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세이더 킹즈 2 |
개요 | 데 쥬레(제국과 왕국) | 직할령 | 음모 및 파벌 | 외교 | 법률 | 디시전 | 자문회 |
문화 | 종교 | 기술 | 전쟁 | 군사 |
능력치(트레잇) | 교육 | 단체 | 유물 | 혈통 | 불가사의 |
가문 및 추천인물 | 시나리오 | DLC | 도전과제 | 브론즈맨 | 콘솔 명령어 | 모드 |
1. 과거에 유명했던 가문
- 769, 구자라트 Mohadavasaka의 타쿠르 Toramana Hunas
인도에 살고 있으며 힌두교도인데 정작 문화는 사카인이다.[1] 5세기 중엽 서북 인도에 세력을 형성했던 이란계 유목 민족 알촌 훈족[2]의 최후의 후예이다. 전륜성왕과 샤오쉬안트를 동시에 노리기 좋다. 867년에도 있다.
- 769, 아바스 왕조 시르잔의 Yazdegerd 수레나
수레나스의 출신 가문이자 인도-파르티아 왕국의 지배자였던 수렌 가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가문이다. 허나 족보도 구현이 안 되어있고 문장도 랜덤 문장이라 뽕이 안차지만 그래도 이름값은 좋다, 시르잔에서 차근차근 페르시아를 먹어치워 과거의 영광을 재건하자.
- 769, 픽틀랜드 왕국의 왕 Uib 가문
스코틀랜드 왕작위 히스토리를 보면 스코틀랜드의 초대 왕가로 중간에 교체되기는 하였지만 계속 이 가문이 지배한 것을 알 수 있다. 867년 시점에선 아일랜드계 막 알핀 왕조로 교체되었으나 769년에는 여전히 이 가문이다. 켈트의 통일과 영국 정복을 노려보자.
- 769, 아스투리아스 Astorga 백작의 가신 Adelfonso 드 아스투리아스 Veremondo / 867, 포르투칼레 공작의 가신 Airmanagildo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초대 왕조인 아스투리아스 가문이다. 우마이야 왕조가 침략하여 서고트 왕국이 붕괴되자 서고트 왕국의 장군이었던 펠라요가 잔존 세력을 규합해 스페인 북부 지역에 왕조를 개창했다. 이 769년 시나리오에는 가문원 둘다 영지가 없기에 따로 영지를 수여해야 플레이 가능하다. Adelfonso는 선왕의 아들 즉, 아스투리아스의 왕자이기 때문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에 대한 강한 클레임을 가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칸타브리아 가문이 차지하고 있지만 왕위를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 실제로 Adelfonso는 791년부터 842년까지 통치하는 순결왕 알폰수 2세이다. 다만 이후 다시 칸타브리아 가문으로 왕위가 돌아간다. 867년 시나리오에서는 가문원이 포르투칼레 공작의 지휘관으로 들어가 있으며 역시 영지가 없기에 따로 수여해 주어야 한다. 그에게는 딸밖에 없고 딸은 이미 결혼한 상태이므로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따로 아들을 낳을 필요가 있다.[3] 아니면 이후에 포르투칼 공작인 비마란스 가문이 이 가문의 방계이니 플레이 하자.
- 769, 비하르 Mithila의 타쿠르 라마굽타
굽타 왕조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북인도를 통일한 굽타 제국의 가문이 아니라 굽타 제국이 붕괴한 후 마가다 지역의 패권을 차지한 후기 굽타 왕조의 후손이다. 본인이 비하르 왕위에 강한 클레임이 있지만 백작급인데다 팔라 왕조의 봉신으로 시작한다.
- 769~867, 안서도호부의 가신 모용조(Murong Zhao)와 주취안 공작의 가신 모용복(Murong Fu)
거란족에 텡그리인 모용 가문. 이들의 정체는 바로 100여년전 멸망한 토욕혼의 마지막 후손이자 과거 5호 16국 시대를 주름잡았던 선비족의 모용씨다. 나라가 멸망한지 100년이 넘었고 선비족이 안나오기에 거란족으로 대체됐지만 꽤나 역사가 오래된 가문이다. 867년 시나리오에서는 과거 토욕혼의 강역 전역에 대해 강한 클레임을 가지는 점을 이용해, 탕구트인 탁발씨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확장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주취안 공작 입장에서는 모용복이 클레임을 가지는 백작령을 하나 떼어주는 것으로 초반에 확장해 왕국을 만들 수 있고, 티베트의 뵈파인들 입장에서는 모용복이 공작과 사이가 나쁘다는 점을 이용해 쉽게 데려와 한족과 탕구트를 견제하고 빠르게 티베트 제국을 수복할 수 있다. 여담으로 티베트 제국 소속의 암도(Amdo) 왕국은 거란 문화일 때 토욕혼(Tuyuhun) 칸국으로 표기되며 그 소속 공작령 중 칭하이(Qinghai)는 거란 문화에서 토욕혼(Tuyuhun)으로 표기되기에 이를 이용해 다시 한번 토욕혼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
- 769 인도 곤드와나의 체디 왕조
말와의 칼라추리 왕조의 후신으로 600년대 중반부터 1212년경 까지 인도 중북부의 곤드와나를 다스린 트리푸리 칼라추리 왕조이다, 허나 위키와는 달리 크킹에서는 위 카나우지의 칼라추리 왕조와 분리되어 체디 지방의 체디 왕조로 나오는데 이는 명백한 고증및 명칭 오류이다. 할 때 이름을 tripuri of Kalachuri로 바꿔주자
- 769, 티베트의 첸포(찬보) 티송데첸(적송덕찬) Purgyal 왕조
그 유명한 토번 제국 송첸캄포의 가문. 시나리오 시점에서도 넓은 영토를 갖고 있기에 플레이 하기에 좋다. 1337년 시나리오까지 티베트 쪽에 계속 개근하긴 하나 867년 시나리오부터는 토번 제국이 해체되어 티베트계 군소왕국이나 공국신세로 전락한다. 게다가 1100년대 이후에는 원래 발상지인 우창 왕국을 사캬파 불교집단에게 빼앗겨 구게 왕국만 남게 된다.
- 769, 알라니아의 카간 Buriberdi
스키타이, 사르마티아의 후예인 알라니족이다. 이 게임에 플레이할 수 있는 유일한 탱그리 알라니족. 밑으로는 동로마, 아르메니아, 위로는 카자리아가 있어 확장이 어렵다. 그리스 계열 문화와 텡그리 유목정이라는 이상한 조합에 매력을 느낀다면 추천. 이후로는 정교회로 개종한 상태며 몽고 등장 이후에는 이슬람화 된다.
- 769, 서프랑크 왕국 노르망디의 루앙 백작의 가신 테우데리크 메로빙거(Merohingi) 가문
클로비스로부터 시작되는 프랑크 왕국의 초대 왕조인 메로빙거 가문이다. 이 시기에는 이미 카롤링거 가문에 왕위가 넘어간 상태이며, 부왕인 힐데릭 3세는 수도원에 유폐된 채로 755년에 죽었으며 테우데리크도 수도원에 맡겨졌다는 역사대로 수도사 트레잇이 있다. 플레이를 위해서는 다른 인물로 이 인물을 프랑스[4] 왕위에 올리자는 파벌을 만들어서 내전에서 승리한 다음에 이 인물로 플레이해야 한다.[5] 프랑스를 간신히 되찾았어도 여전히 유럽 대부분은 카롤링거의 영향권이니, 메로빙거 가문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다는 느낌으로 카롤링거 가문과 싸워나가는 컨셉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빈치코드에서 이 가문이 예수의 피를 이었다는 설을 이야기하므로 그런 컨셉으로 가보는 것도 좋다.
- 769, 프리지아 오스트프리슬란드 백작 Aldgisl
Folcwalding 가문, 과거 네덜란드 지역에 있었던 프리지아 왕국의 왕자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프리지아는 진즉 망해 망국의 왕자 신분이다. 프리지아 왕국에 대한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과 작센 왕국에 둘러 쌓여 있는 만만한 일개 백작령이다보니 시작한지 얼마 안가 보통 두 곳 중 한 곳에서 침략하러 오기 때문에 프랑크 왕국에 잘 비벼 들어가서 천천히 내부에서 겔레와 홀란드 공작령을 먹어치워가며 프리지아를 다시 복구해 보자.
- 769, Madminiya 마즈네이트의 마르조반 아프리드 왕조
무려 330년부터 995년까지 존속한 아프리드 왕조, 게임속에선 마르조반으로 나오지만 엄연한 군주국이다. 초기 호레즘 지역을 다스린 왕조로 칭호도 엄연히 왕인 화레즘 샤이다.
모드들도 그렇고 주변 왕국의 가신으로 나오나 이란을 복구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추천해볼수 있는 왕조이다. 995년이후 마문왕조로 넘어갔고 마문왕조도 1017년 멸망해 1066년부턴 호레즘 가문으로 넘어간다.
- 769, 페르시아 타바리스탄의 Bandusphanid가문
바두스판 가문, 사산 왕조의 후계 가문 중 제일 오래 지속된 가문으로 651년 건국되어 16세기의 끝무렵까지 존속한 장수의 끝판왕인 왕조이다. 크킹 시대는 당연하거니와 원래라면 유로파 스타팅 시점에서도 살아있었고 실제로 초창기 유로파 4에서는 타바리스탄이라는 플레이 가능했고 이들로 페르시아를 복구하는 업적도 있었으나 패치로 마잔다란과 통합되었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산 왕조의 일원이라는 뽕이 있기에 크킹에서 한번 시도해봐도 좋을 가문.
- 769, 브리타니 공작령의 Vannes 백작 Berdic
브리타니 왕국의 왕조인 Breizh 가문이다. 그러나 이미 몇세대 이전에 왕국이 멸망하여서 왕국 클레임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같은 공작령의 낭트에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지만 서프랑크 영토다. 브리타니 공작령의 백국들을 잘 먹어치워가며 공작령으로 키우고 다시 왕국으로 키우도록 해보자. 다들 그렇게 아주 먼 사이가 아니므로 암살을 몇번 시행하다보면 그냥 먹을 수도 있다.
- 769, 동로마 제국의 라구사의 원수 Calenda 살비우스 가문
로마 제국 제7대 황제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와 같은 가문의 일원이다. 고대 로마[6] 황제를 배출한 가문 중 작중에 유이[7]하게 가문원이 생존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이를 살려 로마 제국의 부활을 꾀하는 컨셉 플레이도 가능하다.
- 769~867, 인도 남부 우야다기리의 팔라바 가문
현재 지배자는 난티바르만 팔라바이다. 후계자인 아파라지타바르만은 897년 촐라 왕국의 아디티아 1세와 전쟁 중에 사망하고 팔라바 왕국은 멸망한다. 일설에 따르면 소림사와 선종으로 유명한 달마는 팔라바 왕국의 3번째 왕자였다고 한다. 현장 법사(삼장법사)도 팔라바의 수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 769~867, 프랑스 동부 부르군디의 공작 및 백작가 니벨룽(Nibelunging) 가문
게르만 신화 볼숭 일족의 사가와 니벨룽의 노래에서 등장하는 니벨룽 부족(고게르만어로는 Nifling)의 모티브 또는 원본 "일지도 모르는" 가문. 전설상에서 같은 이름으로 기록되지만 이 니벨룽이 그 니벨룽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튼 역사상으론 실제 존재했던 부르군디의 유력 가문(또는 부족)으로, 후일 카롤링거 왕조의 시조가 되는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를 마르텔의 막내동생 킬데브란트 1세(Childebrand I)[8]가 오스트라시아의 엠마와 혼인하고 그 아들 Nibelung 1세가 부르군디를 상속받으면서 시작되는 가문으로 기록된다. 즉 카롤링거 가문의 방계 가문(cadet branch). 전설상의 모티브를 반영한건지 가문 문장도 반지 세개. 문장이 간지나서 묘하게 인기있는 가문이다. 샤를마뉴 시나리오에선 프랑스의 1/3을 차지하는 부르군디 공작가라 쉬운편이지만 바이킹의 시대(ad 867)부터는 땅 두개짜리 백작가로 쪼그라들어서 난이도가 올라간다. AD 1066 이후 시나리오에선 이미 대가 끊겨 사라진 가문으로 카롤링거 계열 가계도에서만 등장한다.
- 769~1337, 불가르의 둘로 가문
둘로 가문은 볼가 불가리아의 불가르를 다스리던 가문이다. 과거로 올라가면 불가리아 발가르스코 왕조의 조상이 이들이며, 마자르, 후일 헝가리 왕국을 건설하는 아르파드 가문 또한 이들의 후예로 설정되어 있다. 769년에서는 불가리아의 왕가이고 탱그리, 867년은 볼가 불가르만이고, 이후 시나리오에서는 수니파로 개종되었다. 위키피디아에서 Dulo clan 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참조
분명 국가 멸망은 1236년인데 등장은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한다. 다만 1241년 북마크 부턴 킵차크 칸국 휘하의 씨족이다.
- 769~1337, 페르시아 마잔다란 타바리스탄의 바반드(조로아스터)
사산 왕조 카바드 1세의 후손이다. 샤를마뉴 패치부터 족보가 구현되었으며 867년 시나리오에서 저스티나드 가문이 망했고 1105년에 카렌 가문이 단절되는 와중에서도 시아파로 개종하면서까지 바두스판 왕조와 같이 오래 살아남은 왕조이며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언제나 같은 장소에만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인 1337년에는 단 1명. 방계로 카쿠이 왕조가 있다.
- 769, 아바르 칸국의 쿤자칼 왕조
유목민족인 아바르족은 중앙유럽과 남동유럽에 위치한 판노니아 평원을 정복하고 아바르 카간국을 세웠다(567~804). 769년 시점에선 부족제 아바르 칸국을 가지고 있다. 옆으로는 바이에른 왕국 밑으로는 불가르 칸국이라는 정착 왕조들과 맞닿아 있다.
867년 시나리오에선 칸국이 불가리아에게 완전히 멸망해 불가리아의 부하로 등장하는데. 하필 마자르의 침략 대상지인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 막지 못하면 게임오버지만 막기도 쉽지 않다.
- 769~867, 스웨덴 외스테르예틀란트 추장 울핑 가문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울핑 가문은 그 유명한 베오울프의 출신 가문이다. 베오울프의 전승에 따른 예이츠도 일반적으로 이 인근으로 비정하고 있다. 다만, 시나리오 시작 시점에서는 베오울프고 뭐고 리쿨프르라는 백작 한 명만 덜렁 있는 초라한 가문이다. 베오울프 전승에 따르면 리쿨프르는 플랜더스 지방을 약탈한 바이킹이라고 하지만, 능력치도 사실 그다지 좋지는 않다. 약탈을 통해 바이킹 트레잇과 버서커 트레잇을 얻으면 그나마 무력은 볼만해지긴 한다. 이웃에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인 비외른의 세력이 굳건하게 있고 주변에는 크뉘틀링과 윙글링 등 강력한 바이킹 세력이 많기 때문에 성장 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비외른이 죽으면서 나라가 갈라질 때를 노려서 세력을 성장시키자.
769년에도 존재하지만 상대는 시구르드 링과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이다.
- 769~, 아일랜드 북부 티론의 우어 넬 노이얼라이흐(Ua Néill Noígiallaich)가문
역사가 깊은 가문 중 하나로 케트하하흐가문의 분가이다. 조상들을 계속 클릭해서 거슬러 올라라면 서기 171년에 사망한 시조 페들리미드 레흐트마르 케트하하흐를 확인할 수 있다. 페들리미드는 아일랜드 신화 속의 인물로 코르막 막 아르트는 핀 막 쿨 시대의 왕이며 그라녀의 아버지이다.[9] 다음 왕 카이르프레 막 코르막은 페나 에이린을 멸망시키고 핀 막 쿨의 오스카와 싸우다 같이 죽고 만다. 가문 이름의 뜻은 "아홉 인질(Noígiallaich)의 니알(Néill)의 손자(Ua)"이다.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강점 이후 우어 넬에서 오닐(O'Neill)이라고 불리게 된다.
참고로 등장 시나리오인 769년 시나리오부터 1081년 시나리오 당시까지 전 가문 통틀어 구현된 가문원이 제일 많다. 본가만 해도 154명이며(1081년 시나리오 기준) 분가까지 합치면 200명을 넘어간다. 본가를 비롯하여 분가들도 대부분 영국 강점기에 멸족하여 오닐 가문만 1337년 시나리오에서 살아남지만. 아무튼 전세계의 다른 가문들이 50명을 넘지 않던 769년 시나리오에 이미 100명 가까이 되는 가문원이 구현되어 있다는 게 놀랍다. 1127년에 본가가 단절된다.
- 769~, 케트하하흐가문의 분가들(공동 시조 페들리미드 레흐트마르 케트하하흐)
우어 넬 노이얼라이흐가문 외에도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많은 명문 가문이 케트하하흐가문의 분가이다. - 아홉 인질의 니알의 이복형 브리온(Brion)의 후손 - 우어 브리우인 브레프레가문, 우어 브리우인 아이가문, 우어 브리우인 솔라가문, 숄 뮈이레아다이그흐가문(우어 브리우인 아이가문의 분가)
- 우어 넬 노이얼라이흐 이후 분가 - 막 알핀가문(막 가브라인 가문 분가)[10]
- 이하는 케트하흐트 가문의 분가가 아니다. 아일랜드의 백작 가문들
- 코르마크 막 아르트 이전에 분가한 가문
- 오가나흐타가문 → 오가나흐트-아위네가문, 오가나흐트-하이실가문, 오가나흐트-아이히르 흘리어흐가문(오가나흐트-하이실가문 분가), 오가나흐트-글렌담나흐가문(오가나흐트-하이실가문 분가), 오가나흐트-라이흘린가문
- 달 비아흐라흐 쉬이그헤가문 → 더베드가문, 브러허이니오그가문
- 867, 페르시아와 투르케스탄 접경 메르프/부하라의 카렌 가문
파르티아의 일곱 명문가 중 하나이며 사산조 페르시아의 건국 당시에는 아르다시르 1세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사산조 시대에도 최대의 귀족가문 중 하나였다. 무려 기원전 200년대부터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유구한 역사의 명문가로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카렌 가문(House of karen)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The Old Gods에서는 시작시 메르브 공작령에 영지를 갖고 있었으나 Rajas of India부터 월드맵이 확장되면서 디히스탄 공작령을 영지로 가진 채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샤를마뉴 패치부터 조상의 족보가 제대로 구현되었다. 철의 세기 이전엔 890년에 단절되었으나 철의세기부터 935년에는 백작령 1066년과 1081년 시나리오에 남작령만 가진 가문원이 구현되었고 1130년 단절된다. 페르시아계 가문중에서 유일하게 조로아스터교를 버리지 않은 가문이기도 하며 마지막 생존자는 아버지가 1070년에 사망했는데 1090년 출생이다.[11]
- 867, 아르메니아 타론 백작령의 팔라부니 가문
위의 카렌가문의 분가이자 아르샤쿠니 왕조의 분가의 분가로 파르이아 시기에 아르메니아의 봉신왕으로 책봉된 황실 인사의 후예다. 뭐, 세력은 크지 않아서 영지가 아예 없었던 인물이 많고 최대 작위라고 해 봤자 공작 정도긴 하지만 역사는 끝내주게 길다. 그만큼 부침도 심했는지 중간에 성도 여러번 바뀌고 종교도 조로아스터교에서 오리엔탈 정교회로 바뀌지만 어쨌건 살아남았다(...). 1.1.6 패치부터 시조가 아르사케스 왕조에서 끊어져 있다. 가진 작위는 백작뿐이지만 먼친척인 카렌가의 디히스탄 공작령이 남성분할상속제로 되어있어 디히스탄 공작령의 후계자로 설정되어있다! 음모력높은 가신과 아내를 구해서 암살만하면 디히스탄 공작령과 5000명 정도의 이벤트병력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 참고로 769년에는 캄사라칸 가문인데. 동로마의 명장이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시기 환관인 나르세스가 이 가문 출신이며, 여러 명의 라벤나 총독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다만 이자들의 분가인 헤툼가문은 아르메니아의 왕작위를 차지하게 된다.
- 867, 비잔틴 제국의 라구사의 원수 Giuco 피우스 가문
로마 제국 제15대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같은 가문의 일원이다. 고대 로마[12] 황제를 배출한 가문 중 작중에 유이[13]하게 가문원이 생존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이 피우스 가문의 출신 황제 안토니누스는 오현제 중 하나로 이를 살려 로마 제국의 부활을 꾀하는 컨셉 플레이도 가능하다.
- 867~ 바그라티오니 가문
바그라티오니 가문은 게임 내에서 우어 넬 노이얼라이흐가문에 비견될 정도로 오래된 가문이다. 가문의 시조는 320년에 사망한 삼바트 바그라티오니로, 이 가문은 대대로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지배해왔다. 조지아가 러시아 제국에 합병된 이후에도 가문은 살아남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고 자료
나폴레옹 군대와 적대한 러시아 장군 표트르 바그라티온이 이 가문의 후예이다. 조지아계 바그라티오니 가문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건재하지만 아르메니아계 바그라티오니 가문은 1066년 시나리오에서 아르메니아를 잃고 증발한다.
대부분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가문이지만 각 시대별로 셀주크, 페르시아, 몽골, 티무르의 압박을 받아 국력이 강하진 않다. - 867, 아르메니아 공작령의 아솟트 (아르메니아 왕가의 바그라티오니 가문)
게임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플레이가 가능한 바그라티오니 가문원. 이 시기엔 아직 아르메니아 공작에 불과할뿐으로 원역사처럼 세력을 키워 아르메니아 왕국을 세우고 조지아로 진출해보자. - 1066, 아나톨리아 리칸도스 백작 가기크 바그라티오니(아르메니아 왕가의 바그라티오니 가문)
비잔틴 제국 봉신인 리칸도스 백작 가기크는 아르메니아 최후의 왕인 가기크 2세이다. 1066년 시점에서는 이미 멸망당한 상태로 비잔틴 제국에 복속되어있다. 아르메니아 왕위에 대한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고 같은 가문이 조지아를 통치하고 있으니 다시금 아르메니아를 재건해보는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1089년, 조지아 국왕 다비트 4세
11세기 후반에 조지아를 다스린 명군. 동시대 기준으로는 인근 동로마의 알렉시오스 1세와 맞먹는 관리형 군주. 1090년 성인 기준으로 최고 수준의 관리형 트레잇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이도 젊어서 오래 운용할 수 있다. 부모도 40대 초반에 불과하고 일족도 많기 때문에 후계 걱정은 할 필요 없고, 인근 카게티 공국도 신종시킬 수 있으므로, 트빌리시 지역만 성전으로 병합한다면 조지아 왕국 권역을 모두 보유하고 시작할 수 있다. 당장은 이슬람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국력을 키워야 하지만, 서유럽의 십자군 원정이나 동로마 제국의 재건에 맞춰 영향력을 넓히다 보면 100년 빨리 타마르 대왕의 위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 1187년, 조지아 국왕 타마르
12세기 후반의 명군. 트라페준타 제국을 세운 알렉시오스 1세의 후원자로서 다비트 4세와 함께 중세 조지아의 명군이다. 1187년으로 시작하면 첫 배우자인 유리와 부계결혼 상태인데 빨리 신앙 125를 모아 이혼한 뒤에 적당한 혈통 보유자를 찾아서 모계결혼해서 후사를 보면 된다. 실제로도 타마르는 유리와 이혼하고 알라니아의 소슬란(조지아 이름은 다비트)과 재혼했는데 게임에선 홀리 퓨리 이후에 타마르와 소슬란이 모두 바그라트 혈통 보유자라서 다른 혈통을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타마르 계열로 물려주려면 둘을 굳이 이어주지 않아도 된다.[14] 어느 쪽이든 해결됐다면 동로마 제국 봉신으로 들어가서 황위를 노리거나, 독자세력을 만들어도 상관없다. 1212~1223년, 1223~1245년 사이에는 타마르와 다비드 소생의 자녀인 기오르기 4세와 루수단으로 플레이할 수 있으며 1187년 시점에선 기오르기가 1192년생, 루수단이 1195년생이고 타마르가 다비트와 결혼하기 전이라 없다. - 1245년, 조지아 국왕 다비트 나린
조지아의 명장이자 군주. 조지아를 침공한 몽골제국을 몰아내고 조국을 해방시키는 데 일조한 조지아의 영웅. 다비트 6세(დავით VI)라고도 불린다. 능력치 자체는 특출나지 않지만 모친 루수단 여왕의 결혼 사정을 반영한 것인지 특이하게도 바그라티오니 혈통과 셀주크 혈통을 다 가지고 있으며, 교육계 트레잇도 2개 보유하고 있다. 셀주크 혈통 덕에 암살운만 따라주면 룸 셀주크 전체를 무혈병합할 수 있다는 점도 포인트. 조지아의 왕으로 스타트하는 시점에서 누이동생 구르지 카툰(타마르)이 승계자인데, 셀주크 가문 소속으로 되어 있다. 정교회로 개종시킨 후 모계결혼을 통해 혈통작하기 좋다. 조지아 왕국의 국력 자체는 별로 좋지 않지만, 다비트와 타마르 남매 모두 미혼이기 때문에 혼인정략을 통해 일칸국을 비롯한 주변 거물들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공작 운만 따라주면 룸 셀주크도 병합할 수 있어 재미있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 936~1066, 레온 왕국 국왕, 레온왕국 Astorga 백작 산초 레온, 레온 가문
이전 레온 왕국의 왕조이다. 1066년 시점에서는 히메나 왕조가 차지하고 있지만 왕위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해볼 수 있다. 가문의 시조는 오르도뉴 2세이고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조였던 칸타브리아 가문의 분가이다. 역사에서는 그의 형 가르시아 1세가 사망하자 왕위에 올라 수도를 오비에도에서 레온으로 천도하고 국명을 레온 왕국으로 명명했다.[15] 다만 레온 왕국 작위를 처음 가진 왕은 그가 아닌 그의 형 가르시아 1세로 나오며 작위히스토리가 아스투리아스 왕국과 합쳐져서 나온다. 1066년 시점에서 가문원 수는 17명이나 작위를 가진 이는 이 Astorga 백작 한명뿐이다. 936년에는 레온 왕국을 가진 채로 시작하니 이 쪽도 좋다.
- 1066, 프로방스 공작 베르트랑 2세 보손(Bosonid) 가문
프로방스의 공작령을 지배한 가문, 이탈리아 왕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같은 공작령내에 Forcalquier 백작 Jaufret도 같은 가문원이다. 이후 프로방스 공작위는 12세기초 인척관계를 맺고 있던 바르셀로나 가문으로 넘어갔다가 13세기 후반 앙주 가문이 갖게 된다. 867년에서도 플레이 할 수 있으나 이 시기에는 프로방스 공작위를 카롤링거 왕조 이탈리아 왕이 소유하고 있다. 936년에는 보손 가문이 이탈리아 왕작위를 갖고 있다.
- 1066, 스코틀랜드 북부 모레이 공작, 아 무레베 가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유명한 맥베스가 있는 가문. 말스넥탄은 이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다. 모레이 공작위는 후에 그루오크와 결혼한 막 아에다 가문으로 계승된다. 관련 가문으로 파이프 백작 막 두브 가문이 있는데, 1066년의 더프 막두브가 바로 희곡에서 맥베스를 죽인 것으로 나오는 맥더프 본인이다.
- 1066, 잉글랜드 국왕의 가신[16] /랭커스터 공작의 가신[17] 에드거, 웨식스 가문
영국의 7왕국을 통일하여 잉글랜드 왕국을 세운 웨식스 왕조의 가문이다. 그 유명한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이다. 이 사람이 바로 에드거 애설링으로 해럴드 2세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왕위에 추대되어 에드거 2세로 잠깐 즉위 하나 이미 대세가 기울어 졌기에 윌리엄 1세에게 항복한다. 그 이후에도 자신의 누이인 스코틀랜드의 성 마가렛을 스코틀랜드의 말콤 3세[18]와 혼인시켜 복위를 위한 지원을 받아 여러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왕위 계승을 포기한다. 그렇지만 그의 조카 에드거를 스코틀랜드 왕위에 올리는 데는 성공하였으며 1차 십자군에도 참가하였다. 그리고 말콤 3세의 딸이 헨리 1세와 혼인하여 마틸다를 낳고 마틸다가 헨리 2세를 낳았기에 최종적으로 지금의 영국 왕실의 피에는 모계로나마 알프레드 대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 영지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따로 수여해 주어야 하며 잉글랜드 왕위에 대한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다. 윌리엄 1세가 강하기 때문에 쉽지 않겠다만 영국 왕위를 되찾으려 노력해보자. 1081년 알렉시아드 시나리오에서는 윈체스터의 남작으로 되어 있다. 1090년대부터는 동로마 제국의 가신으로 있다. 동로마 제국으로 좀 멀긴 하지만 그가 영국왕위를 되찾는 것에 도움을 주자.
- 1066, 아키텐 툴루즈 가신 앨프위네 크뉘틀링(가톨릭)
북해제국의 왕이었던 크누트 대왕의 마지막 자손이다. 능력치는 좋지 않으며 잉글랜드에 대한 강력한 클레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영토가 없으므로 플레이하려면 툴루즈 공작을 먼저 선택한 후 영토를 나눠줘야 한다.
- 1066, 맨 섬 백작 Godfrey, 이바링(Ivaring) 가문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자식들 중 약골 이바르의 후손이다. 라그나르의 다른 자식들 중 흰옷 할프단과 우베의 후손들은 시나리오 시점에서 생존해 있지 않으며 생존하고 있는 라그나르의 다른 자식들의 후손(분가를 제외한 직계 후손)[19]으로는 굳센 비요른의 아프 문쇠 가문과 뱀눈 시구르드의 크뉘틀링 가문이 있다. 그러나 크뉘틀링 가문은 시나리오 시점에서 아무 영지도 없는 상태이고 아프 문쇠 가문은 공작이긴 하나 이교도이기에 난이도가 어렵다. 시나리오 시점에서 이바링 가문의 생존자는 총 3명으로 각각 맨 섬 백작 Godfrey와 그의 아들 갤러웨이 백작 Fingal, 그리고 그의 손자 캐릭의 백작 Comgal이다. 따라서 무사히 상속만 받으면 그의 손자 Comgal은 맨 섬과 갤러웨이, 캐릭 세 영지의 백작이 될 수 있다.
- 1066, 스웨덴 노를란드 족장 '이교도' 에리크 아프 문쇠, 덴마크 슬레스비크 가신 아스비에른 울프르센 아프 문쇠
아프 문쇠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가문으로 노르드의 유명 가문인 아프 이바르 가문, 빗세르크가문, 우빙가문, 크뉘틀링가문, 에스트리드 가문은 이 가문의 분가이다. 아프 문쇠 가문은 스웨덴의 왕가였으나 1066 시나리오 시작 시점에서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스텐킬 가문으로 왕위가 넘어간 상태이며, 에리크에게는 스웨덴 왕위에 대한 강한 클레임이 있다. 스웨덴 왕위를 되찾고 게르만 신화 신앙을 재건하는 컨셉플레이를 하고 싶겠지만 난이도는 매우 높다. 스웨덴 전역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상태기 때문에 파벌 지지자를 찾기도 힘들고 스웨덴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면 그새 혼인동맹을 맺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높은 확률로 참전해서 사실상 스칸디나비아 전역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톨릭 군주의 봉신이기 때문에 게르만 신화의 꽃인 약탈이 불가능하다.이게 무슨 소리요 오딘 양반, 내가 약탈고자라니!그렇다고 천천히 힘을 기르고 돈을 모으다가 왕이 중간왕권을 찍어버리면 순식간에 작위가 털려나가는 불상사가 일어난다.[20] 독립전쟁은 사실상 자살행위로 Way of Life가 설치 돼있다면 음모 포커스로 국왕을 납치한 후 파벌로 왕위 요구를 해보자. 의외로 빠르게 스웨덴 왕위에 오를 수 있다.
