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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틴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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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틴 가문의 문장
1. 개요2. 역사3. 에른스트계(종가)4. 알브레히트계5.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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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센을 통치한 독일의 유서 깊은 통치 가문으로, 현재 벨기에 왕실의 직계 조상이다. 1918년 당시에는 독일 제국의 틀 내에서 왕국 하나, 대공국 하나 그리고 공국 셋을 통치하였고 또한 19세기 들어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에서 영국, 벨기에, 불가리아, 포르투갈 왕들이 나왔다.

2. 역사

베틴 가문 출신 중 역사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인물은 디트리히 1세(Dietrich I, 916 ~ 976)이다.

1089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로부터 마이센 변경백으로 임명되었다. 1263년에는 튀링겐을 획득했다.[1]

1422년, 아스카니아 가문(Haus Askania)[2]의 마지막 작센 선제후이자 작센-비텐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3세가 자녀 없이 죽자 독일왕 지기스문트후스 전쟁에서 자신을 도운 공로에 대한 보답으로 마이센 변경백 프리드리히 4세를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로 임명하고 작센-비텐베르크 공국을 수여하였다. 1425년, 튀링겐을 제외한 베틴 가문의 모든 영지가 프리드리히 1세에게 귀속되었고, 1440년에는 프리드리히 2세가 튀링겐까지 상속받으며 베틴 가문의 중요 영지인 작센-비텐베르크 공국, 마이센 변경백국, 튀링겐 방백국이 모두 한 사람에게 모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가 죽고 차남 알브레히트가 형 에른스트에게 재산 분할을 요구하여 1485년, 결국 영토가 동서로 갈라졌다. 장남인 에른스트가 작센 선제후 직위와 작센 서부인 비텐베르크, 남부 튀링겐을 상속받아 에른스트계의 시조가 되고, 알브레히트가 작센 공작위와 작센 동부인 마이센 변경백국과 북부 튀링겐을 상속받아 알브레히트계의 시조가 되었다. 이 1485년 라이프치히 분할 조약은 베틴 가문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종국에는 신성 로마 제국 북독일에서의 주도권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프로이센 왕국)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3. 에른스트계(종가)

튀링겐 공국들을 다스리고 있던 계통으로 1918년 당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작센마이닝겐 공국,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이들 계통은 루터교회 개신교 신자다.

이 중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가 모든 베틴 가문의 종가이다.[3]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주도로 종교 개혁이 일어나자 에른스트계는 개신교로 개종하고 신교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작센 왕국의 알브레히트 계열이 원래 방계였으나 슈말칼덴 전쟁에서 작센-마이센 공작 모리츠가 6촌인 본가의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를 배신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카를 5세에 줄선 대가로 본가의 영토 대부분과 선제후 직위를 빼앗았다.[4]

그후 에른스트계는 튀링겐 일부만 남은 상태에서 분할 상속을 계속 했고, 후계가 끊어짐에 따라 이리 붙이고 저리 떼이고 하는 통에 안 그래도 난장판인 영토가 사분오열되었다. 에른스트가 상속받은 남부 튀링겐은 4대를 거친 1554년, 요한 프리드리히의 세 아들이 분할 상속하여 에른스트 공국들(Ernestinische Herzogtümer) 또는 작센 공작령의 시초가 되었다. 이들 영토의 경계는 1572년에 '에어푸르트 분할'로 재조정되었고, 그 이후의 변화상은 한 공작령의 제후의 대가 끊기면 그 영토를 다른 공작령들이 나눠먹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영토가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1826년에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령의 대가 끊기면서 영토 재조정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1개 대공국, 3개 공국으로 확정되었는데 에어푸르트 분할 이후의 에른스트 공국들 간의 영지조정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작센코부르크아이제나흐
1572 ~ 1596
작센코부르크
1596 ~ 1633
작센아이제나흐
1596 ~ 1638
작센바이마르
1572 ~ 1806
작센알텐부르크
1603 ~ 1672
작센바이마르 작센-바이마르 작센바이마르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1806 ~ 1918
작센마르크줄
1662 ~ 1672
작센아이제나흐
1672 ~ 1806
작센예나
1672 ~ 1690
작센아이제나흐
1640 ~ 1644
작센고타
1640 ~ 1680
작센고타알텐부르크
1681 ~ 1826
작센코부르크
1681 ~ 1699
작센마이닝겐
1681 ~ 1918
[5]
작센룀힐트
1680 ~ 1710
작센아이젠베르크
1680 ~ 1707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
1680 ~ 1826
작센알텐부르크
1826 ~ 1918
작센잘펠트
1680 ~ 1735
작센코부르크잘펠트
1735 ~ 1826
작센코부르크고타
1826 ~ 1918

