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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7:40:22

육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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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육군성
[ruby(陸軍省, ruby=りくぐんしょう)] | Army Ministry
<colbgcolor=#b0313f><colcolor=#fff> 설립 <colbgcolor=#fff,#1f2023>1872년 2월 27일
폐지 1945년 12월 1일
후신 제1복원성, 복원청 제1복원국
내부부국
[ 펼치기 · 접기 ]
대신관방 (大臣官房)
군무국 (軍務局)
병무국 (兵務局)
법무국 (法務局)
의무국 (医務局)
경리국 (経理局)
인사국 (人事局)
정비국 (整備局)
병기국 (兵器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Japanese_Army_HQ_Ichigaya.jpg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쓰였던 도쿄 이치가야의 육군성 청사. 이전에는 육군사관학교 건물로 쓰였고, 지금은 이 자리에 방위성이 들어섰다.

1. 개요2. 역사3. 조직4. 역대 육군대신

[clearfix]

1. 개요

육군성([ruby(陸軍省, ruby=りくぐんしょう)])은 일본 제국 육군의 군정 부서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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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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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외관
<nopad> 천황
 
 
<nopad> 신기관 <nopad> 태정관
 
 
<nopad> 신기백
 
 
 
 
 
<nopad> 좌대신 <nopad> 태정대신
 
<nopad> 우대신
 
 
 
 
 
 
 
 
 
 
 
<nopad> 대납언
 
 
 
 
 
<nopad> 좌변관 <nopad> 소납언 <nopad> 우변관
 
 
 
 
<nopad> 외기
 
 
 
 
 
 
 
 
 
중무성 식부성 치부성 민부성 병부성 형부성 대장성 궁내성
}}}}}}}}}}}}



태정관 산하 병부성 육군부(兵部省 陸軍部)가 전신으로, 1872년 병부성을 폐지하고 해군성과 함께 신설되었다. 해군성과 경쟁이 심해져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을 낳기도 했다. 초기에는 프랑스 육군을 모방했지만 곧이어 프로이센 방식으로 전환했다. 육군성의 수장은 육군대신이었는데 혼자 육군의 으뜸이 아니라 참모총장, 교육총감과 3인의 과두체제였다. 이를 육군 3장관이라 불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연합군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육군성은 폐지되었고 현역 군인들의 동원을 해제하면서 민간인의식주로 복귀하는 기능만을 남겨놓았다.[1] 제1복원성으로 개칭하였다가 후생성 내의 제1복원국이 되었다. 그렇게 사라질 뻔했는데 중화민국타이베이로 천도하고, 소비에트 연방과 외교관계가 점점 나쁘게 돌아가고,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고려하기 시작한 연합군 총사령부가 육상전력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했으며, 1952년에는 보안청을 설립했다. 다만 일본 제국 시기과 달리 일본국에서는 육군성과 해군성을 별도로 운영하지 않고 방위성에 모두 귀속했다.

3. 조직

4. 역대 육군대신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fff> 육군경 (1873년~1885년)
1·2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3대
사이고 주도
4대
오야마 이와오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rowcolor=#fff> 육군대신 (1885년~1945년)
1·3대
오야마 이와오
2·4대
다카시마 도모노스케
1·3대
오야마 이와오
2·4대
다카시마 도모노스케
5대
가쓰라 다로
5대
가쓰라 다로
6대
고다마 겐타로
7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7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8대
이시모토 신로쿠
9대
우에하라 유사쿠
10대
기고시 야스쓰나
11대
구스노세 유키히코
12대
오카 이치노스케
13대
오시마 겐이치
14·16대
다나카 기이치
15대
야마나시 한조
15대
야마나시 한조
14·16대
다나카 기이치
17·19대
우가키 가즈시게
18대
시라카와 요시노리
17·19대
우가키 가즈시게
20대
미나미 지로
21대
아라키 사다오
22대
하야시 센주로
23대
가와시마 요시유키
24대
데라우치 히사이치
25대
나카무라 고타로
26·30대
스기야마 하지메
27대
이타가키 세이시로
28대
하타 슌로쿠
29대
도조 히데키
폐지
26·30대
스기야마 하지메
31대
아나미 고레치카
33대
시모무라 사다무
}}}}}}}}}


[1] 이것을 일본어로는 복원(復員)이라고 한다. 한국어 사전에도 있긴 한데 한국에서 복원이란 단어는 무언가를 원상복귀한다는 복원(復原)의 용례가 강해서 잘 쓰이지 않는다.[2] 한국도 창군 시기, 육군교육사령관과 사령부를, 육군교육총감과 육군교육총감부라고 칭했다.[3] 후에 제1복원국 업무부로 격하[4] 창설 당시는 회계국이었고 육군성 제5국으로 개편되었다가 회계국으로 환원된다. 이후 경리국으로 개칭되어 종전 이후에도 제1복원성 경리국으로 이어진다.[5] 장관은 병부성 군의두.[6] 장관은 군의총감[7] 고등군법회의, 사단군법회의 등을 관장하던 부서로 인력은 육군성 군속을 비롯해 20명 내외였다.[8] 욱군 항공부 시절에도 동일하게 칭했다. 당시 육군항공부 조직이 본부와 그보다 격이 낮은 보급부밖에 없어서 장관은 본부장으로 칭했다.[9] 장관은 기술심사부 시절엔 부장, 기술본부 시절엔 본부장이라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