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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갱을 재현한 요리의 사진. 하술하듯 기록의 부족으로 당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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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효종갱(曉鐘羹)은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이며, 배추속, 콩나물, 쇠갈빗대, 해삼, 전복, 버섯 따위를 된장 푼 물에 종일 푹 고아 만든 해장국이다. 해삼과 전복 등의 진귀한 식재료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보다 고급스러운 요리였다고 볼 수 있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 기록되어 있다.2. 역사
효종갱이 등장하는 문헌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최영년(崔永年)이 쓴 해동죽지가 전부이다. 해동죽지는 한국의 역사와 옛 세시풍속에 대해 기록한 책으로,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기존의 역사와 풍습 등이 잊혀질까 염려한 저자가 한민족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 집대성할 목적으로 쓴 서적이다. 구성은 1권이 상, 중, 하편의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다. 상편에는 단군조선,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고려, 조선에 이르는 역사적 내용과 민담, 풍습을 담았으며, 중편에는 속악 유희, 명절 풍속, 음식, 전통 놀이를 소개하고 있다. 하편에는 지역의 명소와 사묘, 전묘, 정각, 누대 등을 다루고 있다. 효종갱에 관한 내용은 중편에 몇 줄 등장한다.이와 같이 본디 요리책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만으로 효종갱에 대한 자세한 조리법이나 형태를 짐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해동죽지의 '죽지(竹枝)'란 중국의 악부인 '죽지사(竹枝詞)'를 뜻하는 것으로서 문장·시 형식의 일종인데, 죽지의 형태로 글을 쓰려면 한문으로 7언 연작인 한시를 짓게 되므로, 일반적인 산문과는 기록하는 방법이 달라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다.
아래는 해동죽지에 나오는 효종갱에 대한 원문을 직역한 것이다.
曉鍾羹 廣州城內善調此羹 造法菘心 爲主菽芽松耳蔈菇牛肋·陽骨·海蔘·全鰒和土醬終日煮熱 夕天以綿裹缸擔送于京城 時宰家時値曉鍾 羹缸猶溫爛 酒啜羹甘澹香腻 名擅一世 或目之 以北村羹
효종갱 광주성 안에서 이 국을 잘 만든다. 배추 속대, 콩나물, 표고, 소갈비, 소뼈, 해삼, 전복에 토장을 넣어서 하루종일 끓인다. 밤에 국항아리를 솜에 싸서 도성으로 보낸다. 재상가에 도착하면 새벽종이 울릴 때가 되는데, 국항아리는 아직 따뜻하여 술 마신 후에 이 국을 먹으면 달고 담백하고 향기롭기로 유명하다. 어떤 이는 이 국을 북촌갱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영년,《해동죽지(海東竹枝)》, 경성장학사(京城奬學社), 1925, 중편 111쪽 발췌.
효종갱 광주성 안에서 이 국을 잘 만든다. 배추 속대, 콩나물, 표고, 소갈비, 소뼈, 해삼, 전복에 토장을 넣어서 하루종일 끓인다. 밤에 국항아리를 솜에 싸서 도성으로 보낸다. 재상가에 도착하면 새벽종이 울릴 때가 되는데, 국항아리는 아직 따뜻하여 술 마신 후에 이 국을 먹으면 달고 담백하고 향기롭기로 유명하다. 어떤 이는 이 국을 북촌갱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영년,《해동죽지(海東竹枝)》, 경성장학사(京城奬學社), 1925, 중편 111쪽 발췌.
2023년 현재까지 발견된 효종갱에 대한 기록은 모든 문헌을 통틀어 이것이 전부이다. 이것 이외에 조리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나 배달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출처를 알 수 없어, 후대의 창작이나 낭설이 가미된 것이라 볼 수 있다.
3. 정말 배달 음식인가?
