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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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 병기 | 신요, 마루레육, 가이텐, 카이류, 후쿠류 | ||||
군수지원함 | |||||
공작함 | 아카시, 아사히 | ||||
급유/급탄/급병함 | 시레토코급, 온도급, 카자하야, 하야스이, | ||||
급양함 | 마미야, 이라코, 노사키 | ||||
상륙함정 | 신슈마루, 대발동정, 제101호형 수송함 | ||||
잠수모함 | 진게이급, 타이게이 | ||||
잡역선 | 아스카C, 아타다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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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급 전함 | |
이세 | 휴우가 |
伊勢型戦艦 (이세형전함) |
1.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이세급 전함은 세계 최초이자 21세기 시점으로도 유일한 항공전함이다.2. 제원
이세급 전함 1차 개장 | 이세급 전함 2차 개장 [1] |
구분 | 건조 | 근대화 | 항공전함 |
기준배수량 | 29,900t | 36,000t | 35,350t |
만재배수량 | 32,062t | 40,169t | 38,682t |
전장 | 208.16m | 215.08m | 219.62m |
전폭 | 28.7m | 33.83m | 유지 |
홀수 | 8.7m | 9.21m | 9.03m |
보일러 | 석탄,중유 혼소 보일러 24기 | 로호함본식 중유보일러 8기 | 유지 |
터빈 | 브라운 커티스식 직결터빈 2기 | 함본식 기어터빈 4기 | 유지 |
추진축 | 4축추진 | 유지 | 유지 |
연료탑재량 | 석탄 4,600t 중유 1,411t | 중유 5,313t | 유지 함재기용 연료 76t |
속도 | 23knot | 25.31knot | 25.4knot |
출력 | 45,000hp | 80,825hp | 유지 |
항속거리 | 14knot로 9,680해리 | 16knot로 7,802해리 | 16knot로 9,500해리 |
주포 | 41식 14인치 (356mm)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 6기 (총 12문) | 유지 | 5,6번 주포탑을 철거해서 4기만 유지 |
부포 | 41식 140mm 단장 20기 | 41식 140mm 단장 16기 | 완전철거 |
어뢰 | 533mm 수중발사관 6기 | 완전철거 | 철거상태 유지 |
대공포 | 76mm 40구경장 단장 4기 | 127mm 2연장 4기(총 8문) | 127mm 2연장 8기(총 16문) |
기관포 | 없음 | 25mm 2연장 10기 (총 20문) | 25mm 3연장 31기 25mm 단장 11기 (총 104문) |
특수무장 | 없음 | 없음 | 120mm 28연장 로켓포 6기 (총 168문) |
레이더 | 없음 | 없음 | 2호 1식 항공기탐지용 1기 2호 2식 수상함탐지용 2기 |
캐터펄트 | 없음 | 1기 | 2기 |
비행갑판 길이 | 없음 | 없음 | 70m |
비행갑판 너비 | 없음 | 없음 | 전면 29m 후부 13m |
함재기 | 없음 | 수상기 3기 | E16A 즈이운 수상기 D4Y 스이세이 폭격기 총 22기 |
승무원 | 1,360명 | 1,385명 | 1,463명 |
현측장갑 | 305mm | 유지 | 유지 |
갑판장갑 | 55 + 30mm | 135mm | 유지(비행갑판지역 제외) |
주포탑 전면장갑 | 305mm | 유지 | 유지 |
함교장갑 | 305mm | 유지 | 유지 |
기공 | 1915년 5월 10일 고베 가와사키 조선소 |
진수 | 1916년 11월 12일 |
완공 | 1917년 12월 15일 |
근대화 | 1935년 8월 1일 ~ 1937년 2월 23일 |
항공전함 | 1943년 2월 23일 ~ 1943년 8월 23일 |
격침 | 1945년 7월 28일 구레 군항 공습 당시 |
3. 함생
3.1. 급박한 탄생
1917년 구레시에서 항해중인 이세 | 1917년 시험항해중인 이세 |
당대의 일본 제국 해군은 나름대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제작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영국 해군으로부터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와 제작을 의뢰한 일본은 영국에서 직접 건조한 1번함 공고 이후로는 일본 내 조선소에서 자체적으로 건조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설계도와 기술을 통째로 넘겨받는 등, 영일동맹으로 영국의 엄청난 협조를 받았기에 있을 수 있었던 결과였으나,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던 일본으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였다. 그리고 공고급을 라이센스 제작하며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건조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배수량 30,000톤의 전함 후소(扶桑)를 건조해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직접 자국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국가와, 그저 해외의 기술을 도입할 뿐인 국가의 차이는 컸다. 후소가 취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중방어 방식을 채용한 미국의 네바다급 전함(Nevada-class battleship)[2]이 나오자 당장 주장갑이 현측 전체를 두르는 방식인 방어구조가 구식으로 전락해버렸다. 게다가 구식 설계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측장갑도 영국은 현측 주장갑이 13인치, 미국은 현측 주장갑이 13.5인치를 확보한 데 비해 약 1.5인치 정도 얇아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영국이 새로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Queen Elizabeth-class Battleship)과 리벤지급 전함(Revenge-class battleship)[3], 미국이 펜실베이니아급 전함(Pennsylvania-class battleship)[4]을 1916년에 건조하였고, 점점 양국 주력함의 스펙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당장 돈도 딸려서 이미 예정된 후소급 전함과 3, 4번함을 추가로 건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는 1913년 말에 터진 비커스-지멘스 군납비리 및 뇌물 사태로 인해 해군 측이 해군 출신 야마모토 곤노효에를 내세워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따낸 건함예산이 전부 취소된 탓이 컸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후소급 전함 자체가 성능이 떨어지니 미치지 않고서는 건조계획이 그대로 될 리가 없는 법이다.
