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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실로 1964년은 우리 인민의 생활 향상에서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해로 될 것입니다. 1964년에 우리는 300만 톤의 벼와 20만 톤의 육류, 3억 메터의 직물을 생산하게 되며 그 해까지 도시와 농촌에 새로 건설되는 문화 주택은 60만 세대에 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인민은 모두가 다 기와집에서 이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근로자들이 오랜 옛날부터 꿈꾸어 오던 념원을 우리 시대에 와서 실현하는 무한히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1]
김일성[2]
김일성의 1962년 천리마 운동 당시에 한 발언에서 유래한 표어. 김일성은 당시 북한 인민의 부유한 미래를 약속하며 '기왓집에서 이밥(쌀밥)과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는' 것을 이상적인 부의 상징으로 들었다.김일성[2]
2. 용어의 의미
이밥은 입쌀(멥쌀)로 지은 백미밥을 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쌀밥에 고깃국으로도 알려졌다. 표준어로는 사이시옷을 적용한 '고깃국'이 맞으나 북한 문화어에서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으므로 원문인 '고기국'이 표제어로 정해졌다. 흔히 이팝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의 원문에는 이밥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그 때나 지금이나 북한 맞춤법상으로도 이밥이 맞는 표기이며 1962년 당시의 원문이나 2009, 2015년 기사에서도 '이밥'이라고 표기되었다.'고기국'은 고기를 재료로 사용해 완성된 국 요리가 아니라 고기를 끓여서 우려낸 육수를 일컫는데[3] 말로는 "집집마다 고기를 끓여내 만든 육수를 각각의 집에서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표방되었지만 고기라고는 들어가지 않아 소가 강을 건너는 것처럼 고기를 잠시 담그기만 한 국이라는 뜻의 이른바 황우도강탕을 내오거나 무청을 넣은 된장국이나 소금국을 내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남쪽에서는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군대에서 우강탕이나 돈강탕이 나오는 일이 있긴 했으나 나름대로 부조리를 척결한 후에는 적어도 손가락 서너 개 정도는 진짜 고기를 넣어준다.
2024년 6월 북한은 국가국어사정위원회 명의로 '이밥'을 비규범적인 단어로 선포하고 '백미밥'을 쓸 것을 주장했으며 '입쌀'도 쓰지 말고 '백미'를 쓸 것을 주장했다. #
3. 역사
1950-60년대 북한의 소위 천리마 신화 선전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과거의 북한은 '북한엔 자유는 없어도 빵은 있다'는 신화가 학계에도 퍼져 있지만 냉전 이후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50년대 북한에도 무리한 공업화로 인한 기근과 식량부족 사태가 판을 치고 빈약한 경공업 기반 때문에 인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처참한 상황이었다.전쟁 전에도 김일성의 수탈이 심했기 때문에 평안북도 용천군 같은 곳에서는 김일성을 '죽장군'이라고 비난하였다. '(풀)죽만 먹이는 장군'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굶주리지는 않는' 상황이 도래하고 불만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가 되니 상대적으로 잘사는 걸로 착각하게 됐다.
북한의 조건에 대해서 논하자면 한반도 북부에 중공업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고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소련군의 약탈로 그 기반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일본이 건설해 놓고 간 공업역량은 대부분 단독으론 그다지 쓸모가 없었던 중화학공업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기본 생필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공업은 오히려 남한에 더 많았는데[4], 중화학공업처럼 복잡한 제조업은 경영진, 기술진, 기능직의 연계와 타 산업 간의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경제 계획에서도 경공업부터 시작했고 구미 - 칠곡 - 대구 - 경산 - 포항 - 경주 - 울산 - 부산 - 김해 - 양산 - 거제 - 창원 - 함안 - 진주 - 광양 - 순천 - 여수와 같은 남동임해공업지역과 인천 - 서울 - 성남 - 수원 - 화성 - 평택 - 서산 - 당진 - 아산 - 천안 - 진천 - 증평 - 청주 - 대전과 같은 중부공업지역은 연계적으로 움직였다. 전방 산업인 자동차 제조, 석유화학 및 정유 산업, 철강 산업, 비철금속 재련 산업, 기계 산업, 조선업과 후방 산업인 부품 산업, 소재 산업, IT 제조업과 전자 부품 산업이 연계되어 있다. 이것뿐이랴? 그 원료는 어디서 어떻게 수입해서 가공해오고 노동자들을 먹일 밥과 생필품은 어디서 났는지를 생각해 보면 식품 산업과 경공업 역시 충분히 받쳐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북한 지역은 일제강점기 남한에서 받쳐주던 경공업 및 원료와의 연계 구조에서 중화학 공장만 덜렁 떨어져나갔으며 해방 후 중화학공업단지에서 일하던 일본인 경영진과 기술진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고 설비를 유지할 부품 공급 및 유지보수가 중지되자 북한의 중화학공업단지는 있어도 못 굴리는 그림의 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튼 6.25 전쟁 이후 1954-1955년과 1959년에 2번이나 식량계획이 어긋나서 대기근 위기가 왔는데 전자는 소련과 중국의 긴급 식량지원으로, 후자는 협동농장 체제 완비로 식량 생산량은 부족할지언정 식량의 통제가 용이해졌기 때문에 겨우 넘길 수 있었다. 이를 놓고 흔히 나오는 레토릭이 김일성이 중공업에 환장해서 다른 산업을 다 깽판쳐 놓았기 때문에 망했다는 것인데 김일성이 중공업에 환장했던 것은 사실이고, 이후 북한 공식 역사관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조수룡 박사의 연구를 보면 소련에 보고된 북한의 경제계획표에서 경공업 투자가 더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따라서 1950년대 북한의 대기근은 중공업화 자체보다는 공업화 자체에 너무 매달려서 식량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수급해서 도시 노동자들에게 공급하려던 계획이 잘못된 결과였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에서 경제 문제가 논의된 것은 사실이지만 부차적으로 갖다붙인 것에 가깝고 실질적인 핵심은 김일성 승리연합의 재편 과정에서 축출된 인물들의 필사적인 반란에 가까웠다.
여하튼 1950-1960년대 북한의 생활수준은 심히 좋지 않았다. 북한에서 기자를 하다가 탈북한 이항구는 60년대 김일성이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 현지지도를 갔는데 불시에 가정집들을 찾아보니 인민들이 풀죽만 겨우 먹는 것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하고 군당 책임비서들을 그 자리에서 철직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북한 노동신문에조차 1956년 4월 식량위기를 거론하며 자기 비판적인 태도로 절약하고 음식을 대체하기 위해 나무껍질과 풀을 먹으라는 주장이 실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김길선 기자도 "지방에서는 1960년대에도 강냉이밥이라도 2끼나 먹지 3끼 챙겨먹는 집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생 북한이탈주민과 일반 한국인 중에서 일반 한국인이 2.9cm 더 키가 크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그것도 한국이 못 살던 시절의 통계에서 나온 결과값이다. 함경도 문서를 보면 해방 전만 해도 탈북민의 주 출신지인 함경도는 휴전선 이남보다 평균 신체가 4cm는 큰 고장이었다. 심지어 후술하듯 통계에 따르면 늦어도 60년대 초반부터 수치상으로는 북한보다 훨씬 가난했던 한국이 훨씬 잘 먹고 살았다.
강명도 역시 평양 출신에 해방 전을 겪지 못한 세대라 나라가 계속 좋아지는 것으로 알 여지가 있었다. 주민들은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만 식량을 받았으며 바깥과 소통을 단절한 북한이라 외부와 비교를 할 수 없어 자신이 잘사는 줄 알았다. 식량은 배급을 일관되게 고집했는데 사실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도 식량 배급을 지금까지 고집하는 국가는 북한이 거의 유일하다. 소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에는 아예 배급제를 폐지했고 40년대에도 소련 루블을 쓰고 인민이 이용 가능한 백화점이 있었으며,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의 사회주의권 국가들도 늦게는 1960, 70년대부터 극빈층과 장애인들을 제외하면 배급제를 사실상 없앴으며, 루마니아도 외채를 상환해야 했던 80년데에 한해 배급제를 실시했지만 차우셰스쿠의 몰락 이후에는 폐지했다. 베트남도 1980년대 말에 배급제를 폐지했으며 중국도 국공내전 전후 및 문화대혁명 시기를 제외하면 배급제를 운영한 적이 없다. 공산주의권 국가들의 경제 체제도 자본주의와 거의 다를 바 없이 인민들에게 같은 월급을 지급한 후 그 돈으로 자신들이 사고 싶은 것을 사게 했다.
한국의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도 반찬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판국에 점점 눈이 높아지고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국민들 저마다의 식성을 국가가 획일적으로 맞추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로, 국가 차원에서 수용소 급식하듯 배급제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물론 전쟁으로 피폐해져 다들 굶어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야 임시방편으로 배급제가 나을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 끌고가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굶어죽기 직전에야 맛없는 밥이라도 황송하게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배가 불러지면 나름 괜찮은 편의점 도시락조차 성에 안 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산권 국가들도 중국, 베트남처럼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둘씩 자본주의를 다소나마 받아들이며 변화를 주기 시작했으나 체제 붕괴를 우려한 북한은 되레 "다른 공산권 국가들이 자본물이 들며 몰락했다, 우리는 저렇게 되지 말자"며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니 외부의 지원이 없는 이상 '자력갱생'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함경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해방 전까지만 해도 탈북민의 주 출신지인 함경도는 휴전선 이남보다 평균 신체가 4cm는 큰 고장이었다. 오히려 2010년대에는 식량에 대한 통제를 주민들이 무너트려 60년대보다는 절대적 기준으로는 잘 먹는다. 2019년에는 북한에서 3끼를 이었다던 탈북자가 90%가 된다는 조사도 나왔으며 시골에서도 기름을 두른 밥을 먹는다는 증언도 이때 나온다.
오히려 1960년대에는 한국이 더 가난했다. 1960년대 한국의 쌀 생산량은 300~400만 톤 사이[5]였는데 대략 두 배 정도의 남북한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김일성이 사실을 말했다면 1960년대까지는 한국이 가난했지만 2020년대 한국의 인구는 1960년대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는데 쌀 생산량은 한동안 늘어나다가 이제는 다시 1960년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이는 쌀 말고도 다른 먹을거리가 지천에 널렸기 때문이지 한국인이 식량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은 아니며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기존 전통 요리 역시 밀, 육류, 해물이나 과일 비중이 높아지고 서양 요리가 유입되면서 한국인들의 쌀 소비량이 줄고 밀이나 육류 소비량이 늘었다. 서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외에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러시아와 동유럽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이들의 식문화도 같이 들어왔으며 여행으로 인해 현지 요리에 맛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 북한에서는 '명절에는 옥수수로 만든 푸석푸석한 빵'을 배급받는 것으로도 다행이었다는 증언으로 미루어 보면 원조로 국수 가게, 만두 가게, 빵집이 성업하고 60년대에 등장한 라면[6]도 싼 음식[7]이라며 각광받던 남한에 비교하면 실질적으로는 60년대조차 식량은 남한 서민이 더 잘 받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즉, 한국의 박정희는 저임금 정책을 추구하며 노동자들을 부려먹으면서도 식료품 값에 대해 직접 개입하면서 노동자들을 값싸게 많이 먹일 생각[8][9]도 잊지 않았으나 김일성은 벌어들인 돈만 많았지 그걸 노동자에게 배분을 하지 않고 충성파에게만 좀 나눠주며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면서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그게 풍족한 것이라며 거짓말을 해 가면서 일만 하라고 하면서 부려먹었다는 것이다. UN 통계 기준으로 한국이 북한의 1인당 GDP를 초월한 것이 1974년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민생 면에서는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보다 월등히 좋았던 셈이다.
남한이 통일벼를 도입하고 나서 생산량이 1975년 기준으로 430만 톤 가량 되었는데 북한이 통일벼를 가져가려고 했을 정도로 남한이 더 다수확 품종을 길렀으면서 쌀 경작이 유리한 지역도 적은 북한이 300만 톤의 벼를 생산했다는 김일성의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북한은 중국 등지에서 개량 종자를 들여와도 2010년대 이후에 벼는 210만 톤 정도만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4년 윤미향 의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평화어머니회 고은광순 이사장은 “교육·의료·주거는 남쪽은 경쟁, 북은 무상”이라며 여전히 지상락원에 대한 환상을 표명했다. 북한이 망하고 한국이 선진국이 된 지 오래인데도 국회에서 이런 발언이 나올 정도이니, 하물며 한국이 못살던 시절에는 '무상'이란 유혹에 혹해 북한에 환상을 가지는 종북주의자들이 난립할 만 했다.
하지만 북한에선 무상이 절대로 아닌데 '일하지 않을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지불하지 않고 주거와 식사 형태로 제공했다면 그것은 '보상'이지 무상이라고 할 수 없다. 국가에서 일자리를 제공해주니 취직 경쟁 없어서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노동의 고통도 취직 경쟁의 고통 못지 않은 법이며 그나마 북한 서민들의 꿈의 직장에 해당하는 것이 개성공단이었다. 한국에서는 개성공단보다 더 좋은 3D 업종이 널렸지만 사람을 못 구해 외국인 노동자를 구해 쓰는 실정이다. 한국에선 자신이 원하는 직장이 아니라며 그냥 일을 안 하는 자발적 구직 포기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을 강제로 개성공단에 발령내서 강제노동을 시켜 취업률 100%를 달성한다고 한들 지상락원과는 거리가 있다.
북한에서 정부의 강제 노동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중범죄이기 때문에 강제 노동으로 착취당하다 보니 '세계 최악의 노예국가(노예지수 1위)'로 선정됐다. 섬노예 주인이 '무상'으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다고 큰소리 치는 꼴이다. 고난의 행군 당시 이밥에 고깃국을 그리다 사망한 사람들은 일을 안 해서 굶어죽은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지만 일을 하고서도 먹지 못해 아사했다. 일하지 않는 노숙자에게 이밥에 고깃국 제공하는 한국이야말로 '무상'이며 북한은 노동에 대한 '보상'이다.
주거도 북한 귀족층은 한국의 임대 아파트 수준이며 한국에서도 염전 노예 주인에게 가면 북한 서민들이 살 법한 수용소 수준의 주거와 식사는 '무상'으로 제공해 준다. 어차피 북한에선 사유재산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내 집'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임대 아파트를 제공해 주고 단지 노동에서 월세를 제하는 수준인지라 '공짜로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한국에서 노가다 뛰면 북한 귀족층의 삶은 누릴 수 있다. 당장 밤하늘의 위성지도를 보면 북한에선 평양 빼고 불이 다 꺼져 있어서 전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특권인데 한국에선 최저 월세 집을 구해도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전등은 물론 컴퓨터와 에어컨까지도 사용이 가능하다.
21세기에는 한국에서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도 잔반을 많이 남기는 등 '거지도 배부른 나라'가 되었으니 정작 북한이 꿈꾸던 지상락원이 그리 욕하던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실현된 게 아이러니한 것이다. 6.25 전쟁 직후만 해도 남한은 세계에서 낙후된 국가로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으며 맥아더마저 전후복구에 최소 100년은 걸릴 거라고 말할 정도였고 영국의 더 타임스[10]는 아예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11]이 더 현실적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 차세대 선진국 후보로 적도 기니가 뽑혔지 한국은 아예 후보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한국이 언제 멸망하냐가 1950년대 토픽이었다. 그런데 적도 기니는 당대 최악의 악질 독재자들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의 폭정을 겪고 있는 데다 원유가 발견되었음에도 그 부를 모두 응게마 일가가 독점하면서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남아있고 지지리도 못 살던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으며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같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었다. 이 중 대만은 국부천대 시기 중화민국 중앙은행에서 확보한 금, 은 등 귀금속,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챙겨온 문화재, 고서, 예술품, 국내외 화교 자본가들이 챙긴 자본이 있었고, 홍콩과 싱가포르는 영국, 미국의 지원, 미국, 영국계 기업의 투자, 화교 자금이 있었지만 한국은 진짜 아무 것도 없었다. 중화권인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달리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비중화권 국가이다.