문화재청이 제작한 효종갱 카드뉴스. 상기한 《해동죽지》기록을 인용한 부분 외에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여 만들어진 창작이 가미되었다. |
효종갱에 관한 이야기는 2010년대 이후 갑작스럽게 역사 관련 대중매체와 언론을 타고 유명해졌으며, 사대문 밖에서 조리하여 새벽에 인력으로 옮겼던 '배달 음식'이라는 해설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어 별다른 근거 없이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사실 이 음식이 실제 배달 음식이었다거나 이 음식을 중심으로 한 배달 산업이 존재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효종갱에 대해 서술된 역사서는 상술하듯 해동죽지의 서너 줄 짜리 기록이 전부인데, '경기도 광주에서 한양까지 솜에 싸서 보냈다[夕天以綿裹缸擔送于京城]'는 것은 '광주성 안에서 이 국을 잘 만든다[廣州城內善調此羹]'는 문장의 다음에 나와 있어 이것이 보편화된 배달 산업이었는지, 단순히 음식을 싸 보낸 하나의 일화가 있을 뿐인지, 혹은 '그만큼 광주 지역의 효종갱이 유명했다'는 강조 구문인지 알 수 없다.
만약 '최초의 배달 음식'과 같은 타이틀을 넣을 정도로 유명했다면 1925년에야 이를 언급한 본 기록 외에도 조선 후기의 다양한 세시 풍속 자료에서 폭넓게 확인되어야 할 것이나, 관련 풍습은 물론 그 형태조차 교차검증할 만한 자료가 전무하다. 혹자는 이 국을 북촌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或目之以北村羹]는 서술에서 고위 관료와 양반가가 많았던 북촌 지역에서 이 국이 유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비싸고 진귀한 재료를 많이 넣었으므로 재력이 충분한 양반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이것이 재력가를 대상으로 한 통상적인 배달 산업이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조선 후기의 양반들은 개인 문집을 통해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이들을 통틀어도 효종갱에 관한 언급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굳이 효종갱이 아니더라도 조선 시대에 '음식을 배달해 먹은 기록' 자체는 찾아볼 수 있으며, 효종갱이 '한국사 최초의 배달 음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 조선 시대에 주로 배달해 먹었던 것은 뜨거운 해장국보다는 차가운 냉면이었다. 황윤석의 《이재난고(頤齋亂藁)》1768년 7월 7일자 일기에 '과거 시험을 마치고 일행과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유원의 1871년 문집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순조가 신하와 달구경을 하다 냉면을 사 오라고 지시하여 먹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4. 기타
- 속설에는 '경주에서 한양까지도 배달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까지 파발로 달린다 해도 이틀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음식을 배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교통 및 통신 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경주에서 서울까지 배달을 하지 않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위의 해동죽지에서는 광주성에서 끓인 기록이 나오는데, 이 경우에도 남한산성 밑동네에서 서울 구도심까지 당시 장정 걸음으로 얼추 4~5시간 정도이다. 물론 가서 사기만 하고 끝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들고와야 했으니 실제로는 시간이 두 배는 걸렸을 것이다.
- 또 다른 속설에는 1851년(철종 3년), 영의정을 지낸 안동 김씨 세도가 김흥근이 효종갱의 명성을 듣고 언젠가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어느 날, 전날 한잔 걸치고 일어나 망건 차림으로 새벽 일찍 와서 효종갱을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술이 덜 깼는지 돈을 미처 챙기지 못했고 졸지에 먹튀가 되어 곤욕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옆에서 한그릇 걸치고 일어난 한 봇짐 상인이 '이분 얼굴이나 행색을 보아하니 글 좀 꽤 읽은 선비 분 같다'고 옹호해주며 대금을 치러주었다. 호의에 감격한 김흥근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자의 성명을 물어보며 몇 배로 갚으려 하자 상인은 '곤란한 사람을 보면 돕는게 도리요, 보상을 바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유유히 자기 갈길을 떠났다고 한다.
[1] 특히 전복의 경우, 전근대에는 건복이라 하여 껍데기 없이 말린 것을 주로 유통하였으므로 이것을 물에 불린 뒤 편으로 썬 상태였을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