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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88함대八八艦隊 (はちはちかんたい) / Eight-Eight Fleet
일본 제국 해군의 대규모 건함계획.
2. 상세
함령이 8년 미만인 전함 8척과 순양전함 8척을 건함하고 예비용으로 구형 전함 8척과 장갑순양함 8척을 유지하며 이들로 이루어진 주력함대를 증강하려는 계획.이 16척에 포커스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일본 해군 자체의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주력함을 호위할 순양함과 구축함, 그리고 정찰용의 항공모함 건조계획도 잡혔으며 잠수함과 각종 보조용 선박 및 일본 제국 해군 항공대에 대한 계획도 들어갔다.
그때까지의 일본 해군은 최신예함을 꽉꽉 채워넣은 1함대, 비교적 구형함인 2함대, 청일전쟁에서 노획한 배를 포함해 어쨌건 모아둔 3함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88함대계획을 통해 압도적인 화력과 방어력을 갖춘 1함대, 고속성과 전투력을 겸비한 2함대, 야간전 외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은 대규모 어뢰투사용 구축함 전대인 3함대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배가 크면 세다는 수준이 아니라 미 해군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배의 크기가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기술적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1] 특히 함대별로 미국 함대보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복구의 가능성이 높은 등, 대놓고 태평양 최대의 적인 미국 태평양함대를 압도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술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고, 88함대계획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2] 88함대이야기에 따르면 그 예산은 88함대를 만드는 것만으로 끝없이 총력전이라고 한다.
3. 배경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의 기간에 전함 6척과 장갑순양함 6척으로 66함대 계획이 실행되었다. 구체적으로는 후지급 전함인 후지, 야시마와 시키시마급 전함인 시키시마, 아사히, 미카사, 하츠세로 구성되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6척과 아사마급 장갑순양함인 아사마, 토키와와 야쿠모급 장갑순양함인 야쿠모와 아즈마급 장갑순양함인 아즈마와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인 이즈모, 이와테로 구성되는 장갑순양함 6척으로 구성되었다.66함대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러일전쟁의 황해 해전과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제국 해군의 승리를 가져왔다. 따라서 해당 계획이 88함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이 끝나고 반드시 배상금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 청일전쟁으로 얻은 배상금을 진작에 다 날리고 외국에서 국채까지 얻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영국의 막대한 전쟁채권 구입이 러일전쟁 수행의 근원이었고, 이는 영미의 극동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세계정책의 일환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66함대를 달성하기 위해서 해외 열강들로부터 대형 군함을 수입해서 함대를 구성해야 했기에 군함 대금 문제도 작렬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국내 사정으로 전쟁을 지속하지 못한 것 뿐이지 진 게 아니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배상금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일본도 어떻게든지 배상금을 받아내려 했으나 러시아가 협상하기 싫으냐며 거부하자 일본도 더이상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배상금을 받지 못해도 협상을 하라는 명령을 일본 대사에게 이르게 된다.
결국 일본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막대한 군비를 들이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고 떠들던 일본 정부와 군부가 발표했지만, 배상금도 없고 영토 할양도 고작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과 연해주 연안의 어업권에 불과한 극히 일부였다. 따라서 폭동이 날만 했다.
히비야 방화 사건같은 폭동을 제압하면서 원로와 부하들이 다 해먹는 일본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가득해졌으며 결국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군인은 유능해서 전쟁을 이겼는데 정치가가 무능해서 협상에서 망쳤다는 주장도 팽배하여 일시적으로 위세가 눌렸던 군부가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입김이 세졌으니, 육군의 경우는 17개 사단을 25개 사단으로 늘렸고, 해군의 경우가 바로 이 88함대이다. 사실 처음은 84함대로 시작해 86함대 88함대 순으로 목표가 점점 늘었다.
