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인 '스나이퍼'에 대한 내용은 스나이퍼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사주경계 중인 미 해병대 제1해병사단 7연대 3대대 K중대 저격수 달튼 건더슨 일병. 호비스트가 출판한 스나이퍼 표지로도 쓰인 사진이다. |
'저격'이란 단어는 '화기로 특정 대상을 노려 공격 또는 사살한다'는 뜻으로, 근대 문학에서도 한국(조선) 광복군의 활동 묘사를 보면 권총으로 '저격했다'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시에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통 전쟁터에서 총 맞고 죽는 건 그냥 오다 맞아라, 아니 제발 오지 마라 식으로 뿌리는 총알에 재수없게 맞고 죽는 거라, 제대로 노려서 쏘는 저격이 오히려 특수한 경우다.
하지만 현대에 군사적인 의미의 저격수는 매우 긴 사정거리를 바탕으로한 전문 저격소총으로 무장하여 표적을 암살하거나 파괴, 그리고 아군의 화력을 유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을 뜻한다.[1] 저격수는 일반적으로 보병 전투원과 함께 전선에서 전투하지 않으며[2], 임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인 1~3명으로 저격팀을 만들어 적진에서 독자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특성상 현대의 전문 저격수는 주로 특수전 부대 소속 요원이다. 특정한 상대를 반드시 노려서 살해해야 하는 무거운 직무 상, 테러 대응 상황, 폭발물 대응 상황, 범죄 상황 등에 어쩔 수 없이 투입되는 최정예 요원이다. 당연히 극한 직업이며, 저격수 본인들도 인간인지라 자퇴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게임에서야 남자의 로망 취급 받는 역할이지만, 게임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는 똥오줌도 싸서 말릴 정도의 극한 악조건이 요구된다고 한다.
2. 역사
2.1. 어원
한자 | 狙擊手 |
영어 | Sniper, Marksman, Sharpshooter[3] |
스페인어 | Francotirador |
프랑스어 | Tireur d'élite[4] |
독일어 | Scharfschütze |
러시아어 | [ruby(Снайпер, ruby=Snayper)][5] |
에스페란토 | Kaŝpafisto |
상당수 언어에서 저격수를 가리키는 말은 영어 "Sniper"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말의 어원은 스나이프(Snipe)라 불리는 작고 빠르게 나는 데다 움직임이 불규칙하고 색깔마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도요샛과의 새인데, 이런 작은 새를 엽총으로[6] 쏘아 맞힐 수 있는 사수는 명사수로 불렸다. 전쟁 중 이러한 명사수들이 언론에 주목을 받으면서 '스나이프 쏘기'라는 뜻의 스나이핑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다시 여기서 파생되어 스나이퍼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 스나이퍼가 저격수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건 19세기 초부터였다.
이에 대응되는 한국어 단어로는 '저격'과 '저격수'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것도 저격했다고 표현하며, 이때의 저격과 우리가 생각하는 저격의 사전적 의미는 같다. 하지만, 저격수로 가면 의미가 약간 달라지는데 은폐 진지(隱蔽陣地)에서 적을 저격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로 우리가 아는 뜻과 정확하게 동일해진다.
비슷한 용어로 샤프슈터(Sharpshooter)와 막스맨(Marksman)이 있다. 막스맨은 중세 때부터 존재하던 단어로 직접적인 의미는 표적(mark)을 쏘는 사람(man)'이란 뜻이며 명궁을 의미했다. 샤프슈터는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때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로 어원은 독일어로 명사수를 의미하던 Scharfschütze를[7] 영어로 번역차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라이플을 장비하고 장거리에서 저격하는 명사수를 의미하는 단어였다.[8] 이 단어가 영국에도 건너가 나폴레옹 전쟁때 저격병 부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스나이퍼, 막스맨, 샤프슈터 모두 19세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단어로,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전문 저격수와 보병 부대와 함께 행동하며 장거리 사격을 맡는 경우 지정사수(Designated Marksman)가 딱딱 구별 되던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세 단어 모두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명사수를 의미하는 단어로 혼용해서 사용했다.
이 중에 현대 미군에서는 스나이퍼를 전문 저격수를 의미하는 단어로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영향을 받아 스나이퍼가 전문 저격수를 의미하는 식으로 쓰이고 있다. 다른 단어는 미군에서 사격 성적 평가 등급으로 쓰여서 막스맨-샤프슈터-전문가(expert) 순으로 쓰이고 있다.[9] 현대에 지정사수는 저격수와 다른 임무를 맡아 활동하므로 분명히 다른 보직이다. 반면 독일어에서는 Scharfschütze가 지금도 전문 저격수를 의미하듯, 나라에 따라서 반드시 스나이퍼라는 단어만 저격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2. 17세기 이전
화약 무기가 발명되기 이전에도 단순히 사람을 노려 쏜다는 의미에서의 저격은 무수히 많이 행해졌다. 원거리에서 죽이는 것은 비록 실패할 확률이 있기는 해도 상당히 은밀하게 암살하는 방법이기도 했고, 투창, 활, 쇠뇌 등 장거리 투사 무기로 적장이나 군관, 기수, 연락병 등 고가치 표적을 노려 쏘는 일은 전장에서는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숙달된 사수만 가능했으며 그것도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특별히 활 잘 쏘는 사람에게 그때그때 저격 임무를 주는 식이었을지언정 저격수라는 보직이 정식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명궁에 대한 전설 혹은 실화들은 수많은 문화권에서 전해내려오며, 대부분 위대한 영웅으로 취급받았다.사냥감을 잡는 형태의 저격은 화기가 등장한 이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전장에서 순수히 총기를 이용한 저격의 시초는 대략 16세기경부터 찾아볼 수 있다. 초창기 총의 성능은 현대에 비하면 매우 나빴다. 당시에는 강선과 같은 탄도 안정화 장치도 없고, 탄환 자체도 구형이라 공기저항으로 쉽게 탄도가 제멋대로 변해 유효 사거리가 아닌 최대 사거리가 100m를 넘기기 힘들었다. 흑색화약의 낮은 폭발력으로 인하여 다량의 화약을 사용하느라 플라스크 형태의 화약통을 휴대해야 했으며, 그 폭압을 견디기 위해 총 또한 지나치게 크고 무거워 총기 받침대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마당에 은폐사격은 꿈도 꿀 수 없을 지경이었다. 흑색화약의 폭발 잔여물도 골칫거리였는데, 폭발시 발생하는 잔여물들이 금속을 쉽게 산화시켰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진한 화약 연기 탓에 한두 발 발사 이후에는 바로 앞의 적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심지어 이 당시 화약 총들은 대부분 조준기를 탑재하지 않았다. 간간히 원시적인 조준기가 붙어있는 것도 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조준기가 달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대개 17세기 이후다. 따라서 종전의 활이나 쇠뇌 등과 마찬가지로 사수를 집단운용하여 면단위 화력 투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10]
그러나 16~17세기 화약무기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다. 사냥꾼들에게는 한 방에 맹수를 눕힐 수 있는 화약무기가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독일처럼 사냥이 본업인 지역 위주로 사격술이 발달하고, 도처에 사격 클럽이 생겼으며, 다양한 수제 무기들이 길드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기 조선도 임진왜란 이후로 대거 도입한 화승총이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냥꾼들에 의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화승총에 숙련된 사수의 실력은 현대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인데, 16세기 사격 클럽의 기록에 따르면, 133명의 사수가 약 180미터 거리에 있는 1미터 정도의 표적에 24발을 쐈는데, 40명 이상의 사수가 20발 이상을 표적에 맞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명중률로 환산하면 약 83.3%로 언뜻 보면 평이한 수준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사격 기록은 강선이 없는 활강 총신 머스킷으로 세운 기록으로, 총의 끔찍할 정도로 낮은 성능을 고려하면 이는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강선총은 "너무 잘 맞아서 적중률이 100%에 달하는 사수가 넘쳐난다!"라는 이유로 사격 대회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즉 현대처럼 초장거리에서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의미에서의 저격이라면 당연히 무리지만, 어느 정도 위협적인 명사수는 이 당시부터도 충분히 존재했다. 전쟁에서도 숙련도가 높은 포수들을 뽑아서 보낸 나선정벌의 호포꾼들이 그들의 우수한 사격솜씨로 플린트락 머스킷으로 무장한 러시아군을 관광보낸 적이 있다. 조선의 사냥꾼들은 그 실력이 대단해서 19세기에도 변변찮은 조준장치도 없는 16세기 조총으로 호랑이를 잘만 잡고 다녔고, 분당 2발도 쏘기 힘든 물건으로 분당 4~5발을 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광경을 지켜본 외국인들이 놀라워 하곤 했다.
단순히 레저로서의 사격이 아니라 실전에서의 저격 사례도 엄연히 존재한다.
- 이베리아 반도 전쟁 당시 영국군 제95 소총연대의 토마스 플렁켓(Thomas Plunket)은 지금으로서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 500~700여m 떨어진 거리에서 오귀스트 마리 프랑수아 콜베르 샤바네 장군을 저격하고는 다시 그를 도우러 온 부관까지 사살하였다.
- 제2차 진주성 전투 중 조선군 지휘관 황진이 시체에 숨은 조총수에게 왼쪽 이마를 저격당해 즉사했다.
또한, 통념과 달리 17세기 초중엽부터도 이미 원시적인 강선총(라이플)을 수렵용으로 정식 생산하고 있었다. 각국은 전쟁 시 사냥꾼과 같은 명사수에게 강선총을 지급하여 산병전이나 정찰 등의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스위스, 독일, 스웨덴 등에는 이러한 라이플로 무장한 소수의 정예 부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2.3. 18세기 ~ 19세기
"They couldn't hit an elephant at this distance!" (BANG)
"이 정도 거리라면 코끼리를 갖다놔도 못 맞힐 거다!" (탕)
- 존 세지윅(John Sedgwick)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 육군 6군단장.
1864년 5월 9일, 스팟실베이니아 전투에서 북군 육군 보병들이 900야드[11] 밖에 있는 샤프슈터 때문에 벌벌 떨고 있자, 세지윅 장군이 사기를 살리기 위해 몸을 훤히 드러내면서 했던 말. 그런데 당시 남군 육군 저격수는 초월적인 정확성을 자랑하는 휘트워스 소총에[12] 망원조준경까지 사용하고 있었기에, 코끼리도 못 맞히기는커녕 세지웍 장군의 왼눈 아래를 맞춰 즉사시켰다.
본격적으로 저격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대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말엽부터이다. 이때의 저격수들은 대부분 숙련된 사냥꾼으로서 주로 정찰과 기습을 수행하는 병력이었다. 독일 지역의 사냥꾼들이 특히 유명했는데, 이들은 후에 독일식 저격기술 발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독일어로 Scharfschütze라는 표현이 저격수들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 것은 이 즈음이었으며, 나중에 여기서 유래한 샤프슈터라는 영어가 미국에서 쓰였다가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13] 그들은 매우 뛰어난 사격 기술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괴롭히고는 했으며, 게릴라전에 능했다. 하노버 지역의 사냥꾼들은 하노버가 프랑스에 멸망하자 영국에 고용되어 국왕의 독일군단(Kings German Legion) 소속으로서 많은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또한, 미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정착해야 했던 미국인들은 사냥을 위하여 사격술을 다듬었고, 이는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 전쟁에서 많은 명사수들이 복잡한 지형과 깊은 숲, 그리고 라이플을 이용하여 활동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니얼 모건의 부대소속 저격수 티모시 머피는 새러토가 전투에서 영국군 장군인 사이먼 프레이저와 프랜시스 클라크 준남작을 저격하여 영국군에게 큰 타격을 줬다."이 정도 거리라면 코끼리를 갖다놔도 못 맞힐 거다!" (탕)
- 존 세지윅(John Sedgwick)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 육군 6군단장.
1864년 5월 9일, 스팟실베이니아 전투에서 북군 육군 보병들이 900야드[11] 밖에 있는 샤프슈터 때문에 벌벌 떨고 있자, 세지윅 장군이 사기를 살리기 위해 몸을 훤히 드러내면서 했던 말. 그런데 당시 남군 육군 저격수는 초월적인 정확성을 자랑하는 휘트워스 소총에[12] 망원조준경까지 사용하고 있었기에, 코끼리도 못 맞히기는커녕 세지웍 장군의 왼눈 아래를 맞춰 즉사시켰다.