아스비에른의 경우 영토가 없는 가신이며,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영토를 수여해야 한다. 1081년에도 아스비에른은 존재하지만, 나이가 많아 빨리 결혼하지 않으면 대가 끊긴다.
- 1066, Kalbid 에미리트의 에미르(시칠리아 공작)의 가신 무함마드 이븐 이드리스 함무드(Hammudid) 가문
하심 가문의 분가인 이드리스 가문의 분가인 함무드 가문이다. 하심 가문은 모두가 잘 아는 무함마드의 가문이며 이드리스 가문은 마우레타니아를 지배한 가문이다. 당연히 이 가문도 사이이드 트레잇을 달고 있으며 후우마이야 왕조의 안달루시아 왕위를 몇번 차지 한 적도 있다. 이 시점에서 생존한 가문원은 4명이지만 하나는 여성이고 둘은 Tuareg Company의 가신으로 들어가 있어서 따로 초대해야 한다. 이 시칠리아 에미르의 가신인 무함마드도 영지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를 위해서는 따로 영지를 수여해야 하며 이 시칠리아 에미르의 가문원이 한명 뿐이라 그가 바로 죽는다면 시칠리아 공작위를 먹고 시작 할 수 있다. 동시기에 알제리 지역을 지배하는 비슷한 이름의 함마드(Hammadid) 가문이 있는데 여긴 아프리카 왕조인 지리 가문의 분가로 관련이 없다. 아무튼 시칠리아 공작위를 먹고 나서 아프리카나 마우레타니아, 안달루시아로 진출 해보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다만 이쪽은 시아파인데 주변의 파티마 빼고 다 수니파에 툭하면 아풀리아의 로베르 기스카르가 성전을 날려오니 비슷하게 사이이드 출신인 라시드 가문보다 체감상 쉽지 않다.
- 1066~1081, 프랑스 파리 동북부 바르망두아의 카롤링거 가문
위대한 카롤루스 대제의 후손, 참고로, 카를루스 대제의 차남인 피핀 4세의 후손으로 1066년에는 에르베르가 바르망두아의 백작이며 1081년에는 에르베르의 딸 아델이 백작이다. 1081년에 아델은 이미 결혼했으므로 가문의 남아있는 남자들을 결혼시키고 선거 상속으로 계승해야 한다. 1085년 시나리오부터는 남편인 카페의 분가인 위그 드 베르망두아가 백작이 된다. 사실상 가문이 끊긴 셈이다. 한창 잘나가는 카롤링거를 해 보고 싶으면 867년 이전 시나리오로 해 보자. 특히 올드갓 시나리오에서는 카롤링거가 바퀴벌레처럼 우글거린다. 샤를마뉴 시나리오에서는 샤를마뉴와 카를로만이 서프랑크, 중프랑크를 가지고 있지만 올드갓 시나리오에서는 카를링거 가문이 서프랑크, 아키텐, 동프랑크, 이탈리아, 로타링기아 등을 소유하고 있다. 거기다 이들은 가까운 친족들이라 암살 몇 번만 성공하면 순식간에 서유럽의 대부분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특히 아키텐 왕 루이 2세의 아버지 샤를 2세가 서프랑크 왕이라 무사히 계승을 하거나 아버지 암살에 성공하면 브르타뉴를 제외한 프랑스 전체를 먹고 시작할 수 있다. - 1066, 동로마 제국 카르보나 공작령 콘스탄티아 백작 요안니스 코메토폴로스
불가리아 제1제국 최후의 황조인 사무일 가문의 후손이다. 아쉽게도 사무일의 직계후손이 아니라 사무일이 죽은 이후 즉위한 조카 이반 블라디스와프의 손자이다 백부와는 달리 아버지는 왕이 아니기에 불가리아 왕국에 대한 클레임은 없고 모아시아 공작령에 대한 클레임이 있다. 하지만 일개 백작이기에 그조차도 쉽지 않다.
그나마 형이 바로 옆 백작령을 가지고 있으니 암살해서 영토를 먹도록 하자. 지금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백치 콘스탄티노스 10세이니 차근차근 카르보나와 모아시아를 먹어가며 불가리아를 독립시키고 사무일의 원수를 갚도록 해보자.
- 1066~1126 Jurchen Band의 가신 Wanyan 가문
도교를 믿는 여진족 용병단 소속으로 금나라의 황실인 완안 가문이다. 1060년대에서 1110년대 즈음 태조 완안아골타와 태종 완안오걸매를 볼 수 있다. 1127년부터 중국 왕조가 송나라에서 금나라로 바뀌고부터 전부 중국으로 떠난 걸로 취급되어 크킹 무대에서 사라진다.
- 1172~1175 아유비드 술탄국 맘루크의 가신 앗 타이비-이븐-알-아미르
파티마 왕조의 마지막 생존자. 무스탈리파의 분파인 타이비파의 시조 이맘으로 알아미르의 실종된 아들. 이집트 권역에 매우 강한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는 그 살라딘이다.
다만, 살라딘의 무력이 자기 자신보다도 낮지만.... 맘루크의 봉신으로 들어가 있으니 주변국에서 그를 초대해서 살라딘을 무너트리고 시아파 왕조의 파티마를 재건 시켜 보자. 1176년에 사망하므로 1176년 부터는 볼 수 없다.
- 1213년 호라즘 술탄국 케르만 베일베이릭의 베이리크 부라크 쿠틀루크 칸
카라키타이의 마지막 후손이자. 거란족의 마지막 왕조 1306년까지 존속하는 후서요 왕조의 시조이다. 1196년부터 1212년까진 카라키타이 가문의 케투유가 지배했으나 이후 쿠틀루크 가문으로 넘어왔다. 요나라의 수도가 원래 만주의 상경임황부 였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대장정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시아에서 거란족 문화로 플레이하고 싶다면 이 쿠틀루크 칸국을 플레이 해보도록 하자. 몽골 시대에는 일칸국의 봉신으로 나온다.
- 1215~1281년 판디야 왕조 촐라만드라의 찰루키야 촐라가문
- 1070~1095년경 촐라가문
둘다 당대 남인도의 강세력이었지만 전자는 영토를 1215년 이후 모두 뻇기고 판드야의 가신이 되어있으며(멸망이 1279년인데!!) 후자는 아예 땅도 없다. 전자는 판디야가문이 강한대다가 주변엔 야디바나 카카티야 호이살라가 버티고 있으니 그냥 1214년 이전의 찰루키야 촐라가문을 하고 후자는 어떻게든 왕위를 되찾자. 주변엔 서찰루키야가 있다.
- 1250~,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헤툼 가문.
팔라부니 가문의 분가로 팔라부니 가문 단절 이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이 되었다. 주변엔 강대국인 룸 술탄국과 맘루크 술탄국이 있어 하기 매우 어렵다.
- 1337, 스코틀랜드 아가일의 캠벨가
총 혈족 수가 9명에 지나지 않지만 스코틀랜드에선 왕들을 배출해낸 클랜 브루스, 클랜 스튜어트 등과 어깨를 나란이 하는 강대 클랜이다. 과거에는 Fate/Zero로 유명해진 켈트의 전설적 영웅 디아뮈드 오 디나의 후손이며 블랙와치와 스코트 근위대를 배출해내기도 했다. 캠벨가는 지금도 건재하며 질 좋은 위스키를 팔고 있다.
2. 이후 유명세를 떨치는 가문
크루세이더 킹즈 2의 게임 전개는 실제 역사와 다르게 흘러가는데 자손들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인물이 결혼해도 역사대로 자식은 나오지 않고 허구의 인물이 생성된다. 삼국지로 설명하자면 관우가 있어도 관평, 관흥, 관색이 생성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이 미래에 유명해질 가문을 플레이할 때 옥의 티 하지만 태어나는 자손의 이름을 역사 인물대로 지으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더불어 어차피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가상 전개로 가는 것도 재미있다.- 769년 위구르 대칸국의 쿠를라스(Qurlas) 씨족
보르지긴 가문의 전신으로 나오는 가문. 769년에만 존재하며 867년 시나리오에선 이미 끊어져 보르지긴 씨족으로 이어져 있다.
- 769, 스비티오드(스웨덴)의 시구르드 링
훗날 스웨덴의 첫 왕가가 되는 아프 문쇠 가문의 부족장이다. 그의 아버지도 역시 유명한 바이킹인 하랄드 워투스[21]이며, 그의 아들은 더 유명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이다.[22] 아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이벤트를 통해 고성능의 고유 혈통을 얻는데 본인이 아니라 아들이 얻는 것이라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요절하면 다른 자식들을 더 낳아도 혈통을 받을 수 없으므로 아들을 곱게 굴려야 한다. 전설적인 바이킹으로 게임상에서도 무력 깡패의 모습을 그대로 보인다. 스웨덴 왕이 되기 야망 찍고 왕위만 생성하면 스칸디나비아에 널린 노르드 소족장들을 봉신 제의로 쉽게 흡수할 수 있고, 종교개혁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부족 플레이 자체가 샤를마뉴에서 너프를 먹어서, 봉건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약탈을 뛰어야 한다. 또한, 아들 라그나르부터는 바이킹계열 고유 혈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해왕/해여왕 혈통을 얻을 수 없으므로 두 혈통을 모두 가지려면 이 시구르드 링으로 열심히 약탈해 해왕 혈통을 먼저 획득할 필요가 있다.
- 769, 인도 남부 촐라만달남의 irccekara 촐라
irccekara는 팔라바의 봉신시기이며 후에 비자야말라시기에 독립하여 제국의 기틀을 세웠다. 그의 후손은 팔라바 왕조를 멸망시키고 남인도를 정복했다. 촐라 왕조는 동남 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촐라를 하고싶다면 1066년의 최전성기 촐라 제국을 플레이하는 게 쉽다. 아니면 1071년 이후의 찰루키야-촐라도 있다.
- 769, 작센 왕국의 브라운슈바이크 대족장 브루노/ 867, 작센 공작 오토, 브라운슈바이크 백작 브루노
루돌핑거(Ludolfinger)가문으로 이 가문에서 바로 그 유명한 오토 대제가 나온다. 카롤링거 왕조는 샤를마뉴 이후 분열되어 흐지부지 되었기에 오토 대제부터 진정한 신성 로마 제국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769년 시점에서는 작센인으로 게르만 신화를 믿고 있고 부족정인데 867년 시점에서는 게르만인에 기독교를 믿고 봉건제로 문화, 종교, 정부 형태까지 싹다 바꿨다. 이 시점에서는 작센의 공작인데 그의 형 브루노의 후손들은 이후 브루노넨이라는 방계가문이 된다.[23] 1066년 시점에서는 이미 가문이 멸족하기 때문에 769년과 867년 시나리오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다가 철의 세기 시나리오가 추가되면서 936년의 독일왕으로 즉위한 오토 대제로도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신성로마 제국 황제는 아니지만 이벤트를 잘 따라가면 신성로마 제국 황제가 된다.
- 769, 보헤미아 공작 네자미슬 Premyslid
오늘날 체코에 해당되는 보헤미아의 초대 왕조인 프르셰미슬 왕조이다. 전설 속에서는 보헤미아를 다스리던 크록이란 인물이 죽자 그의 딸 중 막내 리부셰가 아버지를 이어 보헤미아를 통치하게 된다. 리부셰는 선한 마녀같이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현명한 여인이었으나 여인의 몸이었기에 그 통치에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고 결국 그녀는 농부 프르셰미슬(Přemysl)을 자기 남편으로 삼았다. 프르셰미슬과 리부셰의 후손들은 이후 프르셰미슬 왕조를 열었다. 게임에서는 프르셰미슬 가문의 시조 프르셰미슬은 구현되어 있으나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죽어있고 아내인 리부셰는 구현되어 있지 않다. 769년 시점의 네자미슬은 바로 그 프르셰미슬의 아들이다. 867년 시점에서는 대 모라비아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어 보헤미아 왕국 건국이 비교적 힘들다. 이 시점까지는 슬라브 신화를 믿고 부족정이지만 936년 시점부터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198.9.1부터 보헤미아 왕위를 가지고 있으며 1296.2.8부터 폴란드 왕위를, 1301.1.14에는 헝가리 왕위도 가지나[24] 1306.8.4에 바츨라프 3세가 사망하면서 가문이 몰락하여 1337년 시점에서 보헤미아는 룩셈부르크 가문에게 넘어갔으며 프르셰미슬 가문원은 모라비아 공작령의 olomouc의 주교인 Jan이라는 사생아 단 한 명만 생존해 있다.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신성로마 제국 소속의 왕국으로 있으며 원역사에서는 실패한 신성 로마 제위에 도전해보자.
- 769, 크로아티아 공작 Budimir Trpimirovic
크로아티아 초대 왕조를 개창하는 Trpimirovic 가문이다. 925년 토미슬라브(Tomislav)가 크로아티아 왕국을 건국하고[25] 그 이후로 쭉 왕위를 세습하다가 1090년부터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조로 크로아티아 왕위가 넘어간다. 769년 시점에서는 슬라브 신화를 믿고 있다. 867년 시점에서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나 슬라보니아 공작령 소속 Krizevci의 백작으로 있으며 크로아티아 공작위에 대한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다.
- 769년 중프랑크 왕국 sundgau 백작령의 백작 Rothard welf
초기 벨프 가문, 이후 프랑크 제국이 분열되자 933년 상하부르고뉴를 합쳐 아를 왕국을 세워 왕이 되었고 1034년 왕가가 단절되고 나머지도 곧 단절된다.
- 769년 najera 셰이크국의 셰이크 무자 카시
najera 한 지역만 지배하는 약소영주이지만 카시 가문은 알안달루스 역사에서 유명한데, 한때 후우마이야 왕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꽤 오랫동안 사라고사 토후국으로 존재했던 바누 카시 가문의 일원인 것. 후손에 이르면 사라고사 뿐 이니라 톨레도까지 가지고 있으며 929년까지 존속하나 후우마이야 왕조에 토벌당해 사라진다.
- 769년 베두인 컴퍼니의 가신 이드리스 이븐 아브둘라흐 이드리시드
무함마드의 후손이자 모로코에 왕국을 세우는 이드리스 왕조의 시조이다. 이드리스 왕조는 최초의 시아파 왕조이기도 했다. 따라서 시아파를 믿고 있고 사이이드 트레잇을 갖고 있으며 영지가 없기 때문에 초대해서 영지를 부여해야 플레이 가능하다. 원역사처럼 모로코에 왕국을 건설해도 좋을 것이다. 혹은 하심이나 파티마 가문 대신 시아파 칼리프를 노려도 좋다. 867년부터는 왕국을 세우고 모로코를 지배하고 있다.
- 867, 노르웨이의 니달로스 족장 랑발드르 트뢴데의 아들 롤프르(Hrolfr)(게르만 신화)
미래 영국왕이 되는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의 현조할아버지[26]로 무력 20의 힘세고 강한 바이킹이다. 참고로 노르드인이 프랑스 쪽 프로빈스를 갖고 있으면 이벤트로 노르만 문화로 변화되기 때문에 노르망디를 쳐서 공작위를 손에 넣으면 노르망디 공국을 어느 정도 재현할 수 있다. 그의 후손 윌리엄 1세가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노르만 왕조를 개창한 이래 현재 영국의 군주 찰스 3세에 이르기까지 영국 역대 왕들은 모두 롤로의 혈통이 미약하게나마 흐르고 있다. 홀리 퓨리 때까지는 실제 역사상의 롤로가 되는 "롤프르 랑발드르손 트뢴데"가 따로 있고 롤로는 따로 영지 없는 대장군 직책에 "드 노르망디" 라는 가문인 상태로 들어가있었지만, 철의 세기에서 롤로 드 노르망디는 사라지고 고증대로 랑발드르의 아들 롤프르만 남아있다.[27] 역사대로 "노르망디의 롤로"를 만드려면, 랑발드르로 시작해 아들을 키우고 노르망디를 점령해서 백작으로 독립시킨 뒤 롤프르로 재시작 후 가문명을 d'Normandy 로 바꿔야 가능하다 문제는 문장이다.
- 867년 키르키즈 칸국의 가신 보르지긴 씨족.
나중에 몽골 제국을 세우는 가문이지만 이 때는 아직 알란 구아 등 보르지긴 가문원이 가신으로 있다. 이 시기의 보르지긴 가문으로 플레이하려면 초대 후 영지를 준 다음에 콘솔이나 저장 후 선택하기를 하면 된다.
- 867, 아일랜드 동남부 랜스터의 가신 로르칸 달 그카이스(Dál gCais) 가문
시조는 250년에 사망한 코르마크 카스 달 그카이스다. 지배지가 없고 가만히 놔두면 가문이 끊기지만 이 가문의 후예가 바로 처음으로 아일랜드를 통일하는 브라이언 보루다. 브라이언 보루의 후손은 성을 오브라이언(O'Brien)이라고 한다. 그 외 MacNamara, O'Grady, Kennedy, MacMahon, McInerney, Clancy도 달 그카이스의 분파다. 즉 코난 오브라이언, 존 F. 케네디, 빈스 맥마흔, 톰 클랜시의 조상인 셈이다.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영토를 수여해야 한다. 백작령 클레임을 소유하고 있다.
- 867, 덴마크의 시구르드 라그나르손 크뉘틀링(게르만 신화)
시구르드 라그나르손은 크뉘틀링 가문의 시조로 크누트 대왕의 조상이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다섯 아들 중 하나라 플레이가 편하다.
- 867, 러시아의 류리크
러시아의 기반이 된 류리크 왕조의 시조로 후기 시나리오를 보면 몽골에게 탈탈 털리기 전까지 류리크의 후손인 류리코비치 가문이 러시아를 분할해서 통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CK1 시절이나 올드 갓 DLC 출시 이전에는 류리코비치 가문의 시조로 구현되었던 인물이지만 올드갓 출시 이후에는 아예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다만 류리코비치가 온 러시아에 우글거리는 이후 시나리오와는 달리 여기서는 본인과 아들 헬기(올레그) 밖에 없어서 플레이어가 잡지 않으면 대가 끊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 867, 마자르의 카간 알모시 아르파드
헝가리를 건국하게 되는 아르파드의 아버지. 헝가리를 건국하는 것은 아들 아르파드이기 때문에 가문명이 아르파드인데 크뉘틀링 가문과 유사한 케이스이다. 시작부터 불가리아에 헝가리 정복전쟁을 일으킨 상태로 승리시 '승리자' 별명을 얻으며 카르파티아 산맥 서편 불가리아가 소유하고 있던 헝가리 데쥬레의 영토를 획득하게 된다. 그 이후 정착하게 되면 헝가리로 변경되며 카르파티아 산맥 동편의 영토들이 독립한다. 아르파드가 아닌 알모시의 대에서도 헝가리 건국이 가능하다.
- 867, 나바라의 가르치아
1066년 시나리오에서 이베리아 북부 기독교 왕국을 분할 통치하고 있는 히메노(지메네츠) 왕조의 시조 지메노의 아들이다. 문제는 달랑 남작 작위 하나를 들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하려면 영토를 줘야 하는데 나바라 왕이 줄 수 있는 영토가 없다. 따라서 플레이 하기 위해선 나바라의 영토를 늘리고 영토를 수여해야 된다.
- 867, 바르셀로나 우르헬 Puigcerda의 남작 Wifredo/ 아스투리아스 포르투칼레 공작의 가신 Radulfo 바르셀로나 가문
이후 아라곤의 왕조가 되는 바르셀로나 가문이다. 시조는 Suniefredo로 작중에서는 이미 죽어 있고 가문 구성원 모두 플레이 가능한 작위를 소유하지는 않았기에 따로 영지를 수여해야 한다. 해당 가문원은 소개한 이들 외에도 6명이 더 있고 남성 가문원은 모두 바르셀로나 공작위에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가문원으로는 남작위를 갖고 있고 그래도 바르셀로나 공작령내에 위치한 장남 Wifredo이나 해당 남작위의 후계자이자 이후 아라곤 왕국의 바르셀로나 왕조를 개창할 알폰소 2세의 직계 선조가 되는 차남 Radulfo가 있다. 특히 Radulfo는 이미 Oliba라는 아들이 있기에 후계걱정이 덜하다. 바르셀로나 가문은 이후 바르셀로나 백국을 차지하고 12세기에 들어서서 이전까지 히메나 왕조가 차지했던 아라곤 왕위를 결혼상속을 통해 획득한다.
- 867, 서프랑크의 외드(샤르트르 백작 외드)
훗날 유럽 최대의 왕가인 카페 가문의 시조 격인 인물로 훗날 서프랑크의 왕에 즉위하며 그의 동생 로베르의 손자 위그 카페가 카페 왕조를 세우게 된다. 본인이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플레이에 제약이 많지만 앙주 공작위에 강한 클레임을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 시작시 앙주 공작이 게르만인이라 프랑크인 백작들은 높은 확률로 외드를 추대한다.
- 867, 서프랑크 앙주 백작 Ingelger
앙주의 공작, 예루살렘 왕국을 얻는 앙주 가문이다. 또한, 앙주 가문의 방계인 플랜태저넷 가문은 잉글랜드 왕국을 얻었다. 즉,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의 시조이자 예루살렘 왕가로서 '십자군 시대'에 걸맞은 가문. 플랜태저넷 왕조에는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있고, 예루살렘의 앙주 왕조에는 나병왕 보두앵 4세가 유명하다. 867년 시점에서는 앙주 백작이나 이후 시나리오에서는 앙주 공작이며 1131.8.21에는 예루살렘 왕위를 얻는데 이 인물이 바로 풀크이다. 그리고 풀크는 시빌라나 보두앵 4세의 조부이며 방계 가문인 플랜태저넷 가문과의 공통 조상으로 헨리 2세의 조부이기도 하다. 한편 앙주 가문에는 악마의 자손이라는 전설이 있는데[28] 12세기 무렵에 떠돌던 전설에 따르면 앙주 백작들 중 한 명이 먼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멜뤼진이란 여인을 데려왔고, 그녀에게서 여러 자식들을 보게 되었지만 항상 아내가 미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이 때문에 백작은 비밀리에 기사 네 명에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내의 외투 자락을 밟고 있으라고 명령했고, 명령을 받은 기사들은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했다. 이에 신부가 멜뤼진에게 성체를 갖다댄 순간 뒤에 서있는 기사들을 밀쳐내며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안고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멜뤼진의 정체는 악마의 딸로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체를 바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미사 때 밖으로 나가려했다는 것으로 끝난다. 이때 손이 두 개밖에 없었기에 셋째 아이는 데려가지 못했고, 남겨진 아들이 앙주 백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설이 나올 정도로 포악하고 호전적이며, 폭력적인 행동과 끝을 보고 마는 성미를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왔고, 이런 앙주 가문 말고도 그 통치하의 앙주 주민들도 이웃의 노르망디 주민들로부터 교회를 모독하고, 사제 살해와 역겨운 식사예절을 가졌다는 이유로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 풀크 2세처럼 성인에 가까운 평화주의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계 구성원들은 잔인했고, 풀크 5세처럼 다섯 번이나 결혼하는 엉망인 결혼생활, 방탕, 집안 불화들이 꼬리표로 따라다녔다. 한편, 앙주라는 이름의 기원 중에는 Anjou와 Ange가 동음이의어로 발음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Ange는 '천사'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어원은 영어의 '엔젤'(Angel)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어 단어인 '앙겔로스'(Angelos)였다. 즉 '천사'라는 뜻의 '앙제'가 지역명인 '앙주'로 변형했다라는 설이다. 가문명이 '천사'인데 전설은 악마의 후손이란 전설이 돌고 예루살렘 왕국의 왕가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하다. 방계 가문인 플랜태저넷 가문은 앙주와 잉글랜드, 노르망디를 상속받고 정략결혼을 통해 아키텐을 획득하며 앙주 제국을 세우게 된다. 잉글랜드와 예루살렘이라는 당대 지중해 세계의 서와 동 양끝단에 위치한 두 왕국의 왕위를 나란히 차지했다는 점도 묘하다.
- 867. 서프랑크 왕국 플랑드르 공작 보두앵
플랑드르 지방을 지배하던 플란데런 가문이다. 발상지이자 핵심 연고지로서 플랑드르 백국과 불로뉴 백국을 세습했다. 후대에는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왕조를 건설했으며 에노 백국, 라틴 제국의 황위도 계승했다. 본가인 플란데런 가문은 라틴 제국의 황위를, 방계인 불로뉴 가문은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를 얻었다. 어떤 의미로는 위의 앙주 가문 보다 더 '십자군 시대'에 걸맞은 가문이기도 하다. 라틴 제국의 보두앵 1세와 앙리가 이 가문이며, 예루살렘 왕국의 고드프루아, 보두앵 1세가 속한 불로뉴 가문도 이 가문의 분가이다. 867년 시점에서의 보두앵이 이 가문의 시조인데 그는 카롤루스 대제의 손자인 서프랑크 왕 샤를 2세의 딸, 유디트 카를링과 결혼했다. 이 둘의 혼인은 상당히 아침 드라마틱한데, 먼저 당시 배경을 설명하자면 카롤링거 왕조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태어나면 결혼을 시키지 않고 수녀원으로 보내는 관례가 있었다. 알다시피 이 왕조는 살리카법을 맹신하는 가문이었고, 전 왕조 메로빙거 왕조로 딸들을 대대로 시집을 보내 외척으로 활동하며 메로빙거의 영향력을 점점 집어삼켰었다. 내로남불의 전형인 이 가문들은 자신들이 프랑크 왕국을 역성혁명으로 찬탈하자, 모계로 작위가 흘러가서 작위와 연계되어있는 토지가 다른 나라로 흘러가는 것을 철저히 방지했다. 그러나 샤를 2세는 데인계 노르드인 바이킹의 침략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영국 섬의 앵글로색슨족 왕들과 연합하기 위해 딸인 유디트를 이용해 결혼 동맹을 맺을려고 했다. 여자가 홀로 고생을 할까봐 샤를 2세는 딸에게 랭스 대주교로 하여금 무려 여성 최초로 기름 부음을 하여 여왕으로 만든 다음 웨식스 왕국의 국왕 애설울프의 두번째 왕비로 혼인하게 했다. 그런데 웨식스 왕이 2년 뒤 죽자 그의 아들 애설볼드와 재혼한다(...) 그런데 그 아들도 2년 뒤 사망하자 웨식스의 모든 자산을 팔고 프랑크로 되돌아갔다. 부왕 샤를은 그녀를 수도원으로 보냈지만, 이미 인생 역경 다 겪으며 젊은 애설볼트의 자유분방한 여인으로 살았고 순결하지도 않은 그녀가 그 감옥 같은 자리에 안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와중에 이름 없이 무쇠팔(Bras de Fer[29], Iron Arm)이라고 알려진 한 평민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 평민을 대담한 자(Baudouin)[30] 라고 불렀다. 빡친 샤를 2세는 두 연놈을 바로 교황에게 부탁해 파문시키고, 말그대로 추노꾼을 보냈지만 유디트는 사촌이자 로타링기아 왕국의 로타르 1세의 장남 로타르 2세에게 피신한다. 그들이 알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교황 니콜라오 1세는 로타르 2세의 열렬한 지지 아래 교황에 선출된지라 로타르 2세의 권고와 추천으로 두 커플이 오자 상황을 해명받고 로타르의 부탁으로 파문을 철회한다. 결국 두손두발든 샤를 2세는 그들을 다시 불러들여 오세르에서 정식으로 혼인시킨다. 이 별명이 곧 이름이 된 평민 무쇠팔 보두앵[31]은 바이킹의 공격을 막기 위해 북해에 인접하여 바이킹의 침략이 끊이질 않던 셸드강 남쪽을 영지로 받았다. 샤를 2세는 그 천하디 천한 사위가 바이킹과의 전투에서 끔살 당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보두앵은 상황을 철저하게 관리했고 그 부부 사이에서 보두앵 2세가 태어난다. 그는 바이킹의 위협을 진압하고 그의 군대와 영토를 빠르게 확장했다. 보두앵의 대약진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을 하나의 지역으로 만들었고 그 지역은 조수 간만의 차이로 셀드강에서 하루 두 번의 범람으로 플랑드르(Flandre), 홍수(flood)가 나는 곳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제후국 중 하나가 되었다.[32] 이러한 보두앵 1세의 아내 쥬디스의 화려한 결혼 전과로 쥬디스는 웨식스 왕국의 알프레드 대왕의 계모이자 형수...였다. 그렇기에 보두앵 2세는 알프레드의 딸 엘프스리스와 자연스럽게 결혼한다. 이후 플랑드르 가문은 카롤루스 대제와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으로 이름을 날린다. 보두앵 2세의 두 아들은 각각 아르눌과 아델로프로, 아르눌이 플랑드르를, 아델로프가 볼로뉴를 물려받았다.[33] 고드프루아는 아델로프의 후손이다. 또한 카롤링거 왕조는 메로빙거 왕조의 외척이기에 예루살렘 왕국의 고드프루아가 메로빙거 왕조의 후손이라고 칭하는 명분이 이렇게 생겼다.
- 867, 신성 로마 제국 팔츠의 베르너(팔츠 백작 베르너 5세)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차지하는 잘리어 왕조 시조 콘라트 2세의 고조할아버지이다. 달랑 백작령 하나 들고 시작하지만 열심히 신성 로마 제국을 만들어 나가면 재밌을 것이다.
- 867, 로타링기아의 아미디(부르군디 변경백 아미디)
부르군디 변경백, 10세기 이탈리아의 왕위, 12~14세기 레온-카스티야의 왕위를 차지한 이브레아 가문의 시조이다. 비록 샬롱, 마콩 두 백작령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세 아들과 함께 왕위 차지를 목적으로 진행하면 흥미롭다.
- 867, 폴란드 왕국의 피아스트
후일 폴란드의 왕이 되는 미에슈코 1세의 가문인 피아스트 가문의 시조이다. 가문 이름 자체가 이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므로 이 사람을 선택해서 플레이하면 피아스트 피아스트라는 이상한 이름이 나온다(...).[34] 시작 시점에서는 대폴란드의 족장으로 나오는데 같은 중세 동유럽 4대 가문 중에서도 둠스택을 들고 시작하는 옆집 아르파드 가문이 어지간하면 헝가리 형성에 성공하고[35], 루리코비치는 슬로벤스키만 잡아먹으면 러시아로 승천하는 게 다반사, 프레미슬도 모이미리트가 대모라비아 왕국을 이끌고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면 보헤미아 정도는 충분히 만들지만, 피아스트는 플레이어가 잡지 않으면 폴란드를 못 먹는 경우도 많다.
- 867년 로마 제국 파플라고니아 테마의 스테라고스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후에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고 이후 황가의 선조가 되는 두카스 가문의 원조. 허나 이 두카스가 후의 두카스와 동일인지는 애매하다.[36] 이 당시는 파플라고니아 하나만 가진 공작이지만 1066년부턴 모아시아, 파플라고니아, 니케아에 황제 직위까지 가지고 있다. 뭐 물론 이 시기 황제 능력치가 낮지만.
