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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 |
<colbgcolor=#CCA63D> 영어 | <colbgcolor=#ffffff,#2d2f34> Seolleongtang, Ox bone soup |
일본어 | ソルロンタン,雪濃湯 |
중국어 | 先农汤(先農湯), 雪农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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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만찬, 만찬, 만찬이라고 별다른 게 있나요.
돈 버리고, 속 버리는 양주보단 막걸리가 좋고, (좋고!)
설렁탕 한 그릇에 김치를 놓으면,
배불리 먹고, 술기운도 낫고, 만찬이 아니겠소.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리지 마시오.
상다리 부러지면은 나는 못 고친다.
- Y 아무도 못말려 - 설렁탕
돈 버리고, 속 버리는 양주보단 막걸리가 좋고, (좋고!)
설렁탕 한 그릇에 김치를 놓으면,
배불리 먹고, 술기운도 낫고, 만찬이 아니겠소.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리지 마시오.
상다리 부러지면은 나는 못 고친다.
- Y 아무도 못말려 - 설렁탕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 따위를 푹 삶아서 만든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
- 표준국어대사전#
소의 여러 부위를 넣고 끓여내 밥과 함께 내놓는 국이다. 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사골과 도가니를 위주로 양지를 주로 국거리로 쓰며, 10시간 정도 가열하면 고기와 뼛속에 있는 성분이 흘러나와 국이 유백색을 띠게 된다. 삶은 소면[1]을 같이 넣기도 한다. 식당에 따라서 다르지만, 처음부터 밥을 탕에 말아서 내놓기도 한다. 이것을 토렴이라고 하는데 밥에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것을 몇 번 반복해서 밥을 따스하게 데우고 간을 배게 하는 것이다. 파를 자주 띄우는데, 이유는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히 전통식으로 하는 설렁탕집에 가면 누린내 때문에 먹기 다소 거북한 경우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가격대가 약간 애매하다. 대개 한 그릇에 8천 ~ 1만 2천 원, 특(곱빼기)은 2천 원 정도 추가한 가격대이다. 설렁탕 전문점에 가면 기본적으로 만 원 이상 하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부담없이 점심메뉴로 고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서민적인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순대국밥이나 뼈해장국 한 그릇이 8천원에 육박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소고기와 부산물로 끓인 설렁탕이 비싸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특별히 튀는 구석이 없지만 지나가다 생각나면 한 그릇 정도 먹어볼 법하고, 일반 가정집에서 요리하기에는 부담스러우며[2],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개성이 없어서 특출나게 잘하는 집을 지목하기도 힘든 데다 여러 꼼수를 사용하기에도 좋으므로, 곳곳에 많은 설렁탕 전문점들이 있다. 매우 비싼 값을 받는 설렁탕도 있고, 상상 이상의 낮은 수준을 보여주는 설렁탕을 파는 가게도 종종 있으니 주의를 필요로 한다. 특히 유동인구(뜨내기 손님)가 많은 지역의 설렁탕 가게 중에는 인스턴트 설렁탕 가루조차 아낀 멀건 국물을 설렁탕이라고 팔아먹는 곳도 있다.
노인들이 좋아하고 약간 점잖게 뜨끈한 국물 한 숟갈 먹고 싶을 때 먹는 음식이지만, 의외로 1920년대에는 편하게 먹는 패스트푸드라는 인식에 가까워서 점잖은 중년층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체면 때문에 눈치를 보며 몰래 시켜 먹었다. 심지어 일본인 관리들까지도 그랬다. 당시의 설렁탕집이 비위생적이었던 환경인 면도 있고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조선이 망했지만 오래토록 이어온 신분제 인식은 여전했다. 설렁탕 사업은 주로 소를 잡던 백정과 옹기를 만들던 토기장이들이 협업하여 생겼는데, 두 직업 모두 조선 시대 때는 천한 사람들이니[3] 양반 출신이든지 졸부든지 관계없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드나들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현대의 짜장면처럼 배달시켜 먹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시켜 먹었던 것을 보면 맛있긴 맛있었나보다.
