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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0 23:08:44

렉싱턴급 순양전함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제2차 세계 대전의 미합중국 해군 군함 파일:미국 해군 함수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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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미군해군 군함
구잠함(PC) <colbgcolor=white,#191919>PC급 구잠함
초계함(PG) 더뷰크급, 이리급
호위함(FF) 애슈빌급, 타코마급, 컨스티튜션급
호위구축함(DE) 에바츠급, 버클리급, 캐논급, 에드솔급, 루더로우급, 존 C. 버틀러급, 딜리급A, 클라우드 존스급A
구축함(DD) 샘슨급, 칼드웰급, 윅스급, 클렘슨급, 계획 1919 향도, 패러것급, 포터급, 머핸급, 그리들리급, 배글리급, 소머즈급, 벤험급, 심즈급, 벤슨급, 글리브스급, 플레처급, 알렌 M. 섬너급, 기어링급
잠수함(SS) O급, R급, S급, 바라쿠다급, 아르거넛급, 나왈급, 카샬롯급, 포어포이즈급, 새먼급, 사르고급, 탬버급, 가급, 마크렐급, 가토급, 발라오급, 텐치급
경순양함(CL) 오마하급, 브루클린급, 세인트루이스급, 애틀랜타급, 클리블랜드급, 파고급A, 주노급A, 프로젝트 A, 프로젝트 CL-154급, 우스터급A
중순양함(CA) 펜사콜라급, 노스햄프턴급, 포틀랜드급, 뉴올리언스급, 위치타급, 볼티모어급, 프로젝트 CA-B, 오리건시티급A, 디모인급A
대형순양함(CB) 알래스카급, 프로젝트 CA2-D, 프로젝트 CA2-F
순양전함(CC) 렉싱턴급
전함(BB) 플로리다급, 와이오밍급, 뉴욕급, 네바다급, 최대 전함, 펜실베이니아급, 뉴멕시코급, 테네시급, 콜로라도급, 사우스다코타급(1920), 노스캐롤라이나급, 프로젝트 1058, 사우스다코타급(1939), 아이오와급, 몬태나급
호위항공모함(CVE) 롱 아일랜드급, 차져급, 보그급, 생가몬급, 카사블랑카급, 커먼스먼트 베이급
경항공모함(CVL) 인디펜던스급, 사이판급A
정규항공모함(CV) 랭글리, 렉싱턴급, 레인저, 요크타운급, 와스프, 로빈(빅토리어스)UK, 에식스급, 타이콘데로가급, 미드웨이급A
수상기모함(AV) 커티스급, 탕헤르급, 바네갓급, 커리턱급, 케네스 화이팅급
병원선(AH) 릴리프, 솔러스, 컴포트급, 바운티풀, 사마리안, 레퓨지, 헤이븐급, 안타이오스
군수지원함 키어사지AB, 베스탈AR
잠수함모함(AS) 풀턴급
구축함모함(AD) 딕시급
소해함 랩윙급, 레이븐급, 오크급, 호크급, 어드미러블급
어뢰정 PT 보트
공격수송함 존 펜, 아서 미들턴급, 프레드릭 펀스턴급, 도이엔급, 윈저급, 옴스비급, 베이필드급, 섬터급, 길리엄급, 하스켈급, 폴 리비어급A
연습항공모함 울버린급, 세이블급
지휘함 마운트 매킨리급, 애디론댁급
기타 함선 USS QUARTZ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A: 전후 완공, 윗첨자UK: 영국으로부터 대여, 윗첨자AB:구난/공작함, 윗첨자AR:공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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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층식 주포탑 배치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주포 2문 추가/부포 강화

델라웨어급


 
4축 추진 도입

플로리다급


 
증기터빈 도입/주포 2문 추가

와이오밍급


 
방뢰격벽 도입/주포 구경 356mm로 확대

뉴욕급


 
집중방어구조로 개편/3연장 주포탑 도입

네바다급


 
3연장 주포탑 전면 도입/주포 2문 추가

펜실베이니아급


 
클리퍼형 함수/신형 포탑/터보 일렉트릭 도입

뉴멕시코급


 
신형 방뢰구조 도입

테네시급


 
주포 구경 406mm로 확대

콜로라도급


 
장포신 주포 도입과 주포 4문 추가/속력 증대

사우스다코타급(1920)


 
신형 주포 도입/속력 강화

노스캐롤라이나급


 
대응방어 능력 확보

사우스다코타급(1939)


 
장포신 주포 도입/속력 대폭 증대

아이오와급


 
방어력 및 방뢰능력 강화/주포탑 1개 추가

몬태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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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41961.jpg
렉싱턴급 순양전함 완공시 항해상황을 예상한 그림

1. 개요2. 제원3. 개발4. 건조와 변경5. 취소와 전환6. 말로7. 능력8. 함선 목록9. 미디어에 등장10. 모형화

1. 개요

미국에서 전간기 중 계획한 함급이다. 설계 변경 등의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1920년 건조를 시작했다가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취소 및 렉싱턴급 항공모함으로 용도 변경되었던 순양전함이다.

