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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colcolor=#fff> 국가 | 라트비아 | |||||
계획구 | 리가 계획구 | |||||
면적 | 304㎢ | |||||
인구 | 609,489명[A] | |||||
기후 | Dfb | |||||
시간대 | UTC+02:00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리가 역사 지구 |
영어 | Historic Centre of Riga | |
러시아어 | Исторический центр Риги | |
프랑스어 | Centre historique de Riga | |
국가·위치 | [[라트비아| ]][[틀:국기| ]][[틀:국기| ]] 리가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7년 | |
등재기준 | (i)[2], (ii)[3] | |
지정번호 | 852 |
[clearfix]
1. 개요
Rīga. 라트비아 수도이자 최대도시로. 라트비아 인구의 1/3이 모여 살며, 발트해안의 저지대에 위치한 항구다.
북유럽답게 한랭하면서 습한 날씨를 보인다,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 Dfb이며 1월 평균기온은 −5.1℃, 7월 평균기온은 +17℃이다.
리가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4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다.
2. 언어별 표기
언어별 명칭 | |
<colbgcolor=#9e3039><colcolor=#fff> 라트비아어 | Rīga (리가, [ˈriːɡa]) |
리보니아어 | Rīgõ (리고) |
리투아니아어/폴란드어 | Ryga (리가) |
에스토니아어 | Riia (리아) |
핀란드어 | Riika (리카) |
독일어/스웨덴어 | Riga (리가) |
러시아어 | Рига (리가) |
벨라루스어 | Рыга (리하) |
이디시어 | ריגאַ (리가) |
3. 역사
1201년 독일인 출신 주교였던 알베르트 폰 북스퇴펜에 의해 건설되었고, 1282년에는 한자동맹에 가입했다. 한자동맹의 중심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리며 발트해 연안에서는 뤼베크와 단치히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상업도시가 되었다.16세기 들어 종교개혁을 실시하여 루터교회로 개종하였다. 하지만 1559년, 루스 차르국의 이반 4세가 파견한 루스 차르국군을 막아내지 못해 점령당했고, 많은 인구가 러시아인에게 학살당했다. 1581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 스테판 바토리는 루스 차르국군을 몰아내고 리가와 리보니아를 점령하였다.
1621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입성하면서 스웨덴의 일부가 되었다. 1629년 스웨덴이 리보니아 전역을 점령하면서 스웨덴령 리보니아의 중심지가 되었고, 수도 스톡홀름의 뒤를 잇는 제2의 도시가 되었다.
1709년에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은 루스 차르국군에 궤멸당했고, 표트르 대제는 이 여세를 몰아 1710년, 에스토니아 공국의 레발, 카렐렌의 비보리, 리보니아의 리가에 공세를 퍼부었다. 리가는 9개월 동안 포위당한 끝에 러시아군에 함락되었고, 대북방전쟁을 종식시킨 뉘스타드 조약으로 루스 차르국에 양도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까지는 러시아 제국의 중요한 교역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1769년과 1815년에 다시 교외 지역이 상당히 확장되어 격자형 모양을 갖게 되었다. 이 동안에 리가에의 건축양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는 고전주의가 강조되어 단층 목조 주택 형식으로 표현되었고, 특히 새로 생긴 교외 지역뿐만 아니라 옛 도시의 이전 건물들도 교체되었다. 18세기 중반, 러시아의 지배로 잠시 경제적 침체기가 이어졌으나 18세기 말에 해외 무역이 호황을 누리면서 상당한 산업이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인구도 증가하여 1857년에 6만여 명이던 인구는 몇 년 후 30만 명을 넘었다. 리가는 러시아 제국에서 다섯 번째(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키예프, 바르샤바 다음으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였으며, 그곳의 공장들은 러시아 제국 총생산의 5.7%를 담당하였다.
이렇게 새로 번창하게 되면서 도시의 구조에 대해서도 새롭게 접근하게 되었다. 1857년에 요새를 더 높이고, 도시 재건을 위한 새로운 계획이 1857년~1863년에 걸쳐 시행되었다. 개발된 신도시에 많은 공공건물, 극장, 학교, 대학, 중앙우체국, 철도역이 들어섰다. 중세의 옛 도시를 현대화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수많은 단지들을 온전하게 재건하고 도로를 확장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갑자기 중단되었다. 폭격으로 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성 페테르스 교회와 같은 매우 중요한 기념물과 중세의 가옥 몇 채가 복구되었다.