현대에서도 대기업 간부를 위시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치킨이나 피자를 손에 들고 뜯어먹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된다. 특히나 이런 현상은 1929년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기고된 글에도 나온다. 제목이 괄세 못할 경성(京城) 설넝탕이라는 점만 봐도, 설렁탕을 그 당시 먹는 것은 다들 어느 정도 백안시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 곰탕과 설렁탕의 구분
제대로 된 설렁탕과 곰탕의 비교 시식 결과
설렁탕은 곰탕과 비슷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곰탕은 고깃국물 설렁탕은 뼛국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설렁탕은 뼈와 도가니를 많이 넣고 끓이기 때문에 국물이 탁하고 희고 뽀얀 색깔이 특징이다. 하지만 시판되는 레토르트 식품 중 곰탕이라고 쓰여있는 것은 사골국물 위주라서 탁한 국물의 설렁탕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곰탕의 경우 사골을 사용하더라도 고기와 같이 끓이다 보면 색깔이 다시 투명해진다.
이처럼 곰탕 혹은 곰국과 헷갈리는 이유는 지역에 따라 설렁탕을 곰탕 혹은 곰국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상도 지방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뼈를 고운 뽀얀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른다. 경상도 지방에선 영천곰탕, 진주곰탕, 현풍곰탕 등이 1950년대 즈음 거의 비슷한 시기 뽀얀 곰탕을 상업화하여 내놓은 것을 보면 경상도에선 이런 스타일의 곰국이 곰탕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뼈나 고기 등을 오래 끓여서 진액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끓이는 국을 곰국이나 곰탕이라고 한다. 이는 '고다'는 말(고으다 『구급간이방언해』[1489])에서 '고은 국', '곰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자어로 해석하여 '고(膏, 기름)를 낸다.'고 하는 설이 있지만 문헌적 근거는 없다. 곰탕 가운데서도 한양 지방에서 특화된 조리법으로 뽀얀 국물로 우려내는 탕을 특별히 설렁탕이라고 부른다. 즉 설렁탕은 곰탕의 하위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설렁탕은 사골이나 도가니 등을 고운 뽀얀 국물을, 곰탕은 하동관이나 나주곰탕에서 보듯 고기나 내장을 삶은 맑은 국물이라고 구분하면 된다. 그러나 뽀얗고 하얀 국물이라도 사골 곰탕이나 소머리 곰탕이라고 부르는 것도 있는데 곰탕이 넓은 개념이므로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곰탕과 설렁탕을 구분하기 힘든데, 그 이유는 요식 업체들이 판매 중인 곰탕과 설렁탕이 위와 같은 사전적 정의와는 다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곰탕과 설렁탕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먹어봐서는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곰탕은 거부감이 높은 기름을 줄이고 설렁탕 국물처럼 사골 국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설렁탕도 내장이 냄새가 나고 유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빠지고 고기만 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이점을 꼽기 어렵다.
2. 유래
설렁탕의 표기는 '셜렁탕', '셜넝탕', '설넝탕', '설녕탕', '설농탕(雪濃湯)', '설농탕(設農湯)' 등 1950년대까지 통일되지 않고 사용되었다.
2.1. 선농제 기원설
조선 시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에서 끓여 먹은 고깃국 - 조선요리학(1940)
흔히 퍼진 설로는 선농단 설이 있는데, 이 설에 따르면 조선 시대 선농단[4]에서 조선의 왕이 초헌관으로 행사 및 제사 의식을 진행하고,[5] 제사가 끝난 후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우골(牛骨)을 고운 뽀얀 소고기 국물을 나눠주고 거기에 밥을 말아 먹었던 것이 시초로 이를 통해 사람들이 선농단에서 만들어져 먹게 되었다는 탕(湯) 음식이라고 하여 선농단의 '선농(先農)'을 본떠 '선농탕(先農湯)'이라 불렸다가 후에 발음이 더 쉬운 '설롱탕'을 거쳐 '설렁탕'으로 바뀌어 불렸던 것이라 한다.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설농탕'이 (현대에도 있는 상호 '신선설농탕' 등)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변하는 중간단계의 발음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설이 발전하여 고기를 좋아한 임금 세종이 친경 이후 만든 음식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선농단에서 친경을 끝낸 후 잔치를 열었던 것은 맞지만, 이 설이 등장한 것은 1924년에 신문기사에서 처음 등장하고, 조선 시대에 쓰인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이나 일반 문헌에서는 존재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당시 농업사회였던 조선에서는 소가 굉장히 귀했기에 국가 단위에서 소를 잡는 것을 금기시했다.[6] 더군다나 친경이라는 매우 엄한 규범에 따라 진행되는 행사에서 왕이 직접 부리는 소를 잡아서 국을 끓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조선요리학이라는 책 자체가 사료로서의 가치는 크게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예법을 중요시 했던 조선시대에는 문묘의 제사를 위해 소를 반촌에서 매일 도축했다는 기록도 있으므로, 선농제의 제사를 위해 소를 잡는다는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수 있다.