2. 제원

파일:external/www.hazegray.org/cc-cl.jpg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설계 구조도
렉싱턴급 순양전함
Lexington (CC-1) class
전장 266.4m
전폭 32.1m
흘수선 9.4m
만재배수량 45,354t
보일러 16기
동력기관 터보 일렉트릭(turbo-electric) 4축
출력 180,000마력(130,000kW)
속력 33knot(61km/h)
항속거리 10knot(19km/h)로 19,000km
주포 16인치(406mm) 50구경장 Mark 2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부포 6인치(152mm) 53구경장 Mark 13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대공포 3인치(76mm) 23구경장 Mark 11 단장 대공포대 8기 (총 8문)
어뢰 533mm 어뢰발사관 8문 (총 8문)
현측장갑 127mm - 178mm
갑판장갑 38mm - 57mm
포탑장갑 전면 279mm, 측면 152mm
함교장갑 305mm
바벳장갑 127mm - 229mm
승무원 1,297명
건조계획 6척
건조결과 4척 취소
2척 렉싱턴급 항공모함으로 전환

3. 개발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개발 동기는 의외로 빨라서 1903년에 미국의 해군전쟁대학(Naval War College)에서 펜실베이니아급 장갑순양함이나 테네시급 장갑순양함에 대한 전반적인 효율성 재검토 요청부터 시작된다. 해당 시기는 영국에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나오기 직전에 벌어진 장갑순양함 건조 유행을 알프레드 세이어 머핸이 한때의 유행으로 평가절하하면서 미국에서는 장갑순양함 건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뒤늦게서야 미국 의회의 지적을 받은 후에 장갑순양함을 건조해볼까 하고 검토하던 시점이었다.

1903년에 나온 제안에서는 강력한 함포를 장착한 주력함에 대한 간단한 메모가 첨부되었으며 1904년 여름에 진행한 회의에서는 12인치(305mm) 주포 4문, 3인치(76mm) 속사포 22문, 수중 어뢰발사관 4문, 전함 방식 방호로 무장한 군함이 제안되었는데 해당 군함은 본질적으로는 6인치(152mm) 중간포가 제거되는 대신 더 강력한 주포와 튼튼한 장갑으로 교체된 테네시급 장갑순양함과 마찬가지였다. 해당 군함에 대한 제안은 몇년동안 해군 내부에서 논의되면서 점점 증강되면서 당시 전함의 주포인 12인치 주포탄에 대한 대응방어까지 고려하면서 테니시급 장갑순양함보다 월등하게 큰 군함까지 늘어났으며 1906년 여름에 진행된 회의에서 정찰 및 함대 출격시 기동부대인 빠른 날개(Fast Wing)를 담당할 군함이 필요하며 빨리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1906년 여름에 진행된 회의에서는 해당 형태의 장갑순양함은 거부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미 10척에 도달할 정도의 신형 장갑순양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영국에서 순양전함이 등장했기 때문에 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을 포함한 다양한 외국의 신형 군함들을 살펴보면서 설계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08년에 여름에 진행된 회의에서는 장갑순양함보다는 순양전함을 건조할 필요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어뢰의 유효사거리보다 먼 곳에서 포격이 이루어질 것이며 장갑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해질 것이므로 속도를 이용해서 먼저 적을 사정거리 안에 넣은 후에 선제포격해서 빠르게 쓰러뜨리면 문제가 해결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순양전함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요구가 등장했는데 장갑순양함처럼 아군의 주력함대를 지원하지만 아군의 전함과 같이 전열에 들어가서 전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아군의 전함보다 최소 20% 이상의 속도 우위를 가지는 군함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09년에 미국 해군에서는 와이오밍급 전함의 설계를 기본으로 해서 순양전함 설계를 만들어서 제출한다. 해당 설계는 당시 미국 전함들의 평균 속도가 21노트(39km/h)인 것을 볼 때 순양전함의 속도는 최소한 25.4노트(47.0km/h)가 될 것을 감안하여 26,417t의 배수량에 204m의 전장을 가진 선체를 도입해서 최고속도를 25.5노트(47.2km/h)로 낼 수 있으며 12인치(305mm) 2연장 주포탑 4기를 장착해서 주포 8문을 도입하며 장갑 수준은 와이오밍급 전함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수준이었다. 주포탑을 와이오밍급 전함보다 2기나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별로 늘어나지 않은 이유는 선체가 길어지면서 선체의 튼튼함과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 현측장갑의 장갑벨트를 더 많이 늘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현측장갑의 두께를 3인치(76mm) 줄이면 2연장 주포탑 1기를 추가할 수 있다는 부수적인 제안도 동시에 첨부되었다.