1917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독일 제국군이 진주하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라트비아가 독립하면서 1918년 그 수도가 되었다. 1940년 6월 소련이 점령하여 라트비아 SSR의 수도였다가, 이듬해 1941년 6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2만 명이 넘던 리가의 유대인들은 이때 거의 학살되었다. 1944년 10월 소련이 탈환한 이후 발트 독일인들은 모두 추방되었으며, 러시아 SFSR을 비롯한 다른 소련 공화국들에서 온 이주자들 때문에 러시아화가 촉진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파괴되긴 했지만 고건축물들 복원이 잘된 데다가[4] 근처에 해수욕장도 있던지라 소련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이름을 날렸고, 발트 지역 최대의 도시로 중요했다.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고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고대 발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리가"가 "강" 또는 "물"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제안한다. 이는 리가가 다뉴브강과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리가"가 "강의 흐름"을 의미하는 "rīka"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확실한건 강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4. 인구
중세 시절부터 발트해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한 리가는 발트 3국 최대의 도시이다. 하지만 저출산, 해외 이주(특히 러시아인) 등으로 1990년대 이후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소련 붕괴 직전의 인구는 90만이었으나, 2020년인 지금은 63만 정도이다. 라트갈레 지역과 함께 비교적 높은 러시아인 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대다수의 주민들이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를 기본으로 구사할 수 있다.사실 리가는 원래 독일인, 라트비아인, 러시아인들이 모두 살던 도시였으며, 19세기 중반에는 독일어 사용자가 다수를 차지하여(1867년 기준으로 독일어 사용자 42%, 러시아어 사용자 25%, 라트비아어 사용자 23%), 독일어가 시청의 공용어로 사용될 정도였으나, 1891년 러시아 제국에 의한 러시아화가 시행됨에 따라 러시아어로 교체되었다. 또한 시골의 라트비아인이 리가로 이주함에 따라 19세기 후반에는 라트비아어 사용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1897년 리가는 인구 28만으로 제국에서 6위의 인구를 차지하는 대도시였으며, 제국 말기인 1913년에는 인구가 47만 명에 달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라트비아가 독립하면서 혼란 때문에 인구는 1920년에 19만까지 감소하였으나, 이후 라트비아인이 인구의 60%를 넘는 다수가 되었으며 1935년 39만으로 회복하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제2차 세계 대전의 혼란이 지나가고 라트비아가 소련에 병합되면서, 러시아인의 이주로 소련 시절 리가의 인구는 크게 증가하였으나(1945년 23만, 1989년 92만) 러시아 등 타 공화국으로부터의 이주자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2006년까진 라트비아인보다 러시아인이 더 많았다. 라트비아가 다시 독립한 이래 러시아인이 빠져나가면서 인구도 감소하였으며, 2014년에는 라트비아인 42.8%, 러시아인 39.5%의 인구 구성을 보이고 있다.
5. 행정 구역
중구(Centra)와 쿠르제메구(Kurzemes), 북구(Ziemeļu)의 3개 구(rajons)와 젬갈레구(Zemgales), 비제메구(Vidzemes), 라트갈레구(Latgales)의 3개 교외구(priekšpilsēta)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58개 동(apkaime)이 있다. 현재의 6개 구 중 3개 구(중구, 비제메구, 라트갈레구)는 1941년에, 나머지 3개 구는 1969년에 현재의 영역으로 정해졌다.각 구의 이름은 중구와 북구를 제외하면 라트비아의 각 지방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소련 시기에는 레닌그라츠키·레닌스키·프롤레타르스키·옥탸브리스키(스탈린 시기엔 스탈린스키)·모스콥스키였던 구 이름이 1990년 현재와 같이 각각 쿠르제메·젬갈레·비제메·북구·라트갈레로 바뀌었다.
6. 교통
시내 교통은 버스, 전차(트램), 트롤리버스가 담당한다. 2023년 기준 1회권이 1.5유로로 비싼 편은 아니지만 1회권으로는 환승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같은 번호의 버스, 전차, 트롤리버스의 운행 구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대중 교통을 이용할 일이 있으면 어떤 교통 수단인지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1970-1980년대에 인구증가에 따라[5] 리가 지하철을 건설할 계획이 세워졌지만, 지반 문제와 함께 도시철도 건설로 인하여 러시아계 이주자가 더 몰려올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반대가 심했다. 결국 도시철도 계획은 미뤄지다가 소련이 해체되면서 백지화되었다.[6] 이후로 라트비아와 리가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앞으로도 건설될 계획은 없는 듯하다.국제공항으로 리가 국제공항이 있고, 발트 3국 중 최대 항공사인 에어 발틱이 이곳을 허브로 쓰고 있다. 시내까지는 버스로 약 40분 걸린다. 한국에서 리가로 바로 갈 수 있는 직항은 없다. 핀에어, LOT 폴란드 항공, 루프트한자, 터키항공 등의 환승편을 이용하면 올 수 있다.
에스토니아의 탈링크가 스톡홀름까지 운항하는 페리를 운영한다.
7. 교육
라트비아 내 최대 교육기관인 라트비아 대학교와 리가 스트라딘스 대학교가 위치해있다.8. 기타
- 영화감독 김기덕이 상술한 이곳의 리가 스트라딘스 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코로나19로 사망했다.
-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을 끝낸 리가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 체스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는 미하일 탈의 출생지다.
9. 대중매체에서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유일하게 슬라브어만 통하는 도시라 기묘한 대접을 받고 있다.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도시는 세 곳인데, 라구사는 이탈리아어, 카파는 튀르키예어가 동시에 통한다.[7] 또 정작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슬라브어를 안쓰고, 노르웨이어[8]와 정체불명의 북극어를 사용한다.그런데 정작 라트비아어는 슬라브어파가 아니라 발트어파다.
[대항해시대4]
주요 생산 품목으로는 감자, 왁스, 호박 정도가 있다. 상업 투자로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으므로 꼭 상업 투자를 하도록 하자.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정작 촬영은 폴란드에서 이루어졌다.
[A] 2023년 기준[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검은머리 회관 같은 일부 건물은 소련이 독일인들의 잔재라며 건물 잔해들까지 모두 철거한 것을 독립 이후 복원하기도 했다.[5] 당시 소련은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서 지하철을 건설했고 그 이하인 도시에서는 전차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교통망을 확충했다. 1990년에 인구 90만을 넘긴 리가는 손쉽게 100만 인구를 넘길 것으로 보였다.[6] 리가의 도시철도 계획은 라트비아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큰 반발과 민족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소련으로부터 라트비아가 독립하는 먼 계기가 되기도 했다.[7] 실제로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어만 할 줄 알아도 의사소통하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8]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언어를 노르웨이어 하나로 합쳐놨다. 그래서 스웨덴어는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