근데 이미 한국은 저 100년의 절반도 안 지난 시점에 전후복구는 물론 한강의 기적을 비롯한 경제 성장과 선진국 진입도 성공하여 정말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객관적 수치로 봐도 단 70년도 안 되어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급성장했다.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의 무력함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던 남한 지역[12]과는 달리 북한 지역은 일찍이 소련군정의 지도 하에 사실상의 정부 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성립한 후 갖은 개혁과 개선을 실시하면서 국가의 정비가 비교적 잘 되어 있었다. 이승만 정부가 공교육 투자와 토지개혁을 서둘렀던 이유도 그런 맥락에 기인한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중일전쟁을 치르면서 중국국민당이 이끄는 중국과 가까운 한반도 북부 지역에 빠르게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들을 잔뜩 지어놓았고 이것이 적산의 형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비록 소련이 공장 비품을 약탈했어도 북한 지원을 위해 다시 제공해 주면서 공업 활성화가 비교적 수월했다.
반면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 지역은 중국과 거리가 멀고 전라도의 호남평야, 나주평야와 같이 농지가 많다는 특성 때문에 주로 식량을 생산하는 식량 기지로서 이용되었고 공업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물론 서울 영등포 등 경공업 지역은 있긴 했으나 그것이 전부였으며 이마저도 6.25 전쟁으로 인해 기반시설의 대다수가 소실되었다.
하지만 김일성의 수탈이 심했기 때문에 평안북도 용천군 같은 곳에서는 김일성을 '죽장군'이라고 비난하였는데 '(풀)죽만 먹이는 장군'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굶주리지는 않는' 상황이 도래하고 불만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가 되니 상대적으로 잘 사는 것처럼 착각했다.
당시 북한은 당시 든든한 뒷배였던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과 교역 덕에 인민들이 굶주려 죽지는 않았고 오히려 명절에는 비록 옥수수로 만든 빵이지만 빵[13]과 같은 것도 '두둑히' 무상으로 배급해 줬다고 한다. 이밥에 고깃국까지는 아니라도 정부에서 공급할 식량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김일성의 야욕으로 발생한 6.25 전쟁을 통해 한반도 전역이 폐허가 되고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이 깡그리 잿더미가 되어 남북 막론 최빈국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이후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소련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어 북한은 한국보다 국부를 쌓기 쉬웠다.
하지만 1950년대 말~1970년대 들어서는 8월 종파 사건에서 보다시피 권력의 견제를 방지하기 위해 김일성이 친중파와 친소파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박쥐와 같은 행보로 독자 노선을 시도했고, 이러는 사이 중국과 동구권 맹주 소련은 충돌하던 상황이었다.
소련은 김일성의 박쥐 같은 행보와 북한보다 포섭할 가치가 높은 동유럽을 신경쓰느라 지원을 감소시켜 북한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자영농의 허용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은밀히 숙청시켰고 1955년에도 중공업만 키우는 정책으로 보릿고개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강의 기적과의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한강의 기적은 중공업만 키운 것이 아니라 6.25 전쟁의 화마를 피한 부산, 대구와 같은 영남권 도시들과 전쟁 이후 재개발된 서울, 대전, 광주에 섬유, 식품, 담배 등 경공업을 먼저 육성시켜 축적한 자본으로 중화학공업을 육성한 것이다. 당장 한국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 LG, SK도 섬유, 식품 등 경공업에서 시작했는데 제일모직, 럭키치약, 선경직물이 이들 기업의 모체였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 중 처음부터 중화학 공업을 주력으로 한 회사는 포스코와 현대그룹 계열인 현대자동차그룹, HD현대가 전부다. 그리고 롯데그룹의 모체인 롯데제과와 오뚜기, 농심, 동양제과, KT&G 역시 주력은 경공업이다. 그나마 롯데는 최근 들어 롯데 화학, 롯데정밀화학, 롯데이네오스화학, 롯데알미늄과 같은 중공업 부분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특히 김일성은 1977년에는 동독[14]의 에리히 호네커와 만나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인민들은 사상적으로 나태해지고 행동은 더 산만해진다"는 말을 했다고 할 정도로 진심으로 배불리 인민을 먹이는 것에는 무관심한 것을 넘어 싫어했다. 실제로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에서 자신이 가르쳐준 농사법으로 3년 만에 풍작을 이룬 목사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그 목사가 중앙의 명령으로 갑자기 쫓겨났을 정도였던 데다 북한 농업과학원 출신 연구자였던 이민복[15]은 집단농장보다 개인농의 효율이 500~700% 좋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김일성에게 1호 편지를 상신했다가 중앙당에서 "선생은 정치하지 말고 연구만 하라"라며 반동분자라고 몰린 적도 있다고 한다.영상 참고[16] 2024년 3월 하순 중앙에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에 내린 방침에도 "사회주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끓어넘쳐야 할 청년들이 개인의 경제적인 안정, 돈벌이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북한 청년들을 비난하는 구절이 있다.
북한은 1980년까지는 1인당 국민소득만 놓고 보면 중국의 4배에 달했고 남한의 4분의 1 정도는 될 정도로 어느정도는 먹고 살 만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후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고 남한 역시 3저 호황과 1988 서울 올림픽 등의 효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반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 등으로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2020년 기준으로 북한의 국민 소득은 중국의 10분의 1, 남한의 30분의 1 수준으로 처참히 몰락하고 말았다.
1인당 국민 소득만 놓고 보면 한때는 몇 년 동안 돈을 모아야 겨우 외식 한 번 할 수 있을 정도로 북한보다 훨씬 못 살았던 중국도 지금은 웬만한 중상층 이상은 의식주 전 분야에서 북한에서는 평양의 귀족들이나 누릴 수 있는 이른바 '상류 문화'를 즐기고 있다. 애초에 두 나라의 경제 수준의 차이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북한의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만 비교해 봐도 답이 나온다.
김일성의 말은 과학적으로 잘못됐다고 증명된 사실인데 미국 유명 과학자 칼 세이건의 저서 '악령의 출몰하는 세상'에서 아동빈곤 퇴치를 해야 하는 근거로서도 나와 있다. 칼 세이건 외에도 대다수 국가들이 아동빈곤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간주한다.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등 평양에서 근무한 외교관들이나 전문가들 역시 아동 빈곤율이 북한 지역의 큰 문제임을 알고 있으며 이는 인권 문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몸은 배고프면 오직 먹어야 하는 본능에 모든 걸 쏟아붓기에 다른 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기아 아동들은 눈이 퀭하고 뭔가를 배울 여력이 없으나 잘 먹은 아이들은 이것저것 호기심에 가득 차고 배움의 열정으로 눈이 똘망똘망하다고 한다. 당장 노숙자들도 의식주 해결 없이 사회로의 복귀, 학문에 대한 정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 대만에서도 경제 성장 다음에 민주화가 이뤄졌는데 반대로 김일성은 본인의 권력욕 때문에 그걸 두려워했고, 이런 상황에서 이미 정상적인 국가 구조와는 반대 방향의 노선으로 가고 있었다. 민생 안정을 시도할 타이밍을 놓친 것인지 민생 안정에 관심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국 김일성 일가 독재 체제가 완성된 이후에는 북한 경제는 이미 그 누구도 손 쓸 도리가 없이 망가져 있었다.
애초에 북한이 한때 남한보다 잘 살았던 배경이 냉전 시기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었는데 현실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후계국인 러시아 연방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구 소련 시기에 체결됐던 북한에 대한 방위 군사 지원 조약인 조소동맹조약까지 폐기해 버렸다. 2023년 북러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 측은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군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없다고 했는데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로 와서 벌목장이나 공사장 등에서 일하고 있고 신냉전 와중에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두둔하는 성명을 내고 있지만 소련 시절처럼 큰 턱 내며 지원하는 건 거의 없다.
붕괴된 소련과 달리 공산당이 권좌를 유지하고 있던 중국 역시 경제지원을 축소하고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완충지의 형태로 북한이 망하지 않고 존치되는 정도로만 북한에 대한 지원 정책을 바꾸게 되면서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거기에 김일성 일가들이 독재 체제를 만들겠답시고 경제에 투자할 자원을 군사력에만 투자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냉전 말기나 냉전이 종식된 후에 폐쇄적 공산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던 중국 덩샤오핑과 장쩌민, 후진타오나 구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베트남 보찌꽁, 쿠바 라울 카스트로와 미겔 디아스카넬 등 다른 구 공산권 국가들의 여러 지도자들과 달리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은 현실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민주화와 개방의 바람이 부는 급변해가는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서도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전 지도자의 실책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 지도자가 삽질을 하면 현 지도자도 소위 유훈이라는 이름으로 그 경로를 계속 밟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이 지도자의 정책을 바꾼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1960년대에 조국 해방의 주체를 소련에서 김일성으로 바꾼 사례도 있고 핵개발에 관한 시각도 많이 바뀌었으며 음력설 같은 명절에 관한 태도도 자주 바뀌었다. 김씨 가문은 정작 중요한 것들을 개혁할 능력은 물론이고 의지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바꾸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시대가 달라지다 보니 저 표현 자체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는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북한에서도 기와집과 비단옷보다 훨씬 나은 물건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단 지붕이나 나일론과 같은 것만 해도 그렇다. 그 언제 실현될지 알 길 없는 지상락원이 오더라도 굳이 기와집에 살면서 비단옷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앞의 '이밥에 고깃국'은 계속 써도 될 것이다.
4. 실상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끈질긴 경제제재로 말미암아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려워지게 되자 수산부문은 애로와 난관을 뚫고나가지 못하여 응당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기간 우리는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는것이 자신의 평생소원이라고 하시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인민들의 밥상우에 물고기를 놓아주시려 그토록 마음을 쓰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간곡한 유훈을 자자구구 뼈와 살에 새기고 일하지 못하였습니다.
2016년 5월 8일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강영철 수산부분 대표의 발언. '이밥에 고기국'이 '흰쌀밥에 고기국'으로 이름만 바뀌어 언급되었다.
지난 기간 우리는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는것이 자신의 평생소원이라고 하시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인민들의 밥상우에 물고기를 놓아주시려 그토록 마음을 쓰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간곡한 유훈을 자자구구 뼈와 살에 새기고 일하지 못하였습니다.
2016년 5월 8일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강영철 수산부분 대표의 발언. '이밥에 고기국'이 '흰쌀밥에 고기국'으로 이름만 바뀌어 언급되었다.
전체 인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평생 염원
2019년 3월 6일 김정은이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17]대회'에 보낸 서한. 김정은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2019년 3월 6일 김정은이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17]대회'에 보낸 서한. 김정은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일성은 최초 발언 이후 심심하면 이 문장을 되풀이하며 "곧 있으면 진정한 지상락원이 올 것이다"라며 선전했고 김정일도 김일성의 유훈을 잇는다며 "곧 있으면 진정한 강성대국이 되어,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각종 정책 실패가 터지고 고난의 행군, 북한의 핵개발과 이로 야기된 대북제재를 거치면서 갈수록 나락으로 빠져들었으며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퇴보하는 경제 체제를 가지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비교당하는 수준의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더구나 김일성이 이 말을 처음으로 한 지 2024년 현재 무려 62년이 되도록 이밥에 고깃국은 요원하기만 하다.
더구나 이 약속을 1962년으로부터 2년 뒤인 1964년에 지킬 것이라고 하면서 약속 예정 날짜로부터 무려 60년이 지나도록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이쯤 되면 약속을 일부러 안 지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장 타당해 보일 지경이다.
그나마 고난의 행군보다는 살만했던 1983년에 일어난 북한군 전투기 귀순 사건의 주인공인 이웅평의 운명을 바꾼 것은 바닷가로 떠밀려 온 삼양라면 봉지였는데 라면 봉지에 성분표가 자세히 써 있고 특히 변질된 제품을 가져오면 교환해준다는 구절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웅평은 엘리트 계층인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한국에서 어느 서민이 배고파서 무심코 먹다 버린(...) 평범한 쓰레기인 라면 봉지에 북한의 최고 엘리트 계층이 충격을 받고 귀순을 결심했다. 북한에서는 의사의 지위가 한국보다 낮으며 군국주의 사회인 만큼 전투기 조종사는 김일성이 직접 수첩에 조종사 명단을 적어놓을 정도로 손꼽히는 계층이었는데, 마치 영화 '부시맨'의 콜라병처럼 한국의 서민이 먹다 버린 라면 봉지가 나비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 명 이상이 굶어죽으며 '이밥에 고깃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싶었지만 2010년 2월 1일 로동신문 기사(동태관 작성)에서는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내가 할 일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들에게 흰 쌀밥을 먹이고 밀가루[18]로 만든 빵이랑 칼제비국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라고 김정일이 말했다고 한다.
동년 1월 9일자 로동신문에서도 김정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지 못했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현실은 강냉이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였으며 대부분은 그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다. # ##
오히려 김정일은 프랑스산 헤네시 코냑 구입을 위해 65만 달러를 낭비했고 독일제 고급 수입차들을 사는 등 사치 행각을 벌였으며 고위층 역시 북한 주민들과 달리 삼성전자, LG전자 가전 제품, 현대자동차 스타리아 등 국산품을 애용하고 있다. 태영호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스위스에 유학하면서 미국의 NBA를 즐기고 김정철은 영국의 에릭 클랩튼 공연을 자주 봤다고 한다.# #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는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이고, 참치회, 스시 등의 일본 음식들을 계속 먹었으며, 토요타, 렉서스, 닛산, 인피니티, 혼다 등 일본제 자동차도 구입했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의 돈을 갈취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정작 본인이 주장한 것과 정반대로 '산해진미에 양주, 주석궁에 서방제 명품[19]'을 즐겨 이용했다. 평양 주민들조차 상한 생선을 쓴 초밥을 감지덕지하며 먹어야 하는 와중에도 김정은은 최고급 초밥을 즐겨먹고 있다.[20]#
특히 김정일은 맥도날드 마니아로 알려졌는데 맥도날드 베이징 지점에서 빅맥을 공수해와서 먹었다고 알려졌다. 원래 맥도날드가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생일 등 특별한 날에 가는 고급 식당[21]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즐기는 VIP급 음식이었다.#
북한에서 자랑한다고 올리는 평양 귀족들 영상에서 피자와 짝퉁 빅맥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남한의 피자스쿨이나 시장 햄버거보다도 못한 수준이고, 김정일과 김정은만 오리지날 진퉁 맥도날드를 즐겼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에 대해서 주머니가 궁한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이나 바쁜 사람들이 먹는 것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가 박혀 있을 정도다.[22]
1990년 맥도날드가 모스크바 지점을 냈을 때 첫날에만 무려 3만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몇 시간씩 줄서서 기다리는 진풍경[23]이 펼쳐졌는데 김정일이 부러웠던지 "세계적으로 이름 난 고급 빵과 감자튀김을 우리식으로 생산해 공급하라"고 명령하면서 햄버거가 북한에 등장했다고 한다.[24] 가격은 평균 1.7달러로 한화로 환산하면 2,000원이 채 안 되지만 북한의 일반 노동자 하루 수입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일반 서민들이 즐기기엔 너무 비싼 메뉴라고 한다. 물론 선진국 기준으로는 매우 저렴한 거지만 북한에서는 비싸다.
