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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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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龍 (かいりゅう) / Kairyu
파일:external/blogimg.goo.ne.jp/d85bad1ad6dfa9e596f6a708dee19c42.jpg
야마토 박물관에 전시된 카이류

1. 개요2. 개발과 생산3. 제원4. 종류5. 장점6. 한계점7. 운용8. 평가

1. 개요

초소형 잠수정인 갑표적의 제작 이후 일본 제국 해군이 1945년에 개발한 2인승 초소형 잠수정이다.

명칭인 카이류는 해룡(海龍)이라는 뜻으로 바다의 용을 말한다. 개발 단계에서는 기밀 유지를 위해 SS금물 (SS金物)이라고 호칭되었다.

일본군이 만든 특공 병기가 다 그렇듯 카이류도 제정신이 아닌 무기였다. 무장이 어뢰 2발과 본체에 600kg급 탄두를 장착한 물건으로, 갑표적과 가이텐을 합친 발상으로 만들어졌으나 사실상 어뢰 2발을 추가로 달아놓은 대신 속도가 느린 가이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초기의 카이류는 사실상 가이텐에 어뢰 2발 달아놓은 형상이며, 작전방식은 적함에 어뢰 2발을 발사한 뒤, 격침되지 않았을 경우 그대로 들이받는 물건이었다. 후기형의 경우에는 그냥 가이텐 확대형이다. 게다가 패전직전에 만들어진 만큼 굉장히 조악했으며, 최대속도 역시 고작 7노트에서 10 노트일 정도로 갑표적 시절의 절반밖에 안 됐다. 효용성은 특공 병기라는 것까지 감안하더라도 사실상 0라고 봐도 될 물건이었다.

2. 개발과 생산

1943년 1월에 아사노 우에이치로 (浅野卯一郎) 기술중좌가 카이류의 개발을 발의했다. 아사노 우에이치로는 해군공작학교 (海軍工作学校)의 교관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의 패배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결호작전을 비롯한 일본 본토에서의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특공병기라는 명칭의 자폭 병기가 필요했기에 카이류의 개발을 발의하게 된 것이다.

개발 단계에서 SS금물 (SS金物)이라고 위장용 명칭이 붙은 카이류는 1944년 5월에는 실용화에 가까운 수준의 프로토타입이 2척 만들어졌고 1척은 요코스카의 해군공작학교에 위치했고 나머지 1척은 해군공창에 위치했다.

그리고 각종 시험 결과 일단 특공 병기로서 사용이 가능하며 개량작업을 통해서 수상과 수중에서의 안정성이 증가하고 수압을 견디는 수준도 높아졌기에 양산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1945년 3월부터 미우라 반도에 기지를 만들어 카이류 승조원 양성이 시작되고 1945년 4월에는 해룡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긴급 양산이 명령된다. 1945년 5월에는 가이텐과 같이 정식 병기로 채용된다.

카이류의 양산은 요코스카에 있는 해군공창에서 1945년 9월까지 700척을 건조하는 목표를 세우고 양산에 돌입했다. 그래서 패전시까지 224척이 건조가 완료되고 207척이 건조과정중에 있었다.

원래는 일본 본토 결전용으로 각지에 카이류 운용 기지를 만들어놓고 카이류를 보내는 방식으로 운용하려고 했으나 양산시점이 너무 늦었고 배치할 시간과 수단도 부족해서 대부분의 카이류는 요코스카시 항만의 방어용으로 투입되었으며 일부는 미우라 반도에도 배치되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옥음방송으로 쇼와 덴노가 항복을 선언함으로서 가이텐과 달리 실전에 참가한 카이류는 다행히도 단 한 척도 없었다.