해당 순양전함 설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에 돌입하자 중간에 세부제안이 4개가 나왔는데 본질적으로는 12인치 주포 8문을 탑재하고 장갑을 줄이거나 12인치 주포 6문을 탑재하고 와이오밍급 전함에 탑재된 장갑의 수준으로 방어력을 증강시킨다는 등 거기서 거기인 주장이었고 모든 제안이 적층식 주포탑 탑재가 없었기에 미국 해군의 상층부 입장에서는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일단 설계도는 접수하지만 실제로 건조에 돌입하는 것은 비추천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 안건을 검토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일본 제국이 중요한 경쟁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이미 1905년 쓰시마 해전을 승리함으로서 열강 해군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2인치 2연장 주포탑 2기를 보유한 츠쿠바급 장갑순양함쿠라마급 장갑순양함을 건조함으로서 이미 미국에서 논의중이던 강화된 장갑순양함을 실제로 건조하고 운영중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영일동맹의 결과물로 공고급 순양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미국 해군에 비상이 걸리기 시작했다. 1911년 1월 17일에 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가 영국에서 건조되기 시작하자 1911년 6월 13일에 미국 해군의 정보국은 공고급 순양전함이 4척 건조될 것이며 그 중에서 3척은 일본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보고한다. 1911년 6월 14일에 미국 해군부의 해군장관은 기존에 보유한 장갑순양함들은 모두 공고급 순양전함의 상대가 될 수 없기에 가급적 빠른 시기내에 미국도 순양전함을 건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따라 미국 해군의 군함 설계를 담당하는 건조수리국(Bureau of Construction and Repair)은 1911년 8월 29일에 14인치(356mm) 주포 8문과 5인치(127mm) 부포 24문을 탑재할 수 있으며, 네바다급 전함에 필적하는 방어 시스템을 갖춘 30,000톤 미만의 군함을 연구할 것을 제안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판 공고급 순양전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국 의회의 예산 압박과 건함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미국 해군에서는 전함 건조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순양전함을 건조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실제로 미국 해군 총회(General Board of the United States Navy)라고 불리는 미국 해군의 수뇌부 회의에서는 1903년에 미국이 매년 2척의 전함을 건조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은 전함 건조는 1904년(1905 회계연도)에 1척, 1905년(1906 회계연도)에 2척, 1906년과 1907년(1907 - 1908 회계연도)에 1척, 1912년과 1913년(1913 - 1914 회계연도)에 1척을 승인했다. 그나마 1910년(1911 회계연도)에 한 척이 아닌 두 척의 뉴욕급 전함이 승인된 것은 분명히 조지 폰 렝게르케 마이어(George von Lengerke Meyer) 해군장관의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이렇게 예측한 것보다도 적은 숫자의 전함만 건조 승인이 되는 상황에서 순양전함을 건조한다고 하면 전함 건조가 더 줄어들 것이 뻔했기에 해군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모험을 할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차세대 전함이었던 표준형 전함의 건조 승인에 집중하기 위해서 순양전함에 대한 건조 계획은 뒤로 밀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해군 건조수리국은 순양전함 설계도를 구체화하는 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14인치(356mm) 주포 8문 탑재는 동일하지만 속도는 26노트, 29노트, 32노트로 변화가 심했고 현측장갑도 8인치, 11인치, 14인치로 변동이 심했으며 항속거리도 5000마일, 7000마일, 8000마일로 점점 늘어났다. 1912년 7월 12일에 건설수리국 소속의 R.H. 로빈슨(R.H. Robinson)가 해군전쟁대학에서 미국 해군의 수뇌부로 구성된 이사회가 참석한 가운데 순양전함 설계의 최종본을 발표하는 등의 강연을 개최했다. 여기서 로빈슨은 측면장갑은 최소 8인치(203mm)를 확보해야 하며 항속거리도 미국의 전함들과 동일한 8000마일(12,875km)를 권장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주장에 따라서 미국 해군 총회는 1914년도 해군건함계획에 순양전함 2척을 추가할 것을 요청하기로 했고 건설수리국에게는 최종본에서 약간 수정된 설계도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해군전쟁대학에서는 건설수리국에서 제출한 순양전함의 설계 자체가 문제가 있으며 차라리 고속전함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군비증강의 필요성을 미국 의회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한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지지를 표명하여 1915년 10월에 수립한 잠정적인 5개년 건함계획은 1922년까지 전함 10척, 순양전함 6척, 구축함 10척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1915년 12월에 미국 의회에 제출되었으며 1916년 6월 2일, 미국 하원은 전함 5척을 순양전함으로 교체하는 수정된 형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1916년 8월 29일, 미국 상원은 또한 원래 군함 건조 숫자를 유지하되 3년(1917 - 1919 회계연도)안에 건조를 시작하도록 규정하는 수정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르면 처음 4척의 순양전함은 1917 회계연도에 건함을 시작하고, 5번째 순양전함은 1918 회계연도에 건함을 시작하며, 마지막 순양전함은 1919 회계연도에 건함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순양전함들의 기호가 CC로 결정되었고 CC-1에서 CC-6까지의 함명도 아래에 나온 목록과 동일하게 결정된다.