- 936년 서프랑크 왕국 Sancerre의 백작 Thibaud de Blois
블루아 가문. 잉글랜드, 예루살렘, 나바라 세 왕국의 왕가이다. 이 Thibaud는 블루아 가문의 시조이다. 블루아 가문은 블루아를 포함한 여러 영지를 거느리고 상파뉴 공작이 되기도 하였다. 잉글랜드의 스티븐 왕, 예루살렘의 앙리 1세, 나바라의 호아나 1세가 이 가문 출신이다.
- 936년 파티마 왕조 Tahert의 에미르 Ziri Zirid
지리 왕조, 훗날 북아프리카 튀니스 일대를 지배할 지리 가문의 시조이다. 당연히 이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리 왕조라 불리게 되었다.
- 1066, 신성 로마 제국 사보이아의 백작 피에트로 디 사보이아(피에르 드 사부아)(데 쥬레 아를 왕국)
먼 미래 이탈리아를 통일해 이탈리아 왕국을 세우고 쫓겨나는(…) 사보이아 가문의 선조 피에트로 1세[37]로 한국에서는 듣보잡이라 피에트로 1세나 피에르 1세를 검색하면 딱 1건 나온다. 따라서 영어 위키의 내용을 참조해야 된다.
- 1066 롬바르디아 공작령의 가신 구엘프 벨프(벨프-에스테)
에스테 가문의 장남이자 어머니를 따라 벨프가문으로 분가한 벨프가문의 모계후손, 이후 후손으로는 작센-바이에른의 사자공 하인리히와 한때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배출했으며,이후 하노버 가문으로 이어져 스튜어트 왕조 단절이후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왕위를 차지해 영국을 만들었다.
- 1066, 신성 로마 제국 아르가우의 베르너 폰 합스부르크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시조지만 이 때는 세력이 미약해서 작은 백작령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대로 결혼을 통해 영토를 넓혀나가는 컨셉으로 진행하면 재미가 쏠쏠하다. 미약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부상한 것은 신성 로마 제국의 대공위시대 덕분이었다. 선거권이 있는 선제후들은 지나치게 강한 세력가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한미한 가문을 황제로 옹립하려 했는데 이 때 포착된 것이 바로 당시에는 듣보잡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스위스 일대의 일개 백작이었던 루돌프 4세는 독일 왕으로 선출되어 거점을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옮기게 되었고 훗날 카를 5세 때는 스페인 상속과 더불어 유럽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
- 1066, 신성 로마 제국 하로렌 공작 게르하르드 샤투누이
샤트누이 가문의 중시조, 로렌 공작 가문임을 볼 수 있듯이 700년간 하로렌 지역을 다스린 가문의 중시조로, 후손인 프란츠 1세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여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고, 이후엔 합스부르크 가문에 흡수되어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이 된다.
- 1066, 신성 로마 제국 니더바이에른의 오토 폰 비텔스바흐
전성기때는 룩셈부르크 가문과 함께 신성 로마 제국 제위를 두고 다퉜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국내 열강으로 남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시조. 다만 아직까진 본격적으로 흥기하기전이라 백작위 하나밖에 없다. 자체 능력치는 상당히 높지만 쓸만한 재상이 없어서 초반에 구하느라 고생좀 해야된다는 게 흠.
- 1066, 잉글랜드 노퍽의 가신 마브 피츠 알렌(마브 스튜어트)
훗날 스튜어트 왕조의 조상이지만 1066년 시점의 스튜어트 가문은 브르타뉴에서 도망친지 얼마 되지 않아 가문원도 적고 아버지인 알렌 스튜어트도 사망한 상황이며 결혼도 안 한 상태다. 거기다 영지 또한 없기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백작급의 영지를 수여해야 한다. 다만 1177년부터는 작위를 수여받아 레녹스 백작령이 영지로 되어 있으니 콘솔 플레이를 하고싶지 않다면 1177년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거기다 1337년 시나리오에는 스코틀랜드 왕과 인척관계이도 하기 때문에 플레이가 편하다.[38]게임도 빨리 끝난다.그리고 이후 1603년 잉글랜드의 튜더 왕조가 단절되자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6세가 영국 전체를 통치하는 제임스 1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 1066, 교황령 오르비에토의 백작 자코모 오르시니
4명의 교황[39]과 34명의 추기경을 배출한 명문가 오르시니 가문. 이 시점에서 교황령의 봉신 백작으로 되어있으며 오르시니 가문의 시조로 알려진 보본이 6세 아들로 후계자로 되어있다. 게임상에서 플레이하기에는 매우 골때리는데, 신정 왕국인 교황령의 봉건제 영주라는 특성상 세력 확장이 매우 어렵다. 교황령 내의 유일한 봉신이기에(나머지 두 백작령은 교황 직할) 결혼이나 왕국 내 전쟁을 통한 왕국 내 세력 확장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파벌이나 결혼 설계를 통해 왕위를 찬탈할 수도 없기 때문. 오직 외부 공격으로 확장하는 것만이 답인데 위로는 게임 내 최강국인 신성로마 제국이 버티고 있으니 건드릴 곳이 없고 사르데냐 혹은 이탈리아 남부의 몇몇 독립 백작령들을 어떻게든 흡수해야 한다. 이후 공작 이하의 작위를 유지하며 현실에서처럼 교황령을 좌지우지하는 권신 컨셉으로 나가도 좋고 교황 이상의 세력을 확보하면 독립하여 새로운 세력을 구축해나가도 좋다.
-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월리엄의 가신 로저 드 몽고메리
노르만의 영국 정복에 매우 큰 기여를 한 가신으로 이후 슈루즈베리 백작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 몽고메리 가문은 먼 훗날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과는 혈연적 연관성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몽고메리라는 성 자체에 있는 뽕을 즐기고 싶다면 한번 해보자. 참고로 버나드 몽고메리는 아일랜드계가 선조이다.
- 1066년 올덴부르크 백작령의 백작 엘리마르
이후 칼마르 연맹을 주도하는 올덴부르크 가문으로, 현 덴마크-노르웨이의 왕가인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직계조상이다. 글뤽스부르크 왕조가 올덴부르크 왕조의 방계후손이다. 크누트계의 마지막 후손인 에스트리드센 왕조가 단절되고 잠시 혼란기를 거친 이후 칼마르 연합왕국(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동군연합)의 왕이 되나 스웨덴 왕국은 구스타브 1세 바사의 주도로 독립해 떨어져나가 덴마크와 노르웨이만을 갖고 있었다. 1814년에 스웨덴에게 다시 노르웨이를 뺏겼다가 1905년 글뤽스부르크 왕조가 다시 노르웨이를 되찾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외에도 홀슈타인고토로프 분가를 통해 러시아 표트르 3세 이후의 로마노프 왕조에 부계 혈통을 남겼고,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이 그리스계 글뤽스부르크 왕가의 후예이다. 즉, 현재의 영국 국왕 찰스 3세도 글뤽스부르크 왕가의 후예인 것.[40]
- 1066년 러시아 페레슬라브 공국의 왕자 블라디미르 베스폴드비치 모노마흐/1113년 키예프 루스의 대공 블라디미르 2세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흐의 외손자로 어머니의 성인 모노마흐를 물려받아 모노마코비치 왕조를 세웠다. 다만 게임상으로 모노마크 가문으로 편입은 안 되어 있고 크킹 3에서 모노마코비치 가문으로 분가가 되어있다. 이후 아들인 유리 돌고루키를 통해 블라디미르 수즈달-모스크바 대공국으로 이어지는 류리크 왕조의 시조로 즉, 류리크 왕조의 중시조이다. 크킹 2에서는 가문 분가가 사생아 외에는 불가능하여 모노마크비치 왕조로 만들어주려면 일부로 치트로 사생아 트레잇을 달아주어 분가한 후 Monomakhvichi로 가문명을 바꿔야 한다. 아무튼 이자로 키예프 루스를 다시 한번 통일하고 후손들의 업적인 러시아 제국을 몽골 침입전에 이루어보자.
- 1066, Lausitz의 백작 Dedo 베틴 가문
작센을 통치한 독일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시조는 디트리히 1세(Dietrich I, 916 – 976)이며 철의 세기 시나리오에서 이 인물을 만나볼 수 있으나 작위가 없어 플레이를 하려면 영지를 수여해야 한다. 1089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베틴 가문을 마이센 변경백으로 임명했다. 1263년에는 튀링겐 변경백령을 획득했다.[41] 1422년, 아스카니아 가문(Askania)[42]의 마지막 작센 선제후이자 작센-비텐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3세가 자녀 없이 죽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지기스문트는 후스 전쟁에서 자신을 도운 공로에 대한 보답으로 마이센 변경백 프리드리히 4세를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로 임명하고 작센-비텐베르크 공국을 수여하였다. 1425년, 튀링겐을 제외한 베틴 가문의 모든 영지가 프리드리히 1세에게 귀속되었고, 1440년에는 프리드리히 2세가 튀링겐까지 상속받으며 베틴 가문의 중요 영지인 작센-비텐베르크 공국, 마이센 변경백령, 튀링겐 방백령이 모두 한 사람에게 모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가 죽고 차남 알브레히트가 형 에른스트에게 재산 분할을 요구하여 1485년, 결국 영토가 동서로 갈라졌다. 장남인 에른스트가 작센 선제후 직위와 작센 서부인 비텐베르크, 남부 튀링겐을 상속받아 종가 에른스트계의 시조가 되고, 알브레히트가 작센 공작위와 작센 동부인 마이센 변경백령과 북부 튀링겐을 상속받아 방계 알브레히트계의 시조가 되었다. 에른스트계는 튀링겐 공국들을 다스리고 있던 계통으로 1918년 당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작센마이닝겐 공국,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즉 이 가문의 분가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로 19세기 들어 이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에서 영국, 벨기에, 불가리아, 포르투갈 왕들이 나왔다.[43] 이들 계통은 루터파 개신교 신자인데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에른스트계는 개신교로 개종하고 신교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작센 왕국의 알브레히트 계열은 원래 방계였으나 슈말칼덴 전쟁에서 본가에 배신을 때리고 카를 5세에 줄선 대가로 본가의 영토 대부분과 선제후 직위를 빼앗았다. 그리하여 알브레히트계는 1547년~1918년 사이까지 작센 선제후국과 작센 왕국을 통치했다. 이 계통은 가톨릭 신자인데 정작 작센 왕국 신민의 95%는 프로테스탄트였다. 이는 1697년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으로 선출되기 위해 개종했기 때문이었다. 베틴 가문은 1918년 당시에는 독일 제국의 틀 내에서 왕국 하나, 대공국 하나 그리고 공국 셋을 통치하였다. 여튼 이렇게 수많은 왕가의 조상이 되는 베틴 가문도 1066년 시점에서는 일개 백작에 불과하다. 형제 프리드리히가 Munster의 주교-영주로 있는데 어차피 신정체제라 상속받을 수도 없어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 1066, 제노바 공화국의 그리말디 가문
현재까지도 모나코를 통치하고 있는 그리말디 가문으로 이 시점에선 제노바 공화국의 도제도 아닌 일개 도시귀족이다. 그렇다고 하찮은 가문은 아닌 제노바의 명문가이다. 공화국의 도시귀족 플레이인데 어느정도 네임드로 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그래도 초반에 후보 한 명만 꺾으면 도제로 선출되기 쉽다.
- 1066, 프랑스 왕국 부르고뉴 공작 '늙은이' 로베르 부르고뉴 가문
카페 가문의 분가로 훗날 포르투갈 왕국의 보르고냐 왕조를 세우는 부르고뉴 가문의 시조이다. 그는 카페 왕조 로베르 2세의 차남이며 1066년 시점에서는 부르고뉴 공작이다. 그의 손자 중엔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알폰소 6세(Afonso VI)의 딸 테레사 데 레온와 결혼한 엔히크 드 보르고냐[44]가 있었으며 엔히크의 아들이 포르투갈 왕국을 세우는 정복왕 아폰수 1세[45]이다. 이후 포르투갈 왕조인 아비스 왕조, 브라간사 왕조도 따지고 보면 이 가문에서 비롯된다.[46]
- 1066, 프랑스 왕국 부르고뉴 공작령 마콩 백작의 가신 위그 드 레텔
레텔 가문. 제1차 십자군 원정의 주역 중 하나이자 후사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보두앵 1세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왕국과 에데사 백국의 지도자로 즉위한 보두앵 2세의 아버지이다. 1066년 시점에서는 영지가 없으며 아들 보두앵이 1075년생이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라서 그냥 1075년으로 시작하거나 아니면 아들을 낳고 이름을 보두앵이라고 지어주어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는 컨셉 플레이를 도전해보자.
- 1066, 셀주크 왕조 호라산 공작의 가신 쉴레이만 셀주크
셀주크 가문. 룸 술탄국의 시조이다. 셀주크 제국의 왕족이자 셀주크 제국 술탄 알프 아르슬란과의 계승 전쟁에서 패배한 쿠탈므쉬의 아들이며 룸 술탄국을 세운 인물이다. 그러나 룸 술탄국은 플레이어가 생성이 불가능한 작위이므로 룸 술탄국이 생성되어 있는 1077년부터 플레이 하거나 아니면 그냥 셀주크 왕조를 노리자. 다만 1066년 시점에서는 영지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를 위해서는 영지를 수여해야 한다.
- 1066, 가즈니 왕조 헤라트의 베이 무함마드 구르
구르 왕조의 시조이다. 1173년 아프간 왕위, 1182년 신드 왕위, 1186년 라자스탄 제위를 얻어 구르 왕조를 개창하는 기야스 알 딘 무함마드의 고조부이다. 구르 왕조는 이전 통치자들인 가즈니 왕조, 셀주크 왕조와 마찬가지로 당시 서아시아 지역의 주류 문화였던 페르시아 문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장차 무굴 제국 시대까지 이어지는 아프간-북인도 지역의 페르시아 문화 득세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전 통치자들인 가즈니 왕조, 셀주크 왕조와 마찬가지로 정통 수니파 교리를 적극 수용하여 당시 이란 지역에 유행하던 시아파를 거부했다. 한편 북인도 지역의 확장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가즈니 왕조와 달리 힌두스탄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이슬람의 전파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오늘날 파키스탄 국가 탄생의 기원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구르 왕조의 지배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구르 왕조의 맘루크 장군인 쿠트브 웃 딘 아이바크가 델리에 노예 왕조를 세워 눌러앉게 되면서 북인도 지역 이슬람화의 토대가 되었다.
- 1100년경 이후~1125년, 몽골리아 칸국의 가신 야율대석 카라키타이
후에 한동안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는 서요를 세운 사람. 이 당시에는 말기 현상이 시작된 요나라의 가신이다. 카라키타이 이벤트는 없기에 그냥 거기서 칸직위를 노리거나 1141년 이후의 야율대석을 노리자.
- 1125년 5월 23일, 신성로마 제국 튀링겐 공작령 나사우의 백작 루프레히트 나사우 가문
오늘날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 왕가의 뿌리가 되는 유럽의 주요 귀족 가문이다. 1255년 하인리히 2세(Heinrich II. "der Reiche" von Nassau 1180~1251?)의 아들 발람과 오토가 나사우를 분할하면서 2개의 가계로 갈라졌다. 발람 2세(Walram II. von Nassau 1220~1276)의 후손들이 발람계, 오토 1세(Otto I. von Nassau 1224~1290)의 후손들이 오토계가 되었는데 발람의 후손들이 오늘날 룩셈부르크 대공 가문이고, 오토의 후손들이 오늘날 네덜란드의 오라녀나사우 왕조의 뿌리이다. 일반적으로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은 발람계를 의미하며 1255년 발람 2세와 오토 1세가 체결한 프리마 디비소(Prima divisio)에 따라 발람 2세의 후손들은 나사우바일부르크 백작이 되었다. 주로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활동했으며, 발람 2세의 아들 아돌프는 합스부르크 가문에 맞서 독일왕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1816년 빌헬름 백작(Wilhelm I. von Nassau 1792~1839)이 초대 나사우 공작이 되었다. 빌헬름의 아들 아돌프 공작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벌어지자 오스트리아 제국 편을 들었으나 전쟁이 프로이센 왕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나사우 공국을 빼앗겼고 독일 제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여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먼 친척인 네덜란드 국왕 빌럼 3세가 딸만 남기고 사망하면서 네덜란드와 동군연합이었으나 살리카 법을 따르던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대공으로 즉위했다. 오토계는 발람계와 달리 주로 저지대 국가에서 활동했다. 오토 1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하인리히는 나사우지겐, 차남 에미코는 나사우하다마르, 3남 요한은 나사우딜렌부르크를 물려받았다. 나사우딜렌부르크를 물려받았던 요한은 자녀 없이 죽어서 하인리히의 후손들이 나사우딜렌부르크를 물려받았는데, 하인리히의 증손자인 딜렌부르크 백작 엥겔베르트(Engelbert I. Graf von Nassau-Dillenburg 1370~1442)는 부르고뉴 공국으로 건너가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을 섬겼고 그 대가로 브레다 백작의 상속녀 요한나 반 폴라넨(Johanna van Polanen 1392~1445)과 결혼했다. 네덜란드의 국부 침묵공 빌럼은 엥겔베르트의 5대손이며, 현재 네덜란드 오라녀나사우 왕조의 시조인 빌럼 1세는 이 침묵공 빌럼의 동생 요한 6세(Johann VI. von Nassau-Dillenburg 1536~1606)의 후손이다. 침묵공 빌럼의 가계는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을 겸한 윌리엄 3세가 메리 2세와의 사이에서 후사를 얻지 못해 단절되면서 본가인 나사우딜렌부르크를 계속 다스리던 요한의 후손들이 네덜란드를 이어받아 통치했다. 다만, 게임에서는 오토 1세의 후손이 구현되어 있지 않아 대가 끊긴 것처럼 나온다. 때문에 오토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오토 1세가 살아있는 1227.1.1~1290.1.1 사이에 후사를 보게 해야 한다.
- 1129, 프랑스 왕국 앙주의 조프루아(앙주 공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 왕조의 시조로 잉글랜드 왕 헨리 1세의 딸 마틸다와 결혼하여 플랜태저넷 왕조를 세우는 아들 헨리 2세를 낳는다.
- 1187, 인도 서북부 라후르의 쿠트브 우드 딘 아이바크
아이바크는 터키계 궁중 노예였는데 주군인 고르 왕조의 무하마드가 암살되자 독립해서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맘루크 왕조를 세웠다. 다만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는 전혀 상관없다.
- 1192, 신성 로마 제국 남부 뉘른베르크의 호엔촐레른
1066년 시나리오에서도 슈바벤 공작이 다스리는 퓌르스텐베르크에 딸린 도시 촐레른의 남작으로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이 있는데 슈바벤 공작으로 들어가 백작령 하나를 주면 1066년 시나리오에서도 호엔촐레른 가문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촐레른 남작의 아버지 부르크하르트도 나오는데 그의 장남 콘라트는 본가쪽에 남아 슈바벤계의 조상이 되었고 차남 프리드리히는 뉘른베르크 성주가 되어 프랑켄계의 조상이 되었다. 슈바벤계는 그냥 독일 남서부의 무난한 영주들로 남았다가 루마니아 왕국의 왕가가 되었고, 프랑켄계는 1415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1618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작, 1701년 프로이센 국왕을 거쳐 1871년 빌헬름 1세에 의해 독일 제국의 황제를 선언한다.
- 1224년. 헝가리 왕국 트란실바니아의 바토리 미클로슈
나중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된 바토리 이슈트반[47]과 그의 조카인 바토리 에르제베트로 유명한 가문이지만 이 때는 아직 트란실바니아의 일개 백작가문이다. 게임에서 바토리 가문으로 플레이하려면 가장 빠른 연도를 1224년 12월 31일로 맞추면 된다.
- 1247년 2월 12일. 룩셈부르크 공작 하인리히 5세 룩셈부르크 가문
중세 신성 로마 제국, 보헤미아 왕국, 룩셈부르크 공국의 귀족 가문. 본래 룩셈부르크 가문은 룩셈부르크 지역을 지배하던 유럽의 평범한 가문이었다.[48] 그러다가 1308년 룩셈부르크 가문의 하인리히 7세[49]가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왕으로 선출되는 행운을 맞았다. 하지만 처음 독일왕으로 선출되었을 당시 독일왕, 더 나아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실권이 없던 허수아비였다. 13세기에 황제와 교황 간의 싸움의 후유증으로 대공위시대가 이어졌고, 이후 선제후들은 강력한 황제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명망가 공작 가문 대신에 한미한 백작 가문 출신을 황제로 선출했으며, 한 가문에서 독점적으로 제위를 세습하지 못하도록 가문을 바꾸어 가며 황제를 선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때를 잘 만나 독일왕으로 선출된 것이었다. 하인리히 7세 역시 당시 그렇게 황제로 선출되었던 초기 합스부르크 가문이나 나사우 가문 출신 왕들처럼 실권이 미약한 단명한 군주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1306년, 보헤미아 왕국을 다스리던 프로셰미슬 왕조의 마지막 왕 바츨라프 3세가 16세의 나이로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의문의 암살자에게 살해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고 1310년 하인리히 7세가 곧바로 이 지역에 개입, 아들 요한[50]을 바츨라프 3세의 여동생인 엘리슈카 공주와 결혼시키며 보헤미아 왕위를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경쟁자들을 물리치며 보헤미아 왕관을 차지하면서, 일약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가문으로 급부상하는 반전을 맞게 되었다.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룩셈부르크 가문은 대공위 시대 이후 약해진 황권을 강화하고 나아가 대공위 시대 이전처럼 제위를 독점 세습하려 했으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리고 아예 고향 룩셈부르크를 떠나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이주, 영구 정착하여 그곳을 크게 발전시켰다.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기의 룩셈부르크 가문은 룩셈부르크의 가문이 아니라 보헤미아 프라하 연고의 가문이었으며, 실제로 룩셈부르크 가문 또한 보헤미아 프라하 출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카를 4세 등 룩셈부르크 가문의 대표적인 황제들은 지금도 체코의 위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던 룩셈부르크 가문 역시 보헤미아의 전 주인이었던 프로셰미슬 가문과 마찬가지로, 1437년 지기스문트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단, 혈통 자체는 모계 혈통을 통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51] 작중에서는 연도를 잘 맞추면 룩셈부르크의 공작, 보헤미아의 왕,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로 플레이 해볼 수 있다. 참고로 오늘날의 룩셈부르크 대공가는 이 가문이 아닌 나사우 가문과 연관이 있다.
- 1263년, 신성 로마 제국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 고팅겐의 백작 '젊은이' 하인리히 레히나르
게임상으로는 레히나르 가문으로 나오나 헤센 가문의 시조이다. 독일 헤센카셀 선제후국과 헤센 대공국을 통치한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며 러시아 제국, 덴마크 등 유럽 여러 국가의 왕비를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먼 미래에 핀란드 왕국의 초대 국왕을 배출한 가문의 부계 혈통 가문이기도 하다. 핀란드 왕가의 경우엔 정확히는 헤센 가문의 방계인 헤센-카셀 가문이다. 헤센 가문의 뿌리는 튀링겐을 통치하던 루도빙거 가문(Ludowinger)으로, 튀링겐 방백 루트비히 4세의 딸 조피로부터 시작한다. 루트비히 4세는 헤르만 2세와 조피를 두었으나 헤르만 2세가 어린 나이에 요절하면서 루도빙거 가문은 단절되었고 튀링겐은 무주공산이 되었다. 튀링겐을 두고 브라반트 공작 앙리 2세와 결혼한 조피[52]와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가 서로 대립해 17년 간의 계승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하인리히 3세가 승리하여 튀링겐을 가져갔으나 튀링겐 일부를 떼어 조피에게 주었고, 조피는 아들 하인리히에게 하인리히 3세로부터 받은 땅을 주면서 헤센 방백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헤센 가문은 독일 제국의 호엔촐레른 왕조, 러시아 제국의 로마노프 왕조, 대영 제국의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와 통혼하기도 했다. 헤센 가문은 비록 독일의 소국 출신이지만 대대로 다산을 했다는 점과 유서깊은 통치가문이라는 점 덕분에, 알렉산드르 2세를 비롯해 각국의 군주들이 헤센 가문의 공녀들을 배우자감으로 많이 데려갔다. 이렇게 황후 혹은 왕비가 된 헤센 가문의 공녀들이 시집간 왕실에서 많은 자녀를 낳았다.[53]
- 1268년, 신성 로마 제국 남부 퓌르스트베르크[54]의 하인리히 폰 우라흐
훗날 독일 제국의 괴뢰국인 리투아니아 왕국의 국왕 민다우가스 2세로 즉위한 빌헬름 카를 폰 우라흐의 조상이다. 괴뢰국 리투아니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고 리투아니아를 할양받은 독일이 수립한 국가였으나, 그 해에 독일이 패망하면서 리투아니아도 공화국으로 바뀌며 독립했고 민다우가스 2세는 퇴위 후 스위스·이탈리아에서 여생을 보냈다.
- 1277,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공작 오토네 비스콘티
13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중반까지 밀라노를 중심으로 롬바르디아 일대를 다스린 가문. 또한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를 배출한 가문이기도 하다. 밀라노를 지배한 비스콘티 가문의 1대 지배자인 오토네 비스콘티 이후 118년이 지난 1395년 10대 지배자였던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작위를 획득하여 밀라노 공국의 초대 공작이 되었다. 이후 비스콘티 가문의 남계 직계가 단절되자[55] 비스콘티 가문의 용병대장에 불과했던 프란체스코 1세 스포르차가 비스콘티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한 후 밀라노를 지배했다. 참고로 피사 공화국의 도시귀족 가문 중에도 동명의 비스콘티 가문이 존재하는데 이쪽은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과 문장도 다르며 별개이다. 피사의 비스콘티 가문은 수탉을 가문의 상징으로 사용했고, 반면에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은 사라센 또는 아이들을 집어삼키는 비시오네(커다란 뱀)를 가문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밀라노의 비스콘티 상징은 여전히 밀라노와 깊은 관련이 있다.
- 1291, 프랑스 메인의 샤를 드 발루아(앙주 공작 샤를 3세)
발루아 가문의 시조로 카페 왕조 필리프 3세의 아들이자 필리프 4세의 동생이다. 그의 아들이 카페 왕조가 단절되자 발루아 왕조를 세운 필리프 6세다.
- 1337, 리투아니아 왕국의 비텝스크 공작 알기르다스
훗날 폴란드 야기에우워 왕조의 초대 왕이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대공이 되는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 (Władysław II Jagiełło)의 아버지이다. 브와디스와프 2세는 알기르다스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는데 폴란드 왕위에 오르기 전 리투아니아어 이름은 요가일라(Jogaila)였다. 1377년 알기르다스가 죽기 전 장남 안드레이 대신에 막내 요가일라를 차기 대공으로 지명하자 리투아니아 귀족들 내에서 많은 동요가 있었으나, 요가일라는 안드레이 및 삼촌 켕스투티스를 차례로 제거하며 리투아니아 대공작으로써 통치를 시작했다.[56] 요가일라는 1382년 폴란드의 왕 루드비크[57]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1384년 야드비가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요가일라는 1386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크라쿠프에서 세례성사를 받았고, 35세의 나이[58]로 폴란드 왕국의 첫 번째 여성 군주였던 어린[59]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여 폴란드 왕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로 즉위하였다. 그리하여 1387년에는 리투아니아를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1399년 아내 야드비가 여왕이 만 25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폴란드를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리투아니아의 게디미나스 왕조의 요가일라는 폴란드에서 야기에우워 왕조[60]의 개창자가 되었으며, 최초로 두 국가를 동군연합으로 묶은 공을 인정받아 이따금씩 폴란드 황금기의 시작을 연 왕이라고 여겨진다. 이후 야기에우워 왕조는 1572년까지 이 두 지역을 통치했으며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왕조 중 하나였다. 당시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를 합치면 기독교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큰 왕국이었을 정도였으며, 이 두 나라는 1569년 루블린 조약을 통해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거듭나면서 국력이 더욱 건실해졌다. 그의 사후 두 아들 브와디스와프 3세와 카지미에시 4세가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후 야기에우워의 후손들이 폴란드의 왕 겸 리투아니아의 대공으로 16세기 말까지 통치하게 되는데, 특히 지그문트 1세와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의 통치 시기는 폴란드 왕국 역사상 최전성기였다. 야기에우워 왕조의 왕들은 폴란드 국왕(1386~1572), 리투아니아의 대공(1377~1397, 1440~1572) 외에도 헝가리 왕국(1440~1444, 1490~1526), 보헤미아 왕국(1471~1526)의 왕위에 올랐다.
- 1337, 보스니아 공국의 Usora 백작 블라디슬라프 코트로마니치
훗날 보스니아 왕국을 건국하여 코트로마니치 왕조를 개창하는 트브르트코 1세(Tvrtko I)의 아버지이다. 다만 트브르트코는 1338년생으로 아직 출생되지 않았으며 이 시점에서 보스니아 공작위는 블라디슬라프의 형 스체판이 갖고 있다. 스체판이 딸 하나만 갖고 있어서 암살만 잘하면 보스니아 공작위를 상속받을 수 있지만 보스니아 공작위의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기에 여차하면 바로 찬탈해도 된다. 보스니아 문화이면서 보스니아, 흄 공작령을 지배하고 있다면 디시전을 통해 보스니아 왕국을 만들 수 있기에 원역사처럼 플레이해도 좋다.
- 1337, 이탈리아 수사 공작령 몬페라토 백작 테오도로 팔레올로고
본래 몬페라토는 알레라미치 가문[61]이 통치했으나 1284년 몬페라토 변경백 굴리엘모 7세의 딸 몬페라토의 이리니가 동로마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에게 시집을 간 후 굴리에모 7세의 아들 조반니 1세가 1305년에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면서 가문이 단절되어 안드로니코스 2세와 이리니의 아들 중 하나인 테오도로스 팔레올로고스가 1306년 몬페라토 변경백 테오도로 1세 팔레올로고로 즉위하면서 동로마 황가인 팔레올로고스 가문의 이탈리아 생활이 시작된다. 이들 몬페라토의 팔레올로고스 가문은 본가가 동로마 제국과 함께 멸망한 이후에도 통치를 이어갔으나 1533년 몬페라토의 팔레올로고스 가문도 남계 후손이 끊겨 몬페라토 변경백 굴리엘모 9세의 딸 마르게리타 팔레올로가와 결혼한 만토바 공작 페데리코 2세 곤차가가 몬페라토를 통치하게 되었고 그 후 페데리코 2세 곤차가의 증손녀인 마르게리타 곤차가는 로렌 공작 앙리 2세와 혼인하였는데, 둘 사이에서 태어난 클로드 프랑수아즈는 훗날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여 신성 로마 황제가 되는 프란츠 1세의 증조모로 즉, 오늘날의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은 동로마 황가였던 팔레올로고스 가문의 혈통[62]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게임상에서 테오도로는 동로마 황가의 일원이면서도 이탈리아인이며 동로마에 강한 클레임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로마 제국을 재건하는 플레이도 가능할 것이다.
- 1337, 프랑스 부르봉의 루이 드 부르봉(부르봉 공작 루이 1세)
합스부르크 가문에 버금갈만한 명문가로 현재도 스페인 왕위와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르봉 가문이다. 그는 카페 왕조 루이 9세의 아들 로베르 드 프랑스의 아들이었다. 시간을 뛰어넘어 부르봉 왕조를 강림시키기 위해 노력해볼 수 있으며 연대를 좀 더 앞으로 올리면 그의 아버지 로베르도 플레이해 볼 수 있다.[63] 그의 후손 앙리 4세는 발루아 왕조 단절 후 부르봉 왕조를 세우게 된다.