3. 제원

파일:external/movie.geocities.jp/kairyu_1.jpg
카이류 프라모델 완성예시
구분 계획 양산
전장 17.2m 17.28m
전폭 3.5m 3.42m
동체지름 1.3m
전고 1.3m
기준배수량 19.3t 19.2t
엔진 이스즈 DA60형 디젤 발전기 (100마력)
이스즈 SB형 디젤 발전기 (60마력)
모터 전기모터 (80마력)
축전지 특M형 개1의 개조형 104개
수상속력 12km/h (6.5노트) 14km/h (7.5노트)
수중속력 19km/h (10노트) 18km/h (9.8노트)
수상항속거리 5.5km/h (3노트)로 832.5km
수중항속거리 9.2km/h (5노트)로 69km
잠수한계 150m
승조원 2명
무장 외장식 53cm 어뢰 2기
선수부에 TNT 600kg 탄두 1개
외장식 45cm 어뢰 2기
선수부에 TNT 600kg 탄두 1개

4. 종류

카이류는 기본적으로는 단일한 함종이지만 내부적으로는 4종류로 나누어진다.

5. 장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airyu_general_arrangement_sections.svg.png
카이류 양산후기형의 내부구조도

카이류는 일반적인 잠수함과는 다르게 수중익이라고 불리는 작은 날개가 있고 비행기처럼 상승과 하강을 했기 때문에 구조가 단순하고 건조기간이 짧은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수중익을 채택함으로서 조종에 필요한 승조원 숫자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갑표적 후기형에서 3명이던 인원을 2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수중익을 적절하게 조정하면 급속잠항이 가능했으며 숙련된 승조원이 조종할 경우 5초 이내로 잠수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해중 비행기의 발안은 기술적인 흥미성은 있으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소수의 인원이 탑승하는 잠수정이 3차원 공간의 운동성, 안정성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어려웠다. 전쟁 말기의 자재, 물자부족에 의해 품질이 저하되고 실용화된 카이류도 성능이 대폭으로 저하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내부 구조도 개선을 거듭해서 구조와 기능을 간이화하는 데 성공하여 수상과 수중에서의 안정성이 양호해졌고 함체의 크기에 비해서 압력을 지지하는 빔이 많았기 때문에 수중에서의 내압성도 올라갔다. 그리고 갑표적에서 훈련을 완수한 승조원이 카이류로 전환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따라서 카이류를 갑표적의 뒤를 이어주는 특수용 잠수정으로 사용했다면 갑표적보다는 양호한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6. 한계점

외부에 장착한 어뢰 2발로 인해 항해시 저항이 발생하므로 뇌장을 한 카이류는 뇌장이 없는 카이류에 비해서 속력이 50% 감소했다. 그리고 어뢰를 1발만 발사할 경우 한쪽 측면이 가벼워지면서 카이류가 좌우로 마구 흔들리고 결국 어뢰가 남아있는 쪽으로 카이류가 기울어졌다. 여기에 더해서 어뢰 발사후에 함수부가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경향도 발생했기에 600kg의 자폭용 탄두가 함수의 상승을 줄여주는 효과도 가져오는 아이러니도 발생했다. 따라서 갑표적처럼 800m 이내의 거리에서 어뢰 2발을 동시에 발사해야 한다.

숙련된 승조원이 탑승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이로스코프를 통한 카이류의 항로 유지가 곤란해졌고 잠망경으로 주변을 관측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히 카이류를 해면 위로 부상한 상태로 수상항해를 진행할 경우 속도가 올라가면 함수가 서서히 하강하면서 혼자서 제멋대로 잠수를 하려는 경향이 매우 높아진다. 따라서 함수가 내려가는 것을 빠르게 깨닫지 못하면 수상항주용 디젤엔진에 사용하는 흡배기통을 통해 해수가 쏟아져내리면서 침수가 발생하고 엔진이 정지한다. 이런 상황에 몰릴 경우 다급하게 흡배기통을 닫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디젤엔진에 사용할 공기가 없어지게 되므로 카이류 내부의 공기를 사용하게 되므로 순식간에 카이류 내부 공기가 줄어들고 유독가스가 퍼져서 승조원이 가스중독과 산소부족으로 기절하면서 카이류가 통제불능이 되었다가 혼자서 침몰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실제로 카이류 승조원 양성 훈련에서 기초 훈련에도 어려움이 따랐으며 특히 단독 조종 훈련에서 앞서 언급한 사태로 인해 질식 사고가 다발하여 순직자가 계속 나왔다. 그러므로 카이류는 숙련된 승조원이 반드시 필요했다.