이들의 활약에 호되게 당했던 영국군은 고성능 라이플 개발에 착수하여 베이커 라이플을 소총부대의 제식화기로 도입하였고, 캐나다로 탈출한 왕당파 미국인 등을 중심으로 '라이플 연대'를 편성, 경보병 겸 저격수로 사용하여 나폴레옹 전쟁 반도 전역에서 잘 써먹었다. 유명한 TV 드라마인 샤프 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라이플 부대 중 하나인 제95라이플 연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프랑스도 경보병연대의 활용 가능성을 내다보고 도약병(Voltigeur)과 추격보병(Chasseurs) 같은 여러 경보병 연대를 창설하였다. 이들은 교리상 산병 임무 중 선견대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전열보병 역할도 겸해야 했기에 대부분 활강식 머스킷을 사용했으나, 사격술은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전장식 라이플의 문제는 장전속도였다. 강선에 꼭 맞게 탄약을 밀어넣어야 했기에 장전속도가 오래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곧 미니에탄이 발명되면서 장전속도 문제가 사라지자, 대부분의 보병들이 이전 시대에 비하면 저격수 못지 않은 사격술을 연마할 수 있게 되었다. 원거리에서 적 보병의 전열을 노리던 전술은 이제 먹히지 않게 되었고, 저격수는 은폐하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들어졌다. 이 때 많은 저격수들이 일반적인 경보병으로서 척후 임무 위주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후장식 소총이 등장하면서 저격수는 엎드려서 은폐한 채로 적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냥꾼들이 신무기를 이용하여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사냥감을 노리게 된 것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바로 그 무대로, 당시 남군과 북군 모두 후장식 강선총으로 무장한 샤프슈터 부대를 다수 운용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 시기에는 전장식 라이플도 여전히 사용되었지만[14], 후장식 라이플의 운용 편의성은 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장식 소총이 다 죽은 것도 아니었다. 기존의 전장식 소총들은 더 큰 총열을 사용하여 명중률을 한계까지 끌어올렸고, 곧이어 등장한 원시적 형태의 망원 조준경을 이용하여 보병들의 사거리가 닿지 않는 위치에서 정확한 사격을 가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장교들이 어디서 총알이 날아온 지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위의 세지윅 장군이다. 더는 보병들이 500m 거리에서도 안심할 수 없게 되었고, 저격수는 전장의 공포로 떠올랐다. 특히 남군에는 사냥꾼 출신이 많아 저격수가 대단히 많이 활약했는데, 그 결과 북군의 우세한 물자 보급에도 불구하고 남군과 북군의 교환비는 1:3이었다. 양측의 제식 소총 성능이 엇비슷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전적이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이러한 저격수 전술은 비신사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받아 잊혀지고 말았다.
전장에서 저격수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만 끝나면 저격수의 양성은커녕 저격수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매우 흔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 와 같이 저격 자체가 비신사적인 전술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전쟁을 예로 들자면 영국군이 너무 강했기에 민병대는 영국군의 장교를 노리는 저격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해 영국군은 '비신사적인 전술'이라며 미군을 격렬하게 비난했다.[15] 당시 유럽의 전투 양상은 부사관이 통제하는 일렬 횡대의 평민 병사들이 사격을 주고받으며 쓰러지는 동안 귀족 출신의 사관들은 뒤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한쪽이 전투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귀족 출신의 장교는 가급적 포로로 하고 일부러 죽이지는 않는 것이 서로 당연시되었다. 즉 전투란 어디까지나 평민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세력을 겨루는 것이지, 파란 피를 가진 귀족 지휘관들을 죽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16]
다른 예를 들자면, 귀족의 자제에게는 시험 문제를 틀린다거나, 숙제를 안 했다는 등 교육을 받다가 잘못을 범할 경우 매를 대신 맞아주는 평민 아이가 있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지휘관끼리 정정당당하게 지휘력으로 승부를 내지 않고 평민이 귀족 남성을 의미하는 신사를 저격하도록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신사적 행위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걸 듣고 무조건 귀족들이 무책임했다고 성급히 판단할 필요는 없다. 18세기에 영국의 경우는 귀족들의 수는 적었고 신사들이 대부분이었다.[17] 귀족이나 신사도 장교로서 엄연히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자리에 따라서는 오히려 병사들보다 모범으로 보여야 하기에 선봉으로 앞장서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18세기, 19세기 유럽 전쟁에서는 죽어나간 초급 장교들은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았으며, 장군들조차 여럿 전사하였다.[18]
전열보병 전투가 완전히 사장된 20세기 이후의 현대전에서도 소대장은 소대원들이 지휘사항을 알아먹을 수 있게끔 앞에서 바디 랭귀지까지 섞어가며 “나를 따르라!”를 외쳐야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전쟁 나면 딱 죽기 좋은 위치로 취급된다.[19] 19세기 이전 전투의 특이점이라면, 당시 전투는 장교의 지휘하에 일제사격 및 진형 변환, 착검 돌격 등을 수행했기에 어쩔 수 없이 초급 장교가 전장 한복판에서 병사들처럼 몸을 그대로 노출시킨 상태로 부대를 직접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20]
대체로 이러한 초급장교들은 힘없는 귀족 가문의 출신이고 나이도 어렸기에 고급 장교들이 하기 싫은 똥을 치우는 입장이었다. "파란 피"로 언급되는 귀족 지휘관들은 대개 고급 장교로서 지휘부에서 망원경으로 전황을 관측하고 명령을 하달했다.[21] 물론 20세기처럼 원거리 통신 기술이 딱히 있는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파란 피들의 지휘부도 전선과 가까운 편이었다. 그래서 이들도 눈 먼 총알이나 포탄에 맞아죽고, 저격수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적군 입장에선 초급 장교 저격에 성공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후방에나 있을 요인인 고급 장교 저격에 성공한다면 대박 중의 대박이다.
이런 생각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서서히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남아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은 물론, 6.25 전쟁 같은 경우에도 전쟁시에만 저격수 양성과 저격 소총의 발전이 이루어지다가, 전쟁이 끝나면 저격수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영국과 미국 육군에서 흔하게 발생하게 된다.[22]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병들에게 적군 장교 사살 금지 같은 명령이 내려진 것도 아니었고, 장교 또한 사병들 사이에서 전열을 이끄는 이상 굳이 노리고 쏜 게 아닌 총탄이 장교를 맞추거나, 백병전의 정신없는 와중 장교건 뭐건 군복 색 다른 것들이 보이면 보이는 족족 찌르고 베다 보니 장교를 썰어버리거나 아예 자국 귀족 장교에 대한 분노를 풀 겸 같은 귀족인 적 장교를 대놓고 노리고 공격하는 일도 많아, 사병의 손에 죽은 장교들은 정말 많았다. 혼전을 틈타 일부러 평소 증오하던 아군 장교를 슬적 죽여 버리는 경우도 꽤 됐으니, 적 장교는 말할 것도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군의 경우, 19세기에도 산악지대의 사냥꾼 출신 병사들을 중심으로 저격수들을 잘 활용하였다. 그들의 저격술은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배척받을 일이 적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독일어의 예거(Jäger)라는 단어는 사냥꾼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정예 병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계속 쓰였다. 공수부대를 지칭하는 팔시름예거(Fallschirmjäger)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독일군은 양차대전 당시 저격수의 도입 시기도 빠른 편이고, 전쟁 기간 전반에 걸쳐서 저격수를 많이 활용한 편이었다. 심지어 소련의 저격술 또한 상당수 독소 불가침기에 군사 교류의 일환으로 독일에서 배워간 것들이다.
2.4. 20세기
파일:external/25.media.tumblr.com/tumblr_lnbvsjE7uy1qz9tkeo1_500.jpg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저격수.[23]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발달된 자국의 광학 기술과 예거 운영의 노하우를 통해 본격적으로 저격수를 투입,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독일의 저격수들은 매우 뛰어났는데, 그들은 사격술뿐만 아니라 은폐에도 능하여 여러 가짜 진지를 만드는 수법으로 연합국 저격수들을 농락하고는 했다. 초기 연합국의 저격수는 이름뿐인 저격수로서 일반 보병과 동일한 수준이었고, 손쉽게 이들의 먹이가 되었다. 결국 독일의 저격수들에게 대항하고자 연합국도 체계적인 저격수를 양성하게 되었고, 전쟁 중에 많은 저격 기술들을 발전시켰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의 수렵 몰이꾼들을 활용하여 저격수를 양성하였고, 또한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출신의 총에 익숙한 사냥꾼들이 대거 입대하면서 저격수의 자원도 늘어났고, 저격수 훈련법도 개선되었다.[24]
1차 세계대전 당시 저격수는 병사들의 만성적인 수면 부족의 원인이던 경계 근무와 각종 노역, 위험한 정찰 활동과 일제 돌격에서 면제되는 등의 혜택을 보통 받았다. 하지만 이를 부러워하는 병사들은 거의 없었는데, 저격수는 보통 동틀 무렵 참호 위로 올라가 하루종일 무인지대를 기어다니며 임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란 비난 등으로 인해 연합국은 다시 전문적인 저격수 훈련 기관을 포기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또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군대에서 배우는 게 전부 사람 죽이는 기술인데 유독 저격만 사람 죽이는 기술로 비난하는 건 현대의 관점에서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21세기 현재 드론 병기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생각해보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전투는 가시거리 내에서 벌어지는게 보편적이었는데, 저격은 그 범위를 넘어서 일방적인 살상이 가능한 기술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의 저격수 ‘백색 사신’ 시모 해위해.
위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저격수, 아래쪽은 소련군 저격수.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인 '진흙 속의 호랑이'에서 그는 일부 소련군 저격수가 방탄복을 입는다고 언급했다.
소련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전간기에는 독일과 소련이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식 저격 기술이 군사 교류로 소련으로 흘러들어가 기본적인 저격전의 체계가 잡힌다. 그 후 겨울전쟁에서 핀란드군의 저격수에 의해 소련군이 호되게 당하며 저격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에 소련군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대규모 저격수 부대를 편성해 운영하게 되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라 불리는 시가전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소련의 저격수들은 나치 독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25] 상당수가 소련식 영웅 만들기에 의해 전과가 부풀려지기도 했지만[26], 그들의 활약은 독일군을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영국군도 1차대전 때의 저격수 양성 코스를 부활시켜 아프리카 전선이나 서유럽 전선에서 적군 주요 표적 사살, 독일 저격수의 대항마, 특수부대 등으로 널리 투입했다.
그러나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교훈을 잊은 터라 전문적인 저격수가 존재하지 않았고, 지정사수 체제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미 해병대는 태평양 전쟁의 정글에서 숙련된 일본의 저격수[27]들에 대항하기 위해 저격수 양성을 시작했고, 특유의 정찰저격병 교리를 정립했고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계속 유지했다. 이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28] 활약했고, 그러한 역사는 21세기까지도 이어오고 있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무스타파라는 반군 저격수를 해치운게 미 해병대 소속 정찰저격수였다.
한편 미 육군은 다른 선택을 했다.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물량과 M1 개런드, M1918 브라우닝이라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공세적인 위치에 있었기에, 전문 저격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이는 베트남전쟁까지 이어졌다. 공세적인 위치에서 압도적인 공군력과 포병, 완전 편성된 기계화보병 부대의 확충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미 육군의 수뇌부들 역시 저격수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던 건 아니고, 소총중대 평균의 개인 화력과 사격술 향상,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편성된 지정사수를 통해 전문 저격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 겪으며 화력은 좋지만 기동력 한계를 느낀 미 육군은 전문 저격수를 양성했고[29], 휴전이 체결된 이후인 1955년에 저격수 학교를 세웠으나, 1년만에 문을 닫았다. 결국 베트남 전쟁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정글에서의 게릴라전에서 수 많은 장병들이 베트콩 저격수들에 의해 죽어갔고, 전쟁 중에 부랴부랴 저격수 양성 과정을 세워 수요를 충족했다. 미 육군이 본격적으로 저격수 학교를 세운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3. 양성
3.1. 대한민국 국군
한동안 대한민국은 국군 특수부대와 경찰특공대를 중심으로 저격수를 둘 뿐, 보편적인 부대에서 저격수 양성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보병 분대에 기관총과 기관총 사수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평범한 부대에 저격에 필요한 광학 장비와 저격총을 지급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저격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제2연평해전에서 해군 고속정 인원들이 북한군 저격수에 의해 저격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했다. 북한군은 분대마다 저격수가 편제되어 있어 분대 화력에서 국군을 위협했다. 한편, 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이 대구를 방문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대구 방위를 책임진 육군 제50보병사단과 대구국제공항으로 대통령이 올 경우 공항과 기지를 폐쇄해야 하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은 시급하게 대통령 경호를 보조할 저격수를 찾았으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저런 사건과 해프닝이 터지며 북한군보다도 못한 처지여선 안됨을 깨달은 각 군은 뒤늦게 특수부대 외의 부대에도 저격수 양성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사들 중에서 특등사수들을 뽑아 저격자세와 지식 등 저격에 입문시키는 수준에 그쳤으나 장비가 보급되고 점점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육군 특전사와 해군 특수전전단이 저격수들을 갖추고 있고, 이 외에도 육해공군 부대의 군사경찰특임대, 육군 전방 보병사단 보병대대 저격반[30], 해병대[31] 등에서 지정사수가 아닌 저격수를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계급은 육군을 기준으로 중사 이상이 되어야지 저격수가 될 수 있다.
2011년 시사매거진 2580에 등장한 특전사 707 특임대 소속 저격수들. 707 특임대 대원들의 신상 정보가 2급 기밀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원 문제로 복면을 썼고, 이름도 복자[32] 처리를 했다.
국방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수방사 소속 저격수를 다룬 영상이다. 저격반장 둘이 나온다.##
3.2. 해외
현대에 저격으로 상당히 강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국가는 역시 특수작전을 떠나 군사력 또한 최강인 미군, 전통적인 특수작전/저격 강군인 캐나다군, 특수작전의 장로격인 영국군, 캐나다와 비슷하게 유서깊은 소수정예군인 호주군이다. 즉 5개의 눈에 속하는 국가들이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현대에도 해외에 꾸준한 군사전개를 통한 실전 경험을 쌓아왔고, 이로 인해 군 내에서 특수작전 분야의 입지가 매우 크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훌륭한 특수작전 분야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보병 병과 자체의 전문성이 타국군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매우 탄탄하다는 것이다.[33] 대표적으로 위 5개의 눈 국가들 중에서도 전문성이 가히 탑급인 캐나다군이나 특히 호주군의 경우 타국에서 특수부대는 가야 배울만한 선박CQB와 해상침투, 인질구출, 저격, 직접정밀타격 등을 정규부대 보병들이 전문적으로 이수한다.
