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5도 | ||||
백령도 | 대청도 | 소청도 | 연평도 | 우도 |
※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2조 13항에 의함. |
<colbgcolor=#0079c1><colcolor=#fff> 연평도 延坪島 | Yeonpyeongdo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광역자치단체 | 인천광역시 |
기초자치단체 | 옹진군 |
면 | 연평면 |
면적 | 7.01㎢ (대연평도) 0.236㎢ (소연평도) |
인구 | 2,027명[1] |
인구 밀도 | 279.74명/㎢ |
주민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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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lbgcolor=#002031><colcolor=#fff> |
북쪽의 큰 섬이 대연평도, 아래쪽의 작은 섬이 소연평도, 대연평도 아래쪽에 있는 연륙교로 연결된 섬이 선착장으로 사용되는 당섬, 왼쪽 아래 외딴 섬이 구지도. |
연평도의 지명은 '연이어 뻗친(延) 땅(坪)'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황해도 해주군[2] 송림면 관할의 섬으로 당시 송림면은 7개 리[3]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면사무소는 본토의 송현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 38선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1945년에 경기도 옹진군으로 이관되었다가 1953년 휴전협정 체결로 연평도를 제외한 나머지 송림면 지역이 북한 치하에 들게 되자 면사무소를 연평도로 이전했다. 1995년에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고 1999년에 송림면이 연평면으로 개명하였다. 이미 송림면 본토를 상실한 지 오래이고 연평도라는 지명이 묻힐 가능성이 높아서 개명하였다.
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4] 현재 북방한계선과 인접하므로 북한과 매우 가깝다. 실제로 연평도와 인천항 간의 뱃길은 122km나 되지만 북한 해주항으로는 40km 정도 걸려 갈 수 있고, 북한 강령반도의 육세미까지의 거리는 12.7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육세미뿐만 아니라 38km 거리의 황해도 해주 땅까지도 육안으로 또렷이 보일 정도다. 따라서 북한이 옹진반도와 주변 섬에 설치한 해안포 사정거리에 들어가므로 유사시에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이것 때문에 서해 5도의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연평부대가 주둔하여 연평도를 방위한다. 한편, 바다는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소속 경비함정들이 항상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해병대도 해군 예하인 만큼 섬의 방어는 해군이 전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 어선 조업 단속 등을 위해 해양경찰청도 서해5도특별경비단을 둔다.
다른 최전방 지역에 비해 꽤나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대연평도는 고양시, 북한산과 비슷한 위도에 있고, 소연평도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은평구,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 일대와 위도가 같다. 소연평도의 최남단은 북위 37° 36′11″에 위치해 있다.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과 비슷한 위도이다.
2. 교통
섬에 가는 방법은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고 가면 된다. 운임은 인천-대연평 55,300원, 대연평-인천 53,800원이나 인천 주민은 뱃삯 80%를 할인 해주며, 연평도민은 편도 기준 대인 1,500원(시내버스 요금) 중고생 870원으로 이용 가능하다.섬의 면적이 좁아서 택시가 다니지 않으며,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는 2011년 9월부터 운행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 온 방문객은 버스 시간대를 못 맞추면 걸어서 가야 하며 공유 킥보드나 자전거는 없다. 마을까지는 연륙교로 10분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되고 펜션을 예약한 승객의 경우 펜션에서 승합차로 태우러 나온다.[5]
2023년 3월부터 옹진군 전국민 여객선 동일 요금제 사업에 참여하며 외지인들도 대연평도나 소연평도에 1~5박 숙박 시 인천시민과 동일하게 선박 운임의 80%를 할인받을 수 있다.#
3. 행정구역 변천
<colbgcolor=#f5f5f5,#191919> 1914년 ~ 1938년 | 황해도 해주군 송림면 연평리 |
1938년 ~ 1945년 | 황해도 벽성군 송림면 연평리 |
1945년 ~ 1995년 | 경기도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 |
1995년 ~ 1999년 | 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 |
1999년 ~ 현재 |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리 |
4. 대연평도
4.1. 역사