결국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건조까지 시간이 생기면서 후소급 전함 2번함 야마시로는 건조 도중에 변경 가능한 것들은 변경하면서 건조작업을 진행시키고 후소급 전함 3,4번함으로 예정된 설계는 근본부터 대폭적으로 개량하기로 하고, 설계자로는 일 저지른 녀석이 수습한다고 후소의 설계자인 해군중장 곤도 모토기(近藤 基樹) 남작이 맡기로 하였으나...
3.2. 원판 불변
1918년의 이세급 전함 2번함 휴우가 |
아무리 설계자가 영국의 그리니치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내에서는 함선설계의 권위자였다지만, 당장 영국이나 미국의 최첨단 설계를 직접 설계도를 보거나 실물을 뜯어 보지도 않고 눈으로만 보고 설계사상을 파악해서 재현해내기는 매우 어려웠으며, 러일전쟁후 영일동맹도 반쯤은 의미가 없어서 공고급 순양전함처럼 영국으로 부터의 설계/기술 제공과 라이선스는 꿈도 못꿀 지경이였다. 그리고 어찌저찌 해당 설계를 카피해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열악한 자체 기술력으로는 발달한 기술을 지닌 선진국의 기술 도입이나 협조 없이는 설계도가 있어도 제대로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결국 현실적인 한계로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으며, 이미 만들어져 있는 후소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후소와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전장의 길이를 보다 연장하여 속도를 증가시켰다. 전장이 길어지면 세장비라고 하는 함선 수선부의 전장과 전폭의 비율이 올라가면서 항행시 고속을 내기가 쉬워진다.
- 포격전의 사통체제와 데미지 컨트롤의 조절을 위해 6기의 2연장 주포탑을 모두 3조로 나누어서 배치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계단식으로 배치된 전방의 1, 2번 주포탑, 사령탑을 포함한 조타함교. 제1연돌과 그보다 약간 낮은 제2연돌, 후방으로 향한 3, 4번 주포와 다시 1층의 관측소를 가진 삼각장(三脚檣). 후부함교와 역시 후방으로 향한 5, 6번 주포를 배치하는 형태다. 중앙부 주포탑이 존재하지만 중앙부 주포탑 2기를 1조로 묶어서 배치함으로서 후소급 전함에 비해 쓸데없이 나누어진 공간을 줄이고 중앙부 주포탑 2기를 분리해서 배치한 것보다 공간 잠식을 줄인 성과가 있었다.
- 주포탑의 전면장갑도 305mm로 증가, 갑판장갑도 합계 85mm로 증가했다. 후소급 전함의 경우에는 주포탑 전면장갑을 비롯해서 장갑이 얇은 부분이 많은게 큰 문제였는데 그걸 어느 정도 해소했다.
- 부포를 위력보다는 속사능력과 급탄의 용이함이 더 우수한 5.5인치(140mm) 함포로 교체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인의 체격문제로 6인치(152mm) 포탄의 인력장전이 힘든데다가 프랑스에서 조선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조선관의 건의가 먹힌 결과다.
- 터빈을 브라운 커티스식을 채택하여 그 당시 전함으로서는 준수한 23노트를 달성했다.
일단 주포 배치는 뉴욕급 전함(New York-class battleship)의 이전형태인 와이오밍급 전함(Wyoming-class battleship)에서, 부포(副砲)는 프랑스의 쿠르베급 전함(La classe Courbet)을 참고하는 등 나름대로 외부의 설계를 받아들여서 성능이 향상되었지만, 후소급 전함을 기반으로 한 설계가 발목을 잡았다.
당장 주포가 후소와 같은 1908년 방식인 41식 14인치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인데다가 수량도 동일하므로 물리적인 화력강화가 안된데다가 방어구획의 배치도 피탄시의 방어(Sprinter defense)를 강화해 중량이 후소 기준으로 약 1,000톤이 넘어갈 정도로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부족으로 인해 주포의 3연장화를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2연장 주포탑을 유지함으로서 주포탑을 6기나 탑재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장갑강화효과가 상대적으로 매우 미흡하므로 실질적인 방어력은 후소급 전함보다 조금 개선된 수준이다.
게다가 부포가 15.2cm에서 14cm으로 구경이 감소되면서 1발의 포탄당 중량감소로 인하여 후소급 전함과 동일한 부포수량을 갖추게 되면 나타날 함내 부포사격탄량 부족이라는 화력약화를 막으려고 단장포곽 20문으로 포문을 늘리고 3, 4번 주포도 계단식이 되어 무게중심을 제대로 잡기 위해 최상부 갑판을 3번 주포까지만 연장하는 단축형 선수루형 선체가 되자, 반대급부로 사람이 들어가 잘 공간인 거주구획을 넣을 곳이 부족해졌다.
결국 부포의 포곽중 일부도 거주구획에 포함시켜 범선시대 전열함이나 하던 엽기를 저질렀다. 이 행위가 왜 엽기인가 하면 일단 무기와 탄약 틈에서 잠을 자야 하는 수병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과거 전열함 시대와는 달리 긴급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시 즉시 사격하기 위한 즉응탄과 기타 관련시설이 밀집해 있으므로 잠자다가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바로 발포가 이루어지거나 유폭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주성은 당시 세계에서도 거주성이 지랄맞기로 악명높았던 연합함대의 함선 가운데서도 당당히 수석의 영예를 차지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후소급 전함보다는 그럭저럭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므로 1917년 12월 15일에 이세가 준공되었고, 곧 이어 자매함인 휴우가가 준공됨으로서 나가토급 전함이 등장하는 1920년 이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군함으로 그 이름을 날린다.