4. 건조와 변경

렉싱턴급 순양전함은 원래 오마하급 경순양함평갑판형 구축함과 같이 주력함대를 지원할 목적으로 35노트(65km/h)의 속도로 움직이는 고속기동부대를 편성할 예정이었으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대응할 대잠전을 수행할 구축함과 보조구축함 및 초계함 건조와 상실한 수송선을 대신하고 추가적인 수요에 대응할 대규모 상선 건조 때문에 조선소 용량의 부족으로 주력함 건함 일정이 전체적으로 뒤로 밀렸다. 여기에 더해서 기존 설계의 문제점 때문에 용골을 놓는 것도 지연되었다.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원래 설계는 14인치 50구경장 주포 10문을 네바다급 전함처럼 3연장 주포탑과 2연장 주포탑을 혼용해서 총 4기를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함체의 폭이 좁기 때문에 3연장 주포탑을 설치가능할만한 함폭이 부족한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부포의 경우에는 5인치 51구경장 부포 18문을 단장 부포곽에 설치해서 선체의 양 측면에 배치하며 속도는 35노트(65km/h)이며 배수량은 34,900t이었다. 장갑은 속도의 증가를 위해서 매우 얇았다.

해당 설계의 문제점은 너무 함체의 폭이 얇고 함체의 길이가 길어서 고속 항행시에 선체가 구부러지려는 경향이 강한 것과 함께 함수방향으로 배치된 주포를 사격하면 그런 증상이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180,000마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력기관을 많이 설치해야 하는데 함폭이 얇으므로 결국 보일러의 절반 정도를 장갑갑판의 위에 장착해서 장갑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태를 불러왔다. 덤으로 흡기와 배기의 중요성도 증가해서 최소한 7개의 연통이 필요했으며 그 중에서 4기는 인접해서 장치해야 할 수준이 되었다.

그나마 이것도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설계를 지휘한 R.H. 로빈슨(R.H. Robinson)이 많은 점을 수정한 결과였다. 원래는 이런 종류의 고속군함은 전폭과 전장이 1:20으로 만들어졌으나 연구를 통해서 좀 더 선체 강도를 높일 수 있는 1:26으로 수정되었으며 현측장갑을 선수와 선미까지 연장해서 장갑 자체를 일종의 구조물로 활용해서 선체가 꺾이려는 증상을 막아보겠다는 아이디어도 제출되었으나 반려되었고 마지막에는 세로격벽을 추가하고 갑판들도 구조물로 활용해서 선체가 꺾이려는 증상을 막는 방법을 추가했다. 이런 과정에서 243.8m의 전장이 259.1m로 늘어났고 배수량도 33,000t으로 늘어났으나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갑갑판 아래에 모든 동력기관을 설치하려면 함수와 함미 방향의 주포탑들을 더 많이 함체 끝방향으로 밀어내야 하며 이렇게 하면 선체가 구부려지려는 응력이 더 증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력기관의 절반을 장갑갑판 위에 놓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덤으로 이런 과정에서 배수량이 34,900t으로 더 늘었다.[1]

