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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9 23:39:54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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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군사개혁
2.1. 보병2.2. 포병2.3. 기병2.4. 군수2.5. 의무2.6. 해군
3. 보병장비
3.1. 피복류3.2. 소총3.3. 권총3.4. 기관총3.5. 산탄총3.6. 폭발물
4. 중화기
4.1. 박격포4.2. 야포
5. 탑승물
5.1. 차량5.2. 군함5.3.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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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에 묘사되는 전술, 무기체계를 서술한다.

2. 군사개혁

주인공 김시혁이 미래인인 덕에 당대 모든 군대들이 겪은 실책과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으며, 정답만을 선택해 개혁을 추진중이다.

당시 조선은 임오군란으로 기존 오군영 체제 및 신식군으로 육성되고 있던 별기군이 붕괴되고 청, 일본과 같은 외세의 간섭으로 군사 육성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군 조직과 전통, 문화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새로운 전술과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걸림돌이 없어지는 효과로 나타났다.

2.1. 보병

의화단 사건 개입을 앞두고 강습보병대대라는 중앙군 직할대를 만들어 현대전에 적합한 새로운 보병전술과 편제를 등장시켰다.

밀집하면 강력한 현대 무기의 살상력에 쉽게 표적이 되어 희생되기 쉽기에, 전술제대의 최소단위를 소대까지 낮추고, 분대급 이하에서 각개전투가 가능하게 만들어 적의 화력으로부터, 은/엄폐/침투기동이 용이하게 개편하는 한편, 전술단위의 소형화로 인해 수반되는 화력의 약화는 경기관총, 수류탄, 척탄통 같은 이전같으면 포병 등의 타 병과에서나 운용했을 장비를 보병 소부대에 편제시켜 보완, 치명성을 극대화[1] 하는 방향을 추구, 강습보병대대에 현대식 보병전술을 먼저 습득시킨 뒤 점진적으로 전군에 확대하여[2] 대한제국을 세계에서 제일 진보된 보병 및 보병전술 보유국으로 탈바꿈시켰으며, 타국에 비해 20년 가까이 새로운 방향성을 조기에 완성한 것 만으로 충분히 현대 군사사에 길이 회자될 업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1차대전 참전이 결정되고 협상국의 군비 지원이 가시화되며 꾸준히 현대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를테면 보병대대와 중대에는 박격포가 공용화기로 편제되기 시작하였고, 1부에서는 강습부대나 기병연대, 근위사단같은 중앙군 부대만이 중대에 6정을 간신히 편제시키던 경기관총이 원정군 보병분대에서는 분대당 1정, 원정군 강습분대에는 분대당 2정까지 보급량이 늘었으며 보병분대의 구조 역시 현대화되었다.[3][4]

또한 강습보병은 그저 정예보병부대로 남지 않고 자전거보병으로 개편하는등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해가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2.2. 포병

군사개혁 과정에서 주퇴복좌기를 최초로 적용시킨 현대식 야포인 프랑스제 Mle1897을 대량으로 도입, 1부 완결시점에서 육군은 교육부대 1개 포대와 10개 포병대대[5], 해군은 러시아제 152밀리 해안포 6문과 프랑스제 야포 1개대대를 운용하는 현대식 대규모 현대식 포병전력을 운용하고 있다. 해당 야포가 곡사포가 아닌 평사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관측반, 야전 통신수단과 연계된 간접사격을 구사하고 있는데, 야전포병은 표적을 직접 조준하여 사격하던것이 일반적이던 당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진보된 포병전술을 구사하는 셈이다.[6] 또한 일본군의 야포들이 주퇴복좌기가 없어서 발사속도가 느린 점을 이용해, 높은 연사력과 수준높은 전술로 부족한 수량을 만회, 대포병전에서 상당한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강도높은 훈련을 통해 기초적인 TOT사격까지 가능한 수준에 올랐다. 대신 이런 연사력 높은 야포의 대량운용에는 필연적으로 대량의 포탄소모가 수반되며, 이는 실제로 1부 러일전쟁 시점에서 한국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와 맞물려 전쟁수행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2.3. 기병