3.3. 일본식 마개조 근대화공사
3.3.1. 발단
1936년의 이세급 전함 1번함 이세 | 1936년의 이세급 전함 2번함 휴우가 |
하지만 세계에서 단 7척이라는 자칭 '영광의 빅 세븐'[5]인 나가토급 전함이 태어나자 당장 이세의 14인치(356mm) 주포가 초라해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덤으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발효되자 당분간 더 이상 새로운 전함을 건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존 전함들을 개장해서 현실의 해전에 걸맞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이미 조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이미 기존 전함들을 버리기에는 경제적 문제가 컸으므로 최소한의 개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세급 전함에게도 16.1인치(410mm) 주포를 부여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속사능력과 효율성 및, 이세급 전함의 주포탑 바벳에 16.1인치 주포탑이 올라갈 수 없으므로 바벳까지 다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일단 주포 교체는 보류하는 것으로 1920년대에 일단 소규모 개장공사가 추진된다.
3.3.2. 1921년
- 주포의 앙각을 +25도에서 +30도로 올려 장거리 타격능력을 늘렸다. 일단 구식전함이면 국가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실시하는 개장으로, 앙각을 고각도로 늘리면 +42 ~ +43도까지는 계속 사정거리가 증가한다.
진공이라면 +45도 각도로 발사하는게 가장 멀리 날아가지만, 대기 중에서는 항력(drag)의 존재로 인해서 포탄이 약간 뜨는 경향이 있어서 +42 ~ +43도가 적정선이다. +45도보다 약간 낮게 쏴야 멀리 날아가는 이유는 공기저항때문에 탄이 날아갈수록 낙각이 커지기때문이다. 기온, 기압, 습도에 의한 차이도 있다.
3.3.3. 1924년
- 전장(前檣)상부에는 방위반조준장치(方位盤照準裝置)를 추가했다. 영일동맹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차대전까지도 영국해군이 드레이어 테이블이나 폴렌 조준장치를 만들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상태였다. 이런 조치로 인해 일제 사격과 협차사격의 효율성이 증대되었다.
- 신호항(信號桁)을 연장했다.
- 항해함교 - 주간전투함교 - 야간전투함교를 일체화했다. 3개의 함교를 1개로 통합한 것이 아니라 각자 독립적인 구조물에 위치한 것을 전방함교라는 거대한 구조물의 부속물로 포함한 것이다. 같은 구조물 내부의 시설이므로 인원의 이동 및 연락이 편리해졌다.
- 삼각장의 양현에 76mm 단장 대공포를 전후 2기 - 합계 4기를 장비해서 최소한의 대공능력을 확보했다.
- 1번, 6번 주포탑을 제외한 4기의 주포탑에 측거의(測距儀 - 마이크로미터)를 장비했다. 함교의 기능 마비등으로 주포탑이 자체적으로 개별사격을 해야 할 경우에 유용했다.
- 사격지휘소, 야간해전을 위한 탐조등과 추적지휘장치를 설치했다.
- 연돌도 매연으로 인한 금속의 부식과 전투시 악재 방지를 위해 제1연돌 상부 전면에 숟가락 모양의 매연방지기구가 장착된다. 사실 제1연돌이 함교와 너무 가까워서 평시에도 연기때문에 앞이 안보이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 정찰을 위해 5번 주포탑 상부에 수상기를 탑재한다.
3.3.4. 1926년에서 1928년
- 전방함교를 방어력 강화의 노장(櫓檣)형식으로 교체했다. 중량물이 더해지고 내부 층수가 늘어나면서 전방함교가 거대화했으므로 꼭 필요한 조치였다.
- 함재기를 2기로 늘렸다. 함재기 1기만으로는 고장, 점검, 수리등으로 인해 필요할 때 사용이 불가능하기에 수량을 늘렸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더불어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추가로 체결됨으로서 해군의 휴일이라는 거함거포주의자에게는 비극의 시대, 납세자들에게는 황금시대가 찾아왔다. 물론 조약에 따라 더 이상의 전함건조가 금지된 상황이었지만 어디서나 꼼수는 있는 법이라 이세급 전함과 다른 전함들은 1930년대에 들어 다시 대대적인 근대화 개장작업을 받는다.
3.3.5. 1935년 8월 1일에서 1937년 3월 23일
- 주포와 부포의 앙각(仰角)을 +43도로 대폭 증대했다. 사실상 이세의 주포로 낼 수 있는 최대사거리인 35,450m를 확보한다.
- 부포곽도 개조를 통해서 앙각을 +20도에서 +30도로 올려서 최대사거리를 19,100m까지 늘린다.
- 어뢰발사관을 철거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함이 어뢰를 보유해봤자 별로 쓸모가 없는데다가 오히려 주포탄이 명중하면 유폭이나 일어나는 위험한 무장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다.
- 주포탑 천정의 장갑을 76mm에서 152mm로 증가시키는 등 주포탑과 현측장갑의 두께를 더욱 확대, 장갑배치를 수평방어능력 및 대 어뢰방어능력이 향샹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장갑중량은 9,525톤에서 12,644톤으로 대폭 증대한다.
- 사통기구를 개선 및, 대형화하여 함교 측거의를 길이 10.5m로 증가시켰다. 육안과 같은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기구를 사용할 때는 측거의가 크면 클수록 성능이 좋아진다. 물론 제대로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 76mm 단장 대공포를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를 2연장 포좌에 장착한 것으로 교체해서 함교 좌우에 2기씩 배치해서 대공능력을 강화했다.
- 폼폼 포의 극초기 모델인 40mm 2연장 기관포 2기를 후방 함교의 좌우에 1기씩, 7.7mm 단장 기관총 3정을 추가했다.
- 보일러를 이전의 석탄-중유 혼용의 24기에서 중유 보일러 8기로 교체해서 효율성을 높였다. 석탄저장고가 폐지되면서 연료가 중유로 단일화됨에 따라서 중유 4,249톤의 연료량을 가지고 16노트 항해시 11,100해리까지 항해가 가능했다. 휴우가는 중유 4,250톤의 연료량으로 16노트 항해시 7,870해리까지 항해가 가능했다.
- 4축추진 함본식 올 기어드 터빈 4기를 장비. 앞서의 보일러 교체와 함께 주요 동력기관이 완전히 신형으로 교체되었으므로 8만마력의 출력을 내면서 속도도 25Knot까지 낼 수 있었다.