따라서 건조가 지연된 것과 함께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의 순양전함들이 겪은 전훈을 렉싱턴급 순양전함에게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 협상국이 된 미국이 영국이 15인치(381mm)로 무장한 순양전함 계획이 있고 일본도 410mm로 무장한 순양전함 계획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으므로 여기에 맞춰서 렉싱턴급 순양전함이 적국의 가장 강력한 주력함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줘야 한다는 병기국(Bureau of Ordnance)의 주장까지 나왔으므로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주포를 16인치 50구경장 8문으로 강화하고 부포도 6인치 53구경장 단장 부포곽 14문으로 늘리며 함체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개선안이 나왔다. 해당 개선안은 개선된 신형 보일러는 20기만 설치해도 충분히 180,000마력을 낼 수 있기에 모든 동력기관을 장갑갑판 아래에 넣어서 보호가 가능하며 연통도 5기로 줄여서 설치한다는 개선점이 있긴 했으나 중무장으로 인해 선체의 뒤틀림과 굽힘 증상이 더 심해지고 유틀란트 해전의 교훈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사실상 개악안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본토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동안 영국에 주둔한 미국 해군 참모부는 1918년경에 어드미럴급 순양전함후드(Hood)를 살펴본 후 당대 기준으로 강력한 방어력에 감탄했다. 영국 관계자도 후드를 고속전함이라고 추켜세웠으므로 깊은 감명을 받은 미국 해군은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후드처럼 강화해서 고속전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수석 설계자인 데이비드 테일러(David Taylor)도 여기에 동의하여 1918년 4월 30일에 렉싱턴급 순양전함 설계원들에게 전함과 순양전함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적용한 고속전함화에 대응한 설계를 하라고 지시했다. 구체적으로는 1920년대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같은 주포인 16인치(406mm) 50구경장 Mk.2로 무장하고 프리보드(freeboard)를 최소 8.5m로 증가시키며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설계도를 완성해고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해군도 이미 동맹이 된 미국을 돕기 위해서 스탠리 버논 구달(Stanley Vernon Goodall)이라는 군함 설계자를 임시적으로 건조수리국에 파견했으며 구달의 설명으로 미국은 드디어 유틀란트 해전의 진정한 교훈과 후드의 설계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런던에서 심스 제독의 참모로 복무하여 영국의 건함에 대해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미국 고위 설계자인 L.C. 맥브라이드(L.C. McBride)도 조국의 건조수리국에게 많은 자료를 전달하여 구달의 설명을 입증하고 영국의 군함 건조 경험과 노하우를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설계 변경에 적용하도록 조치했다. 따라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을 설계하면서 동시에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설계 수정을 빠르게 진행하였다.

일단 측면장갑은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 순양전함들이 명중당한 포탄의 타격 교훈을 감안하여 경사장갑으로 변경하고 장갑의 두께 자체는 약간 줄였으며 어뢰 방어 시설의 확충을 위해서 함폭을 증가시키고 측면 장갑의 높이를 180mm 정도 늘리며 전쟁 기간동안 추가로 발전된 기술을 받아서 개선된 최신형 보일러 16기를 도입해서 연통을 2개를 줄이고 배수량을 43,500t까지 늘리는 것이 기본적인 개선점이었다. 물론 기존의 수중 어뢰발사관 4기에 추가해서 수상 어뢰발사관 4기를 추가하는 등의 단점도 있었으나 당대에는 전함에도 어뢰발사관을 설치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므로 당대 기준으로는 화력증가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2]

1918년 6월 3일에 렉싱턴급 순양전함 재설계안 4개가 미국 해군 총회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미국 해군 수뇌부는 재설계안 4개를 모두 거부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재설계로 인해 1916년 건조계획에 따라서 건함할 다른 주력함들도 재설계를 하게 되면 건함의 지연과 비용의 증가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등장하자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쓸모없어진 것처럼 영국의 후드처럼 중장갑을 가진 고속전함을 만들 경우 기존의 표준형 전함이 퇴물이 될 것을 염려한 것이 더 컸다. 실제로도 미국 해군에서도 렉싱턴급 순양전함은 6인치(152mm) 이하의 포탄만 막으면 충분하다는 미국 해군의 시대에 뒤떨어진 요청도 동시에 들어온 상황이었다.[3]

하지만 유럽 방면 미국 해군 사령관인 윌리엄 심스(William Sims)처럼 이미 영국의 후드가 등장해서 군함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여기서 막아봤자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태가 발생하여 재설계안이 완전히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사태는 막았고 1919년 5월까지 일단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건조와 관련된 절차가 중단된다.

결국 미국 해군 수뇌부는 약간의 타협을 해서 4개의 개선안 중에서 속도가 두번째로 빠르며 주포탑, 장갑함교, 탄약고, 통신망에 대한 방호력을 강화한 재설계안인 B안에서 장점을 따와서 기존 설계안에 크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예정대로 건조를 진행한다고 결정했다. 이런 식으로 재설계한 설계도가 B3이며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최종 설계가 된다.

5. 취소와 전환

설계안 확정 및 관련절차로 인해 5개월의 추가적인 지연 끝에 1920년과 1921년에 걸쳐서 6척의 렉싱턴급 순양전함이 건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1921년 7월에 미국 국무장관찰스 에번스 휴즈는 1921년 11월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논의를 위한 회의를 요청했다. 1차대전이 끝난 후인데도 계속되는 건함 경쟁을 끝내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해군 군함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미국 해군의 수뇌부들도 군축조약이 체결되는 순간 완성하지 못하고 건조중인 군함들이 가장 먼저 희생이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이미 구식이라고 평가받기 시작했고 여러가지 우여곡절끝에 만족스러운 결과물로는 보기 어려운 타협안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렉싱턴급 순양전함이 가장 먼저 희생될 것이 뻔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1척 이상의 순양전함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연구가 일찍 시작되었는데 1척은 항공모함으로 전환하고 다른 1척은 대서양 정기 여객선으로[4] 전환하려고 했다.