증거가 비록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기록으로 등장하지만, 많은 일반인들이 정설로 알고 있는 설이다. 사실 학자들 사이에선 의견이 갈리지만, 다른 설들도 증거가 명확하게 있진 않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가장 그럴듯한 스토리가 있는 이 설이 지지받고 있다. 제기동의 설렁탕 식당들 중에는 아예 선농탕이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팔기도 하며, 상술한 선농대제에서는 설렁탕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하고 동대문구에서 운영하는 제기동 선농단 역사문화관 역시 설렁탕이 선농단 기원이라고 설명하며 동대문구청장이 매년 직접 선농대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포털도 마찬가지.#
2.2. 몽골 기원설
육당 최남선에 의하면, 몽골에서 맹물에 소를 삶아 먹은 음식을 술루라고 불렀고 이것이 고려로 넘어오면서 설렁탕의 어원이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설 또한 검증된 것은 아니나, 1970년대에 설렁탕의 선농단 기원설에 대해 국어학자가 반박하면서 대신 이 설을 지지했던 기록이 보인다. 덧붙여 이 슐루의 한자어 표기는 공탕(空湯)이라고 되어 있어 곰탕 또한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이 학설에서 중점적 요소가 되는 '술루'(설루 또는 슐렁이라고도 불린다)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하자면 술루란 과거 몽골 제국의 정복활동 당시 몽골 기마대가 식사를 할 때 먹은 음식이 원형으로 커다란 솥에 물과 곡물가루, 소나 말 등의 뼈와 고기를 넣고 끓인 일종의 고깃죽이다. 기마대 중심으로 빠른 기동력을 살렸던 몽골제국은 일반적인 보급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장기간의 원정에 짐이 되는 식량을 동반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에 소나 말 등을 끌고 다니며 방목하다가 끼니때가 되면 소나 말을 잡아서 말에 싣고 다니던 곡물가루와 같이 끓여 먹는 것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했다.
이러한 몽골 제국군의 식습관이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고, 몽골의 침략과 고려 후기에 유행한 몽고풍의 영향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설이다.
지금 전해지는 술루는 양고기와 양 창자를 함께 넣고 끓인 고깃국의 일종으로 현재의 설렁탕과는 실제 모습이 확연하게 다르다. 다만 오래도록 불교국가라서 도살법도 모르던 고려 시대 사람들이 고기 종류까지 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몽골에서는 반탕(bantan)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설렁탕의 조리법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반탕의 모습제작과정
2.3. 설농탕(雪濃湯) 유래설
설렁탕을 상업적으로 파는 가장 오래된 가게인 이문설농탕[7]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눈(雪)처럼 희고 진한(濃) 국물(湯)'이라는 의미로, 요리를 완성한 뒤 모습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는 것. 모음동화로 설농탕이 설넝탕이 되고 자음동화로 설렁탕이 되었다고 주장한다.2.4. 설렁 설렁 유래설
설렁탕이라는 단어는 원래 "설렁"이라는 단어와 탕이라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설렁"은 한국어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하는 의성어이며, 탕은 육수나 국물을 뜻한다.설렁탕의 어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일하면서 먹었던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느릿느릿하게 일을 하면서 힘을 소모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즉석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소고기나 육포 등을 넣은 국물을 끓여서 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느릿느릿 일하면서 먹게 된 음식이라서 "설렁"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국물이 매우 진하고 푸짐하다는 점에서 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 일각에선 주장한다. 허나 설렁탕이 뼈를 오랜시간 우러낸 탕이라 농민들을 위해 "빠르게" 만든 건 아니며, 육포를 쓴 건 더더욱 아니라서 신뢰성은 떨어진다.
설렁탕, 수라상의 어원 고찰 (김기선,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7)
3. 일제강점기 경성의 패스트푸드
위 영상 내용에 대하여 황교익이 감수를 맡았다. |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
- 1924년 10월 2일《매일신보》
- 1924년 10월 2일《매일신보》
쇠머리 수프(설렁탕)는 정말 좋은 것으로 닭고기 수프나 우유가 그에 미칠바는 아니라고 한다
- 1908년 조선만화 중에서,우스다 잔운
- 1908년 조선만화 중에서,우스다 잔운
집에 갈 노잣돈이나 자기 마누라 치마 사줄 돈이라도
설넝탕을 사 먹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것이다.