하물며 북한에선 VIP들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인데 실제로 2019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 주재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이 인근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를 대량 주문하는 장면이 포착됐으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북한 선수단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가지고 가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장 한국에서는 맥도날드가 인구 10~15만 이상인 도시에 가면 흔한 프랜차이즈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 큰 차이가 발생한다.# #
심지어 커피도 지방에서는 당간부와 돈주 외에는 마시기도 힘든 실정이다. # 기사에 따르면 지방 간부들 사이에서 커피가 유행한다고 하는데 2024년 기준으로도 북한에서는 커피 한 잔이 술 1병보다도 비싸다고 한다.
이러한 김정일의 사치 행각은 한국과 해외 여러 지역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 북한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헛소리, 위선 이상의 평가를 받지 못했고 북한에서도 쪽팔렸는지 완전히 흑역사화되었다. 당시 김정일이 이용한 사치품들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밀수한 것이라 대북제재의 대상이 된 반면 대다수 주민들은 가난에 시달렸다.
김정은 통치 시대로 오면서 2010년에 "3년 안에 국민경제를 1960~1970년대 수준으로 회복[25]시켜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생활 수준을 달성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볼 것도 없이 3년은커녕 3대째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이 제 할아버지의 행세를 하면서 이 구호도 '흰쌀밥에 고깃국'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쓰이고 있지만 김일성 시절이었다면 몰라도 현재 이 문구를 곧이곧대로 믿는 북한 주민은 이제 없으며,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고 봐도 될 정도다.#1 #2
물론 김정은은 '3년 안에'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2015년 10월 10일 동태관 등의 논설위원 3명이 쓴 로동신문 정론 <인민이 부른다 노동당 만세! - 조선의 최북단 라선땅에 펼쳐진 전화위복의 위대한 기적을 온 세상에 전한다>에서 "놀랍게도 라선[26]의 피해자들은 매일같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고 지냈다."면서 매일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고 지낸다는 것을 놀라운 일로 언급하는 것부터 평양시와 일부 잘 사는 지역[27]을 제외한 북한의 다른 지역은 제대로 된 식생활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이 역으로 드러났다.
'탈북자는 이제 2015년 이후 끼니는 잇는다', '40%가 굶는다는 말은 과장 같다.'는 주장도 통일연구원, 서울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28] 등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2010년대 중후반의 북한의 상황은 탈북민 대상의 설문을 바탕으로 하면 민간에서는 기근조차 흔한 것이 아니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끼니는 이으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29] #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것도 살기 위해 장마당을 국가의 탄압을 피하며 뇌물[30]을 바쳐 가면서 만들다 보니 그나마 나아진 것이며[31] 북한 사람 중에서도 너무 세뇌가 심하게 되어 당으로부터의 배급만을 기다리던 보통 사람들은[32] 진작에 고난의 행군 때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북한 내에서도 취약계층이라는 말이 2017년에도 있는 것을 보면 국가가 주민들의 영양 공급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곡창지대인 황해도는 2012년에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심한 기근을 겪었다고 하는데 평양으로 가는 수도미, 군대미의 수탈이 원인으로 꼽힌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하였다. # #
2016년 시점에서 북한 주민 1인당 식량배급량은 UN에서 권장하는 배급량의 60%밖에 안 된다고 한다. 물론 북한 주민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장마당에 가서 식량을 구입하는 것이 북한 전역[33]에서 일반적이었다. 밀수 단속이 심해진 2019년경에는 신의주 쪽을 제외한 국경지대가 더 힘들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김씨 3부자와 그 친인척, 측근들은 둘째가라면 숙청할 정도로 국가의 부와 자원 자체를 독점하고 있다.
특권층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평양에는 그나마 전기 공급[34]이 이루어지며 여기서도 중구역 같은 평양 중심부 일대[35]와 각종 선전물의 조명만 밝다. 타 지역은 평양을 가볍게 능가하는 수준으로 심각한데 북한 내에서도 특히 폐쇄적이고 가난한 자강도 같은 경우 압록강에서 사진을 찍으면 밤에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글귀와 빨간 선전판만 보인다.
굳이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당장 김씨 3부자의 외제품 사랑을 열거하기만 하면 이 구호가 얼마나 큰 기만인지 알기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주민들이 남한에서 유입된 책을 보면 처벌하면서 본인들은 정작 외제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도 알고 있다. 당장 평양 등 도시 지역에만 가도 카운티, 스타리아가 많이 있으며 수능 기출[36]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김일성의 첫 발언이 있은 지 무려 57년이나 지난 2019년에까지 또 다시 김정은의 입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이것도 3월 초의 말로, 몇 주 있다가 이제는 노동신문이 “물과 공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강의한 정신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굶어죽고 얼어죽을지언정 버릴 수 없는 것이 민족자존”이라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당정책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도 했다.# # #
이 주장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돈 떨어진 북한… “물과 공기로만 사는” 나라는 없다', '이제 북한엔 '물과 공기만 마시며' 기다릴 주민은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공개했으며 수도 인프라의 열악함도 같이 언급했다. #, #
한 술 더 떠 김정은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백신 도입 거부, 전년 동월 대비 99% 이상의 무역 금지, 어로 금지 같은 기행을 일삼더니 2021년 청년절 축하문에서는 건국 이래 가장 준엄한 국면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나마 간만에 세 끼를 잇게 해 준 주민의 자발적 시장 활동을 막으니 2019년에 비해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고 코로나보다 통제가 무섭다는 주장이 많이 나온다. 이 축하문에서 청년들이 탄광, 염전 등으로 '자원'했다는 것은 이들을 험지로 끌고 가서는 '자발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을 명목으로 불만을 가지지 말고 일하라는 것을 주문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사회 문서의 세뇌 문단에서 보다시피 이런 것은 김일성 일가가 측근들을 길들여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북한 체제의 주축인 주체사상은 창시자가 탈북할 정도로 조악하고 허술한 점이 많은 사상이지만 북한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권력으로부터의 쾌락을 추구하는 상류층 때문이다.
처음부터 토지개혁 당시 사적 소유를 거부하는 사회주의의 뜻을 거스르고 오히려 권력을 갖추면 물욕을 충족시킬 수 있게 하였으며 아예 주민들을 배급에 길들였기 때문에 90년대까지는 그야말로 김일성이 신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이 아닌 충성도에 따라 자원이 분배되기에 경제가 몰락하여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거의 자연선택적으로 자발적으로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20년 기준으로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 북한에서 68%,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 16%로 추정된다는 설문도 있었을 정도다. #
이는 충성의 동기를 잃게 하는데 김정은 스스로 청년 세대가 사회주의의 혜택을 모른다면서 발끈하여 2020년 이후 이른바 계획경제를 복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예가 위의 탄광 등으로의 '자원'이다. 더불어 '건국 이래 가장 준엄한 국면 속'이라면서 할머니 아나운서로 유명한 리춘히나 북한 기준으로도 매우 극단적인 성향의 언론인인 동태관 같은 충성파에게 경루동 2층 집을 선물해 주는 등 충성파의 욕구를 채워주는 일에 한창이며 충성파를 위한 호화저택을 만들 돈은 있으면서 평양종합병원은 건물은 지었는데 의료기구 들여올 돈이 없다고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 쿠데타 이후의 미얀마와 비슷한 상황이라 외부적으로 압력을 주지 않는 한 이런 일이 계속될 수 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도 끝없이 살아남고자 하지만 상류층의 원초적인 탄압 의지를 막을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힘없는 약자들을 착취하는 블랙 기업이나 신안 섬노예 등 각종 노예 노동 사건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는데 북한은 아예 국가 차원에서 힘없는 인민들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있어 세계 최악의 노예국가로 선정됐다. 적어도 한국은 개선 시도라도 하지만 북한 정권은 그 자체가 범죄 조직이다.#
간혹 북한은 경쟁이 없으니 지상락원이고 한국은 경쟁이 있으니 헬조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반독점법이 존재하는 지를 떠올려 보자. 독점기업이나 독점정당(일당독재)은 국민들에게 갑질하며 군림하므로 발전이 정체된다. 기업이든 정당이든 서로 국민들에게 선택 받으려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물건이나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가령 전설적인 비디오 게임인 테트리스는 소련에서 1985년에 나왔으니 정상적인 자유국가였다면 2020년대에는 어마무시한 게임들이 탄생했을 것이지만 미국과 일본의 비디오 게임 시장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동안 러시아는 여전히 테트리스에서 머물러 있다. 치킨만 해도 수많은 치킨집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메뉴들이 개발되는데 북한에선 딱 기본 메뉴인 이밥에 고깃국에 머물러 있다. 2023년 기사를 보면 먹을 게 많아진 한국에서 쌀 소비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데 북한에서는 여전히 이밥 타령이나 하며 반세기가 지나도 발전이 없다.
경쟁이 있다는 것은 계급 이동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선 노숙자도 이밥에 고깃국은 보장되니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라면 고난의 행군처럼 싸워야 할 이유는 없다. 북한에선 하류층은 생존의 투쟁이고 상류층은 굶어죽을 걱정은 없지만 장성택처럼 고위 권력자라도 한순간에 처형당할 수 있다 보니 역시 다른 의미의 생존을 위한 충성경쟁이 펼쳐진다. 하지만 한국에선 계급 상승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자본주의에선 돈이 계급이니 유튜브 시장만 해도 유튜버들이 서로 조회수 빨려고 경쟁적으로 온갖 자극적인 컨텐츠를 만드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각종 창의적인 컨텐츠가 나오니 일장일단이다. 그렇다고 중국처럼 가짜 뉴스의 온상이라며 유튜브 자체를 막아 버리거나 북한의 유튜브 채널처럼 선전 영상만 보여준다면 정말 재미없을 것이다. 반자본주의 북한에선 출신성분이 계급이며 성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보니 북한판 카스트로 불린다. 한국에선 누구든 능력만 있다면 공부든 창업이든 유튜버든 심지어 보이스피싱 사기꾼조차 강남에 입성하여 인생역전에 성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과열된 경쟁이 문제가 되긴 해도 북한처럼 날 때부터 계급을 정해놓고 평민들은 평양에 얼씬조차 못하게 하면 활력이 축 처지고 발전이 없게 된다.
4.1. 2020년대 이후 북한의 식량사정
그런데도 북한은 이밥에 고기국을 '흰쌀밥에 고기국'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선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구글링을 해보면 무려 2023년에도 흰쌀밥에 고기국 타령을 하는 기록이 나올 정도이다. 사실 2021년 기준으로도 평양 주민들에게조차 그렇게 말하던 '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특별 배급으로 줘야 하고 이를 '김정은의 '인민사랑''으로 포장해야 할 지경인 데다 2023년에는 평양 주민들에게 곡물을 배급할 때 쌀도 제대로 배급하지 못하고 옥수수만 배급하는 등[38] 선전만 요란하게 하지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포기한 거랑 다를 바 없다.# # 물론 장마당 경제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평양 주민들도 장마당에서 물고기와 흰쌀을 나름대로 풍족하게 사 먹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한 갑자 수준의 세월 동안 이밥에 고깃국을 외쳐왔는데도 정부에서 물고기와 흰쌀조차 제대로 나눠주지 못할 정도면 사실상 북한 정부의 여력으로 이밥에 고깃국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다.[39]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인민들에게 물고기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애민정신'으로 찬양하는 모습들은 이 링크에서 더 자세히 나오는데 보면 남한 사람 입장에서는 개그 노다지(...) 수준이다.김정은은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전국적으로 논벼와 밭벼 재배 면적을 늘리며 밀·보리 파종 면적을 2배 이상으로 보장하고 정보당 수확고를 높여 인민들에게 흰쌀과 밀가루를 보장함으로써 식생활을 문명하게 개선해나갈 수 있는 조건을 지어줘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역시 북한 주민들이 흰쌀과 밀가루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사실상 자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2023년 4월 3일 로동신문에서 '물과 공기'가 한층 더 진화하여 "풀뿌리를 씹어 먹어도 혁명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투철한 혁명가가 바로 우리 당이 바라는 참된 선전일군"라는 말로 변경되면서 사실상 '흰쌀밥에 고기국'은 허울 좋은 보여주기용 구호였다는 게 사실상 공인되었다. #
사실 현 시점에서 북한 시골은 '이밥에 고기국'은 커녕 강냉이밥[40]이라도 먹으면 잘 사는 편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소나무 껍질까지 직접 벗기기는커녕 시장 장마당에서 사먹어야 하며 이조차 돈이 없으면 외상으로 사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41] 보릿고개 시점의 일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더라도 지나치게 치명적인 수준이다.
심지어 남한은 1950년대 ~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를 버텨나가기 위해 초근목피를 먹었다고 해도 시장에서 사서 먹지 않고 잠시 직접 캐서 먹은 것인 데다 잠시 먹다가 1960년대 후반에 식량 사정이 나아지자 차 끓여 마시는 용도 외에는 초근목피를 처다보지도 않았는데 2020년대의 북한은 나무껍질이 시장에서 식품으로써 버젓이 팔리는 판이니 60여 년 전의 남한보다도 훨씬 못하다고 할 수 있다. # #
그나마 추수철을 맞은 뒤 곡물가가 하락하면 '강냉이로만 지은 밥을 먹던 세대들이 조금씩 흰쌀을 섞어 먹고 있고, 강냉이죽을 쑤어 먹기도 어려웠던 집들은 강냉이밥을 먹게 되었다'며 어느 정도 먹는 상황이 나아진다지만 애초에 시골에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집조차 제대로 된 이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부터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 그런데 탈북 문학인 도명학의 증언에 따르면 1년 사계절이 다 보릿고개라 북한에서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고 가을에 (식량난이) 조금 낫다곤 하지만 그건 농촌에서지 도시 주민들에겐 시장 곡물 가격이 약간 떨어지는 정도 영향이 있을 뿐 배고픔은 면하지 못한다고 한다. #[42]
심지어 정찰위성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당정군 고위 간부들에게 선물로 배급하는 식료품들도 열악한 실정이다. 고기로 돼지고기, 닭고기는 지급하는데 소고기는 보이지도 않고 생선도 동태, 냉동 꽁치, 냉동 가재미, 임연수, 꽁치 같은 기본적인 것들만 제공하고 있으며 채소와 과일 역시 한국에서는 하층민들도 다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음식들이다. #1[43] #2 #3 당연히 최고위 간부들은 소고기를 제대로 먹을 수 있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긴 하지만...