개조항공모함으로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전환하는데는 장점과 단점이 섞여 있었다.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만드는 군함에 비해서 어뢰방어시설이 좋고 항공 폭탄용 탄약고가 넓으며 후방 엘리베이터가 8.5m 후방에 있어서 함재기 착함용 공간이 넓어지는 장점이 있으나 함폭이 좁아서 격납고 공간이 16% 정도 줄어들고 예비 연료가 줄어들며 후방 비행갑판이 좁아져서 착함시 난이도가 높아지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비용문제도 만만치 않아서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군함을 건조하면 1척당 2,710만 달러가 들어가지만 렉싱턴급 순양전함은 이미 소모해버린 670만 달러를 제외하고도 추가로 1척당 2,240만 달러가 투입되므로 매몰비용이 크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이 발생할 정도였다.

하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체결로 인해 모든 논의는 중단된다. 조약에 따라서 건조중인 전함이나 항공모함 중에서 2척을 기준배수량 33,000롱톤 이내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조 가능하다는 조항이 들어갔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렉싱턴급 순양전함 중 2척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함께 건조중이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1920)은 최고속도가 23노트에 불과하며 기본적으로 제2차 표준형 전함으로 불릴 정도로 표준형 전함의 화력과 방어력을 강화하고 속도를 약간 높힌 형태라 항공모함 개조용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5]

그러나 조약상 항공모함의 1척당 기준배수량이 고작 27,000롱톤이었고 주력함 개조 특례를 받아도 기준배수량 33,000롱톤이라서 조약에 맞추려면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동력기관중 절반을 제거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항공모함으로 써먹을수가 없으므로 조약상의 조문 중에서 Chapter II, Part III, Section I, (d)에 있는 규정까지 사용해서 3,000롱톤의 배수량을 추가하는 우여곡절끝에 간신히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렉싱턴급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조항은 보유한 주력함이나 항공모함은 공중 폭격 및 잠수함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만 개조가 허용되며 개조의 항목은 벌지나 폭격 대응용 장갑갑판 같은 종류이며 개조해서 기준배수량의 증가량이 3,000롱톤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1928년에 미국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기준배수량은 렉싱턴은 35,689톤, 사라토가는 35,544톤이었으나 공식 목록에는 33,000톤으로 기록한 후에 해당 조항을 적용한다는 각주를 추가해서 외부에 공표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6. 말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22년 2월에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건조가 모두 중단된다. 그 후에 조약에 따른 항공모함 개조용으로 가장 공정률이 높았던 렉싱턴과 사라토가가 선택되어 렉싱턴급 항공모함으로 개조가 시작되었으며 나머지 4척은 모두 건조되는 자리에서 스크랩 처리된다.

렉싱턴급 순양전함이 건조를 시작하면서 부여받은 이름들도 전부 반납되었는데 이 중에서 1917년 12월 1일부터 오래된 컨스티튜션(Old Constitution)이라고 이름이 강제로 변경된 USS 컨스티튜션도 1925년 7월 24일에 원래 이름을 돌려받았다.

7. 능력

화력에서는 16인치(406mm) 50구경장 Mk.2의 근대화개량 및 경량화 형태가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인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다. 그래서 당대 기준으로는 매우 훌륭한 함포가 맞고 탑재형식도 2연장 주포탑이라서 발포시 포탄간의 간섭현상이 줄어들게 되므로 명중률도 높은 편이다.

그리고 16인치 50구경장 Mk.2 함포가 장착될 예정이었으므로 같은 16인치지만 45구경장인 16인치(406mm) 45구경장 Mk.1을 장착한 콜로라도급 전함보다는 당연하게도 화력이 강하며 신(新)전함들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이 장착한 16인치(406mm) 45구경장 Mk.6보다도 기본화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본포탑의 포신상하각도가 -4도에서 +40도이며 포탑선회속도가 초당 1.7도라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개선의 필요성이 있으나 미국의 경우에는 이미 기존의 14인치 주포와 16인치 주포를 모두 개선품으로 교체한 실적이 있으므로 해당 시기쯤 되면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주포와 주포탑도 개선품이 될 것이며 1.2t의 16인치 초중량탄도 사용이 가능할 것이고 사격통제장치도 신형전함과 동급으로 장착가능할 것이기에 실질적으로는 아이오와급 전함보다 아주 약한 수준으로 공격력이 상승할 것이다. 부포와 대공포도 어차피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로 교체될 것이며 양용포 설치 및 대공화기의 증설을 위해서 함폭도 증가할 것이 확실시되므로 어뢰분야 방어력도 상승할 것이다. 어뢰발사관은 당연하게도 철거될 것이므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방어력에서는 어뢰 방어력 빼고는 상승시킬만한 분야가 마땅치 않아서 그냥 순양전함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장갑이 얇아서 현측장갑은 중심이 178mm 두께이며 상부와 하부로 갈수록 얇아지면서 127mm까지 가늘어지며 상단부가 바깥쪽으로 11° 기울어져 경사장갑을 이루며 2.8m의 높이를 갖추는 구조를 갖추었다. 해당 방식을 도입함으로서 포탄이 수평각도로 날아올 때 방어력 증대가 가능해진 장점을 얻었으나 단점으로는 현측장갑의 상대적 높이가 낮아져서 포탄이 현측장갑 위로 넘어가거나 아래로 들어갈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현측장갑은 함체의 중앙부인 161.5m를 담당하며 현측장갑의 전면부 끝은 178mm에서 127mm로 가늘어지면서 격벽을 형성하며 마무리되며 후면부 끝은 178mm 두께를 유지하면서 격벽으로 마무리된다. 갑판장갑의 경우에는 상갑판은 총합해서 57mm 두께를 가진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파편방어 수준의 방어력이었고 하부에 있는 장갑갑판은 동력부와 탄약고를 보호하며 전체 두께가 51mm인 2겹의 특수 처리강(STS)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조타실에서는 두께가 76mm로 증가하며 경사면에서는 114mm에 달하는 두 겹의 STS로 보호되지만 딱 조타실만 보호되는 수준이다.