미, 영, 호, 캐나다는 혈맹으로 이들은 사실상 미군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들과 활동을 함께 하는데, 그 덕분에 어마어마한 수의 실전 경험과 그에 따른 고급 인력, 체계적인 전술 이론과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최신화할 수가 있었다. 당장 전세계 장거리 저격 TOP 10만 보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전부 캐나다, 호주, 미국, 영국군 소속이다.
제대로 된 저격수가 양성되는 동안 지원자의 약 3분의 1 이상이 탈락하며, 제대로 된 저격수가 되기 위해서는 위장술, 은밀이동, 관측, 독도법, 통신, 정보 수집, 정밀사격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 탈락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사격실력 때문이 아니라 은신에 필요한 인내력과 체력, 순간적인 판단력[34]이다. 각 부대에서 최고의 사격실력을 가진 인재들만 모집하다 보니 사격실력은 기본 소양이지만 수십 시간 동안 구르고 또 수십 시간 동안 엎드려 있다가 체력이 방전되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는 많지 않다.
여기에 적진에 들어가 활동하는 임무도 있어서 생존술까지 익히기 때문에 관련 훈련을 받은 저격수는 공작원으로 투입할 수도 있으며, 애당초 현대에 그 정도의 전문성을 갖춘 저격수들은 저격수이기 이전에 특수부대 요원이다. 때문에 순수 저격수가 공작원으로 차출되는 레파토리는 꽤 옛날 얘기고, 현대에는 그 반대로 원래부터 선발된 특수요원이 저격 훈련을 이수해 전문성을 갖추면 해당 임무에 투입되는 형식이다. 물론 현대에도 야전부대 소속 저격수들은 많으니 저격수면 무조건 특수부대 요원인 것은 아니다. 저격수는 특기의 특성상, 주로 요인 암살 임무를 맡기 좋다.
미 해병대의 전설적인 저격수, 카를로스 헤스콕은 저격수의 자질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중함'과 '겁'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즉, 용감함을 과시하려 하거나 성급하고 무모한 스타일의 군인은 저격수에 적합하지 않고, 차라리 소심하고 겁이 많아 보일 정도로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 훨씬 저격수 자격에 부합한다는 뜻이다.
미군의 경우 2001년 제니퍼 도날드슨이라는 여성이 최초로 미군 저격수 학교를 졸업했다. #[35]
하지만 사격 능력이나 잠복 능력은 그렇다쳐도, 앞서 말했듯 저격수는 저격 위치까지 도달하고 거기서 장시간 저격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체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적진 침투가 중요시되고 장거리행군에 필요한 지구력이 필수적인 군대 저격수로서는 남성이 더 선호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감적수 역할을 할 남성 병사와 함께 장기간 활동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등 여러모로 곤란한 면이 많은 데다가, 포로로 잡혔을 시 처우 문제 등이 남아 있으므로 2차대전 당시 소련처럼 국가가 위태로운 경우이거나 게릴라 등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경우 외에는 정말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 대체로 여성 저격수는 잘 기용되지 않는다. 다만 미국과 같은 선진 서방권에서도 군부에서의 금녀영역들이 풀어지고 있으며, 그렇다고 신체능력 평가를 낮춘다는 게 아니라 여성이라도 기존 남성이 행하던 수준의 신체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 러시아도 여성 전투 인력은 2차 대전 이후로는 매우 희귀해졌다. 독소전쟁 당시 무려 309명을 사살한 여성 저격수인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같은 경우도 있고 대테러부대 등 몇몇 특수부대에서도 여성 저격수를 두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구력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시가전이나 대테러전 임무 같은 예외적인 상황일 뿐이다.
디스커버리에서 방영한 미해병대 정찰저격수를 양성하는 스나이퍼 스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좀 더 디테일한 훈련 방식이 소개된다. 가령 위장에 관한 훈련 부분에서는 정말로 왜 저격병을 찾을 수 없는지 친절히 소개되고 훈련관들도 실전에서 뛴 베테랑들인 만큼 족집게처럼 찾아낸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연간 각 부대에서 특등 사수로 선발된 200명의 저격수 후보들이 지원해서 4~6명 정도가 선출된다고 한다. 문제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커트라인이 매우 높은 절대평가로 선출하기 때문에 어떤 기수는 2명밖에 되지 않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저격수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적을 기다리는 인내심,[36] 동물적인 감각, 탄도학에 대한 지식, 적 전술 교리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적들이 코 앞에 있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해야 하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군사학적이거나 기초체력적인 부분은 노력으로 커버가 된다고 해도, 나머지는 정말 순전히 재능의 영역이다.[37]
거기다가 훈련도 매우 빡세다. 아니, 훈련이라기보다는 고문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단 5m를 한 시간 동안 동일한 속도로 이동하는 것 등을 훈련이라고 시킨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거의 인간이길 포기한 수준이다. 심지어 저게 그냥 괴롭히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실전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때문에 저격수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이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탄생하는 최중요 인력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엘리트 특수부대나 저격수는 단순히 지옥주 극기훈련 좀 시킨다고 탄생할 수 있는 싸구려 인력들이 아니다.
4. 저격수에 대응하는 방법
저격수라는 개념이 잡혔던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대전까지 저격수를 잡기 위해서 온갖 교리와 방법을 다 시도해봤지만, 결국 자리잡은 것은 저격수가 매복한 것으로 보이는 추정 장소에 대전차로켓, 박격포, 야포, 전차, 근접항공지원, 융단폭격, 소이탄, 항공 폭탄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동원해서 아예 초토화시켜 그 일대에 개미새끼 한 마리 살려두지 않는 방법이 꾸준히 쓰여왔다.대표적인 사례로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 저격수에 골머리를 앓던 소련군이 대대적인 포병사격이라는 대응책을 마련하였고, 실제로 이것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다. 공포의 상징이었던 시모 해위해도 결국에 포병사격 때문에 크게 다치고 무력화되었다.[38]
또 다른 사례로 제101공수사단이 아프간에서 실제로 겪었던 사건을 다룬 '더 호네츠 네스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참고하자.# 예하 부대 중 일부가 넓은 계곡을 지나가던 도중 강 반대편의 산에서 저격을 받았는데,[39] 이 저격수를 맞이한 미군은 환영 인사로 M-ATV의 M2 중기관총 및 RWS로 초동 대응을 했고, 이를 위해 육군의 화력 자산인 유탄, 박격포와 야포, 심지어 헬기나 항공기의 화력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화력으로 그 지형을 거의 뒤집어 엎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저격수가 사살되었는지 시체를 확인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저격수가 산 중턱쯤에 있으면 그 주변까지 화력으로 싹 뒤집어 엎어버리고, 건물에 있으면 건물을 반쯤 무너뜨리는 식으로 저격수의 공격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단, 저격수가 매복하고 있는 지역에 민간인이나 아군이 위치해 있을 경우엔 화력으로 묻어버리는 방식을 쓸 수 없다. 특히 현대전에선 도시의 수와 면적이 증가하고 인구밀도도 늘어났으며, 불리한 측이 복잡한 도시에서 공격측에게 소모를 강요하는 시가전으로 끌고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민간인과 아군, 적군이 뒤섞여 난전을 벌이기 쉬운 도심에서 이런 초토화 전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헬파이어나 레이저 유도 폭탄 등의 고정밀 병기 외에는 사용이 크게 제한된다. 또한 초토화 전술이 가능한 지역이라 해도 모든 군대가 모든 상황에서 일대를 뒤덮어버리는 수준의 화력 지원을 요청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화력으로 저격수를 묻어버린다 한들 이미 심장에 구멍이 뚫린 아군을 살려낼 수는 없다는 점 때문에 현대에도 저격수의 전술적 가치는 아주 높다.
영화 고지전에서도 저격수의 위치가 파악되자 포병을 호출해 포격을 퍼붓는다. 오직 한 명의 적을 위해 포병까지 호출해 막대한 화력을 때려부을 정도로 저격수의 처리는 크나큰 문제다.
상대에게 발각된 저격수는 후퇴하고 싶어도 화력도 빈약해서 추격을 저지하기도 어렵고 이동수단이라고는 두 다리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40] 시간이 지나 본격적인 보병의 정찰 자산까지 동원되면 그야말로 죽은 목숨. 그럼에도 살아남은 저격수들의 일화가 존재하긴 하지만 수일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하수구를 기어서 도망치거나 목숨을 걸고 절벽을 타거나 하며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등 정말 처절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화력 투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차선책으로 아군 지정 사수나 아군 저격수를 동원하여 인력으로 적 저격수를 탐색하고 사살하는 것인데, 위험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적 저격수 한 명 때문에 대규모 보병 부대가 꼼짝도 못 하고 발이 묶여버리는 상황은 현대전에서 매우 골치 아픈 상황 중 하나. 적 저격수를 무력화했다고 해도 전선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적 저격수를 찾아 포로로 잡거나 시체를 직접 확인하는 것도 위험하고 어려워서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 적 저격수 잡으려고 아군 저격수 불렀는데 아군 저격수가 저격 당하지만 않아도 다행일 정도로 말 그대로 엄청나게 골치 아픈 적. 일반적으로 저격수간의 대치 상황에선 미리 상대방의 역저격수가 투입될 거까지 고려하고 위치와 진입, 탈출 경로를 미리 세팅해둔 선저격수쪽이 더 유리한 편이다. 따라서 저격수를 잡겠다고 아군 저격수를 불러오는 건 아예 화력으로 저격수가 있는 일대를 묻어버리는 것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더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저격수가 있을 법한 위치를 온갖 화력을 동원해서 갈아엎는 건 이라크 반군, 아프간 탈레반 따위 약소국의 비정규군을 상대로 싸우는 미군 같이 애초에 전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않으면 항상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미군도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문제만 생기면 첨단 무기를 동원한 화력(=돈))으로 갈아 엎는 방식으로 싸우다 베트남전 때는 아예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때는 미증유의 세계적 경제 위기란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고, 미국 vs 중동 테러리스트/반군 같은 일방적인 형세가 아니면 애초에 사용하기도 힘들다.[41] 비슷한 체급, 국력의 두 교전 상대 사이에서 지엽적인 전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거리 중화기를 몰빵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다른 전선에서 공백이 생긴다. 냉정하게 전술적 가치만 따지고 보자면, 단 한 명의 저격수를 잡기 위해 폭격이 동원된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크게 보면 이득이나 다름 없다. 이렇기 때문에 바로 미군 장본인들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일방적인 화력으로 공간 전체를 제압하는 것 다음으로 적 저격수에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인 역저격을 저격수 훈련 과정에서 크게 강조한다.
이라크에서 주바라는 저격수가 악명을 떨치자 미국은 저격수 사냥하려고 대규모 카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미군의 저격수 사냥은 그야말로 치밀했는데 장비 면에서는 일선 부대에 '부메랑'이라고 불리는, 마이크로 총소리를 감지해 거기서 저격수의 거리와 방향을 역산하여 추적한 다음 음성으로 알려주는 험비용 경보장치를 2000대나 보급하였다. 이 부메랑으로 저격수의 위치를 추적하기가 쉬워서 찾아내어 족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특수부대와 공군으로 저항군 저격수의 지휘·보급조직 및 교육시설을 골라내서 타격해 저격수 양성을 저지했다. 또 본토에서 CSI팀을 실어와 1800건의 저격 피해 현장을 분석하여 저격수 용의자 150명의 생체 신원을 추출하여 추적하는 한편 이라크 주민들에게 현상금을 내걸어 협조를 받았다. 미군이 사살한 저격수 3명의 경우 숨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에 C-130으로 현상금을 건 전단지 백만 장을 뿌렸다. 그 결과 현상금을 타내려고 이라크 경찰서에 전단지를 들고 신고하러 온 주민들이 쇄도했다. 주민들의 신고를 바탕으로 저격수 3명은 은신처가 들통 나 미군에게 전부 사살되었다. 또한 직접적인 카운터 스나이핑 작전 역시 2007년에 최고조에 달해 300건의 반군 저격수 공격을 침묵시켰다. 이에 따라 반군 저격수들은 미군에게 걸리는 족족 살해당했다. 저격수를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충원되는 속도가 사살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어 이듬해에는 반군 저격 건수가 2/3로 줄어들었으며, 2009년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42] 많은 사람들은 주바가 실존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간에 전사했으리라 간주한다. #
5. 저격수의 고충
5.1. 아군
내가 처리한 적 저격수 하나마다 아군 목숨 몇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 살아난 놈들 중 이걸 아는 놈은 별로 없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어느 저격수의 회고록
저격수들은 임무 특성상 많아야 두 세 명의 인원으로 단독행동을 하는 일이 많아 배타적이고, 고립주의 또는 개인주의, 금욕주의적인 성격이 많았기에 일반 병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임무 스트레스도 심해서 2차 대전 중의 많은 수의 저격수들이 일반병으로 보직 변경을 신청한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는 같은 아군조차 적 저격수의 공포는 알지만 아군 저격수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폭언을 행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정신적인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현시창. 예로 카를로스 헤스콕이 있다. 저격수는 타겟이 확실히 제거될 때까지 표적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즉, 적의 신체가 꿰뚫리고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을 끝까지 그것도 스코프를 통해 생생히 지켜본다. 정신이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어느 저격수의 회고록
하지만 이렇게 고통받는 부류가 있었는가 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오는 아군들의 비난과 조롱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한 예로 2차대전 때의 한 저격수는 원주민 혼혈이라 동료들에게 적을 죽이고 머리 가죽을 벗겨올 거냐고 조롱당했는데, 진짜로 벗겨왔다.(...)는 일화가 있다.