김씨 3대가 국민들을 제대로 먹여살릴 의지가 없다는 것이 다시 드러난 것이 2023년 12월 4일 열린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김정은이 한 연설 〈가정과 사회앞에 지닌 어머니의 본분에 대하여〉 중 "('세기적인 낙후성의 대명사'로 되여있던 농촌[44]을 현대적으로 개변시키는 '역사적인 위업'을 위해) 올해에는 몇십 년동안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전국의 관개시설들을 복구하고 완비하기 위한 대규모의 공사들을 전개하여 농업생산토대를 닦는데서 큰 전진을 가져왔습니다."라는 언급이다. 그러니까 수십년 넘게 과도한 군사력 증강과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지도자 우상화에 돈을 쏟아부을 동안 국민들을 먹여살리는 데에 필요한 관개시설은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후에 "수령님께서는 전체 인민이 흰쌀밥을 먹게 하자면 서해연안의 간석지를 무조건 개간해야 한다고 밝혀주시였는데 간석지 건설[45]을 7~8년 사이에 완전히 끝내기 위해 우리 군대가 간석지를 맡아 건설하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고 언급하며 사실상의 이밥에 고깃국 드립을 친 것은 덤이다. 사실 김정은/발언 문서에 인용된 해당 연설문의 일부를 보면 알겠지만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완전히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이들과 식구들에게 항상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차려주고 싶어하는 어머니들의 소원을 풀어줘야 한다, 후대들이 더는 농경지부족과 먹는 문제라는 말 자체를 몰라야 한다는 식으로 북한 주민들이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하고 있음이 대놓고 드러난다.
사실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우리 세대는 저 하나의 안락을 찾기 위해, 직면한 오늘의 고생을 피하기 위해 적들의 간교한 설교와 끈질긴 압박에 못이겨 우리 공화국정권과 후대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을 대부(대가)로 개선된 가시적인 경제생활환경을 추구하지 않을것이며 천신만고한대도 우리는 자기의 선택을 바꾸지 않을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핵개발을 하던 상황인 만큼) 그만큼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하였고 귀중한 우리의 모든 가정들에 엄청난 생활난이 초래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고 언급하며 2020년대의 식량난을 사실상 공인한 것과 동시에 대놓고 핵개발이 민생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 이 연설 역시 김정은/발언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열악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분석도 존재한다. 북한의 쌀 자급률은 개발도상국치고는 높은 편이지만[46] 엘리트층 또는 도시민에 치우치고 농민과 지방에는 소홀한 '식량 접근성 격차'에 있다는 것이다. #
4.1.1. 2024년
2024년 1월 15일 소집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에서 한 시정건설에서 김정은은 "인민의 하늘같은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분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인민들의 소박한 생활상 요구[47]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북한의 식량난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스스로 인정했다. 외부에서는 내부의 불만을 간부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위기를 편법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로 보기도 한다. # 말만 하고서는 지원은 거의 안해주면서 경제 위기는 자기 탓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이다. #2024년 2월 23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농업생산성이 하도 안 좋은 나머지 중앙에서 중국 주재 무역일꾼들에게 한국산 밀, 보리 우량 종자를 수입해 오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겉으로는 한국을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선포하며 북한 국가 가사까지 바꿀 정도였으나 속으로는 몰래 한국산 종자를 수입하라고 할 정도이니 북한의 식량 사정이 정말 열악하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 이는 러시아로부터 밀 종자를 수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
2024년 4월 5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서 북한이 아직도 이밥에 고깃국을 이루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나온다. 식량 저축체계가 복잡해져서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기도 힘든 마당인 데다가 '국가비상식량', 공업용, 축산품, 의약품 생산용 식량까지 갖가지 식량들을 걷어내니 작황이 좋아도 주민들에게 공급할 식량이 없는 것이다. #
2024년 4월 12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먹을 것이 없어 어린 아이들까지 언감자 이삭줍기에 나서고 있다고 하며 돈주들이 농민들에게 곰팡이가 껴 팔지 못할 불량품 강냉이를 농민들에게 주는데 농민들은 이조차 감지덕지하며 먹어야 하는데 심지어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래 왔다고 한다.[48] 이를 전한 양강도 주민은 요즘 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전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49] #
2024년 봄 기준으로 자강도에서는 제사상이나 추석, 청명 등 특별한 때나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코로나 이전에는 1개월에 1~2번 수산물을 먹었던 게 악화된 것이다. 물론 이는 자강도가 북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
2024년 4월 19일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북부 지역의 취재협조자가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한 바에 따르면 양강도에서는 한 인민반(20~40세대)에서 약 3~7세대가 하루에 두 끼 이하, 옥수수죽 아니면 옥수수밥에 무, 감자, 시래기를 섞은 것으로 버티고 있으며 함경북도에서는 인민반의 약 40%가 어렵게 사는데 당국의 통제로 장마당이 위축되면서 과거 장사를 해 비교적 여유 있게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하루 벌이로 겨우 버티고 있고 취약계층들은 꽃제비가 되거나 사망하는 사람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
2024년 5월 29일에는 평안남도 농촌 지역[50] 주민들은 코로나 이후 어려운 생계를 유지하고자 개인 뙈기밭 농사에 매진해도 종자·비료값 상승과 고리대로 진 빚 때문에 생활이 개선되지 않아 먹을 게 없는 나머지 대부분의 가정이 산에 올라가 풀을 뜯느라 바쁠 지경이고 심지어 그 풀에 강냉이 가루를 쑤어 만든 풀죽도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맹물로만 연명하는 집들이 많다고 한다. 2023년 아시아프레스에 보도되어 많은 사람을 경악시켰던 나무껍질 연명과 유사한 일이 1년 뒤에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51] 이틀 후에 나온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모내기철인데도 평안남도에는 농장원들이 50%도 못 나오고 있으며 못 나오는 농민들의 상당수가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해서 일할 힘도 없다고 한다. # 북한의 수도권에 위치한 시골이 이 정도면 타 지역의 시골들은 이보다 더 참혹한 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4년 7월 4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회령시에서는 두부도 집에 손님이 올 때나 사 먹고 돼지고기는 설날에나 사 먹을까 말까 하는 정도라고 한다. #[52] 참고로 2015년 기준 중국에서도 정말 오지 중의 오지 시골에 사는 사람도 '이밥'은 한 달에 세 번, 고기도 1년에 세 번이나마 먹을 수 있었다. #1 #2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기상조건·저수지 상황[53] 등이 지난해보다 다소 개선됐고 외부로부터 우량 종자도 들여왔기 때문에 큰 홍수, 태풍이 없다면 작황은 2023년보다 좋을 것이라고 한다. # 하지만...
2024년 기준으로 평안남도 녕원군 인민위원회는 군(郡)내 5세 미만 아동의 50%가 식량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는 통계를 냈다. 녕원군이 산악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
2024년 7월 13~16일 취둥위 FAO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유엔(UN) 등 국제기구 관계자가 북한의 코로나19 봉쇄∙해제 이후 북한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대북지원 재개가 임박한 신호로 보인다. # 7월 17일 취둥위 사무총장이 북한에 농식품 부문에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
불행 중 다행히도 2024년에는 당의 지시로 인민위원회(지방정부)가 '절량세대'를 철저히 조사[54]하고 양강도와 함경북도에서는 식량이 떨어진 절량세대에 수 kg의 옥수수를 배급하게 하여 전년 대비 굶주림과 병으로 죽는 사람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올해에는 아사자가 없다는 협동농장도 있을 정도다. # 6월 말부터 수확하기 시작한 밀[55]·보리·감자가 7월 초부터 시장에 나오고 있는 데다 수입 곡물이 풀렸는지 곡식 값이 하락했다고 한다. #
하지만... 2024년 7월 25~29일 압록강 일대에 60년에 한 번씩 온다는 엄청난 홍수가 와서 북부 지역의 농경지 상당수가 물에 잠겨 식량난이 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그친 후 이어지는 폭염으로 병해 및 충해 등 2차 피해가 예상돼 생육 저하에 따른 일부 작물 가을 수확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 수해로 약 4000ha의 농경지가 유실되었으며, 이는 1만 명의 북한 주민이 일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쌀을 모두 잃은 것과도 같다고 한다. #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미국 농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적인 피해는 있겠지만, 전국적인 영향은 미미한 수준으로 올해 북한의 작황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일 거라고 한다. # 하지만 북부 지역 식량난이 악화될 가능성은 높다.
4.2. 남북의 1인당 평균 열량 섭취량 비교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기반한 1인당 평균 열량 섭취량 측면에서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 보면 처참하다. 남한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1961년 기준으로 1인당 에너지 평균 섭취량이 2,141kcal 정도로 하루 두 끼 정도밖에 먹지 못하던 빈곤국이었지만[56][57] 1973년까지 3,058kcal로 12년 만에 기존의 1.4배나 성장했고 10.26 사태가 일어난 1979년 기준으로는 3,142kcal로 하루 세 끼를 먹는 나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2018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평균 열량 섭취량은 3,420kcal로 통계가 잡힌 171개국 중 19위 수준으로, 이는 덴마크, 호주, 노르웨이, 스위스보다 같은 최상급 선진국들보다도 높은 수치다. #
반면 북한은 1961년[58] 기준으로 1인당 열량 섭취량이 고작 1,879kcal 정도였고[59][60] 가장 1인당 열량 섭취량이 높았던 1990년 기준으로도 1965년 남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2,370kcal[61]에 불과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6년 기준 북한의 1인당 열량 섭취량은 2,080kcal였으며 나머지 기간[62] 동안에는 2100kcal대 초반을 맴돌았다.[63] 그 후로도 북한의 열량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2018년 기준 북한인의 1인당 평균 열량 섭취량은 2,019kcal(171개국 중 166위)라는 처참한 수치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는데 북한보다 1인당 열량 섭취량이 낮은 나라는 잠비아, 우간다, 마다가스카르, 짐바브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이 전부다. 소말리아, 남수단,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시리아 같은 나라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감안해야 하지만 이를 감안하지 않아도 북한이 세계 최하위권 수준으로 열량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은 확실하다. # 2023년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는 이조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봉쇄의 여파로 1,982kcal로 떨어졌다. 북한 주민들은 60년 전에 비해서도 먹고 사는 수준이 사실상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
심지어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층의 부 독점이 자본주의 체제인 한국 이상으로 극심하고 '비교적' 잘 나가던 시절에도 나라에서 창출한 부를 권력에 빌붙은 사람들에게만 나눠주고 민중들에게는 쥐꼬리만큼만 나눠줬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두 끼 먹는 것조차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시피했던 셈이다. 그나마 상술했듯 2010년대 후반에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 경제체계인 장마당의 힘으로 스스로 삶을 일구어가며 하루 세 끼 이밥을 먹는 것은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대북제재 악화로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다만 FAO의 북한 식량난 통계에 대해서는 필드데이터가 아니라 대부분 인공위성 영상에 의존한 분석인 데다 설령 현지를 방문했다고 해도 재해가 심각한 지역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으니 통계가 부정확하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
5. 한편 '남조선'에서는?
백미밥과 소불고기, 김치, 수박 등을 제공하는 사설 노숙자용 무료급식 시설. |
- 고기 섭취량은 동아시아[64]에서 육류 소비량이 1위다. 물론 "고기가 풍족한가?"에 한해선 조금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인구 대비 육류 생산량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서 대체로 육류의 시중 가격대가 다른 식료품군에 비해 높은 편이라 2020년대에도 저소득층으로선 그리 쉽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 쉽게 말해 "라면 스프 분말이나 쇠고기맛 다시다를 물에 탄 것을 고깃국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된다. 물론 북한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풍족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며 남한엔 3~4등급 정도의 저등급 고기 정도는 100g당 2~4000원 사이라 저소득층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엔 이미 1,000원 대 가격의 고기가 들어간 음식도 편의점에 널려 있고 삼각김밥으로 부족하면 4,000원 내로 스팸이나 리챔 같은 프레스햄 통조림이나 오케이쿡 같은 소시지 가공육도 구할 수 있으며 한 끼 제대로 먹고 싶다면 정육점이나 마트에 가서 만 몇천 원 정도만 주면 낮은 등급 고기 한 근 정도는 사와 그날 하루 혼자 고기 파티 정도는 벌일 수 있다. 즉, 대한민국에서는 질의 문제일 뿐 극빈층을 제외하면 고기를 구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최상류층이 아니면 고기를 구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북한과는 비교 자체가 실례다.
- 수산물도 1인당 섭취량이 세계 최상위권[65]이다. 2020년대 전까지는 해물 요리가 발달한 일본의 인당 수산물 섭취량이 1위였으나 그 뒤에 역전되어서 2020년대 이후 한국인의 1인당 수산물 섭취량이 1위이고, 그 이전에도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수산물을 굉장히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유명했다. 명태는 명란젓을 빼면 아예 한국에서 주로 소비하고, 복어는 한일 양국이 90% 이상의 수요를 차지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칠레 등 해외 수산업계에서 한국 시장에 신경을 괜히 많이 쓰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한국은 자국 어획량이 인구 대비 많은 편이지만 소비량이 어획량을 한참 상회해서 해산물 수입도 활발한데 대표적으로 킹크랩, 명태는 러시아, 미국, 캐나다에서, 바닷가재와 닭새우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에서, 연어는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칠레에서 수입한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어획량이 많은 갈치는 모리타니, 세네갈에서, 문어도 모리타니, 모로코, 튀니지에서, 고등어는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꽃게도 튀니지, 그리스, 이탈리아[66], 장어는 튀니지, 그리스, 튀르키예, 이집트, 호주에서 수입한다. 신안 흑산도산 홍어는 매우 비싸서 아예 대부분의 홍어를 미국,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페루에서 수입한다. 골뱅이는 주로 영국에서 수입하는데 영국 본토에서는 소비도 안 되면서[67] 오로지 한국 수출만을 위해 잡을 정도다.
사실 1970년대 중후반[68]만 되어도 당시 사람들은 돈 좀 나갈 각오를 했겠지만 한국 대부분의 지역에선 지금의 북한보다 훨씬 더 많은 육류를 먹을 수 있었다. 저런 선전 문구가 그나마 통할 만한 곳은 정말 낙후된 시나 군의 변두리 지역밖에 없었지만 그런 곳조차도 1980년대 즈음이면 약발이 다 떨어지게 된다.[69]
당연히 어느 나라에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벅찬 빈민층은 존재하고 한국이라고 예외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컫는 "빈민층"은 세계 대다수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엄살 중의 엄살일 정도로 상황이 괜찮고 "너무 살찔까봐 덜 먹는다"는 개념은 상상도 못해본 북한 주민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들이나 6.25 전쟁 전후 세대들[70]은 헬조선과 같은 자국비하적 단어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이 강하다.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는 볼멘소리는 일제강점기 - 제2차 세계 대전 - 6.25 전쟁을 겪으면서 빈곤함은 물론 제대로 세끼 식사도 못 해 한 끼라도 든든히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고 보릿고개는 매년 찾아오는 연례행사에 초근목피로 겨우 버티다 아사하는 사람들도 속출하던 시절, 군부독재 시기 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상황에서 고문받거나 정권에 대해 비판했다고 대공분실이나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당하거나 옥살이 신세를 지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상황을 버티던 시기 혹은 북한 주민들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탄압당하는 상황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인 2010년대에 과거에 대한 반발로 경찰 공권력이 약해져도 너무 약해졌다고 시민들이 불평하는 시대에 생겨난 말이다 보니 세상이 개인에게 적대적이던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도저히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 빈민층'이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하류층 가족인 기택 일가도 피자 정도는 먹고 싶을 때 시켜먹고,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평양 귀족들만의 차별화된 특권이 스마트폰이고 피자 같은 '고급 양식'도 먹는데 한국에선 빈민층도 평양 상류층보다 더 좋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계속 이슈화하므로 빈곤 문제는 국정에서 무조건 다루지만 대한민국의 빈부격차 지수인 지니계수는 2023년에 0.33[71]으로 평균 이상의 양호한 쪽에 속한다.
