게 기총사수와 관측수 임무를 부탁해 동승시켰다.

델 몬테 대위는 관측수 임무를 수행하면서 기관총의 탄약이 떨어지면 재장전해주는 탄약수 역할을 해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중에 폭탄창을 설치해 폭탄을 싣고 난 후에는 폭격수 역할까지 해야만 했다. 여객기를 전투폭격기로 개조한 것은 아마 그후로도 없었을 것이다.

살라스는 곧 구식 복엽전투기인 포커 D.12(Fokker D.XII)로 갈아탔고, 8월 23일에 뉴폴 NiD 52로 옮겨 탄 후에야 최초의 격추 전과를 기록했다. 어쩌다 보니 졸지에 전투조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잠시 동안은 이탈리아 조종사들과 함께 피아트 CR.32를 타고 싸웠는데, 살라스는 이 복엽전투기로 가장 많은 전과를 거두게 된다. 1937년부터 앙헬 살라스는 1개 중대를 휘하에 거느리게 되었고, 그의 중대는 정예부대로 평가받으면서 얼마 후에는 스페인 내전 톱 에이스인 호아킨 가르시아 모라토(Joaquín García Morato : 1904~1939)가 지휘하는 2-G-3 항공단[1]으로 편입되었다.

6월 말까지 살라스의 개인 격추수는 7대를 헤아렸는데, 9월부터는 상관 모라토 소령 대신 2-G-3의 지휘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맡게 된다. 살라스의 가장 유명한 전투는 1938년 9월 2일에 당대의 최신예기인 소련제 단엽 전투기 폴리카르포프 I-16투폴레프 SB-2 폭격기 3대를 한 번의 출격에 격추한 사건일 것이다. 앙헬 살라스는 앞에서 소개한 공중전에서 달성한 전과 외에도 지상 공격에서 장갑 차량 16대와 차량 48대를 격파하는 활약을 펼쳤으나, 그가 고백했던 것처럼 대지 공격 임무가 더 위험했는지 자신도 4번이나 추락했었다.

파일:El_piloto_de_la_Escuadrilla_Azul_Ángel_Salas_Larrazábal_en_la_Estación_del_Norte_de_San_Sebastián_(Guipúzcoa,_España),_en_1943.jpg
<1943년에 스페인의 기푸스코아(Guipuzcoa)에 있는 성 세바스티안 북역(North Station of Saint Sebastián)에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 아줄 비행단장 앙헬 살라스 라라자발 소령>

4. 2차 대전 참전

1939년 9월에 나치 독일에 의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지만, 스페인은 히틀러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그렇게 버티다가 거의 2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1941년 7월에야 스페인 의용 전투기 부대를 파견했는데, 이들이 에스콰드릴라 아줄, 이른바 푸른 비행단이었다. 전투기 한대 없이 순전히 조종사로만 이루어진 제1진을 러시아로 이끌고 가서 지휘한 장교가 바로 앙헬 살라스 라라자발 소령이었다.

스페인을 출발한 이들은 1941년 7월 24일에 프랑스를 경유해 독일에 도착했고, 베를린 부근의 베르노이헨(Werneuchen)에서 훈련을 위해 제1전투비행학교(Jagdfliegerrschule 1)에 입교해 기종 전환 교육을 받았다. 메서슈밋 Bf 109E로 훈련을 마친 비행대원들은 9월 26일에 동부전선으로 떠났다.

푸른 비행단 대원들은 Bf 109E-4 전투기 12대와 Bf 109E-7 전투기 7대를 지급받고 나서 루프트바페의 제27전투항공단(JG 27)에 편입되었고 살라스 소령은 메서슈밋 전투기를 몰고 1942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70회를 출격하면서 단독으로 7대의 소련 공군기를 격추시켜 1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독일 공군은 그가 이끄는 부대를 가리켜 제15스페인 비행중대(15 Spanische Staffel)로 불렀고 10월 2일에 처음 실전에 참가했다. 이들 대부분은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 공군의 조종사들과 싸워 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었는데, 모두 합해 79대를 격추했다.

5. 종전 후

파견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독일, 스위스, 포르투갈, 프랑스를 돌며 대사관 소속 무관장교를 오랫동안 역임했다. 1966년에 공군 중장으로 진급한 그는 1972년까지 스페인 공군에서 계속 복무하다가 66세에 예비역으로 물러났다. 1975년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죽자 스페인 왕국 평의회의 일원이 되었고, 1991년에는 육군 원수 겸 공군 장군(Capitán general)이 되었다. 퇴역한 그는 1994년 7월 19일에 88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1] Grupo 2G3 : 같은 해 4월에 Escuadra de Caza에서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