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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드라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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Η Eλληνική Δραχμή (그리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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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1기4. 2기5. 3기
5.1. 1차5.2. 2차5.3. 3차5.4. 4차5.5. 5차(최종)5.6. 동전
6. 드라크마의 부활?7. 둘러보기

1. 개요

그리스의 옛 통화. 1832년 그리스가 그리스 왕국으로 독립하면서 도입되었으며 ISO 4217 코드는 GRD, 기호는 ₯이며 전신은 그리스 피닉스[1]로 1:1 교환.

2002년 유로로 전환되면서 버려졌다. 처음에 그리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어 무산될 뻔했으나 결국 뒤늦게라도[2] 도입하는 것으로 결정. 유로 교환비율은 1유로 = 340.750드라크마.

보조단위로 렙톤(λεπτόν, lepton)[3]이 있었으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무용지물되었다가 유로화 전환 이후 센트단위의 명칭에 그대로 도입되어 사용중이다.

2012년 3월 1일부로 모든 교환이 종료되었다.

2. 역사

이름의 유래는 고대 폴리스 시절부터 쓰이던 그리스 고유의 화폐단위로 명칭은 한 움큼을 쥔다는 뜻인 드라소마이(δράσσομαι)이라는 동사에서 유래. 고전 그리스어로는 드라크메지만, 현대 그리스어로 읽으면 드라흐미이다.[4] '드라크마'라는 이름은 로마시대 들어서 로마인들이 드라크메의 복수형인 Δραχμαί(드라크마이)를 라틴어 어휘 drachmae로 받아들이고, 라틴어 명사 제1변화에 맞게 Drachma라는 단수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어 성경에서도 교단 불문 라틴어 음역인 [드라크마]로 옮긴다.[5]

파일:Ancient-Greek-Money.jpg
올빼미가 새겨진 고대 그리스의 드라크마 은화

고대 드라크마는 기록상으로 기원전 11세기경부터 쓰여졌으며, 초창기에는 무게로 값을 매기는 형태였다. 대개 순(純) 구리, 청동, 로 만든 괴(塊)였다고 한다. 은전형태로 등장하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의 이야기. 은전에는 주로 동물과 신화 속 인물을 찍어냈다.

드라크마 화폐는 아테네의 드라크마화를 예로 들자면 1드라크마는 약 4.3그램의 으로 주조하며, 대략적으로 1드라크마=6오볼로스(οβολός), 2드라크마=1스타테르(στατήρ), 100드라크마=1므나(μνά), 6,000드라크마=1탈란톤(τάλαντον)에 해당하였다고 한다. 일선 학자들은 일꾼들에게 하루 0.5 ~ 1드라크마를 줬다는 기록을 토대로, 이 1드라크마의 가치를 약 45달러(2011년)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시대나 지역별로 차이가 어느정도 있었으며, 나중에 로마 제국이 이 체계를 수입해가며 디나르, 리라 계통의 단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6]

화폐단위로써의 드라크마는 이미 로마시대에 데나리우스 등에 합쳐져 사라졌지만 은의 중량을 다는 단위로는 계속 이어졌으며 이후 이슬람권의 디르함(Dirham, Dirhem)으로 계승된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단위로 1디르헴은 은 3.207그램으로 고대 드라크마의 무게에 비하면 가벼운 무게이다.

현재 아랍에미리트모로코에서 화폐 단위로 쓰는 디르함이 고대 드라크마에서 유래된 것이다.

3. 1기

1832년부터 1944년까지 쓰인 통화. 시대로 치면 왕국시절과 전기 공화국 ~ 독일 강점기에 해당한다. 1928년까지는 정부에서 직접 만들었고, 그 이후에는 그리스 은행(Τράπεζα της Ελλάδος)이 설립되면서 권한이 이관되었다. 10 ~ 500드라크마의 레귤러 권종과 1, 2, 3, 5드라크마[7]의 소액 권종이 꾸준히 출시되었다.

당시 동전은 20드라크마 금화와 5, 1, 1/2, 1/4드라크마 은화, 그리고 10, 5, 2, 1렙타 구리화 구성. 즉 이쪽이 정화(正貨)였다. 그러다 1868년 프랑스 주도의 라틴 통화 동맹을 맺으면서 프랑스 프랑과 비슷하게 구성하게 바뀌었다. 100, 50[8], 20, 10, 5드라크마 금화와 5, 2, 1드라크마, 50, 20렙타 은화의 더욱 초호화로 무장한 구성. 그 이하는 백동화로 등장.

