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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1 10:42:32

에른스트(작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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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 국왕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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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틴 가문의 3대 작센 선제후이자 베틴 가문 에른스트계의 시조.

2. 생애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타(Margaretha von Österreich 1416–1486)[1]의 차남으로 1451년 형 프리드리히가 죽는 바람에 일찍이 후계자로 내정되었다. 1455년 쿤츠 폰 카우풍겐(Kunz von Kauffungen 1410~1455)이라는 기사에게 동생 알브레히트와 함께 납치되었는데 이는 훗날 독일에서 오페라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1460년 바이에른뮌헨 공작 알브레히트 3세(Albrecht III. der Fromme 1401~1460)의 딸 엘리자베트(Elisabeth von Bayern 1443–1484)와 결혼했으며 이 결혼으로 프리드리히 3세, 요한, 덴마크 국왕-노르웨이 국왕 한스와 결혼하는 크리스티나 등을 얻었다.

1482년 숙부 빌헬름 3세(Wilhelm III. der Tapfere 1425~1482)가 사망하여 튀링겐 방백국을 물려받아 베틴 가문의 모든 영토를 통합하였다. 그러나 1485년 동생 알브레히트와 라이프치히 분할 조약을 체결하여 자신이 비텐베르크와 튀링겐 일대를 가져가고, 동생 알브레히트가 마이센, 라이프치히 등을 가져갔다. 라이프치히 분할 조약으로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베틴 가문의 위상은 약화되었고, 훗날 작센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게 북독일에서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결과를 불러왔다.

1486년 콜디츠에서 낙마 사고로 사망했으며 마이센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1]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여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