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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무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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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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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12대 칼리파
알 무스타인
المستعين بالله
파일:Dinar_of_Al-Musta'in,_AH_248-252.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아부 알 아바스 아흐메드 이븐 무함마드 이븐 무함마드
أبو العباس أحمد بن محمد بن محمد
출생 836년
아바스 왕조 사마라
사망 866년 10월 17일 (향년 29~30세)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재위 기간 아바스 칼리파
862년 6월 8일 ~ 866년 10월 17일 (4년)
전임자 알 문타시르
후임자 알 무타즈
별명 알 무스타인 빌라흐(المستعين بالله: 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
부모 아버지 : 무함마드 이븐 알 무타심
어머니 : 마카리크
종교 이슬람 수니파
1. 개요2. 치세3. 바그다드 포위전 (5차 피트나)
3.1. 알 무스타인 성벽3.2. 카트라불 전투3.3. 마다인 전투3.4. 안바르 전투3.5. 하르비야 전투3.6. 총공격 실패와 협상
4. 항복과 죽음

[clearfix]

1. 개요

아바스 왕조의 제12대 칼리파.

본래 칼리파 계승 가능성이 희박한 왕족이었는데 전임 칼리파이자 사촌인 알 문타시르가 사망한 후 실권을 장악한 튀르크 장군들에 의해 옹립되었다. 그의 치세는 대외 전쟁의 패배와 내전, 반란의 연속으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알 마문 때부터 자치를 누리던 이란의 타히르 왕조는 칼리파가 지지한 타히르 2세의 동생 무함마드[1] 대신 그의 아들을 지도자로 세우는 등 지방분권화도 가속화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튀르크 장군들과의 불화로 사마라를 탈출하였고 이에 튀르크 인들이 문타시르의 동생 알 무타즈를 칼리파로 옹립한 후 바그다드로 진군하여 도시를 포위하였다. (865 ~ 866년) 수세에 몰린 무스타인은 메디나에서의 은퇴 생활을 조건으로 항복하였는데,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그는 투옥된 후 신임 칼리파 알 무타즈의 명령으로 살해되었다.

2. 치세

파일:1280px-Abbasids_Ninth_Century_svg.png
9세기 후반 칼리파 가계도 (알 무타심 ~ 알 무타미드)

8대 칼리파 알 무타심의 막내 손자로, 사촌형인 알 문타시르가 의문사 한 후 튀르크 장군들에 의해 옹립되었다. 이에 사마라의 아랍인 군대가 알 문타시르의 동생 알 무타즈를 지지하며 봉기하였다. 그들은 무기고를 습격하고 시가전을 벌였는데, 결국 막강한 튀르크 기병대에 굴복하였고 바그다드에선 총독이 시민들을 설득하며 알 무스타인은 칼리파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낸 시가전 이후 알 무타즈와 그의 동생들인 알 무아야드와 아부 아흐마드 탈하[2]는 재차 계승권 포기 각서를 쓰는 것도 모자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이후 재차 무타즈를 옹립하려는 반란이 일어나자 튀르크 장군들은 그를 제거하려 하였는데 여론이 돌변할 것이라는 와지르 (재상)의 충고로 무타즈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편, 863년 9월에 말라티야의 아미르 (태수) 우마르 알 아크타가 파울리키아파와 연합하여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여 흑해 연안의 삼순을 함락시키는 등 깊숙히 진군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랄라카온(Lalakaon)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군에게 포위당하여 우마르 본인과 파울리키아파의 지휘관 카르베아스가 전사하는 등 대패하였다. 동로마는 이를 기회로 반격에 나서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아미르인 알리 이븐 야흐야를 전사시켰다. (11월) 아나톨리아 전선에서 압바스 조가 이렇게 대패를 경험한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하드 (성전)에 대한 요구와 칼리파를 살해하고 실정을 거듭한 튀르크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대가 바그다드 거리를 메웠다.

864년에는 4대 칼리파 알리의 8대손이자 자이디 (다섯이맘파) 이맘인 야흐야 이븐 우마르[3]가 쉬아 무슬림과 베두인을 규합하여 쿠파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쿠파 인근의 다리에서 압바스 군을 격파하였고 자이디 선교사들의 활약으로 바그다드 시민들도 상당수 그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8월 21일, 야흐야의 군대는 후세인 이븐 이스마일이 지휘한 압바스 정규군에게 대패하였다. 포로가 된 야흐야는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 되었다. 다만 그의 영향력은 이후로도 지속되어 868년에 일어난 잔즈 반란의 지도자 알리 이븐 무함마드는 자신이 야흐야의 환생이라 주장하기도 하였다. 비슷한 시기 시리아의 홈스 시민들도 총독을 죽이고 봉기하였으나 튀르크 장군 무사 이븐 부가에 의해 진압되었다.

