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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26 14:05:58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1. 개요2. 특징3. 장미

1. 개요

Expecting democracy to bloom in Korea was like expecting a rose to bloom in a trash can.
1950년대 영국 언론에서 한국 정치를 비평한 유명한 문구.

2. 특징

대부분이 알고 있는 형태인 위의 문구와는 조금 다르게 1951년 10월 1일에 영국 더 타임스에 실린 War and Peace in Korea라는 기사[1]에서 6.25 전쟁의 결과 예측과 한국 평화의 가능성을 논하며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자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한국의 폐허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생겨나길 기대하는 것 보다 더 합리적이다"[2]라고 아래와 같이 평한 것이 발단이다.
파일:더타임스 1951년 10월 1일자 기사 캡쳐.png

이 문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지 1955년 10월 유엔 한국 재건 위원회(UNKRA)에 참여한 벤가릴 메논 인도 의원이 전후 한국을 일주일 정도 시찰하고 후일담을 증언하며 “한국에서 경제 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이 문구를 인용했고, 1960년 4.19 혁명,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에도 외신은 쓰레기통 속 장미에 빗대어 한국 소식을 전했다.#

1966년 미국의 언론인 출신 해외 홍보청장 칼 로완(Carl Rowan)은 6.3 항쟁한일기본조약 등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가리켜 쓰레기통 속 장미를 언급하는 내용의 논평을 12월 14일자 이브닝 스타 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1968년 한국이 종합 제철소를 지으려고 할 때에도 세계은행 아시아 지역 실무 담당자로 자문을 하러 온 영국인 존 자피(John Jaffe) 박사가 "한국이 종합 제철소를 짓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하며[3] 한국의 종합 제철소 건설이 경제성이 없다는 평의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3. 장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강의 기적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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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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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경무대로 향하는 시위대.[4] 서울의 봄[5]
파일:횃불행진하는 학생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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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광주의 학생들[6] "아! 나의 조국"[7]
[카드뉴스]쓰레기통에서 피어난 꽃 한송이, 민주주의 꽃 피운 4.19 혁명

대한민국은 쓰레기 더미속에서 아름다운 장미를 피웠다.

위 보고서로 인해서 세계은행의 차관 제공이 결국 무산되자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일본한테서 얻어낸 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전용해서 제철소 건설을 강행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포스코다. 포스코는 후에 너무나 큰 결실을 맺었고, 1988년에 한국을 재방문한 자피 박사는 보고서를 작성한 때로 다시 돌아가도 보고서를 똑같이 쓸 거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지금 다시 보고서를 쓴다 해도 그 때와 똑같은 보고서를 쓸 것이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모르고 지나친 박태준과 포스코가 상식을 초월하는 짓을 하는 바람에 내 보고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

그리고 이렇게 박정희 정부가 경제성장에 목을 맨 이유는 군사독재에 앞서 시민들이 독재자를 몰아낸 4.19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재자들이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강조한 반공 민주 교육은 항상 독재자를 끌어낼 학생운동을 탄생시켰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서 2.28 의거, 3.15 의거가 있었고 독단적인 한일수교 시도에 맞서 6.3 항쟁이 일어났고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서울의 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기성세대 역시도 선거를 통해서 여당의 경제적 실책이나 독재 강화가 있을 때면 야당에게 유의미한 견제 능력을 주었다. 즉, 서구 사회는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한국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미숙하다 생각했지만 한국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민주화의 기반을 만들고 독재정권을 흔들어왔다.

1987년, 6월 항쟁 시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6.29 선언을 보도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 속에서 빛난다."[8]라는 표현을 집어넣기도 했다. "쓰레기통"에서 민주주의를 향해 끝까지 몸부림친 국민의 의지가 마침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장미를 피워낸 기적이 된 셈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문민정부를 거친 후 한국은 세계의 자유, 민주주의지수, 언론자유지수에서 아시아 국가 중 5위권 안에 들어서는 명백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공교롭게도 진흙 속 연꽃이 피어난다는 관용어가 존재한다. 더 타임스는 현재 한국선진국으로 경제적 발전을 하고 정치적 발전을 한 것, 한국 문화호평을 받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에 따라 이 용어가 한국을 비하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발전한 한국을 호평하는 것이며 중진국 함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격언이 되었다.

심지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국민들에 의한 평화로운 촛불 집회가 이어지고, 이를 막기 위한 어용 집회가 도리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갔으며, 이후 성공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점, 12.3 내란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큰 문제 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이의 영향으로 포스코는 사화를 장미로 정하고, 포항시도 시화를 장미로 제정하였다.
[1] 유료 구독을 통해 읽을 수 있다.[2] It would be more reasonable to expect to find roses growing on a garbage heap than a healthy democracy rising out of the ruins of Korea[3] 사실 당시 한국의 1인당 GDP가 200달러도 되지 않았다. 2024년 가치로 환산해도 1788달러 수준.[4] 3.15 부정선거를 기점으로 촉발된 이승만정권의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한 운동이다. 이후로도 몇 십년간이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지만, 이날의 행진은 제3세계에서 최초로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첫 승리로써, 훗날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학생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5]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15년간 절대왕권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면서 재야 정치권, 언론계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고대했지만, 찾아온 것은 전두환신군부의 등장이었다.[6] 박정희의 충성세력이었던 신군부가 서울의 봄을 무참히 짓밟고 새로운 독재를 시작했으며, 그들에 의한 불법적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부당한 공권력에 대해 광주와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촉발된 민주화 운동이다. 이미 오랜 군부독재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은 언론은 광주의 시위대를 폭도들로 일축하였고, 시위대는 계엄군들로부터 끔찍한 학살과 폭력, 고문행위를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참상은 기적적으로 독일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필름 카메라에 담긴 채 세상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으며, 그의 취재와 영상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날조하려는 시도를 저지하고 오늘날의 평가를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7] 신군부 전두환 대통령이 영원히 그 자리에 앉기 위한 최종 방법을 시행하려하자, 전두환과의 더이상 협상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을 깨달은 국민들이 일으킨 마지막 운동이다. 너무나 뚜렷하고 확실한 불씨를 손에 쥔 국민들은 6월 10일날을 기점으로 밖으로 나가 거리를 가득 메웠으며, 27년간 굳건히 지켜온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마침내 신군부를 몰아내고 제 6공화국 체제에 들어서며 오늘을 안았다.[8] South Korea’s democracy shines through in a cri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