북한에선 당연히 유튜브는 커녕 인터넷 사용 자체가 금지당한 상황이고 북한산 휴대전화의 성능도 좋지 못하지만 한국의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대부분 성능이 검증된 갤럭시나 아이폰을 사용하며 북한에서 어느 정도 사용되는 중국제 휴대 전화조차 백도어 등 보안 문제와 여러 논란으로 인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노숙자들조차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는데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도 잔반이 많이 남으며 노숙자들도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조금만 일하면 차와 술, 커피, 어느 정도의 외식 등 최소한의 기호 식품을 즐길 수 있는 부류들도 많고 정말 굶어죽기 일보 직전이라면 하다못해 노숙자 센터에라도 연락하면 최소한 배는 채울 수 있다.
한국에선 노숙자나 차상위 계층을 위한 각종 제도적인 사회안전망이 활발히 작둉되고 있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대다수의 공공기관, 공기업들과 일부 대기업들에서 복지 사업을 하기도 하고 여러 자선단체에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진짜 굶어죽으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굶어죽는 일은 정말 거의 없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통장에 돈을 다 쓰고 정말 한 푼 없이 2~3일 먹지도 못한 채로 행정복지센터를 가 보면 되는데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달려와서 라면 주고 담요 덮어주고 긴급생활지원금을 얻을 수 있는 방법과 각종 사회복지시설 연계 및 자립을 위한 취업지원까지 알선해 줄 것이다.
이렇다보니 탈북민 출신 유튜버 정유나는 자기 아버지인 정명운이 "남한에서는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라고 얘기했을 정도라고 언급했다. 의료시설이 뛰어나니 '죽을 사람'들도 소생시키고 사회가 어떻게든 굶어죽어 방치되지는 않게 하니 어떻게 죽겠느냐는 의미다.
몸이라도 건강하다면 급한대로 건설 노가다나 물류센터 상하차 같은 일용직이라도 구하거나 신체능력이 조금 떨어져도 편의점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당장에 쓸 푼돈이라도 벌 수 있다. 당장 편의점 알바만 해도 절대 굶어죽지는 않는데 시간당 만원 남짓한 알바비는 제껴두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나서 거래가 불가능한 폐기음식을 재량껏(사실상 마음껏) 꽁쳐뒀다가 퇴근할 때 가져와서 집에서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알바생들조차 폐기음식은 몇 번 집어먹다가 질려서 그냥 안 먹고 자기 돈 주고 밖에서 사먹기도 한다. 아무런 직장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최소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돈을 받을 수 있다.
맥도날드의 '짝퉁' 빅맥은 평양 귀족층들이 먹고 오리지널 빅맥은 김정일이 베이징 맥도날드에서 공수해 와 즐기던 걸로 알려졌는데 한국의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생들은 1시간만 일해도 맥도날드에 가서 북한의 최고존엄이 먹는 빅맥을 세트메뉴로 사먹고도 돈이 남으며 맥도날드에서 일하면 가끔 그런 햄버거를 공짜로 먹을 수도 있다.
심지어 맥도날드마저도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흔하게 있는 '수많은' 햄버거 프랜차이즈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맥도날드, KFC, 버거킹 같은 외국산 프랜차이즈들 말고도 롯데리아나 맘스터치 같은 한국산 햄버거 프랜차이즈들 외에도 한국산 수제 햄버거집들[72]까지 존재한다.
북한에서는 '맥도날드 짝퉁' 햄버거만 즐길 수 있듯이 맥주도 '수입맥주 짝퉁'인 대동강맥주만 즐길 수 있다. 물론 대동강맥주의 객관적인 퀄리티는 나쁘지 않지만 그것 외에 즐길 수 없다는 건 그만큼 선택지가 좁다는 뜻이며 비단 맥주뿐만 아니라 다른 주류나 수입 식품도 마찬가지다. 한국 맥주가 비판받는다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한국 맥주가 맛이 없어도 독일산, 네덜란드산, 벨기에산, 영국산, 아일랜드산, 체코산 맥주, 미국산 맥주와 일본산 맥주, 중국산 맥주, 대만산 맥주 등 타국의 맥주를 마음껏 구해서 마실수 있다.# 게다가 한국인 입장에서 수입맥주는 그냥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돈 몇 푼 주고 마실 수 있는 기호품 중 하나일 뿐이나, 북한 인민 입장에서 대동강맥주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사치품이다.[73]
와인 역시 마찬가지인데 한국산 와인도 퀄리티가 괜찮지만 돈을 조금만 더 쓰면 한국에서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예로부터 이름난 서유럽 와인이나 호주, 미국, 뉴질랜드, 남아공, 칠레 등 신세계 와인도 맛볼 수 있으며 지금은 한국산 와인도 수입산 와인만큼 괜찮은 게 많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의 문제는 음식이 너무 남아돈다는 건데 유통기한엔 원래 마진이 있어 유통기한이 경과한다고 바로 못 먹을 음식이 되는 것[74]도 아니지만 선진국일수록 그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아직 멀쩡한데도 버려지는 음식이 많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고 이를 지적하는 기사까지 실릴 정도다. 여왕의 교실에서 아쿠츠 마야[75]가 학생들 앞에서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공익광고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이 서울월드컵경기장 7개를 짓고도 남는다고 할 정도다.[76]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뼈말라'족을 다루기도 했는데 어떻게든 살을 빼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약을 사먹는 사례도 많고 이미 다이어트 산업은 거대해져서 TV든 인터넷이든 다이어트 광고 천지다. 심지어 현직 의사가 쓴 '1일 1식' 책이 나와 호평받기도 했고 모 드라마에서는 서로 만난 남녀가 나도 1일 1식한다면서 화기애애해지는 장면도 나왔다.
이젠 건강을 위해서 1일 1식을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한 끼만 먹고 절대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풍족한 식사는 한 끼만 하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때우라는 것이다. 소식도 아침은 간단하게 과일, 빵, 비스킷으로 때우고 점심이나 저녁을 많이 먹는 것을 의미한다.[77][78]
사실 1일 1식과 같은 소식 이론은 현대인들의 한 끼가 과거 한 끼에 비해 섭취하는 칼로리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농업 시절에 비해 운동량, 즉 소모하는 칼로리는 적어졌으므로 잉여 칼로리로 인해 비만이 되고 각종 성인병을 초래하기 때문에 하루 세 끼는 많다는 점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과 다른 서유럽 국가들처럼 한국에서도 정부나 지자체가 비만의 원인을 분석하고 비만율을 줄이고 푸드 데저트 문제에 대해 대응하고 있다. 즉, 비만이 사회 문제란 것은 뒤집어보면 그만큼 굶어죽기는 힘든 나라라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2016년 12월 KDI가 2008년 인구센서스[79]를 기반으로 내놓은 연구자료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북한 전체의 1인당 GDP(PPP 기준)는 948달러에서 1,361달러 정도로 추측[80]되는데 이는 2017년 7월 환율 기준으로 약 150만여 원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들은 1,200달러대, 즉 140여만 원 정도에 머물고 있다. # 더구나 2022년 UN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GDP는 고작 590달러에 불과한데 이는 콩고민주공화국, 말라위, 심지어 소말리아(!!!)[81]보다도 낮고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남한의 실질 1인당 GDP[82]를 2022년 가치로 환산한 것(약 566달러)과 엇비슷한 수치다.[83]
평양도 사정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평양의 1인당 GDP는 대략 2,715달러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같은 기간의 환율 기준으로 대략 300만 원 안팎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국이나 기타 선진국에서는 봉급 300만 원은 주로 월급 수준을 의미한다. 1년으로 환산하면 3,600만 원이 나오는데 달러 기준으로는 32,000달러이다.
한국의 2017년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이 주휴수당 미포함 시 6,470원, 주휴수당 포함 시에는 시간당 7,764원이니 근로기준법 기준으로 1개월간 법정 근로시간인 209시간에 맞춘 임금[84]만 받아도 약 162만 원을 받으니 한국의 1개월 최저임금이 북한의 평균 1인당 GDP(연소득)보다 더 높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더구나 2018년에는 최저임금이 7,530원, 주휴수당 포함 최저임금은 9,036원이라 이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고 2024년에는 9860원으로 순수 최저임금만으로도 월 206만원을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대학생들도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아서 자기가 쓰고 싶은 곳에 쓰고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85]
게다가 중견급 이상 기업에서 평양의 1인당 GDP에 해당하는 300~330만 원 정도를 세전 월급으로 받는 경우는 이미 허다하며 세후 월급으로 그 수준 혹은 그 이상을 받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고 수당까지 합치면 330만원 정도는 넘는다. 그래서 1인당 국가 총생산이 30,000달러 이상이 나오는 것이다.
GDP로 비교해 보면 2019년 IMF 통계 기준 한국의 1인당 GDP는 31,430달러, PPP 기준으로는 2017년 기준 39,446달러다. 같은 PPP 기준으로 비교하면 북한 전체와 무려 29배, 평양과 비교해도 무려 14.5배나 차이 나는 것이며 명목 기준 GDP조차도 한국의 1인당 명목 GDP가 이미 평양의 1인당 PPP 기준 GDP보다 10배 이상이나 크다.
여기에 의식주를 넘어 문화 생활 분야까지 비교해 보면 남북 간 차이는 처참할 정도로 벌어진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등의 국내, 해외 문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도 실컷 다닐 수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하면 문화 생활, 여가 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수준이며 이동의 자유도 없어 해외여행은커녕 북한 내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한다.
그나마 해외 문화는 오직 김씨 일족만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뿐, 어지간한 간부나 돈주들조차 해외 문화를 잘못 맛보기만 해도 반동으로 몰려 인생 끝장 날 수 있는 곳이 북한이다. 태영호 의원이 탈북을 한 이유는 자녀의 교육 문제도 있지만 문화 생활과도 연관성이 높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하류층은 해외여행을 가는 게 힘들지 않냐고 반박할 수도 있으나 적어도 TV 여행 프로그램, 유튜브,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서 해외를 구경하는 정도는 가능하며 영어나 제2외국어가 된다면 라이브 영상에서는 외국인과 채팅도 가능하다. 레고랜드나 디즈니랜드가 각 나라마다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으며 어트랙션을 1인칭으로 찍은 영상도 있으니 간접적으로라도 타볼 수 있다. 방구석에서도 간접 체험으로 견문을 넓히고 우물 안 개구리를 탈출할 수 있다. 마음먹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 언제든지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방송을 신청하면 BBC 월드 서비스 + BBC World News, CNN 등 외국 방송을 제한없이 볼 수 있다. 신청을 안 해도 유튜브에서 호주 ABC News, Sky News, CNN, BBC News 등을 볼 수 있고 돈만 더 내면 더 타임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국 신문을 인터넷으로 구독할 수 있다.
스마트폰 성능도 한국의 하류층이 북한의 귀족층보다 더 우월하지만 북한의 스마트폰은 성능을 떠나서 기능 자체가 사실상 없다.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셀 수 없이 다양한 앱이나 게임 등을 다운받을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북한에서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나 영상은 극히 제한적이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영상 역시 김일성 일가의 프로파간다 영상 및 북한 내부 매체에 한정되고 그마저도 웹브라우저나 인터넷과 같은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기능은 거의 이용하지 못한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인 한국과 달리 북한은 세계 최저이다. 당장 한국의 통신사들은 이런저런 상술이나 바가지도 많지만 5G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세계적인 스마트폰, 태블릿 PC, 네트워크 설비 제조사인만큼 통신 인프라 관련 연구에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SBS에서 북한 스마트폰 리뷰를 했으니 참고해 보자. '열람리력'에는 내가 지금껏 어떤 파일을 켰는지, 어떤 화면을 봤는지가 모조리 기록되며 삭제는 불가능하다. 2년 동안 보험이 적용되는데 제외조건 중 사용자의 잘못이나 위법행위로 몰수당하는 경우가 있다. 윤상현 의원의 비동의 녹취 금지법에 대해 여야 막론하고 비판이 있었고 법안은 사실상 철회되었지만 북한 스마트폰에서는 본인 스마트폰에 의해 녹취를 당하는 수준이 된다.
북한에서는 '언어 순화'를 프로파간다로 내세우는데 리뷰한 SBS 기자는 갤러리는 '화상서고', 메시지는 '통보문', 다운로드는 '내리적재'로 표기된 순화어를 보고 감탄한 것이 아니라 무리한 언어순화에 이질감을 느끼며 "이해가 더 안된다"면서 차라리 언어 설정을 영어로 바꿔놓고 진행하는 편이 수월하다고 했다. 그것도 그나마 한국어가 모국어인 원어민이라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온 말이지 한국어를 전공한 외국인 입장에서는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일본어는 외래어가 한국어에 비해 많은데 여권([ruby(旅券, ruby=りょけん)])이 아니라 パスポート(Passport), 화장실도 トイレ(Toilet)를 그대로 쓴다. 한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도 많은데 가마를 카마([ruby(釜, ruby=かま)])라고 그대로 쓴다. 북한마냥 외래어를 쓰면 민족 정기가 썩는다고 순화어에 집착하지 않으며 '료켄(여권)' 대신 '파스포토'가 더 많이 쓰이니 그걸 사용하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이 영어권에 종속되었다고 북한은 폄하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가 이를 지적하는 경우는 없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이나 일본은 G7, G20 국가이자 1인당 GDP 30,000달러 이상의 선진국이며 북한은 르완다만도 못한 최빈국일 뿐인데 굳이 언어순화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정신승리하고 한국을 깔보는 것은 오히려 임시정부를 계승한 합법적인 국가인 한국에 대한 열등감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설사 북한의 외래어 순화가 한국이나 일본보다 낫다고 한들 그게 그리 우월의식을 느낄 만한 것인가 하는 점은 둘째치고 북한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언어순화 역시 정말 한국보다 나은가 하는 점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북한에는 '누리집', '댓글' 같은 용어가 없고 무조건 순우리말만 쓰지 않는 '홈페지', '독자감상글'이라고만 하고 '다운로드'를 '내려받기'라고 하지도 않는다. 순화를 다르게 한 것이지 많이 한 것이 아니다.
'마우스', 'USB'는 똑같이 쓴다. 왜 이런 인식이 있냐면 북한에서는 남한은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라며 자신들도 언어 순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남한에서 언어 순화를 하지 않았다며 거짓 선전을 해댔는데 이것을 남한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정치적 목적에서 북한에서 안 쓰는 '얼음보숭이' 같은 단어를 실제 북한에서 많이 쓴다는 거짓말을 다시 하면서 과장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교육에서도 사실과 다르게 문화어의 이질성을 강조하기는 했다.
사실 영단어가 일본식으로 변형된 표현은 오히려 이 예시에서 보듯 남한이 많이 순화를 한다. '세타(스웨터)', '샤와(샤워기)', '바레이(발레)'[86]처럼 아예 남한에서도 모르는 일본식 외래어도 어문 규정[87]이고 한국식으로 순화한 어휘는 틀린 것을 넘어 반동적인 어휘가 된다. 북한이탈주민 중에는 이런 과대 선전으로 인해 북한 어문 규정이지만 외래어인 '고뿌(컵)', '아빠트(아파트)'가 순우리말인 줄 알고 남한에서도 저 선전을 사실인 줄 아는 등 영향을 제대로 받아 남쪽이 일본어, 영어 투성이라는 세뇌에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도 전세 내지는 월세로 살아가는 사람[88]이 과반수이다. 그나마도 온수, 냉난방, 인터넷, 전기, 전등과 벽지, 창문과 문 등의 기본적인 인테리어를 비롯해 갖추어져 있을 것은 전부 갖추어져 있고 북한처럼 5장 6기에 감탄하거나 정전을 걱정하거나 전월세 거래를 몰래 해야 하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바느질이나 수예를 좋아하는 케이스거나 소일거리로 옷 수선을 하지 않는 이상 예전과 달리 지금은 재봉틀을 집에서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발전소, 변전소 사정으로 정전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 한국전력공사에서 정전에 대해 미리 안내하고 몇 가구 이상이 정전된다면 뉴스에 나올 정도로 극히 드문 사례이다.