4. 진행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의 발트함대를 괴멸시켜면서 세계 제3위의 해군강국이 된 일본은 다음의 가상 적국을 태평양과 중국에서 일본과 갈등이 깊어지던 미국으로 설정하고 미합중국 해군에게 대항할 함대를 만들고 전력을 정비하는 것을 검토한다. 그래서 1907년의 제국국방방침 (帝国国防方針)의 국방소요병력 (国防所要兵力) 초년도 결정에서 전함 8척과 장갑순양함 8척을 확보한다는 최초의 88함대 계획안이 나온다.그러나 이미 주력함의 기술력과 주류는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순양전함으로 바뀐 상황이었고 기존의 주력함에 비해서 건조비가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에 즉각적인 실시와 확보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기에 점진적으로 실행하기로 결정한다.
진행과정에서 1913년 말에 터진 비커스-지멘스 군납비리 및 뇌물 사태가 터져서 일본 제국 해군의 위상이 실추되고 건함예산이 삭제당하는 등의 각종 사건이 있었으나 1916년과 1917년 사이에 결정된 84함대안, 1918년의 86함대안, 1920년의 88함대안으로 점점 계획이 증가하면서 88함대 계획안과 예산이 모두 일본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의 세출 규모가 15억엔에 불과한데 군함 건조비는 둘째치고라도 88함대가 완성될 경우의 연간 유지비만 따져도 6억엔으로 예상되어 설령 88함대를 만들더라도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질 지경이었다. 애초에 예산안이 통과된 것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일본이 군수품을 팔아먹으면서 일시적으로 경제 호황이 발생했기 때문인데 1차대전이 끝나면서 경제가 다시 불황으로 가고 있어서 돈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제국 해군은 새로운 건함계획으로 888함대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해당 안건은 88함대가 실현된 후에도 함령이 8년이하라는 점을 이용해서 8년마다 신규 주력함을 건함하는 한편 2선급으로 내려간 군함들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라서 실제로 실행에 옮길 경우 국가가 파산하는 사태까지 올 수 있었다.
결국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주력함의 건조가 억제되면서 88함대 계획은 사라지고 일본의 재정악화 문제는 해결되었다.
5. 구성
5.1. 주력함
88함대 계획 | |||
전함 戦艦 | |||
나가토급 長門型 | 카가급 加賀型 | ||
나가토 長門 | 무츠 陸奥 | 카가 加賀 | 토사 土佐 |
키이급 紀伊型 | |||
| | | |
순양전함 巡洋戦艦 | |||
아마기급 天城型 | |||
아마기 天城 | 아카기 赤城 | 타카오 高雄 | 아타고 愛宕' |
13호급 十三号型 | |||
| |||
※ 밑줄: 항공모함으로 개장, 기울임: 건조/개장 도중 해체, |
- 주력함
- 예비함
- 구형 전함 - 공고급 순양전함 4척, 후소급 전함 2척, 이세급 전함 2척
- 순양함 - 아사마급 장갑순양함 2척, 야쿠모급 장갑순양함 1척, 아즈마급 장갑순양함 1척, 이즈모급 장갑순양함 2척, 텐류급 경순양함 2척
88함대의 기본 구상은 함령 8년 미만 (0~7년)의 전함 8척과 순양전함 8척을 주력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8년마다 신형 주력함을 건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는 8년마다 모든 주력함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어려우므로 매년 2척씩 건조해서 조금씩 교체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게 된다.
굳이 8척을 상정한 이유는 일본 제국 해군은 단종진을 편성하여 함대의 주력이 되는 전함과 전위와 유격전력을 담당하는 순양전함을 상호 연계시켜서 망치와 모루 전술을 사용해서 함대결전을 유리하게 진행시키는 기본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함대 운용시 지휘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당시에 일본이 생각하던 지휘통제가 가능한 한계가 8척이었기 때문에 8척을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함령 8년 미만의 군함을 제1선급 주력함이라고 지정하는 것을 약간 더 생각보자면 함령이 8년을 넘은 군함도 제2선급 예비함으로서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서 당시 상정되고 있던 일본 제국의 주력함 운용 연수는 24년이이므로 최종적으로는 일본 제국 해군은 48척의 주력함을 현역으로 운용하고 유지 및 정비하며 매년 2척의 신형 주력함의 기공을 계속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제국 해군이 최종적으로 원했던 888함대가 실현되면 72척의 주력함을 현역으로 운용하고 유지 및 정비하며 매년 3척의 신형 주력함의 기공을 계속하게 된다. 이미 당시의 일본의 국력 한계를 훨씬 넘어가는 수준의 미친 건함안이었다.