전투시설중 방어력이 가장 높은 주포탑도 전면장갑이 279mm이고 측면의 두께는 152mm이며 천정장갑의 두께는 127mm로 매우 얇다. 주포탑 하부의 바벳장갑은 최대 229mm의 장갑을 가지고 있지만 갑판 아래부터 단계적으로 두께가 최소 127mm까지 줄어든다. 장갑함교는 305mm의 장갑을 갖추었고 장갑함교에서 제1갑판까지 254mm 두께의 통신용 파이프가 존재한다. 어뢰 방어 시설의 경우에는 10mm - 19mm의 두께를 가지는 3개 - 6개의 강철제 보호 격벽으로 구성되었다. 격벽 사이의 공간은 비워 두거나 어뢰 탄두의 폭발을 흡수하기 위한 연료를 주입하여 연료 탱크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방어력을 강화한다고 해도 주로 갑판장갑 위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측면장갑은 개선하더라도 크게 방어력 향상을 기대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대응방어는 당연히 달성못하고 공고급 순양전함의 강화판 수준에서 방어력 강화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이지만 구식 12인치(305mm) 함포도 제대로 막을 수 없으니 주력함과의 교전은 피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주행력에서는 렉싱턴급 항공모함이 실제로는 1928년 해상실험에서 202,000마력(151,000kW)의 출력과 34.5노트(63.9km/h)의 속력을 기록한 것을 볼 때 스펙보다 향상될 가능성이 있으나 2차대전에 돌입하기 전에 대개장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어뢰방어력 강화 및 함폭 확대를 통한 대공화기 증설로 인해 배수량이 증가하므로 총합적으로는 33노트 수준의 속도를 유지하거나 약간 느려져서 31노트 수준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항속거리도 렉싱턴급 항공모함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의 주력함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지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고속항행유지를 위해서 데이비드 왓슨 테일러(David W. Taylor)가 미국에서 최초로 개발하여 1910년에 이미 델라웨어급 전함에 도입 및 실험을 완료한 지 오래인 구상선수(Bulbous bow)를 적용하는 등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놓았으므로 항행에는 지장이 없다.

그 외에 터보 일렉트릭(turbo-electric) 기관의 장단점을 공유하므로 역방향 추진이 단순하게 모터에 공급되는 전기를 조정해서 모터를 거꾸로 돌리면 가능하기 때문에 30분의 시간을 주면 30노트로 전속 후진을 할 수 있다거나 동력기관을 분산배치하고 군함에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공급한다는 장점을 보유하겠지만 평소에도 절연과 습기 방지에 힘써야 하며 피탄시에 누전 및 침수로 인한 고장이 발생하면서 동력기관이 일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고 현장수리에 위험성이 높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단점이 상당히 치명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렉싱턴급 순양전함에 증기 터빈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당시에는 미국 회사들중에서 출력이 높은 대형 터빈을 생산가능한 업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수상기의 경우에는 탑재하지 않았고 나중에 탑재를 대비하기 위해서 선미 최후미에 있는 갑판을 개조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미국에서 주력함용 수상기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불편함이 없는 존재에 가깝기 때문에 수상기 탑재 유무는 성능과 별로 관련이 없으며 만일 조난자 구출이나 각종 연락용등 다양한 잡무용으로 수상기를 도입한다고 해도 공간이 어느 정도 있으니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공격력과 주행력이 좋지만 주력함 기준으로는 방어력이 없다시피 한 순양전함으로 이론상 나가토급 전함과 전투가 가능하지만 일단 1발이라도 피탄당할 경우 말 그대로 전투력을 상실하고 작살날 가능성이 높은 유리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초반의 전황을 생각해본다면 항공모함과 같이 고속으로 기동하면서 호위가 가능하고 1문당 화력은 아이오와급 전함과 동등하고 단지 주포 숫자가 1문 부족할 수준으로 막강하며 대공화기도 많이 장착할 수 있으므로 개전 초반에 1척만 있더라도 자신의 밥값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군함이다. 여기에 더해서 고속군함이므로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기에 진주만 공습 당시 태평양의 미국 항공모함 호위를 담당해서 진주만에 없을 가능성도 높기에 초반부터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며 만일 진주만 공습을 당해서 침몰하더라도 어떻게든 인양해서 수리 및 대개장 후에 빠르게 재취역할 가능성이 높다.[6]