보통 보병들은 자신들의 살상 행위가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라 믿고 합리화하는데, 누군가가 다른 인간을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쫓듯 추적하고 죽인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누구는 포탄과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시체와 팔다리가 굴러다니는 그 아수라장에서 죽어라고 아등바등 구르는데, 저격수란 작자들은 저 뒤에서 "편하게" 숨어서 "안전하게" 총알이나 날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다. 현대에서도 이 기믹은 여전한데 친숙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2의 야전교범(스타크래프트 2)의 유령 항목을 보면, '해병 등 뒤에 말입니다' 라는 낙서가 있다. 즉, 해병을 고기방패 삼아 뒤에서 편하게 싸운다는 해병들의 애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도 이런 인식을 엿볼수 있는데, 주인공이 꽤 전장에 익숙해진 고참병인데도 적군과 육박전을 벌여 죽인 뒤 공황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적의 시신과 온갖 번민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고 복귀한 주인공이 부대에서 처음 본 게 저격수들인데, 적군을 사냥하듯이 사살 수를 경쟁하며 낄낄대는 저격수들을 방금까지 별별 생각을 하던 주인공과 대비시킨다.
물론 위의 훈련 과정을 읽고 왔으면 저격수들이 절대로 "편하게" 숨어 있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알겠지만,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보살일 것이다.[43] 물론 그 정도로 저격수 임무에 대한 이해가 높고 정신적인 여유가 있다면, 해당 병사는 행보관이나 중대장의 눈에 띄어 차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도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아군 저격수가 있는 참호는 적의 집중 포격 대상[44]이 되기 때문에 주변의 아군까지 큰 피해를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아군 저격수를 미워하게 된다. 1914년 영국의 한 저격수는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아군 병사들의 야유에 직면했고, 이에 빡돌아서 근처에 있는 죽은 소의 배를 대검으로 갈라버렸다. 그 악취는 참호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아군을 끔찍하게 괴롭혔다.
여기에는 1차 대전까지는 아직 신사도나 기사도 운운하는 데다 정면 대결이 진리라는 풍조가 유럽 각국에 잔재해 있었기 때문에 저격수에 대해 '비겁하게 숨어서 사람이나 사냥하는 살인마' 같은 은근한 경멸 의식이 병사들 사이에서 강했던 것도 한몫했다.[45]
그나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저격수로 상대방 저격수를 상대할 수 있으며, 시야가 밝고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살려 정찰 등의 다른 목적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일반 병사들에게도 알려지면서 악평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독소전쟁의 소련, 혹은 1943년 여름 이후 소련에서 패퇴하는 독일군 같은 경우에는 후퇴하면서 저격수에게 후방 보호 및 한 명이라도 적을 더 사살하고 전사하라는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일반 병사들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평가가 올라가기도 했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저격수를 대상으로 한 인식도 '그나마'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저격수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크게 증대되어 이젠 전문적으로 저격수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 물론 경찰 소속 저격수들은 애초에 소속이 경찰이기에 이런 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경찰 소속 저격수들의 수요처는 사실상 SWAT이 유일한데, 이들은 인질 구출과 같이 명백한 테러를 대상으로 움직이므로 오히려 좋게 평가하면 좋게 평가했지,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또한 실전 투입이 잦은 군대의 군 저격수의 경우도 타 병과들에게 저격수 훈련과 임무가 힘든 것이 서서히 알려지는 것과 그들이 버티고 있을수록 아군이 더 많이 살아 나가기 때문에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46]
5.2. 적군
저격수의 표적이 되어 동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대로 쓰러질 때마다,[47] 그걸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본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다. 하다못해 게임만 해 봐도 적 팀에 실력자 저격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아군이 옴싹달싹 못하며 주춤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탈레반 저격수의 사격에 당황하는 미군들.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이는 절대 미군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 정도로 저격수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미군의 막강함은 그 다음 대처에 있는데, 탈레반 저격수에 대응해 미군은 아예 저격수가 있을 법한 위치를 통째로 밀어버리는 폭격으로 이 상황을 극복했다.
저격수 증오는 전장 안의 저격수의 역할과 그 운용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것처럼 적군을 더 많이 사살하기 위해 적을 한 번에 죽이지 않고, 팔이나 다리 등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없으면 전투수행을 못 하는 부분을 노려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가 있겠다. 이러한 전법은 간부/통신병 저격과 함께 적을 무력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저격 전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일단 부상만 유도할뿐이니 살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도 없앨수 있고, 저격당한 동료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구하려 드는 적, 혹은 격분해 달려드는 적을 쉽게 노릴 수 있으며, 적이 바로 연막탄을 뿌리고 후퇴한다든가 해서 다른 적을 못 쏜다고 해도 부상병이 생긴다면 부상병을 안전한 곳으로 호송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전투 가능 인원이 빠져야 하니 그것도 득이다. 보통 거동이 불가능한 병사는 동료 2명 이상이 이동시키니 결론적으로 한 발로 최소 3명 이상의 전투력이 전선에서 빠지는 셈이기 때문이다.[48] 당연하게도 적군 입장에서는 방금 전까지 곁에서 걷고 있던 전우를 "안전하게/비겁하게 멀리서" 불구로 만들어버린 것도 모자라 그 목숨까지 도구로 쓰거나 미끼로 걸면서 도발해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상대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저격수에 대한 증오심이 증폭되는 것 역시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기에 실제 전장에서 이런 전투법을 활용하면 일반 병사 입장에선 사람만도 못한 괴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저격수의 경우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고,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멀리서 적을 관찰하기에 오히려 적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표적을 보면서 "저 자 또한 인간이고 누군가의 친구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총을 부숴버리고 적에게 투항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유달리 다른 무기를 다루는 사람보다 저격수에 대한 증오가 전장에서는 상당히 많다. 분대지원사수나 기관총 사수, 지정사수, 화염방사병 급으로 미운 건 기본이고, 심하면 융단폭격을 퍼붓는 폭격기 조종사나 적국 지도자, 핵무기 발사 권한을 가진 통수권자조차 능가할 수준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도 매우 심한 편인데, 저격수를 포로로 잡으면 그야말로 끔찍한 대우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저격수가 일반 병사들과 다른 훈련을 하고 별도로 행동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격수끼리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그보다는 사냥감처럼 사냥당하는 느낌 + 자신만을 노리고 정조준하는 명백한 적의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전쟁에서 일반적인 싸움은 서로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고, 더 큰 전투에서는 서로가 누굴 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재수 없으면 눈먼 총알에 맞는 것이지만 저격은 저격수가 훨씬 더 안전한 곳에서 자신을 확실히 노리고 쏘는 공격이기 때문에 비겁하다고 여기며,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일반 소총수는 2만 5천 발을 쐈을 때 적을 한 명 사살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저격수는 1.7발로 적 한 명을 사살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직관적으로 말해서 일반 병사는 마구잡이로 쏘면서 누구든지 맞기 싫으면 물러나거나 아무나 죽어라는 식의 견제로 총을 쏘는 것에 반해 저격수는 누군가를 확실히 정해서 죽일 목적으로 쏜다는 것이다.
심지어 소총수들끼리 적이 보임에도 일부러 위협사격만으로 그치거나 오발탄을 마구잡이로 쏴서 적의 후퇴를 강요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고 싶지도, 자신이 죽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격수는 철저히 특정 목표를 정해 적을 단발에 사살한다. 이 점은 적에게 명백한 공포와 악의를 느끼게 한다. 심지어 아군들에게까지도.
풀 메탈 재킷에서는 저격수에 대한 공포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아군이 하나 둘 픽픽 쓰러져가는 공포를 말이다. 심지어 저격에 맞아 빈사가 된 아군을 끌고 오려는 전우애까지 응용해 저격한다. 하지만 그 저격수의 정체는... 일행은 희생 끝에 끝내 저격수를 찾아내 사살하기로 결정한다.[49]
5.2.1. 보복
실제로는 적군에게 잡혀서 비참하게 죽는 저격수의 숫자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위에서 서술했듯 저격수를 확실히 제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그 일대를 싸그리 쑥대밭으로 만드는 방법 뿐이고, 당연히 저격수 역시 잿더미가 되어 보복은 커녕 시체 조각 찾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 불운하게도 포격을 받고 살아남았지만 부상을 당해 후퇴가 불가능한 상황 등에서 자신이 저격수임을 파악당한 채 붙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그 저격수가 편한 죽음을 맞이할 확률은 없다. 만약 저격수가 생포되면 병사들의 공포가 비겁하게 숨어서 공격한다는 이유로 극렬한 분노로 바뀌고, 그로 인해 해당 저격수는 포로가 되지 않고 바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때론 즉결처형을 당하는 것도 관대한 처분인 경우도 있었다.제2차 세계 대전 때 다른 독일 저격수는 탄약이 떨어지자 총을 창 밖으로 던지고 항복했으나, 자신의 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아는 영국군 장교가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쏴 버렸다.[50]
저격수는 군사재판에 보내지 않는다. 최소한 투항이라도 받아줬던 일반 보병과는 달리 전쟁이 치열해지면 저격수만큼은 그 자리에서 사살시킨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연합국도 마찬가지였고 추축국도 다 똑같았다.
머리나 가슴에 총알을 박아 즉결 총살을 하거나 목을 매달아버리는 것은 관대한 처분이요, 온 몸이 부서지도록 개머리판과 몽둥이, 군홧발로 두들겨 패서 죽이는 것부터 총검으로 마구잡이로 난도질해 죽이기, 군의관이나 의무병이 메스나 총검으로 산채로 해부하기, 탱크로 깔아뭉개 으스러뜨려 죽이는 것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죽였다고 한다. 심한 경우엔 손이나 발을 묶은 후 트럭으로 끌고 가거나 포박한 뒤 휘발유를 끼얹고 불태워 죽여버리기도 했다.
특히 소련 같은 여성 저격수를 운용했던 국가의 여성 저격수는 끔찍한 능욕을 당하고 처절하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여성 저격수는 자살용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실제로 사용해서 자신을 포위한 적까지 다 죽일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게다가 당시 독일군은 소련의 여성 저격수들을 여자가 아닌 중성의 마녀들이라고 선전하며 참혹하게 죽일 것을 일선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0대 여성 저격수들이 독일군에게 사로잡히면 마구잡이로 능욕하고 20세기의 전장에서 중세 마녀사냥처럼 저격수를 끔찍하게 죽인 뒤[51] 과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저격수 거리'의 모습. 저격수의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시민들은 맞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달아나고 있다. |
이처럼 저격수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육군의 개X끼' 조지 S. 패튼이나 '석기시대 성애자' 커티스 르메이 같이 불같은 성격을 가진 장군은 물론이고, 온화한 성품으로 유명한 오마 브래들리도 적 저격수를 "보통보다 더욱 거칠게 다루는 것을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반대로 저격수는 적에게 포로로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저격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몰래 스코프를 버리기도 하는 등, 살기 위해서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5.2.2. 일반 보병으로 위장
저격수 입장에서 후퇴가 불가능할 정도로 궁지에 몰릴 경우, 망원조준경을 소총에서 분리하여 멀리 버린 다음 항복해서 마치 자기가 저격수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이나, 근처 아군 전사자의 시체에서 일반 소총을 주워 쓰는 일이 있었다. 당시의 저격수 교리에도 있었던 내용이며, 특히 게베어 43의 경우 망원조준경에 탄창까지 제거하면 당시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던 평범한 소총과 외관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53] 이 방법을 쓰기 쉬웠다. 독일의 Kar98k는 보병용, 저격용 상관 없이 노리쇠가 90도 꺾여있고, 영국의 리-엔필드는 노리쇠가 꺾여있지는 않지만 구조상 스코프가 영향받지 않아 일반용과 저격용이 같다.[54]또한 저격수가 일반 보병인 것처럼 위장하고 다니면 자신이 이 사람이 저격수로 자신의 아군을 저격한 것을 봤을 때에나 이 사람이 저격수인 걸 알 수 있지만, 불행히도 저격수들은 앞에 말했다시피 은엄폐를 잘하고 다녀서 보이지도 않았으려니와, 저 멀리 최소 500m에서 최대 2km의 거리해서 저격을 시도했을 텐데 일반 사람의 시력으로 볼 수 없고 또한 식별은 더더욱 힘들다. 그 거리에 숨어있는 사람을 식별한다면 당신도 저격수거나, 아니면 저격수를 보조하는 위치에 서 있는 감적수(spotter)일 것이다.[55] 고로 일반 보병으로 위장하고 다니면 당신이 이러한 병과에 속한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이 저격수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 추정에 따라 그냥 일반 병사로 판단하고 포로로 잡는다.
정 급하면 소총째로 숨기고 항복해도 된다. 패퇴하는 군인이 병기를 망실하는 일은 흔하기 때문에[56] 이놈이 저격수라 자기 총 숨겼다고 우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단, 이 경우 길리 수트 등 저격수임을 나타내는 피복 및 장비들도 전부 숨겨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어느 독일 저격수는 포위당하자 숨어있던 집 안에 저격 소총을 숨겨두고 항복해 자신이 저격수임을 숨기고 일반 병사로 위장함으로써 겨우 목숨을 건진 일도 있다. 이 저격수는 상당히 운이 좋았던 경우로, 상황에 따라서는 총이고 피복이고 다 버리고 완전히 일반 보병처럼 위장하고서도 "위치나 정황상 여기에 이 새끼가 아니면 저격수가 있을 수가 없다" 며 살해당한 경우도 있다.