- 제1연돌이 삭제되고 제2연돌을 대형으로 교체해 매연으로 인한 문제점은 크게 감소했다.
- 제1연돌이 있던 자리에는 함재정(艦載艇)이 배치된다.
- 선체의 함미도 6m를 연장해서 고속항행과 직진성능에 도움을 준다.
대개장의 결과 장갑이 아래 표와 같이 많이 증대되었다. 아직 14인치 주포에 대한 대응방어는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방어력 향상이 컸다.
(VC: 비커스식 장갑, NS: 니켈 강판, HT: 고장력 강판, DS: 듀콜강, NVNC: 신형 비커스 무침탄 균질압연장갑)
부위 | 밀리미터(mm)와 장갑재질 |
측면 주장갑 | 100 - 299 VC |
중갑판 측면장갑 | 199 VC |
상갑판 측면장갑 | 149 VC |
횡방어격벽 | 전방중갑판 199 VC 하부갑판 199 VC 후미중갑판 199 VC 하부갑판 224 VC |
하갑판장갑 | 32 NS + 25×3 DS |
최상갑판 | 35 HT |
어뢰방어격벽 | 76 HT |
탄약고 | 갑판평탄부 32 NS + 120 - 135 NVNC 갑판경사부 32 HT 수직부 38 - 76 HT + 95 - 230 NVNC 바닥 25 NS |
장갑함교 | 측면 320 VC 전면 158 NVNC 천정 76 VC 교통관 51 - 178 VC |
주포탑 | 전면 305 VC 측면 229 VC 후면 229 VC 천정 152 VC 바벳 50 - 299 VC + 불명확 NVNC |
부포곽 | 포방패 38 HT 격벽 19 HT |
조타기실 | 없음(대전 중 주변에 콘크리트 충전) |
연통 | 연로차단격벽 38 - 51 HT |
거의 환골탈태의 수준이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었으니...
3.4. 항공전함으로 개장
1943년 이세급 항공전함 1번함 이세 |
이세급 항공전함의 구조도 |
개장 공사라고 읽고 마개조라고 보는 것을 통해 장갑증대, 속도향상, 대공능력증대를 이룩하였으므로 이세는 상당히 쓸만해졌으나, 일본 해군의 병폐인 함대결전의 집착으로 인해 주력 전함들이 일본 본토나 트럭섬에서 연료와 물자나 소모하면서 대기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아이오와급 전함 처럼 신형 16인치 주포를 갖추고 초중량탄을 운영하는 고속전함들이 속속 등장하여 마치 서서히 녹이 스는 것처럼 점차 일선에서 뛸 능력을 상실하는 중 큰 사건이 벌어지니...
이세급 전함 2번함 휴우가의 폭발사고 이후 임시처치한 모습 |
1942년 5월 5일 오후 4시, 주포사격 훈련 도중에 자매함인 휴우가의 5번 주포탑 내부에 배치된 화약이 내부폭발을 일으켜 55명의 사망자와 8명의 중상자가 발생하는 등 다수의 사상자가 생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래 휴우가는 2번의 주포탑 폭발과 1회의 탄약고 화재를 겪고도 살아남은 운수 좋은 군함이었다. 1919년 10월 24일에 3번 주포탑이 폭발했으며 1924년 9월 17일에는 4번 주포탑의 탄약고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5번 주포탑의 경우도 평소에 발사장치인 화관(火管)에 작동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전기가 흐르는 이상현상이 버릇이라고 기록될 정도로 자주 있었는데 1942년 5월 5일의 사고도 주포탄을 장전한 후 폐쇄기가 아직 완전하게 폐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관에 제멋대로 전기가 흘러서 장약에 점화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폭발이었다.
5번 주포탑 폭발 당시에는 주포 발포시의 연기가 조금 이상하고 주포탄이 고작 50m를 비행한 후에 해수면에 떨어진 것 빼고는 외관상 이상이 별로 없어서 주포탑 폭발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곧 주포 발령소에서 5번 주포탑 화재 발생의 보고가 들어와서 즉시 주포 탄약고에 바닷물을 집어넣어서 탄약고 폭발로 인한 침몰을 피할 수 있었다.
사고후 구레항으로 돌아간 휴우가는 일단 폭발한 부위의 주포탑을 철거하고 96식 25mm 고각기총의 3연장 포좌 4기를 설치하였으며 당시 개발이 진행중이었던 2호 2형 수상탐지레이더를 시험적으로 장착했다.
그 때 이미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거에 아카기(항공모함), 카가(항공모함), 소류(항공모함), 히류(항공모함)의 4척을 상실한 일본 제국 해군은 비교적 오래된 후소급 전함 2척과 이세급 전함 2척을 항공모함으로 개장할 계획을 검토중이었고, 일단 후소급 전함이 유력한 후보로 올랐으나 사고로 주포탑을 손실하고 일본 본토로 돌아온 이세급 전함이 먼저 실행대상이 되었다. 이는 개장을 위한 기존 시설 철거시에도 비용과 시간이 덜 들어가리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은 한 척에 54기 정도의 함재기를 탑재하는 완전한 정규항공모함으로 개장될 예정이었지만 항공전력의 시급한 확충과 자재절약 및 시간부족으로 인해 항공전함으로 계획이 변경되었고, 그리고 군령부의 요구사항은 항공전함으로 개장할 때 협차사격을 위해 전함급 주포는 6문은 확보하고 부포를 철거하며 항공기는 다수를 탑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이 개조되었다.
- 5, 6번 주포탑와 부포곽 전부를 철거하고 철거한 주포탑의 바벳을 항공기용 탄약고와 연료고로 개조했다. 항공기용 탄약고는 5번 주포탑 자리에 위치하며 전력 3회분 무장량인 50kg 폭탄 44개와 250kg 폭탄 22개를 탑재하며 항공기용 연료고는 6번 주포탑 자리에 위치하며 항공기용 휘발유 76톤을 저장가능하다.