조기잡이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는데,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안목과 당섬 사이의 얕은 바다에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아서 조기 잡는 어살법을 주민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도 섬에는 임경업장군각(林慶業將軍閣)이 있어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이렇게 조기가 많이 잡혀서 1960년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다.4.2. 현재
대연평도는 면적 7.01㎢로, 2024년 3월 기준으로 2,029명, 1,349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조기는 거의 씨가 말랐으며, 꽃게잡이로 유명하다.임경업 장군이 어살법으로 조기를 잡았다는 안목어장은 오늘날 연평면사무소가 자리한 마을의 앞 바다로 당섬, 책섬, 작은지리 등의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호수처럼 얕고도 잔잔하다. 이곳에서는 썰물 때 조개, 게, 낙지 등을 아이들과 함께 직접 잡아보는 갯벌 체험이 가능하다. 그리고 안목어장의 북동쪽 바닷가에 우뚝한 언덕에는 망향전망대가 있다. 연평도에서 북한 땅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대연평도의 동쪽에는 방파제[6]가 설치된 2종항인 연평도항이 있고 주민의 상당수가 거주한다.
행정시설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면사무소가 있으며 인천경찰청 인천중부경찰서 연평파출소, 해양경찰청 인천해경 연평파출소, 인천소방본부 인천중부소방서 연평 119 안전센터[7] 등이 안전을 담당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 119 안전센터에서 소방차, 구급차를 출동시켜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등을 벌였고 연평파출소 근무 경찰공무원들도 주민 대피를 돕는 등 군과 함께 섬 주민 보호에 나섰다.
편의점은 CU와 GS25가 있고[8], 우체국, 연평 초·중·고등학교[9], 치킨집[10] 등의 시설도 있다. PC방[11]은 없으며 관광객, 그리고 해군 소속 군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들이 다수 있다.
대연평도의 남쪽 끝에는 등대가 있다. 1960년에 처음 불을 밝힌 뒤로 한동안 연평도 어선들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노릇을 했던 등대로 1974년 7월 국가안보 상의 이유로 소등했다가 1987년에는 완전히 등대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다가 다시 연평도 등대가 45년 만에 불을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2019년 5월 17일 오후 7시 20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연평도 등대 점등식을 개최했다. 등대공원 바로 밑에는 팔작지붕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조기역사관이 있다. 건물의 1층에는 연평도 조기잡이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자료가 전시된 조기역사관이 있고, 2층에는 사방으로 시야가 훤한 누마루 형태의 전망대가 마련돼있다. 조기역사관 옆에는 연평도 조기 떼와 조기잡이 배를 묘사한 조각상도 세워져 있다. 조기역사관에서는 연평도의 북쪽 해안으로 곧장 이어지는 군용터널도 있다. 최근에야 처음으로 관광용으로 개방된 이 터널 계단의 양쪽 벽에는 연평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등대공원과 조기역사관 부근은 연평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므로 가래칠기 해변, 빠삐용 바위, 구리동해수욕장 등으로 이어지는 연평도의 서쪽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빠삐용 바위는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진 절벽과 비슷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연평도 북쪽 해안에 위치한 구리동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백사장이 깨끗해서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있다.
연평도의 북쪽 해안에는 고래준골이라는 곳에 백로서식지가 있다. 봄에 백로들이 찾아와 알을 낳고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장소로 백로의 한살이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이다. 백로서식지는 해안철책 안에 있어서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군에서는 백로서식지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 놓았고, 그곳에서 망원경으로 백로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5. 소연평도
<colbgcolor=#0079c1><colcolor=#fff> 소연평도 小延坪島 | small Yeonpyeongdo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광역자치단체 | 인천광역시 |
기초자치단체 | 옹진군 |
면 | 연평면 |
면적 | 0.236㎢[12] |
주민센터 |
이 섬의 동남쪽 해안에 위치한 얼굴바위는 사람의 옆 얼굴과 똑같이 생겨 큰 바위 얼굴을 연상케 하며 소연평도에 접근하는 여객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바위이다. 그리고 함철품위(含鐵品位) 50.4%인 타이타늄 자철광 광산이 발견되었다.