5.2. 항공모함
당시의 일본은 항공기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었고 수상기 모함을 활용하여 수상기를 비행시켜서 전투에 참가시킨 경험이 독일 제국의 중국 식민지인 키아우초우 공략을 포함해서 상당수 있었으며 성과도 나름 있었다.그래서 88함대에 특무함(特務艦) 항목의 운송함(運送艦) 이라는 형식으로 호쇼가 포함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함대의 정찰을 위해 4척의 항공모함을 건조하기로 결정하였다.
5.3. 순양함
주력함을 호위하는 순양함에 대해서도 기존의 텐류급 경순양함은 너무 작고 약하다는 의견이 쇄도했기에 5,500t급 경순양함인 쿠마급 경순양함, 나가라급 경순양함, 센다이급 경순양함의 건조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순양함의 숫자도 중요하다고 봐서 순양함 4척을 동시에 건조하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순양함을 건조할 계획도 만들었다. 그래서 센다이급 경순양함은 3척까지만 건조했지만 계확상으로는 7척까지 만들려고 했고 미국의 오마하급 경순양함에 대응하기 위해서 14cm 주포를 2연장 주포탑에 탑재해서 4기를 장착하는 개량안도 검토에 들어갔다.그리고 점점 순양함의 배수량이 늘어나고 무장도 강력해지는 데 예산은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해서 히라가 유즈루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유바리 같은 실험성격의 경순양함도 제작했다.
여기에 더해서 호킨스급 중순양함같이 당대의 순양함을 능가하는 대형 순양함의 출현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번 취소했던 8,000t급의 대형 순양함 계획을 다시 실행하였고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으로 실현된다.
5.4. 구축함
구축함의 경우에는 1등 구축함인 대형구축함 계열인 미네카제급 구축함이 주력이 되고 2등 구축함인 모모급 구축함이 보조전력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건함이 추진되었다.미네카제급 구축함은 카미카제급 구축함을 거쳐서 무츠키급 구축함으로 계속 개량되면서 1급 구축함의 지위를 이어나가서 특형 구축함이라고 부르는 후부키급 구축함으로 1등 구축함의 계보를 넘겨준다.
모모급 구축함은 와카타케급 구축함으로 이어지지만 특형 구축함의 등장으로 2등 구축함의 계보는 정지된다.
그리고 구축함의 대형 건함도 염두에 두었는지 카미카제급 구축함과 와카타케급 구축함은 함명으로 고유의 명칭이 아니라 번호가 주어졌다. 고유의 함명을 지정하면 구축함의 대량 건조시 명명할 적당한 이름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해군 군축조약의 체결로 구축함 건조에 제동이 걸리자 다시 예전처럼 고유의 함명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88함대 계획으로 탄생한 구축함들은 태평양 전쟁시기에는 함령이 오래되어 퇴역하거나 다른 용도로 다시 개조되었으나 전간기 시절의 일본 구축함의 주력을 차지하며 오랜 기간 활동하였다.
5.5. 잠수함
어뢰를 사용한 뇌격에 각별한 관심이 높았고 1차대전 시기의 U보트의 활약에도 상당한 흥미를 보였기에 원래 10척밖에 없었던 잠수함을 대량건조하기로 했다. 그래서 84계획에서 88계획까지 계획이 계속 늘어나면서 100척의 건조가 계획되었고 실제로 38척이 준공되었지만 해군 군축조약의 체결로 만들어지지 않은 잠수함은 건조가 취소된다.긴급하게 잠수함을 늘리다보니 1가지나 소수의 함급으로 통일되지 않고 서로 약간씩 다른 세부 함급으로 소량씩 건조가 되는 바람에 유지보급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으며 구축함과 같이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함령이 오래되어 대부분이 퇴역하거나 개조되었다.