1차 대전 시기까진 현역이고, 본격적인 전차차량화보병이 등장하기 전 유의미한 기동전력으로써 잘 써먹는다. 대한제국은 베이스도 거의 없다보니 개선 작업이 오히려 쉽게 이루어졌고, 1차 친위 쿠데타 당시 들어온 러시아 카자크들에게 기병 훈련을 맡겼으며 이후 러시아에서도 군마를 수입하고 하코트를 기병 고문으로 기용하며 제대로 된 기병대를 갖추게 된다.

2.4. 군수

군대는 보급 없이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고, 김시혁 역시 미래에서 군수를 소홀히하다 일어난 참사들을 목격했으며 남만주 영향권을 확보한 이후 확장을 해나가며 지속적인 무력충돌을 겪여야 했던 만큼 발언권이 강해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작품 속 대한제국군에서 군수의 발언권은 매우 강력한 편으로, 장작림과의 전쟁에서도 탄약 보급이 충분히 이루어지겠냐는 질문에 대해 군수참모가 가능하다고 답하고 나서야 작전을 시작하였고. 1차대전 동부전선 원정군을 편성할때, 김시혁이 물자들을 모스크바에 두자고 하자 군수국장인 민영찬이 아예 정색까지 하면서 지적했는데, 극동전쟁의 영웅이자 원정군 최고사령관인 그에게 대놓고 반대가 가능할 정도로 발언권이 강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5. 의무

의무는 군수와 마찬가지로 남만주 영향권을 확보한 이후 확장을 해나가며 지속적인 무력충돌을 겪는 과정에서 발언권이 강해졌다. 원정군 편성중에도 러시아의 질낮은 수질, 풍토병에 대해 여러 해결책을 내놓는 것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김시혁의 미래지식을 이용해 머큐로크롬[7]의 조기발견, 현대식 지혈대의 도입 등으로 사상자를 극적으로 낮추는데 성공했다. 해당 의료품들은 협상국도 사용하며 큰 효과를 발하고 있다.

2.6. 해군

원역사에서는 대충 구색만 갖췄던 해군이 여기서는 프랑스로부터 구축함 6척을 도입하고 관련 교육도 제대로 받은 나름 싸울수 있는 해군이 되었다. 본래는 추가로 어뢰정 6척도 갖춰질 예정이었으나 해군 양성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순양함 판매라는 미끼에 넘어가 무산되었고 결국 그 자리는 자칭(?) 순양함인 양무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결과 양무호를 뺀 나머지 배들은 러일전쟁에서도 제대로 싸우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양무호는 전쟁 막바지까지 후방에 틀어박혀있다가 의외로 원산 상륙작전에서 활약해서 독자들 사이에선 군밤의 혜안(...)이라 불리기도 하며 일본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도 칭해지기도 했다. 전후에는 보로디노급 전함까지 운용하며 성장중.[8]

3. 보병장비

3.1. 피복류

3.2. 소총

3.3. 권총

3.4. 기관총

3.5. 산탄총

3.6. 폭발물

4. 중화기

4.1. 박격포

2부 프롤로그에서 박격포의 시안이 등장했으나, 대량 생산은 아직이라며 잠깐 언급된다. 1차 대전 참전을 목전에 두고 철모, 방독면 등과 함께 대량 생산에 착수한다. 구경은 60mm와 80mm이며 제식명은 불명.