- 항공기용 탄약고와 항공기용 연료고와 함께 항공기 격납고도 설치했으며 길이는 40m에 높이는 6m이고 폭은 전방은 20m, 후방은 11m이며 탑재용량은 9기다. 격납고는 악천후에 대비한 폐쇄가 가능하지만 파편방어도 고려하지 않은 비장갑형식이다.
- 길이 70m, 너비는 전부 29m, 후부 13m의 항공갑판과 캐터펄트 2기, 항공기 운반용 엘리베이터 1기를 설치했다. 항공갑판의 높이는 상갑판에서 6m 위로 결정했으며 강판 위에 콘크리트를 바른 형식이다. 항공기 운반용 엘리베이터는 항공갑판 후방에 있으며 캐터펄트는 항공갑판 전방에 설치했으며 최대 4.6t의 함재기를 발진가능했다.
- 레이더를 추가하고 대공장비를 증설했다.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는 2연장 대공포좌 4기 8문을 장착했으며 96식 25mm 고각기총은 3연장 기관포좌 19기 57정을 장착한다. 연합함대의 요청은 25mm 기관포를 100문 이상 장착하는 것이었으므로 발사각도를 확보하고 사격통제장치와 연동하며 기관포의 생산량을 고려해서 점차 장착량을 늘려서 나중에는 25mm 기관포를 104문을 장착한다.
- 함재기는 주로 폭격기 종류로 총계 22기를 장비한다. 함재기의 전체 탑재방식은 캐터펄트에 2기, 비행갑판에 11기, 격납고에 9기로 총 22기이다. 탑재기종은 수상 정찰기 겸 급강하폭격기인 E16A 즈이운(瑞雲)과 함상폭격기인 D4Y 스이세이(彗星)로 한정되었다.
기본적으로 대공화력이 증가하고 약점부위인 부포곽이 제거되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포탑을 4기나 유지하기 때문에 비행갑판이 일반적인 함재기가 이착함을 하는데 충분히 길지 못하다는 단점이 크다. 덩치는 정규항공모함만한 함선이 실제 항공력 운용면에서는 일반적인 경항공모함보다 못하여 죽도 밥도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중앙부 주포탑인 3번과 4번 주포탑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도도 25노트 정도를 유지하여 정규항공모함이나 순양함, 구축함의 발목을 붙잡게 되었다. 비행갑판을 증설하지 않는다고 해도 해당 주포탑들을 제거했다면 동력기관을 더욱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증설하여 속력을 최소한 28노트 이상으로 향상시킬 수 있어서 더욱 유용했을 것이다.
3.5. 항공전함의 허와 실
물론 항공모함과 전함의 혼종인 항공전함은 다른 국가들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본 일이지만, 이를 실제 실현한 것은 일본군이 만든 이세와 휴우가 밖에 없다. 게다가 후소급 전함의 항공모함 개조 계획은 자재 및 시간문제로 수상기 모함 및 민간선, 순양함을 경항공모함으로 급히 개조하는 선으로 일단락되어 취소되었다.일단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항공전함 비슷한 군함이 있기야 했다.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가 그 주인공이지만, 이 배는 항공모함이라는 함종이 아예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배여서 현대 항공모함의 상식과는 여러모로 괴리된 물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항공모함에 전함 주포를 달면 안 된다는 상식조차도 없던 시절에 나온 물건이고, 퓨리어스가 온갖 삽질을 한 덕에 항공모함의 상식이 갖춰진 것이다. 그래서 이 배는 항공모함일 수밖에 없고 영문 위키피디아 퓨리어스에서도 항공모함으로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함 앞에만 비행갑판을 깐 상태에서도 함재기의 이착함이 가능했으니 이세급 항공전함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착함 사고가 난 후에는 함체 후방의 18인치 단장포탑도 떼어버리고 비행갑판을 깔아버렸다.
그리고 다른 나라가 항공전함을 만들지 않은 건 이유가 있었다. 항공전함이라는 함종 자체에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 전함으로 쓰려니 화력이 줄어든데다가 비행갑판과 함재기, 연료와 탄약을 중장갑으로 지킬 수 없어 포격전이 일어나면 약점부위가 크게 노출되므로 피탄시 쉽게 폭발과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약점투성이다.
- 항공모함으로 쓰려니 좁은 비행갑판에서는 함재기를 이함시키는 것도 번거로운데다가 착함은 짧은 비행갑판과 거대하고 높은 기존 함교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함재기 탑재량도 줄어들어서 적국 군함을 공습하기는 커녕 자기 자신의 머리 위를 지키기에도 함재기 전력이 모자란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 이세급 항공전함이 고유로 가진 문제점이 추가된다.
- 후방 마스트를 그대로 항공모함용 함교로 개조하고 항공기용 캐터펄트가 함수방향을 향한 다음 양 측면으로 돌출하는 바람에 3,4번 주포탑의 사격각도는 여전히 매우 제한되어 쓸모가 적을 뿐 아니라, 비행갑판의 길이가 대폭 축소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차라리 후방 마스트와 3,4번 주포탑까지 제거한 후 기존의 전방함교와 연돌을 항공모함 겸용으로 개수하였다면 조금 더 쓸만했겠지만, 해당 방안은 이미 항공전함으로 개수시 나온 3개 방안에서 공사시간및 자재가 최종 채택된 방안보다 엄청 들어가는 데 비해 여전히 함재기의 착함이 불가능하다는 것등 최종 채택된 방안보다 항공기 운용능력이 그렇게 좋아지지 않는 어쩡쩡한 방안으로 결정된지 오래였다.
- 좁은 비행갑판 및 기술력 부족으로 미국식의 증기력을 이용한 캐터펄트를 사용할 수 없어, 1식 2호 화약식 비행기 사출기라고 불리는 화약식 캐터펄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캐터펄트 1기당 30초에 함재기 1기를 발진가능하므로 2기의 캐터펄트로 5분만에 22기의 함재기를 모두 사출가능하지만, 사용시마다 큰 충격이 가해지므로 가뜩이나 돈도 자재도 없는데 레일을 출격때마다 갈아주어야 한다.