카이류의 함체 선수부 내부에 장착된 600kg 탄두도 문제였다. 원래 해당 부위는 600L 용량의 연료탱크가 있던 곳이기에 카이류 내부에 탄두를 장착할 경우 카이류는 480L 용량의 후부 연료탱크만 사용가능해지므로 행동반경이 100km 이내로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전행동이 불가능해진다.

카이류의 통신 능력과 탐지 능력도 매우 부족했다. 상호간의 통신능력은 없기 때문에 다수의 카이류가 전투에 참가하더라도 서로 연계를 해서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더해서 조악한 수준의 간이형 잠망경이라는 제한된 시야를 통해서 적을 찾아내고 사격제원을 산출해서 어뢰를 발사해야 하는데 그 동안 적의 호위세력이 카이류를 찾아내서 대응사격을 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실제로 1945년 6월 하순의 오오시마와 보소반도 사이에서 벌어진 종합 야간 훈련에 제11돌격대의 카이류 3척이 참가했지만, 2척은 목표를 발견도 못하고 끝났다.

그 외에도 패전 직전의 자재 부족과 품질 저하로 인해 스펙과는 달리 실제로 양산된 카이류의 성능은 대폭 낮아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원래의 성능을 가졌더라도 가이텐에 비해서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저속으로 움직이는 미국 수송선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가이텐처럼 카이류를 특공 병기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곤란한 특징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7. 운용

카이류는 계획 당시에는 목표 가까이까지 다른 잠수함으로 운반한 후에 출격해서 적함을 어뢰로 공격 후 아군 잠수함을 사용해서 귀환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귀환을 위해서는 아군과의 연락이 불가결했지만 수중전화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연락을 위해 서로 수상으로 떠 올라 위치를 확인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적에게 노출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이미 제해권이 장악된 상황에서 함을 부상하는 짓은 자살행위였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귀환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또 갑표적과 마찬가지로 어뢰 발사 후 부력 평형 상태가 깨지면서 일시적으로 부력이 올라가는 상태에 돌입해서 함수부가 떠오르는 결점이 있었다. 이는 차탄발사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며, 잠항심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므로 이탈시에도 안좋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전황악화에 의해 카이류의 모함이 될 잠수함도 조달하기가 점점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 본토에 카이류 기지를 만들어놓고 카이류를 배치한 후 독자적으로 출격하고 귀환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카이류의 잠수시 동력원인 축전지는 완전 방전부터 전체 충전까지 8시간이 필요했다. 보통 귀환에 성공한 카이류는 축전지를 완전히 방전시키지 않고 비상용으로 약간의 전기가 축전지에 남은 경우가 대다수이겠지만 이런 경우라도 보통 충전은 5시간, 급속 충전에는 3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귀환한 카이류는 곧바로 끌어 올려서 정비하면서 동시에 축전지에 충전 작업을 행할 필요가 있었으며 숙련된 정비병의 지원도 필요해졌다.

그런데 오키나와 전투에서 해당 지역에 배치된 갑표적 부대가 미군에게 당한 것을 볼 때 미군은 육상 기지에 먼저 선제공격을 가하므로 카이류가 출격도 못하고 기지와 함께 박살날 것이 뻔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후기의 카이류는 전황악화를 반영하여 함수부에 폭약을 가득 채워 아예 적함으로 돌격하는 특공병기로서 건조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카이류는 속도가 낮았기 때문에 본토결전시 적 호송선단을 주 공격목표로 예정했었다. 그러나 가이텐보다도 속력이 낮은 카이류는 저속의 수송선을 상대로 해도 호위함선에게 막혀 공격하기는 힘들거라고 전술가들은 평가한다.