헌데 1912년부터 세계 대전에 휘말리면서 동전/지폐 양쪽 모두 급격하게 품질이 떨어졌고, 1926년 잠깐 공화국 명의 동전이 주조된 것 말고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지폐의 경우는 1,000 ~ 5,000드라크마 같은 고액권과 50, 20렙타(최대 25,000배!)같은 소액전이 동시에 발행되는 기행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

1935~6년에는 정권이 바뀌면서 뭘 보고 배워온 건지 모르겠지만 지폐의 성향도 크게 바뀌었다. 처음엔 프랑스식 디자인으로 나오다가 39년에 유고슬라비아식 디자인으로 교체. 그리고 막판에는 첨쇄권[9]까지 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인 1941~1944년은 막장의 끝을 달리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지폐의 질마저 타락함과 동시에 "0"이 무한 증식했다(...). 요 4년간 등장한 종류만 약 20~30여종이며, 최고액권은 1944년 10월 7일에 찍은 1천억 드라크마다.

4. 2기

1944년 11월부터 1954년 4월까지 쓰인 통화. 시대로 치면 2차대전 종전과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직후 시절에 해당한다. 1기 드라크마와의 교환비는 1 : 50,000,000,000(...)이다.

동전은 발행되지 않고 지폐만 등장했으며, 극한의 혼란기를 맞이해서 그런지 그리스 은행권과 그리스 정부은행권이 따로 존재했다.[10]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04.jpg ₯5,000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 메솔롱기 전투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06.jpg ₯10,000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자 조각상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07.jpg ₯20,000 아테나 수탉, 메두사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08.jpg ₯50,000 여성 수니온의 포세이돈 신전

5. 3기

1954년 5월 1일부터 2001년까지 쓰인 통화. 시대로 치면 (후기)왕국~공화국 시절에 해당하며, 통화로서의 현대식 드라크마라고 하면 대개 이 3기를 가리킨다. 2기 드라크마와의 교환비는 1:1,000.

개혁 당시에는 1달러=30드라크마의 고정환율제로 가치 하락을 방어하면서 고도 성장을 이루었으나 1967년 정치적 혼란으로 그리스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1971년에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로 완전 불환폐로 강제 변경되면서 인플레가 재발, 유로화 전환 직전에는 약 10~11배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졌다.

5.1. 1차

이전판의 1만, 2만, 5만드라크마권에서 0만 3개 지운 형태.

5.2. 2차

3기 시리즈 중에서 가장 고대 그리스의 분위기가 드러나는 시리즈. 대부분이 고대 그리스의 풍경과 인물들로만 채워져 있어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그리스 지폐라고 알아 볼 수 있을 정도. 그래서 거래시세가 가장 높다.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21.jpg ₯10 게오르그 1세 성 12사도 교회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22.jpg ₯20 데모크리토스 심포지온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23.jpg ₯50 페리클레스 아크로폴리스에서 연설하는 페리클레스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24.jpg ₯100 테미스토클레스 3단노선과 갤리선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25.jpg ₯500 소크라테스의 두상 아레오파고스 언덕의 법정[11]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026.jpg ₯1,000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당시 전투 그림 및 부조 이소스 전투의 알렉산드로스

5.3. 3차

1960년대 중후반부터 등장한 시리즈. 1차에 비해서 현대적인 요소가 다량 가미되었다.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31.jpg ₯50 아레투사[12], 트리에레스 고대식과 현대식 조선소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32.jpg ₯100 데모크리토스, 데모크리토스 핵 연구소[13] 국립 아테네 대학교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33.jpg ₯500 엘레우시스 부조[14] 사슴과 풍요의 과일들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34.jpg ₯1,000 제우스와 에피다우로스 원형극장 이드라 섬과 여자

5.4. 4차

공화정으로 전환하고 난 후인 1978년에 등장한 시리즈.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41.jpg ₯50 포세이돈, 배 만드는 고대인들 라스카리나 부불리나가 스페체스 섬 근방에서 포격 지휘를 하는 모습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42.jpg ₯100 아테나아테네 대학교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 아르카디 교회

5.5. 5차(최종)

1980~90년대에 모습을 드러낸 시리즈.