3. 바그다드 포위전 (5차 피트나)

865년 초, 압바스 조의 수도 사마라는 임금 체불에 분노한 튀르크 병사들의 칼부림으로 거리마다 화염에 휩싸였다. 위협을 느낀 무스타인은 자신을 따르는 두 튀르크 장군들 (부가 알 샤라비, 와시프 알 투르키)과 함께 배를 타고 사마라를 빠져나와 바그다드로 도피하였다. 865년 2월 초, 무스타인 일행은 바그다드에 도착하였고 총독인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이븐 타히르[4]의 환영을 받았다. 알 무타심 이후 30여년만에 압바스 칼리파가 바그다드로 돌아온 것이다.

한편, 뒤늦게 칼리파가 사마라를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튀르크 귀족들은 싸움을 멈추고 바그다드에 사절을 파견하여 무스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며 사마라로 돌아올 것을 청하였다. 이에 무스타인은 병사들에 대한 밀린 급여의 지불에는 합의하였지만 바그다드를 떠나 사마라로 돌아가는 것은 거부하였다. 또한 무스타인과 무함마드 총독은 튀르크 인들의 오만함을 지적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사마라의 튀르크 귀족들은 분노하여 무스타인을 폐위시키기로 하였다. 그들은 무스타인에 의해 감금되어 있던 알 무타즈를 칼리파로 옹립, 충성 서약을 하며 5차 피트나 (이슬람 내전)로 이어졌다.

3.1. 알 무스타인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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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원형성벽 (내성)과 무스타인 성벽 (외성)

대립 칼리파가 선출되었다는 소식에 무스타인은 무함마드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며 전쟁에 대비하게 하였다. 그는 우선 바그다드와 모술에서 사마라로 가는 곡식 운송을 차단하였고 시리아와 이란 일대의 총독들에게 병력 파견을 요청 및 세금을 사마라가 아닌 바그다드로 운반할 것을 지시하였다. 동시에 기존 원형 성벽의 밖에 알 무스타인 성벽이라 불리는 외성에 대한 요새화가 개시되어 2월 22일경 완료되었다.[5] 또한 안바르[6] 일대의 운하들을 파괴, 범람하게 하여 적군의 이동을 방해하고자 하였다. 한편, 사마라의 알 무타즈는 무함마드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으나 답신이 없자 동생 탈하를 사령관으로 원정군을 편성하였다.

2월 24일, 아부 아흐마드 탈하는 5천의 튀르크-페르가나 병사와 2천의 마그레브 용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고 사마라에서 남하하였다. 그들은 6일 후 사마라와 바그다드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 우카바라에서 알 무타즈의 이름이 언급된 쿠트바 하에 금요 예배를 올렸다. 이후로 약탈을 자행하며 진군하던 사마라 군대는 3월 10일에 바그다드 북쪽 성벽 (티그리스 동안)의 샤마시야 문 앞에 이르러 진영을 꾸렸다.

전투 개시 직후 무함마드는 수비대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성벽 인근의 건물들을 철거하였고 화재를 대비하여 시장의 차양막도 금지시켰다. 무함마드는 모병을 위해 어음을 발행하는 등 다분히 노력하였다. 중부 이라크의 베두인 및 쿠르드 부족들도 모병에 응했으며 심지어 메카로 향하던 호라산 출신의 순례객들이나 시내의 도적단까지 수비대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 그외에도 알 무스타인의 이름으로 시민들과 군인들에게 자주 선물을 뿌리는 등 사기 진작에도 힘썼다.

865년 3월 14일, 무함마드는 포위군에게 그들이 회군한다면 알 무스타인이 무타즈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다면 다음날부터 전투에 들어갈 것이라 하였다. 15일, 포위군은 티그리스 동안의 샤마시야 문과 호라산 문으로 공격해 왔으나 수백의 전사자를 내고 수비군에게 격퇴되었다. 이에 그들은 성문 근처에 대포를 설치하려 하였으나 수비군이 성문을 나와 반격하며 무산되었다. 19일, 사마라 군대는 바그다드 동쪽의 요청지 알 나흐라완을 습격하였다. 수비대는 야전에 응했다가 튀르크 기병대에게 격파되며 바그다드와 호라산과의 연락이 어려워졌다.