- 1337, 잉글랜드 왕국 랭커스터 공작령의 더비 백작의 가신 존 네빌
후에 에드워드 4세의 즉위에 기여하여 역사상 최초로 킹메이커라 불린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가문이다. 이 존 네빌은 그 리처드 네빌의 증조부이다. 아직은 8세의 어린 아이로 그의 아버지 랄프도 생존해 있다. 네빌 가문의 시조는 랄프 네빌로 존 네빌의 조부이다. 그는 1337년 시점에선 이미 사망했으며 1262년 10월 18일부터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가문원 모두 영지가 없기에 플레이를 위해선 영지를 수여해야 한다. 존 네빌은 이후 아들 랄프를 두었으며 랄프는 많은 자식을 두었는데 그 중에는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와 결혼해 에드워드 4세를 낳는 세실리 네빌도 있었으며 또 다른 자식으로는 '킹메이커'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아버지가 되는 솔즈베리 백작 리처드 네빌도 있었다.
- 1337, 잉글랜드 왕국 귀네드 공작령의 귀네드 백작령 Harlech 남작 Tewdwr 튜더가문
나중에 튜더 왕조를 개창하는 헨리 7세의 고조부이다. 웨일즈 출신의 매우 한미한 귀족가문으로 이 가문의 선조 Ednyfed는 귀네드의 군주였던 Llywelyn 대왕과 그 후손들의 신하로 섬겨왔다. 그는 데후바스의 군주 Rhys의 딸과 결혼하여 많은 자식을 두었는데 그 아들 중 Goronwy가 페미니드 마을에 정착하였고 그의 아들 Tewdwr가 에드워드 1세에게 영지를 하사받았다. 그 Tewdwr은 아들로 Goronwy를 두고 다시 그 Goronwy는 아들로 Tewdwr을 두었는데 이 아들이 바로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후 그는 아들 Maredudd를 두는데 그는 리처드 2세에게 충성하여 혼란 속에서 즉위한 헨리 4세에 대항한 웨일스 왕가 출신인 Owain Glyndwr의 반란에 지지하였다가 진압당해 그 영지의 상당부분을 몰수당한다. 그의 최후는 알 수 없으나 그에게는 Owain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반란에 가담했다가 용서를 받은 그의 친척들처럼 Owain도 용서를 받아 궁정기사로 일하게 된다. 그는 이름을 영국식인 Owen(오웬)으로 고치고 그의 할아버지의 이름 Tewdwr(영국식으로는 Tudor)를 성으로 하여 튜더가문을 연다. 그는 궁정기사로 왕비와 호감을 쌓았는지 헨리 5세가 죽자 미망인이 된 카트린 드 발루아와 결혼을 하여 웨일스 출신의 듣보잡 가문에서 벗어나 에드먼드 등의 자식을 두었고 이후 헨리 6세에게 이부형제로 인정받게 되어 리치먼드의 백작이 된 에드먼드는 랭커스터 가문의 분가였던 보퍼트 가문의 마거릿과 결혼해 아들을 두는데 그가 바로 헨리 7세이다. 헨리 7세는 장미전쟁의 여파로 살아남은 랭커스터의 남성 혈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꿩 대신 닭으로 랭커스터파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등극하는데 성공하여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의 딸이자 에드워드 5세의 누이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두 가문을 통합한 튜더 왕조를 개창한다. 그는 영국의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헨리 8세를 아들로 두었고 그의 후손으로는 영국의 전성기를 연 엘리자베스 1세도 있는 등 튜더 왕조는 장미전쟁으로 몰락한 귀족세력에 반비례해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영국의 최초이자 최후의 절대왕정을 펼쳤다. 플레이를 위해선 아무래도 남작이다 보니 영지를 수여해야 하고 역사처럼 영국 왕위를 목표로 하면 좋을 것이다.
참고로 첫 등장은 1170년대이며 1190년대로 날짜를 잡으면 성인이므로 초대가 가능하다.
- 1337, 아비시니아의 Gabre Maskal 솔로몬(Solomonid)가문
작위 히스토리상으로는 656년~900년과 1268년~1337년 이후까지 에티오피아를 지배하고 있는 왕조로 1951년 6.25 전쟁에 황실근위대(메할 세파리)를 파병한 것과 1968년에 방한한 것, 문명5의 에티오피아 문명의 지도자로 유명한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의 출신 가문이다.[64] 전설속에서 솔로몬 왕조의 시조[65]는 메넬리크 1세로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66]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솔로몬의 아들로 인정받고 언약궤[67]를 가지고 일부 유대인들과 함께 에티오피아로 왔다고 전해지며[68] 그 영향으로 유대교를 믿는 에티오피아인들이 존재한다. 악숨 왕국을 지배했던 초기 솔로몬 왕조가 있고 그 후 자그위 왕조를 거쳐 왕좌를 차지한 예쿠노 암라크(Yekuno Amlak)가 악숨 왕가의 후손으로 자칭하여 후기 솔로몬 왕조가 성립되었다. 후기 왕조만 하더라도 1268년부터 1974년까지 자그마치 7백년의 세월동안 에티오피아를 다스린 왕조이며 초기 왕조까지 더한다면 더 길다. 전설에 따르면 솔로몬의 후손이기에 다윗의 혈통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런 컨셉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복원시키는 일을 해보는 것도 좋다.[69]
- 1337, 왈라키아의 바사라브. 비사라브 가문
중세 루마니아를 다스리던 가문. 향후 왈라키아 공국을 200년간 지배하는 바사라브 공가의 시초이다. 그 유명한 드라큘라의 실존모델 가시공 블라드 3세의 출신 가문이기도 하다. 이 인물이 바로 바사라브 왕조를 창시한 바사라브 1세로 그의 아버지로 토코메리우스/토크 타미르가 되어있고 아들로는 니콜라에 알렉산드루(Nicolae Alexandru)로 되어 있는 점에서 확실하다.[70] 그의 딸 테오도라가 불가리아 제 2제국의 이반 알렉산더르와 결혼해 있어서 불가리아 국왕을 사위로 두어 든든하다.비록 실제 이후 역사에서는 사위가 딸과 이혼하고 수도원에 보내 버리지만.. 기껏 왕위도 얻게 도와줬더니 은혜도 모르는 놈이다. 물론 그때문에 바사라브 1세의 손자이자 그의 아들인 이반 스라치미르가 아버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불가리아도 망조에 들지만서도1337년 시점에서는 니콜라에 알렉산드루의 자식도 구현되어 있으며 블라디슬로프 1세(Vladislav I)와 라두 1세(Radu I)이다. 이후의 후손들은 시대상 구현이 안되어 있지만 라두 1세 이후 그의 아들 단 1세가 즉위하였다가 전쟁중 암살로 단 1세의 이복 동생 미르체아 1세가 즉위한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즉위 과정으로 인해 단 1세의 아들들이 불만을 품게 되어 이로 인해 왈라키아는 심한 내분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미르체아 1세의 아들은 블라드 드라큘(블라드 2세)[71]이고 그의 아들이 바로 블라드 드라큘라(블라드 가시공)이다. 미르체아 1세의 아들 계통이 이후 드라쿨레스티 가문으로 불리게 되고 단 1세의 아들 계통이 이후 다네스티 가문으로 불리게 되어 왈라키아 군주 자리를 놓고 서로 끊임없이 싸우게 된다.그러는 사이 저 멀리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고 오스만이 찾아오는데
- 1337, 페르시아 왕국령의 타브리즈 공작령 길란의 천호장 사드르 알딘 무사 사파비(Safavid) 가문
근세 이란을 지배한 사파비 왕조, 일 칸국의 봉신이며 가문 창시자는 사피 알딘 이스학(Sayf ad-din Is'Haq)이며 생몰년은 1252~1334년이다. 1337년에는 그의 아들인 사드르 알딘 무사(Sadr al-Din Musa)가 길란의 영주로 있는 사파비 가문은 역사대로라면 1501년부터 1736년까지 페르시아를 지배하며 오스만 제국과 대립한다. 이전까지 수니파가 다수였던 이란지역이 이 왕조를 거치면서 확고한 시아파로 자리잡는다. 사파비 왕조는 분열된 이란 지역을 통일한 첫 번째 이란계 왕조로 오늘날 이란의 종교와 정체성에 큰 영향을 남겼다.
- 1337년 카스티야 왕국의 엔리케 데 트라스타마라
트라스타마라 왕조의 시조로 1369년에 본인이 엔리케 2세로 카스티야 왕위를, 그의 장손이 1379년에 아라곤 왕위를 획득하였고 이후 1478년에 이른바 이베리안 웨딩으로 불리는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결혼을 통해 두 왕국이 결합하여 그 두사람의 외손자[72]때에 통합 에스파냐 왕국[73]으로 발전한다.
외에도 자기의 덕력만큼(…) 유명했거나, 유행해질 가문들을 플레이할 수 있다. 또 룰러 디자이너를 이용해 자신만의 가문을 만들어서 전 유럽을 정복할 수도 있다.
3. 게임 시작부터 명망있는 가문
- 이슬람의 하심 가문
이슬람의 최고의 가문이며 게임을 통들어 봐서도 최고의 가문이다. 시조는 393년 사망한 무하르 하심이며 선지자 무함마드가 있는 가문이다.[74] 물론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 그리고 최초의 무슬림인 알리도 이 가문 출신이다. 무함마드는 딸만 있었으며 그 중에서 아들을 낳은 것은 알리에게 시집간 파티마다. 가계도를 보면 파티마에서 대가 끊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함마드 옆에 있는 알리의 아들 하산과 후세인이 무함마드의 외손자이다. 하산의 후예는 하심 가문에 이어지고 후세인은 파티마 가문의 시조다. 파티마 가문 외에도 사이이드가 존재하는 압바스 가문, 우마이야, 이드리스 가문 등이 이 가문의 분가인데 현재 요르단의 왕가가 하심 가문이다. 모든 시나리오에 존재하지만 마지막 시나리오(1337년)에는 메카에 구성원이 3명만 남아있다. 사이이드, 샤오쉬안트의 후예, 자주빛 출생, 아우구스투스, 크샤트리아를 모두 달성하는 플레이를 할 경우 추천해 주고 싶은 가문이다. - 중국의 황제 가문인 농서 이씨 가문
769년과 867년 시점에서의 중국의 왕조인 당나라의 가문이다. 기본적으로 150명 정도의 전체 가문원을 가졌다. 직접적으로 플레이는 불가능 하지만 중국 황실과 결혼 이벤트를 통해 남성을 데려온 후 이혼시키고 이후에 그에게 땅을줘 플레이하면 플레이는 가능하다. 당대의 황제는 당 대종이며 867년에는 의종이 다스리고 있다. 907년 단절된다만 여기선 이벤트로 교체 이벤트나 내전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4. 유명한 인물로 전용 이벤트가 있는 인물
- 769, 샤를마뉴와 카를로만
바로 그 유명한 프랑크 왕국의 왕과 그의 동생이다. 애초에 샤를마뉴 DLC부터가 샤를마뉴를 위한 것. 처음에는 샤를마뉴가 서프랑크 왕국, 카를로만이 중프랑크 왕국을 가지고 있는데, 어머니의 도움을 빌리는 이벤트를 통해 카를로만이 사망하면 샤를마뉴가 프랑크 왕국 전체를 소유하게 된다. 어렵지 않게 프랑크 제국을 만들 수 있고, 이탈리아 왕국을 소유하면[75] 신성 로마 제국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샤를마뉴(카를)은 게임 내에서 전용이벤트가 가장 많은 인물로, 롤랑이나 오지에같은 샤를마뉴의 12기사가 이벤트로 출몰하며, 12기사 중 투르팽도 랭스의 주교-영주로 존재한다. 비두킨트 또한 작센 침공 이벤트에서 등장하며, 이벤트 중에 비두킨트가 세례를 받으면서 봉신으로 만들 수 있다. 옵션에서 샤를마뉴 전용 이벤트만 따로 끄고 킬 수 있는 옵션도 있다.
- 769, 라그나르 로드브로크(Ragnar Lodbrok)
전설상의 바이킹으로 867년 시나리오의 흑막이다. 게임상에 구현된 바이킹 침략부대들, 즉 이바르(Ivar)와 그의 형제들의 잉글랜드 침공, 헤이스팅[76]의 프랑스 및 지중해 침공, 다이어[77]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습격 등의 배후에는 그가 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이 시나리오에서는 배경이고 정작 본인은 시나리오 시작 직전에 끔살당했다.
다만 769년 시나리오에서 시구르드 링의 아들로 등장한다. 그러나 고작 2살이라 플레이 해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대신 키우다보면 성년이 될 즈음에 로드브로크 별명이 붙으면서 건장(Brawny)과 근면 트레잇을 얻고,[78] 홀리 퓨리 DLC가 있다면 라그나르 전용 혈통까지 붙는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플레이가 어렵진 않다. 이벤트 버프와 함께라면 빠른 종교개혁과 빠른 봉건제도 가능하다. 다만 별명 획득 이벤트 이후에 다른 이벤트는 없어서 769년 시나리오에서는 아내가 되는 아슬라우그도 등장하지 않는 등 769년 시나리오의 주인공인 샤를마뉴에 비하면 많이 심심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라그나르의 전용 혈통이 있으면 일반적인 바이킹 계열 캐릭터로 약탈 200회 달성 시 얻을 수 있는 혈통인 해왕/해여왕 혈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해왕/해여왕 혈통의 획득 조건 중 하나가 다른 바이킹 계열 혈통(라그나르, 류리크, 뒤레의 혈통)을 지니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 따라서 라그나르의 혈통과 해왕 혈통을 모두 얻고 싶다면 아버지인 시구르드 링으로 미리 해왕 혈통을 획득해서 물려주어야 한다.
867년 시나리오에서는 스웨덴의 비외른의 아프 문쇠 가문, 요르비크의 흰 옷 할프단 빗세르크, 아가일의 뼈없는 이바르, 할프단 휘하에 있는 우베, 크뉘틀링 가문으로 등장하는 덴마크 일대의 시구르드, 윙글링 가문의 노르웨이 일대의 금발 하랄드, 더블린에 상륙한 올라프르 윙글링, 낭트의 추장 헤스테인, 키예프의 뒤레, 노브고로드의 류리크, 오스트프리슬란드의 로둘프르, 질랜드 일대의 주트(유테)족의 박세크, 지트족의 가웃스케족, 울핑족이 모두 라그나르가 배후에 있었거나 그의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어 그야말로 바이킹들의 아버지급이라고 할 수 있다. 라그나르의 아내 아슬라우그는 시나리오 시작 시점에도 살아서 아들인 이바르의 세력에 가신으로 있는데, 능력치와 트레잇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튜터로는 최고급이라고 할 수 있다.
- 936, 도이칠란트 왕국의 왕 오토 1세 루돌핑거
936년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본격적으로 카롤링거 가문이 아닌 최초의 신성로마 제국 황제. 이때는 아직 동프랑크의 왕으로 각종 이벤트 체인이 이어진 뒤 961년 이탈리아 정벌 이후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 936, 브라운슈바이크 백작 탕크마르 루돌핑거
오토 1세의 이복형으로 어머니가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하인리히 1세와 결혼하면서 나왔기 때문에 결혼의 정당성이 무효화되었고,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작 후 이벤트로 반란을 일으키는데, 만약 승리해서 오토를 물리치게 되면 후속 이벤트로 독일의 왕이 되는 선택지와 독일을 해체하는 선택지가 뜬다. 독일을 해체하면 부족 공국이 전부 왕국으로 독립해버리고[79] 신성 로마 제국이 완전히 해체되어 독일 제국 데쥬레로 바뀐다!
- 1000~, 기독교 계열의 왕국, 잔 다르크
역사상 백년전쟁이 시작되는 1337년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 맞겠지만 특정조건하[80]에서 1000년 이후 잔다르크[81]가 등장하는 이벤트로 나오며 처음부터 플레이할 수 없다. 33의 무력을 가져 거의 당대의 최강자로 나오며 이벤트로 나오는 것인지라 여성의 권리가 낮아도 대장군으로 임명할 수 있다. 본인의 능력치에 따라 여러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경우[82]에 따라서는 임신도 시킬 수 있다.[83] 처음에는 가문이 없는 천민으로 나와서 그냥 잔느이지만 이벤트 중 기사 작위를 부여하는 선택지를 통해 드 아르크 가문을 받아 잔다르크가 된다. 플레이하려면 잔다르크에게 영지를 주고[84] play 콘솔이나 세이브 파일에서 잔다르크를 선택해서 플레이하면 된다. 여성이니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모계결혼이 필수이다.
- 1178~1227, 테무진 보르지긴.
나중에 몽골을 통일하고 칭기즈 칸이 되지만 1178년~1190년대까지는 가신으로 있다. 이후 연도를 돌려보면 1190년대에 독립해서 1206년에 몽골 제국을 세우며, 1220년 시나리오에선 호라즘을 막 공격한 시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1220년에 시작할 경우 유럽 대륙을 몽골 제국으로 제패하는 철인모드 도전과제도 있다.
5. 플레이 가능한 유명한 인물
- 769, 아바스 왕조의 하룬 알 라시드
문명 5의 아라비아 지도자로도 나오는 아바스 왕조 5대 칼리프이다. 하지만 시작 시점에는 2대 칼리프이자 그의 할아버지 알 만수르가 군주로 있으며[85] 아직 6살 꼬마인지라 플레이하려면 꽤나 시간이 오래걸린다. 실제 역사 속에서 비록 권모술수적이라서 욕을 좀 먹었지만 그래도 명군으로 찬사받는 할아버지 알 만수르가 게임 내에서는 능력치가 보통 개판인 편이라(...) 가끔 아바스가 몰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샤를마뉴 시나리오에서는 원체 아바스 가문의 세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비잔티움까지 천원돌파하고 승천하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가 잡으면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좀 시간 좀 들여서 플레이하다보면 세계 최강 아랍 이슬람 제국을 다스리는 하룬 알 라시드로 플레이할 수 있다. 다만 하룬 알 라시드로 플레이할 즈음이면 아바스 가문으로 이미 할만한 건 다 했을테고(...) 발로 해도 게임 쉽게 할 수 있어서 도전 의욕은 좀 떨어질 수도 있다. AI의 경우 워낙 변수가 많아서 하룬 알 라시드가 실제 역사와는 달리 칼리프 자리를 못 물려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문법화된 부자 상속이 공식적으로 없는 게 당시 아랍 이슬람 사회였기에 본인이 형 알 하디의 뒤를 이어서 칼리프가 될 수 있었는데 게임 내에서의 열린 상속제에서는 알 하디가 급사하지 않는 이상 본인의 아들에게 물려주기 훨씬 쉽다. 가끔 중국 황제의 은총을 얻으려고 AI 알 마흐디나 알 하디가 하룬 알 라시드를 후계자 분쟁 정리 겸해서 고자로 만들어서(...) 중국에 환관으로 보내버리는 케이스도 있다.
- 769, 불가리아의 크룸
전사한 니키포로스 1세의 해골로 술잔 만든 분으로 평균적으로 10대 후반~20정도의 무력치를 가지고 시작한다. 아직 칸은 아니지만 불가리아의 후계자로 지정되어있는데다가 아들 오무르타그가 태어나있는 상태이다. 다만 넋놓고 있다간 삼촌이 불가리아 왕위를 강탈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시작 시 불가리아 왕 테레릭이 높은 확률로 헝가리의 아바르족을 갈아버리고 판노니아를 띄우므로 후계 관리를 잘 하다보면 압바스에 처절하게 얻어맞는 비잔티움 제국에 인베이전을 걸 기회도 챙길 수 있다. 어쨌든 이 시나리오에서 비잔티움은 이사우리아 황가 전체가 성상파괴주의자들에다가 제국 전역에 바오로파, 성상파괴주의파, 정교회파가 갈려서 헬게이트가 열린 상태이고 아랍 이슬람 제국이 역대 최강의 세력을 자랑하는지라 굉장히 약한 편이다.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의 능력치가 나쁘지는 않지만 독실함 트레잇으로 인해 플레이어라면 이단 포기 디시전 이후, '정교회 복권' 디시전 한방으로 제국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방식을 AI가 절대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크룸으로 플레이할 때에 설령 삼촌과 조카 때문에 불가리아 왕위를 못 먹더라도 기회를 봐서 제국으로 진출할 여지가 꽤 있는 편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삼촌과 조카를 제거하거나 해서 불가리아, 더 나아가서 판노니아를 미리 먹어놓는 게 좋다.
- 769, 린저우(Lhunzhub)의 족장 다짜뤼공(Takdra Lukhong)
샤를마뉴와 크룸을 제치고 769년 최고의 무력수치를 찍고 있는 티베트의 대장군. 763년 토번 제국군이 당에 침공해 장안을 점령했을 당시의 총사령관이었다. 군주 적송덕찬과의 관계도가 낮은 편인데, 적송덕찬은 불교도이고 다짜뤼공은 티베트 토착종교인 뵌교 신자이기 때문. 실제 역사에서도 적송덕찬의 불교 진흥 정책에 반대하다 유배당하고 개종 후 복직한 적이 있다.
- 867, 도싯(Dorset) 백작 알프레드(Ælfred)
9세기 바이킹의 침공에 대항하여 앵글로색슨을 규합하여 첫 통일왕국[86]을 세운 알프레드 대왕으로 잉글랜드 왕국의 초기 제도 및 문화의 기틀을 잡아 잉글랜드에서는 유일하게 대왕으로 불리는 위인이다.결국 잉글랜드의 왕위는 백 년 후에 바이킹의 후예에게 다시 빼앗기지만천재(genius) 특성은 없지만, 이에 준하는 영재(quick) 특성이 붙어있고 주요 능력이 10대후반에서 20대로 아주 유능하다. 다만 867년 시나리오에서는 아직 왕이 아닌 왕의 동생이며, 시작하자마자 바이킹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네 아들이 잉글랜드를 휩쓸기 때문에 플레이 하기에는 상당히 고난이도이다. 실제 알프레드 자신도 바이킹에 쫒겨 숲속에 숨어살기도 했다고... 천천히 내부를 장악해서 웨섹스를 먹는 것까지 노력을 한 다음부터 바이킹과 맞짱을 뜨던가 해야한다.
아니면 그냥 애설레드를 고른 다음 알프레드를 체포한 뒤 폭정반란이 일어나면 바로 항복을 눌러서 알프레드로 플레이할 수 있다.
- 867, '이방인' 뒤레(키예프(Könugarðr) 소 왕(petty king)[87] 뒤레(Dyre))
(반)전설상의 바이킹으로 아스콜드와 뒤레라는 두 명의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유명한 바이킹왕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손자로, 키예프 대공국의 설립자 류리크(당시에는 키예프가 아닌 노보고로드에 있었다)의 허가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여행중에 키에프에 정착하여 통치했다고 알려진다. '이방인'이라는 독특한 별명은 '이방인 왕(strange king)'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 침략과 같은 무력수단이 아닌 방식으로 일족의 지도자로 추대되는 특이한 형태로 즉위한 왕을 의미한다. 한편 860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한 바이킹의 대습격도 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서 그다지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867년 시나리오에서는 진주인공 취급으로 각종 버프를 받고 있다. 867년 시나리오의 선택가능한 군주중 유일하게 천재(genius) 특성이 붙은 인물로 30에 육박하는 외교력은 바이킹과 슬라브족을 규합하여 군주에 오른 그의 능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의 영지인 키예프는 수도령 포함 총 7개의 남작령을 가질수 있는 영지로 게임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백작령이다.[88][89]
- 936년, 우마이야 제국의 칼리프 아브드 알 라흐만 3세 우마이야.
우마이야 왕조의 증흥기를 이끈 칼리프로 무려 49년간 즉위하면서(912~961). 당시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레콩키스타도르를 격파해 우마이야 칼리프에 안정을 가져왔다. 알 만수르를 제외한다면 우마이야 최고의 지도자. 그전까지 아바스 칼리파를 인정했으나 아바스조가 쇠락하자 스스로 칼리프를 칭했다.
- 936년, Ross 백작령의 에릭 블러드액스
스코틀랜드 북쪽에 있다. 모바일 게임 Fate/Grand Order에서도 등장했다. 노르웨이 왕위에 강한 클레임이 있으며 노르웨이 왕 하랄과 라이벌이다. 시작하자마자 관심사를 전쟁에 두고 하랄과의 부족 결투에서 승리하면 전쟁 없이 에릭을 노르웨이 왕으로 앉힐 수 있고 철인모드라면 도전과제 Over Your Dead Body를 달성한다.[90]
- 936년, 타바리스탄 사트라프인 부슘기르 지야르(Vushmgir Ziyarid)
지야르 왕조의 시조인 형 마르다비즈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마지막 독립 영주였으나 암살당하고, 부심기르는 수니파로 개종하고 사만 왕조 밑으로 들어갔다. 부심기르로 플레이할 때 신앙 300 이상, 평화 상태, 950년이 지나기 전일 때, 백작 이상이며 수행불능이 아닐 때 마르다비즈의 유산 디시전으로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한다면 부심기르와 자녀들이 마르다비즈 혈통을 받는다. 그리고 길란, 지발, 쿠르디스탄, 마파자, 파르스 공작령에 강한 클레임을 얻는다.
- 1066, 머시아 공작의 가신 레이디 고다이버
1066년 시나리오의 머시아 공작 에드윈과 노섬브리아 공작 모르카의 어머니로, 실제 이름인 고드기후(Godgifu)로 생존 상태로 구현되어 있다. 영지가 없기 때문에 콘솔 등으로 영지를 부여해야 플레이할 수 있다.
- 1066, 아풀리아 공국 바리 백작의 가신 라눌프 플램버드
노르만인 더럼 주교이자 노르만 왕조의 윌리엄 2세의 영향력 있는 대신이였다. 그는 노르망디에 위치한 바이외의 한 사제에게서 태어났으며 별명인 플램버드는 자극적인, 집어삼키는 불꽃 혹은 횃불을 드는 자라는 뜻인데 라눌프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라눌프는 정복자 윌리엄 1세 때부터 경력이 시작되었는데 1086년에 둠스데이 북 집필과 왕의 인장을 관리하는 일도 해왔을거라고 한다. 윌리엄 1세의 승하 후에 왕위를 계승한 윌리엄 2세도 섬겼으며 왕의 인장 관리도 계속하였고 또한 왕국의 재정 관리도 맡았으며 공석이 된 16개의 주교구와 수도원을 관리하였다. 이처럼 그가 지닌 많은 의무들로 인해 사실상 최초의 영국 총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윌리엄 2세의 통치 시기에 라눌프는 런던 최초의 석조 다리 건설과 웨스트민스터 궁전 건설을 감독했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더럼 주교직을 포상으로 받았다. 윌리엄 2세의 승하 후에 왕위를 계승한 헨리 1세에 의해 런던 탑에 수감되었으나 나중에 탈옥에 성공하면서 최초로 런던 탑에서 탈옥에 성공한 자가 되었다. 그렇게 윌리엄 1세의 장남이자 윌리엄 2세와 헨리 1세의 큰형인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2세와 함께 노르망디 공작령으로 망명하였다. 그렇게 라눌프는 로베르의 수석 고문이 되었고 로베르의 잉글랜드 침공을 보좌해 헨리 1세를 왕좌로부터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결국 두 형제는 화해하고 전쟁을 중단한다. 나중에 라눌프는 복직하고 노르망디에서 계속 몇 년을 보낸 이후 정치계에서 은퇴를 하였으며 가끔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나고는 했다. 그는 교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평의회에 참가해 자신의 직권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썻다. 1066년 시점에서는 6세의 미성년자로 사생아 트레잇까지 붙어 있다.
- 1066, 아풀리아 공작 로베르 '기스카르' 드 오트빌
정복자 윌리엄 다음으로 유명한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다. 유럽 중세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겐 초유명인이지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은데다 한글번역을 깔면 '공작 로베르트 여우'라고만 표기 되어 있어 넘어가기 십상이다.[91] 그런데, 로베르 기스카르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원래 기스카르(Guiscard)란 이름 자체가 '여우'라는 뜻이 있어 이탈리아 → 영어 → 한글을 거치면서 고유명사가 일반명사로 오인된 것. 유명 정복군주답게 무력이 20, 정복자 윌리엄의 21에 비해 딱 한끗발 떨어지는 정도. 그외의 능력치도 음모력 15, 관리력 10으로 쓸만하다. 덧붙여 기스카르 팬들의 원성이라도 있었는지 2017년 Monks and Mistics DLC 출시 당시 강인함 트레잇까지 달리게 되었다. 단 한가지 흠은 외교가 달랑 4(...). 어쨌거나 역사대로 외교건 뭐건 일단 다 때려잡고 보라는 컨셉. 역사상 초유명인인지라 1066년 시나리오의 기본 선택 인물로 등재되어 있지만 플레이해보면 난이도가 있다. - 일단 실제 역사에선 기스카르가 이탈리아 남부를 싹 먹어치우는데 성공하고 비잔티움 정복에 실행하기 직전 사망했지만, 게임상 시작 시점은 아직 기스카르의 정복이 완료되기 이전 시점이다. 따라서 수도 팔레르모를 포함한 시칠리아 대부분이 아랍의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부터 정복에 나서야만 한다. 돈이나 군사 좀 불리고 먹겠다고 시칠리아 정복을 묵혀뒀다가 엄한 베니스 도제 같은 조무라기들이 시칠리아를 정복해버리면 울면서 재상을 명분조작에 파견해야 하는 피눈물 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 또, 겉보기에는 이탈리아 본토 남부 대부분이 기스카르의 땅이라 가시적인 세력은 제법 커 보이는데, 이들 영지가 하나같이 홀딩 3개 짜리 영지가 두세개씩 짝을 이룬 삼류 미니 공국이다.
가난하고 쓸모 없는 실제 이탈리아 남부를 충실하게 재현해두었다그나마 이탈리아 남부에서 쓸만한 나폴리, 카푸아, 살레르모는 역사대로 남의 땅이고 게임 시스템 상 명분을 얻기 전까진 정복이 불가능하다. 특히 짜증나는 경우가 가장 가까운 살레르모인데,쓸데없이 실제 역사를 구현해 놓아서 살레르모 공작이 기스카르의 처남이라 불가침 조약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시칠리아 왕국 권역을 어떻게든 정리하면서 내실을 다져야 한다. - 여기에 더해 로베르의 나이가 51세라 잘못 꼬이면 실제 사망년도인 1085년 이전에 죽기도 한다.덕분에 정복자 기스카르를 해보기 위해 골랐더니만 기스카르 본인은 1년도 되기 전에 노환으로 사망하고 시작 시점에 8살 꼬꼬마인 보에몽 1세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보에몽은 1066년에 달랑 8살 꼬마인 탓에 스탯이나 트레잇이 어떻게 달릴지 장담할 수도 없고, 분할상속이 설정되어 있어 무조건 상속법부터 손보지 않으면 기껏 아버지 대에 정복해 놓은 시칠리아가 차남 로제르와 삼남, 사남에게 나눠져 버릴 수 있다. 당연하지만 이들은 시칠리아 전역에 걸쳐 명분을 주렁주렁 달고 있기 때문에 역사대로 형제 간 내분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로베르의 아내인 시겔가이타는 20대 중반인데다가 어쩐지 부부가 쌍으로 생식력이 높게 설정되어 있는듯 기스카르가 죽기 전까지 동생들이 주렁주렁 더 태어날 수 있다. 만약 기스카르가 60도 되기 전에 늙어 죽으면서 아들 셋을 더 보기라도 한다면(...).