5.6. 보조함
88함대로 인해 일본 제국 해군의 함대가 확대되면서 병참의 중요성이 크게 올라갔다. 그래서 급유함을 비롯한 군수지원함들이 건조되었다. 이들은 후대의 군수지원함들이 개조항공모함용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군축조약 탈퇴 이후에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으므로 오래된 함령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에서 연료, 탄약, 물자의 보급과 운반을 담당하였다.그 외에도 기뢰부설함, 소해함, 구축함모함, 잠수함모함같은 보조함들도 약방의 감초처럼 88함대에 추가되었다.
5.7. 해군 항공대
해군이 독자적인 항공력을 가질 필요가 대두되었다. 그래서 84함대안에서 처음으로 일본 제국 해군 항공대의 기지항공대의 정비예산이 성립되어 3개 부대의 정비가 인정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실전부대 15개와 연습부대 2개를 합친 17개 부대를 개설하는 것이 결정되었다.5.8. 장교육성
88함대로 함대가 확충되면서 군함을 담당할 장교의 대량육성이 필요했다. 원래 일본 제국의 해군사관학교인 일본해군병학교는 기수당 100명만 입학가능했으나 50기부터 52기까지는 기수당 300명씩 입학가능하도록 크게 늘렸다.88함대 계획이 무너지면서 다시 기수당 100명으로 줄어들었으나 입학정원이 확대된 시기에 해군병학교를 졸업한 해군장교들은 태평양 전쟁 시기의 각각의 군함의 함장을 담당하는 고급 장교로 활동하였고 전쟁시기에 다수 필요한 장교인원을 이렇게 대량 육성된 장교로 충당하게 된다.
6.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1차 대전 이후 영국은 각국에 해군 군축을 제의하게 되고 여기에 미국이 동참하고 각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으며 일본의 경우 당시 총리였던 하라 타카시가 군부를 견제하기 위하여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게 된다.그리고 조약에 의하여 88함대의 계획은 끝나게 된다. 카가와 아카기는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으며 아마기, 토사, 타카오, 아타고는 해체되었고 이중, 타카오와 아타고는 이름을 타카오급 중순양함에 넘겨주었다. 키이급 전함과 13호급 순양전함은 공중분해됐다...[3]
항공모함의 경우에도 아카기와 카가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하면서 호쇼 이후의 항공모함이 취소되었으며 구축함과 보조함 이하의 군함들도 대폭 줄어들었다. 그래서 조선소에 불황이 몰아닥쳐서 추후에 보상금이 지급되었으며 스즈키 상점 (鈴木商店)처럼 일본 제국 해군과 거래가 많았던 대기업이 거래액이 갑자기 크게 줄어들면서 당대의 불황까지 두들겨맞으며 경영이 크게 악화되기까지 했다.
7. 현실성
전함과 순양전함을 합쳐서 16척이라는 전력은 분명히 강력한 전력임은 사실이다. 게다가 이들은 전부 16인치급 (410mm) 구경의 강력한 주포를 사용하는 전함들이다. 16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전함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도 각국의 몇 안되는 귀중한 전력이었다.그러나 일본의 국력은 이러한 대규모 함대를 건조, 운용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이전부터 군사력을 키운다고 국가예산의 30% ~ 40%를 군사비로 밀어넣는 것이 현실이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Naval Act of 1916에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10척 + 순양전함 6척을 건조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콜로라도급 전함 4척,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6척, 렉싱턴급 순양전함 6척이 실제로 기공에 들어가서 건조중이었지만 이것도 부담스럽다고 그나마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줄인거다. 이것도 미국이어서 16척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지, 재정난에 허덕이던 일본이 주력함 16척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었을까?