5.2.3. 자살
드문 경우지만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도저히 빠져나갈 방도가 없을 경우엔 자살하기도 한다. 상술했듯 저격수인 것을 들킨 채 생포당할 경우 상대가 정말 보살이 아닌 이상 살 확률이 없는 것은 물론, 절대 곱게 죽지도 못하며, 운이 더 없다면 죽임은 죽임대로 당하고 상대에게 중요한 정보도 뜯길 수 있기 때문에 정보 유출을 차단할 겸, 편하게 죽기 위해선 그나마 자살이 합리적이다. 더 나아가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제거하기 위해 적 병사들을 접근하게 놔둔 뒤 수류탄으로 자폭해서 길동무를 늘리는 경우도 있다.6. 운용
기본적으로 저격수는 대규모 화력이 오가는 전면전선에 그리 잘 투입하지 않는다. 저격수의 단독 화력은 당연히 숫적으로 봐도 자동소총과 유탄발사기 등으로 무장한 소총 화력조보다 못하다. 물론 저격수는 보통 특수부대 소속인만큼 그에 붙는 지원 및 유도화력자산은 중대를 충분히 지워버리고도 남지만 말이다. 전선 측면 및 후면으로 돌아가 저격화기 및 드론, 유도 미사일 등을 활용해 적들을 사냥하며 전선에 변화를 주거나, 조용히 고가치 표적을 저격하거나, 적진에 침투해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특히 인질 구출 작전 등 법적 제약이 많고 사망에 민감한 임무에 많이 투입되는 경찰 등의 비군대적 무장기관에서 정찰 및 현장 브리핑 임무가 강조된다고 한다. 그리 전문적인 서적은 아닌 아동용 만화이지만, 과거 노빈손 시리즈 중 경찰특공대와 관련된 '노빈손, 경찰특공대에 가다'를 보면 저격수 관련 사진에 주석에 "저격수의 제1임무는 일단 '무조건 저격!'이 아니라 현장지휘관을 포함, 전체 부대의 눈이 되는 것이라는 요지가 쓰여있기도 했으니 말이다.[57]
그리고 이 특수정찰 임무는 쉬운게 아니라, 모든 병과를 통틀어 군인 개인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 중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작전이다. 물론 전문저격교육을 받은 정찰 저격팀이 아니라 직접 비교가 무리긴 해도 나름 지정사수소총으로 어느 정도의 저격 임무가 가능했던 실 10팀 소속 4인조 정찰대가 그 정찰 임무 도중 침투 방법과 은•엄폐가 완벽하지 못해 최악의 결말을 맞이 했던 것이 바로 그 레드 윙스 작전이다.
현대전에서는 통계상 총탄 대략 1만5천발이 소모돼야 적군 한 명을 겨우 사살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적을 보고 쏘는 조준사격이 아니라 아군을 지원하는 엄호사격이나 제압사격으로 엄청난 양의 탄약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보병 1명을 사살하는 데 3~5만 발 이상이 들어갔다.[58] 다만 따져보면 좀 이상한 통계기는 하다.[59][60] 그런데 저격수는 사용한 총탄만을 놓고 보면 1.7발당 한 명씩 사살했다. 저격수의 저격 임무가 얼마나 신중하고 정확하게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저격조의 편제는 1~3명 규모로, 저격을 수행할 사수와 그를 보조할 감적수(spotter), 저격조를 호위하고 안전한 탈출을 돕는 소총수로 구성된다. 이상적인 상황은 셋 다 편제하는 것이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은닉성이나 보급 소요 등에 문제가 생기므로 감적수까지만 붙여 2인 1조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감적수는 유능한 선임 저격수로서 전장 감시와 목표 지시, 각종 지표의 계산 등을 수행하므로 가능한 편성하며, 대중매체에서 흔히 표현되는 '일인 저격수'는 정말로 특수한 상황이거나, 혹은 상황이 영 좋지 않거나, 규모가 적은 반군 집단 등이 아니라면 현실에선 거의 볼 수 없다.
최근에는 순항미사일이나 무인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전에 비해 직접 저격총으로 소화기 화력을 투사하기 보다는 정찰이나 드론 운용으로 한 저격조가 대규모 화력을 투사해버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정확히는 그냥 동향감시보다도 드론을 활용해 특히 저격총 따위로는 파괴할 수 없는 시설이나 차량을 좌표 따서 미사일이나 드론으로 날려버리는 식으로, 그동안 영화에서나 보던 훨씬 공격적인 운영이 가능한 것. 실제로 드론 운영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바로 특수부대다.
6.1. 군 소속 저격수
군 저격수의 경우 두 가지 케이스로 나뉜다. 일반 야전 보병부대의 저격수와 특수전 부대 소속으로 나뉘는데, 후자가 전자보다 당연 전문성이 훨씬 더 높다. 현대 특수전 체계가 성립되기 전이었던 2차 세계대전 등에서는 수많은 유명 저격수들이 일반 야전군 소속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세계대전 이후 특수전 체계가 확실하게 성립되고 특수전을 담당하는 특수부대 및 별도의 특전사령부가 생긴 현대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문적인 저격수들의 경우 거의 대다수가 후자 소속이다.정확히는 특수부대의 경우, 저격수라는 고정 보직으로 선발해 배치하는게 아니라, 야전부대 저격수 출신이 아닌 이상 기존 특수부대 요원들이 저격 교육을 이수해 저격수 포지션을 수많은 보직순환근무 중 하나로서 수행하며 그 전문성을 확실하게 갖추는 형식이다. 당연히 야전 저격수 출신이라도 특수전 저격수가 되기 위한 전문교육은 타 요원들과 똑같이 함께 이수해야한다. 즉 저격은 베테랑 특수부대 요원 개인이 구사 가능한 수많은 전문특기 중 하나다.
군 소속의 경우 적국에 대한 테러 임무를 수행하거나 중무장한 적지에 억류된 인질들을 구출하는 고난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경찰과는 다르게 무엇보다도 잠입 능력이 필수이며, 임무 수행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국내에서 임무를 수행해 각종 헬기 지원과 통신이 자유로운 경찰 대테러부대와 달리 적지에 고립된 상태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빵빵한 지원 인력들 또한 의존하기 힘들다.
6.1.1. 특수전 부대
특수부대 소속 저격수의 경우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며 단순히 야전에서 적군을 사보타주 하는 것 외에 국내외의 대규모 테러 현장에서의 대테러, 각종 최고난도 극비 임무, 테러집단 선제 공격, 적국을 향한 테러 공작 등에 투입되기 때문에 저격수의 능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부문이다. 또한 주로 방어적인 틀 내에서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 관련과 달리 역으로 테러범들을 선제 공격하거나 오히려 적국에 대한 테러를 가하는 이들이므로 이들 소속의 저격수들은 경찰 소속의 저격수들보다도 훨씬 공격적이고 위험한 일을 수행한다.이러한 이유로 인해 군 특수부대 소속 저격수들은 아주 전방위적인 소양을 겸비해야 한다. 애초에 특수부대 소속 저격수가 여러 소양을 겸비한다기 보다는, 군 특수부대 소속 오퍼레이터들 자체가 저격을 포함해 다양한 특기를 익히고 있다는 것이 맞다. 특수부대 특성상 본인의 주특기 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특기를 고루 익혀 유사시에 아무 문제 없이 스스로 모든 임무를 수행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6.1.2. 주요 표적
매우 한정적이고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면 작전 수행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저격 임무의 특성상, 주로 적은 횟수의 사격으로도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고가치 표적들이 임무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저격 임무는 은밀하고 치밀하게 수행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교전이나 발포는 최대한 지양되지만, 저격수가 임무 수행에 사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격수의 자체 판단이므로 때문에 고가치 표적 외의 인물들이 저격수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적 지휘관 및 장교 등 고급 인사
저격 임무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표적. 적 지휘관을 사살하면 적 지휘계통에 어마어마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발의 총알로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표적이다. 때문에 실제 저격수들은 이런 고위 지휘관들을 구별해내는 노하우를 기본적으로 교육받고 숙지하고 있다.[61] 실질적으로 저격 임무를 실시하는 이유인 표적이며, 이 미만의 표적들은 불가피한 교전 또는 탈출 작전 시 우선도가 높은 표적으로 사실상 지정사수들이 처리해야 될 표적들이지 저격임무까지 필요로 하는 고가치 표적은 아니다. 거칠게 일반화하면 저격 팀을 적지 깊숙한 곳까지 은밀하게 침투시키는 고가치표적 암살 작전은 적 지휘관의 머리통을 날려서 적 지휘체계의 모가지를 날리는 참수작전이다.
- 통신병, 공병, 군사경찰, 어학병, 통역장교 등 특수 임무를 맡은 인원
특수임무를 맡은 이들의 역할은 중요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다른 인원이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을 지연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다. 특히 대형 무전기를 등에 지고 안테나가 길쭉하게 나와 있어서 원거리에서도 식별이 가능한 통신병은 교전시 우선도가 매우 높은 표적이다. 통신병이 무력화되면 한동안 적 전투원들의 통신체계가 마비되기 때문에 교란시킬 수 있다. 또한 통신을 위한 레이더, 안테나 등을 정비하는 공병역시 중요한 표적이 되기도 한다. 군사경찰의 경우 후방 지역에서 치안 보조를 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일선 전투 부대원들보다 경계를 덜 하는 편이라 후방에 침투 혹은 낙오되어 잔류한 저격수의 표적이 되기 쉽다. 교통 정리 중인 적 군사경찰을 저격하고 시체를 감춘 뒤 도로 표지판 방향을 옮겨 적 후속 병력의 이동을 지체시킨 사례도 있다. 어학병이나 통역장교같은 경우에는 언어가 서로 다른 양국간의 유일한 소통을 차단하거나 적군이 아군의 언어를 파악하지 못하게 혼란을 유발할 수도 있고 특히 양국이 교전하는 와중에 제3국이 끼어들 경우에는 이간질까지 일으킬 수도 있다.
- 군견, 군견병
탐색 및 추적 작전으로 군견의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위장해 있는 저격수를 미리 발견할 수도 있고, 저격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하는 저격수의 생존성을 위협한다.
- 중화기 사수
기관총, 대전차 미사일 운용병이나 하다 못해 유탄발사기 사수라도 일반 소총병과 다른 것을 들고 있는 경우에는 일반 전투원보다는 표적 가치가 올라간다. 고위력 화기 운용을 제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 미 해병대에서 일반적인 기관총 형태인 FN 미니미를 소총 외형의 M27 IAR로 교체하려 할 때 든 이유 중 하나도 미니미 사수가 탈레반 저격수의 최우선 목표가 된다는 이유였다.
- 저격수
저격수에는 저격수로 맞대응 가능하다. 상술했듯 적 저격수를 발견하면 보통 아군 포병이나 공군의 화력 지원으로 처리하지 굳이 위험하게 아군 저격수로 맞대응하는 것은 현대전에 있어서는 비효율적이라고 평가되고 그리 추천할만한 방법은 아니나, 적 저격수와 교전중인 지역에 가용 가능한 아군 화력 투사 수단이 없거나 빈약할 때, 혹은 그 자리에 마침 아군 저격팀이나 팀 내에 지정사수가 있어서 즉각 대응할 수 있을 때에는 아군 인원이나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대저격 작전을 수행하기도 한다. 저격수를 반드시 공격 작전에만 운용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진지를 구축하고 지역을 고정방어하는 것이 저격수가 가진 전투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나왔다. 겨울전쟁 때 소련군이 시모 해위해를 잡으려고 할 때도 저격수 부대를 투입했다. 현대전에서도 가끔씩 저격수끼리 대결이 벌어지기 때문에 CheyTac Intervention같은 저격수 잡는 저격총도 등장하고 있다.
- 지정사수
저격수에 대응하고 분대에서의 저격수 역할을 수행하라고 만들어진 포지션이 지정사수다. 일반 보병이야 전우가 저격당해도 저격수에게 직접 반격할 수 없고, 위치가 발각되어도 포격 요청까지가 최선이지만, 지정사수는 옆의 전우가 사살되는 순간 바로 맞대응을 할 테니, 같은 저격수를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저격수와 직접적으로 맞대응을 할 수 있는 병사다. 보병 중에선 가장 위험한 병사이니 저격수 입장에선 최우선 목표인 셈.
- 자신을 발견한 적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사실이다. 애초에 저격수는 숨어서 공격한다. 적 저격수가 있다 한들 날 발견하지 못했다면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아무리 평범한 보병이라도 우연히 조준경을 통해 눈이 마주쳤다면? 적군 저격수나 지정사수에게 위치를 발설하기 전에 망설임 없이 바로 쏴버려야 한다.
적의 중요한 전력인 의무병이나 군의관들은 의외로 저격 작전의 표적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적다. 제네바 협약에 위반되는 사항이며 의무지원부대는 극히 후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저격수를 투입할 만한 상황 자체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저격 작전이 아닌 단순교전 시 위생병은 다른 전투원보다 고가치 표적이기 때문에 일부러 사기 저하를 유도하기 위해 의무병을 노리도록 저격수들에게 지시할 수도 있다.