4.2. 야포

5. 탑승물

5.1. 차량

5.2. 군함

5.3. 항공기


[1] 1차 세계대전 중후기에 들어 동맹국/협상국 양 진영에서 수렴진화하듯 등장하여 현대에까지 큰 틀이 이어지고 있는 현대 보병전술의 기본 전제이다.[2] 강습부대-> 중앙군 근위사단-> 지방군 여단[3] 원정군 보병분대는 소총수 위주의 소총조와 경기관총 위주의 지원조로 나뉜 전간기~현대 유럽식이고, 원정군 강습분대의 구조는 냉전기에 완전히 정착된 미국식의 사격조 체제이다.[4] 원정군이 아닌 본토 주둔부대의 편제 변화는 현재로서는 불명이다.[5] 포병학교 교도대대 1개 포대, 중앙군 4개 대대, 지방군 6개 대대[6] 실제 러일전쟁 중후반경에야 러일 양국 포병에서 지형지물을 끼고 엄폐한 간접사격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며, 이러한 전훈은 독일군같은 일부 열강 육군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1차대전 개전시점에서 이미 상당히 보편화된다.[7] 머큐로크롬의 발견 자체는 1900년대 초였으나 미국의 휴 H. 영 박사에 의해 살균효과가 있음을 발견된 것이 1918년이다.[8] 다만 해군에겐 영 좋지않은 루트로 도입하였다. 이에 대해선 하술.[9] 이때문에 하마터면 모신나강 도입을 말아먹을뻔 하였고, 30년식 값을 군 예산이 아닌 내장원 자금으로 지불하여 고종의 독단적인 지름으로 마무리하였다.[10] 기병총버전은 M1A1카빈처럼 접철식 개머리판을 장착했다.[11] 기관단총의 문제로, 당시 대한제국군의 제식 권총탄은 림드탄이여서 자동화기인 기관단총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새로운 권총탄을 채택하자니 해당 권총탄을 사용할 권총도 새로 보급해야 하는등 문제가 있다. 거기가 작중 대한제국군은 보병간 교전거리를 200m 내외로 보는데 기관단총의 교전거리는 길어봐야 100~150m라는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돌격소총을 만들자니 기술부족으로 인해 지나치게 무거워질것을 우려해야했다. 예시로 최초의 돌격소총으로 알려진 StG44의 무게가 5kg에 육박하고, 절삭가공으로 제작하던 초기형 AK-47도 4.3kg이 나간다. 대한민국 제식소총 K2 소총의 무게가 3.3kg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무거운 것. 이에 고민하던 중 꼭 둘중 하나만을 고를 이유가 없으며, 그 중간이라 부를 수 있는 M1 카빈을 제작하여 지급하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자동사격이 기본으로 지원되는 것을 보면 M2 카빈에 가깝다.[12] 당시에는 기관총을 포병이 운용했기 때문에 총이 아닌, 포라고 불렀다.[13] 강력한 화력이 부족한 인력을 매꿔주고, 인명손실을 줄여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들겠지만 이를 도입하지 않을때 전쟁에서 일어날 피해에 비하면 적을것이라는 논리에 의해 생겨났다.[14] 한국전을 예시로, 105mm 야포 대대를 재대로 운용하기 위해선 차량이 최소 50대 이상이 필요하며, 자동차 기술이 아직 미비한 시대이기에 이보다 더 많은 차량이 필요할텐데 대한제국이 이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 군마로 수송하는 방안도 있지만 중포를 무리하게 견인하다 폐사해버린 것을 예시로 들며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15] 당시 대한제국은 남만주 문제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대놓고 가져오는 건 무리였다.[16] 당시 드레드노트급 함선이 등장하며 러시아 역시 드레드노트 도입을 위해 준비중인 상황에서 남아있던 보로디노급 전함들이 애물단지가 되가고 있던지라 빠르게 처분하길 원했고 마침 태평양에서 활동할 제2중대의 개념으로 우방인 한국 해군을 강화시킬 명분도 있었다. 거기다 나머지 열강들도 전함 1척 가지곤 균형이 깨지진 않을거라 판단했다. 그나마 반발할 여지가 있던 일본 같은 경우에도 당장 전드레드노트급 4척을 얻은데다 어차피 대세는 드레드노트급이 될테니 한국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1~2척 갖는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고 본인들 입으로 직접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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