3.2. 카트라불 전투

한편, 사마라의 알 무타즈는 자신이 선대 칼리파 문타시르의 동생으로서 제1 계승자임을 천명하였고 계승권 포기 각서는 튀르크 군대의 살해 위협 하에 작성되었으므로 무효임을 선언하였다. 무스타인과 마찬가지로 그역시 제국 각지에 군대를 요구하였고 일부가 호응하였다. 또한 사마라의 재력을 활용한 적극적인 회유 정책으로 무스타인 측의 관료나 군인들의 귀순을 장려하였고 이는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러한 방식으로 모은 4천 군대가 합류, 서쪽 성벽을 맡으며 7천의 포위군은 1만 1천으로 증원되었다. (3월 20일)

서쪽 성벽의 지원군에 부담을 느낀 무함마드는 그들이 아직 정비되지 않은 틈에 기습을 하기로 하였다. 3월 21일, 수비군이 서쪽 성문을 나가 그들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튀르크 군인들의 분전으로 오히려 수비군이 열세에 몰린 찰나, 무함마드가 파견한 지원군이 합류하였고 4천 포위군을 매복 지역으로 몰아내었다. 그리고 외곽 지역에서 불의의 매복조까지 만난 포위군은 무너져내렸다. 그들은 티그리스 강 건너편의 본군과 합류하려 하였으나 수비 측 함대의 공격을 받았고 그대로 뿔뿔히 흩어져 사마라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이로써 사마라 측의 4천 지원군은 하루만에 증발하고 말았다.

바그다드 북문 (카트라불 문) 전투는 수비측의 대승이었다. 포위군 4천 중 절반이 전사하였고 상당수가 포로가 되었다. 이 소식이 사마라에 전해지자 폭동이 일어났다. 이에 바그다드의 참모들은 총사령관 무함마드에게 기세를 타고 일거에 사마라로 진군할 것을 조언하였다. 하지만 그는 패주하는 적을 쫓는 대신 시내의 사원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기회를 놓쳐버렸다. 한편, 남은 7천의 군대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를 완전히 포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탈하는 바그다드의 보급을 끊어 항복을 유도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포위군은 도시로 향하는 조운선 공격에 열을 올렸다.

3.3. 마다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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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후반 이라크 중부 일대

카트라불 전투 이후 포위군은 바그다드 자체 보다는 그 인근의 요새들을 하나하나 점령하며 도시를 고립시키고자 하였다. 이미 동쪽의 나흐라완이 함락된 상태에서 사마라 군은 시계방향으로 포위망을 좁혀가기로 하였다. 그중 동남쪽의 옛 크테시폰에 위치한 알 마다인은 와시트를 비롯한 이라크 남부의 곡창지대와 바그다드를 이어주는 요충지였다. 4월 21일, 무함마드는 아불 사즈 다우드에게 3천 병력을 주어 마다인을 지키게 하였다. 이후 튀르크 군대가 접근하자 지원군까지 파견되었고 그들은 8월에 튀르크 분견대를 격파하고 장교를 죽였다. 전선은 남쪽의 잘자라야까지 확대되었다.

수비군은 10월에 더 큰 승리를 거두었고 그달 23일에 무함마드가 보낸 또다른 지원군과 합류하였다. 같은날 튀르크 군대는 마다인을 포위하였다. 잘자라야는 오히려 바그다드 군을 분산시카려는 미끼였던 것이다. 수비군의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성벽 틈새를 발견한 튀르크 군이 성안으로 밀려들어오며 곧 성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수비군은 보병이 승선하는 동안 기병이 호위하며 질서있게 후퇴하려 하였으나 튀르크 기병대가 계속 압박하며 엉켜버렸다. 혼란 속에 도착한지 얼마 안된 지원군 대장이 전사하였고 아비규환 속에 마다인은 함락되었다. 많은 지원군을 보냈는데도 수성 실패에 분노한 무함마드는 패전한 수뇌부를 가택연금에 처하는 것 외엔 별 대책을 내놓지 못하였다.