저격수들의 타게팅에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미 해군 부사관이 미국 이와쿠니 기지에 파견 나가 있다가 저녁 무렵에 동료들과 담배를 피웠는데,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갔던 미 해병대 대원에게 세 번째로 담뱃불을 붙여줬다. 그러자 그 미 해병대원은 정색을 하면서 불을 확 꺼트려버렸다. 서글서글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황했다. 잠시 후에 그 해병대원이 말하기를, 탈레반 저격수들은 첫 번째 담뱃불로 불을 붙인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고, 두 번째 담뱃불로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며, 세 번째 담뱃불로 담배를 문 사람을 저격한다고 했다.
사실 위의 일화는 Three on a match# 라는 도시전설로, 성냥 하나로 세 사람이 불 붙이면 마지막 사람은 총에 맞거나 어떤 식으로도 죽게 된다는 터부에서 파생된 일화다. 이 이야기는 대략 크림전쟁 당시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군인들 사이에서 퍼졌는데, 남겨진 문헌 자료로만 따져봐도 최소한 1894년부터 존재한 소문이다.[62] 물론, 이건 현실적으로도 정말로 하면 안되는 짓인데 어두컴컴한 밤에는 그 정도 불빛도 수백 미터 바깥에서 보인다. 자칫하면 총탄이 아니라 포탄이 날아온다! 오래된 도시전설이고 상황도 다소 억지스러워 실제 벌어진 일이기는 커녕,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보기도 힘들다.[63][64]
럭키 스트라이크 관련 괴담도 이런 위험성과 관련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국 저격수가 탈레반 6명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사격했는데, 운 좋게 탈레반들이 들고 다니던 자폭용 폭탄에 맞아서 폭발이 일어났고, 덕분에 6명을 총알 한 발로 전부 사살했다고 한다.
6.1.3. 한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저격작전, 적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 저격수를 지원해줄 수 있는 가까운 아군 병력, 저격 작전 수행 후 이탈 수단 등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수행되어야 저격수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기본적으로 저격수는 매우 뛰어난 능력과 장비를 가진 전투원이지만, 저격수는 어디까지나 개인 전투원일 뿐 적 수십 명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초인은 아니다. 고작해야 두세 명밖에 안되는 저격팀이 적군과의 전면교전에 노출되면 저격수는 도망치거나 싸우다 죽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저격 작전은 이러한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는 작전이다.
저격수가 있다고 의심되는 지역에 대규모로 화력을 투입하는 것이 현대전의 트렌드가 되어서 저격수의 생존성이 더욱 위협받고 있다. 2010년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전에서 저격수가 부각되었던 이유는 이런 식으로 대규모 화력 투사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도심지 내에서 수많은 건물들과 민간인들이 뒤섞여 있는 곳에 마구 포격을 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저격수들간의 치열한 신경전/심리전/대저격전이 벌어진다.
또한 아군이 적 영토로 공세를 취하는 시기에서는 저격수가 큰 활약을 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저격수도 두발 달린 사람이라 그 이동 속도는 보병의 행군 속도를 크게 넘지 못하는데, 공세 기동 시에는 온갖 차량부터 항공기까지 인간의 기동력을 한참 뛰어넘는 기동 수단이 다수 활용되므로 저격수가 아군 공격 부대를 따라 잡아 전장에 자리를 잡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저격수를 미리 침투시켜도 저격팀과 본대의 통신이 언제나 원활할 수는 없으므로, 자칫 본대가 아군 저격수를 공격하는 오폭 사고를 내기 십상이기도 하다. 또한 대규모 공격 시에는 공군의 화력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기갑부대와 기계화보병이 교전을 벌이며 쾌속 진격하기 때문에 아군 저격수가 일일이 쫒아다니며 저격을 해줄 필요 자체가 없다. 아군 저격수가 노릴 주요 표적인 적 장교나 저격수는 이미 공세 과정에서 아군의 집중적인 화력 투사에 노출되어 전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격수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시기는 아군이 수세에 몰릴 때이다. 아군이 이미 선점하고 있는 지역이기에 매복할만한 포인트도 가장 잘 알 수 있고, 이를 극대화해 아군이 방어하는 지역으로 진격해오는 적 요인을 저격할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그간 특수부대나 미 해병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해병대를 제외하면 저격수 양성에 소홀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군은 오랫동안 북한과의 전면전 상황을 상정하고 전략전술을 만들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군의 선공으로 시작되는 초전을 제외하면, 좁아터진 전장에서 수백~천 단위의 대규모 기계화부대끼리 한 며칠 신나게 치고받다가 평양으로 쭉쭉 밀고 올라가는 게 기본 방침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아군 저격수들이 활약할 여지가 그리 크지 않고, 적 저격수는 근처의 중화기들을 끌어와서 구역을 통째로 갈아엎어버리는 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 병력이 장갑차나 전차 등으로 무장한 기계화 병력이라면 저격수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제한된다. 대물 저격소총으로 무장했다면 잠깐은 위협이 될 수 있겠으나, 곧 저격수를 향해 기갑부대의 엄청난 화력이 투사될 것이 뻔하다. 오히려 기계화 능력을 이용해 저격수를 피해 신속하게 그 지역을 이탈해버리기도 쉽다.[65] 이런 병력을 상대하는 대기갑 전력이 따로 있기 때문에 저격수가 기갑 병력과 맞닥뜨려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일은 정찰이나 노출된 승무원 사살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66]
이러한 특징을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게 동수의 플레이어들이 거점을 차지하거나 특정 킬 수를 달성하기 위해 경쟁하는 1인칭 슈팅 게임인데, 해당 게임에서 저격 소총 사용자들은 저격수처럼 특수 작전에 투입되는 입장이 아닌, 타 보병들과 함께 전면전에 투입된 상황이다. 따라서 소수의 실력 좋은 저격수 유저들이 적들을 보는 족족 죽이거나, 저격수 유저들이 다수이더라도 돌격소총 등을 든 유저들만큼 신들린 근접전 실력을 보여주면 게임이 유리하게 풀리지만, 저격수 유저들이 지나치게 많은데다 그 실력까지 고만고만하다면 전선 자체가 형성되지 못해서 저격소총 사용자가 많은 팀이 대체로 진다. 그래서 이런 류의 게임들에서 할 일 안 하고 저격으로 킬딸만 치려는 유저들을 비하하는 밈이 꼭 생기게 마련이다. FPS 게임에서의 저격수는 대부분 현실의 지정사수 역할이다. 특히 맵이 작고 근거리의 적을 타겟으로 하는 경우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싸다. 군복무중 저격반이 운용하는 장비를 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저격장비 자체의 가격이 대량 보유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 게다가 그걸 다루는 인원을 길러내고 운용하는 비용은 장비 가격보다도 더 나간다. 심지어 한국 육군처럼 징병제의 국가는 관측등의 보조를 맞추는 전문병력이 전역을 하기까지 한다. 이런 와중 현대에 들어 훨씬 싸면서 정확성은 더 높은 드론병기까지 등장하면서 저격수의 가격경쟁력이 내려가고 있다. 과거에 저격수가 값싸면서 작전수행이 높은 가성비 병과였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6.2. 경찰 대테러부대에서의 운용
경찰특공대를 포함한 SWAT 분야의 경찰 대테러 저격수 분야는 대부분 군보다 빈약한 무기로 무장한 소수의 범죄자들을 상대로 한다.
해당 부대의 특성에 자세한 지식을 위해서는 문서 참고.
6.2.1. SWAT 등 경찰 대테러 분야
한국이 처한 상황이 워낙 특수한 상황이라 저격수에 인색한 국군과는 달리, 경찰 SWAT의 경우 주로 국내의 테러를 막고 치안을 유지하는게 주 목적이기 때문에, 한발의 위력이 치명적인 저격수는 SWAT이나 대테러부대에게 정말 중요한 전력이다. 인질의 안전과 더불어 범인의 적시적인 제압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매우 정확한 사격을 중요시하며, 현장지휘관의 샷콜이 떨어지기 전까지 지휘부와 끊임없는 보고체계를 유지한다. 때문에 대테러 지휘관의 눈이자 방아쇠의 역할을 한다. '사격' 명령부터 저격수가 실제로 사격을 하는 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는 수준.암살, 잠입, 사보타주, 전선 유지와 같은 공격적인 저격작전이 주임무인 군 저격수와 비교해볼 때 임무 특성이 많이 다르다보니 여러 가지로 차이점이 있다. 대테러 저격수는 적진에 침투한 후 은폐한 상태에서 저격 작전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체력적인 요건보다 정확한 사격 능력이 요구된다. 인질과 범죄자가 혼재되어 있는 작전 환경상 선별사격 능력도 필수. 때문에 체력이 특히 중요한 군보다는 대테러부대가 여성 저격수의 비율이 많다고 한다.
군대에 비하면 저격거리가 엄청나게 짧은 것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군대에서의 저격수는 특정 임무나 지정사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이상, 되도록이면 기본이 300m, 멀게는 1km 넘는 거리에서 기본적으로 '쏴서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SWAT의 경우 언제나 좁디좁은 도시나 마을에서 작전을 벌이고 또 그게 아니더라도 총기외에 별다른 공격수단이 없는 소수 범죄자들을 상대하기에 심하면 100m 안쪽 거리에서 '저격'하는 일도 빈번하며 인질 변수만 제외하면 목표에 명중시키는 것 자체는 군 저격수보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인질의 안전을 위해서 대테러부대 저격수는 '어디를 맞추는가'를 좀더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100~200m 정도 거리에서 사람크기 표적에 명중시키는 정도는 저격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범죄자의 어느 부위를 정확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맞출 수 있어야만이 대테러부대 저격수로 활약할 수 있다. 대테러부대의 사격에는 인질들의 목숨이 달려있기에 확실한 테러범의 제압을 위해 저격수의 샷콜이 떨어지면 표적을 확실하게 제압 혹은 즉사시킨다. 사격당한 후 범인이 죽지 않으면 그대로 인질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적을 즉사시킬 수 있는 사선이 확보되지 않거나 제압 요소가 보이지 않으면 발포하지 않는게 일반적이다. 때문에 사격시 목표 부위도 단순히 머리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미간과 인중 사이를 노려" 뇌를 확실히 파괴하거나 범죄자의 무기, 손과 팔을 완전히 제압하도록 훈련한다고 한다. 대테러부대의 사격이 이뤄지는 건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 즉 범죄자가 인질을 죽이기 전에 먼저 범죄자를 죽여서 테러를 진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SWAT 저격수들은 완벽한 작전을 위해 소음기나 양각대 등 가용할 수 있는 장비들은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작전 투입도 현장감시 및 작전지원을 위해 사건 발생 직후 1순위로 가장 먼저 배치된다. 그 다음 순위는 협상 전문가. 다른 대원들은 SWAT 밴으로 이동하는 동안 저격조는 헬기로 급파된다.
만약 범인을 죽일 상황이 아니면 범인의 손을 쏴서 무력화시키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 위 동영상처럼 범인이 죽일 수 있는 인질이 없어 단순히 범인만 무력화하면 되는 상황 같은 경우. 참고로 동영상의 남자는 "자살하기 위해서 경찰을 이용"하려 했다. 다른 자살 방법과는 달리 경찰이 자기에게 사격을 하게 만들기 위해 언제 경찰들에게 발포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던 것. 실제로 발포하겠다 위협까지 했으니 더더욱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사격이 허가되자 저격수가 손 안에 들고 있던 권총을 날려버린 탓에 놀라 얼어버린 사이에 제압당했다.
한편 경찰 저격수 중에도 군대로 치면 지정 사수에 가까운 이들도 있다. 실제로 작전 건물에 SWAT 대원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저격 지원을 하는 것.
7. 사용하는 장비
2차 세계대전까지는 각국의 제식 소총들이 전반적으로 저격하기 좋아서[67] 제식 소총에 망원조준경만 다는 경우가 많았지만, 2차대전 이후 자동소총의 세상으로 들어오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볼트액션 소총을 조금 손봐서 사용하거나, 아예 저격 전용 소총들이 따로 개발되기도 하였다. 이는 저격소총 문서에 따로 서술되어있다.보통은 망원조준경을 붙여서 먼 거리의 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선호하나, 목표가 그리 멀지 않고 아예 광원이 없는 무월광 상태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기계식 조준기만 쓰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한다. 저격수계의 전설로 남은 우주괴수 시모 해위해는 아예 "조준경은 크고 무겁고 렌즈가 반사광을 뿜어대서 거추장스럽다"라고 주장했다.[68]
그 외에도 감적수는 망원경이나 쌍안경 등을 가지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저격 전용 PDA와 관측 기구로 목표물과의 거리, 고도차이 같은 거리라 할지라도 중력의 영향으로 높은 쪽을 올려 쏠 때와 낮은 곳에 내려 쏠 때 그리고 같은 고도의 표적을 쏠 때 엘리베이션이 달라진다. 게다가 총기마다, 탄약마다 탄도 특성이 달라지므로 고도 역시 중요한 변수이다. 단거리 사격시에는 고도 차에 의한 엘리베이션 조정이 의미 없을 정도로 작다. 측풍, 습도 등을 자동 계산한다. 목표를 확인하고 지정하는 감적수도 따라붙는다. M200 샤이택이 그 경우다.
물론 잘 보는 것 뿐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위장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며, 그 중 하나로 길리슈트를 입는다. 경찰 저격수도 미국처럼 광활한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경우엔 길리슈트를 쓰며, 대한민국 경찰특공대 저격수도 길리슈트를 쓴다.
작전이 길어지면 식량은 보통 전투식량보다 부피를 덜 차지하는 비상식량 같은 걸로 해결한다. 그 외에 장시간 엎드려 쏴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전용 깔개로도 쓸 수 있는 소총 가방을 쓰기도 한다.