- 전투기를 배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함재기는 수상 정찰기 겸 급강하폭격기인 E16A 즈이운(瑞雲)과 함상폭격기인 D4Y 스이세이(彗星)로 한정되었고, 둘다 이함은 가능하지만 착함의 경우에는 즈이운은 바다에 착수해서 항공기 작업갑판에 있는 4톤 크레인으로 회수, 스이세이는 최고속도가 제로전투기 21형을 넘는 550km/h인데 반해 비행갑판 길이는 고작 70m이므로 착함이 불가능하므로 가까운 아군 비행장으로 가거나 바다에 불시착후 조종사만 구한다는 얼빠진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이런 방식은 영국이 독일 국방군의 U보트에 시달릴 때 호송선단의 상선 위에 호커 허리케인같은 육상용 전투기를 캐터펄트에 올려서 적이 나타나면 발진하도록 시도된 적이 있지만, 착함이 불가능해서 바다 위에 육상용 전투기를 착수시키기 때문에 항공기는 그냥 1회용 소모품처럼 폐기처리되고 조종사의 희생까지 크게 만드는 얼빠진 방식이므로 호위항공모함이 나온 후에는 사장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함재기 회수때마다 단정과 크레인까지 동원하는 매우 번거롭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며 위험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일본 해군의 입장은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함재기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즉 애초에 함재기의 소모가 다대할 것을 예상하고 함재기 회수책을 불성실하게 만들었다는 뜻인데... 그 함재기(특히 스이세이)가 살아서 돌아오면 멀쩡한 함재기를 바다에 처박아야 한다. 물론 항공모함과 함께 작전중일 경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귀환기가 발생했을 항공모함에 착함한다는 선택지도 있을 법 하지만 항공모함간 항공대 이동도 극도로 꺼렸던 일본 해군이 그렇게 했을지는 의문이며 실제 전투 후에는 항공모함도 공습을 제대로 맞아서 항공갑판이 박살나는 등 착함이 불가능할 확률이 높으니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렵다.
- 함재기의 보충도 매우 어렵다. 즈이운은 수상기니까 기지에서 날아와서 이세급 항공전함 바로 옆의 바다에 착수하면 크레인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스이세이는 바다에 착수할 수 없으므로 보충을 받으려면 항구에 입항한 후 스이세이를 크레인으로 실어야 한다.
- 그나마 함재기 조달도 어려웠다. 즈이운은 수상기치고는 성능이 좋지만 양산시기인 1944년에는 이미 일본에 정밀한 기체를 양산할 능력이 사라졌고, 스이세이도 개발해놓고 보니 수랭식 엔진 품질 문제로 엔진 트러블로 인해 D4Y3을 만들어야 했다. D4Y1과 D4Y2가 재고가 많았지만 수랭식답게 정비가 어렵고 손이 많이 갔기 때문에 육상에서의 정비도 어려워서 육상에서 사용할만한 수량도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그 좁은 비행갑판에서 이함을 할 조종사가 없다는 삼중고를 겪는다.
원판부터가 배치시기를 감안해도 영 좋지 못했던 판국인데, 취역하고 몇십년이 지나 퇴물에 가까워진 것을 어떻게든 실전에 써먹겠답시고 애매한 개조를 한 덕분에 전함으로서도, 항공모함으로서도 이도저도 아닌 애물단지가 탄생해버리게 된 것이다.
3.6. 준비도 안 된 실전투입
항공전함으로 먼저 개조된 이세는 함재기도 마련되지 않았고 항공부대도 편성되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 휴우가가 개조중이었기 때문에 1943년 10월 15일 첫번째 임무로 격납고 등에 육군병력 1278명과 전함 후소와 전함 나가토 및 야마토급 전함용 3식 통상탄을 적재하고 트럭 제도로 수송하고 귀환하는 임무를 수행한다.휴우가가 항공전함으로 개조된 이후에는 일단 제11수뢰전대에 배속해서 훈련함으로 쓰이다가 1944년 5월 1일에 제3함대 제4항공전대에 들어가 함재기 부대로 제634항공대를 편성하여 승조원에게 함재기 운영의 정비 및 훈련를 시키면서 함재기를 기다리지만, 훈련이 끝난 상황에는 함재기로 쓸 기체가 대만 항공전에 투입되어 모두 격추당하였다. 함재기가 도착했다면 이세는 즈이운 14기, 스이세이 8기를 탑재하고 휴우가는 즈이운 8기와 스이세이 14기를 탑재할 예정이었지만 다 허사가 된다.
마침내 이세는 자매함인 휴우가와 함께 함재기 없는 항공전함으로 실전에 투입된다. 그리하여 레이테 만 해전의 엔가노 곶 해전에서도 역시 함재기 1기도 싣지 못하고 그냥 전함으로서 출동하였다. 함재기가 없으니 비행갑판 위에도 25mm 기관포를 증설하였으나 당연히 미국 해군의 항공폭탄과 항공어뢰 맛을 보게 되었으나, 개량된 방공무장과 레이더, 사통기구의 덕택으로 다수의 미군 항공기를 대공화망으로 쫒아내는 데에 성공하는 한 편 마츠다 치아키(松田 千秋) 중장이 만든 회피술인 순항속도로 항진하다가 미군 급강하폭격기가 목표를 조준하고 급강하하려고 하면 갑자기 급하게 전타를 하는 방법을 이용해서 사상자도 이세에서 전사 7명에 부상자 80명으로 적었고 함의 피해도 이세가 지근탄 4발을 맞아서 벌지에 침수가 발생해서 800톤에서 900톤의 해수가 유입되어 좌측으로 경사 1.5도라는 약간의 파손을 입는 선에서 그쳤기 때문에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다. 이 때 이세는 좌회전만 계속했고, 휴우가는 우회전만 계속해서 심리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래도 이세와 휴우가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보기 드물게도, 일본 전함 중에서는 둘 밖에 없는 임무를 완수한 군함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오자와 함대의 임무가 미군을 끌어내는 미끼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미군이 반드시 격침해야 할 목표로 선정한 즈이카쿠를 때려잡으려고 몰려온 덕에 얼떨결에 임무 완수라는 훈장을 달았던 것이다. 즈이카쿠라는 버스를 탄 셈이므로 엄청나게 명예로운 건 아니었지만, 이세와 휴우가를 제외한 다른 전함들은 모두 임무에 실패했으니 최소한의 체면은 세운 셈이다. 엔가노 곶 해전으로 오자와 함대의 항공모함 4척이 격침된 후, 이세와 휴우가는 잔존 군함들을 보호하며 일본으로 퇴각했다.