4. 알브레히트계

1547년~1918년 사이 작센 선제후국작센 왕국을 통치했으며 1806년 신성 로마 제국 해체 전까지 황제선거에 참여하였다. 이 계통은 가톨릭 신자인데 정작 작센 왕국 신민의 95%는 루터교회 개신교였다. 1697년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으로 선출되기 위해 개종했기 때문. 개종 과정에서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 아내가 평생 별거를 선언하고 신하들이 선제후직을 퇴위하라고 반발한 흑역사도 있었다. 당시 신성 로마 제국 제국의회에서 개신교 대표를 작센 선제후가 맡고 있었는데, 이 개종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할 때까지 개신교 대표를 가톨릭 신자가 역임하는 촌극이 일어났다.

5. 현재

작센코부르크고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후계는 단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에른스트계의 네 가문 중 작센알텐부르크는 1991년에 단절되어버렸고, 다른 가문들도 일단은 존속하고는 있지만 앞으로가 불투명하다.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는 2018년에 자녀를 생산할 유일한 남자인 콘스탄틴이 낙마사고로 요절해 단절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작센마이닝겐은 후계자가 '될 만한' 공족인 프리드리히 콘스탄틴이 있긴 한데, 아버지 프리드리히 에른스트가 귀천상혼으로 태어난데다가[6] 프리드리히 콘스탄틴 본인 또한 귀천상혼으로 후계자 미하엘를 낳은 것은 물론 그 후계자가 친자인지도 불명확해서 정통성 논란이 있고, 그나마 작센코부르크고타는 후계구도가 잡혀 있지만[7] 여기도 아슬아슬하게 외아들로만 이어지는 수준이다. 물론 영국, 불가리아, 벨기에로 분가해 나간 가문이 있으므로 만약 계보가 끊어질 경우 이들 왕가의 인물들 중 한 명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위를 요구할 수 있다.

알브레히트계도 가문 수장인 마리아 에마누엘[8]이 2012년 자식 없이 사망하면서 직계가 끊겼고, 살리카법을 접고 그의 둘째 여동생 안나의 후손인 작센게사페 가문[9]의 알렉산더와, 알렉산더의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육촌 형제 뤼디거[10]중 누가 계승해야 할지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일단 구 작센 왕국 헌법과 1997년 마리아 에마누엘에 의해 정해진 계승법에 의하면 여계 후손이 귀천상혼 후손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작센게사페의 알렉산더가 앞서지만 마리아 에마누엘의 동생 알베르트와 그 사촌형제들[11]이 반발하여 뤼디거를 옹립한 상황이다. 알렉산더를 제치고 뤼디거가 적법한 후계자임을 주장하는 근거는, 알렉산더의 어머니 아나(마리아 에마누엘의 여동생)의 결혼 역시 본래는 귀천상혼으로 간주되었으나 나중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알렉산더를 후계자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알렉산더를 귀천상혼 계통으로 간주하면 남계인 뤼디거의 계승서열이 알렉산더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즉 마리아 에마누엘의 후계자 지명이 유효한지가 계승권 분쟁의 쟁점인 것. 또 알브레히트계의 여계 후손 인정을 적용할 경우에는 귀천상혼 계열인 뤼디거를 건너뛰고 또 다른 육촌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12] 수장 카를 프리드리히가 왕위요구자가 된다. 반대로 여계 계승과 귀천상혼을 모두 부정할 경우 마리아 에마누엘의 막내여동생의 남편 쪽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 가문[13]에서 왕위요구자를 배출하게 된다. 현재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 가문의 수장은 전 불가리아 차르인 시메온 2세였는데, 코하리 가문 수장직을 누나 마리야 루이자 공주에게 넘겼다. 따라서 이제는 불가리아 구왕실에서 왕위요구자를 배출하게 된다고 서술하는 것이 맞겠다.