- 친인척이 많은 것도 양날의 검이다. 친절하게도(?) 기스카르의 친인척 전원을 게임 속에 구현해 놓았는데, 덕분에 기스카르는 살아있는 형제만 여섯이고, 자매와 죽은 형제까지 합치면 무려 열다섯 명이다. 여기에 줄줄이 달려있는 조카들까지 합치면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시도때도 없이 뜨는 미성년 친족 교육 팝업창은 그렇다쳐도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작위 요구자 = 잠재된 불만분자들이 변신하게 된다는 게 참으로 까다롭다. 열심히 관리해서 결혼동맹에 써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지만, 1세대가 지나면 자기들끼리 열심히 근친결혼 해대며 명분이 주렁주렁 달린 음모가들이 되어 버린다. 때문에 이 친족들은 보에몽 대에는 현실 역사에서 그랬듯 무조건 골치거리들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실제 역사의 기스카르와 후대 시칠리아 왕들의 제1 목표였던 비잔티움 제국은 일단 포기하고 시칠리아 왕국 권역 통일에 전념하는 게 좋다. 실제 역사에선 늘 '시칠리아 왕 = 비잔티움 황위 요구자'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게임에선 가톨릭이 정교회에게 성전을 걸 수 없기 때문에[92] 넓은 비잔티움 땅을 일일이 명분 조작하거나 결혼을 통해 먹어야 한다.
- 어쨌거나 이런 어려움들이 아예 플레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준까진 아니긴 하다. 어찌 보면 이런 애물단지 주렁주렁 달린 상황들이 실제 역사와 동일하기도 하고(...). 단지 기스카르나 보에몽을 굳이 골라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원시원한 정복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게 매우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사실 웬만한 유저라면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무리 늦어도 기스카르의 손자대까진 시칠리아 왕위를 뚝딱 만들어 내긴 낼 수 있다. 단지 위에서 설명한 요소들 때문에 시간과 자금이 소모되고 영지 발전이 늦어지기 때문에 시칠리아 왕국을 만든 이후에 뭔가 추구할 게 없어진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신롬 때문에 웬만큼 세력을 불리지 않고서는 이탈리아 내부에서 확장이 불가능해서 봉신왕으로 들어가 신롬을 안에서 갉아먹거나, 어그로를 최대한 끌지 않으면서 이탈리아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 빠르게 시칠리아와 몰타섬을 집어먹고 신롬이 난입하기 전에 이퀴프리야로 진출하자.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튀니스를 먹으면 지하드가 열리게 되는데, 아나톨리아로 가면 다행이지만 이퀴프리야에 떨어지면 꾸역꾸역 먹어온 영토가 다 날아가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하므로 신롬 봉신으로 도망가던가 일단 개종하고 나중에 회개를 하던지 하자. 첫번째 지하드만 넘기고 이퀴프리야를 싹다 먹으면 꽤나 체급이 생기므로 수니파랑 싸우느라 정신없는 이집트 뒷통수를 후려갈기던지 마그레브와 이베리아로 진출하던지 하면 된다.
- 북아프리카를 침략할때는 이슬람에게 다굴을 맞기 전에 빠르게 땅을 먹는게 중요한데, 로베르의 아내인 시켈가이타가 높은 무력과 공성지휘관 트레잇을 갖고있어 공성에 써먹기에 매우 좋으므로 지휘관으로 열심히 써먹자.
[93] - 무척이나 다행이게도, 이시기 아직 로마 제국 영토로 남아있던 남이탈리아의 마지막 로마 영토인 바리 총독부가 동로마 제국 영토가 아닌데, 초반부터 로마랑 싸우지 않게 하려는 배려로 보인다.
- 1066~, 1차 십자군의 주역들
Crusader Kings라는 이 게임의 이름에 가장 걸맞은 주인공들이다.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에데사 백국,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국, 예루살렘 왕국 등의 십자군 국가들을 세운 이들로 고드프루아 드 부용[94], 보에몽 1세[95], 레몽 4세[96], 보두앵 1세[97], 다임베르트[98], 탕크레드[99] 등이다. 1066시점에서는 탕크레드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고드프루아, 보에몽, 보두앵은 모두 미성년이다. 각각 고드프루아와 보두앵은 프랑스 플랑드르 불로뉴[100]에 있고 보에몽은 아풀리아 공작령에 있으며 레몽은 툴루즈 공작령에 있고 다임베르트는 역사대로 피사의 대주교였던 만큼 피사에 가신으로 있다. 조금 시간을 돌리면 고드프루아는 하로렌의 공작이 되며 레몽은 툴루즈의 Rouergue 백작을 거쳐 툴루즈 공작이 되었다가 십자군 원정을 떠나면서 공작위를 아들 베르트랑에게 양위한다. 보에몽은 타란토 백작이 된다. 시간을 좀더 돌리면 에데사와 안티오크, 트리폴리와 예루살렘에 십자군 국가를 건설한 것을 볼 수 있다. 대략적으로는 1098년~1099년 사이이며 사실 이 시기부터 하는 것이 편하다.
- 1066년, 로도스 섬의 소(小)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
콤니노스 왕조 시기에 활약한 비잔티움 제국의 장수이자 역사가이다. 알렉시오스 1세가 제위를 차지할 때부터 함께하여 여러 이민족의 공격과 반란, 십자군의 준동을 막아내고 다음 황제의 제위까지 안정시킨 2대에 걸친 충신이다. 그의 출중한 무공과 학식에 비해 비잔티움사에서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는데, 그의 아내 안나 콤네나가 알렉시아스를 완성한 지명도 있는 역사가라 그의 존재감이 묻히는 감이 있다. 1066년에는 아직 4살에 불과한 어린 아이니까 훌륭하게 잘 자라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1066년, 트라페준타의 스트라테고스 테오도로스 가브라스
두카스, 콤니노스 왕조 시기에 활약한 비잔티움 제국의 장수로 투르크 족과 싸우다 전사하면서 성인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1066년 시나리오에서부터 트라페준타 일대의 스트라고테고스로 시작하며 스타트 시점에서는 동로마 제국 최고의 무장, 전투 위주의 트레잇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력도 고정적으로 20을 마크한다. 무력만 놓고 보면 동시대 최고의 무장으로 꼽히는 엘 시드는 넘사벽이지만 1090년대 중후반 이전에는 인위적으로 토지를 부여하지 않으면 가신 신분, 비슷한 무력형 군주인 로베르 기스카르, 윌리엄 1세보다 조금 밀리는 정도. AI에게 맡기고 지켜보더라도 높은 확률로 황제가 되는데 다만 거점인 트라브존 일대가 실크로드 거점이 있다는 것 외에는 그리 좋은 땅이 아니고 트레비존드 왕국 권역 대부분을 점유하는 콤니노스 가문 사람들과의 관계도 신경써야 한다. 다만 1076년 이후로는 주변이 모두 룸 셀주크의 권역이 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도 제위 선출 가능성이 높은 점을 이용, 영역을 확장하기 좋다. 아주 쾌적한 스타트 환경은 아니지만 1066년 기준 28세로 젊은 나이로 1090년대 후반까지 계속 일정한 거점을 근거로 활동하는 점, 스타트 시점에서 이미 태어난 후계자들, 강력한 무력에 이르기까지 재미있게 즐겨볼 만한 점이 많다.
- 1066년, 파플라고니아 테마의 가신, 타티키오스 타티키드
1차 십자군 전후로 활약한 비잔티움 제국의 장군이자 노예에서 대귀족으로까지 승진한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튀르크인 노예였기 때문에 타티키오스라는 이름 외에도 튀르크식 이름인 타티크, 타틱, 테티그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타티키오스는 알렉시오스 1세의 부친인 요안니스 콤니노스가 원정을 나갔다가 잡아온 튀르크 노예였지만 콤니노스 가문은 이들을 일반적인 외국인 노예로 생각하기보단 고용인 정도로 생각했으며 비슷한 연배였던 알렉시오스와 타티키오스는 가족처럼 지내며 함께 놀았다고 전해지며, 알렉시오스의 아버지도 타티키오스의 무예를 알아보고 아들과 함께 교육시키기도 하였다. 알렉시오스가 장교로 입대했을 때도 타티키오스는 그의 부관이 되어 활약했고 미래엔 1차 십자군을 비롯해 수많은 전투들에서 활약하며 제국의 보배가 되었다. 타티키오스의 가문은 후대에도 대대로 콤니노스 왕조의 군사 귀족들과 황실 각료로 충성을 바쳤다. 보통 타티키오스의 후손들은 황제의 집사장, 궁무처장, 혹은 군사령관, 지방관 등 보좌관이나 군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그의 후손 콘스탄티노스 타티키오스는 훗날 마누일 1세 시절 시르미움 전투에서도 활약하였지만 타티키오스 가문이 충성을 바치던 콤니노스 왕조가 붕괴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쇠락하게 되고 말았다. 이사키오스 2세가 안드로니코스 1세를 폐위시키고 제위를 찬탈하자, 콘스탄티노스 타티키오스는 이사키오스 2세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사키오스 황제에게 패배해 비잔티움 제국의 관례대로 시력을 잃게 되고 말았다. 11세의 미성년으로 정교회를 믿으며 그리스 문화를 가졌지만 사실 베두인계 출신이다. 영지가 없으니 플레이를 위해서는 우선 파플고니아 스트라테고스인 알렉시오스 1세가 영지를 주어야 한다.
- 1066년, Hajr의 족장의 가신 하산 에 사바흐
아사신파의 창시자인 아사신으로 유명한 암살자 집단 '하샤신'을 만든 장본인이자 페르시아 아사신의 초대 수장이며, 하산 이븐 알 사바흐(Hasan ibn al Sabbah)라고도 불린다. 하산의 추종자들은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암살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했고, 때에 따라서는 십자군 세력과 손을 잡는 것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동시대인들, 심지어 시아파로부터도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때문에 시아파 내부의 그의 잔존 추종 세력들은 대부분 처형되거나, 성지 순례 금지와 같은 처벌을 받았다. 산상노인(山上老人)이라고도 알려져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에 나오는 그 산중장로가 이 사람을 지칭하거나, Fate 시리즈에서는 산상노인과 하산 사바흐라는 이름 자체를 계승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Fate/Zero에서는 마지막 하산 사바흐라는 표현을 한다. 그리고 진짜 역사상의 하산 본인도 작중에서 등장한다. 다만 실제 역사상에서 하산 사바흐 본인은 산상노인이라고 불린 적이 없으며, 최초로 산상노인이라는 칭호로 불리운 자는 이후 시리아 아사신의 수장이 되는 라시드 앗 딘 시난이다. 그래도 현재는 보통 산상노인이라고 하면 라시드보다는 하산을 뜻한다. 게임에서는 영지가 없는 인물이라 플레이하기 위해 먼저 영지를 수여해야하니 실제 역사에서 하산의 첫 거점인 카즈빈 베일리크에 정착시키고 플레이하자.
- 1066년, 셀주크 왕조 궁정의 니잠 알 물크
본명인 하산 알 물크로[101] 나오며 셀주크 제국의 명재상이다. 외교 능력치가 트레잇 덕분에 26으로 높지만, 영지가 없어서 플레이하려면 알프 아르슬란으로 먼저 영지를 분봉하고 바꿔서 진행해야 한다.
- 1066년, 파리부르즈 아미르 궁정의 오마르 하이얌
중세 페르시아의 수학자 겸 천문학자 겸 시인이며 그의 시집 루바이야트가 19세기의 영국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사후 700년 후에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게임 시작 후 나중에 근황을 알아보면 항상 니잠 알 물크의 궁정에서 지내고 있다. 영지가 없어서 플레이하려면 니잠 알 물크처럼 먼저 영지를 분봉하고 바꿔서 진행해야 한다.
- 1066년, 카슈가르의 공작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
카라한 칸국 출신의 튀르크인으로 셀주크 제국으로 건너가 바그다드에서 11세기 중세 튀르크어 사전을 집필한 학자이다. 그는 튀르크어를 배우고 튀르크 문화와 친숙해질 수 있는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단어와 문구 뿐만 아니라 튀르크 세계 곳곳에서 유래한 속담, 격언, 시, 간결하나 함축적인 민중의 지혜도 담고 있는 일종의 튀르크-아랍어 사전을 편찬한 것이다. 능력치는 그렇게 특출나다고 보긴 어려우나 나름 괜찮은 입지를 가진 편이다.
- 1066년, 실론의 공작 위자야바후 폴론나루와
촐라의 지배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킨 실론의 영주. 시작부터 촐라와 전쟁 중이며 이벤트 병력으로 8천여 명이 주어지는데 이 병력을 잘 활용하면 촐라를 막을 수 있다. 위자야바후가 세운 폴론나루와 왕조는 1215년에 판디아 왕조의 침입으로 멸망할 때까지 실론을 통치했다.
- 1066년, Luibice의 백작 Budivoj
대대로 Obotritia(포메라니아) 지역을 통치하던 가톨릭 영주의 두 아들 중 한 명으로, 아버지가 슬라브 이교도 족장 krutoj에게 패배해 영토를 빼앗기고 죽은 뒤 자식들은 Luibice로 쫒겨났다. Budivoj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력하나 그 역시 krutoj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Henrik(1073년부터 플레이 가능)가 krutoj의 아내의 도움을 받아 원수를 갚고 영토를 되찾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이 내분을 일으켜 왕국은 무너지고, 사자공 하인리히의 동방식민운동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슬라브 이교도들이 다시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스타팅은 매우 초라하다. obotritia에 강력한 클레임을 가지고 있으나 세력차이가 10배가 나는 절망적인 수준인데다가 obotritia 대족장 역시 luibice가 데쥬레 권역이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신롬에게 충성맹세를 하지 않으면 게임오버 당한다.
신롬에 가입했다쳐도 적은 봉건제 5백작령이기 때문에 턴골을 10 넘게 벌지만 이쪽은 턴골을 2도 벌지 못해 용병으로 한판승부를 하는 것도 어렵고, 또한 주변에 잡아먹을 수 있는 영주도 없다.
다만 미개혁 파간은 분할상속제밖에 고를 수 없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영토가 나눠지고 건물을 올리느라 돈이 없을 때를 노려 결혼 동맹(덴마크, 작센 등 가까운 동맹을 추천, 1백작령이기 때문에 동맹군 오는 거 기다리다가 영토가 모두 점령당하면 패배한다.)과 용병을 고용해 한방 러쉬를 찌른 후 폭정을 감안하고 백작이상 이교도 영주들의 작위를 모두 빼앗아야 한다. 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했으면 그 다음부터는 포메라니아 왕국을 형성하던지 한자동맹을 형성하던지 하면 된다.
- 1081년, 무라비트 왕조의 유수프 이븐 타쉬핀
카스티야의 침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이베리아 타이파국들을 정복한 뒤 알폰소 6세를 위기에 빠트리고 엘 시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베르베르 군주이다. 1066년 시점에서는 아직 마라케시 에미르에 불과하지만 무력이 20에 직할령을 9개나 들고있어 직할령이 4개에 불과한 사촌으로부터 손쉽게 왕위를 찬탈할 수 있고 페스와 틀렘센에 강클을 가지고 있다.
1081년 시점에서는 모로코의 왕이 돼있으며 전용 혈통도 갖춰져 있다. 또한 이베리아 국가들에 강클을 갖고있어 실제 역사처럼 타이파국들을 복속시키고 카스티야와 프랑스를 위협하는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나이가 40살이나 되고 현실 역사에서는 1천명 동원하기도 빠듯했던 이베리아 무슬림들이 여기서는 병력을 6천명 넘게 굴려대기 때문에 이베리아 정벌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 1094~1095년, 발렌시아 백작 로드리고 데 비바르
바로 그 유명한 엘 시드로 무력이 무려 27이다. 하지만 1094~1095년에만 플레이 가능해서 못 보고 넘어가기 쉬우며 백작령 하나 댈랑 들고 있는 독립백작이다. 거기다 바로 옆에 이슬람 국가들이 붙어 있는지라 잘못하면 시작과 동시에 성전 얻어맞고 게임 오버 당하는 수가 있다. 1066년에는 카스티야 대장군으로 있으나, 영지가 없어 영지를 수여해야 된다. 한 살이라도 어린 1094년보다는 1095년을 추천하는데 1095년 시나리오로 해야 이베리아에 십자군이 떨어질 확률이 있다. 어떻게든 여기서 일등만 먹는다면 꽤 할만해진다. 1096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플레이 가능 인물로 나오기는 하는데 이때는 독립 백작이 아니라 알폰소 왕의 봉신으로 나온다.
- 1101~1125년,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
2.4 Horse Lords DLC에서부터 요나라가 몽골 지역에서 등장하기에 그의 할아버지인 도종과 더불어 요나라의 마지막 시기를 플레이해볼 수 있다. 몽골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유목정 불교 국가로 등장한다. 시스템상 국명 표기의 문제 때문인지 요나라의 황성인 야율 씨가 아닌 국명인 요(Liao)가 가문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금나라나 송나라는 Jade Dragon에서 NPC 국가로 등장하기에 어느 날 확장정책을 취해서 서역도호가 공격해오지 않는 한 동쪽으로부터의 위협은 없으나, 몽골 대칸국 안에서 요나라 부족의 통제력이 강하지 않게 설정되어 있다. 요나라 멸망 후의 시나리오에서는 서요를 건국하는 야율대석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 1137~1204,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여걸. 1137년 5월 시점 미성년의 아키텐, 푸아투, 가스코뉴의 여공작위로 스타트하지만 이후 1137년 연말부터 보르도, 푸아투, 생통주의 여백작으로 루이 7세의 왕비가 된다. 고유 혈통 보유자이며 매력적인(Fair) 트레잇을 가지고 있으며 외교계 능력치를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준수한 스탯을 가지고 있다. 1137년 5월 이후 미성년 미혼 상태에서 플레이할 경우, 전체 세력 규모는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최강 수준. 스탬퍼드 브리지 시점 토스카나를 지배하는 카노사의 마틸다와 비슷한 느낌이나 직할령이 크지 않고 산하 백작들이 많아 파벌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지배력을 키워야 한다. 성인 플레이 기준, 프랑스, 잉글랜드 왕비 플레이하다 보면 보유 영지가 여러 공작령에 걸쳐 있기에 보통 남편들에 의해 아키텐과 푸아투의 여공작으로 책봉되지만 모계 계승이 되지 않으므로 남편들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 실제 역사 속에서도 존재감이 강한 여걸이었지만, 아예 아키텐의 여왕으로 서유럽을 호령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대강 정리하면 1137년 4월 9일부터 미성년의 여공작으로 시작하여, 7월 22일에 루이 6세의 아들 루이 왕자에게 공작위를 뺏기고, 7월 25일부터 루이 왕자와 결혼하여, 이후 루이 왕자가 루이 7세로 즉위하여 1137년 8월 1일에서 1152년 3월 17일까지는 프랑스 왕비로 있다가, 두 딸을 가진 채로 3월 18일 이혼하여, 3월 21일부터 다시 여공작이 되었다가, 5월 18일에 노르망디 공작 헨리와 결혼하여 공작위를 다시 뺏기고, 1154년 10월 25일 남편 헨리가 헨리 2세로 즉위하면서 영국 왕비가 된다.
- 1140년, 신성 로마 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 백작 하인리히
신성 로마 제국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지배했던 제후 중 한 사람이며, 벨프 가문의 최전성기를 이루어냈던 인물이다. 그는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의 외사촌[102]이자 라이벌이었으며, 바르바로사 못지 않게 위대한 군주였다고 할 수 있으나, 만년에 바르바로사 황제의 견제를 받아 영토의 대부분을 몰수당하게 된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5대 부족 공국 중 작센 공국과 바이에른 공국의 지배자였으며, 슈바벤 공국의 일부도 통치하여 황제보다 훨씬 넓은 영지를 보유했다. 하인리히 사자공은 12세기 독일 동방식민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군주였다. 그는 슬라브인들이 사는 엘베 유역 동쪽으로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메클렌부르크와 포메른을 정복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독일 식민지화함으로써 독일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켰다. 또 평생 건축과 예술을 끊임없이 후원했던 그는 자신의 영지에 뮌헨, 뤼베크, 아우크스부르크, 힐데샤임, 슈타데, 카셀, 귀스트로, 뤼네부르크, 잘츠베델, 괴팅겐 등 여러 도시를 새로 건설했다. 1140년부터 플레이 가능하지만 1142년부터 하면 '사자' 라고 별칭도 붙어 있다. 능력치는 외교력을 제외하면 모두 10은 넘고, 특히 관리력이 19로 뛰어나다. 1142년부터 작센(Saxony)의 공작이 되고 1156년부터 바이에른(Bavaria) 공작도 겸임하며 넓은 영지를 갖게 되지만 1180년 10월 즈음부터 백작으로 강등, 땅도 바이에른 지역은 다 떨어져 나가고 작센 지역도 동프리슬란트, 뤼네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 파더보른만 수중에 남으며 몰락한다.
- 1147~1187, 예루살렘 왕국의 가신 르노 드 샤티용
십자군의 기사. 십자군 전쟁사에서 나름 유명한 인물이지만 정작 그가 프랑스 왕국의 상파뉴 지방에서 온 인물이란 것을 제외하면 알려져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현실에선 그다지 평가가 좋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래도 플레이어가 조종한다면 충분히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 1155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붉은 턱수염 때문에 별명은 바르바로사[103], 즉 붉은 수염이라 불렸고 후대 동명의 프로이센 국왕인 프리드리히 1세와 오인하지 않기 위해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라고 더 많이 불린다. 그러나 게임상으로는 이러한 별명이 구현되어 있지도 않고 더욱이 붉은 수염이 아니라 금발 수염이다.. 그의 가문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중세 독일과 신성 로마 제국의 유력 가문으로 슈바벤 공작,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시칠리아 왕국 왕위, 예루살렘 왕국 왕위를 세습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 역대 왕조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황권을 추구한 가문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대공위 시대 이후 100여 년간을 제외한다면, 가장 아슬아슬하게 제위 세습을 이어갔던 가문이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벨프 가문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그토록 강력한 황권을 추구한 것은 벨프 가문에게 제위를 빼앗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벨프 가문 뿐만 아니라 당시 권세가 절정에 이르렀던 교황의 권력 역시 호엔슈타우펜 가문에게는 큰 부담과 위협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당시 교황은 적극적으로 황제 선거에 관여했는데, 특히 역대 최고의 교황권을 행사했던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실제로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벨프 가문을 교대로 황제로 올려놓으면서 황권을 견제해 절정의 위상을 과시하기도 했다. 호엔슈타우펜 왕조는 신성 로마 제국과 이탈리아, 가톨릭 세계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교황과 치열하게 대립하였으나 결국 그 과정에서 몰락하고, 독일은 대공위시대로 진입했다.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는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의 아들로 1152년 호엔슈타우펜 왕조를 연 작은 아버지 콘라트 3세의 지명으로 로마왕이 되었고 1155년부터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오스트리아 공국 등을 신설했고 폴란드 왕국, 헝가리 왕국을 굴복시켰으며 부르군트 왕국의 왕위를 획득하여 위세를 전 유럽에 떨쳤다. 특히 이탈리아 경략에 적극적이어서 1154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대규모 이탈리아 원정에 나서 롬바르디아를 장악하여 롬바르디아 왕위에 오르는 한편 옛 부르군트 왕국에서 출발해 롬바르디아 옆 피에몬테를 장악한 사보이아 백국의 움베르토 3세를 제압하고 더 나아가 교황과 대립하였다. 1180년에는 자신을 원조하지 않던 하인리히 사자공을 추방하고 그 영지를 부하들에게 분할하여 나누어 주었고, 1186년에는 아들인 하인리히 6세를 위해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계승권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3차 십자군 원정(1189 ~ 1191)에서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많은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소아시아의 살레프강을 건너던 중 사망했다. 서임권 투쟁 이후 황권이 약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즉위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는 카롤루스 대제 시절의 강력한 제국을 꿈꾸며 적극적인 황권 강화와 영토 확장을 추구했다. 그 결과 그는 역대 신성 로마 황제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황권을 행사했고, 영토도 확장했다. 당대 서유럽에선 제국의 제2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하인리히 사자공을 추방시킨 프리드리히를 능가하는 권력자는 보기 힘들었다. 해외에서는 이탈리아의 군주들 및 교황들과 대립했고, 독일 내에서는 특히 하인리히 사자공과 대립하였다. 사자공은 황제가 아니었을 뿐, 소유한 영지의 넓이에서 뿐만 아니라 전쟁 및 영토 확장 성과, 도시 건설, 문화 장려 등 여러 면에 있어서 프리드리히 바로바로사 황제에 필적하는 인물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당대는 물론 신성 로마 제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황권을 휘둘렀던 군주 중 한 명이며, 그의 치세 하에서 제국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발전을 거듭했다. 또한, 그는 남독일과 북독일이라는 상이한 문화를 갖고 1600개 이상 존재했던 당시 독일에 하나된 독일이라는 개념과 열망을 제시하였다.
- 1168~1194 예루살렘 왕국과 키프로스 왕국의 왕 기 드 뤼지냥
십자군 전쟁 당시의 기사이자 예루살렘 왕국의 제9대 공동 국왕이였으며 키프로스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등극하여 뤼지냥 왕조를 개창한 인물이다. 비록 실제 역사에서 그렇게 좋은 군주는 되질 못했지만 그래도 플레이어가 조종한다면 충분히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 1170~1187, 브엘세바 백작 발리앙[104]
이벨린의 발리앙으로 그는 물론이고 그의 형인 위그, 보두앵과 그 선조들을 비롯한 디블랭 일가가 1134년부터 브엘세바 백작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1134년부터 시작인가 싶을 듯한데 사실 1110년부터 야파 백작위를 들고 있는 드 퓌제 가문이 곧 디블랭 가문이다. 이벨린 성채를 건설하면서 성을 바꿨다고 하며 1133년까지 야파 백작을 들고 있는 퓌제의 위그가 이벨린의 바리장의 형이고 이 이벨린의 바리장이 바로 이 이벨린의 발리앙의 아버지이다. 참고로 야파 백작위 대신 브엘세바 백작위를 들려준 까닭에 디블랭이라는 가문 이름과는 달리 정작 이 가문과 야파(Jaffa)의 이벨린 남작령을 지배하는 드 이벨린 가문은 전혀 관련이 없다.
- 1175~1185,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4세
나병왕이라는 별명답게 문둥이와 안면 훼손 트레잇이 달려 있고, 얼굴도 가면을 쓰고 나온다...[105] 문둥이 트레잇 때문에 자식 얻기도 무지 어렵고 당대 최강국인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에게 포위당해 있어서 방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1183~1199, 잉글랜드 왕국의 왕 '사자의 심장' 리처드 플랜태저넷
역시나 그 유명한 리처드 1세다. 1183년부터 앙주, 메인, 투르 백작위를 가지고 있으며 1187년부터 "사자의 심장" 닉네임이 붙는다. 1190년부터 잉글랜드의 왕으로 시작. 능력치는 당연히 무력을 제외하면 높은 편은 아니며, 무력도 17~19 라는, 명성에 비해서 초라하다. 사실 무력은 좀 더 버프를 줘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106] 게임의 이름인 Crusader Kings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다. 이 때의 잉글랜드는 본래의 잉글랜드 왕국 권역에다 프랑스, 아키텐, 웨일즈, 아일랜드 권역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초강대국[107]이므로 플레이는 굉장히 쉬운 편. 사실상 제국급의 영토를 자랑한다. 돈과 신앙심이 넉넉하다면 아키텐 왕위 만들어서 프랑스보다 더 빨리 프랑키아 제국 설립도 시도 가능하다. 사실 전쟁만 잘하지 내정은 젬병인 폭군.. 이라는 이미지는 후대에 생겨난 억측이며 실제 기록으로는 부하들에게 상당히 인망이 있고 내정도 부하들 시켜서 나름 관리를 시도하는 데까지는 한 편이다. 괜히 리처드 1세가 더 오래 살아서 필리프 2세를 막을 수만 있었어도.. 하는 식의 IF를 기반으로 히트작 소설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리처드 1세로 영불제국을 건설하고 신성 로마를 가뿐히 능가하는 유럽 최강국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 1187년, 아이유브 왕조의 살라흐 앗 딘
그 유명한 살라딘이다. 시간대에 따라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3차 십자군 직전이면 이집트 왕위를 가지고 있고 상당한 자체 세력을 가지고 있다. 내부 정리를 조금만 한 뒤에 병력을 모아서 실제 역사대로 예루살렘을 야금야금 먹어가며 장악하고 그러면서 주변의 소국 이슬람 세력들을 흡수하자. 실제로는 모술-이라크의 튀르크-아랍 제후들에게 지속적인 견제를 받았고 부와이, 셀주크의 몰락 이후, 실권을 되찾은 아바스 가문물론 여전히 약하지만의 엄포를 들어서 약간 몸을 사리는 등, 이슬람 세계 내에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까지 먹고 나서는 적당히 예루살렘 왕국과 그 이후의 십자군만 상대했지만, 인게임 내에서는 십자군만 막아낸다면 세력 확장을 크게할 여지가 많다. 1:1로는 그의 세력과 제대로 겨룰만한 이슬람 제국이 근처에 별로 없기 때문. 이슬람 종교가 인게임 내에서 신앙심만 충분하다면 매우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기 좋은 종교라는 점도 확장에 도움을 준다. 살라딘으로 이슬람 패권을 확립하고 아이유브 가문의 진짜배기 칼리프 차지하기를 시도해보자.
- 1187년, 프랑스의 필리프 2세
그 유명한 존엄왕 필리프 2세. 년도에 따라 말년으로 갈수록 실제 역사대로 육각형 프랑스를 이미 만들어놓은 상태라서 딱히 할 게 없다. 유럽 전역으로 세력 확장하는 땅따먹기를 고려해야할 뿐. 따라서 필리프 2세로 재미있게 플레이할만한 년도는 그의 재위 초중반기 정도이다. 헨리 2세 - 리처드 1세 부자에 걸쳐 형성된 거대한 플랜테저넷 앙주 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럽 버전 중국 만들기, 육각형 프랑스를 건설하는 것이 주요 도전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잉글랜드와 플랜테저넷의 세력이 더 우월하다보니 실제 역사대로 권모술수를 써서 내부에서부터 플랜테저넷을 무너뜨려야 한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인게임에서의 리처드 1세가 초월적으로 강하지는 않다보니까 중요한 전투 몇 번에서 이겨서 병력 소모시키고 야금야금 영토 잠식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필리프 2세의 최대 강점은 내정이지 외정은 아니었다보니 그의 업적을 재현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정복전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필리프 2세의 장남인 사자왕 루이 8세가 했던 잉글랜드 정복 원정을 역사와는 달리 실제로 성공시켜보는 게 정복전 도전으로는 더 재밌는 도전이 될 것이다.[108]
- 1195년 동로마 제국의 바실렙스 알렉시오스 3세 앙겔로스
앙겔로스 왕조내의 유일한 정상인이자 4차 십자군만 없었다면 로마의 증흥기를 이끌었을 명군이자 명장. 다만 트레잇은 구린데 크킹2가 발매 됐을 때가 아직 재평가가 이루어 지기 전이라 그렇다.