다만 이세와 휴우가가 모처럼 세운 전과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오자와 함대가 미끼 임무를 성공시켰으면 일본 함대가 레이테 섬으로 돌격해 들어가서 미군 상륙부대를 박살내고 레이테 섬을 수호했어야 하는데, 아오바가 빠진 16전대를 제외하면 모두 돌입에 실패했던 것이다.
3.7. 처량한 마지막
레이테 만 해전 이후 함재기를 구할 희망이 영영 사라진 이세와 휴우가는 그 맷집을 살려 격납고를 창고로 개조, 동남아에 아직 남아있는 자원을 일본 본토로 가져오는 북(北)호작전의 주역으로 활용되었다. 이때에 가서는 공급이 안되는 함재기 탑재는 포기하고 3번과 4번 주포탑의 사격각도를 방해하는 함재기 발진용 캐터펄트를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이 작전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일본까지의 항로를 중국 연안에 거의 붙어서 몰래 전진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석유, 고무, 주석등의 전략물자를 일본 본토로 수송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북호작전에 참여한 군함들이 수송한 총량은 중형(中型) 화물선 1척 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북호 작전으로 가져온 각종 자원, 특히 석유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해외에서 들여온 사실상 마지막 자원이었다.
구레 군항 공습에서 침몰한 이세 |
그러나 일본 본토로 돌아온 후에는 연료 부족으로 본토의 구레항에 짱박히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되자 대공화기는 다 뜯어내 육상진지로 이동시키고 주포만 남아 해안포로 사용되던 가운데 구레 군항 공습이 벌어지자 3식 통상탄을 발사하면서 최대한 항전했으나 무의미한 짓이었다. 3식 통상탄의 대공성능은 형편없다는 건 상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미도 없는 주포 사격만 열심히 하다가 휴우가는 7월 24일에 폭탄 10발을 맞고 남아있던 승조원 1천여명중 전사자 204명에 중상자와 경상자가 600명에 달하는 손실을 당하며 27일에 좌초되며 격침되었고, 이세는 7월 24일에 폭탄 4발을 맞은 후 7월 28일에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 아오바급 중순양함 1번함 아오바와 함께 미 해군의 집중공격을 받은 끝에 폭탄 16발을 맞고 전사자 573명을 손실하면서 격침, 착저하여 패전을 맞이했고 이후 이세와 휴우가 모두 고철로 스크랩되었다. 이세가 격침된 후 안전상의 이유로 2번 주포탑의 주포탄을 제거하려고 마지막으로 발사를 했는데, 이걸 가지고 "주포를 쏠 수 있으니 격침된 게 아니다"라고 우기는 건 덤.
4. 평가
태생과 개념의 한계로 인해 들인 돈과 시간, 자재가 허공으로 날아간 아까운 전함이라고 보면 된다.영국이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전방 평갑판 + 함교 + 후방 주포탑인데, 이걸 포기한 이유가 함재기 착함에 어려움이 많아서였다. 그걸 보고도 앞뒤만 뒤집어서 똑같이 만든 게 이세급 항공전함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는 개뿔. 함재기 착함을 못하니 제대로 된 항공모함이 아닌, 전함 + 수상기 모함에 불과한 물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장에서 활약이라도 했다면 좀 나았을 텐데, 수상기로 적 기지를 공습하거나 적함을 격침시키는 등의 활약상이 하나도 없다. 실패작이라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레이테 만 해전에서 오자와 함대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행운을 거머쥔 덕에 미끼 임무를 완수했고, 북호 작전에서도 물자 수송선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는 등의 활약 덕분에 전과 제로라는 수치는 면했다. 전함 레벨에서 세운 전공치고는 초라할지언정, 구축함한테 쫓겨 줄행랑친 야마토나 나가토보단 나았다.
5. 기타
2번함인 휴우가의 함명은 현재 해상자위대 소속의 호위함인 휴우가급 헬기구축함에 계승되었고 휴우가급 2번함에는 이세라는 함명이 붙여졌다. 그런데 이 녀석도 구축함이라 하기에도 항공모함이라 하기에도 뭔가 애매한 녀석이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을 참고.후지미의 치비마루 라인업으로 등장하였다. 그 중 이세의 항공전함 버전에 대해 서술한다. 본 키트는 이세와 휴우가를 함재기와 후방 구조물을 달리하여 선택조립하는 방식이다. 함재기는 이세용 6기, 휴우가용 6기, 총 12기다. 후방갑판에 함재기 6기 적재가능하여 선택조립후 함재기 6기가 남는다. 품질은 좋지 않은 편이다. 스냅타이트 방식이기는 한데 모델러라면 자연스럽게 접착제에 손이 가게 된다. 도색없이 스티커로 꾸밀 수 있기는 한데 스티커 반사광의 이질감이 꽤 크다. 뽑기운이 작용했겠지만 지느러미도 좀 있다. 가성비도 좋다고는 말 못한다. 여러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해군사에 길이 남을 언밸런스한 외형이 데포르메화되면서 더욱 강조된 것이 매력적이다.