걸상에 걸터앉으면 일분이 다 못되어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식 앞에 놓인다.
- 별건곤(別乾坤) 경성명물집 (1929년)
설렁탕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설렁탕은 오늘 날의 햄버거나 짜장면처럼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대중화되었다. 전쟁물자 보급을 위해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식용 소고기 생산정책이 시작되어 육우들이 대량생산되자 경성에도 정육점이 크게 늘게되었고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팔고 남은 뼈와 부산물들로 만든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설넝탕을 사 먹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것이다.
걸상에 걸터앉으면 일분이 다 못되어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식 앞에 놓인다.
- 별건곤(別乾坤) 경성명물집 (1929년)
당시 기름기 가득한 탁한 국물에 간장 대신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파와 고춧가루를 고명으로 얹고 밥을 말아먹는 설렁탕은 초기에는 "값이 싸고 품위가 없는 음식"이라고 천대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설렁탕의 저렴한 가격[9], 빠른 서빙[10], 슴슴하면서도 중독적인 감칠맛의 삼박자에 서민들은 빠져들어 곧 설렁탕을 취급하는 가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1930년대엔 경성에만 설렁탕집이 100여개가 넘어 종로와 청계천 주변에 빼곡하게 들어서게 되었다.
결국 그동안 체면 때문에 설렁탕집에 드나들길 꺼렸던 양반, 모던보이, 모던걸들과 심지어 조선 내의 일본인들까지 설렁탕을 집이나 회사에서 주문해 먹기 시작하며 거리마다
그렇다고 서민들도 마냥 부담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는 김첨지의 아내가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부탁하고, 그날따라 돈벌이가 잘 된 김첨지가 설렁탕을 사오는 장면이 나온다. 즉 설렁탕은 인력거꾼과 같은 하층민들의 경우 운 좋게 돈벌이가 잘 되었을 때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 마냥 구하기 쉬운 음식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설렁탕 한 그릇의 가격이 담배 한갑 가격과 거의 맞먹었기 때문에 매일 담배 한 갑 이상을 피울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 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사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겐 음식을 조리해 먹지 않고 사서 먹는다는 매식(買食) 개념이 오늘날과 비교해 확고하지 못했다. 조선은 말기까지도 화폐경제가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 특히 식자재는 거의 자급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관리나 상인 등 외지에 나갈 일이 많은 직업이 아닌 이상 외식을 하는 경우, 그것도 잔치 등에 초대받아 얻어먹는 경우를 제외하고 직접 돈을 내고 사먹는 경우 자체가 일년에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 외식 자체가 부담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외식이 흔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에 사먹을 수 있었던 음식중에선 하층민들도 벌이가 좋은 날이나마 사먹을 수 있었던 게 설렁탕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저렴한 부류에 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좋아했던 한국 요리이기도 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 때문에 설렁탕을 먹게 되는 일본인들이 제법 많았다. 야인시대에서도 극중 일본인 경찰 마루오까가 "조선의 설렁탕은 그 맛이 일품이다" 라며 칭찬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한 짜장면이 만들어진 배경과 유사하게 당시 요식업은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상이한 입맛을 가진 두 고객층이 존재하는 시장이었고 당연히 이 둘 중 어느 하나 만을 타겟으로 하는 것 보다는 기왕이면 두 계층의 사람들에게 전부 호응을 얻을 수 있는게 사업 번창의 지름길이었고 레시피 역시 모두에게 무난하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4. 영양
고단백 고칼로리라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칼슘 흡수를 방해하는 인이 함유되어 있고 소금 등으로 인해 회복기의 환자들이 먹어서는 안될 음식으로 의사들이 종종 먹지 말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 가끔 보양식이라고 생각하고 먹는다면 좋다.통상적으로는 인 결핍이 흔하지는 않지만, 미숙아나 성장기, 임신 및 출산시기 및 질병이나 외상의 회복기에는 인이 많이 필요한데 인은 DNA, RNA 같은 유전물질은 물론 세포막, 비타민 및 효소, 세포의 에너지 공급원인 ATP, 뼈[12]의 구성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칼슘을 섭취해야하는 골다공증 환자 등은 피해야 한다.
