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체 Koši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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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26,212명(2023년)[1] | ||||||
인구밀도 | 940명/km² | ||||||
홈페이지 | 시청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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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슬로바키아 제2의 도시로, 인구는 2023년 기준 226,212명. 슬로바키아 동부의 중심지이자 공업도시로 유명하다. 과거 헝가리 왕국 시기에는 헝가리 왕국 북동부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유서깊은 도시이다.슬로바키아 내에서는 슬로바키아 제3의 도시 프레쇼우(Prešov)와 제일 가까우며, 국외 방면으로는 헝가리의 미슈콜츠(Miskolc), 우크라이나의 우주호로드(Ужгород)와 가깝다.
2. 언어별 표기
슬로바키아어 | Košice |
헝가리어 | Kassa(커셔) |
독일어 | Kaschau(카샤우) |
튀르키예어 | Kaşa(카샤) |
3. 역사
1230년 'Villa Cassa'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며, 몽골의 침공 이후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벨러 4세가 독일인 상공시민계층을 받아들이며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290년에 도시 헌장을 받았으며, 발칸반도와 아드리아해에서 발트해를 연결하는 국제 무역로로서 전략적 요충지라는 위치 덕분에 번성하였다. 1307년, 헝가리 왕국 최초의 길드 규정이 등록되었다.1389년, 러요시 1세가 미슈콜츠 근처 디오죄르 성에서 코시체 시 문장을 제정했는데, 덕분에 코시체의 문장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 문장으로 알려졌다. 시 문장은 1502년 한번 바뀐 이후 단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14세기 말 지그몬드 국왕과 교황청의 지원을 받아 코시체의 랜드마크인 성 알주베타(엘리사벳) 성당(Dóm svätej Alžbety)[2]이 세워졌다. 마차시 1세의 재위기간 동안 최극성기를 맞았고, 당시 코시체의 인구는 만 명에 달했다.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쉴레이만 1세의 침공으로 모하치 전투에서 러요시 2세가 전사하며 헝가리 왕국이 붕괴되고 서포여이 야노시가 이 도시를 점령했으나 1551년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1세가 점령했다. 1604년, 보치커이 이슈트반(Bocskai István 1557~1607)이 도시를 거점으로 반합스부르크 봉기를 일으켰다. 1606년, 빈 조약이 체결되어 다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령 헝가리로 귀속되었으나 대신 종교적인 관용이 보장되었다. 1619년, 에르데이 공국의 베틀렌 가보르에게 점령당했고, 1621년에 체결된 니콜스부르크 조약으로 에르데이 공국의 영토가 되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 1648년, 다시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반환되었고, 1657년에 레오폴트 1세가 예수회를 지원하여 대항종교개혁을 실시했다. 1682년에는 퇴쾨이 임레(Thököly Imre 1657~1705), 1704~1711년에는 라코치 페렌츠 2세(II. Rákóczi Ferenc 1676~1735)에게 점령당했다.
1711년, 반합스부르크 봉기가 끝나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은 코시체를 우회하는 무역로를 만들었다. 이후 코시체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변방 군사도시로 전락하여 쇠퇴하기 시작했다. 1848~49년에는 헝가리 혁명으로 전쟁터가 되었다. 헝가리 혁명이 진압되자 1850년,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 왕국을 5개 군구[3]로 나누었는데, 코시체 군구[4]는 현재의 슬로바키아 동부와 우크라이나 자카르파탸, 루마니아 마라무레슈, 헝가리 북동부의 일부를 관할했다.
1891년에는 선로가 놓이며 대중 교통 시스템을 갖추었고 1906년,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해서 사망했던 라코치 페렌츠 2세의 유해가 성 알주베타 성당으로 이전되면서 그의 생가[5]도 코시체에 복원되었다.
1920년 체결된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 영토가 되었다. 1938년, 제1차 빈 협정으로 슬로바키아가 남부 영토 상당부분과 카르파티아 루테니아를 헝가리에게 할양하면서 헝가리에 반환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다시 체코슬로바키아로 반환되었다. 1945년 4월 3일 이 곳에서 친소 체코슬로바키아 임시정부인 '코시체 정부'가 수립되어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모체가 되었다.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면서 오늘날은 슬로바키아의 제2의 도시로 남아있다.
4. 인구
대부분 슬로바키아인이나 2.5~3% 정도는 헝가리인이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헝가리인이 다수였고, 트리아농 조약 체결 시점에도 헝가리인이 75%를 차지했다.5. 볼거리
동구권으로 보면 가장 큰 성 알주베타 대성당이 이 도시의 상징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성당은 헝가리인과 독일인만 사용할 수 있었다. 슬로바키아인은 성 알주베타 대성당 옆의 자그마한 성 미할(미카엘) 교회(Kostol svätého Michala)를 사용했는데, 어찌보면 성 알주베타 대성당은 피지배민족으로 차별받던 슬로바키아인의 한이 서린 공간이기도 하다.합스부르크 왕가에 맞서 헝가리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라코치 페렌츠 2세의 생가가 복원되어있으며, 현재는 코시체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이외에도 동슬로바키아의 의상, 예술품 등을 전시하는 동슬로바키아 박물관이나 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국립 극장 등이 유명하다.
6. 출신 유명 인물
- 성 엘리자베트(Heilige Elisabeth von Thüringen 1207~1231)[6]
- 에르데이 공작 보치커이 이슈트반
- 살러시 페렌츠
- 마르티나 힝기스
- 마레크 로다크
- David Dobrik
[1] [2] 헝가리어로는 성 에르제베트 성당(Szent Erzsébet-székesegyház)[3] 현재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쇼프론,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와 코시체, 루마니아의 오라데아.[4] 당시에는 독일어인 카샤우 군구로 불렸다.[5] 원래 그가 태어난 곳은 현재 슬로바키아의 보르샤(Borša)라는 마을이다.[6] 헝가리어로는 아르파드 왕가의 성녀 에르제베트(Árpád-házi Szent Erzsébet). 코시체의 상징인 성 알주베타 성당이 그녀를 위해 봉헌되었다.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언드라시 2세의 딸이었으며 튀링겐 방백 루트비히 4세(Ludwig IV. der Heilige 1200~1227)와 결혼했다. 그녀의 외손자 하인리히(Heinrich I. von Hessen 1244~1307)는 헤센 가문의 시조로 초대 헤센 방백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