- 1197년 4월 28일, Dyfed의 백작 윌리엄 마셜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기사로 평가받는 인물. 심지어는 그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의 대결에서도 승리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게임상에서는 그의 무력은 15정도로 리처드 1세보다 낮은 편. 그는 43세의 나이에 17세의 이사벨 드 클레어[109]와 결혼하여 슬하의 10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대부분의 아들들이 전쟁이나 사고 등으로 장수하지 못하여 결국 그의 직계 손주는 손녀 1명 뿐, 손자를 갖지 못해 13세기에 이미 직계 후손이 끊긴다. 그러나 모계 후손으로는 스코틀랜드의 왕 로버트 1세 등이 있다.
- 1198년 시칠리아 왕국의 왕 프리드리히 2세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저력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인물,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접하고 자란 교양인으로 벨프 가문에 빼앗긴 신성 로마 제국 제위를 탁월한 외교술과 개인의 매력으로 되찾는 등 조부와 부친의 잇따른 객사로 위기에 처했던 호엔슈타우펜 왕조를 외형상 재건하는데 성공하였고, 6차 십자군 원정에서 이집트 술탄 알 카밀과 외교 협상을 통해 성지 예루살렘을 수복하며 위세를 높였지만 교황과의 반목, 북이탈리아 자유도시들과의 마찰을 극복하지 못하고 재위 대부분을 전쟁으로 보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독선적인 정책 노선을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 되어 그의 사후 호엔슈타우펜 왕조 붕괴를 초래한다. 독일을 방치하고 이탈리아 위주의 정책을 전개한 탓에 현대 독일 사학계에서는 전형적인 중세 군주의 연장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시칠리아 국왕으로서 나폴리 대학교 창건을 비롯하여 고대 로마법을 본뜬 법전 제정과 기축통화 발행,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의 시도 등으로 '황제의 옥좌에 오른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전통적인 평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의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와 시칠리아 왕국의 창업군주인 루제루 2세의 손자로 1198년부터 4세의 어린 나이로 시칠리아 국왕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실제 역사상으로는 무장이라기보다는 지략가에 가까운 인물이나 성년 기준으로 '뛰어난 전략가' 트레잇을 보유한 무력형 군주로 묘사된다. 재미있는 것은 열 명이 넘는 첩을 거느리고 수많은 사생아를 둔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게임상에서는 '순결' 트레잇을 달고 나온다는 점으로 이 부분은 리처드 1세도 비슷하다.
- 1204년 5월 16일, 아드리아노폴리스의 백작 테오도로스 브라나스
라틴 제국에 협조하면서 카이사르 칭호를 얻었던 그리스 무장. 알렉시오스 2세와 안드로니코스 1세의 아내였던 프랑스의 아녜스를 안드로니코스 1세 사후 보호하면서 끝내 아내로 맞이한 인물이다. 후에 니케아 제국의 황제가 되는 요안니스 3세의 고종사촌이기도 하다. 게임에 구현된 능력치는 썩 뛰어나지 않지만 라틴 제국 내부의 그리스 세력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게임을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다.
- 1206~, 칭기즈 칸과 그의 아들, 그리고 사준사구의 일부 인물들
올드갓 DLC가 등장한 이후 이 세기의 정복자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휘하 인물들을 살펴보면 수부타이, 젤메, 제베를 포함한 사준사구의 일부 인물과 아들들까지 구현되었다. 다만 이후 시나리오에서 명목상 몽골 제국의 대칸인 쿠빌라이 칸은 구현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추가되었다.[110] 호스로드 dlc가 나오면서 쿠빌라이와 원나라가 구현되었지만 친척들이 제대로 만들어진 카간위를 가지고 있는 것에 반에 이전까지 제대로 나오던 몽골제국은 사라지고 몽골리아 칸국으로 만든 명목상 카간으로 나온다. 옥룡 이전엔 쿠빌라이는 있었지만 쿠빌라이의 라이벌 아리크부카는 없었고 아리크부카의 근거지인 몽골 고원도 모두 쿠빌라이 영지로 구현되었다.[111] 호스로드에서 발생한 버그로, 칭기즈 칸으로 플레이 했는데 몽골 제국 칭기즈 칸이 쳐들어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게 된 버그가 있었다. 옥룡이 출시되면서 쿠빌라이를 비롯한 원나라 황제들은 플레이 불가 캐릭으로 변경되었으며 그자리는 오이라트 부족이 대신하게 되었다.[112] 또한 Horse Lord DLC부터 보르지긴 가문의 조상 족보가 구현되어 원조비사에서 몽골족의 시조로 기록한 보르테 치노의 가문인 쿠랄라스(Quralas)와 그의 아내인 구아 알란(Gua Alan)이 구현되었고 이들의 후손인 보르지기다이부터 가문이 보르지긴으로 바뀐다. 또한 징기스칸의 직계 조상인 보돈차르와 그의 네 형, 어머니 알란 코아(Alan Gua)도 족보에 있으며 징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와 후엘룬, 아내 보르테를 포함한 일족들이 모두 있다. 867년 시나리오부터 12세기 후반까지는 영지가 없어서 징기스칸 이전의 보르지긴으로 플레이하려면 직접 분봉하거나 콘솔로 땅과 작위를 줘야만 한다.
- 1218년, Turkestan 베이러베이, 잘랄 웃 딘 밍부르누
호라즘 왕조의 왕자이자, 징키스칸의 몽골군이 몽골 내전을 제외하고 최초로 패배한 파르완 전투의 승장이다. 호라즘 제국의 왕 알라 웃딘 무함마드의 아들로 1218년 기준으로 28세이므로 이전에는 알랄 웃딘 무함마드의 궁정에 있다. 1218년 시작부터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1218년과 1219년, 2년간 전성기를 구가하던 호라즘은 1220년 단 1년만에 몽골군에 대충 망하는 수순을 밟는다.[113] 1221년에는 북부와 남부가 분리된 땅 2조각만이 남아있고, 1222년부터는 그나마도 북부가 이탈한다. 이 때문에 잘랄을 시작시점에서 플레이 할 수 있는 것은 6~7년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뿐이다. 그리고 잘랄의 능력은 기대와 달리 전혀 높지 못하다. 한 자릿수 전투력은 기가 막힐 정도. 장점은 호라즘 왕국이 존재할 때에는 당연히 왕위 계승권자이고, 호라즘이 술탄국 지위를 상실한 1221년 이후에는 명목상 페르시아에 대한 강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해당 시점의 페르시아는 모두 몽골 영토이다.
- 1218년 6월 25일, 잉글랜드 왕국의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
프랑스계 잉글랜드 귀족. 그는 헨리 3세가 마그나 카르타의 후신인 옥스퍼드 조례(Provisions of Oxford)를 제대로 지키지 않자 귀족(Baron)들을 이끌고 봉기(제2차 남작 전쟁)하여, 1264년의 루이스 전투에서 국왕군을 격파하고 왕을 포로로 잡았다. 1265년 1월, 그는 영국 최초의 의회인 모범의회를 소집하였으나 그해 8월에 벌어진 이브셤 전투에서 헨리의 아들 에드워드의 군대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비록 1년 남짓한 기간만 집권하였지만, 그는 근대 영국의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여담으로 시몽은 헨리 3세의 매부였다.[114] 그가 레스터 백작위를 획득한 1218년 시점에서는 아직 10세의 어린 나이이다. 그의 가문인 몽포르 가문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양쪽에 영지들을 두었으며 십자군으로도 활동했다.
- 1226~1285, 프랑스 왕국의 앙주 공작/시칠리 왕국의 국왕[115] 샤를 당주
나폴리 왕국의 왕.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의 분가인 앙주 가문[116]의 시조이다. 프랑스 국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의 블랑쉬의 막내 아들로 루이 9세의 동생이다. 1226년 유복자로 태어나 앙주 백작으로 봉해졌다. 1246년 프로방스의 베아트리체와 결혼하여 앙주와 프로방스의 백작이 됐다. 그는 호승심이 강하고 야심이 많은 사내로 1248년 형 루이 9세를 따라 십자군 전쟁에 종군하여 7차, 8차, 9차 원정에 모두 참전했다. 한편 신성 로마 제국에는 콘라트 4세가 사망하고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를 계승권이 없는 사생아 만프레디가 찬탈하는 일이 발생한다. 프리드리히 2세 시절부터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던 교황 우르바노 4세는 만프레디가 황제파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루이 9세의 동생인 앙주의 샤를에게 접근하여 시칠리아 왕위를 차지하라고 부추겼다. 야심에 불타던 샤를은 형의 지원을 업고 시칠리아로 내려가 베네벤토 전투에서 만프레디를 패사시키고 카를루 1세로 즉위하였다. 이듬해 콘라트 4세 정통 후계자인 콘라딘이 처들어왔지만 탈리아코초에서 쉽게 격파하여 나폴리에서 공개 참수해버렸다. 이로써 호엔슈타우펜 왕조는 대가 끊기고 신성로마 제국은 대공위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카를루 1세의 왕권은 공고해졌다. 야심에 불타던 카를루 1세는 시칠리아 왕위에도 만족하지 않고 붕괴해버린 라틴 제국을 지원해 알바니아로 침공해가는 등 동로마 제국의 황위도 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에 군비를 충당하느라고 시칠리아를 가혹하게 쥐어짰는데, 시칠리아인들의 불만이 커지게 되었다. 한편 동로마의 황제 미하일 8세는 카를루 1세의 이런 침공에 격노해,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3세에게 군자금을 지원해 주며 카를루 1세를 치라고 종용했다. 페드로 3세는 만프레디의 딸 콘스탄스와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적법한 시칠리아의 왕위 계승권자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때에 시칠리아 주민들이 카를루 1세의 압제에 못견뎌 왕위를 페드로 3세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했고, 미하일 8세의 지원도 있자 시칠리아 왕위를 빼앗으려는 공작을 꾸몄다. 카를루 1세가 알바니아에서 싸우던 도중 시칠리아 주민들이 대봉기를 일으켜 프랑스군을 학살했다. 이것이 이른바 1282년의 시칠리아의 만종 사건이다. 카를루 1세는 군대를 돌려 반란을 진압하려 했으나, 곧이어 시칠리아 주민들을 지원하던 페드로 3세가 쳐들어와 대패하고 나폴리로 퇴각했다. 카를루 1세는 시칠리아 섬의 수복을 꾀하였으나 결국 아라곤을 당해내지 못하여 시칠리아를 포기하고 나폴리 왕위만 차지함으로서 전쟁은 아라곤 왕국의 승리로 끝났다.
- 1234년, 말리 왕국의 순자타 케이타
게임에선 Mari-Djata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위키백과에 캐릭터 링크도 연결된 인물로, 소소 왕국을 없애고 말리 왕국을 세운 사람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아프리칸 킹덤의 말리 캠페인에서도 그가 말리를 세우는 과정을 다뤘으며, 지도상으로 서아프리카가 구석이라 배후 위협은 없다. 수니파로 쭉 진행하거나 플레이어 취향에 따라 아프리카 신화로 바꾸고 개혁까지 달려도 된다.
- 1241년 5월 1일, 리투아니아의 민다우가스
이전까지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리투아니아 일대를 최초로 통일한 왕이다. 이 사람의 업적을 토대로 현재의 리투아니아 국경이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지금도 리투아니아에서 상당히 존경받고 있다. 하지만 플레이 시 애로사항이 꽃피는데 일단 가장 큰 요소는 종교가 발트 신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튜튼기사단이 쉴새없이 성전을 걸어오며 동쪽에는 러시아와 몽골이 버티고 있어서 AI가 잡으면 자주 가톨릭으로 개종해버린다. 종교 개혁이 매우 시급하기 때문에 성지를 빨리 점령해야 하는데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발트 신화 특성상 상당히 힘들다. 역사대로 폴란드 일대로 진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참고로 연도를 1241년에서 뒤로 돌리다 보면 발트신화에서 정교회, 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한 민다우가스를 플레이할 수 있다. 민다우가스가 사망한 후 리투아니아는 다시 발트신화로 개종했고 14세기 후반 폴란드와 동군연합을 맺으면서 최종적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다.
- 1247년, 키예프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러시아의 영웅으로 가톨릭 세력의 침공을 저지한 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이다. 바투의 봉신으로 되어 있으며 기본적으로 '뛰어난 전략가' 트레잇과 '용감한' 트레잇이 달려있어서 높은 무력수치를 자랑한다. 실제로는 몽골 골든 호드의 위세가 워낙 강하고 굳이 네프스키 본인으로 안 싸워도 주군 몽골니뮤들이 공격자들을 막아주는 경우가도리어 본인들이 적들에게 쳐들어가는 경우가많다. 이후 그의 후손 중에서 나중에 러시아를 통일한 이반 4세가 나왔으니 실제 역사처럼 천천히 내부 기반을 굳히고 자식 농사 잘 지으면서 내부에서 세력을 확립하고 러시아인들을 위해 몽골 지배자들을 제거하여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날 기반을 마련하자.
- 1260년, 일 칸국 봉신인 알레포의 키트부카 노얀
훌레구의 부하 장수로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전사했다. 훌레구는 텡그리를 믿지만 키트부카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는다. 처음에 일한국 봉신으로 시작하는데 금장한국과 일한국은 초기 둠스택 병력이 많으므로 봉신으로 플레이하다가, 둠스택 병력이 떨어질 때 플레이어 재량에 따라 계속 봉신으로 남거나 독립하면 된다.
- 1271~1283, 1283~1324 원나라, 베네치아 공화국의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을 쓴 그 마르코 폴로 맞다. 1270년경부터 원나라에 있고. 성인이 된 이후인 이시점에는 외교력이 무려 28(!!) 을 자랑한다. 나이도 매우 어려서 오랫동안 써먹을수 있다. 다만 쿠빌라이와 친구관계로 맺어져있기에 다른 나라에서 데려가려면 치트를 써서 (yesman) 영지를 주고 플레이해보자. 30세가 되는 1283년 이후는 베네치아의 지휘관으로 있다.
- 1271~1305.8.22, 스코틀랜드 Strathclyde 공작령 Clydesdale 백작의 가신 윌리엄 월레스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 브레이브 하트로 유명하다. 무력은 대략 16정도이다. 영지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땅을 구해서 수여해줘야 한다. 참고로 이 시점의 Clydesdale 백작은 스튜어트 가문의 제임스로 나중에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를 창시하는 로버트 2세의 조부이다. 윌리엄 월레스는 1305년 8월 23일 부터는 역사대로 사망한 상태[117]이다.
- 1279년 불가리아의 국왕 이바일로
돼지치기 출신으로 콘스탄틴 아센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몽골의 침입을 막았지만 게오르기 테르테르와 이반 아센 3세 등의 정적들에게 폐위된 왕이다. 이바일로는 킵차크 칸국의 노가이에게 의탁했으나 그에게 살해당했다. 1280년 이후 불가리아 왕국 작위 역사에서 콘스탄틴 아센이 이바일로에게 살해된 것으로 기록되었고, 이바일로도 노가이에게 살해당한 기록이 남았다.
- 1281년 룸 술탄국 앙카라의 베이 오스만 1세
앞으로 거대한 제국이 되는 오스만 제국의 창건자. 1258년생으로 1281년에는 앙카라의 베이이며 1299년이 되어서야 오스만 왕조를 개창한다. 그러나 1299년의 오스만 왕조는 땅 하나짜리 소국으로 시작한다. 유튜브에 1299년 오스만으로 시작해서 나중의 오스만 제국 판도를 비슷하게 구현한 영상이 있다. 좀 더 쉽게 하려면 1310년 시점부터 하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266년부터 그의 아버지 에르투으룰으로도 플레이 가능하다. 에르투으룰은 1191년생으로 이때는 아이유브조 장기 에미리트에 있다.
- 1296년 스코틀랜드 왕국의 로버트 1세
본명은 로버트 더 브루스로 윌리엄 월레스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이다. 브레이브 하트, 아웃로 킹, 문명 6의 스코틀랜드 지도자로 등장하여 유명하다. 그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노르만계 귀족 가문인 브루스 가문 출신으로 데이비드 1세의 6세손으로 던켈드 왕가의 방계 왕족이었다. 오늘날 인명으로도 흔히 쓰이는 '브루스'라는 성은 노르망디 지명의 브릭스(Brix)가 유래라는 설이 있는데 불확실하다. 이 이름이 처음 나오는 건 《둠즈데이 북》에 나오는 동명이인 남작 로버트 브루스[118]인데, 당시에는 'Bruis'라는 철자로 썼다. 아마 당시에는 가문이 아니라 인물의 별명쯤이었을 것이다. 그는 로버트 1세의 6대조 로버트 브루스로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 1세의 친구였다고 하며, 그는 왕에 의해 애넌데일(Annandale)의 영주로 서임되었고, 이후 로버트의 6대손 로버트 1세가 브루스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스튜어트 왕조의 왕들은 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스튜어트 왕조의 개창자인 로버트 2세가 그의 외손자다. 결과적으로는 제임스 1세 이래로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인 그의 후손들이 잉글랜드 왕국의 왕까지 겸하게 된 것이다.
- 1312년 말리의 만사 무사
세계 역사상 가장 돈이 많았다는 전설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특히 메카 순례시에 금을 물쓰듯 해서 카이로의 금값이 절반으로 폭락했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그러나 1312년 시점에서의 만사 무사는 시작 시점에 100두카트를 갖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시작 시점의 돈으로 적은 돈은 아니지만 명성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은 편이다. 게다가 쓸데 없는데 돈을 낭비해서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악명답게 능력치도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다.
- 1331년 세르비아 왕국의 스테판 두샨
세르비아의 전성기를 이끈 왕이며 세르비아 제국을 세웠다. 1337년 시나리오에서는 아들인 스테판 5세도 있으며 이 시기의 발칸 반도는 다들 국력이 엇비슷하므로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강력한 세력을 만들 수 있다.
- 1337년 폴란드의 카지미에시 3세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유명한 임금. 문명 5에서 폴란드의 지도자로도 등장했다. 누나인 엘즈비에타는 카로이 1세의 왕비이며 외손자인 러요시 1세는 훗날 폴란드 국왕을 겸하였다.
- 1337년 헝가리 왕국의 카로이 1세
헝가리 앙주 왕조의 첫 번째 국왕이다. 왕위를 물려받는 러요시 1세는 아직 10살이며 형인 카로이[119]가 있어서 왕위를 물려주려면 사전작업을 해야 한다. 문화권이 다른 봉신과 달리 프랑스다.
- 1337년 영국 란체스터 공작 에드워드 4세 플랜태저넷.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자 리처드 3세의 아버지인 흑태자 에드워드지만 1337년에는 미성년이며, 능력치도 평범해서 플레이어가 직접 키워줘야 한다.
- 1350년 이후 티무르 제국의 티무르
게임 시작시점이 1337이 끝이기에 처음부터 플레이할 수 없다. 1350년 이후 이벤트로 나타나서 티무르가 영주로 있는 땅이 생기면 play 콘솔이나 세이브 파일에서 티무르를 선택해서 플레이하면 된다.
6. 플레이는 불가능하지만 구현된 유명한 인물
- 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의 황제들
비잔티움 황제와 페르시아 황제의 작위 히스토리를 열어보면 아우구스투스와 아르다시르 1세 이래 두 제국의 황제들이 모두 구현되어 있다. 다만 로마 역대 황제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능력치를 신경 써서 준 편인데(어차피 인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하니까 의미는 없지만) 사산 조 이란 제국 역대 황제들의 능력치는 그냥 아무렇게 줬다. 사산 조 초대 황제인 아르다시르 1세의 개판스러운 능력치와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먼치킨 능력치를 비교하면 그저 눈물만.. 게임이 서기 0년부터 연대를 계산하므로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는 21세, 35세에 죽은 걸로 나온다.[120]
- 사도와 교부, 성인들
종교 지도자의 계보가 구현되어, 기독교 총대주교 작위의 히스토리를 열어보면 사도들을 볼 수 있다. - 교황 페트루스: 로마의 초대 주교
- 세계 총대주교 사도 안드레아스: 초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 고증 오류로 베드로와 형제로 나오지 않는다. 형제로 나오려면 아버지 데이터가 있어야 하지만 기원전 인물이기에 구현이 힘들어 그냥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두 형제의 민족이 유대계인 아슈케나지가 아닌, 그리스인으로 나오는 것도 있다.
- 콥트 교황 마르코스 1세: 마가복음의 저자.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주교다.
- 동방 총대주교[121] 사도 토마스: 안티오키아의 초대 주교는 아니나[122] 동방(인도)으로 가서 선교에 힘쓴 점에서 동방 총대주교로 구현된 듯 하다.
- 동방 총대주교 사도 바르톨로메오스: 2대 동방 총대주교. 인도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 순교했다.
- 동방 총대주교 사도 타데우스: 3대 동방 총대주교.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선교하고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
그 외에도 교황 작위 히스토리에서 성 레오 1세, 성 그레고리우스 1세, 성 그레고리우스 7세 그리고 콥트 교황 작위 히스토리에서 성 키릴로스 그리고 헝가리 국왕 작위 히스토리에서 성 이슈트반 1세 등의 성인들도 찾아 볼 수 있다.
- 칼리프들[123]
이슬람 역시 마찬가지인데 수니파와 시아파 칼리프의 작위 히스토리 맨 처음은 무함마드로 나온다. 여담으로 무함마드는 그의 얼굴을 묘사하면 안된다는 이슬람의 율법을 존중하여 게임 내에서 유일하게 포트레잇이 없는 인물이며 대신 이름인 '무함마드'의 서예 이미지로 대체되어있다. 이 이미지를 이용해서 자기 얼굴을 게임에 넣어서 플레이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신성모독이다
-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 클로비스 1세
샤를마뉴 DLC가 추가되면서 구현되어 있는데 프랑크 왕국을 세워 전국시대였던 서유럽을 평정하고 현대 서유럽의 정치환경의 근원을 만들었다. 특히 서유럽 왕조에 강한 영향을 끼친 살리카법을 만들었다.
- 아서 왕
홀리 퓨리 DLC가 추가되면서 구현되었다. 서머셋 공작위의 작위 히스토리를 보면 Arthur Pendraig라는 인물, 즉 아서 펜드래건이 있다. 캐멀롯의 위치가 서머셋 남쪽 캐드베리였다고 전해지는 점에서 그리 구현된 듯하다.
- 야율아보기를 비롯한 요나라의 역대 황제들
Horse Lords DLC에서 몽골 지역이 추가되면서 이 지역을 지배한 바 있는 요나라가 1066년~1125년간의 시나리오에 구현되면서 추가되었다. 플레이해볼 수 있는 도종, 천조제, 야율덕광를 제외한 나머지 역대 요나라의 황제들과 천조제의 친아버지 야율준이 모두 데이터상으로 구현되어 있다.
- Jade Dragon DLC에서 추가된 티베트 제국의 역대 황제 목록에서 손첸감포와 문성공주가 있다. 중국 황제 작위는 따로 없고 NPC로 구현됐지만 문성공주(Li Wenchang)의 족보를 역추적하면 문성공주의 아버지, 친척, 역대 당나라 황제와 측천무후[124]가 나온다. 당 고조 이연의 외가인 독고(Dugu)가문의 족보에 있는 독고 가라(Dugu Qieluo), 독고 가라의 배우자 수문제, 아들 수양제가 있는 수나라의 양(Liang)씨 가문 족보도 있다. 독고 가문 외에도 모용 토욕혼(Murong Tuyuhun), 탁발(Tuoba) 가문 등 선비족 출신 가문의 시조들을 찾을 수 있다.
- 서하의 군주는 경종 이원호가 자칭한 성인 외명(嵬名, Weiming) 가문으로 나오며 샤(하, Xia) 왕국의 역대 국왕 목록에서 볼 수 있다. 1066년과 1081년 시나리오에서 중국 황제는 송나라(북송), 1187년, 1204년, 1220년은 금나라, 1241년과 1337년은 원나라의 황제가 중국 황제로 등장하며 요나라는 몽골 지역에 따로 있다. 연도를 맞추면 그 시기에 맞는 중국 황제가 나온다. 중국 황제들은 능력치가 모두 ?으로 표시되고 트레잇도 없어서 측천무후처럼 과거 이력에서만 나온 캐릭터는 능력치를 볼 수 없다. 원나라를 제외한 중국 황제의 특이점은 본명이 아니라 묘호로 표기된다. 마우스 커서를 초상화에 올리면 원래 이름이 나온다. 게임에서 중국 왕조는 수나라부터 목록에 나오며, 당나라가 멸망한 후 오대십국시대에는 907년~923년까지는 중국 황제 목록이 비었으나 935년 시나리오에서는 후당의 마지막 황제인 이종가가 중국 황제로 있다.[125] 그리고 960년부터 송나라로 바뀐 걸로 처리했다.
- 능연각 24공신 중에서 장손무기(Zhangsun Wuji)와 방현령(Fang Xuanling)을 찾을 수 있다. 장손무기는 문덕황후의 가계도를 찾으면 있고 아들인 장손충(Zhangsun Chong)과 며느리 장락공주(Li Lizhi, 문덕황후 소생)도 있다. 방현령은 당 태종의 딸인 고양공주(Li Gaoyang)를 사위로 들여서 아들 방유애(Fang Yi'ai)와 함께 태종의 족보에서 고양공주를 찾으면 나온다. 방유애는 고양공주 및 태종의 아들인 이각(Li Ke)과 함께 당고종 영휘 연간인 653년에 역모죄로 처형당했다.
- 당고종의 서장자인 이충(Li Zhong)의 어머니 유씨(Liu Shi), 숙비 소씨(Xiao Shi)와 숙비 소생의 자녀 의양공주(Li Xiayu), 허왕 이소절(李素節 Li Sujie), 선성공주(Li Gao'an), 폐황후 왕씨(자녀 없음)도 족보에 구현되었지만 이효(Li Xiao)의 생모인 정씨는 크킹 족보에선 안 나온다. 측천무후 소생의 자녀[126]는 모두 가계도에서 찾을 수 있다. 무후의 친정인 무씨 가문(武 Wu)은 무사확과 양씨(무후 생모)의 자손[127] 및 무사확의 전처(크킹 족보에 미구현 상태) 소생인 무원경(武元慶 Wu Yuanqing, 무삼사(무원경 아들), 무원상(武元爽 Wu Yuanshang), 무승사(무원상 아들) 등이 있다. 무후의 언니인 한국부인(韓國夫人)과 남편 하란월석(賀蘭越石 Helan Yueshi) 계열 자손도 있다. 무후의 여동생인 무씨는 남편이 크킹 족보에 구현되지 않았다.
- 가톨릭계열 기사단의 역대 단장들
가톨릭계열 기사단인 성전 기사단, 구호기사단, 튜튼 기사단, 산티아고 기사단, 칼라트라바 기사단의 작위 히스토리를 보면 각 기사단의 역대 단장들이 어느 정도는 구현되어 있다. 다만 몇몇은 누락된 경우도 있고 아예 다른 가문으로 나오거나 혹은 가문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 중 유명한 인물로는 성전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 자크 드 몰레가 있겠는데 그는 역사대로 1312년 3월 22일 이후부터는 사망한 상태이고 성전 기사단도 해체되어 볼 수가 없다. 1312년 3월 22일 이전부터 시작하면 자크 드 몰레도 죽지 않고 성전 기사단도 계속 유지된다.[128]
- 송강을 비롯한 수호전의 등장인물들. 진짜 뜬금없이 나왔다. Jade Dragon DLC 이후 Outlaws of the Marsh라는 중국인 용병단이 추가되었는데[129], 용병단 주제에 가신이 40명이나 되는 특이한 용병단이다. 그런데 용병단장의 이름이 Song Jiang 'the Timely Rain'이고, 가신들은 Lu Junyi the Jade Unicorn, Wu Yong the Wizard, Guan Sheng the Big Halberd, Wu Song the Pilgrim, Li Kui the Black Whirlwind 등등 죄다 수호전의 등장인물들. 특이하게 노지심은 법명인 지심이 아니라 본명인 달로 나온다. 등장명은 Lu da the tattoed Monk.[130]
7. 튜토리얼 시나리오와 초보를 위한 추천 시작 인물
- 1066, 레온의 왕 알폰소 6세와 이베리아 북부의 가톨릭 왕국들
샤를마뉴 DLC 부터는 공식 튜토리얼 시나리오에 등재되었으며, 공식 튜토리얼에서는 알폰소 6세로 시작하게 된다. 형제들이 옆 나라인 갈리시아와 카스티야의 왕이라 시작하자마자 암살 몇 번으로 왕국 사이즈를 배로 늘릴 수 있는데다 주변국인 나바라와 아라곤 왕은 사촌형제라 역시 암살 운만 좋으면 먹을 수 있다. 거기다 아라곤 왕 작위를 얻으면서 생기는 클레임으로 이베리아 북동부의 바르셀로나 공작위까지 일사천리로 해먹으면 이슬람 세력을 제외하면 이베리아 북부 통일이 가능하다.
알폰소 6세는 기본 음모력이 상당하여 암살에 특화되어 더 간편한 편이나, 카스티야 왕 산초 2세는 무력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시작하면 된다. 산초 2세의 경우 무력 20대 후반의 엘 시드가 부하로 딸려나오는 것은 덤. 나바라의 경우 다른 왕들에 비해 이점은 더 적고 암살로 왕위 먹기는 힘들지만 바스크 문화권이라서 남녀 평등 상속제를 해보고 싶은 경우에 추천. 이베리아 남부에는 고만고만한 무슬림 에미르들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동맹만 잘 구하면 성전질로 이베리아를 순식간에 장악할 수 있다. 30년 정도만 기다리면 십자군이 활성화되면서 기사단이 나오니 적절하게 고용해 주면 더 쉽다. 굳이 레온 아니라도 이베리아 레콩키스타 자체가 크킹의 정복플레이에서 핵심적인 성전에 입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건 1066년 시나리오 이야기고, 바로 밑에 우마이야나 알모라비드처럼 강력한 이슬람 왕조가 버티고 있는 시나리오에서는 난이도 급상승.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아즈텍이 쳐들어올 가능성도 있으니 주의하자. 조금 더 익숙한 플레이어라면 1066년 시점의 나헤라 백작 라미로 히메나도 추천한다. 백작이지만, 나바라 왕인 형만 죽이면 나바라 왕국을 차지할 수 있고, 몇 번의 암살만으로 이베리아 북부를 먹을 수 있는 것도 다른 왕국과 동일. 게다가 라미로 자신은 카스티야 문화권에 있기 때문에 문화권 갈아타기도 경험해볼 수 있다. 혹은 이베리아 북부를 석권하는 것을 도우면서 팩션 플레이를 연습하는데도 상당히 유용하다.
- 1241년 일 칸국의 카간 훌레구
처음 시작하자마자 98000명에 달하는 둠스택을 들고 있다. 이는 위쪽 골든 호드와 함께 플레이어가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둠스택이며 거기에 초기 자금도 5000에 자문회도 닫혀있어 법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봉신들도 둠스택이 존재하는 한 주군의 눈치만 보기에 초보가 잡기에 이보다 좋은 스타팅은 없다. 주위에는 고만고만한 세력 밖에 없으니 북쪽의 골든 호드만 주의하면 무난하게 확장 할 수 있다. 종교가 텡그리라는 단점이 있지만 훌레구 아내가 네스토리우스 교를 믿으니 개종하고 성전으로 밀어버리면 확장은 금방이다. 조로아스터의 경우 이번 패치로 조로아스터 첩을 들인 후 개종은 불가능하지만 조로아스터 봉신을 만든 다음 조로아스터 봉신에게 자녀들의 교육을 맡겨서 2대째에 개종하거나 조로아스터 땅 작위 회수 후 개종하면 페르시아 제국의 재건, 모바단 모바드 복원, 샤오쉬안트까지 일사천리일 정도. 조로아스터 복원에 많이 추천 받는 867년 카렌 가문보다 훨씬 쉽다.