그걸 제외하면 옷도 너무 넘쳐나서 북한 기준으로 보면 최고급 재질의 의류가 한국에서는 매우 흔해서 아무나 다 입고 다니고 폐점정리나 옷 파는 차장수 등 저가형 의류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헌옷수거함에는 그런 옷이 가득 쌓이며 음식은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온갖 산해진미들이 쌓이고 널렸다. 심지어 사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면 치킨집을 차린다고 할 정도다.
결국 대한민국의 평범한 서민이 북한의 어지간한 고위급 간부보다도 훨씬 더 안정되고 넉넉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 역시 한국에서 누리는 모든 생활양식이 "당 간부들이 누리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할 정도다. 더 나아가 당 간부조차 상상 못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수준은 물론이고 많은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지상낙원' 운운하는데 그 지상낙원을 남조선에 와서 경험하고 있다"며 북한을 깔 정도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데 2011년 기준으로 평양 중구역에 있는 조선로동당 과장급 중간 관리[89]들의 방 3개+거실을 갖춘 집[90]의 질적 수준이 한국인 입장에서는 서민 아파트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비교 대상이 서울 강남3구, 양천 목동, 용산 이태원, 부산 해운대, 수영, 남구, 동래, 대구 수성, 인천 연수 송도신도시 지역의 고급 아파트[91]가 아니라 응답하라 1988에 나올 만한 80년대 빌라 수준이다. 21세기에는 1980년대에 건설된 노후된 아파트는 거의 재건축 확정 판정을 받는다. 물론 과거에 지어진 아파트가 유지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구조가 안정적이어야만 한다.
심지어 2000년대 후반~2010년대에 지어진 공공 주택[92]이 비슷한 시기 평양에 새로 지어진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신도시의 집보다 질적으로는 훨씬 나은데, 북한에서는 신축 아파트의 질이 한국의 공공 주택[93]보다도 더 열악한데도 이러한 집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돈 많은 자본가나 백만장자 아니면 권력자나 특권층의 친척 정도만이 가질 수 있는 수준인 것을 넘어 이들도 침을 흘리며 부러워할 정도라고 터무니없이 포장하고 있다.
북한에서 보도한 이 집들의 부엌 사진을 보면 명색이 아파트 부엌인데도 가스관이 없어 일반적인 주택의 가스레인지[94]가 아닌 캠핑에 가져가는 가스버너를 사용하는 판이며 현대 한국인들이 일반 냉장고, 김치냉장고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고, 설거지를 대신할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전자레인지와 오븐, 에어프라이어도 갖추고 있어 집에서도 빵, 피자, 스테이크, 로스트 디너를 구울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한에서는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질 저질 생선을 쓰는 초밥들을 북한에서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나게 하는 초밥'이라며 평양초밥전문식당이라는 식당에서 평양의 상류층들[95]에게 파는 것을 넘어 대외 선전매체에서 선전하는 실정이다. 당장 이런 수준의 초밥을 일식집이나 뷔페에서 취급하면 그 가게는 인터넷에서 조리돌림 당하며 문을 닫고 그런 식당을 내버려둔 식품의약품안전처까지 덩달아 욕을 먹어야 하는 수준이다. 비슷한 비교군이 마트나 푸드 코트 초밥[96]인데 적어도 마트 초밥은 신선도가 북한의 초밥과 비교하는 게 억울할 수밖에 없는 수준으로 높다.[97]#
2023년 10월 24일에 귀순한 북한이탈주민 어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속초에 도착하니 어선들이 목선이 아닌 철로 만든 어선이 대부분이라고 하고 있고, 어군탐지기나 GPS 수신기는 기본이며, 일부 어선은 사실상 반자동 그물 장치를 갖고 있다고 한다. 즉, 자동화가 상대적으로 더딘 어업에서도 생선을 어획해서 수족관에 보관하거나 냉장 및 냉동하는 인프라뿐만 아니라 어획 생산량이서부터 큰 격차가 나는 것이다.#
5.1. 의생활
1960년대 ~ 1970년대 산업화 정책[98]으로 인해 한국은 경공업 수출기지로서 기술을 쌓아올렸다. 이후 사회적 복리후생 및 생활환경의 상승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임금이 같이 올라가는 바람에 1980년대 이후 노동집약적 경공업은 쇠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경공업에서 중화학 공업 및 반도체 산업 등으로 발전시켜 살아남은 기업들은 온갖 기술을 흡수하여 중견기업 및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노동집약적 경공업과 자본 및 기술집중적 경공업을 모두 경험한 한국의 섬유 및 섬유 소재, 의류 생산 관련 기술은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제는 섬유 부분 기업들이 신소재나 탄소섬유, 화학소재 등에 진출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도 지금이야 이차 전지 전문 기업이지만 처음에는 산업용 필터 섬유 제조업을 담당했으며 제일모직[99]도 소재 부분에 집중하며 제일모직 구미공장은 과거 모직 공장에서 삼성SDI 소재 연구소 및 제조 공장으로 업종을 아예 전환했다.한국에서 시판되는 의류는 품질은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하다. 명품이나 맞춤 의상은 비싸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싼 것이 명품과 맞춤 의상이고, 최소한 서민이 일상 생활에서 입을 옷을 구하지 못해 거적떼기를 입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시장이나 옷가게, 백화점, 아울렛, 대형마트 자체매장, 인터넷 쇼핑몰 등의 구매처도 널려있다. 한국에서 구입하기 힘들면 해외 직구를 하거나 직접 유럽으로 여행가서 사면 되고 유럽에 못 가도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부가가치세가 적은 곳에 있는 쇼핑센터나 면세점으로 가면 된다.
패션 산업은 한국에서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꼽히는 산업 분야 중 하나인데 이는 세계적인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함께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북한은 아예 쳐다보는 것도 불가능한 정도다. 한국에는 명품 패션 산업이 서유럽에 비해 저조하다고 하지만 명품 산업은 미국조차도 유럽에 한 수 접어야 하고 역사성, 디자이너 간 교류가 가능한 환경이 중요하며 당연히 이러한 구조를 미리 쌓은 서유럽이 유리하다. 물론 최근에는 한국의 패션 산업이 일본, 미국과 비슷한 급으로 간주받는다.[100]
그나마 한국 기준에서도 비단옷은 서민이 입기에 다소 비싼 것이 사실[101]이지만 애초에 한국인들은 비단옷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데 대부분 반들반들한 질감이 부담스러울 뿐더러 관리[102]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한복, 넥타이, 스카프 외에는 천연 비단을 잘 쓰지 않고 오히려 실용성에 중점을 두어 고어텍스 같은 비싸지만 기능성이 있고 비교적 관리도 쉬운 재질을 선호하고 비단옷을 만들 때도 좀 더 내구성이 높은 인견 또는 혼방을 사용한다.
5.2. 식생활
김일성의 목표대로라면 1964년 300만 톤의 쌀과 20만 톤의 육류를 생산하여야 한다. 그 무렵 북한 인구가 1,200만 명 정도이니 1인당 1년에 약 250kg의 쌀과 약 16kg의 육류를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한국은 다른 식량자원은 몰라도 쌀은 자급이 가능한 작물로 1988년 6,053,482 톤을 생산한 것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역량이나 기술이 퇴보해서가 아니라 쌀 말고도 먹을 것이 더 많아진 탓으로 농민들이 다른 작물을 생산하거나 농지를 처분해서 다른 용도로 쓰게 된 것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오히려 생산과 소비 모두 줄어들어 쌀값이 떨어져서 농민이 울상을 짓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육류 소비량 통계는 더욱 큰 변화의 폭을 보여준다. 1960년대 한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kg 미만이었으나 대략 1980년대 후반쯤 김일성이 목표로 하던 정도의 육류 소비는 얼추 달성되었고 2020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2.5kg(전체 289만톤)으로 10배 이상 증가해 오늘날 한국인들은 김일성이 호언장담한 것보다 3.3배나 되는 고기를 먹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일부 분야는 남한의 60년대 수준의 식생활을 달성한 적조차 없다. 전술했듯 밀가루, 옥수수 등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원조라도 받았기 때문에 쌀이 부족한 경우는 있어도 혼분식을 장려하는 식의 운동을 펼치면 굶지는 않았던 것이다. 고향이 이북 5도인 실향민은 메밀이 없으면 밀로 면을 만들어 밀면[103]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심지어 앞서 언급했듯 남한에서 60년대에 굶지 말라고 개발된 라면[104]이 북한에서는 2010년대에도 다소 비싼 음식 취급이다. 한국 군인은 1969년부터 라면을 1주일에 한 번은 먹게 되었다.[105]# #
라면은 1970년대에 북한에서도 소량이 생산되었으나 2000년대부터야 북한에서도 좀 볼 수 있었다. 70년대~80년대 즈음 되면 남한에서는 라면이 좀 싼 음식이 되었으나 북한에서는 좀 잘 살던 2010년대조차 남한 70년대 이전처럼 국수가 더 싸다. 심지어 2021년에 그것도 무려 평양에서 밀가루 음식 전시회까지 열 정도면 평양 시민들조차 밀가루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판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인해 사실상 강제적으로 밀가루를 먹어야 했던 6~70년대 남한 시골 주민들보다도 2020년대 평양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더 열악하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이밥은 영양가가 별로 없다면서 오히려 잡곡밥이나 현미밥[106]을 먹고 고기 한 점 없는 멀건 국이 아니라 고기를 잔뜩 넣은 여러가지 국이나 탕이나 찌개를 먹고 산다. 보릿고개를 겪은 과거와 달리 배고프니 양을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깃국 자체를 음식으로서 즐기기 위해서이다. 반면 북한은 2009년 기준으로 명절에도 돼지고지 몇 점 뜬 국도 먹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하며 심지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거친 2020년대에는 이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
심지어 고깃국이 아니라 아예 고기덩어리를 통째로 조리해서 수육이나 찜을 해먹기도 하며 바비큐나 구이 요리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에 빠진 고기는 쳐다도 안 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지경이다.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고기를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다 보니 고기 부위를 지칭하는 말은 거의 모른다고 하지만 남한에서는 고기의 부위와 종류를 자세하게 가려 먹는다. 즉, 양보다도 질을 더 따지며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을 벗어나 먹기 위해 사는 단계까지 진입했다.
대도시나 중견도시 번화가는 물론이고 시골 읍내에 가도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것이 고깃집, 치킨집[107], 국밥집, 감자탕집[108], 횟집이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이나 식당은 막말로 전국 어디를 가든 있다. 급식·학식·구내식당·편의점 도시락, 심지어는 노숙자 무료급식에도 쌀밥과 고기가 나오고 있다.
덤으로 한국 노동자가 최저임금만으로 불과 두세 시간 일해서 받는 돈으로 갈 수 있는 고기 뷔페에선 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무작정 많이 먹는 걸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고기뷔페 고기는 질기고 냄새나고 더부룩하다고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지역이나 매장에 따라 다르지만 최저임금 3~5시간치 정도의 웃돈을 쓴다면 레스토랑에 가서 한우 스테이크, 로스트비프도 썰어볼 수 있다.
평범한 북한 주민의 시점으로는 "고기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거 아니냐"며 기절초풍할 일이다. 당장 북한에는 고기가 없다 보니 고기의 질을 따질 여유가 없고 고난의 행군[109]시절에는 새나 물고기를 잡는 건 물론이고 땅에 파묻은 썩은 고기와 폐사한 동물의 고기까지 뜯어먹을 정도였으며 드물게 인육을 먹었다는 증언도 있고 이후에도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유사한 증언이 제기되기도 했다.
2023년 12월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북한의 하루 평균 열량 섭취량은 1982kcal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1987년 조사 이래 처음 있는 일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달성하지 못한 수치이며 동시기 한국(3156kcal)의 6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북한인의 하루 열량 섭취량은 한국인의 절반에서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하며 일일 열량 섭취 권고량인 2000kcal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한민국 국군 병영식은 전투력 유지를 위한 식사가 의무[110]이고 그 식사의 식단에는 밥은 기본이 백미밥에 맛의 다양성을 위해 가끔 다른 곡물을 이용한 밥이 나오는 정도이며 반찬에는 체력 향상, 근육 생성에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 즉 육류가 반드시 포함된다. 즉, 한국군에게는 쌀밥과 고기 섭취가 의무이다. 대량조리이고 조리병의 숙련도가 모자라 맛없어서 '짬밥'으로 유명한 한국군 병영식도 북한에서는 좌관급 군관 정도는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한다.[111]
전투식량의 발전도 남달라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60년대에는 김치를 통조림에 담을 기술조차 없어서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녹물 나오는 김치 전투식량을 만들어야 했지만 21세기에는 한국군의 전투식량은 동결건조 기술이 세계급이고 한국군 전투식량 기술의 모델이었던 미국의 전투식량인 MRE보다 훨씬 맛있어 발열팩 전투식량은 전역자들도 종종 민수용 버전을 사먹을 정도, 즉 조금 개선하면 민간용으로 쓰기에 충분할 정도라는 수준의 평가를 받을 정도가 되었다. 반면 북한군의 전투식량은 여전히 맨밥과 소금, 그리고 무절임이 끝이고 일부 특수전 병력에게 외제 전투식량을 수입해서 줄 뿐이다.
이를 통해 생긴 결과가 양측 군대에서 건장한 군인만을 모은 접경지역 군인의 체격 차이다. 그것도 그나마 가장 우수한 인민군 병사와 중간 이상의 한국군, 미군 병사와 비교하는 것인데 대충 봐도 국군·미군 장교가 북한군보다 머리 하나 반은 더 크며 이런 체격의 차이가 바로 더 무겁고 강력한 장비를 메고 오랫동안 전투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남북한 군인들은 외관상으로도 격차가 상당한데 남한 군인들은 엄선했다고 하더라도 기본 180cm는 되는 반면 북한 군인들은 엄연히 한민족의 유전자가 있어 160cm만 되어도 장신이라는 주장은 과장이지만 남한 남성들은 180cm 정도가 평균보다 6cm 정도 큰 수준에 불과하지만 북한 남성들은 166cm 정도가 평균[112]인 남한 50년대급의 키를 자랑하는 것이다.즉, 북한에서는 쌀밥에 고깃국이 상류층이여야 간신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인 것에 반해 한국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옛 말이 된 것이다. 물론 한국의 물가가 비싸지기는 했어도 노동을 할 수 있다면 고기를 못 먹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당장 오늘 나기 위한 쌀 한 톨도 보기 힘든 북한과는 정반대로,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너무 잘 먹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되는 것 때문에 소식이 권장되기까지 하며 먹다 남은 음식물을 버리는 데 부담이 없어 음식물 쓰레기가 사회 문제가 될 정도다.
한국은 너무 잘 먹어서 과식 혹은 영양불균형으로 인해 비만이 되어 당뇨병 같은 성인병이나 암 등으로 고생하고 반대로 북한은 너무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것이 남북의 차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북 모두 식습관 문제로 고생하는데 남한은 과식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일이 생길지언정 아무튼 당장의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고,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운동기구를 사서 쓰거나 운동시설에 등록을 하거나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건강 유지에 신경 쓸 수 있고 돈을 아끼고 싶다면 시간을 투자해서 많이 걷거나 뜀걸음을 진행하고 이후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의 여러 운동을 병행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배가 고파도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영양실조로 고생하고 운이 없다면 아사할 지경이다. 쉽게 말해 "후회할 건덕지조차 없고, 후회할 권리조차 못 누리는 곳"이 북한이다.