3.4. 안바르 전투

한편, 바그다드 서쪽의 요충지인 알 안바르는 베두인 수비대와 무함마드가 파견한 수천의 지원군이 지키고 있었다. 포위전 초반에 무함마드 이븐 부가의 사마라 군대가 기습으로 지원군을 패주시키자 베두인들이 도주하였고, 총독마저 바그다드로 도망가버렸다. 남겨진 안바르 시민들은 목숨 보장을 대가로 항복하였는데 다음날 약탈을 당하였다. 바그다드의 무함마드는 안바르 탈환을 위해 자신의 6촌 친척인 알 후세인에게 2천의 군대를 주었다. 임금 체납에 대한 병사들의 불복종 사태를 진입한 6월 말에야 그는 출정하였는데, 튀르크 군대의 방해에도 간신히 부교를 놓았으나 첩자를 통해 작전이 들키면서 본진이 습격하여 대패하였다.

패하여 돌아온 후세인에 대하여 무함마드는 그의 입성을 거부하였고 무스타인도 그들의 약한 충성심과 실패를 비난하였다. 병사들에게도 즉시 진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태형에 처해지고 임금도 주지 않을 것이라 협박하였다. 이후 성밖에서 숙영하며 전열을 가다듬은 후세인과 병사들은 7월 중순 재차 출정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후세인은 튀르크 군의 방해로 안바르에 이르는데 실패하였고 측면이 기습을 당해 무너지며 또다시 수백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퇴하였다. 후세인 본인도 소형 보트로 도주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에 연쇄적으로 인근 요새인 카스르가 항복하며 사마라 측의 동서남북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전쟁의 향방이 결정되는 순간.

3.5. 하르비야 전투

카트라불 전투 이후 공성전도 간간히 이어졌으나 전장은 보급로를 두고 일어난 쟁탈전으로 바뀌었다. 포위군은 도시로의 보급을 제한할 수 있었으나 끊지는 못하였다. 그상태로 5개월의 시간이 흘러갔고 그동안 재정비에 성공한 사마라 측은 추가 명력을 파견하여 재차 티그리스 서안에 병력을 배치할 수 있었다. 한편, 바그다드에도 자지라[7], 서부 이란 등지에서 지원병이 도달하였는데 무함마드의 조카가 다스리는 이란, 호라산 일대의 타히르 왕조가 타바리스탄의 알라비 왕조와 싸우느라 지원병을 거의 보내오지 못한 것이 악재였다.

9월 8일, 마침내 티그리스 양안의 포위군은 총공세에 나섰다. 동안의 군대가 샤마시야 문을 공격하는 동안 서안의 군대는 기존의 카트라불 문 대신 서문이라 할 수 있는 안바르 문을 공격하였다. 그곳의 수비대는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결국 화염에 휩쌓인 안바르 문을 통해 포위군이 하르비야 구역에 입성하였다. 그곳의 시민들은 원형 성벽 내부로 도주하며 혼란이 이어졌다. 이에 무함마드는 모든 장수들을 소환, 즉각 반격에 나섰다. 수비군은 약탈에 집중하던 사마라 군을 공격하였고 격렬한 전투 끝에 그날 밤에 하르비야 구역과 외성 방어선을 되찾았다. 동안에서의 전투도 수비 측이 승리하였다.

3.6. 총공격 실패와 협상

이후로도 두달 이상 대치가 이어졌다. 11월 말, 무함마드는 성밖으로의 총공격을 명하였다. 바그다드 군대는 모든 성문을 열고 나갔고 수군도 대포와 궁수들을 실은채 출정하였다. 예상하지 못한 역습에 사마라 군대는 와해되어 진영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사령관인 아부 아흐마드 탈하가 결사적으로 버텼고 바그다드 군대가 보상을 위해 수급 획득에만 열을 올렸기에 사마라 군대는 간신히 진영을 되찾고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위망 돌파 및 보급로 확보라는 수비 측의 목표 달성은 실패하며 전세를 바꾸지 못하였다.

또한 바그다드를 향한 외부 지원군은 칼리파 무스타인이 아닌 무함마드의 지휘를 받길 거부하며 바그다드 입성 대신 개별 전투에 임하였고 튀르크 군대에게 각개 격파되었다. 직업군인이 대부분인 포위군과 달리 수비 측은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이 먾아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졌다. 전쟁 후반부에 바그다드 포위군은 1만 9천에 육박하였고 사마라는 군대가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도 무함마드가 사마라 공격을 고려하지 못할만큼 포위망 돌파 실패는 승부를 갈라 놓았다.