- 1261년 7월 25일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레우스 미카일 8세
이 시점의 비잔티움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간신히 수복한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군주인 미카일 8세의 상황은 나은 편인데 그건 바로 트라키아 + 아드리아노폴리스 + 니케아 등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가져야할 핵심 공작령들을 모조리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이긴 하지만 군소 공작령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기에 초보들은 손대기 힘든 제국 경영을 배우는 법을 익히는데 적합하다. 미카일 8세가 그럭저럭 괜찮은 능력치를 가진 것도 플러스 요인. 트라키아 + 아드리아노폴리스 + 니케아쪽은 확실히 틀어잡고 나머지는 봉신들에게 분봉하며 같은 정교회를 믿는 에피로스만 봉신화 제안을 하면 체급도 군소 왕국급은 되어 할만해진다.
8. 그 외 추천 인물(초심자 위주)
- 867, 셀란의 소 왕 시구르드 / 스비티오드의 소 왕 비에른
게르만 신화 플레이에 가장 편하다. 일단 야망을 ~왕이 되기로 하면 왕국 설립은 순식간이고 성지를 하나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매의 눈으로 서유럽의 상태를 보다가 적절할 때 제일란드를 점령하고, 또 한 곳(주로 나우마달)에 클레임 작업을 해 두면 종교개혁도 1대안에 해치울 수 있다. 종교개혁과 왕국을 설립하고, 적절한 약탈로 돈을 모아서 봉건제 전환에 필요한 성채들을 올려주면서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봉건제인 영토들을 확보해두면 그나마 후유증이 적게 봉건제 전환이 가능하다. 역설사의 바이킹 버프를 받아(...) 땅들도 홀딩수가 많은 지역들이 많은 편이다(특히 덴마크 지역이 뛰어나다. 왕국 단위의 평균 홀딩수는 최고.[131] 단 기술력이 낮고 개발도 안 되어있다.). 사실상 약탈과 이교도 플레이, 부족제 플레이를 처음 접해보는 데에는 최적. 종교개혁시 플레이어가 직접 대성전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 867,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레이오스 바실리오스 1세
전반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강한 이 게임에서도 가장 강한 시대로 숙련된 유저가 잡고 약간의 운만 따른다면 1대 안에 로마 제국 부활 디시전 실행이 가능하다.
- 867, 카렌 사트라피의 사트라프 반다드
사실상 유일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조로아스터교 플레이지만 난이도는 상당히 높다. 초반에는 우선 옆의 히바 왕국의 봉신으로 들어가서 내부로부터 왕국을 찬탈하면서 시작한다.[132] 그 후 타히르/사파르의 이슬람 세력과 싸워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 특히 성전의 경우 상황을 잘 고려해야 하며, 충분히 세력이 될 때까지 압바스와 영토를 맞닿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950~1000년 경에 나타나는 셀주크의 4만~6만 가량의 둠스택도 대비해야 한다. 평범하게 진행되었을 때 이 시기에 이 정도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승천한 비잔틴/압바스 정도가 간신히 동원이 가능할까 말까 할 병력이다. 대략적인 예로, 온전한 서프랑크(프랑스)의 경우가 1~2만 정도 수준이다. (물론 카롤링거 통합에 성공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 셀주크 둠스택은 이 시나리오만으로 한정한다면 몽골군 이상이라 볼 수 있다. 몽골 등장때까지 계속 진행한다면 몽골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압바스를 상대할 때는, 압바스가 사분오열한게 아니라면 보통 동원가능병력이 플레이어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재상을 보내서제발 때리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며우호도를 올려둔 다음에 퇴폐도 반란군이나 비잔티움과의 성전으로 비실비실 할 때를 노리고, 아무래도 힘들면 이웃동네 만만한 힌두교 국가들을 먹어서 성장하는 것도 방법. 현관교로 샤오쉬안트를 달성하는 것은 크킹유저라면 꼭 한번은 해봐야 할 일로 평가받는다(...)
- 867, 길란의 마르조반 와흐수단
또 다른 조로아스터교 군주, 백작령 달랑 하나만 소유하고 있는 독립 군주이지만 길란 자체가 홀딩5개에 성채까지 있어서 남작령을 회수하면 초기에 주는 5000병력에 더해서 약 8000에 가까운 병사를 동원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개발이 잘되어 있는 건 덤). 문제라면 압바스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는 점 그래도 초기 병력수가 많아서 성전을 잘 걸지는 않지만 재수없으면 바로 두드려 맞을 때도 있다 초반 플레이 팁이라면 데 쥬레 공작령은 압바스의 영지이니 그냥 포기하고 오른쪽의 알라비 에미리트의 마잔다란 공작령에 성전을 거는 것 알라비 에미리트는 시아파 무슬림이라 성전을 걸어도 주변은 죄다 수니파라 지원이 오지 않으니 전투때만 이벤트 병력을 투입하고 공성전은 징집병만으로 하는식으로 병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점령한다면 확실히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초반 압바스의 꼬장만 없다면 카렌 가문보다 오히려 플레이가 수월한 편. 이슬람 세력의 내분과 초기 병력을 이용해서 성전을 계속 건다면 어렵지 않게 1대 내에 왕위 성립에 필요한 렐름 사이즈 35를 달성할 수 있다.
- 867, 낭트의 헤스테인
가장 자유도가 높은 바이킹. 다른 바이킹들은 스칸디나비아에 있거나 거기를 나온 바이킹들이라도 봉건화가 안 돼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전쟁이라 제약이 있지만 헤스테인은 그런게 없고 거기에 시작부터 약간의 병력과 함선 돈 500과 명성 1000을 가지고 있어서 어디든 준비된 침략을 걸 수 있다. 말그대로 쌩뚱맞게 성전과 내전으로 바쁜 비잔티움을 쳐서 아나톨리아 왕국을 만들 수도 있고 금싸라기 땅 플랑드르를 먹고 시작할 수도 있다. 고수들은 해안 백작령들을 차례대로 정복해서 아라비아 반도 남부로 내려간 다음 수도 천도를 한뒤에 인도의 왕국들 중 하나에 준비된 침략을 걸어 바이킹 인도왕국을 건설 하는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왕국 건설 후 첩의 종교를 따라 기독교 계열로 개종 할 경우 성 토마스의 꿈 업적을 달성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캐릭터 본인도 영재트레잇과 외교, 무력, 관리 능력 평균이 15이상되어 운용이 편하다. 다만 나이가 40대 중반이라 아들이 장성하는 걸 못 보고 죽을 수도 있다.
- 867, 다우라의 여족장 마가지야
중앙아프리카의 백작령 하나를 보유한 독립군주지만, 흥미롭게도 여성우선 상속제를 가능토록 하는 역사적 혈통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계결혼을 통한 혈통 확보에 유리하다. 시작부터 인접한 카노 백작령의 족장과 모계결혼 상태이므로, 남편과 새아들을 암살하면 전쟁 없이 카노 백작령을 포함한 주변 백작령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 주변의 성지도 가깝고, 중앙아프리카에는 강력한 세력이 없어서 종교개혁도 쉬운편이다. 종교개혁에 성공하면 기사단이 생성되는데, 이 시점에서 타 종교는 기사단이 없으므로 주변의 분열된 이슬람 세력을 압도할 수 있다. 중앙아프리카는 개발도가 낮지만 사하라 무역거점의 수익이 매우 크므로 경제력도 강력한 편이다.
- 1066, 더블린의 백작 무르하드 우어 켄셀라이그 / 뮈뮈의 소 왕 무르하르
정식 튜토리얼이 등장하기 전 한국 유저들이 가장 강력하게 추천했던 인물. 본인의 트레잇과 능력치가 별로고 후계자인 아들도 영 좋지 않으며, 아일랜드라는 변방의 작은 백작령 영주일 뿐이다. 그러나 늙은 아버지가 아랫동네 랜스터 백작이라서 그걸 상속받으면 초반부터 백작령을 3개(원래 2개+아버지의 1개)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그런데 그 몇 년을 못 참아 아버지를 암살하거나 전쟁을 걸어 작위를 강탈하는 플레이어들이 많다.아일랜드에는 데 쥬레 왕국이 성립하지 않았고, 백작령 1~2개 정도의 독립 영주들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상당히 유리하다. 능력치가 구려서 2대째까지는 플레이가 좀 괴롭지만 손자 교육을 잘 시켜서 능력치를 개조해 보자. 제대로 된 독립 세력이 없는 아일랜드의 특성상 세력 확장과 왕위 생성이 매우 쉬운 것이 포인트. 이러한 이유로 플레이가 쉽기 때문에 팬카페들에서 비공식 튜토리얼이라며 밀어주었다. 무르하르는 전체적으로 더블린 백작과 유사하나, 이 쪽은 처음 부터 공작위를 가지고 있다. 남은 하나의 백작령도 공작령 권역(데 쥬레) 명분으로 공격하면 아일랜드에서 극초반 부터 간단히 세 개의 백작령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겨우 땅 한 개 가진 아일랜드 백작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 체급이다.
굳이 이들 뿐 아니라 아일랜드 내 대다수 소군주들은 비슷한 이유로 쉽고, 또한 매 시점 목표가 분명하여 초보가 혼란스러워하지 않게 된다. 초반에는 아일랜드 왕국 건설을 목표로 행동하게 되며, 아일랜드 통일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도 통일된 경우가 많으니 삼국정립 구도에서 브리타니아 제국을 목표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우선 조건 없이 바로 장자 상속제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장자상속제 시행에 왕국 성립과 높은 율법주의 레벨이 필요하도록 변경되면서 사라졌다. 선셋 인베이전 DLC 이후로는 아즈텍 침략이 생겼고 아즈텍은 대부분 브리튼, 이베리아 중 한 곳에 상륙하므로 기껏 아일랜드 통일하거나 브리타니아 제국 정도 만들었는데 본진에 아즈텍 20만 드랍이 와서 뭘 해보지도 못하고 정복당할 위험이 높다. 또한 1066년 이전을 다루는 시나리오들이 추가되면서 이전 시나리오들로 할 경우 더럽게 가난한 부족정인데다 바이킹들의 노략질에 자주 시달린다. 그래도 선셋 인베이전을 끄고 1066년 시나리오로 한다면 입문자가 첫 판으로 플레이해보기에는 여전히 괜찮다.
- 1066, 사나의 에미르 파들, 라시드 가문
이슬람 세력 중에서 밑바닥부터 플레이하는 컨셉으로 좋은 인물이다. 예멘의 술탄인 술레이만 가문의 알리만 잘 처리하면 왕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고, 시아파이기 때문에 에티오피아-소말리아 지역의 약소 순니파 세력 및 동방정교 세력 방향으로 확장하기 좋다. 또한 사이이드 트레잇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살 운만 따라준다면 이집트 및 시아파 칼리프 자리를 꿀꺽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1066, 토스카나와 스플레토의 여공작 마틸다
봉신플레이 혹은 여군주를 플레이해보고 싶은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것으로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의 카노사 가문의 수장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 중 최강의 세력으로 일단 마틸다 자체가 고정능력치에 능력치 자체가 매우 우수한 편이라 운용이 쉽고 친척이나 형제자매가 없어 찬탈에 대한 위험도 적다.카노사의 굴욕당시 교황을 지원하기도 했다. 거기에 나이가 고작 20살이라 최소 40년 이상은 부릴 수 있다. 또 롬바르디아 공작령에 영지가 걸쳐있어 음모로 롬바르디아 공작령에 대한 강력한 클레임을 조작 할 수 있어서 몇 년 안 가서 롬바르디아 공작까지 취할 수 있다.그럼 이탈리아에서 공작위가 3개나 되기 때문에 이탈리아 왕위는 순식간이다. 다만 사고무친인지라 플레이어 사망시 바로 게임이 종료된다는 위험이 있고 신성 로마 제국은 기본적으로 남성선거제라 황위 등극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후대를 위해 여지를 남길 수도 있고 이탈리아 왕국 성립 후 바로 독립도 가능하다. 일단 모계 결혼으로 하는 것을 잊지말자. 크킹에서 모계결혼은 여군주의 필수소양이며 홀리 퓨리 DLC부터는 가능한 혈통을 받을 겸 혈통이 있는 신랑감을 찾으면 더 좋다.
- 1081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레이오스 알렉시오스 1세
시나리오 이름부터가 알렉시아스다.[133] 비잔틴 제국의 상황은 대략 좋지 않지만, 알렉시오스 1세의 능력이 좋기에 제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영토를 수복해 나가는 맛이 있다. 알렉시오스로 하되 난이도를 좀 높혀서 하고 싶으면 1066년 파플라고니아 공작을 추천. 아직 10살이라 키우는 맛이 있다? 이건 너무 어렵다 싶으면 능력치가 완성된 1072년 파플라고니아 공작을 해보자.
- 기타
봉신 플레이는 아무래도 신성 로마 제국으로 하는 것이 좋은데 일단 왕권이 최하이기 때문에 자유로우며 신롬이 매우 강력하기에 같은 봉신들끼리가 아니고서는 공격받을 일도 거의 없다. 장점이자 단점으로는 선거제가 꼽히는데 독일인 가문으로 어느정도 세력을 키우면 카이저(황제)가 되기 쉽고 그 시점에서 사실상 최강이 된다. 적어도 이 게임에서는 신롬 성립 이후 시나리오에서 신롬의 국력은 기독교권 세력중에 최강이다. 비잔틴보다도 강하고, 프랑스 따위는 그냥 샌드백이다.(크킹에서는 프랑스 대우가 참으로 나쁘다... 강한 프랑스를 원하면 유로파를 하자. 물론 유저가 잡으면 이야기는 다르다.)[134] 그 외 국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단점이 될 수 있는 점은 황제로 추대되었을 시 거부권 따위는 없다는 것. 황제가 되기 싫어도 되어야 한다. 신롬의 황제추대에는 플레이어 버프가 있지 않냐는 말도 나올 정도. 재수없으면(?) 직할령 1~2개를 가진 황제가 될 수도 있다.
반면에 비잔티움의 봉신은 난이도가 높다. 끽해야 일개 백작, 공작이 이슬람권을 상대로 성전을 일으킬 수도 없고 이마저도 영토가 붙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성전으로 세력을 넓히기는 힘들다. 오히려 성전을 얻어맞고 게임 오버될 확률도 있다. 게다가 비잔티움의 공작은 처음부터 지방관령이라 세습제가 아니다. 플레이어가 죽으면 황제가 회수해가는데 클레임이 있는 후손들에게 다시 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단은 세력을 키우고, 지지를 얻어 황제 선거에 승리해 상황을 봐서 제위를 얻는 방식이 그나마 무난하다. 물론 성전이나 지하드를 얻어맞을 경우에는 구국의 영웅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싸워야 한다. 특히 전쟁대상이 본인의 영지면 게임오버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1차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기사단을 갖고 시작하는 가톨릭과 달리, 정교회는 기사단을 만드려면 안티오크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지역 종교를 정교회로 개종시켜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합성론파 기사단도 비슷하다). 그리고 비잔티움 봉신은 하반신의 막대기를 잘리거나 눈깔이 뽑힐 수 있는 위험이 있다.
9. 크루세이더 킹즈 2/시나리오별 가장 오래된 가문
데이터 베이스 파일을 Python 언어로 검색해서 얻은 리스트이다.크루세이더 킹즈 2/시나리오별 가장 오래된 가문
10. 크루세이더 킹즈 2/고유문장이 있는 가문
종교를 바꾸는 플레이를 할 경우 기존의 문장이 사라져서 멘탈이 붕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고유문장이 있는 가문을 하는 편이 좋다. 또 고유문장이 있는 가문은 유명한 가문이라서 역사책이나 위키에서 찾아서 공부하는 재미도 있다.크루세이더 킹즈 2/고유문장이 있는 가문
11. 이스터 에그
- 1066, 얀바랄란드의 재상 요한 안데르손
이 게임을 비롯해 유로파 시리즈, 호이 시리즈 등의 제작에 참가한 패러독스 사의 게임 개발자로 이스터에그 삼아서 현실의 패러독스 사가 위치한 지역에 가신으로 등장한다. 작위가 없고 일개 가신이라서 플레이하려면 영지를 줘야 한다. 영재 트레잇을 가지는 등 능력치가 무력 빼고는 평균 15 정도로 높다.
- 1066, 아스퍼그의 남작 한스 아스퍼거
뷔르템베르크 백작령 아래의 아스퍼그 남작령을 다스리는 남작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발견한 한스 아스퍼거 박사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영재, 학자, 냉소적, 직설적, 내성적, 피해망상 트레잇을 고정적으로 갖고 있는 등 트레잇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아스퍼거 증후군의 이미지. 남작이라서 플레이를 하려면 백작령을 내려야 한다.
- 769, 카르갈리크의 마르조반 젱 주
푸 만추 캐릭터를 모티브로 인물. 푸 만추의 특징인 염소 수염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고 다른 능력치는 별로지만 본인과 아들의 무력이 높아서 할만하다. 다른 이스터 에그 캐릭터들과 달리 백작이라 바로 플레이 가능. 가문 문장이 판다 얼굴 모양이라서 문장 때문에 선택되기도 한다.
12. 기타
- 769, Khotan 돈황의 백작 Tiande Saua(안서도호부, 당나라)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중국 세력.[135] 안서와 돈황은 당나라 시절 안서도호부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755년 안사의 난이 발생하면서 쇠퇴하고 790년에는 토번이 차지하면서 안서도호부는 사라진다. 위키 등을 참조해보면 이 때 지배자는 곽흔이 되어야 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Tiande가 지배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는 당나라 휘하의 세력이 확실하다. 문화는 거란족(Khitan)이지만 봉건제에 불교도라 유목민 플레이는 할 수 없다. DLC 이후 Tiande Saua는 사라졌고 769년의 안서도호였던 곽흔(궈신 Guo Xin)바이두위키피디아 안서도호부 목록이 구현됐다.
당나라 역사를 잘 아는 플레이어라면 룰러 디자이너로 당대 유명한 장군을 만들어서 대체해도 될 것이다.
- 769년 준빌 사트라피의 사트라프(자불리스탄 공작) 지모푸타 준빌
준교를 믿는 준빌 가문. 게임상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준교라는 독특한 종교를 믿는 가문이다. 준이라는 태양신을 숭배한다. 보통 이슬람교 혹은 힌두교 세력의 성전으로 잦은 침공을 받기 때문에 신앙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마이너한 종교 플레이를 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 867년 주취안 백작령의 장의조(張義朝, Zhang Yichao)
장의조는 당나라 말기에 하서회랑 주변을 차지한 귀의군 절도사였고 장안으로 상경한 후 872년에 죽었다. 게임에서도 60대로 고령이며 시작하고 몇 년 안에 아들인 장회심(張淮深, Zhang Huaishen)이 물려받기에 둘 다 결혼시켜서 후사를 봐야 한다. 귀의군은 중국 본토와 떨어져 고립된 상태에서 독립국으로 이어졌고, 조의진(曹議金, Cao Yijin)이 오대십국시대인 914년에 장의조의 후손인 장승봉으로부터 통치권을 빼앗은 후 조씨 가문이 다스리다가 1035년에 서하에게 멸망했다. 그래서 1066년 시나리오부터는 한족 독립 세력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게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마지막 한족 세력이었으나 936년 시나리오에서 추가된 조원덕이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마지막 한족 세력으로 바뀌었다.[136]
- 1072, 아나톨리아 할시아논의 공작 루셀 드 바이율
비잔틴의 노르만 용병 대장이다. 비잔틴 황제 로마누스 4세가 만지케르트에서 셀주크 투르크에 패배하자 반란을 일으켰다. 비잔틴에서 루셀의 반란을 제압했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투르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투르크는 루셀을 제압한 후 소아시아에 룸 술탄국을 세운다. 동쪽에는 셀주크 투르크, 서쪽에는 약했졌다고 하지만 비잔틴 제국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남쪽 공작령 소아르메니아에는 팔라부니 가문 백작과 바그라타오니 가문 백작(전 아르메니아왕 가기크 2세)이 있다. 1204년 라틴 제국 시나리오 전에 아나톨리아에서 가톨릭 세력을 플레이하려면 루셀을 골라야 한다.
- 1150년 툴루즈 공작 레이몬드
프랑스 남부를 호령하던 대귀족 툴루즈 가문이다.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여 트리폴리 백국을 세운 레몽 4세도 이 가문 출신이다. 1150년 시점의 툴루즈 공작 레이몬드는 레몽 5세라고도 하는데 레몽 4세의 손자이다. 이 시점에서 레이몬드는 막 성인이 되었으며 그의 영지인 툴루즈 일대는 가톨릭 이단인 카타리파가 번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별개의 교황을 가지는 프라티첼리 말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다른 가톨릭 이단들과 달리 카타리파는 교황은 없지만 관용 기술 레벨과 무관하게 남녀평등 상속제를 실시할 수 있고 여성도 사제, 자문위원, 군사지휘관이 될 수 있어서 능력치 좋은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상 게임 내에서 가장 개성적인 이단이기 때문에 이단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단이다. 때문에 카타리파로 개종해서 이단 플레이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 원역사에서는 남프랑스의 영주들은 교황의 파문을 두려워하여 카타리파로 개종하진 않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카타리파를 보호했는데,특히 레몽 6세가 유명했다. 그는 카타리파가 아니라 정통 가톨릭 신자였지만 카타리파를 보호했으며 교황청의 원복 시도에 일절 협조하지 않았다. 결국 카타리파를 소탕하기 위해 알비 십자군이 결성되자 레몽 6세와 그의 아들 레몽 7세는 반 십자군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 알비 십자군은 비교적 순조롭게 성과를 거두어 남프랑스의 영지와 도시는 차례차례 점령되었고, 카타리파는 각지에서 학살, 처형되었다. 1209년 말에는 난공불락의 요새 카르카손까지 함락되었다. 이에 레몽 6세는 아들 레몽 7세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다가 이후 점령군의 폭정 때문에 민심이 악화되자 다시 영국에서 돌아와 툴루즈를 회복하고 일시적으로 세력을 확대하기도 했지만 레몽 6세가 죽은 뒤 레몽 7세 시기에 완전히 패배하였다. 1228년, 툴루즈가 완전히 함락되고 레몽 7세가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 항복하였다. 툴루즈 백작령의 항복으로 카타리파를 비호하는 세속 영주들은 완전히 사라졌고 1229년부터 카타리파에 대한 종교재판이 실시되었다. 붙잡힌 카타리파 지도자들은 종교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영주에게 인도되어 처형되었다. 마지막 남은 카타리파의 거점은 산악 지역에 있는 몽세귀르(Montségur)의 산성 요새였다. 카타리파는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마지막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다 1244년 3월 16일, 십자군은 바스크 산악지대 출신의 병사들을 고용하여 요새를 함락시켰고 농성하던 카타리파 신도 2백 명 이상은 화형에 처해졌다. 실제 게임상으로도 툴루즈 일대에 있던 카타리파들은 1244년 3월 16일을 기점으로 소멸한다. - 1204년 피사 공화국 궁정의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피보나치 수열로 유명한 그 사람.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소개했다. 천재, 박식, 학자 트레잇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하려면 영지를 줘야 한다.
- 1241년 일 칸국 궁정의 보르지긴 쿠투그 베키(쿠틀룩켈미시, 제국대장공주)
Jade Dragon DLC 이전에는 같은 연도에 몽골리아 칸국의 궁정에 있었지만 이후 오고타이가 중국의 원나라 황제로 NPC화 되면서 일 칸국 궁정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가 등장하지 않아서 충렬왕과 결혼시키는 역사적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steamapps/common/Crusader Kings II/history/mongol.txt에서 Daughter of Kublai Khan, mother of Chungseon of Korea라는 설명이 있다.
- 1256년 1월 28일~1271년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독일왕 리처드 플랜타저넷
유일한 외국인 출신이자 비 독일계 신성로마 황제[137], 이 시기는 대공위 시대이고 이 자는 그저 독일왕이라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는 아니나 여기서는 대립 황제 설정이 없기에 그저 황제로 들어와 있다. 다만 타 국가 출신 황제라 영토는 콘웰지역과 독일 중앙의 영토 하나뿐이다. 아들인 헨리 플랜타저넷에게 영토를 주어 독일에서 영향권을 넓히며 세력을 넓힌 뒤 다시한번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직위를 노리는 게 낫다. 아니면 형과 동맹하여 제후의 반란에 대비하자. - 1299년 불가리아 왕국의 보르지긴 차카
차카는 금장한국 노가이 칸의 아들이며 불가리아 왕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의 사위였다. 금장한국에서 일어난 내전에서 패하자 불가리아로 도주해 당시 불가리아 국왕이었던 이반 2세를 내쫓고 왕위에 올랐지만, 토도르 스베토슬라프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암살당했다. 게임에서는 주변 세력은 모두 정교회를 믿는데 차카만 텡그리를 믿으며, 개혁하려고 해도 텡그리 성지는 동쪽으로 쭉 늘어선데다가 홀딩을 따로 만들어야 해서 그냥 정교회로 개종하는 게 낫다.
- 1320년 라벤나 백작 궁정의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을 쓴것으로 유명한 작가. 천재, 시인, 박식 트레잇이 있다. 1300년도 초까지는 피렌체에 있으며 플레이하려면 영지를 새로 분봉해야 한다.
- 1337년 보르지긴 부다시리(노국대장공주)
마지막 시나리오에 등장한 정말 의외의 인물. 6살로 등장한다. 고려가 등장하지 않기에 공민왕과 결혼시키는 역사적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거기다 원나라가 유목정으로 되어있어서 작위를 주고 플레이 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지만 매우 까다롭다. 이전에는 몽골리아 칸국의 궁정에 있었지만 Jade Dragon DLC에서는 토곤 테무르가 중국의 원나라 황제로 NPC화되면서 차가타이 칸국의 바미안 백작령의 궁정에서 찾을 수 있었으며, 철의 세기 패치 직후에는 킵차크 칸국의 봉신인 샤루칸 백작령의 가신으로 있다. 공민왕과 결혼시키고 싶다면 동아시아 모드를 깔자.
- 1337년 나폴리 왕국 궁정의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으로 유명한 시인이며 시인, 천재, 학자, 야심가 트레잇이 있다. 플레이하려면 영지를 분봉하고 콘솔 또는 재시작 후 세이브 파일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로 선택해야 한다.
- 1337년 교황령 궁정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였던 시인이며 보카치오처럼 시인, 천재, 학자, 야심가 트레잇이 있다., 교황은 플레이할 수 없으므로 페트라르카로 플레이하려면 다른 영주로 초대한 다음 영지를 분봉해야 한다.
13. Monarch's Journey
이전에 있었던 브론즈맨 챌린지에 2019년 10월 패치로 보상이 추가된 컨텐츠. 2주마다 한명씩 제시되는 캐릭터로 도전과제를 달성하면 점수에 따라 추후에 나올 크루세이더 킹즈 3의 치장품을 받을 수 있다.- 1066년 브르타뉴의 소 왕 코난 2세
- Time Bending : 코난이나 그 후손으로 다음 프로빈스 중 10/12/15개를 차지하라.
- Cornwall 공작령의 Cornwall, Devon
- Brittany 공작령의 Léon, Poher, Kernev(Cornouaille), Broërec(Vannes)
- Penthievre(Penteur) 공작령의 Tregor, Domnonea(Penthievre)
- Upper Brittany 공작령의 Roazhon(Rennes), Naoned(Nantes), Retz
- Normandy 공작령의 Mortain, Caen
- Anjou 공작령의 Maine, Anjou
- Gloves Come Off! : 코난으로 아들을 2/3/5명 가지라. 사생아는 안되지만 정통 서자는 가능.
- Pre-Emptive Self-Defence : 코난이나 그 후손으로 de Normandie(윌리엄 1세)의 가문원을 3/5/7명 살해하라. 정복왕 윌리엄을 죽이면 2점.
- 1195년 귀네드의 소 왕 '위대한' 허웰린
- Dragon's Fire : 허웰린이나 그 후손으로 다음 프로빈스를 모두 차지하라.
- Gwynedd 공작령의 Anglesay, Perfeddwlad, Rhos(Gwynedd), Ceredigion
- Powys 공작령의 Powys, Builth
- Deheubarth 공작령의 Dyfed, Gwyr(gower)
- Gwent 공작령의 Glywysing(Glamorgan), Gwent, Brycheiniog(Breconshire)
- Princes of Wales : 허웰린이나 그 남자 후손으로 독립국, Wales 왕국 작위를 소유한 상태로 공작 이상의 가문원 봉신을 3/6/9명 가지라.
- Love Spoons : 허웰린으로 2/3/4명의 자식을 작위나 명분을 가지고 있는 잉글랜드인 문화 사람과 결혼시켜라.
- 1289년 바그다드의 만호장, 일 칸국의 재무관 사드 모데카이
- One of Us! : 사드나 그 후손이 자신은 유대교를 공개적으로 믿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문회를 공개적으로 유대교를 믿고 있으며, 직책에 해당하는 능력치가 10 이상인 자문위원 2/3/4명으로 채워라.
- Peace! : 사드나 그 후손이 자신과 다른 종교를 공개적으로 믿으면서 관계도가 60 이상인 봉신을 5/8/12명 갖게 하라.
- Secret stays with Me : 사드가 공개적으로 수니파 이슬람, 비밀리에 유대교를 믿고 있는 상태로 수니파 이슬람이나 몽골인 문화 인물을 6/10/16명 살해하라.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면서 몽골인 문화 인물이라면 2점으로 계산.
- 1108년 사모스의 스트라테고스 콘스탄티노스 앙겔로스
- Moving up : 콘스탄티노스나 그 후손이 왕국 작위를 2/3/4개 소유하게 하라.
- Lovely Rule! : 콘스탄티노스나 그 후손의 가문 점수가 5000/10000/15000점 이상이 되게 하라.
- Kon Once, Kon Twice... : 콘스탄티노스로 자식을 3/7/10명 가져라.
- 867년 아키텐의 왕 '말더듬이' 루이 2세 위키백과
- French Toast! : 루이나 그 후손이 아키텐 왕국과 프랑스 왕국의 데 쥬레를 완전히 소유한 채로 프랑크 제국을 만들어라.
- His Unfulfilled Dream : 루이 2세로 게르만 신화를 믿는 캐릭터를 4/7/10명 살해하라. 개혁된 게르만 신화도 포함. 다음 트레잇을 가지고 있는 노르드인 문화 캐릭터는 2점.
- 바이킹, 약탈자, 해왕, 방패여전사, 광전사
- Why Don't You like Me? : 루이 2세로 4/6/8명의 봉신 공작이 관계도가 +65 이상이 되게 하라.
