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DA3B2> | 인류무형문화유산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 |
<colbgcolor=#1DA3B2><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레베티코 | |
그리스어 | Ρεμπέτικα | ||
영어 | Rebetiko | ||
프랑스어 | Le rebétiko | ||
국가·위치 | [[그리스| ]][[틀:국기| ]][[틀:국기| ]] | ||
지정번호 | 1291 | ||
등재연도 | 2017년 | ||
목록구분 | 대표목록 | }}} |
[clearfix]
1. 개요
20세기 초중반 그리스의 음악사조. 'μπ'를 /mb/가 아닌 /b/로 발음한 레베티카(Rebetika)라고도 한다. 대체로 192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작곡되었으며, 그리스의 민족악기인 부주키(μπουζούκι)로 연주하고 소아시아 감성이 가미된 민중가요 장르로 여겨진다. 영화나 드라마, 게임 BGM으로 유명한 Misirlou도 이 렘베티카 음악중 하나이다.
2. 렘베티카의 역사
2.1. 소아시아 재앙과 쫓겨난 사람들
렘베티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1919~1922년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에서의 그리스의 패전과 이듬해인 1923년 튀르키예와 그리스 사이에 체결된 로잔 조약이다. 조약 결과 그리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시기까지 점령하고 있던 동트라키아와 스미르니를 완전히 포기하고, 그리스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 인구와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그리스인 인구를 서로 교환하기로 합의했다.[1] 아나톨리아에서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리스인의 역사를 완전히 끝장내버린 소아시아 재앙(Μικρασιατική Καταστροφή)라고 불리는 이 비극 속에서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보내진 그리스인의 숫자는 무려 150만 명에 육박했다. 1920년대 당시 그리스인구가 600여만에 불과했을 생각하면, 이는 당시 그리스의 국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인구유입이 아니었다.결국 하루아침에 튀르키예에서 추방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에게 낯선 조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하층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나마 그리스에서 쫓겨난 튀르키예인들은 수도 적었고, 튀르키예 정부에서 그리스인들이 두고간 집이나 재산들을 불하했기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정착할 수 있었지만 튀르키예에서 쫓겨난 그리스인들에 대해 그리스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한다.
이들은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이라는 뜻인 레베테스(Οι ρεμπέτες)라고 불리며 멸시와 천대를 받았고, 이들 가운데에 음악에 조예가 있던 소수의 거리예술가들은 그들에게 익숙했던 튀르키예 음악의 감성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노래들을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음악들이 당시 레베테스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고, 1930년대에 이는 하나의 조류로 발전할 수 있었다.
2.2. 군사정권의 박해
하지만 1930년대에 정권을 장악한 메탁사스 군사정권은 이러한 레베테스들의 움직임에 위기를 느꼈다.[2] 1936년에 집권한 메탁사스 정권은 이러한 예술사조를 퇴폐적이라고 비난했고, 부주키를 소유한 사람조차도 좌익사범, 퇴폐예술가라는 죄목으로 잡아넣었다. 이러한 탄압속에서 렘베티카는 레베테스가 아닌 반체제진영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며, 특히 1967년부터 1974년까지 지속된 그리스 최악의 군사독재정권이었던 파파도풀로스 정권시기에는 민주화를 염원하는 그리스인들에게 해방의 노래로 여겨져 하나의 저항심벌로 여겨지게 되었다.2.3. 오늘날의 렘베티카
이후 1970년대에는 라이카(Λαϊκα)라는 서구음악과 렘베티카의 기법을 혼합한 새로운 사조가 생겨나지만, 렘베티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서 그리스 음악의 대표급으로 자리잡아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술가들이 렘베티카를 부르며, 관광지에서 판매하는 흔한 부주키 음악들도 이러한 렘베티카들을 담고 있다.3. 렘베티카의 특징
렘베티카곡은 튀르키예 음악을 따라 25음을 한 옥타브로 사용하는 마캄(makam)기법과 탁심(taksim), 페슈레브(peşrev)와 같은 튀르키예 음악의 기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를 그리스식으로 재해석했다. 전반적으로 부주키 특유의 맑고 발랄한 음색 덕분에 곡 전체의 분위기는 매우 밝지만 가사는 정말 처절하지 못해 안쓰러운게 그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 예중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Γι’αυτό φουμάρω κοκαϊνη (그래서 나는 코카인을 피우지 [3])
Πού είν’ εκείνα μου τα κάλλη
내 미모에 무슨 일이 생겼지?
Πού είναι η Τόση μ’ εμορφιά;
내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Στην Αθήνα δεν είχε άλλη τέτοια λεβεντιά.
아테네에서는 아무도 밝아보이지 않네.
‘Ημουν κούκλα, ναι, στ’ αλήθεια
그들은 인형이었네, 그래, 진심으로
με μεγάλη αρχοντια.