간단히 비교를 해보면 당시 대영제국, 독일 제국, 미국이 경제력이 좋았는데,[4] 영국과 독일의 건함 경쟁은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기준으로 취역한 군함의 수를 따져봤을때, 영국의 경우 드레드노트급 10척, 슈퍼 드레드노트급 12척(+5척)[5]에 순양전함 10척[6]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세지 않아도 가장 규모가 큰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7] 한편 제2의 해군국이었던 독일 제국은 드레드노트급 13척(+4),[8] 순양전함 4척(+3)[9]으로 슈퍼 드레드노트급은 부재하지만 튼튼한 방호력을 자랑해서 영국과 맞설 수 있었다.[10] 마지막으로 뒤늦게 전쟁에 참여한 미국의 경우 드레드노트급 8척, 슈퍼 드레드노트 6척(+3)[11]으로 제일 수가 적지만, 전쟁에 늦게 참여해서 상대적으로 더 우수한 설계를 가진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일본은 드레드노트급 2척, 순양전함 2척을 보유하고 슈퍼 드레드노트급 2척과 순양전함 2척을 건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12] 당시 프랑스가 제1차 세계 대전때 해군 전력이 드레드노트급 4척에 슈퍼 도레드노트급 (+3)척[13]을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일본 해군의 주력함 수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 숫자마저도 제1차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참전은 안해서 느긋히 건조 가능했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러일전쟁때 일본 해군보다 규모가 컸던 러시아 제국 발트 함대를 생각해보면 러시아가 일본보다 가난해서 대전(大戰) 전에 드레드노트급 7척만 보유했겠는가?(물론 전쟁으로 재정이 악화되긴 했다.)
당시 일본의 경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러일전쟁으로 엄청나게 큰 빚을 가지게 되었고 과거 전드레드노트급과 다르게 드레드노트, 슈퍼 드레드노트급의 건조 비용은 너무나 비쌌다. 그와중에 나가토급 전함으로 시작해서 88함대를 건조하는 것은 이미 국가역량을 벗어났다. 막 근대화를 한 일본은 서유럽과 같은 부유한 나라도 아니었고 일본의 식민지는 부를 늘리기 좋지 않았다. 타이완 경영은 성공적으로 나름 짭잘한 돈을 벌긴 했지만, 타이완의 경제규모는 작고 조선은 34년 11개월동안 단 한번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어떻게보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건함을 제한되었기 때문에 일본 제국이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능력이 생긴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1920년 일본의 총군사비/GDP의 수치는 5.86%로 정상적인 국가에서 나올 수치가 아니다. 정말 88함대를 강행했으면 일본이 건조비용 + 유지비용으로 전쟁을 수행하지 못했을지도.
8. 해상자위대의 명칭 계승
거함거포주의에 입각한 88함대 개념 자체는 거함거포주의의 몰락과 함께 완전히 사장되었지만 현 일본 해상자위대에서 각 호위대군 편제 개편 계획을 "88함대"로 지칭한 적이 있다. 구일본군의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 함대와 해상자위대 호위대군의 호위함 8척과 대잠헬기 8기 개념의 유사성에서 착안한 명칭이다.1970년대 해상자위대 호위대군은 8척의 호위함과 6기의 대잠헬기를 주축으로 하는 "8함 6기제" 편성이었다. 그러나 소련군에 잠대함 미사일이 배치됨에 따라 대잠방어망이 돌파당하지 않아도 선단이 공격당할 위험성이 크게 증대되었다. 해상자위대는 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함재 헬기를 HSS-2B 시킹과 SH-2F 시스프라이트 혼성 10기로 늘리는 8함 10기제를 연구했는데, 추진 도중 상이한 2종의 헬기를 동시에 헬기구축함에서 운용하는 방안은 정비소요가 너무 커져서 실현이 곤란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기종을 보다 고성능인 시킹으로 일원화하는 대신 헬기 숫자를 8기로 줄인 8함 8기제를 호위대군 편성 골간으로 삼도록 결정되었고, 이것이 1척의 헬기구축함(DDH), 2척의 방공구축함(DDG), 구축함 5척(DD)에 8기의 대잠헬기를 운용하는 "88함대"로 불리곤 했다.