6. 최근 상황
서해 5도의 특성상 북방한계선과 인접한 관계로 1970년대부터 북한의 도발에 갖은 피해를 받는다. 섬 주변 바다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을 겪었고 그 때마다 연평도 어민들은 어업활동이 금지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았다.또한,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의 포병 사격이 섬에 80발 정도 명중하여 큰 피해를 입었으며,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북한이 도발을 한 것으로 앞서 벌어진 해상 도발들의 수위를 뛰어넘는 정전협정 위반을 저지른 국지도발이었다.[14] 연평도 포격전 이후 연평도 주민들은 사건 당시에는 대부분 대피호에 숨었다가 연락선, 어선 등을 타고 인천으로 속속 대피하여 평소 1,400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한때 100여 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이후 포격 5개월 후인 2011년 3월 기준으로 섬 주민의 80% 이상이 섬으로 돌아왔다. #
공격 이후 K-9 자주곡사포 6문을 추가배치하고 손으로 일일이 장전해야 했던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K-10 탄약보급장갑차도 추가했으며 K-136 다연장로켓도 배치되었다. 또한 보도 통제와 민간인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해군/해병부대 등 군사기지만 남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었으나 연평도 포격 이후 섬 인구가 오히려 150~170명 가량 증가했다. #[15] 주민들도 연평도 포격 사태의 끔찍함을 잊고 꽃게잡이 등 생업에 열심이라고. 이후 2012년 4월에 500여명이 피난할 수 있는 1호 대피소가 건립되었고 앞으로 연평도 전 인구가 대피하여 생활할 수 있는 7개 대피소 시설이 건립될 예정이다. #
일부 언론에서는 수도권에 배치되었던 K-9 자주곡사포가 연평도에 배치됨에 따라 수도권 방어에 공백이 있지 않느냐의 우려와 유사시 빼앗길 수 있는 곳에 과대 배치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이는 기우인게 K-9은 수도권 육군에 배치한 것을 뺏어오는 게 아니라 해병대에 추가로 주는 것 뿐이었으며 해군 및 해병대를 잘 모르는 기레기들의 추측성 기사에 불과했다. 해병대에 K-9 추가배치가 이루어진 뒤에도 제1군단 등 수도권 전방 육군 포병 전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후 2011년 8월 10일, 북한이 연평도 인근 해상에 포격을 가해왔다. 북한은 발파 작업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며, 중국 군사전문지는 중국의 신호에 따라 북한이 포격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중국 군사전문지의 기사는 엉터리 기사였는데 중국이 굳이 신호까지 하며 북한에 도발을 재촉할 이유가 없었다. 중국은 오히려 연평도 포격전 이후 추가도발 시 북한에 대한 원조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며 이것이 나중에 북중관계가 냉각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2013년 12월 17일 기준으로 연평도 피해 복구를 위해 본토에서 넘어간 업체들이 숙박비 및 식사비 등을 3억 원 가량 연체하고 있다고 한다. 본토 같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섬 주민들의 호의에 뒤통수 때린 업체가 뉴스에 나왔다. 원청과 하청 간에 책임 떠넘기기가 일어났으며 하청업체는 현재 파악이 안 되는 상태다. 애꿎은 섬 주민들만 큰 피해를 입고 있다. # 2014년 4월 29일에 북한군이 백령도 및 연평도 인근에 포 사격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SBS에서 현지 주민과 전화 인터뷰를 하다가 억지로 긴장을 조성하지 말라[16]는 소리에 데꿀멍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보면 연평도 주민들이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무감각해진 건 사실인 듯 하다 . 그것과 관계없이 북한이 연평도에 지속적인 도발을 해오고 있던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연평도를 마치 전쟁터로 취급하고 적 도발을 스포츠 중계라도 되는듯아 흥미 위주로 중계하는 언론의 태도는 욕 먹어도 싸다.