먹을 것 자체가 귀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설렁탕이 충분히 보양식의 역할을 했을 것임은 크게 의심할 여지는 없다. 물론 먹을 것이 흔하고 영양제도 널려있는 현대에는 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칼슘의 섭취가 부족해지면서 역효과가 우려되지만, 건강하고 제대로 된 식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인을 과다섭취한다고 해서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신부전, 알콜 중독 등의 경우 인의 결핍이 있기도 하다.
설렁탕을 오래 끓여야 맛있고 영양가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회당 6시간 정도 끓이고 3회정도 다시 끓이는게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출처: 농촌진흥청) 그 이상으로 너무 많이 끓이면 인 성분이 우러나와서 몸에 안 좋다.
5. 먹는 방법
깍두기, 섞박지 등의 무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이 정석. 김치 국물이나 다대기를 넣어 빨갛게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때 깍두기 국물을 넣을 경우, 깍국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먹는 방법이지만,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남의 그릇에다가[13] 허락없이 넣는 건 금물. 그런데 일본에서 한류가 유행하며 이 먹는법도 같이 전해진 모양인지, 일본 드라마 망각의 사치코에서 등장인물들이 설렁탕 먹을때 깍두기를 넣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그 외 밥을 말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한 번에 한 공기를 다 말아 먹지 말고 반 공기씩 나눠 먹는 것을 추천한다. 한 공기를 다 말아 먹을 경우, 뜨거워서 제대로 먹기 힘들 뿐더러 먹다 보면 밥이 뜨거운 국물에 불어서 밥알이 지나치게 흐물흐물해지고 국물 맛도 나빠진다. 이는 설렁탕뿐만 아니라 다른 국물 요리 등에도 해당되니 알아두면 좋다. 또한 국물이 뚝배기나 놋그릇 등에 담겨오면 날계란을 넣어서 계란을 국물 안에서 적절히 익혀 먹는 방법도 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방법 중 하나. 단, 국물의 온도가 낮아 계란이 익지 않으면 그냥 날계란을 먹는 것이나 똑같다.
설렁탕에 칼국수 사리를 말아먹으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안동국시 스타일의 칼국수가 된다.
6. 식당
대체적으로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많다. 메뉴 중 수육이 없는 곳,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고 문닫는 곳은 인스턴트[14]나 여러 첨가제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인식이 있으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실제로 이문설농탕은 24시간 영업이 아니지만 인공조미료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 집이다. 밤동안은 손님을 받지 않고 쉬면서 육수를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수육의 경우 설렁탕 제조 과정상 나오지 않을 수가 없고, 나온 수육을 팔지 않는다는 것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는 판단이지만, 여러 집이 모여서 국물을 낸 후, 수육을 원하는 가게에서 돈을 추가적으로 내어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15] 24시간 영업을 기준으로 음식점의 양심을 판단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흔히 설렁탕의 국물은 오래 우려내야하기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그 시간에 영업을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음식 준비를 하는 것은 오롯이 조리에만 신경을 쓰면 되지만, 영업까지 하게 되면 손님 접대부터 설거지 등 일이 배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인건비가 나날이 오르고 심야에 유동인구가 없는 곳 에선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는 설렁탕집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며 여기에는 그 나름대로 검증된 유명한 집 역시 다수 포함되어 있다.
설렁탕은 유독 재료로 시비를 많이 겪는 음식이다. 왜냐하면 국물이 진하고, 또 진할수록 잘 우려냈다고 인정하는 문화가 있고, 또 들어가는 재료가 우골, 소고기로 비싼 편이다. 그래서 싸구려 냉동고기와 인스턴트 식품첨가제로 맛을 속이는 일이 많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곰탕은 국물이 설렁탕만큼 진하지 않아 재료가 너무 형편없으면 바로 들통이 난다. 제대로 된 곰탕은 국물이 설렁탕보다 훨씬 맑고 깔끔하기 때문에 고기를 좀 좋지 않은 것을 쓸 수는 있어도 설렁탕처럼 각종 식품첨가제를 넣어 때울 수 없는 편이다.