8함 8기제 구상은 1995년경 4개 호위대군 모두에서 완성되었지만 그 뒤 휴우가급 헬기구축함, 아타고급 구축함, 이즈모급 다용도 운용모함 등이 배치되면서 호위대군 내에서 운용하는 대잠헬기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2008년 이후 호위대군 예하 호위대 역시 호위대군 사령부 소재지에서 벗어나 일본 각지로 분산 배치되면서 오늘날에는 더이상 쓰이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2000년대 열심히 해군을 강화하던 한국도 이걸 모방해서 66함대라는 개념을 자주 들고 나왔고 이 시기 나온 밀리터리 소설들에도 그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바라보던 것과 안보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해군력이 증강된 2010년대 후반부터는 거의 잊혔다. 현재 대한민국 해군은 18척의 대형 방공구축함을 제7기동전단에 배치할 계획으로 이 정도면 66함대를 세번 완편할 수 있는 척수이다.
9. 대중매체에서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역습의 샤아에서 지구연방군의 우주 주력군인 88함대도 여기서 명칭을 따온 걸로 보인다.[14] 제2차 네오지온 항쟁 시기에는 각 콜로니의 반정부 폭동 및 진압을 의식해서 분산 배치 되어 있어, 5th루나가 지구연방군의 총사령부가 있는 라싸에 떨어지는 와중에도 주력군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렇다할 활약을 못하고 있었다. 이후 작 종반 첸 아기의 죽음과 동시에 그녀의 의지와 사념이 우주로 퍼지면서, 론도 벨을 돕기 위해 출격, 액시즈의 낙하를 막는데 도움을 준다.
- 가공전기 <88함대 이야기>는 처음부터 88함대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예산과 사회간접자본 측면에서 연구한 개인출간지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88함대를 정상적으로 건조하려면 당시 일본의 국력 자체를 2배로 강화해야 한다고. 그래서 청일전쟁에서 좀 더 크게 이기는 것으로 역사를 개변하고, 그렇게 얻어낸 배상금의 일부를 육군에 투자하여 러일전쟁에 사용할 포병과 포탄 비축량을 늘려 여기서도 크게 이기고, 기타등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서 마침내 88함대를 완성하는 것으로 완결하였다.
- 대강의 예산 분석은 다음과 같다.
- 건조하는 함선은 전함 16척, 정찰과 탄착관측에 필요한 항모를 함대당 1척씩 총 7척, 순양함 32척, 구축함 112척, 잠수함 84척.
- 1937년 기준 야마토급 2척이 3억엔, 같은 예산으로 4만톤급 항모 건조 가능. 이것을 기준으로 전함 16척에 24억엔, 항모는 기존 보유한 3척 빼고 4척만 추가건조해 2억엔.
- 3천톤급 순양함 6척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8천톤급 대형 순양함 8척과 5,500톤급 18척을 건조해, 톤당 4천엔 잡고 합계 7억엔.
- 함선이 작아지면 톤당 건조비는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구축함은 톤당 5천엔 가정하고 1척 평균 1350톤, 112척에 7.6억엔.
- 잠수함은 구축함보다 10% 비싸다고 치고 1척 평균 1천톤 가정, 84척에 4.6억엔.
- 합계 45억엔. 여기에 급유함, 급양함, 공작함 등 지원함도 2배로 늘린다고 치고 5억엔 추가해 합계 50억엔.
- 다만 1930년대 후반 기준이므로 192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30억엔 정도고, 8년에 걸쳐 88함대를 건설한다면 연 4억엔 정도의 전력개선비가 필요함. 기존 장비의 유지비와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전력개선비는 1/3, 무리한다고 해도 반 정도가 한계이니 해군 예산이 연 8억엔 필요함.
- 실제 역사에서 1921년 해군 예산은 5.2억엔, 26년에는 2.39억엔. 심지어 8년이 지나 1931년 일본의 국가예산이 17억엔이어서, 예산의 절반이 해군에 빨려들어간다. 육군 예산은 해군의 절반이라고 쳐도 국비의 7할이 군사비로 사라진다는 의미.
- 중일전쟁에 투입한 예산이 100억 엔이라고 함. 88함대 건조비가 그 절반.
- 결론: 88함대를 건조하는 것 만으로 총력전 상태. 일본의 국력을 2배로 확대할 수 있으면 국가예산의 3~4할 정도가 군사비로, 대충 건실한(?) 예산편성이 됨.