이때부터 복수형의 표기가 Δραχμαί(드라흐메)에서 Δραχμές(드라흐메스)로 바뀌었는데[15], 이는 1982년 카사레부사 그리스어에서 민중 그리스어(디모티키)를 위주로 표준 그리스어를 개혁했기 때문. 단수형은 카사레부사든 디모티키든 똑같이 Δραχμή(드라흐미).

도중에 신권 시리즈를 계획해서 내놓았을 정도로 유로도입에 희망이 없었으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서 새 액면만 세상빛을 보고 나머지는 그대로 사장당했다. 결론적으론 이들이 통용된 시기도 굉장히 짧은 편인데, 새 액면의 비중이 높아서 잔존수량은 의외로 어느정도 되는 편이다.

()는 유로화 환산가격.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51.jpg ₯200
(€0.59)
리가스 페레오스[16] 니콜라오스 기지스 작 '비밀학교'[17]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52.jpg ₯500
(€1.47)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그의 생가 코르푸의 케르키라 요새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53.jpg ₯1,000
(€2.93)
아폴론, 고대 드라크마 은화 미론의 '원반던지는 남자' 조각[18]과 올림피아 헤라 신전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54.jpg ₯5,000
(€14.67)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 성 아포스티네스 교회 카리테나[19]
파일:attachment/드라크마/drachmai55.jpg ₯10,000
(€29.35)
게오르요스 파파니콜라우, 현미경 아스클레피오스와 그가 치료하는 모습

5.6. 동전

3차에서부터 동전은 처음에 교환되면서 발생한 짜투리를 채워주기 위해 발행되었다. 종류는 1기 시절과 거의 유사한 구성(20드라크마 은화 & 10, 5, 2, 1드라크마, 50, 20, 10, 5렙타).

이후 1973년에 공화국으로 전환되면서 콘스탄티노스 2세 국왕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동전들은 전면 교체되었다. 5렙타 이하의 동전이 모두 삭제되고, 디자인도 바뀌었다.

1980년에 새 고액권인 50드라크마가 등장했고, 이후 1988년에 재질과 디자인에 약간의 변혁이 가해졌으며 1990년에 새 액면인 100드라크마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이후 50렙타와 1, 2드라크마 역시 저가치로 사실상 사장되며 최종적으로는 5, 10, 20, 50, 100드라크마의 5종 구성이 되었다.

파일:₯.jpg

6. 드라크마의 부활?

2015년 6월 그리스 디폴트가 확정되자 유로화를 포기하고 다시 드라크마를 발행해서 돈을 갚자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사실 이 주장은 201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나오던 사안이었다. 긴축정책으로 임금과 연금이 대폭 깎기고, 공공요금을 대폭 올리면서 공공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축소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로를 쓰고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가 불가능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고 실업률은 긴축정책 시행 전보다 2배 이상 올라가면서도 부채비율은 오히려 더 증가했다. 이렇게 수십년간 고통을 당할 바에 차라리 유로를 포기하고 드라크마를 다시 쓰자는 얘기가 그리스 일각에서 꾸준히 나왔다. 실제로 그리스 공산당에서 유로존 탈퇴 주장을 하고 있고, 시리자도 2012년 2차 총선 이전에는 유로존 탈퇴 구호를 내걸었다.

물론 이 경우 일시적으로 GDP의 50%까지 깎이겠지만[20] 재산업화에 성공하고 관광객이 다시 늘면 희망을 가질 수는 있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에 인플레이션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일어날 위험성이 높은 데다가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받은 여러 혜택들도 동시에 사라지기 때문에 그리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었다.