설렁탕의 원가를 줄이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이것도 나름대로의 영업비밀이라고 요리사나 업소끼리 대를 이어 전해지기도 한다. 보통 정석적인 방법은 각 회사에서 나오는 설렁탕엑기스를 깔고[16], 식자재마트나 수입식품전문점에서 파는 우지농축분말이나 농축액을 버무린 다음 물을 붓고 끓인다. 뼈를 우려낸 것이 아니므로 오래 끓일 필요도 없는데, 다 끓고 맛을 보면 설렁탕 맛은 나지만 어딘가 진한 맛은 부족한 국물이 나온다. 여기서부턴 각 업소의 재량이 들어가는데, 땅콩버터가 들어가는 것도 이 지점이다. 땅콩버터는 오랫동안 설렁탕집에서 사랑받은 재료로서 설탕이 안 들어간 제품을 쓴다. 땅콩버터는 그냥 사도 싸지만, 도매로 사면 kg당 2,000 - 3,000원이 될까말까할 정도로 싸고, 냉장보관도 필요없이 몇 년이나 쓸 수 있고, 또 이걸 넣으면 아까의 맹맹한 국물이 굉장히 진해지고 고소해진다. 땅콩버터를 넣으면 국물이 약간 갈색으로 변하는데, 그러면 식용색소 2호를 조금 넣어주면 다시 새하얗게 변한다. 요즘은 땅콩버터 대신 닭육수 엑기스(치킨스톡)도 많이 쓴다. 땅콩버터를 넣었다가 알레르기 문제로 한 번 사고가 터진 체인점에선 주로 스톡으로 땅콩버터를 대신한다.[17]
참고로 엑기스(시즈닝)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설렁탕엑기스, 짬뽕엑기스, 김치엑기스, 묵은지엑기스, 불고기엑기스, 굴엑기스, 치즈버거시즈닝, 쌀국수시즈닝 등 효과도 놀랄만하다. 뜨거운 물 한 컵에 굴엑기스를 티스푼으로 하나 넣은 다음 저어 마시면 정말 굴국밥의 국물맛이 난다. 물론 약간 맹맹한 맛은 남고, 이것은 각 업장마다의 노하우로 메꾼다. 가격도 굉장히 싸서 2012년 기준으로 250인분 설렁탕을 만드는데 필요한 설렁탕 엑기스는 2캔, 18,000원이었다. 사실 웬만한 체인점형 식당에서 내는 음식은 거의 다 이런 시즈닝 기반의 인스턴트 음식이다. 특히, 설렁탕을 제대로 끓이려면 100인분짜리 솥이 하나는 만드는 용도, 하나는 만든 걸 데워 파는 용도로 최소한 2개는 있어야 하는데 주방이 좁고 뭔가 이상한 메뉴도 잔뜩 붙여놓아 여러 가지 음식을 파는 곳이라면 100%다.
'신x 설농탕' 등, 유명 설렁탕 체인점이 제조 중 땅콩버터[18]를 넣어 고소한 맛을 낸다는 것이 폭로되어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했다.(by 불만제로) 허나 애초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 메뉴판과 종이 봉투에 여기 땅콩버터 들어간다고 쓰여있다.[19][20] 심한 경우에는 프림이나 분유를 넣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설렁탕을 구분하려면, 사다가 찬 곳에 얼마 동안 놔두면 된다. 제대로 사골을 이용해 끓인 설렁탕은 식어서 묵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에 비해, 이런 첨가물을 넣은 설렁탕은 여러 층으로 분리가 된다.[21]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설렁탕집은 1904년 개업한 "이문설농탕"(종각역 근처)이다. 종로구에 있는 오래된 음식점들 중 상당수가 관광객 장사나 프랜차이즈화를 시작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고 맛이 바뀐다는 소리가 종종 나오는데, 이 집은 국밥집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은 곳이므로 한번 먹으러 가 봐도 좋다. 단 가격은 일반 국밥집에 비교했을 때 싼 편은 아니다.