8. 미디어 및 인식
자세한 내용은 저격수/대중매체 문서 참고하십시오.9. 저격수인 실존 인물
- 별명이 아닌 한글 이름 가나다순으로 정렬한다.
이름 | 확인된 사살 수 | 소속/출신 | 참전경력 | 특이사항 |
"코브라"로 알려진 신원 불명 저격수 | 불명 | 베트남 인민군 소속 | 베트남 전쟁 | 카를로스 헤스콕에게 스코프가 관통 당해 전사 |
"데키" 데얀 베리치 | 불명 | 도네츠크 인민 민병대 소속 | 유고슬라비아 전쟁 돈바스 전쟁 | |
로자 샤니나 | 59명 사살 | 소련군 소속 |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 동프로이센 공세 당시 전사 |
롭 펄롱 | - | 캐나다군 소속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 세계 최장거리 저격 4위 (2,430m) |
"죽음의 숙녀"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 309명 사살 | 소련군 소속 |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 여성 저격수 중 세계 최다 저격 기록 보유 |
마테우스 헤체나우어 | 345명 사살 | 독일 국방군 소속 |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 - |
"토끼" 바실리 자이체프 | 225명 사살[69] | 소련군 소속 |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 - |
브라이언 키머 | - | 미군 소속 | 이라크 내전 참전 | 세계 최장거리 저격 6위 (2,300m) |
"하얀 사신" 시모 해위해 | 542명 사살 | 핀란드군 소속 | 겨울전쟁 참전 | 망원조준경 사용 안함 세계 최다 저격 기록 보유 유탄에 안면 부상을 입고 재건수술. 하이퍼링크걸린 이미지 참조. |
"다에쉬 헌터" 아부 타신 알 살리히 (Abu Tahsin al-Salhi) | 비공식 384명 사살, 공식 74명 사살 | 이라크 민병대 | 대 ISIL 군사작전 | 63세의 노령 저격수, 2017년 10월 하위자 전투에서 역저격으로 추정되는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
알리야 몰다굴로바 | 30명 사살 | 소련군 소속 |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 독소전쟁 당시 전사 |
애론 페리 | - | 캐나다군 소속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 세계 최장거리 저격 5위 (2,310m) |
"야리" 야로슬라프 야쿠보프 | 약 100명 사살 | 러시아 해군 보병대 소속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참전 | SVLK-14S "숨라크" 사용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 수여 |
장 타오팡 | 214명 사살 |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 한국 전쟁 참전 | 망원조준경 사용 안함[70] |
조니 김 | - | 미군 소속 | 이라크 전쟁 참전 | |
"하얀 깃털" 카를로스 헤스콕 | 비공식 300~400명, 공식 93명 사살 | 미군 소속 | 베트남 전쟁 참전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으로 2,286m 저격 성공 |
"라마디의 악마" 크리스 카일 | 255명 사살 | 미군 소속 | 이라크 전쟁 참전 | 미군 내 최다 저격 기록 |
신분 기밀의 캐나다 JTF-2 소속 저격수 | - | 캐나다군 소속 | 대 ISIL 군사작전 | 세계 최장거리 저격 2위 (3,540m)[71] |
신분 기밀의 호주 제2코만도연대 소속 저격수 | - | 호주군 소속 | 아프가니스탄 전쟁 | 세계 최장거리 저격 3위 (2,815m)[72]# |
크레이그 해리슨 | - | 영국군 소속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 세계 최장거리 저격 3위 (2,475m)[73] |
"페기" 프랜시스 페가마가보 | 378명 사살 | 캐나다군 소속 |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 1차 세계대전 중 로스 소총으로 최다 저격 기록 보유 |
"죽음의 숙녀" 차콜 | ???명 사살 | 우크라이나군 소속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 - |
"바기라" 이리나 스타리코바 | 40명 이상 사살 | 도네츠크 인민 민병대 소속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 부부로 활동했으며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다.# |
뱌체슬라프 코발스키 | - | 우크라이나 보안국 소속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 세계 최장거리 저격 기록 (3,800m) 보유 [74] |
9.1. 전세계 장거리 저격기록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우크라이나군 저격수 바체슬라프 코발스키 (2023년): 3,800미터(m)
- 이라크 내전 - 캐나다군 저격수 익명의 JTF-2 요원 (2017년): 3,540미터(m)
- 아프가니스탄 전쟁 - 호주군 저격수 익명의 제2코만도연대 요원 (2012년): 2,815미터(m)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우크라이나군 저격수 익명의 우크라이나 육군 저격수 (2022년): 2,710미터(m)
- 아프가니스탄 전쟁 - 영국군 저격수 크레이그 해리슨 (2009년): 2,475미터(m) 영상참조
- 아프가니스탄 전쟁 - 캐나다군 저격수 롭 퍼롱 (2002년): 2,430미터(m)
- 아프가니스탄 전쟁 - 캐나다군 저격수 애론 페리 (2002년): 2,310미터(m)
- 이라크 내전 - 미군 저격수 브라이언 키머 (2004년): 2,300미터(m)
[1] 의외로 이쪽 임무 수행도 많다고 한다. 위치 좌표, 기후조건을 잘 파악하는 저격수의 특성상, 매우 우수한 화력유도 요원으로도 쓸 수 있다.[2] 일반 보병부대 속에서 중장거리 표적과 교전하는 전투원은 저격수(Sniper)가 아니라 지정사수(Designated Marksman)의 역할이다.[3] 이 중에서 일반적으로 우리말 '저격수'에 대응하는 것은 전자이다. 나머지는 잘 훈련된, 솜씨 좋은 사수를 폭넓게 가리키는 말로서 엄밀하게는 저격수만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며, 의미상 현대 기준으로는 차자의 경우 '지정사수', '우등사수', 말자의 경우 '특등사수'라고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다만, 일상생활이나 문학적 수사에서는 종종 전자를 나머지로 바꿔쓰기도 한다.[4] 어감상 저격수라기보단 특등사수에 가까운 느낌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영어를 차용해 Sniper라고 하기도 한다.[5] 영어 Sniper를 차용했다.[6] 당시의 엽총은 머스킷이 주류였다. 이는 강선이 없는 활강식 총이므로 오늘날 분류법으로 보면 사냥용 산탄총이다. 현대에는 저격수가 산탄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7] 요즘 독일에서는 축구에서 골 잘넣는 선수도 이렇게 부른다.[8] 미국 남북 전쟁 시기 유명한 버던의 샤프슈터 연대가 샤프스 소총으로 저격전을 치르면서 샤프슈터라는 단어가 유명세를 타 생긴 용어라는 기술이 있는데, 이미 나폴레옹 전쟁 시기 영국 신문에서 샤프슈터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버던의 샤프슈터 연대(1st, 2nd United States Sharpshooters)는 1861년 9월 2일이 부대창립일이고 이 때는 샤프스 소총을 쓰지도 않았지만 이미 샤프슈터가 정식 부대 명칭이었다. 버던의 샤프슈터 연대에서 샤프스 소총이 채용된건 1862년 5월 8일부터다.[9] 뒤로 갈수록 더 성적이 높다.[10] 물론 이 시절에도 다양한 체급의 화기가 존재하였고, 은닉이 용이한 피스톨 종류도 있었다. 그래서 이때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당시 콜리니 저격 사건처럼 암살에 활용되고는 했다.[11] 약 823m로, 현대 기준으로도 명중이 쉬운 거리는 절대 아닌데 이 기록을 19세기 중반에 세워버렸다.[12] 특유의 총열로 500m 거리에서 3 MOA라는, 웬만한 현대 돌격소총, 전투소총과 맞먹는 수준으로 당시에는 초월적으로 높은 정확성을 기록했다.[13] 18세기 중반 기독교 종파인 메노나이트(재침례파)를 따르던 독일 총포업자들이 종교박해를 피해서 미국에 이주했는데, 이들은 독일에서 만들어온 예거 라이플(Jäger rifles)을 여기서도 만들어 팔았다. 이들에 의해 Scharfschütze라는 독일어가 영어로 번역되어 Sharpshooter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 마틴 메일린(Martin Meylin), 제이콥 디커트(Jacob Dickert) 같은 독일 총포제조업자가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해 총포상을 열어 펜실베이니아 라이플(켄터키 라이플)이 유명해졌다. 원래는 사냥용 소총이었지만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대륙군이 전쟁용으로도 잘 써먹었고 라이플에 된통당한 영국군에서도 샤프슈터라는 단어가 알려져서 영국에서도 쓰이게 되었다.[14] 당시 정밀 저격 소총으로 유명했던 위트워스 라이플도 전장식이었다. 주로 남군이 많이 썼다고 알려져 있다.[15] 물론 그렇다고 당대 영국군이 저격수를 운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통념과는 달리 미국 독립은 식민지인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였고, 식민지인은 독립파와 왕당파로 양분되어 서로 총을 겨누었다. 왕당파 민병대도 독립파와 마찬가지로 산병전술을 구사하였다. 이러한 운용 사례가 없고 영국군도 이에 무심했다면 이후 라이플 연대 등 경보병대가 창설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16] 진짜 피가 파란 건 아니고, 과거 귀족은 햇빛 아래에서 노동을 하지 않아 피부가 햇볕에 그을리지 않아 하얗기에 피부 밑의 푸른 혈관이 비쳐보이는 것에서 유래해, 현재도 귀족 혈통을 'Blue blood'라고 관용적으로 표현한다. 이렇듯 상류층 간에 살상을 자제한 것은 당시만 해도 여전히 국경을 초월하는 상류층 간 교류가 빈번하였던 까닭이다. 서로 문화나 예술적으로도 교류하였고, 어쩌면 혈연으로도 얽힐 수도 있었다. 이러한 관행은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민족주의가 유행하고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전통 사회구조가 해체되고 국민국가 의식이 더 강화되면서 차츰 사라진다.[17] 노르만 왕조의 정복 이래에 중앙화한 국가 권력이 존재했던 잉글랜드 왕국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잉글랜드에는 일찍히 장자 상속제가 정착하여 법적 귀족 신분(작위보유자)은 장자의 가계만이 계승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3대부터는 평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계급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어서, 차자 이하의 후손들은 어느 정도 재산(주로 토지)을 물려받고 법적 귀족에 준하는 계급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신사(gentry)이다. 그래서 재산이 불충분하다면 젠트리나 심지어 귀족이라도 가난한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유한 가문과의 결혼이나 궁정관료로의 임명, 군인으로서의 출세, 사업가로서의 성공 등을 도모하였다.[18] 당장 나폴레옹 전쟁으로만 국한하여도 포탄에 맞아 전사한 장 란이나 장 바티스트 베시에르, 익사한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격전 중에 전사한 토마스 픽튼이나 폰손비, 호레이쇼 넬슨, 샤른호스트 등 의외로 그 수가 적지 않다. 심지어 일국의 군주였던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도 손수 지휘하다가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19] 전장에는 온갖 소음이 있을 수 있으며, 심리학적으로 고도의 스트레스 하에선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먹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전달 사항을 전해줄 이들의 앞에서 똑바로 전해줘야 한다.[20] 물론 실제로는 전장 상황에 따라서 경보병이 아니더라도 개별 자유사격을 하거나, 엄폐물을 활용하거나, 심지어 엎드려 포화를 피하는 등 생각보다 유연성이 발휘되고는 하였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기본적으로는 당대 기술적 한계로 말미암아 통제사격을 기본 사격 교리로 삼았다. 이러한 사격교리의 불가피함에 대해서는 전열보병 문서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21] 매관매직 문서에서 설명하듯, 당시 각국 육군은 모병제의 일부로서 각종 계급과 직위를 돈으로 사고 팔았다. 체계적이고 전국적인 공교육 체계가 성립하고 유지되지 못하였던 시대적 상황에서 그나마 기본 소양을 지닌 고급인력을 효율적으로 조달하는 수단이자 국고와 세금 소모를 줄이는 수단이었으나, 실력과 연공보다 사회경제적 계급의 영향력이 큰 까닭에 대귀족이나 매우 부유한 신사 집안이라면 처음부터 영관급 등 고위 장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22] 이런 현상이 유독 영미권에서 잦았던 다른 이유로는 전통적인 해양국가 혹은 고립주의, 제한된 정부 지향 탓에 군대, 특히 육군력이 걸핏하면 축소되었던 현상도 연관이 있다.[23] 당시엔 쌍안경을 든 장교의 지휘 아래에 저격수가 함께 2인 1조로 활동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24] 1차대전 최고의 저격수는 캐나다 출신의 프랜시스 페가마가보우라는 사람으로, 그의 저격소총인 개조 로스 소총으로 무려 378명의 독일군을 사살했다.[25] 당시 소련 저격수들은 병사계급보다 나름 짬이 높고 경험많은 베테랑 부사관이나 고위 장교들을 노렸고 최소한 초급장교면 무조건 노렸다. 이 덕에 나치 독일은 장교를 수급하기 위해 병사들을 현장 임관시키는 등 고초를 겪었다.[26] 그 이유가 SVT의 형편없는 명중률 때문이기도 하다. SVT는 성능만 놓고 본다면 본격적인 저격전용 소총으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총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대충 100m 거리에서 8인치 탄착군을 형성한다고 한다. 총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8인치가 약 20cm이니 머리를 쏘면 빗나갈 수 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100m에서.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지정사수 소총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27] 참고로 태평양 전쟁에서의 일본군은 저격수를 일회용 포탑처럼 써먹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인 은엄폐인 잘 위장된 개인호에서 저격하는 건 당연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자살행위로 생각하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저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무 위는 시야확보와 숨어 있기는 좋지만 걸리면 도망도 못치고 죽다 보니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만 되도 미친짓으로 생각했는데 일본군은 나무 위에 올라가면서 몸을 끈으로 묶고 죽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적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영화 윈드토커에 6분 6초부터 일본군 저격수가 나온다.