결국 독일이 지원하는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면서 실현되지는 않았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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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φοίνιξ. 현대 그리스어 모음 단순화로 οι가 /i/로 발음된다. 영어로는 Phoenix라고 써서 피닉스가 된다. 쓸데없이 멋지다. 정말로 독립 직후인 1828년 도입된 단위로, 임시통화의 성격을 띤다. 오스만 치하 시절에 쓰이던 쿠루쉬(Kuruş)은화를 6(피닉스):1(쿠루쉬)비율로 대체하였다.[2] 다른 11개국은 1998년부터 결정이 났지만, 그리스는 2001년이 되어서야 도입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결국 가장 먼저 말썽을 일으켰다.[3] 카사레부사 그리스어의 경우 복수형은 렙타(λεπτά, Lepta)이며, 현대 디모티키 그리스어의 경우 단수는 λεπτό(렙토), 복수는 λεπτά(렙타)가 된다. lepton은 물리학의 렙톤과 철자가 같다.[4] 다 같은 δραχμή지만 고전 그리스어로는 drakʰmɛ͜ɛ́로 발음한다. 이집트 그리스어(기원전 1세기 경)로는 drakʰméː, 이후로는 계속 ðɾaxmí로 발음한다.[5] 그런데 재밌게도, 로마 화폐인 데나리우스는 교단 불문하고 한국어 성경에서 헬라스어 [데나리온]으로 표기된다. 로마 화폐인 데나리우스는 헬라스어로, 헬라스 화폐인 드라크메는 라틴어로 표기한 것.[6] 로마제국의 화폐단위인 데나리우스(Denarius)도 평민에게 주는 하루 임금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7] 5드라크마의 경우는 2매 1세트로 만들어 직접 반으로 쪼개서 썼다. 돈, 자신있게 쫙 찢어 쓰세요![8] 이 두가지는 매우 소량만 주조되었다.[9] 정부 및 관계부처의 허가를 받고 기존의 돈에 도장을 찍는 행위. 예를들면, 천원짜리 돈에다가 "10만원"이라는 도장을 찍으면 그 돈은 10만원이 되는 것이다. 돈을 새로 찍어낼 시간과 예산이 없는데 급히 돈이 필요해지면 써먹게 되는 막장행정 중 하나. 주로 초인플레이션 직전에 나타난다.[10] 이는 은행의 통화량 조절이 용이하도록 하는 긴급조치 중 하나이다.[11] 고대 그리스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곳.[12]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님프(샘의 요정). 이 이름을 가진 님프가 여럿 있는데, 도안 주위에 돌고래가 있고, 선박 도안이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포세이돈과 연관이 있는 아레투사로 보인다. 지폐 하단에도 Αρέθουσα라고 쓰여있다.[13] 당연히 현대의 건축물로고대에 핵기술이 있을리가... 굳이 이 명칭을 따온 것이,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론의 기초를 닦아놨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4] 트립톨레모스가 데메테르페르세포네에게 농사법을 전수받는 모습을 새겼다.[15] 동시기에 키프로스 파운드그리스어 복수형 표기 역시 Λίραί(리레)에서 Λίρες(리레스)로 바뀌었다.[16] 옆에 쓰여진 건 그의 시구 Όποιος ελεύθερα συλλογάται, συλλογάται καλά.(자유롭게 사고하는 자가 올바르게 사고한다.)'이다.[17] 암살, 첩보...뭐 이런걸 가르친 학교는 아니고 오스만 제국 지배시절에 지하에서 그리스어와 그리스민족의 역사를 가르친 학교. 당시 오스만은 그리스 정교를 믿는것과 그리스어 사용은 허락했지만 그리스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금지했는데 당시 유럽에 불어닥친 민족주의의 물결에 따라 그리스에서도 독립의 기운이 차차 일었기 때문. 하지만 성당들을 중심으로 밤마다 민족주의자들의 비밀학교가 열려서 그리스인들에게 독립의 기운을 북돋어주었고 덕분에 현대 그리스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18] 정확히는 로마시대 때 복제한 대리석상이다. 원본은 청동상.[19]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의 아르카디아 지방에 위치한 마을로 세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의 거점이었던 요새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콜로코트로니스는 소위 '산적'이라고 불렸던 그리스인 민병대들을 지휘해 튀르키예군과 이집트에서 지원온 증원군을 물리치면서 버텨왔다.[20] 갚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장 갚을 단기외채 상환용 외화만 부족했던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가 1인당 GDP가 1997년 12,132달러에서 1998년 8,085달러로 30% 이상 추락했다. 이걸 명목상으로 회복한 건 아무리 빨리 잡아도 2000년. 물가상승분을 감안하여 1996년의 최대치를 넘어선 건 2004년. 이것도 빠른 축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