5.3. 주생활
한국에는 평양 아파트 붕괴사고로 대표되는 북한의 부실 공사와는 비교가 불가능하게 좋은 주거시설이 많다. 한국은 못 사는 사람에게도 최소한 국민임대주택이나 행복주택같이 북한 기준으로는 호화주택급의 주거시설을 제공한다.[113]사실 북한에서 자랑하는 평양의 신축 아파트들이 대놓고 호화주택으로 만든 경루동을 제외하면 남한 입장에서는 서민 아파트보다 못한 수준인데 이런 집들을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백만장자들도 침을 흘리며 부러워할 수준'의 호화주택으로 뻥튀기하고 있으니 질적으로 따지면 '북한 기준으로' 호화주택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실공사로 인한 붕괴 사고가 있긴 했으나 2000년대 전후로 건설사고에 경각심을 가지고 아예 기준을 넘지 못하는 건물들은 싹 헐어버리도록 정책으로 유도하고 있다. GS건설이 순살자이로 대표되는 부실공사를 저질렀음이 발각되자 영업정지 10개월 처분을 받긴 했지만 이조차 역설적으로 남한에서 부실공사를 저지르는 건설 회사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이제는 내진설계를 기본 매뉴얼로 설정하고 있다.
단순히 건물을 튼튼하게 잘 짓는 것을 넘어 21세기에 들어서부터는 건축물의 디자인이나 거주자의 건강 같은 요소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물론 건설 자재들의 성분을 꼼꼼히 분석해서 관련 업체를 규제하는 등 돈이 더 들더라도 인체에 안전한 소재들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석면 사용의 전면 금지가 대표적인 예시다.
물론 미국, 일본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에 비해 프리츠커 상을 못 탔고 세계적인 건축 설계 전문 회사가 없다고는 하지만 건축 시공 등에서는 한국이 우수한 것이 맞고 지금도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는 많은 한국인 건축사들이 세계적인 건축가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으며 세계적인 건축 설계 회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예 건축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 시스템이 없는 북한보다는 훨씬 낫다.
친환경 소재는 고사하고 철근 콘크리트에 넣을 철근이 없어서 저급 각목 따위를 대신 집어넣어 주택을 부실하게 짓는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삼성물산이 세계 최고층 건물들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타이베이 101, 부르즈 할리파를 시공했고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과 롯데월드타워도 남한 건설사에서 시공할 정도로 건설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는 1970년대 중동 특수 시절부터 의뢰처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기와집과 같은 건 시골에서 가끔 보이는 폐가, 전통 문화 보존을 위한 한옥 마을, 문화재, 일부 개인의 선호를 충족하기 위해 일부러 개량형 한옥으로 짓는 경우를 빼면 보기 힘든 수준이 되었고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은 서양식 주택을 선호한다.
그 한옥들도 대부분 현대식으로 개조되어 있거나 편의 시설이 있어서 전기나 수도는 기본적으로 쓸 수 있다. 하회마을에서도 위성방송, 기가비트 인터넷 다 된다. 하회마을 등 문화재나 종로구의 고급 한옥들은 부촌 아파트나 서구식 단독주택과 가격이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
위생시설의 경우 한국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양변기를 갖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가정들이 비데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평양 및 북한 내 대도시의 주요 건물들 위주로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어 있으며 상당수의 가정들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 대한민국/경제
- 남북통일/경제 문제
- 천리마 운동
- 지상락원
- 강성대국
- 세상에 부럼없어라 - 이밥에 고깃국 발언이 처음 나온 시기와 비슷한 1961년에 나온 북한의 선전 가요.
- 베이퍼웨어
- 고난의 행군
-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
- 북한/경제
- 한국군 vs 북한군/경제력 비교
[1] 당시는 문화어가 제정되기 전이라 의존 명사도 붙여 쓰는 지금의 문화어와는 달리 과도할 정도로 띄어쓰기를 많이 한 것을 볼 수 있다. 북한이 어문 규범을 제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화어와 별도의 규범이 있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화어도 띄어쓰기 규범을 기존 규범에서 바꾼 것이지 달라진 점은 크게 없다.[2]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의 당면 과업에 대하여-1962년 10월 23일 최고 인민 회의 제3기 제1차 회의에서 한 김일성 수상의 연설」, 『조선 중앙 년감』, 1963, 조선중앙통신사, p. 29. 발췌[3]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고기국 하면 떠올리는 설렁탕이나 순대국, 육개장, 뼈해장국등 고기와 채소를 듬뿍 넣고 푹 끓여 먹는 그런 음식이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다. 기껏해야 평양냉면 육수만도 못한 묽은 국물을 요리랍시고 먹는 정도의, 영양가라고는 맹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그것조차 매일 먹는 게 부의 상징이었다(...)[4] 애초에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던 1970년대 중반 이전에도 경공업은 이미 남한보다 뒤쳐져 있었다. 아니, 경공업 분야만큼은 북한은 남한을 앞선 적 자체가 없다.[5] 물론 부족한 생산량은 미국에서 염가에 원조, 수입하는 밀가루가 보충했는데, 혼식이나 분식을 강조하는 풍조에서 굶주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 때부터 다시 국수, 만두가 인기를 끌었고 빵집이 성업을 이루기 시작했다. 물론 그 결과 한국의 밀 농업은 그야말로 사장길에 접어들었고, 미국, 캐나다, 호주로부터 밀을 수입하게 된다. 대신 쌀의 식량자급률 100%를 넘겼다.[6] 북한은 2010년대에도 라면이 사치품이었는데 남한처럼 밀을 수입하는 역량이 북한 정부에 없기 때문이다.[7] 초기에는 남한에서도 짜장면보다는 많이 저렴하지만 사치품이긴 했다. 검정고무신 라면편을 보면 사치품으로서의 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가 혼분식 장려 운동을 기점으로 아예 이것을 서민의 식사로 만들기로 하여 본격적으로 라면이 서민 음식으로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전무송 같은 배우는 '가난한 예술가에게 가장 은혜로운 음식'이라고 칭하기도 했었다.했다[8] 저곡가 정책, 새마을운동이 농가 소득 상승과 물가 조절을 같이 고려한 것이다. 괜히 새마을운동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호평을 받고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이 아니다. 박정희의 노동 정책이 비판받는 점은 일부 부자 및 기업주, 정치인들에게 부와 권리를 편중시킨 독점 정책, 그런 생활 수준 차이를 고정시키려고 한 것과 하위계층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등한시한 것 등이다. 전태일 분신 사건도 이러한 복리후생 미흡과 비인간적 장시간 근로에 대한 비판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적어도 먹는 것은 그 시절과 지금의 북한 노동자보다도 훨씬 나았다.[9]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단점이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초기 산업화 국가는 모두 거쳐가는 수준의 문제이다. 당장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만 보아도 비슷한 문제가 굉장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문제인 것은 달라지지 않으니 노동법 개정과 정부의 감시로 환경을 개선할 필요는 있었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노동환경은 변하고 있다.[10] 지금은 반대로 한국을 경제 성장의 성공 사례라고 평가한다.[11] 독재정권 시기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할 가능성에 대한 표현으로도 쓰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민주화를 이뤄낸 뒤에는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별명이 되었다.[12] 미군정을 맡은 인물들이 전부 군인 출신인 데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행정 경험이 없어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못하던 한국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13]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제과점의 빵 같은 퀄리티는 전혀 아니고 단순히 옥수수 가루를 반죽하여 굽거나 쪄낸 가끔 길가다 보이는 옥수수 술빵과 비슷하지만 좀 더 조잡한 느낌의 퍼석퍼석한 빵이었다. 중국 농민공이나 건설 노동자들이 먹는 만터우와 같다고 보면 된다.[14] 당시 동독의 생활 수준은 서독에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1950년대 이후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공산권에서는 가장 잘 사는 축에 속했으며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다. 경제력이 자유진영 국가인 영국과 대등하게 살던 국가였다.[15] 1958년생. 현재는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이다.[16] 물론 이민복은 '인민을 배불리 먹이는 게 정치인데 왜 이게 나쁘다고 하지?'라며 이상하다고 느꼈다.[17] 각 기관·공장·협동농장 등 최일선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사상·선동 사업을 하는 말단 간부[18] 당장 주체농업으로 인해 밀을 재배하기 좋은 황해도, 평안북도, 평안남도의 평야 지대를 황폐화시켰고 주요 밀 수출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 튀르키예는 대북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역시 대북제재에 참여하면서 별반 다를 것이 없고, 심지어 러시아조차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현대식 농법을 시행했으면 밀, 보리나 낙농 제품 등 혼합 농업은 성공했을 것이다.[19] 게다가 기쁨조의 야한 의상도 서방제 명품이었는데 난잡하고 음란한 기쁨조 파티가 끝나고 나면 이 명품 의상들을 소각해 버렸다.[20] 김정일도 최고급 초밥을 아주 좋아했지만 링크 속 식당은 김정일이 사망한 지 5년 뒤 때문에 생겼기에 김정일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북한산 생선을 쓴 초밥은 단번에 맛없다고 화를 냈던 김정일의 일화를 보면 아주 틀리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21] 맥도날드 할머니로 알려진 권하자가 맥도날드에 계속 있었던 이유도 권하자가 젊을 때인 1970년대에는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고 이에 따라 맥도날드는 고급 식당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오른 21세기에는 한국 맥도날드는 그냥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가서 사 먹는 곳이다.[22] 물론 맥도날드는 가난한 사람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빌 클린턴이나 도널드 트럼프와 같이 정계 거물들도 좋아한다. 빌 클린턴은 원래 하층민 출신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어도 트럼프는 엄연히 부유층 출신임에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좋아한다. 물론 트럼프는 시간을 아껴쓰는 것을 선호하고 뉴욕 맨해튼에서 세계적인 부동산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인데다 담배와 술을 안 하는 대신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23] 한국에서는 뉴욕 등 미국 동북부 지역을 여행 시 들러볼만한 맛집 느낌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쉐이크쉑이 2016년 7월 22일 신논현역 가까이에 처음 입점했을 때 줄섰던 적이 있으며 일본 여행 시 들러볼 만한 맛집 느낌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모스버거가 2012년 상륙했을 때도 줄을 섰던 적이 있다. 물론 사람들이 입점 초기엔 호기심에 가 보긴 했어도 여전히 맥도날드가 인지도나 접근성, 가성비 면에서 압도적인지라 쉐이크쉑과 모스버거는 초기에 화제가 되었던 것에 비해 생각만큼 그리 매장이 확장되지는 않았다.#[24] 삼태성청량음료점, 만수교청량음료점[25]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중공업 시설들과 다른 공산권 국가들의 풍부한 원조를 기반으로 남한보다 월등한 경제상을 보여줬다.[26] 북한에서 경제 무역 지구로 선포한 곳인 만큼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적용하고 있다.[27] 라선시, 신의주시, 평성시, 삼지연시[28] 이 기자는 아예 국제기구가 식량난을 과장하여 후원금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며 정부도 이런 기관의 주장에 동조하지 말고 대북 지원도 일방적으로 베푸는 식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9] 2018년에 탈북한 탈북자 116명을 조사한 결과다. 하루 한 끼 이하를 먹는 사람이 단 두 명에 그쳤던 것과 달리 90% 가까이가 하루 세 끼는 먹을 수 있다고 하고 69%가 거의 흰쌀밥을 먹던 데다(25%는 쌀에 옥수수를 섞어 먹었고 6%는 거의 옥수수만 먹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고기를 먹었다는 사람도 46.6%에 달했으며 고기를 한 달에 한두번만 먹어본 사람은 30.2%, 심지어 거의 매일 고기를 먹었다는 사람도 15.5%에 달했다. 탈북민의 대다수가 북중 접경지역 출신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검문도 뇌물 등으로 뚫어서 국경에서 가장 먼 연평도 건너 황해남도 옹진군에서도 금을 채취하여 중국에 팔 정도가 되었다. 황해북도 소재지 사리원시 일대에서는 '일공'이라는 일용직으로도 일하는 인근 농촌 주민도 있었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의 조사에서, 탈북민에게 지역별 생활수준을 추측하라고 하면 중심도시 중 국경도시에 탈북이 흔한 혜산시가 북한 내에서도 매우 폐쇄적인 도시인 강계시를 제외하면 가장 못 산다고도 하였다. 다만 이를 보다못한 김정은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핑계로 다 때려잡으면서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일궈간 민생이 모조리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30] 장마당을 통해 한류 컨텐츠 등 민감한 정보가 유통되고 '서비차'라는 것이 등장하여 이들이 바치는 뇌물로 려행증 제도가 무력화되기도 한다. 사실 주민들은 '배급을 기다리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장사에 몰두하고 북한은 경제난이 심각하여 공무원들에게 급여도 제대로 못 주니 공무원들도 살기 위해 뇌물을 받아먹으니 못 막는 것이다. 북한 당국도 이미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나 이것마저 건드리는 순간 이번엔 진짜로 체제가 위험해진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결국 보여주기성 견제만 찔끔찔끔 때리는 게 고작이다.[31] 상술한 링크에서도 당국의 배급이 아니라 '시장'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식량공급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대중(對中) 식료품 수입액이 증가했고 돼지고기 시장가격 안정세가 유지돼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늘었다는 것을 그 요인으로 언급하고 있다.[32] 당 간부에게는 끝까지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자원이 돌아가서 이 와중에도 크게 굶어죽지는 않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신념이 강한 순진한 사람들이 많았다.[33] 위성사진으로 북한의 모든 읍내에서 시장의 모습이 확인된다. 중국에서 북한과 음성적으로 무역을 하는 사람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거래를 하는 것이며, 실제 물류 유통망까지 확인된다. 안 그랬으면 배급이 끊긴 내륙 사람들도 진작에 모조리 굶어죽었을 것이다. 정부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고 화폐개혁 등으로 이것을 아예 없애려던 것이 실패하여 한동안 방치되던 것이다. 2010년대 후반 정도에는 통제가 심한 국경지대보다 좀 나은 모습도 포착되었으며 2020년대 정도에면 김주애의 세습이라도 비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함경남도 바닷가의 국경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하던 목선으로 탈북한 탈북민이 증언하기도 한다.[34] 일례로 야간 위성 지도를 보면 북한에서 조명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이 평양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도 인구 20만의 한국 기준으로 중도시인 춘천, 경산, 거제, 경주는 커녕 소말리아의 모가디슈를 위시한 아프리카 최빈국들의 수도보다도 못하다. 평양 인구가 대구와 비슷한 250만 대이고 평안남도 인구가 부울경과 비슷한 800만 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교 대상이 인구 28만 대인 춘천이라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열악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35] 실제로 김정은 시기에 '번화하는 평양의 모습'으로 알려진 모습들은 절대다수가 평양 중심부 일대의 모습들이다.[36] 북한이탈주민들이 태영호의 케이스처럼 교육 문제로 인해 탈북하는 사례도 많다. 