[28] 이 때 활약한 정찰저격수 출신 인물이 카를로스 헤스콕이다.[29] 이 당시에 주로 대응했던 방식이 M2HB중기관총을 통해 엄청난 화력을 퍼붓는 것이었다. 효과가 크긴 했지만 기동력이 부족했다는 문제가 있었다.[30] 14년부터 적용된 정식 신편제.[31] 이 쪽은 미 해병대의 영향을 크게 받아, 수색대에 저격수를 두거나 별도 저격반을 편성하는 저격수 양성을 정규전 부대 중에선 육군보다 한참 빨리 시작했다.[32] 伏字, 이름 대신 ‘○’, ‘×’등을 적는 것.[33] 단순히 민간인을 징집해 총만 쥐어주는 것과, 제대로 된 베테랑 보병 전문가는 그 실력과 전문성이 천지 차이다. 흔히 한국군 병사 출신들은 소총수 일빵빵 보직이 삽질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그만큼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물론 미군도 각종 특수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열심히 군생활하는 엘리트 보병부대 인원들과 그 외 그냥 할 거 없어서 들어온 보병들은 수준 차이가 심하고, 그로 인해 전반적으로는 보병병과가 시궁창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긴 한다.[34] 적이 갑자기 지근거리서 나타났거나 정글이나 수풀지대에서 나타나는 독사를 비롯한 호전적인 야생동물 조우시 은신을 포기하고 교전하거나 최대한 거리를 벌려 피하거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과 같은 것을 말한다.[35] 미 공군 예비군 소속의 여성이다.[36] 적을 기다리는 것 뿐만 아니라,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1시간동안 100m를 포복 전진하기도 한다. 이러면 손가락으로 포복한다고.[37] 국군과는 달리 해외에선 특수전이나 저격수 등의 현역 내 엘리트 선발보직은, 정말 극극소수만 몹시 엄격히 골라 매우 높은 커트라인의 절대평가로 까다롭게 선별하기 때문에, 군사나 전투적인 분야에서 정말 타고난 분야의 사람들만 가능하다. 단순히 체력 좋고 전술 좀 안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격이라는 것 자체도 재능을 굉장히 많이 타는 영역이며, 당장 인내심이나 정신력과 같은 매우 기초적이면서도 원시적인 요소 하나만 한정해서 놓고 보더라도 3~4일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자고 한 곳에 엎드려서 목표물만 기다리고 있는 건, 일반적인 사람들은 뽑아서 훈련시켜도 수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38] 지근거리에서 터진 폭탄으로 얼굴의 반쪽이 날아갔으나, 운 좋게 목숨은 건졌으며 훗날 재건시술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기묘하게도 해위해의 의식이 돌아온 날이 겨울전쟁의 종전일이였다.[39] 7.62같은 탄도 아니고 무려 12.7mm의 대물 저격소총이었다.[40] 다만 인간이 두 다리로 주파하기엔 너무 면적이 넓고 평평한 사막, 평원, 초원지대에서 작전할 때는 저격수에게 오토바이나 차량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나 어쩔 수 없는 여건으로 혼자서 활동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안전과 임무 효율을 위하여 1~2명 정도 감적수(spotter) 및 호위 인원을 붙여주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더 여유롭다면 퇴각로를 확보를 위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는 엄호조를 대기시키기도 한다.[41] 미국은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고, 게다가 전역장병과 군인 가족 집단은 강력한 로비 집단이기도 하니깐 동시대 기준으론 차라리 하이테크 고화력 장비에 돈을 떡칠하는 게 인명을 희생시키는 것보단 정치적 비용이 덜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부시-오바마 시절의 저런 테러와의 전쟁에서 거하게 삽을 푼 이후 애초에 미국 정계 자체가 보혁 불문 고립주의적 성향도 심해졌고, 저런 군비 낭비로 인해 생긴 경제 문제로 인한 정치적 비용도 심각해져서 테러와의 전쟁 양측 전역에서 처참한 대가를 치른 이후 앞으론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42] 사실 2009년 이후 이라크 미군 전사자가 급감한 이유 중에는 오바마 정권에서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시켜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 수가 급감한 이유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반대로 2009년 이후 미군 전사자가 급증했다.[43] 부대의 NPC 역할인 취사병이나 PX병이 결코 땡보가 아님에도 땡보라는 오해를 흔히 산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들까지 갈 것도 없이, 군대 자체가 병사들에게 심한 육체적 고통을 주는 곳이다보니 내가 하는 일은 힘들지만 남이 하는 일은 땡보로 보이는 착각을 자주 심어주는 곳이다. 하물며 평시보다 훨씬 힘든 전시라면야...[44] 저격수를 잡는 정석적인 방법은 위에도 적혀 있지만, 저격수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동원 가능한 화력을 다 때려붓는 것이다.[45] 이 당시엔 미군들이 참호전용으로 쏠쏠하게 써먹은 산탄총도 ‘짐승 잡는 총을 사람한테 쓰다니 무례한 양키놈들.’ 이라며 독일군과 같은 편인 대영제국군한테도 질타받았었다. 정작 그런 독일도 민간에서 엽총을 징발해와 썼다는 건 안 비밀[46] 다큐멘터리나 실화 기반 매체에서도 미군 보병들이 작전 도중 머리 위에서 무장한 적군의 시체가 떨어지는 것이 거의 클리셰가 될 정도이다.[47] 보통 총알이 음속보다 빠른데, 그러다보니 저격수에 당한 이들은 일단 아군이 퍽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그 뒤에 총성을 들어서 그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하다. 이를 반영한 영화가 고지전.[48] 참고로 이와 비슷한 이유로 사살을 하지 않도록 설계된 무기가 바로 발목지뢰다.[49] 후술하겠지만 이 저격수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다.[50]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해당 저격수는 매우 편하게 죽은것이다.[51] 소련 여군 저격수의 시신이 진격하던 소련군에 의해 회수되었는데, 시신의 음부에 독일 보병 1명 분의 군장이 쑤셔 박힌 사례도 있었다고 전한다.[52] 평화유지군도 일단은 군대라 필요시 무력이 허용된다.[53] 물론 직접 들고 보면 확실히 달라보이지만, 전시의 혼란 속에서 이런 걸 구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54] 다만 다른 저격 소총의 경우 이 방법이 잘 안 먹혔다. 소련이나 일본의 경우 저격용 모델은 일반 보병용과 달리 노리쇠가 구부러져 있어서 조준경을 떼도 노리쇠를 보고 저격수인지 알 수 있었다. 소련의 모신나강이나 일본의 아리사카는 일반용일 경우 노리쇠가 직선형이라 스코프를 장착할 경우 재장전을 못 한다는 문제가 생기므로 저격용 모델은 노리쇠가 구부러져 있다. 미국의 경우 일반 병사들은 M1 개런드나 M1 카빈과 같은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볼트액션소총을 들고 있었다면 저격수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물론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미 해병대들이 주력소총으로 스프링필드 M1903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건 전쟁 극초기의 얘기인 데다 유럽전선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55] "Spotter"는 종종 화력유도를 하고자 표적을 획득하는 관측병과 인원(observer)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주로 저격병과쪽 용어로 사용되며, 우리말에서는 감적수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observer는 거의 예외없이 공군 항공관측사(air observer)나 포병 관측반(forward observer; artillery observer)을 가리킨다.[56] 오히려 후퇴할 때 부대가 장비와 인력을 최대한 온존한 채 무사히 빠져나갔다면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지휘를 받았음을 반증한다. 성공적인 공세보다 몇 배는 어려운 게 질서정연한 후퇴기 때문인데, 아군이 후퇴할 때, 즉 아군이 적극적으로 반격할 수 없는 절호의 타이밍에 적이 마음 편하게 구경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57] 애초에 저격수 자체가 정찰병, 더 정확하게는 산병에서 파생한 병과다. "원래 엄호 병력이고 회전에서는 보조전력인데, 어차피 미리 정찰하는 김에 중요한 녀석이 보이면 먼저 쏴서 잡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산병들이 적 고위 표적 제거까지 수행하도록 한 것이 저격수의 원시적 형태이다.[58] 출처 : 세계의 군용총기백과, 세계의 군용총기백과2 - 홍희범 저, 호비스트 출판[59] 40명의 1개 보병소대가 휴대하는 소총탄 총량이 개인당 300발로(탄창으로는 무려 10개) 가정할 때 1만 2천발이 된다. 참고로 이라크전 당시 미해병대 제1사단 8연대 1대대 B중대가 저격수의 매복 공격에 돈좌되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항공지원과 포병지원을 받아가며 소총사격도 동시에 가했는데 이때 사격한 총탄이 3만여발이다. 그럼에도 저격수의 제거를 확신할 수 없었다. 즉 총탄만 따져도 3만발이 발포되었는데 적을 사살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송차량행렬에 대한 매복 기습공격 후 이탈하는 전법에 당하는 경우도 잦았는데 이런 경우에도 방향조차 특정하지 못한 상황하에서 일단 아무데나 연사를 가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러면서도 상대(이미 도주한 후)를 사살하지 못하는 경우 등 여러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하면 전혀 말도 안되는 수치라고만 할 수 없다. 분명 총탄은 대량으로 낭비되었는데 사살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60] 애초에 구경을 명시한 것도 아니고, 해당 탄약을 보병'만' 사용한다고 명시된 통계도 아니기에 충분히 가능성 있는 통계라고 볼 수 있다. 분대지원화기나 보병을 지원하는 다양한 병과들이 사용하는 총탄까지 합산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전투가 정상적으로 수행될 경우, 사망률은 정말 섬멸 수준의 패배를 당하는 쪽이 20%를 간신히 넘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통계다.[61] 옷이 다른 군인보다 깨끗하다든가, 지적확인을 자주 한다든가, 경례를 자주 받는다든가, 권총만을 소지하고 있다든가 등. 때문에 계급장은 탈부착 식으로 되어있고, 전시상황에선 경례 대신 상호 목례로 대체하여 저격수에게 식별당할 위험을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베트남 전쟁의 미군 장교들을 보면 계급장이 떼어져 있는 것이 그 예시며, 포레스트 검프에서 미 육군으로 월남전에 참전해 처음 자대배치를 받은 검프와 버바가 댄 중위를 보고 바로 경례하자, 댄이 기겁하며 "나에게 경례하지 말 것." 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62] 전시 성냥 소비 촉진을 위한 광고에서 유래됐다고도 하는데 명확한 근거는 없다. 사실, 전시 체제에서는 물자를 절약하라고 강조하지 적극적으로 소비를 권장하는 경우는 없다.[63] 아프가니스탄 파병 미군들이 저런 기초적인 야간 등화관제를 숙지 하지 않을 일도 없고, 저 이야기에서 뜬금없이 주일미군 기지가 언급 된 것을 보면 2ch과 같은 일본 커뮤니티 웹사이트의 밀덕 채널 등에서 그럴듯하게 지어낸 뻥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애당초 저격수의 위협이 있는 야간에 담배 피려다가 곧바로 욕 먹으면 욕 먹었지, 담배 2개 붙일 때까지는 안전하니까 괜찮고 3개째만 문제 삼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도시전설처럼 저격수가 성냥불을 봤다면 2번째 사람에게 불 붙여줄 시간도 없이 바로 첫 사람에게 총알이 날아올 것이다! 즉, 최초 작성자가 의도적으로 three on a match 설화를 적당히 베꼈을 가능성이 높다.[64] 물론 해당 상식이 잘 알려지지 않던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충분히 일어났을 것이다.[65] 예초에 기계화보병이 탄생한 이유가 전차가 공세의 주력이 되자 이를 엄호하기 위한 보병의 기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차량에 태워 이동하게 된 것이 시작이다.[66] 물론, 저격수와 아군과 통신이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포병과 공군의 화력 지원을 호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긴 하다.[67] 볼트액션, 긴 총열 등등...[68] 스코프를 사용하지 않은 대신 해위해는 다른 저격수들보다 짧은 거리인 200m 이내 거리에 있는 적들을 주로 저격해야 했다. 그 이상으로 떨어져 있으면 정확한 사격이 쉽지 않았다고.[69]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242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로 242명을 사살하는데 총알은 243발만 쐈다고 한다.[70] 18일간의 매복 끝에 모신나강을 적들에게 12발이나 쐈으나 가늠쇠를 제대로 못 봐 한 발도 못 맞혔다. 결국 그는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가늠쇠 보는 법을 터득한 뒤 32일 동안 국군 214명을 사살했다.[71] 보안상의 이유로 저격수의 신원과 장소 비공개. 저격수 동료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참전하면서 아직 복무중으로 보인다.[72] 보안상의 이유로 저격수의 신원과 장소 비공개.[73] 당시 해리슨과 탈레반 기관총좌의 간격은 총알이 날아가는 데만도 6초가 걸려 지구 자전의 영향까지 받는 거리였다. 초탄은 빗나갔으나 조금씩 보정을 하여 결국 6피트 상단, 20인치 좌측을 오조준하여 명중시켰다. 또한 기관총좌를 넘겨받은 부사수에게도 연속으로 명중시켰다.[74] 이 때 사용된 총은 Horizon's Lord라는 저격총이며 12.7×114HL탄을 사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