독일의 다른 왕가에서는 엄밀히 말해 알브레히트계가 단절된 것으로 보는데 알렉산더는 여계 후손인데다 아버지가 레바논계 멕시코인이고 뤼디거는 아버지인 티모 왕자가 귀천상혼 때문에 작센 왕조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정통성에 결함이 있어 독일 귀족연감에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승권 분쟁에 에른스트 계통도 끼어드는데 작센 왕국 이전 베틴 가문의 구 상속법이 준살리카법[14]에 엄격한 귀천상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알렉산더와 뤼디거를 모두 부정하고 에른스트계의 수장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가 작센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상술했듯 여기도 단절되는 것은 기정사실. 그렇게 되면 독일 내에서 남는 가문은 작센코부르크고타 뿐이다. 여기는 적법하게 아들 둘과 손자 하나가 있지만 현임 가주인 안드레아스 때부터 귀천상혼 법칙을 아예 포기하고 평민과 결혼하고 있어서 이들이 벨기에와 불가리아 등을 제치고 다 물려받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1] 튀링겐의 마지막 변경백이었던 하인리히 라스페가 후사 없이 죽으면서 하인리히 라스페의 외조카였던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와 조카딸 튀링겐의 조피가 서로 상속권을 주장하며 전쟁을 벌였는데 튀링겐은 결국 하인리히 3세가 가져가고 일부를 조피에게 떼주면서 탄생한 곳이 헤센이다. 헤센과 튀링겐은 한 뿌리인 셈.[2] 원래 안할트를 통치하던 가문으로 동방식민운동으로 브란덴부르크를 손에 넣었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하인리히 사자공을 추방하면서 작센 공국을 해체할 때 작센 공작 칭호를 주워 작센 공작까지 되었다.[3] 다만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는 튀링겐의 나머지 공가들보다 혈연적으로 더 멀다. 대공가는 작센바이마르 공국, 나머지 공국들은 작센고타 공국에서 분가했기 때문이다.[4] 다만 모리츠는 자녀 없이 전사했기 때문에 알브레히트계는 모리츠의 동생 아우구스트의 후손들이다.[5] 1826년부터 힐드부르크하우젠을 포함한다.[6] 프리드리히 콘스탄틴은 현 수장 콘라트의 이복형 프리드리히 에른스트의 아들인데, 논란의 핵심은 프리드리히 에른스트의 어머니가 평민이라 귀족 어머니를 둔 동생 콘라트가 이복형을 제치고 현 수장이 된 상태라는 것. 현 수장의 직계 자손이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귀천상혼 문제로 후계구도에서 밀린 공족의 자녀인지라 정통성에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현 수장 콘라트는 귀천상혼 문제가 있더라도 사후 조카 프리드리히 콘스탄틴에게 수장 자리를 넘겨주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7] 현 수장 안드레아스(마지막 공작 카를 에두아르트의 손자)에게 두 아들과 어린 손자(2015년생) 한 명이 있지만, 안드레아스의 장남만 1남 2녀를 두었을 뿐 차남은 독신인 상태라 수장 자리를 이을 수 있는 손자는 1명뿐인 상황이다. 그래도 이쪽은 귀천상혼 배제 원칙은 현 수장 안드레아스 대에 이르러 포기해버린 상태라 귀천상혼 관련 문제로 정통성이나 후계구도에 논란이 있는 알브레히트 계열이나 작센마이닝겐과 달리 귀천상혼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롭다.[8] 마리아라는 이름이 세컨드네임도 아니고 당당히 첫머리에 나왔지만 당연히 남자다.[9] 1997년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선언했다. 게사페 가문은 레바논마론파 출신으로 멕시코로 이민한 성공한 사업가 가문이다.[10] 어머니가 평민으로 정육점 딸이었다.[11] 뤼디거의 아버지 티모 왕자의 형제들.[12] 호엔촐레른 가문의 가톨릭 분파이다.[13]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분파로, 시조는 초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의 동생인 페르디난트 공자이다. 페르디난트 공자가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하면서 형성된 분파이다.[14] 모든 남성 후손이 단절됐을 때만 여성에게 계승권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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