이들에게는 6평, 9평 기출과 수능 기출이 매우 중요하다.[37] 참고로 북한에서는 김정일,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 시기 야전차량에서 쪽잠을 자고 무말랭이가 든 소박한 줴기밥(주먹밥) 한 덩어리로만 끼니를 떼우며 인민들과 동고동락했다고 거짓 선전하고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양심이 찔렸는지 김정은이 집권 중에도 줴기밥으로 끼니를 떼운다는 선전은 문자 그대로 김정숙이 절세미녀라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드물다.[38] 물론 중심구역과 주변구역에 따라 배급되는 옥수수의 양과 질 차이가 크다고 한다.[39] 실제로 북한 정부의 경제적 통제가 덜한 채 주민들이 스스로 삶을 일궈나가던 2010년대 후반은 이밥에 고깃국을 거의 달성했던 상황이었다.[40] 이조차 남한 기준으로는 사료 수준밖에 안 되는 저질 옥수수를 쌀알 크기로 으깬 것을 감자 으깬 것이랑 섞은 것으로, 쌀 함유량은 0%이다.[41] 여담으로 그 나무껍질이 1kg에 북한 돈으로 700원으로 남한 돈으로 환산하면 약 104원 정도에 불과한데 이는 북한에는 그 100원도 없는 최빈곤층까지 있다는 말이다.[42] 고난의 행군 이전 북한의 배급제에 대한 증언도 있다.[43] 첫째 링크에 따르면 과학자들의 가족들은 전술한 수준의 선물을 보고 '당과 원수님으로부터 최상의 영광을 받아 안았다', '남편들을 뒷바라지한 보람을 처음으로 느꼈다'며 눈물을 흘렸고 평안남도(기술자의 고향으로 보인다) 사람들도 과학자들이 선물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고급 물자들은 평양에 있는 상층부들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일 거라면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다만 '내려진 고기, 과일, 채소들이 다 신선하고 최상급이었다'는 언급이 있긴 하다.[44] 탈북자들이 북중 국경 인근에서 국경 인근에 있는 (김정은이 보여주기식으로 꾸미지 않은) 북한 농촌들을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모습들을 말하는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북한 농촌 영상들은 영락없는 남한의 5~60년대 수준이다. 김정은이 보여주기식으로 꾸민 농촌 주택에 사는 농민들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판이라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다.[45] 김정은 시기에 시작되었다.[46] 정확히는 국내 쌀 소비량 대비 쌀 순수 자급률은 95.1%로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다.[47] 쉽게 말해 하루 세 끼 쌀밥을 제대로 챙겨먹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존에 먹던 것 이상으로 질 좋은 고기요리를 먹고 싶은 것을 '소박한' 식생활 요구라고 표현하는 것은 북한 실정에서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48] 즉슨, 북한 역사상 가장 민생이 좋았다고 알려진 2010년대 후반조차 농촌에서는 굶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49] 엄밀히 따지자면 제대로 먹지 못해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쉽게 걸려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 죽어나갔다는 것으로 보인다.[50] 기사에는 강동군(다름아닌 평양의 행정구역이다!!!), 성천군이 언급되었다.[51] 여담으로 같은 날에 데일리NK에서는 북한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한국 아이돌 노래를 돌려듣다가 징역 15년/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전했고 정규 언론에서는 2024년 북한 대남 오물 풍선 살포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에 북한의 대남도발, 인권 탄압, 경제난 관련 역대급 소식들이 모두 전해진 것이다.(...)[52]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나선 군인들에 대한 지원을 명목으로 주민들로부터 식량 등의 물자를 수탈해간다는 내용이다.[53] 2023년 북한은 관개배수 개선 사업을 벌인 바가 있다.[54] 2024년 3월 말 혜산 시내 동사무소에서 먹을 것을 요구하는 노인들이 매일 같이 모이게 되자 경찰을 투입해 해산시키는 소동이 있던 것의 영향이라고 한다. #[55] 로동신문에서도 '전례 없는 밀 풍작'이라고 선전했고 실제로도 밀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56] 당시 기준으로는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케냐, 방글라데시보다도 못 먹는 나라였다.[57] 2018년 기준으로 이 수치는 라이베리아, 예멘, 아이티, 베네수엘라, 차드랑 동급이다.[58] 이밥에 고깃국 구호가 나오기 바로 전년인 데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구호/선전 가요가 나온 해인 만큼 북한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어느 정도 살 만해졌다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이었다.[59] 당시 기준으로는 라오스, 캄보디아, 아이티, 베트남보다 못 먹는 나라였고 파키스탄, 온두라스와 동급이었다.[60] 2018년 통계 기준으로 짐바브웨와 동급이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외에는 전혀 적수가 없는 매우 낮은 수치다.[61] 2018년 통계 기준으로 말라위, 탄자니아, 시에라리온과 동급이다.[62] 1995년, 1997~1999년[63] 나라 자체가 전란도 없이 장기간의 기근을 겪은 것에 비하면 열량 섭취량이 매우 높고 열량 감소폭도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은 기근을 겪었다고 하기엔 매우 적기에 조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거나(참고로 북한의 인구, 출산율 통계는 조작 의혹이 있다) 식량 분배 과정에서 생긴 문제 때문에 커진 기근일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64] 간혹 중앙아시아로 분류되는 몽골을 포함한 수치다.[65] 다만 해조류를 포함한 수치라 이에 대해서 다소 이견이 있다.[66] 2023년 미국산 블루 크랩이 이탈리아 연안으로 흘러와 조개를 잡아먹는 등 생태계를 교란시키자, 이탈리아 측에서는 게를 잡아 요리에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폐기해버렸다(이탈리아 요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게를 잘 먹지 않으며 자국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보수성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를 본 한국 네티즌들이 '차라리 한국으로 수출해라!'라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 2024년부터 한국으로 이 외래종 게들을 수출했다.[67] 골뱅이 어업에 종사하는 모 영국인 선장에 의하면 골뱅이는 자기 할머니 발톱 씹어먹는 듯한(...) 느낌이라고 한다.[68] 꼭 선진국 단계로 갈 필요 없이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 단계로만 넘어가도 의식주와 같은 기초적인 생활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7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은 이미 최빈국 단계를 뛰어넘어 한강의 기적으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신흥공업국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먹는 문제는 경제력보다는 유통정책과 농업환경, 물가정책의 문제가 더 크고, 이러한 문제들은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여서 경제가 조금만 성장해도 가장 먼저 보완할 수 있다. 당장 동남아시아도 단백질 섭취는 충분히 하고 있으며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많이 낮음에도 고기 섭취량은 한국보다 훨씬 많은 나라들도 존재하는데 주로 튀르키예, 동유럽,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국가의 대부분은 농목축업 생산량이 많고 식재료 물가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정책이 시행되기 때문이다.[69] 1980년대에 시작한 MBC의 전원일기를 보더라도 음식은 충분하다.[70] 2020년대 기준으로 70대 이상[71] 0 ~ 1 사이의 값을 지니고 있으며 낮을수록 소득 분배 정도가 균등함.[72] 특히 USAG 험프리스, 부산 해군기지, 진해 해군기지, 오산 공군기지, 캠프 워커 등 주한미군 부대 주변 기지촌에 가면 수제 햄버거집들이 많다.[73] 즉, 애초에 한국 맥주를 비판하면서 하는 농담 중 하나가 "한국 맥주가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건 국가보안법 위반 사유 아니냐?"는 건데, 북한은 저런 농담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경직되었을 뿐더러, 경제적으로도 일반 인민이 대동강맥주를 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낙후되었다.[74] 물론 유제품처럼 유통기한이 짧은 일부 제품은 유통기한이 얼마 안 지나도 빠르게 변질되기도 하지만 그런 제품들도 보관만 잘 되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바로 못 먹게 될 정도까지는 아니다.[75] 한국판 여왕의 교실에선 마여진[76] 탈북민들이 음식 쓰레기 언급이나 기사만 나오면 분통을 터뜨리고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데 북한에서는 그런 음식들은 먹는건 고사하고 구경도 못하기 때문이다. 탈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프로그램이 KBS1의 6시 내고향인 이유 역시 대도시나 중견 도시가 아닌 작은 농촌, 어촌 등 시골에서도 입구부터 집앞까지 콘크리트, 시멘트,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고 집집마다 가전제품, 자동차, 스마트폰이 다 있고, 단독주택, 전원주택조차 난방, 냉방, 수도, 전기, 위성방송 등 있을 인프라는 다 있기 때문이며, 경작 및 어로 활동에서도 제약 없이 기계를 쓰고, 무엇보다도 음식이 남기 때문이다.[77]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생활하며 놀라는 사실이 이것인데 건강 때문에 '안 먹거나' '적게 먹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로 그야말로 어떻게든 먹고 살기위해 나무껍질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나 먹을만한 것들'은 닥치고 입에 넣으려고 몸부림 치는 곳이 북한인데 대한민국에서는 건강을 목적으로, 자기 관리를 목적으로 안 먹거나 적게 먹는다는 사실에 그저 할말을 잃는다고 하며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사는 같은 민족이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나는 생활을 하게 되었느냐?"라며 한탄한다는 증언이 나온다.[78] 한 예시로 남한에서 먹는 잡곡밥이나 보리밥은 북한에서는 쌀을 구하기 힘들어서 쌀로는 밥을 하기 어려운데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 '그나마 귀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서 먹는 것이고 품질 역시 불량하여 먹기조차 거북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한에서 살면서 이곳 사람들이 '건강에 좋지 않다'며 손사래치는 흰쌀밥을 선호하는 이유도 흰쌀밥 한 번 원없이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어서다.[79] 북한이 유엔인구기금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것이다.[80] 심지어 1인당 PPP는 1인당 GDP보다 높게 나오는 게 거의 원칙 수준이다. 이를 감안하면 북한의 실제 1인당 GDP는 이보다도 낮을 수 있다는 말이다.[81] 1인당 GDP가 592달러로 집계되어 북한보다 2달러 정도 높다.[82] 약 51.6달러[83] 전후에도 50년대 한국은 현재 가치로도 실질 1인당 GDP가 600~700달러대를 맴도는 극빈국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은 시기 북한은 2022년 이전까지 내내 600달러대의 1인당 GDP를 유지했다.[84] 법정 근로시간인 209시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할 시에는 주휴수당을 제외하고 임금을 지급하면 불법이다.[85] 서울대학교, 교원대, 교대, 지거국 등 등록금이 1학기 기준 300만원 내외인 곳에서는 과외 수입으로 학비를 충당할 수 있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가족 없이 대학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교육대학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이다.[86] 한국에서는 아예 프랑스어의 예시를 차용했다.[87] 당장 일본어식 외래어의 대부분은 미국, 영국과 교류하면서 영어식으로 전환했거나 프랑스어, 독일어의 사례를 활용했다.[88] 이는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다보니 그런 것이다.[89] 한국으로 치면 3~4급 공무원이다.[90] #[91] 같은 해에 남한에서 지어진 아파트가 한남더힐, 해운대 두산위브 더제니스, 해운대 아이파크이며 2년 전에 범어동 두산위브 더제니스가 건설되었다.[92] #1 #2(이하 국민임대주택) #3(보금자리주택)[93] 다만 출처인 자주시보가 북한에 과도하게 우호적인 언론이란 것은 감안해야 하는데 김정은이 6개 국어를 통달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북한의 주장을 사실인 것마냥 주장하고 있으므로 저택 사진을 제외한 글들은 비판적으로 독해하기를 권한다.#[94] 당장 농어촌 지역에서도 가스레인지는 기본이다. 일부 고급 주택에서는 인덕션과 오븐을 사용한다.[95] 상술한 것처럼 북한에서는 물고기도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보급해야 하는 판이란 것을 감안하면 초밥을 먹을 만할 정도로 재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일 가능성이 높다.[96] 물론 오마카세 등 고급 일식 레스토랑에서 만든 초밥의 품질이 좋지만 마트 초밥은 애초에 고급 컨셉이 아닌 가성비 위주다 보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래도 대형마트의 브랜드와 직결된 데다 마트 식품 코너 수요의 핵심 중 하나다 보니 절대로 위생 상태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일부는 백화점과 동일한 컨셉, 브랜드를 공유하기 때문에 퀄리티도 신경쓰며 그 만큼 가격도 올라간다.[97] 북한에서는 재료를 빠르게 전달한할 도로, 트럭은 물론 재료를 냉동 상태로 신선하게 보관할 전기도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예 수족관이 트럭에 있는 활어차를 이용해서 주방에서 뜬 신선한 활어회를 선호한다. 선어회조차도 위생 관리를 신경써서 생선의 숙성을 진행한다.[98] 경제계획/대한민국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1970년대 당시에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포스코를 비롯한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중화학 공업 등에 대한 집중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이다.[99] 후신이 삼성물산 패션부분과 삼성SDI 소재 부분, 삼성전자 소재 부분, 삼성전기 소재 부분이다.[100] 북한 장마당에서 은밀하게 팔리는 한국산 의류는 고가로 거래되며 특히 한국산 속옷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한국 브랜드의 브래지어와 팬티는 북한 생산품보다 압도적으로 질이 좋으며 주로 중국을 통해서 육로로 들어오고 있다. 북한 상류층이 혼수를 준비할 때 필히 마련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가 한국산 한복이다.[101] 하지만 신분제 시절에는 아예 입지도 못한 것에 비하면 훨씬 낫고 시장 등에서 비단 원단을 구입하여 직접 한복을 만들어 입는다면 10만 원도 채 안 든다.[102]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비단은 단백질 덩어리인 만큼 알칼리와 자외선 등에 취약하다.[103] 부산, 김해, 양산의 향토요리가 밀면이다.[104] 일본의 명성식품과 삼양식품이 협력했다. 그 뒤에 농심, 팔도는 그 뒤에 나왔다.[105] 심지어 당시 군인에 대한 처우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여 매일매일 7명 이상의 군인이 죽어나갈 정도였다. 그런 시절에도 남한 군인이 북한의 일반인보다 더 잘 먹었다는 셈이다.[106] 2020년대 들어서는 가격도 그 취향 따라 쌀보다 잡곡과 현미가 비싸졌다고 말이 많다. 한 예로 교도소에서 주는 식단이 콩밥이었는데 이마저 콩 값이 올라서 쌀밥으로 바뀐 지경이다. 참고로 다른 음식 없이 쌀밥만 먹으면 각기병에 걸린다.[107] 심지어 치킨집은 매장 수가 한때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 총합보다도 많았을 정도로 곳곳마다 넘쳐난다.[108] 특히 감자탕용 돼지 등뼈는 국내산도 부족해서 독일,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아일랜드, 덴마크, 캐나다, 미국, 칠레등 수많은 나라에서 수입까지 한다.[109] 당시는 고기의 품질은커녕 출처조차 따지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소든, 돼지든, 사람이든.[110] 할랄/하람, 코셔 푸드, 힌두교 기준 음식 규범이나 라마단 같은 종교적 이유, MRI 촬영이나 내시경 검사 예정이 있는 등의 이유로 꼭 금식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식사를 해야 한다. 종교 문제와 개인 체질상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식품은 당연히 안 먹는 게 맞고 실제로도 종교 문제와 알레르기가 있는 병사에겐 다 빼 준다.[111] 재료 자체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보다 평균 품질이 더 높다.[112] 오히려 키가 큰 지방을 북한이 지배하게 되어서 남한의 일제강점기나 전근대보다 약간 큰 것으로 보인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람도 저정도 키는 된다는 것이다.[113] 사실 어지간한 원룸만 해도 북한 대부분의 주택보다 튼튼하고 쾌적할 가능성이 높다. 기와집 별장도 시골에 있는 것을 장만하면 2~3억 정도의 가격에도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