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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13:19:04

알 무크타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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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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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18대 칼리파
알 무크타디르
المقتدر بالله
파일:Dinar_of_al-Muqtadir_with_Abu'l-Abbas_and_Amid_al-Dawla.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아부 알 파디 자파르 아흐메드 알 무타디드
أبو الفضل جعفر بن أحمد المعتضد
출생 895년 11월 14일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사망 932년 10월 31일 (향년 36세)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재위 기간 아바스 칼리파 1차
908년 8월 13일 ~ 929년 2월 28일 (21년)
아바스 칼리파 2차
929년 3월 2일 ~ 932년 10월 31일 (3년)
전임자 알 무크타피
후임자 알 카히르
별명 알 무크타디르 빌라흐(المقتدر بالله: 위대한 신과 함께 하는 자)
부모 아버지 : 알 무타디드
어머니 : 샤하브
종교 이슬람 수니파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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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왕조 제18대 칼리파. 어머니 샤하브와 대신들, 튀르크 군부에 휘둘리며 24년간 실권을 누리지 못하다가 튀르크 권신 무디스를 몰아내려다 전사했다.

2. 생애

895년 11월 13일 바그다드에서 아바스 왕조 제16대 칼리파 알 무타디드와 동로마 제국에서 끌려온 여노예 샤하브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908년 늦은 봄 중병에 걸린 알 무타디드는 9명의 아들 모두가 미성년자인 점을 걱정해 동생 알 무타즈와 그를 놓고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 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미처 판단을 내리기 전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막판에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에 재상 알 아바스 알 자르자이는 주요 관료들을 소집하여 후계자를 누구로 세울 지를 논의했다. 그는 처음에는 13대 칼리파 알 무타즈의 동생이며 유능한 인물이었던 압둘라 이븐 알 무타즈 왕자를 세우려 했지만, 튀르크 군부의 수장 무니스의 압박에 굴복하여 당시 13살이던 그를 칼리파로 옹립하기로 했다. 908년 8월 13일 알 무크타디가 사망한 뒤, 그가 새 칼리파로 즉위했다. 몇 주 후 알 무타즈를 칼리파로 세우려 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튀르크 장군 무니스가 반란을 진압했고, 알 무타즈는 피살당했다.

그는 칼리파가 생겨난 이래 최초로 미성년자일 때 즉위했다. 이에 따라 통치를 돕기 위한 알 사다(al-sāda)가 설립되었다. 이 섭정 위원회엔 어머니 샤하브, 샤하브의 비서 움 무사, 샤하브의 여동생 카티프, 그리고 알 무타디드의 다른 첩인 다스탄부웨이였다. 모두 여자였기 때문에, 당대 역사가들은 '알 사이다(al-Sayyida: 여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여자들의 품에 들어가서 통치를 맡겼고, 어머니의 숙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관료가 모인 궁궐이 아닌 군주의 사적 공간에서 정책이 결정되었고, 샤하브는 아들의 치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어 관리의 임명과 해임에 간섭하고, 재무부에 기부 및 자선 활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게 했다. 당대 역사가 알 마스후디는 그의 통치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여성, 하인, 기타 사람들이었으며 칼리프 자신은 국정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13세기 연대기 작가 이븐 알티크타카는 그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바쁘게 활동했지만, 통치에 관한 문제는 여자와 하인들에게 떠맡겼다고 비난했다.

샤하브는 대부분의 삶을 하렘에서 보냈고, 카라마나(시녀)들을 대리인으로 삼아서 하렘과 궁정 사이의 중개 역할을 맡게 했다. 카라마나는 자연히 강력한 권력을 확보했고, 시녀에게 밉보인 자들은 샤하브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다. 샤하브가 총애한 대표적인 카라마나로 움 무사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 여인은 아바스 방계 출신으로, 청렴한 관료였던 알리 이븐 이사 알 자라흐를 모함해 정계에서 몰아내고 친족들을 고위직에 앉힌 뒤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러나 움 무사가 조카딸을 알 무타와킬의 손자 아부 알 아바스와 결혼시키자, 그녀의 경쟁자들은 그녀가 칼리파를 타도하고 알 아바스를 칼리파로 앉히려 한다고 비난했다. 922년, 움 무사는 곧 체포되었고, 투말이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여 움 무사와 형제자매를 가혹하게 고문해 옥사하게 만들었다. 이후 투말은 샤하브에게 거슬린 자들을 잡아다 가혹한 고문을 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또다른 카라마나인 자이단이라는 여인은 투말과 정반대의 성향을 보였다. 그녀의 집은 해임된 관료들을 연금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매우 정중하게 대했고, 정적들에게 박해를 받는 이들에게 종종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편 동로마 제국과 아나톨리아에서 전쟁을 벌였으나 전세가 갈수록 불리해지자 917년 포로 반환을 위해 120,000 디나르를 보내고 전쟁을 멈춰야 했다. 이에 사람들은 분노했는데, 특히 칼리파가 음악가와 무용수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소문이 돌면서 수도 혼란은 더욱 커졌다. 한 이맘은 금요일 기도 중에 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돌을 던지기도 했다. 아바스 정부는 동로마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921년 이븐 파디안을 불가리아 사절로 보내 동맹을 맺으려 했다. 아랍 역사가 알 만수디에 따르면, 불가리아 왕의 아들이 메카를 순례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나라의 동맹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아프리카의 파티마 왕조와 아라비아의 카르마트, 모술알레포함단 왕조가 아바스 왕조의 입지를 위협했다. 여기에 이스마일 시아파의 일원인 카르마티아인들은 메카를 습격해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고 카바의 흑석을 훔쳤으며, 쿠파와 바스라를 공략하고 바그다드를 위협했다.

929년 2월 28일, 튀르크 장성 무니스 알 무자파르가 이끄는 쿠데타 세력이 그를 축출하고 알 무타디드의 삼남 알 카히르를 옹립했다. 하지만 사흘간 공모자들과 함께 바그다들을 약탈한 그들은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자 3월 2일 마음을 바꿔 그를 복위했다.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의 인명이 살육당했고, 바그다드는 폐허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여기에 각지에서 올라오는 세금마저 끊기면서, 도시 경비대에게 지급할 봉급을 마련할 수 없었다.

932년 10월, 무니스는 모술에서 독립해버린 함단 왕조를 징벌하고자 출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로부터 귀환 명령을 받자 이에 따라 바그다드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는 신하들의 참언을 믿고 무니스가 자신을 죽이려 돌아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무니스를 체포하기 위해 예언자의 망토와 홀을 들고 궁궐에서 나와 무니스의 군대와 대적했으나, 바그다드 수비대가 급료 지급도 제대로 못하는 그를 따르길 기피하는 바람에 성벽 밖에서 참패하여 전사했다. 그 후 무니스는 일전에 칼리파로 옹립했다가 곧바로 폐위된 뒤 연금 중이던 알 카히르를 새 칼리파로 옹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