그 점에서 난 달랐지.
Δε σας λέγω παραμύθια, τρέλλανα ντουνια.
네게 말하진 않았지만, 난 미친듯이 세상을 떠돌았네.
Μα μ’ έμπλεξε ένας μόρτης,
하지만 난 한 놈팽이와 관계를 맺게 되었지.
αχ, ένας μάγκας Πρώτης.
아, 동네 제일가는 양아치였어.
Μου Πήρε ό, τι είχα και μ’ αφήνει.
그는 내가 가진 것을 가져가고 떠나버렸네.
Μου πήρε την καρδιά μου,
나에게서 내 심장을 훔치고,
τα νιάτα, τα λεφτά μου,
내 젊음과 내 푼돈도,
κι απ’ τον καημό φουμάρω κοκαϊνη.
그리고 좌절속에서 나는 코카인을 피우네.
- Αχ, πανάθεμά σε, κοκαϊνη, που μ’ έφαγες τη…!
아, 씨발, 코카인, 넌 날 삼켜버렸어...!
Μ’ αγαπούσαν αφεντάδες,
높으신 분들은 날 사랑했지.
νέοι, γέροι και παιδιά,
젊은이, 노인네, 그리고 애들까지도.
κι όλοι οι πρώτοι κουβαρντάδες μες στην αγορα.
그리고 시장에서 돈을 뿌려대는 한량들도.Αχ, τι όμορφο περνούσα
아, 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가
με τραγούδια και κρασί.
노랫소리와 포도주와 함께
Κάθε μέρα εγλεντούσα, τι ζωή χρυσή!
매일 매일이 축제와 같았지, 황금빛 인생이여!Και τώρα η καημένη
그리고 지금은 빈털터리
γυρίζω μαραμένη,
떠돌아다니다가 시들어버렸네,
γιατί ο σεβντάς του μάγκα δεν μ’ αφήνει.
왜냐면 그 놈팽이를 향한 사랑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지.Με τρέλανε ο μόρτης,
날 미치게 만들었네 할일없는 삶은,
ο κοκαινοπότης,
그 코카인쟁이가,
γι’αυτό κι εγώ φουμάρω κοκαϊνη.
그래서 그 때문에 나는 코카인을 피우네.
이러한 신세한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삶을 담은 렘베티카 노래들은 메탁사스 정권과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정권등 연이은 군사독재시기를 거치면서 차츰 차츰 민주화를 염원하는 민중가요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Σ' αυτή τη γειτονιά (우리 이웃들은) [4]
Σ' αυτή τη γειτονιά
우리 이웃들은
και βράδυ και πρωί
저녁과 아침에
περάσαμε και χάσαμε
허비하고 낭비하네
ολόκληρη ζωή
우리 모든 인생을
Σ' αυτή τη γειτονιά
우리 이웃들은
μας πήραν οι καημοί
우리를 슬프게 만드네
μας πήραν και μας πρόδωσαν
우리를 체포하고, 우리를 배신하지
για μια μπουκιά ψωμί
빵 한 조각을 위해
Σ' αυτή τη γειτονιά
우리 이웃들은
μες στο μικρό στενό
작은 골목에서
χαθήκαμε και ζήσαμε
죽어가고, 또 살아가네
μακριά κι απ' το Θεό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채로
4. 렘베티카에 사용되는 악기들
기본적으로 렘베티카는 그리스의 민속음악에 쓰이는 악기들을 계승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튀르키예적인 느낌을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주된 반주악기로 쓰는 부주키와 바글라마는 각각 튀르키예 악기인 주라 사즈(Cura saz)와 바을라마(Bağlama)를 그리스화 시킨 악기이고, 류트의 일종인 라우토(Λαούτο)도 튀르키예의 '우드'에서 비롯된 악기이다.5. 유명한 렘베티카 음악가
바실리스 찌짜니스(Βασίλης Τσιτσάνης)요르고스 달라라스(Γιώργος Νταλάρας)
마리아 파란두리(Μαρία Φαραντούρη)
미키스 쎄오도라키스(Μίκης Θεοδωράκης)
하리스 알렉시우(Χάρις Αλεξίου)
[1]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에 튀르키예인과 그리스인의 기준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만으로 이를 판가름했다. 이를테면 크레타에 거주하는 그리스어를 말하는 무슬림들 조차도 튀르키예인으로 여겨져서 인구교환대상에 포함되어 튀르키예로 추방되었으며,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동방정교회신자인 카라만인(karamanlı)같은 사람들도 그리스인으로 간주되어 그리스로 추방되었다.[2] 실제로 이들 레베테스들은 2차 세계대전 종결이후 그리스 내전에서 좌익진영에 대거 가담해 힘을 실어주었다.[3] 1932년 작곡, 로자 에스케나지 부름[4] 마노스 엘렙세리우 작사,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