2013년 2월 14일자 불만제로에서 한우만을 쓰며 전통의 설렁탕을 고집하는 서울시내 30여곳의 설렁탕집을 조사한 결과 무려 11곳 이상이 수입산을 사용하고, 심지어 프림으로 설렁탕의 색깔을 내는 곳이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업소들이 가격은 높은 가격을 그대로 받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에는 군화 제작용으로 수입한 쇠가죽 안쪽에 붙은 고기조각을 떼내어 설렁탕에 넣다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 링크
주문하면 바로 나오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먹기는 편하지만, 만들어 파는 가게 입장에서는 양심적으로 제대로 만들려면 재료비와 연료비가 엄청나게 소요되는 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가를 절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비양심적 행위가 이루어질 경우가 빈번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기도 하다.[22]
7. 여담
- 서양에서도 동일하게 소뼈로 육수를 내는데, 보통은 뼈를 한번 구운 뒤 끓이기 때문에 국물 색깔이 누런 편이다. 이것으로 스튜를 끓이거나 한다. 그래서 설렁탕을 보고 뼈를 우려낸 국물이라고 하면 많이 낯설어 한다.[23]
- 공공의 적2에서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인 한상우(정준호 분)의 수족 노릇을 하던 송정훈(엄태웅 분)이 한상우의 총알받이 역할로 살인교사 혐의를 뒤집어쓰고 검찰에서 강철중에게 조사를 받다가, 식사 시간이 되자 강철중이 설렁탕을 시켜주며 너 깜빵 가기 전에 마지막 밥이다 라고 해도 안 먹고 버티다가, 한 패거리라 생각했던 안효준(변희봉 분)이 내막을 모두 불기로 하는 바람에, 자기가 팽 당할 것 같은지 불안감에 휩싸이며 미친 듯이 설렁탕을 숟가락으로 우걱우걱 퍼먹는다. 영화 내에서 꽤나 명장면인 부분이다.
- 리부트된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유치장에 잡혀들어간 동네 양아치 2명이 설렁탕을 먹으면서 "아으 역시 설렁탕은 유치장에서 먹는 맛이 최고야!", "아, 그럼요 그럼요 형님. 짜장면은 당구장에서, 설렁탕은 유치장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드립을 친다. 다만, 강철중이 유치장에 들어와 낮잠을 자는데, "깍두기 씹는 소리 들리면 죽여버린다!" 한 마디에 잔뜩 쫄아서 눈치를 보면서 먹고 한 번 베어문 깍두기는 더 씹지도 못하고 삼킨다.
- 김성모 화백이 유난히 선호하는 음식이다. 김성모 만화의 성인극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꼭 한 번씩 설렁탕을 먹어줘야 한다.
-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원노인이 설렁탕집 '사동옥(寺同屋)'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댔으며, 극중 등장하는 일본 제국 경찰 마루오까가 조선의 설렁탕을 맛있다며 매우 좋아한다.[25] 반면 같은 일본인 경찰인 미와 경부는 설렁탕을 매우 싫어하는데, 이는 마루오까와 미와가 조선과 조선인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과 태도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 MBC 드라마 대장금의 최고상궁 경합에서도 등장한다. 장금은 최상급 소뼈를 사서 종이로 기름기를 흡수하고[26] 타락(우유)을 넣었지만[27], 서민음식이라는 경합 주제를 망각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패배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 오발탄에서도 주인공 송철호가 안 좋은 일[28]들을 겪은 후 치과에 가서 썩은 어금니들을 모두 빼버리고 어지러움을 느끼고 길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설렁탕을 주문하지만 결국 먹지 못한다.
- 우스갯소리로 경찰서로 끌려가면 설렁탕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원래 설렁탕은 경찰서에서 먹어야…"라는 대사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코XX의 전설이 나왔다.
-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선 국가정보원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던 북한군 5중대원이 식사를 하는데 그게 하필 설렁탕이었다. 다만 코렁탕 드립은 나오지 않았고, 표치수가 '이렇게 우리를 잘 먹이면 술술 불거라고 생각하는 기야.'라고 경계하는 정도로 끝난다.
- 작전명 충무에서는 일본에 정보를 유출한 국회의원이 국정원에서 조사받으면서 진술을 거부하다가 식사로 설렁탕이 오자 취조 중의 설렁탕 취식법을 떠올려 지레 겁먹고 진술한다고 소리친다. 정작 요원들은 그럴 생각 없이 부족한 수사 경비에 서로 자기가 사비로 밥값을 내겠다 하는 중이었다.