한편, 고립이 지속된 바그다드에선 식량과 물자가 부족해지며 민심이 불안해졌다. 8월부터 시내의 압바스 왕족들이 시종들에게 줄 봉급이 없다며 불만을 털어놓았고 11월의 총공세가 실패로 끝난 후부터 무함마드는 군사적 승리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비밀리에 포위측과 항복 협상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바그다드의 사정은 더욱 나빠져 시민들이 '배고픔!'을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무함마드는 식량 사정의 개선을 약속하며 사태를 안정시켰고 12월 8일부터 아부 아흐마드 탈하의 사절이 무함마드의 궁전을 왕래하기 시작하였다.

12월 16일, 바그다드의 보병들과 시민들이 각각 임금 체불과 엄청난 물가 상승에 대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무함마드가 겨우 진정시켰으나 그의 말대로 실현되지 않자 18일에는 시내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군대가 동원된 후에야 가까스로 진압되었다. 한편, 협상은 한단계 진척되어 무함마드의 대표단이 탈하의 진영에 상주하였고 사마라 출신 포로들이 석방되었다. 12월 말엽, 양측은 알 무스타인의 폐위에 일단 합의하였다. 그에 대한 우호의 표시로 탈하는 식량과 사료를 실은 5척의 배를 바그다드에 보내며 식량난 해소를 도왔다.

4. 항복과 죽음

한편, 무함마드가 알 무스타인의 폐위를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한다는 소문이 시내에 퍼지며 바그다드는 재차 들끓었다. 12월 27일, 배신에 대한 분노와 사마라 군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찬 시민들은 궁전을 습격하여 근위대와 충돌하였다. 이에 알 무스타인은 무함마드를 대동하고 군중 앞에 모습을 보이며 자신은 여전히 칼리파이며 다음날 (금요일) 예배를 주도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28일에 그는 사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시민들은 무함마드와 그의 부하들의 저택을 습격하였다. 이에 무스타인이 재차 모습을 드러내었고 무함마드의 궁전을 떠나 다른 거처로 이어하였다. 866년 1월 2일에야 무스타인은 희생제 예배를 주도하였다.

무함마드는 시민들에게 자신이 무스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파력하며 동시에 협상을 진행하였다. 1월 7일, 샤마시야 문 바깥의 천막에서 무함마드와 아부 아흐마드 탈하 간의 면담이 주최되었다. 수뇌부 간의 면담에서 제국의 세수의 분할 (2/3은 사마라에, 1/3은 바그다드에)과 무스타인이 병사들의 급료 지불의 일정 부분을 책임진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다음날, 무함마드는 무스타인에게 양위를 종용하였다. 이에 칼리파는 완강히 거절했으나 측근인 튀르크 장군 와시프와 부가도 무함마드와 한 목소리를 내자 결국 수긍하였다. 양위의 대가로 알 무스타인은 히자즈 (메카 ~ 메디나) 일대의 통치권이 주어지기로 하였다.

1월 12일, 법률가들을 소집하여 양위를 공식화한 무함마드는 양위 합의문을 사마라로 보내었고 알 무타즈가 직접 그에 서명하였다. 1월 24일, 문서는 바그다드로 돌아왔고 금요일이던 다음날 예배에서 알 무타즈의 이름이 시내에서 울려퍼졌다. 격렬했던 전쟁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8] 하지만 약속과는 달리 무스타인은 히자즈로 은퇴하는 대신 와시트에 연금되었고 그해 10월, 사마라로 소환되어 가던 중 무타즈에게 고용된 암살자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암살자는 그의 목을 가지고 사마라의 궁궐로 돌아왔는데, 당시 체스를 두던 무타즈는 옆에 두라고 한 후 게임이 끝난 후에야 확인하였다고 한다.


[1] 그는 타히르 조의 아미르 대신 바그다드의 총독이 된다[2] 후의 창호인 알 무와파크로 유명하다[3] 고조부가 알리 이븐 후세인의 차남 자이드[4] 타히르 왕조의 왕족으로서 타히르 2세의 동생이며 당시 아미르이던 무함마 이븐 타히르의 숙부였다[5] 참호 설치에만 30만 디나르가 소모되었고 그외에도 방어용 투석기가 곳곳에 설치되었다[6] 바그다드 일대의 지명[7] 북부 메소포타미아[8] 이후 무타즈의 명으로 무스타인의 가족들은 재산을 압수당한채 바그다드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