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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어별 명칭 | |
고전 그리스어 | Εὔβοια (Euboea) |
현대 그리스어 | Εύβοια (Evia)[1] |
영어 | Euboea, Evia |
그리스에서 크레타 다음으로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6번째로 큰 섬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 고대사 때부터 비중이 있었기 때문에 에우보이아라는 고전 그리스어 발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 환경
길고 얇은 섬으로, 180여 km 가량 뻗어 있는 길이를 자랑하는 반면 너비가 가장 긴 곳이 50 km밖에 안 된다. 크레타 섬을 동북에서 서남쪽 방향의 대각선으로 뉘어 놓은 느낌이다. 섬의 북쪽은 그리스 본토의 중북부인 테살리아 지방과 마주하고 서쪽은 중부의 보이오티아 지방, 서남쪽은 아티카 지방, 남쪽은 안드로스 등의 군도로 이어진다.그리스 본토와는 에브리포스 해협으로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다. 해협이 가장 좁은 곳은 할키다 지역인데, 폭이 1~20미터 수준으로 아주 좁다. 해당 지점의 모습
섬의 인구는 대략 20만이고 가장 큰 도시는 할키다(칼키다, 구 할키스(칼키스))이다. 본토와는 테베 - 할키다, 아테네 - 할키다 간의 두 개의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에비아는 곳곳에 동로마 제국 시대의 성당과 베네치아 시기의 요새들이 남아 있어 여행자들에게 고즈넉한 멋을 선사한다.
테르모필레 전투와 300(영화)으로 유명한 요충지 테르모필레를 우회하여 그리스 남부와 북부를 잇는 자연 통로 역할도 했다.
3. 역사
3.1. 고대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섬의 서부에 칼키스(할키스)와 에레트리아 등의 도시들이 설립되었다. 이들은 상업적으로 매우 번영하여 아테네와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의 폴리스들이 기원전 10세기에서 7세기까지 에우보이아의 도량형을 썼을 정도였다. 그리고 칼키스 & 에레트리아인들은 이탈리아 남부(마그나 그라키아)에 쿠마이, 레기움 등의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그리스 문자가 처음으로 사용된 곳도 에우보이아로 추정된다. 기원전 775~750년에 서사시 작가 호메로스가 칼키스에 머물렀다고 한다.한편, 에우보이아의 두 폴리스들은 세력이 커지며 서로 앙숙이 되었는데, 이는 기원전 710~650년 렐란티우스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에는 그리스 본토의 도시국가들도 참전, 온 그리스가 둘로 니뉘어 싸웠는데, 칼키스의 연합군이 승리하여 에레트리아는 안드로스, 테노스 등의 섬을 상실하였다. 이후 솔론의 시대를 거치며 성장한 아테네는 기원전 506년에 에우보이아로 진출, 4천명의 아티카인들을 정착시켰다. 이후 에우보이아는 점차 아테네의 영토로 잠식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490년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란 군대는 에레트리아를 철저히 파괴, 시민들을 소아시아로 이주시켰다. 이후 에레트리아는 아테네에 의해 복구되었지만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기원전 446년, 에우보이아인들은 반 아테네 봉기를 일으켰지민 페리클레스에게 진압되었고, 그는 섬의 북쪽에 히스타이아이를 건설, 아테네 인의 기지로 삼았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하자 기원전 410년 에우보이아는 다시 독립을 얻었다. 그리고 기원전 338년의 카이로네이아 전투 후로는 마케도니아 왕국 패권 하의 코린토스 동맹에 소속되었다.
기원전 310년에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칼키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의 땅을 물려받아 칼키스에 집이 있었기 때문. 그리고 디아도코이 시대부터 로마 패권 시기까지 섬은 에우보이아 동맹을 맺어 3세기까지 사실상 독립 상태를 유지하였다.
3.2. 중세
팍스 로마나 하에서 평화를 누리던 466년과 475년에 고트족의 침공을 받았으나, 6~7세기 아바르/슬라브족의 침공은 피하여 평화가 유지되었다. 8세기에 섬은 동로마 제국의 엘라스 테마에 소속되었고 870년대에는 아랍인들의 침공을 받기도 하였다. 초기 중세 시대의 주요 도시는 아이딥소스, 칼키스, 포르스모스, 카리스토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평화는 12세기에 깨지게 된다. 1157년, 노르만인들의 시칠리아 왕국 함대는 에우보이아 해안을 유린하였고 칼키스는 1171년에 베네치아 공화국에 의해 도시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1204년, 4차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어 동로마 중앙 정부가 무너지자, 논공행상을 통해 에우보이아는 롬바르디아 영주들의 소유가 되어 세 영지로 갈라졌다. (이후 6개)하지만 롬바르드인들은 1256~1258년 에우보이아 계승 전쟁을 벌이며
3.3. 근대
이후 칼키스는 그리스 일대 산작의 치소가 위치하였고, 에비아는 에브리포스 해협의 이름을 본떠 에리보즈(Eğriboz) 혹은 아리보즈(Ağriboz)로 불리게 되었다. 다만 서유럽인들은 여전히 네그로폰테로 불렀다. 오스만 제국기에 섬은 별 일 없이 지낸 듯하다. 360년이 지난 1830년에 그리스가 독립하며 섬도 신생 그리스 왕국의 일원이 되었고, 에우보이아(에비아)라는 고대 지명도 회복하였다.[1] 코이네/중세 그리스어 이후의 모음 단순화로 인해 현재 발음은 에비아(Evi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