물론 일본군도 이런 것은 알고 있을 것이므로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특급목표로 지정한 후 발견하기만 하면 각종 함재기는 물론이거니와 G4M도 대량 동원해서 장거리 비행 후 대규모 뇌격을 해서 희생이 많아지더라도 반드시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잡으려고 노력할 것이니 엄청난 격전이 예상되고 그 과정에서 렉싱턴급 항공모함이 겪은 것처럼 격침당할 확률도 높다.

8. 함선 목록

함명 함번 건조 진수 취역 기타
렉싱턴 CC-1 1921년
1월 8일
1925년
10월 3일
1927년
12월 14일
렉싱턴급 항공모함으로
개장 건조됨
컨스텔레이션 CC-2 1920년
8월 18일
1923년
8월 취소
1923년
11월 8일
$45,666.66에 매각되고
제자리에서 해체
새러토가 CC-3 1920년
9월 25일
1925년
4월 7일
1927년
11월 16일
렉싱턴급 항공모함으로
개장 건조됨
레인저 CC-4 1921년
6월 23일
1923년
8월 취소
1923년
11월 8일
$10,666.66에 매각 후
제자리에서 해체
컨스티튜션 CC-5 1920년
9월 25일
1923년
10월 25일
$92,024.40에 매각되고
제자리에서 해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CC-6 1923년
10월 25일
$84,996.60에 매각되어
제자리에서 해체

9. 미디어에 등장

파일:attachment/네이비필드2/미국 함선/BB.Lexington_Field.jpg
파일:USA_T8P_CONSTELLATION.jpg

10. 모형화



[1] 영국의 순양전함들도 이런 문제를 겪었다. 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은 함체의 이중바닥부위 프레임이 뒤틀렸고 리나운급 순양전함은 전방방향 주포를 시험사격으로 발사한 후 함체 구조에 타격을 입고 다시 조선소로 돌아가서 수리 및 강화를 받아야 했으며 대형 경순양함인 커레이저스도 초기 시험항해에서 심한 강풍과 파도를 견뎌낸 후 외부 함체강판이 뒤틀려서 다시 조선소로 돌아가서 모조리 교체해야 했고 결국 항공모함으로 개장된다.[2] 이런 식으로 주력함에 설치된 어뢰발사관은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개장을 하면서 모두 제거되었다. 영국도 돈이 없어서 대개장을 못한 관계로 어뢰발사관을 제거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3] 당시에 국력은 이미 열강중에서 최상위권을 달리지만 평판과 구조는 아직 2류열강 수준이었던 미국에서 벌어지는 지체현상 중 하나다. 2류열강 시절에는 능력있는 인재로 가득한 조직이지만 열강의 선두에 올라가면서 벌어지는 시야확대와 새로운 개념의 도입으로 위협을 느끼거나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이나 신개념이 부분적으로만 도입되거나 거부되거나 아예 복고적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나중에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발생하는데 진주만 공습으로 항공모함과 함재기가 우세한 것을 증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함 중심의 거함거포주의를 한동안 고수하다가 전쟁 말기쯤에나 교리를 수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4] RMS 타이타닉과 비슷한 용도[5] 만일 억지로 개조하면 프랑스 제3공화국이 조약에 따라 노르망디급 전함베아른급 항공모함으로 개조한 것처럼 느려터지고 함재기 발함과 착함이 모두 어려워진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6] 말레이 해전을 미국에서도 매우 안타깝게 여긴 이유는 만일 해당 해전이 없었다면 윈스턴 처칠이 명령해서 킹 조지 5세급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펄스가 미국 태평양함대에 배속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항공모함을 호위할 수준으로 고속기동이 가능한 주력함이 1척도 없는 것이 당시 미국의 상황이었고 엄청나게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만일 영국의 고속 주력함 2척이 합류하면 대량의 대공화기 설치를 포함해서 공짜로 개장을 해주면서까지 미국 태평양함대 소속으로 계속 붙잡아놓고 잘 사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