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2-03 22:43:01

샤를 3세 드 부르봉

<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부르봉 공작
샤를 3세 드 부르봉
Charles III de Bourbon
파일:1000072296.jpg
이름 샤를 3세 드 부르봉
Charles III de Bourbon
출생 1490년 2월 17일
프랑스 왕국 몽팡시에
사망 1527년 5월 6일 (향년 37세)
교황청 로마
배우자 쉬잔 드 부르봉(1505년 결혼/1521년 사망)
자녀 쌍둥이 2명
아버지 질베르 드 몽팡시에
어머니 클라라 드 곤차가
형제 루이 2세
직위 부르봉 공작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2. 생애

몽팡시에에서 질베르와 클라라의 아들로 태어났고 1496년 질베르가 죽고 형인 루이 2세가 영지를 물려받았으나 5년 뒤 사망해 샤를이 물려받게 되었다. 1505년 쉬잔 드 부르봉과 혼인했다.

이탈리아 전쟁에 참가하며 군인으로 인정받았으며 마리냐노 전투에서 공을 세워 밀라노 총독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왕이였던 프랑수아 1세의 견제를 받아 보상을 몰수당했고 귀국했다. 1521년 부인 쉬잔이 사망하고 프랑수아 1세가 살라카법으로 영지 몰수로 인해 분노해 카를 5세와 함께 프랑스 왕국을 분할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발각되어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파비아 전투 당시 카를 5세의 휘하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해 프랑수아 1세를 생포해 복수에 성공했다. 이후 카를 5세는 게오르크 폰 프룬츠베르크가 지휘하는 20,000명의 용병대로 로마로 남하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용병대는 급여나 전리품을 제대로 얻지못해 불만이 쌓였다. 이에 프룬츠베르크가 중재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이로 인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이후 샤를 3세 단독으로 지휘해 로마에 도착하고 공성전이 벌여졌고 교황군의 저격수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이에 용병대는 질서가 무너져 로마를 맹렬히 공격했고 함락한 후 약탈을 일삼았는데 이 사건을 사코 디 로마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