8. 관련 문서
[1] 원래 설렁탕에는 소면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1970년대 만성적인 쌀 부족 현상 때문에 혼분식 장려 운동을 하던 시절에 비교적 가격이 싼 밀가루 음식을 넣었다고 한다.[2] 탕을 우려내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러다보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가다보니 일반 냄비로는 어림도 없다.[3] 특히 백정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도 형평운동을 통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였다.[4]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274-1번지[5] 지금도 선농대제란 이름으로 제사를 지낸다. 다만 대통령이 아닌 동대문구청장이 진행한다.[6] 하지만, 나라가 어려운 몇 시기를 제외하곤 소고기를 먹을만큼은 먹고는 살았다는 것을 역사적 사료들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민족의 식사량 문서로.[7] 1904년 최초로 개업했고 현재도 영업 중이다. 단, 지금 주소는 최초 개업했던 위치와 다르다. 최초 개업했던 곳은 종로구 공평동이지만 재개발 사업으로 이전하여 지금은 종로구 견지동에 있다.[8] 해당문서에도 나오지만 마루오까 경부는 종로서 외근계에서 근무했다.[9] 1930년대 당시 설렁탕 한 그릇이 10~15전, 담배 한 갑이 10전, 냉면 한 그릇이 15~20전, 비빔밥 한 그릇이 15~20전, 고급 소고기를 쓴 국밥 한 그릇이 20전이었다. 가격으로 따지면 설렁탕이 약 5천원 언저리 밖에 안한다는 셈이다. 이 당시 극장 티켓 한 장이 50전, 학교 교재로 쓰이는 책 한권이 70 전정도였다. 심지어 설렁탕이 담배보다도 저렴한 시기도 있었는데 설렁탕 한 그릇이 5전이던 때도 있었다.[10] 물론 만드는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국물을 우려내야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주문하면 고명과 사리가 담긴 그릇에 바로 국물이 부어져서 바로 밥상에 나온다. 또한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설렁탕 사업이 더 흥한 것도 있는데, 맛은 있는데 혼자 만들어먹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기도 하니 돈만 내면 빠르게 나오는 설렁탕 가게가 인기를 끈 것이다.[11] 당시 조선인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설렁탕의 가치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서부 개척 시대의 대표적인 최하층 육체 노동자였던 카우보이가 우연찮게 운 좋게 소 떼 군락을 발견해서 도시까지 잔뜩 몰고 와서 대박 기념으로 월급을 탕진해서 스테이크를 사먹는다 이런 느낌일 것이다.[12] 칼슘과 인의 함유비가 2:1 가량이다.[13] 사실 어떤 음식이든 자신이 직접 남의 그릇에 손을 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14] 시중에서 파는 레토르트 식품 외에도, 체인점 등에서 고온고압의 추출기로 2시간 남짓만에 뽑아내는 수도 있다.[15] 냉면집에서도 이와 같이 분배하는 경우가 있다.[16] http://msckorea.com/2_product/06_season.php[17] 땅콩 알레르기는 식품 알레르기 중에서도 특히 심해서 먹지도 않았는데 냄새만으로 쇼크를 일으키는 수준까지 가기도 한다.[18] 또한 프랑스산 화이트 치즈도 다량 넣는다고 한다.[19] 일례로, 자식이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데 "우리 집은 땅콩버터를 넣지 않는다"라는 주인의 말을 믿고 설렁탕을 주문했다가 5분 만에 자식이 알레르기가 나자 주인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행동은 손님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다.[20] 사실 땅콩버터나 치즈는 일종의 식재료이니 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로 넣었다면 큰 잘못이나 범죄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고기로 끓인 국맛을 기대하고 간 고객의 입장에서는 저런 재료로 맛을 냈다고 하면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허나 땅콩버터를 넣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점주가 이 사실을 숨길 경우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21] 다만 꼭 묵이 안된다고 진짜 설렁탕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래 끓이면 그렇게 된다고 한다. (by 미각스캔들)[22] 백종원이 동남아에서 맛본 쌀국수의 국물맛에 감탄해 비법을 묻자 그냥 "양질의 고기를 많이 넣고 오랜 시간 끓여낸 것"이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비법을 듣고 허탈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대로 말하면 백종원 정도의 식품업계 종사자조차 이러한 양심적 조리법과 결과물에 대해 낯설어할 정도로 국내 요식업의 여건이 이윤 중심의 편법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23]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설렁탕을 먹다가 뼈를 우려낸 국물이라고 설명하면 "우유를 넣었던게 아니었냐?"라고 되레 물으며 놀라워 하는 일도 있다.[24] 남주인공의 할머니가 설렁탕집 사장님이다.[25] 설렁탕에 대한 대사는 "조선의 설렁탕은 참으로 그 맛이 일품이란 말이야. 먹어도 먹어도 전혀 질리지가 않아. 허허허." 이 대사.[26] 소뼈를 사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해서 끓일 시간이 부족했기에 그걸 줄이기 위함이다.[27] 당시 타락(우유)은 시대적으로 왕이 보양식으로나 먹을 수 있는 매우 귀한 식재료였다.[28] 동생 영호가 현금이 가득 든 차를 탈취하다가 실패해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아내마저 아기를 낳던 중에 사망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