- 1250년 이집트의 여왕 샤쟈르 알 두르 위키백과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보기 드문 여성 이슬람 지배자이며[138] 남편은 아이유브 왕조의 7대 술탄 살리흐다. 제7차 십자군과 전쟁 중에 남편이 사망하자 군대의 동요를 막기 위해 남편이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지휘를 했다. 후에 맘루크 왕조 첫번째 술탄 무이즈 아이바크와 결혼하고 술탄위를 넘겨준다. 하지만 후계자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모딩을 통해 종교 특성을 바꾸거나 개종을 해야 하는데 이슬람은 모계 계승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론즈맨으로 도전한다면 모딩이 불가능하기에 초반에 아이바크를 암살한 뒤 기독교 계열로 개종 후 모계결혼을 하거나[139], 이슬람을 유지할 경우 황은 1000을 모아서[140] 보르지긴 황족과 결혼하면 모계결혼이 된다. 친척으로 구현된[141] 칼라운과 결혼하고 칼라운도 다른 부인을 들여서 장성한 아들을 최대한 많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안정화만 성공한다면 시작시 세력이 강대하므로 쉬워진다.
- Heiroglyphics! : 샤자르나 그 후손으로 가문원이 80명 이상 되게 하라.
- Tutan Kha-Doom! : 샤자르로 작위를 가진 다른 가문의 캐릭터를 3/4/5명 살해하라.
- Don't Stop Me Now! : 샤자르나 그 후손으로 여왕 작위를 2/3/4개 획득하라.
- 1278년 크로아티아의 공작 파바오 수비치
- Conquerer from Bribir! : 파바오나 그 후손이 세르비아 왕국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훔 공작 작위를 차지하고 데 쥬레를 완전히 통치하라.
- Established : 파바오로 4/6/8명의 가문원이 영지를 갖게 하라.
- Subic-Stantial Legacy : 파바오나 그 후손으로 불가사의를 1/2/3개 건설하라.
- 1074년 예멘의 술타나 아르와 알 술라이히 위키백과
- Long Live the Queen! : 아르와나 그 후손으로 100년 이상 예멘 왕국 데 쥬레를 완전히 통치하라.
- God's Will Be Done : 아르와로 사원을 5/8/12개 건설하라.
- Dawn of a New Da'is! : 아르와로 힌두교도를 시아파로 2/4/6명 개종시켜라.
- 1066년 노르웨이의 왕 하랄 하르드라다 위키백과
- Harder Than Steel : 하랄이나 그 후손으로 노르웨이와 잉글랜드의 왕 작위를 차지하고 데 쥬레를 완전히 통치하라.
- Hide the Pain, Harold... : 하랄이나 그 후손으로 Godwin(해럴드 2세)의 가문원을 5/10/15명 살해하라.
- With an Iron Fist : 하랄이나 그 후손으로 반란을 4/8/12회 진압하라.
- 1226년 아르메니아의 왕 헤툼 1세
- Not-So-Little Armenia : 헤툼이나 그 후손으로 영역 크기를 8개로 만들어라.
- Keep Your Friends Close... : 헤툼이나 그 후손으로 3/6/9명의 몽골 문화 캐릭터와 관계도를 60 이상으로 만들어라.
- We Will Not Submit : 헤툼이나 그 후손으로 25/50/75년 이상 왕국을 독립 상태로 유지하라.
- 1173년 보스니아의 둑스 쿨린 쿨리니치
- Not-So Landlocked : 쿨린이나 그 후손으로 보스니아 왕국의 독립 군주가 되어라.
- Heretical Company : 쿨린이나 그 후손으로 6/9/12명의 이단 가신을 궁정에 모아라. 죄수는 제외.
- Celebrating Our Indepedence Day! : 쿨린이나 그 후손으로 4/8/12년 동안 평화, 독립을 유지하라.
- 1066년 요 카간국의 카간 야율홍기 위키백과
- Lavish Spending : 야율홍기나 그 후손으로 불교 사원을 4/8/12개 건설하라.
- Land Mass! : 야율홍기나 그 후손으로 유목정으로 100/150/200개의 프로빈스를 다스려라.
- Clanky! : 야율홍기나 그 후손으로 2/3/4개 클랜과의 씨족 정서를 60 이상으로 높여라.
- 1310년 왈라키아의 왕 바사라브 1세 위키백과
- Voivodes of Wallachia : 바사라브나 그 후손으로 3/6/9명 이상의 가문원을 봉신 공작으로 만들어라.
- So Much at Stake : 바사라브나 그 후손으로 고문기술자 트레잇을 가진 채 3/6/10명을 살해하라.
- Castle Mania : 영역 내에 성 남작령 및 궁전을 4/8/12개 보유하라.
- 1236년 리투아니아의 대족장 민다우가스
- A christian King : 민다우가스나 그 후손이 리투아니아 왕국 작위를 획득, 데 쥬레를 완전히 지배, 카톨릭을 믿고 교황에게 대관을 받으라.
- True Faith : 민다우가스나 그 후손으로 카톨릭을 믿는 프로빈스가 4/6/8개가 되게 하라.
- Writing History : 민다우가스나 그 후손으로 대도서관 불가사의를 건설하고 내부에 부속 전집을 2/3/4개 지어라.
- 1066년 고틀란드의 그랜드 메이어 봇스테인
- Aegir's Island! : 봇스테인이나 그 후손으로 가문 저택을 끝까지 업그레이드 하고 영역 내에 최소 20개의 도시를 보유하면서 고틀란드를 수도로 하는 왕국급 독립 공화국을 세워라.
- Embargo! : 봇스테인으로 무역 기지를 3/4/5개 건설하라
- Trading Cities : 봇스테인이나 그 후손으로 고틀란드의 무역 기지 합계가 20/40/60개 이상이 되게 하라.
- 1196년 세르비아의 왕 스테판 네마니치
- Saint-king : 스테판이나 그 후손으로 성인 혈통을 만들어라.
- The First of Many : 스테판이나 그 후손으로 2/4/6개의 왕 작위를 보유하라.
- God is Good to Me : 스테판이나 그 후손으로 가문원 2/3/4명이 시복 또는 시성이 되게 하라.
[1] 아마도 사카족들이 힌두교의 전신이 된 종교들 중의 하나인 브라만교를 믿었던 것을 고증한 듯하다.[2] 인도로 진출한 에프탈의 일파라고 알려진 유목민[3] 그러나 나이가 좀 있으므로 그냥 딸을 이혼시키고 새로 모계결혼 시키는 것이 좋다.[4] 게임 시스템상 카롤링거 가문 이외의 인물이 왕위에 등극하면 서프랑크는 프랑스로 개칭된다.[5] 수도사 트레잇 때문에 다른 가신들처럼 작위 주고 바로 플레이하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왕위를 얻으면 자동으로 수도사 트레잇이 제거되기에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결혼도 하고 왕 노릇을 할 수 있다.[6] 서/동로마 분열 이전[7] 다른 하나는 후술할 867년의 피우스 가문[8] 전승에 따르면 카를 마르텔과 함께 무슬림의 침공을 막는 전쟁에서 활약했다고 한다.[9] 다만 그라녀는 게임 내에 구현되어 있지는 않다.[10] 스코틀랜드 왕가[11] 아버지가 죽은 이후 20년이 지난 후에 태어난 유복자...? 라기 보단 형으로 구현된 자의 아들로 보인다.[12] 서/동로마 분열 이전[13] 다른 하나는 상술한 769년의 살비우스 가문[14] 옵션에서 Generate Families를 켜 뒀다면 다비트가 결혼한 상태로 게임이 시작되며, 플레이어가 맡은 타마르가 유리와 이혼하려고 신앙 125를 모을 동안 다비트가 결혼할 가능성도 있다.[15] 게임에서도 디시전으로 이것을 구현할 수 있다.[16] 노르만 정복 이전[17] 노르만 정복 이후[18] 멕베스에서 나온 말콤 왕자가 바로 이 사람이다.[19] 분가의 경우는 이바링 가문의 분가로 Llywel 가문과 Crovan 가문이 있으며, 할프단의 가문 Hvitserk의 분가로 de Guines 가문이 있고 그 de Guines 가문의 분가로 le Blount 가문이 있으며, 아프 문쇠 가문의 분가로 Estrid 가문이 있다.[20] 스템퍼드브리지 말고 그 다음 시나리오인 정복왕 윌리엄을 하면 노를란드의 에리크 아프 문쇠와 스웨덴의 왕 에리크 스텐킬이 '두 에릭의 전쟁'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미리 준비해둘 수도 없으니 더 힘들다. 사실상 불가능.[21] 승리왕 에리크 이전의 북유럽 역사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기에 이 설도 논란이 있다. 같은 일족이라는 것에 대해선 신빙성이 높다지만...애초에 시구르드 링은 워투스를 물리치고 스웨덴의 왕이 된 인물이다. 사실 이 둘이 벌인 전쟁은 워투스가 발할라에 가기 위해 일부러 죽으려고 벌인 계승의식 성격이 강하지만...크킹에서는 하랄드 워투스가 인근의 다른 부족의 왕으로 설정되어 있어 게임상으로는 혈연관계가 없다.[22] 처음에는 라그나르 시구르드손으로 나오는데 이벤트를 통해 라그나르 로드보르크로 개명된다.[23] 이 방계 가문은 본가가 멸족한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 생존하여 1066년 시점에도 플레이가 가능하다.[24] 이 시점의 인물이 바츨라프 3세인데 그러나 원역사에서는 거의 한세트로 취급받던 크로아티아 왕위는 갖고 있지 않으며 보헤미아, 폴란드 왕위는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어 물려받아야 한다. 1305.12.6에 비텔스바흐 가문에게 헝가리를 뺏기므로 1305.6.21~1305.12.5의 매우 짧은 기간에만 보헤미아, 폴란드, 헝가리 삼국의 왕위를 모두 갖고 있다.[25] 따라서 936년 시나리오부터 이 가문으로 크로아티아 국왕 플레이가 가능하다.[26] 6대조로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를 말한다.[27] 아직 노르망디에 가지도 않았는데 드 노르망디로 만들어놓은 게 너무 작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들인듯 하다. 이것 말고도 아직 노르만인이 가지 않았음에도 공작령 이름이 노르망디 라던지, 나중에 시칠리아 왕국을 먹는 노르망디 출신 오트빌(Huetvile) 가문의 문장이 미리 이탈리아 남부 공작과 백작령 문장에 반영돼있는 등등 게임의 한계상 어쩔 수 없는 문제는 많다.[28] 게임에서는 사탄의 아들 이벤트가 있는 점에서 흥미롭다.[29] 팔 씨름 잘하는[30] 게임 상에서 이 보두앵에게는 그것이 이름 그 자체가 되다 보니 따로 별명이 붙어있진 않으나 대담한 자라는 별명이 존재한다.[31] 상술하였듯, '팔씨름 잘하는 대담한 녀석'이라는 뜻. 오늘날에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초로 성씨와 이름이 탄생할 때는 다 이런 식이었다. 즉, 개인의 특성이나 별명, 혹은 그 개인에게 기원하는 바를 따라서 본명을 짓고, 연고지나 조상 및 가문의 특성(명망있는 선조 이름 그자체도 포함)을 따라서 성명을 지었는데, 후대에는 본래 어감이나 뜻이 일상에서는 거의 잊힌 채 이어져 오는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면은 오늘날에도 사람이 태어나고 작명하는 순간에만큼은 여전히 고려되는 편이다.[32] 실제로 게임상 가장 금싸라기 땅이다.[33] 후에 아르눌의 남계가 전멸하자 모계로 아델로프 계열이 플란데런도 차지하게 된다.[34] 사실, 유럽의 유명한 가문 중 상당수는 창시자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 게임상에서는 이런 겹치는 이름이 드물지 않다. 보종 보종이나 류릭 루리코비치같이.[35] 심하면 아르파드의 아버지 알모시가 그냥 헝가리를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36] 학계에서는 두카스란 성을 가진 가문이 세 개 존재했다고 추측한다.[37] 다만 현재 사보이아 가문은 피에트로 1세가 아니라 동생 아메데오 2세의 후손이다.[38] 해당 시나리오의 Strathclyde 공작령 Clydesdale의 백작 로버트가 이에 해당하며 해당 시점의 스코틀랜드의 왕 다비드 2세의 후계자로 실제 역사에서도 로버트 2세로 즉위하여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를 개창한다.[39] 스테파노 2세, 바오로 1세, 첼레스티노 3세, 니콜라오 3세[40] 다만, 영국 왕실은 부계의 혈통과 관계없이 윈저 왕조를 왕조 명으로 고수한다.[41] 튀링겐의 마지막 변경백이었던 하인리히 라스페가 후사 없이 죽으면서 하인리히 라스페의 외조카였던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와 조카딸 튀링겐의 조피가 서로 상속권을 주장하며 전쟁을 벌였는데 튀링겐은 결국 하인리히 3세가 가져가고 일부를 조피에게 떼주면서 탄생한 곳이 헤센이다. 헤센과 튀링겐은 한 뿌리인 셈.[42] 원래 안할트를 통치하던 가문으로 동방식민운동으로 브란덴부르크를 손에 넣었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가 하인리히 사자공을 추방하면서 작센 공국을 해체할 때 작센 공작 칭호를 주워 작센 공작까지 되었다.[43] 그러나 오늘날 불가리아와 포르투갈은 공화국으로 전환되어 왕정이 폐지되었고 영국과 벨기에는 각각 윈저 왕조, 벨기에 왕조로 가문명을 바꾸었다. 그리고 윈저 왕조는 찰스 3세의 즉위로 왕조 명만 유지할뿐 사실상 왕조가 글뤽스부르크 왕조로 교체되었다.[44] 로베르의 아들 앙리의 아들이 바로 이 엔히크이다. 게임 시점인 1066년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게임상 엔히크는 1069년에 태어난다.[45] 즉, 로베르의 증손자[46] 보르고냐 왕조의 서자 출신이 세운 것이 아비스 왕조이고 아비스 왕조의 서자 출신이 세운 것이 브라간사 왕조이기 때문[47] 폴란드에서는 스테판 바토리[48] 963년부터 1135년까지 룩셈부르크를 지배한 가문과는 다른 가문이다. 그래서 이름과 성씨 사이에 그쪽은 von을 쓰고 이쪽은 de를 쓴다.[49] 작위 히스토리상으로는 재위기간이 1308.5.1~1313.8.24이지만 실제로는 1313.1.2에 죽는데 때문에 그 사이 기간인 1313.1.2~1313.8.23에 플레이할 경우에는 그의 아들 요한이 자동적으로 상속받는다.[50] 체코어로는 '얀 루쳄부르스키'이며 별명은 '맹인'이다. 훗날 리투아니아 십자군 원정 때 병으로 눈이 멀어, 크레시 전투에서 전사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앞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플레이 가능하다.[51] 왜냐하면, 지기스문트의 사위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알브레히트 2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기스문트 본인도 이복 형 바츨라프 4세가 있어 적장자는 아니었고, 카를 4세의 두 아들 바츨라프 4세와 지기스문트 말고도 방계 가문은 많았다.[52] 조피는 브라반트 공작 앙리 2세의 두번째 부인이었기 때문에 첫번째 부인의 아들 앙리 3세가 브라반트 공국을 상속받을 예정이어서 자신의 아들을 위한 상속분을 주장했다.[53]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도 모계쪽으로 가면 헤센 대공가의 후손이다.[54] 촐레른 남작령이 있는 백작령이며 슈바벤 공작령에 있다.[55] 어디까지나 직계 남계만 단절 됐을 뿐 방계는 현대까지 쭉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그러한 경우. 한니발 렉터가 그를 모델로 했다는 풍문이 있는데 그래서 원작소설에서는 그가 비스콘티가의 피를 이어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56] 게임에서는 요가일라는 구현이 되지 않았으나 안드레이와 켕스투티스는 구현되어 있다.[57] 헝가리의 왕 러요시 1세[58] 1352년생 설을 기준으로 한 나이. 참고로 재혼이 아니며 이 나이가 되도록 미혼이었다.[59] 이 당시 불과 13세,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경악스러우나 이 당시에는 정략결혼으로 조혼도 흔했다.[60] 요가일라를 폴란드어로 읽으면 야기에우워(Jagiełło)가 된다.[61] 라틴 제국의 테살로니카 왕국을 통치한 가문이기도 하며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도 배출한 가문이다.[62] 동로마는 황제의 사위 자격으로 계승한 경우도 종종 있고 콤네노스 왕조 이후로는 귀족 가문들이 혼맥으로 얽혀서 사실상 한집안이 되어버렸다. 팔레올로고스 왕조 또한 혈통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알렉시오스 1세까지 나오게 된다.[63] 다만 옥의 티가 존재하는데 부르봉 가문의 문장은 랜덤 문장으로 원래 부르봉의 고유 문장은 엉뚱하게도 11세기 부르봉 백작이 가지고 있다.[64] 1974년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폐위, 유폐되어 그 다음해 사망함. 덩달아 제정이 폐지되고 공산화되어 황족과 반대파들은 모두 숙청당하거나 추방당해 90년대에 들어서서야 겨우 귀국할 수 있었음.[65] 족보상으로는 선조가 Degna 1세로 나온다.[66] 일설엔 마케다 혹은 빌키스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림.[67] 그래서인지 게임에서는 시대에 상관없이 악숨 공작령의 가신이 성궤를 소유하고 있다.[68] 그레이엄 핸콕은 이 전승을 믿고 성궤가 에티오피아로 옮겨졌고 특히 나일강 하류의 엘레판틴이라는 섬에 유대인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핸콕은 이를 근거로 예루살렘에서 엘레판틴섬으로 성궤가 옮겨졌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현재는 에티오피아의 오래된 도시 악숨의 교회당에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악숨에 성궤가 있다고 굳게 믿고 매년 성궤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성궤가 숨겨져 있다는 교회당 안에 들어가본 적이 없을 뿐더러, 저 전설도 실증된 역사나 다른 역사 기록들과 교차 검증되지 않는다.[69] 물론 오리엔트 정교회를 믿고 있으니 유대교로 개종할 필요가 있다. 근방에 유대교를 믿는 Gideon 가문이 있으니 이를 노려보자.[70] 참고로 1300년 1월 2일부터 왈라키아의 공작인 그의 아버지 Tihomir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71] 단 1세의 아들 중 블라드가 먼저 있었기에 1세가 아닌 2세이다.[72] 단, 카를 5세는 트라스타마라 가문이 아닌 합스부르크 가문이다.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는 둘다 트라스타마라가 가문이며 둘은 부부이면서 동시에 친척관계였다. 둘의 딸인 후아나가 합스부르크 가문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펠리페 1세와 결혼해 낳은 자식이 바로 카를 5세인 것.[73] 즉 스페인의 시작인 것이다. 이전까지는 설사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왕위를 모두 갖고 있더라도 동군연합으로 각각의 왕국이 공동의 군주를 모시는 것일 뿐이었다.[74] 무함마드의 얼굴을 묘사하면 안된다는 이슬람의 율법을 존중하여 게임상에서 무함마드는 포트레잇이 표시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다.[75] 카를로만 사망 이벤트 후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이탈리아로 망명가면 이탈리아 왕국에 대한 클레임이 생긴다. 단, 가끔 바이에른 왕국이나 아스투리아스왕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76] Hæsting, 혹은 헤스테인이라고도 불린다.[77] Dyre, 혹은 '이방인' 뒤레라고도 불린다.[78] 이전에는 유전 트레잇인 강인함(Strong)이 붙었으나 변경되었다. 그런데 정작 867년 시나리오로 죽은 라그나르를 살펴보면 여전히 건장이 아닌 강인함이 달려있고 아들들까지 물려받아 달고 있다.[79] 탕크마르는 작센 왕이 된다.[80] 아브라함의 자손 DLC설치, 순결파와 메살리아파를 제외한 기독교 계열, 왕 또는 황제, 전쟁 중, 플레이어의 문화와 소속국가의 문화가 동일, 여성 완전 평등법 미제정, 바스크 등의 여성평등 문화권 제외, 플레이어 나이 16세 이상, 수감상태 제외, 3000월에 1번의 확률[81] 잔다르크의 이름과 인종은 플레이어의 문화에 따르므로 이름이 꼭 잔느가 아닐 수도 있고 흑인이 나올 수도 있다.[82] 플레이어 음모력 10 이상, 냉소적과 음란함 트레잇 소유[83] 그 경우 칭호가 처녀에서 대담한 자로 바뀐다.[84] 콘솔없이 하려면 몇가지 귀찮은 방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면 우선 잔다르크는 처음에 독신주의자 트레잇을 달고 있기에 이벤트나 유혹으로 때주어야하고 그 후 남녀평등법으로 작위를 부여해야 한다.[85] 3대 칼리프는 그의 아버지 알 마흐디, 4대 칼리프는 그의 형 알 하디이다.[86] 공식적인 통일왕국인 잉글랜드의 초대국왕은 알프레드 대왕이 아닌 그의 손자 애설스탠이다.[87] 독립 군주이고 해당 공작령이 속한 데 쥬레 왕국을 다스리는 왕도 없을 경우에 켈트나 북구, 앵글로섹슨 등 일부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호칭. 중세 초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후 시대의 왕국보다 훨씬 작지만 그래도 왕국을 자처하던 세력들을 구현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플레이 할 때는 소 왕으로 표현되지만, 시스템적으로는 공작위이다.[88] 7개: 콘스탄티노폴리스, 로마, 파리, 베네치아, 브뤼주, 프라하, 카이로, 바그다드, 이스파한, 라비(테헤란), 델리, 히바, 마라케시, 악숨, 칸야쿠비야, 락스마나바티(벵골), 라사, 네동, 촐라만다람.[89] 6개: 런던(Middlesex), 브라반트, 보르도, 툴루즈, 프로방스, 제노바, 팔레르모, 코펜하겐, 뤼베크, 크라쿠프, 블라디미르, 야로슬라블, 웁란드, 사라이, 트빌리시,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모술, 바스라, 예루살렘, 메카, 아덴, 무스카트, 사마르칸트, 니샤푸르, 길란, 니코메디아, 테살로니카, 밀라노, 피렌체, 바르셀로나, 코르도바, 그라나다, 알제, 탕헤르, 세비야, 튀니스, 페스, 할라브(알레포), 다마스커스, 라호르, 물탄, 데불(인더스 강 하구), 사라스바타 만달라, 마투라, 칸야쿠비야, 프라야가, 마가다, 가우다, 푸랑, 카슈미라, 우다반다, 타나, 고아, 나바사리카, 우자이니, 카타카, 스리랑가파트나, 이다타라이나두, 마호야다푸람, 마두라이, 알람푸르, 호탄, 코초(고창), 둔황.[90] 굳이 에릭이 아니라도 상관없지만 에릭은 처음부터 조건을 달성하기 쉽다.[91] 게임 속에서 가끔 '여우'라는 호칭을 단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기스카르 역시 그런 경우로 알고 넘어가기 쉽기 때문[92] 정교회 동로마로 동서교회를 정교회 중심으로 통합하면 가톨릭이 정교회의 이단이 되어 서로 성전을 걸 수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다.[93] 실제 역사에서도 시켈가이타는 그 무시무시한 노르만 기사들보다 훨씬 잘 싸웠다고 한다...[94] 예루살렘 왕국의 사실상의 초대왕이다. 사실상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그가 왕이 아닌 성묘의 수호자라 자청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왕 직위를 쓴 건 보두앵 1세때 부터이다.[95] 안티오키아 공국의 초대 공작[96] 트리폴리 백국의 초대 백작이다만, 그의 생전에 트리폴리를 점령하지는 못했다.(...)[97] 최초의 십자군 국가인 에데사 백국의 백작, 이후 예루살렘 국왕으로 즉위[98] 아데마르에 이은 교황 특사, 예루살렘 주교직을 수행함, 초대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는 아르눌프로 이 사람도 1099년 7월 15일로 설정하면 구현되어 있다.[99] 갈릴리 공작[100] 이와 관련해서 불로뉴 백작으로 시작해서 십자군에 참여해 예루살렘 왕위를 얻어 플레이하는 도전과제가 있다만 현실적으로 일개 백작으론 1등하기 쉽지 않다.(...) 애초에 1차 십자군은 왕들이 참여하지 않았다.[101] 게임에서는 이름이 하산이고 가문은 물크(Mulkid)로 뜬다.[102] 사자공의 아버지 오만공의 누나가 바르바로사의 어머니인 유디트 벨프[103] 사실 이 별명은 후대의 오스만 제국의 바바 우르지와 하이레딘도 사용한다.[104] 1134~1149년의 브엘세바 백작은 이 발리앙의 아버지인 이벨린의 바리장이다.[105] 1175년~1176년은 유년기인데 이때부터 시작하면 성년이 되어도 발병을 안한다.[106] 게임상에서 마샬은 사실상 지휘/통솔력을 뜻하니 적절하다고 볼 수도 있긴 하다. 이 정도면 S급에 약간 못미치는 정도. 하지만 리처드 1세의 지휘/통솔력은 잉글랜드 역사상 최상위권 급이다. 더 줘도 충분했지만 그냥 그렇게 하지 않은 듯.[107] 일명 앙주 제국이라고 불렸다.[108] 역사에서도 사실 거의 성공할 뻔 했다. 존 왕이 워낙 병크를 많이 저질러서.. 비록 결과적으로 실패했다지만 루이 8세 본인이 지휘한 전투에서는 단 한 번도 안 졌기 때문에 그 무공을 기리느라 사자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109] 아일랜드 Ossory의 여백작[110] 비슷한 문제로, 보르지긴 가문의 가계도를 열어보면 주치나 툴루이, 차가타이는 작위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대칸인 오고타이는 작위 없는 백수로 나온다. 오고타이의 영지는 유럽과는 하안참 떨어진 터라 생긴 문제였는데 이 문제는 호스로드 이후 해결됐다.[111] 쿠빌라이는 명목상 몽골제국 대칸이었다. 즉 다른 칸국이 왕급이어야 하고 쿠빌라이만 황제급이어야하지만 몽골의 여러칸국이 실질적으로 그지역에서 황제급 위력을 발휘했기에 고증을 무시한걸로 여겨진다. 그 후 옥룡에서 아리크부카와 카이두가 추가되었다.[112] 시나리오 북마크에서 원나라 황제는 1234년에 오고타이부터 대수를 센다.[113] 1220년 '몽골인들' 시나리오에서 알라 웃딘 무함마드는 시나리오 기본 선택인물 중 하나이지만, 몽골의 맛있는 먹이로 존재하는 상황이다. 몽골의 둠스택이 바로 밀려오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무함마드는 죽기직전의 몸상태이다.[114] 헨리 3세의 여동생인 앨리너 공주가 몽포르의 아내이다.[115] 1266.2.26 이후[116] 앙주-카페 가문, 그 이전의 예루살렘 왕위를 얻은 앙주 가문과는 별개이다. 앙주 공작위는 앙주 가문 이후로 플랜태저넷 왕조로 넘어갔다가 다시 카페 왕조를 거쳐 방계인 앙주-카페 가문으로 넘어갔다.[117] 역사상 런던에서 교수형을 받고 사지가 찢겨져 머리는 효수당하지만 게임상 그냥 자연사로 나온다.[118] 1066년 시나리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다만 Teviotdale 백작령 소속 남작이므로 직접 플레이하려면 백작령 영지를 따로 부여해야 한다.[119] 1321년에 죽었지만 게임에서는 러요시의 다른 형인 라슬로(1324~1329)와 달리 1337년 시점에서도 살아 있다.[120] 아우구스투스(B.C 63~A.D 14, 향년 75세)는 75-54=21, 티베리우스(B.C 42~A.D 37, 향년 79세)는 79-44=35.[121] 막상 네스토리우스파의 창시자인 네스토리우스는 정교회의 세계 총대주교 작위 히스토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름그대로 네스토리우스교를 믿는다.[122] 안티오키아의 초대 주교는 베드로이다.[123] 아바스 왕조 이전의 칼리프 들과 알 마문, 알 아민~알 무스타인, 알 무크타피~알 무크타디르, 알 카디르, 알 하캄 2세 이후 만 플레이 불가[124] charinfo 1을 켜면 692년에 잠깐 썼던 연호인 여의(如意/Rúyì)가 이름으로 나온다. 무후의 휘는 조[ruby(曌, ruby=Zhào)]로 즉위 후 이름 한자를 고쳤다.[125] 후당 황실은 Tang 가문으로 구현했고 이종가는 Tang Mo로 나온다. 생몰년도와 재위 기간, 게임의 작위 기록으로 이종가를 찾을 수 있다. 935년 시나리오의 중국은 고립주의/내전 상태에 놓였다.[126] 의종(추존) 이홍, 안정공주, 이현, 중종, 예종, 태평공주[127] 무순(武顺 Wu Shun, 한국부인으로 봉해짐), 무조(=무후), 무씨(무후 동생, 영국부인으로 봉해짐. 곽효신郭孝慎과 결혼함.)[128] 일반적으론 기사단은 플레이 하는 것이 불가능하나 콘솔 등을 이용하면 영지를 부여하고 플레이 하는 것이 가능하다.[129] 이 이름 자체가 수호전의 역어이다.[130] 사실 콘솔 등을 이용한다면 그들을 초대하여 영지를 부여하고 플레이 하는 것이 가능하다.[131] 왕국 평균이 무려 4.92나 된다. 이는 최고의 꿀땅 플랑드르가 포함된 프리지아 보다도 높다! 모든 영지가 바다에 접한 것은 덤. 봉신 제한이 생긴 후로는 왕국 크기도 작고 해서 수도로 삼기 괜찮은 지역이다.[132] 아니면 어차피 밑의 두 이슬람 국가는 처음부터 싸우고 있고 압바스는 십중팔구 주변의 이교도에게 성전을 걸기 때문에 그 틈을 타 초반 이벤트 병력을 이용해서 성전으로 히바 공작령을 먹어버리고 시작할 수도 있다.[133] 정작 이 시점에서는 알렉시아스의 저자인 안나 콤니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딸을 낳고 이름을 안나라고 하는 것으로 구현은 가능하다.[134] 사실 프랑스는 양질의 영지를 가진 상당한 강국이지만, 신롬에 밀리는 콩라인인 것과, AI가 아키텐 왕국을 생성해 셀프 분열하는 것이 문제이다.[135]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일부 지역의 플레이가 가능한 DLC인 Jade Dragon이 공개되어 이젠 아니다. 다만, 안서도호부의 플레이는 불가능하고 중국이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콘솔 등을 이용하여 안서도호부의 정치체제를 바꾸면 플레이가 가능하다.[136] 알라딘 도전과제를 완료하며면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한족 문화여야 하고 다른 문화로 바꾸면 안 된다. 종교는 도교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므로 공작령 성전 명분을 쓸 수 있는(도교는 공작령 성전을 걸 수 없다) 다른 종교로 눈치껏 개종하면 된다.[137] 직전의 월리엄 그리핀 황제는 네덜란드 인이지만 이 당시 네덜란드는 신성로마 제국 소속이므로 제외한다.[138] 1236년 12월~1240년 사이에 인도 노예왕조(게임에서는 라자스탄 제국)의 여군주인 라지아 술타나와 12세기 후반에 아나톨리아 동부에 있는 군주 한 명, Jade Dragon 이후 11세기 후반으로 시간대를 고르면 플레이할 수 있는 예멘의 아르와 앗 술라이히이다.[139] 이 경우 무슬림 봉신들의 반란 진압을 잘 넘기는 게 중요하다.[140] 원나라 황제가 좋아하는 것에 무슬림 또는 기독교(기독교로 진행할 경우)가 있고 싫어하는 것에 아랍/비잔틴/무슬림/기독교/첩/환관/금화가 없을 때 특히 유리하다.[141] 실제로는 친척이 아니지만 바흐리 왕조의 술탄이라 친척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