2014년 4월부터 중국 국적의 어선 일당이 연평도 인근 해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있다. # 해경특공대가 세월호 참사 때문에 진도군 해역으로 떠난 이후 더 기승을 부렸다. 이 어선들은 대한민국 해군과 해양경찰청이 단속을 시작하면 북한 지역으로 달아났다가 단속을 멈추면 바로 다시 대한민국 영해로 들어와 불법 조업을 재개한다. 그 해 5월 1일에는 150여 척이나 몰려왔다고 하니 이쯤되면 해적이 따로 없었다. 2016년 6월 6일 참다못한 연평도 어민들이 불법 조업을 하고 있는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했다. 연평도 불법 조업 어선 2척, 어민이 나포 연평도 앞바다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수 백척 중 달아나지 않는 2척을 한국의 어선 5척이 밧줄로 묶어 끌고 인천 해양경찰서에 압송했다. 과정에서 저항은 다행히 없었는데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해경에선 중국 어선 선장 47살 A씨와 52살 B씨를 대상으로, 불법 조업 여부와 서해 북방한계선, NLL 침범 경위 등을 조사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국 해경청이 서해5도특별경비단을 만들어 중국 불법 조업에 해군과 공동으로 대응 중이다.
2020년 9월 22일 밤에는 연평도 해역에서 한 명의 공무원이 피격되는 사건이 일어나 다시 한 번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2024년 1월 5일 낮, 북한이 연평도 북방 NLL 인근에 200여발의 해안포를 발사하는 해안포 훈련으로 주민들의 긴급 대피가 이뤄졌고 국군은 400여 발의 대응사격으로 맞대응하였다. # 자세한 내용은 2024년 연평도 해역 포격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1월 6일 북한이 연평도 북방 NLL 인근에 60여 발의 해안포를 추가 발사하였으며, 국군의 추가 대응 사격은 없었다.
2024년 1월 7일 북한이 연평도 북방 NLL 인근에 해안포를 추가 발사하였으며, 국군의 추가 대응 사격은 없었다.
7. 관련 문서
[1] 2024년 7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2] 1938년 해주부 분리 후 벽성군으로 개칭한다.[3] 송현리, 내동리, 가평리, 소수압리(소수압도), 대수압리(대수압도), 육도리(육도), 연평리(연평도)[4] 물론 구 38선은 현재는 전혀 기능을 하지 않고, 군사분계선이 대체한 지 오래다.[5] 배에서 내리면 마을버스는 대기하고 있다. 배에서 너무 늦게 내리면 버스가 출발하니 버스를 타고자 하는 승객은 서둘러 나가는 것이 좋다. 버스 요금은 현금 1,300원이며, 교통카드도 된다.[6] 856m 높이다.[7] 옹진군은 인천중부소방서 관할구역이다. 영종도도 원래 옹진군이라 중부소방서가 관할해오고 중구 편입 후에도 중부소방서 영종119안전센터였다가 인천국제공항 개항 후 소방 구조 및 응급 의료 수요가 폭증하여 영종소방서가 분리 독립했다.[8] GS25는 해병대 PX를 겸해서 운영된다.[9] 이전에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건물을 따로 썼으나, 연평도 포격전 사태와 노후화된 시설 탓에 구 연평초등학교 건물을 철거하고 통합 교사를 신축하여 2015년부터 유치원·초·중·고등학교가 모두 한 건물을 사용하게 되었다.[10] BHC, 찬누리 닭강정[11] 예전에는 있었다.[12] 약 71,300여 평[13] 약 71,300여 평[14] 피해 상황을 포함한 자세한 내용은 연평도 포격전을 참고하길 바란다.[15] 연평도는 서해 5도 중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섬이다.[16] 외지인들에게 연평도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관광업에 타격을 준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