1945년 5월에는 이즈 반도의 시모다에 제13돌격대의 기지가 설치되었고 서해안의 에노우라에도 제15돌격대의 기지가 설치되었다. 각 부대는 13척의 카이류로 구성됐다. 제13돌격대에서는 8월 초순, 칸코모토지마 (神子元島)의 등대를 포격하는 적 잠수함에 대응해서 카이류 1척이 출격했다. 그러나 카이류는 목표까지 수상 항행 중에 적 함재기의 총격을 받고 급속 잠항해서 회피에 성공했으나 도착시간이 늦어졌다. 결국 섬 부근에 도착했지만 이미 적 잠수함은 자취를 감춘 뒤라서 그냥 귀환했다. 이후에는 제13돌격대의 출격 기회는 없었고 며칠 후에 패전을 맞이했다. 결국 카이류는 실전 투입이 1회 있었으나 실전을 경험하지 못하고 끝났다.

패전후인 1945년 9월에 요코스카로 진주한 미군은 카이류를 노획 후 비밀기지와 생산공장도 발견해서 사진을 찍어 남겼다.

이 사진들은 미합중국 해군 역사센터가 보관, 공개하고 있지만 어뢰가 장착된 카이류는 없다. 여기에 더해서 여분의 어뢰나 어뢰를 운반하는 대차 및 어뢰 장착 도구도 전혀 없었다. 이는 1945년부터 갑표적보다 성능이 좋은 특수잠항정인 코류(蛟龍)도 어뢰장비가 없는 상황으로 비추어 볼 때 카이류도 어뢰를 떼낸 후 사실상의 자폭을 목적으로 한 인간어뢰로서 양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의 야마토 박물관이 어뢰 2발을 탑재한 계획 초기의 카이류를 전시하고 있지만 어뢰관련장비는 실제 양산 및 운용된 물건들은 없거나 있더라도 모두 제거된 상태로 본다.

8. 평가

함체 자체의 성능과 조종방식의 변화 및 수중익 도입등을 볼 때 카이류는 갑표적보다 더 성능이 좋은 특수목적형 잠수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도 1945년 5월 16일부터 18일에 걸쳐 요코스카 진수부 제1차 특공 합동 연습이 진행되었다. 이때 카이류는 새벽에 정박중인 함선을 공격한다는 상정으로 습격을 실시했다. 시간은 17일 새벽이었고, 충분한 밝기 하에서 뇌격을 예상하고 10명의 견시에 의한 감시가 행해지고 있었지만, 어뢰 발사까지 카이류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또한 어뢰는 목표에 명중했다.

이런 결과를 볼 때 Decima Flottiglia MAS같은 특수부대를 창설하고 카이류로 적 군항 내부에 병력을 잠입시키고 적 군함에 폭탄을 설치한 후 카이류로 재집결해서 다시 몰래 군항을 빠져나가는 식으로 운용했다면 상당한 전공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갑표적에서도 적 군함에 대한 뇌격만 너무 생각하다가 본래 목적으로는 별로 사용하지도 못했는데 계속 적 군함에 대한 뇌격을 고집한 나머지 카이류도 갑표적에서 나타난 결점을 그대로 답습해버린다.

여기에 더해서 속력이 느린데도 불구하고 가이텐처럼 특공병기가 된 결과 말 그대로 기어가는 수준의 가이텐이 되었으므로 실전투입도 없고 실전경험도 없고 성과도 없이 재료와 인력만 낭비하고 끝났다.

따라서 카이류는 발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일본 제국 해군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엉뚱한 길로 가다가 실패작이 된 잠수정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