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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란토 이탈리아어 : Otranto | |||
국가 | 이탈리아 | ||
지역 | 풀리아 | ||
면적 | 77.2km2 | ||
인구 | 5,549명[1] | ||
시장 | 피에르파올로 카리디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UTC+2) | ||
1. 개요
오트란토(Otranto)는 이탈리아 남부 아풀리아 지방에 위치한다 이 도시의 동쪽에 이탈리아 반도와 알바니아 사이에 놓인 오트란토 해협이 있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 이탈리아 본토 도시 중 유일하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겪었다. (1480-81년)2. 역사
오트란토는 8세기 경 그리스 정착민들이 식민화한 마그나 그라이키아 중 하나인 히드루스(Ὑδροῦς)에서 시작하였다. 로마 시대에 이곳은 아드리아 해 동쪽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였기에, 브린디시보다 더 동방으로 향하는 선박의 출발지였다. 왜냐하면 알바니아까지의 거리가 브린디시보다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928년 8월 17일, 이 도시는 사비르 알-파타가 이끄는 파티마 함대에 의해 약탈당했다. 이 때까지 오트란토는 동로마 제국 손에 있었으나 이후 타란토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1480년, 술탄 메흐메드 2세는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에게 명하여 이탈리아를 침공하도록 했다. 게디크의 군대는 1480년 7월 28일 아풀리아 해안에 도착했고, 오트란토는 1480년 8월 11일 2주 만에 함락되었다 .승리한 오스만 제국군은 모든 남성 주민을 학살했다. 22,000명의 주민 중 10,000명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1481년 교황은 십자군을 소집하였고, 이에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1세와 헝가리의 마차시 1세가 호응해서 오트란토를 점령하러 갔다. 그리고 1481년 9월 11일, 오트란토는 십자군에 탈환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535년과 1537년에 도시를 다시 공격하려 했지만, 오트란토는 항상 저항했다.
17세기 후반부터 오트란토는 그 중요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지중해 무역은 중단되었고 끊임없는 해적의 습격으로 주민들은 오트란토를 떠났다. 이로인해 주변 지역의 많은 땅이 버려졌고, 이로 인해 늪지대가 형성되어 말라리아 감염 위험이 점점 높아졌다. 19세기까지 오트란토는 지저분하고 황량했다. 농가 몇 채만 있었고 , 그중 일부는 특정 계절에만 사람이 살았다. 왜냐하면 습지가 너무 많아서 여름철에는 질병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최초의 매립 사업은 1868 년 바리의 토목 기술자들이 계획했다. 그 결과 습지대는 경작 가능한 땅으로 바뀌었고, 농업이 재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오트란토 해협은 연합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봉쇄를 담당하는 거점이었다. 이 봉쇄선을 파괴하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오트란토 해협 해전을 시작하였고 승리하여서 봉쇄선을 풀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오트란토 해협은 1940년 11월 11일과 12일 사이의 밤에 공습과 해군 공습 을 받았는데, 이는 이탈리아 함대가 주둔하고 있던 타란토에 대한 주공격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해 수행되었다. 타란토에서의 공습과 같은 시간이었다. 1990년대 말, 오트란토는 고향을 떠나온 알바니아 난민 들의 주요 상륙 지점이었다.
3. 관광
- 아라곤 성 (Castello Aragonese) : 프리드리히 2세가 세우고 1498년 나폴리의 알폰소 2세가 보강한 성으로 5면으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 둘레를 따라 해자가 있다.
- 오트란토 대성당 (Duomo di Otranto) : 오트란토에 있는 로마 가톨릭 대성당으로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에 헌정되었다.
[1] 2024년 12월 31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