미 해군이 냉전 기간 동안 아이오와급 전함을 항공전함으로 개조 하려고 한 적이 있다. 당시엔 비록 초음속은 아니지만 VTOL이라 아이오와 위에서도 정규운용 가능한 해리어가 갓 나온 상태였고, 비록 해리어 기본형엔 레이더가 없었으나 개수를 하면 그만인지라 실제로 어느정 도는 가능하기는 했다. 다만 개장비가 그냥 최신 이지스함 뽑는게 더 싸게 치는지라 결국 패스해버리고 말았다.
6. 매체에서의 등장
- 스트라이커즈 1945 II 에서 항공전함 버전 두 척이 등장한다.
- 네이비필드 일본트리에 등장한다. 전함버전이 1937로 등장하고 항공전함 버전이 1943으로 등장한다. 후자는 보통 변세(변태이세)라고 부른다. 이중 특히 변세는 플레이어에게 고레벨 수병이 있고 피지컬이 된다면 대단히 괴악하게 운용할 수 있는 만능 함선이었다. 분류가 항모 판정인데 8문으로 전함포를 날려대고 부포탑에서 산뢰를 쏟아내고 전투기를 뽑아서 적군의 시야를 밝히는 정찰기를 떨굴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게 제한적인 조건이 다 맞아떨어져야 가능했지만... 2010년 이후 변세도 전함판정으로 변했다.
- 전함소녀에서 자매가 모두 등장한다. 마치 건물을 짊어지고 있는 듯한 디자인의 장비가 눈에 띄는데 일러레의 자작설정에 의하면 자매가 신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엔가노 곶 전투에서 무사히 철퇴한 일화를 반영해서 자매 모두 적 함재기를 약화시키는 디버프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아르스 노바-에서 1화전에 I-401에게 어뢰세례를 맞고 격침당한뒤 나중에 이오나를 너무 좋아하는 천제적인 멘탈모델이 나온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이세와 휴우가 둘 다 프리미엄 함선으로 등장한다. 이세는 항공 전함 개장 이후의 사양으로 6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출시되었고, 휴우가는 항공 전함 개장 이전의 사양으로 7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출시되었다.
- 월드 오브 워쉽 블리츠에서 한정 이벤트로 얻을수있는 7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전함 형태가아닌 개장후의 항공전함형태[6]로 등장하며 항공모함처럼 폭격기를 보낼수도있고 전함처럼 주포를 쏘며 싸울수있다. 성능은 원본과 같이 애매한데 주포는 후소의 것을 가져와서 동티어 대비 약하고 집탄이 좋지 않아 전함으로써의 화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항공기의 경우 전투기, 뇌격기없이 3기 1편대의 폭격기 편대가 2개 존재하는데 딜량은 저 두 편대를 한 적군함에게 집중해야 다른 항공모함의 폭격기편대 하나의 딜량이 나오며 화재율도 낮다. 이는 항공모함이 없는게임에서 한 팀에만 이세가 있다면 그팀이 일방적으로 항공기를 이용한 원거리 스팟및 공격지원을 받을수있어 적절히 너프시킨 것이긴 하나, 이 때문에 이세 자체가 애매한 군함이 되었다.[7] 외관은 특이하게 생겨서 이쁘다는 평. 월드 오브 워쉽 본 게임에서는 휴우가는 항공전함으로 개장되기 이전 상태로 7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써 등장하였다. 이세는 0.10.4 업데이트로 무기고에서 휴우가 와는 다르게 항공전함 버전으로 출시되었으며 블리츠에 비해 한티어 내려간 6티어로 나오며, 장갑구조가 가장 복잡하다. 또한 성능이 낮은 어뢰를 가진 뇌격기만 발진이 가능하다.
- 워 썬더에 1,2번함이 모두 등장한다. 2번함 휴우가는 "Hot Tracks" 업데이트로 등장했다.
게임상의 유일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8][9] 네임쉽인 이세는 "La Royale" 업데이트 때 등장했다. 차이점은 휴우가는 140mm 부포가 20문으로 16문인 이세보다 많지만, 휴우가는 대공무장이 7.72mm라 2연장 5인치 포를 장비한 이세에 비해 빈약하다는 점이다. 그래봤자 두 전함 모두 VT탄이 없어서 방공 능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차이가 그다지 부각되진 않는다.
[1] http://www.j-ships.com/JSIseClass.html[2] 2번함 오클라호마의 운명을 생각하면......[3] R급이라고도 불리는데 행보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이다. 참고로 2번함 로열 소버린이 소련에 랜드리스되어 소련에서는 아르항겔스크급이라고 부른다.[4] 자매함인 애리조나는 1941년 진주만 공습에서 아카기와 소류에서 출격한 D3A 발과 B5N 케이트의 폭탄으로 인한 주포탑 유폭으로 격침된다. 주포탑에 적의 폭탄 한 발 맞으면 격침당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나 이건 떨어진 폭탄이 16.1인치 철갑탄을 개조한 물건이었다는 점은 감안하고 볼 문제다. 일반적으로 주포탑의 장갑은 전함의 모든 부위를 통틀어 가장 두껍기 때문에 경량 폭탄으로는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 어렵다.[5] 듣고보면 틀린 말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에서만 사용한 말이다.[6] 클래스는 전함이라 항공모함이 없는 판에도 항공지원이 가능하다. 항공모함이 있는 판인 경우 이세가 있는 쪽은 항공모함 1.5척이 있는 셈이 된다.[7] 유저들은 주포탑 4개짜리 후소라 평한다. 그리고 이 물건을 7티어에 갖다 놓았다[8] USS 애리조나가 나오면서 게임 유일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타이틀은 빼았겼다. 그리고 Danger Zone 업데이트로 SMS 바이에른과 HMS 후드가 나오기에..[9] 후드는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 치기에는, 순양전함이라 좀 뭣하지만, 크기나 주무장이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초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