- 2008년에 이를 개고하여 2~3부를 발간하였는데, 1920~30년대(아직 잠수함과 항공기가 미발달한 시기)에 88함대로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벌이고, 그 후 40년대에 들어 세계 정세의 흐름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할지 루트가 갈리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당시의 일본은 세계제국인 영국에 빌붙은 신참 열강이라 국제정세를 리드할 여력도 경험도 그리할 생각도 없었다고. 주요 루트는 영국이 시키는대로[15] 연합군에 참여한다, 히틀러와 동맹해서 영국 동양함대를 격파하고 유럽에까지 함대를 파견한다, 미국과 화해하고 둘이서 태평양을 장악한다, 소련과 동맹을 맺고 모스크바 방어를 위해 주력 항공대를 파견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전세계가 연합해서 미국에 상륙전을 건다 등등. 어느 루트든 '세계 최강의 함대'인 88함대[16]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10. 연관 항목
- 함대법
1차대전 이전 독일 제국 해군의 건함 계획. 최대 98척의 순양함 이상급 군함을 건조하고 25년마다 무제한적으로 신형함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명시한 법안이다. 그런데 어디서 돈을 가져다 쓸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영국과 치열한 건함 경쟁이 벌어졌다. 한 척이라도 많은 전함을 가지고 있으면 란체스터 법칙에 의해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서로를 압도하기 위해 예산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 경쟁 과정에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개발되었고, 이 신형함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전함 전력이 리셋되자 경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1차대전 후, 일본의 함대 증강으로 태평양을 위협당한 미국이 함대를 증강하고 그에 맞추어 함대를 증강해야하게 된 영국의 주도로 맺어진 조약. '그 어떤 해전보다도 많은 전함을 격침시켰다' 라고 전해진다.
[1] 가공전기 중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대책으로 뉴딜을 하면서 파나마를 확장한다는 작품도 있다. 그것만으로 일본 해군이 멘붕하고 기존 계획이 몽땅 날아가 군의 정치력이 꺾인다는 이야기.[2] 개인이 연구한 내용이기는 하다.[3] 그나마 키이급 전함은 이후 야마토급 전함 4번함 111번함 계획으로 부활하지만, 그마저도 예산부족으로 건조 중에 취소되어 버렸다.[4] 프랑스도 경제규모가 크지만 해군은 작은 편이어서 제외.[5]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1번함 퀸 엘리자베스를 제외하면 슬슬 전시체제에 들어가는 1915년~16년에 취역한다. 아예 전쟁중에 건조한 리벤지급 전함은 제외[6] 리벤지급과 마찬가지로 전쟁중에 건조한 리나운급 순양전함은 제외[7] HMAS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1911-와 같은 영연방 소속 군함도 포함했다.[8] 쾨니히급 전함. 쾨니히급은 전쟁 직후 취역하게 된다.[9]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다만 3번함 힌덴부르크는 설계 변동으로 취역이 1917년에 이루어져 유틀란트 해전에도 참가하지 못했다.[10] 참고로 독일은 14인치 이상의 거포 개발이 늦어져서 독일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급은 바이에른급 전함이다.[11] 뉴멕시코급 전함. 테네시급 전함과 콜로라도급 전함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완공이 안되었으니 제외.[12] 카와치급 전함 2척,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 히에이. 건조중이었던 함들은 후소급 전함과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 기리시마. 이세급 전함은 1915년부터 건조했다.[13] 브르타뉴급 전함. 프랑스의 고질적인 느린 건조 속도로 전쟁 후반에 취역한다.[14] 이름 이상 실제 88함대와의 연관성이 전혀 없으며 이 함대의 구성이 어떻게 되있는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함대가 속한 지구연방군은 작품 외적으로 2차세계대전 연합군+냉전기 이후 서방군에서 모티브를 가지는데 정작 연방과 대치하는 지온군은 추축국에서 모티브를 얻은 세력인 것을 보면 기묘하다.[15] 좋게 말하면 아들을 가르치는 아버지처럼, 솔직히 표현하면 '사냥개를 가르치는 주인처럼'.[16] 이에 대비하여 영국 해군이 '세계 최대의 함대'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