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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1-12 12:49:31

왈리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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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지만 하산도 잠깐 동안이지만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
우마이야 왕조 11대 칼리파
الوليد بن يزيد | 알 왈리드 이븐 야지드
제호 한국어 알 왈리드 이븐 야지드
아랍어 الوليد بن يزيد
영어 Al-Walīd ibn Yazīd
존호 칼리파
생몰 년도 709년 ~ 744년 4월 17일
재위 기간 743년 2월 8일 ~ 744년 4월 17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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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마이야 왕조 11대 칼리파.

2. 생애

709년 다마스쿠스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우마이야 왕조 9대 칼리파 야지드 2세이고, 어머니는 우마이야 관료 무함미드 이븐 유수프 알타카피의 딸 움 알 하지이다. 누이로 알 하지가 있었다. 724년 1월 28일, 야지드 2세는 다마스쿠스의 준드 다미슈크의 발카 분구에 있는 이르비드에서 병사했다. 그는 보내 아들 왈리드를 칼리파로 선임하려 했지만, 최측근인 마슬라마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복 형제인 히샴을 칼리파로 임명하고, 그 대신 왈리드를 히샴의 후계자로 세웠다.

그러나 히샴은 왈리드를 후계자로 세우길 내켜하지 않고, 아들 마슬라마로 대체하려 했다. 히샴의 이복동생이며 하자르와의 전쟁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둬 명성이 자자했던 마슬라마 이븐 아바드 알말리크, 히샴 이븐 이스마일 알 마흐주미와 아들 이브라힘과 무함마드, 시리아 북부의 바누 압바스 족장의 아들 이븐 카일이 히샴의 계획을 지지했으며, 마슬라마의 어머니 움 하킴도 아들을 위해 로비했다. 그러나 이라크 총독 칼리드 알 카스리 등 여러 지역의 총독들이 대거 반발했고, 마슬라마 이븐 아바드 알 말리크가 730년대 후반에 사망해버리면서 계획이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다 743년 2월 6일 히샴이 사망하면서 왈리드 2세가 칼리파로 선임되었다.

그는 사촌 알 압바스 알 왈리드를 보내 국고를 확보하게 했고, 재무관 루사파는 순순히 넘겨줄 뿐만 아니라 마슬라마를 제외한 히샴의 아들들을 체포했다. 2월 15일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그는 모스크에서 금요일 기도를 드렸다. 이때 히샴의 사무실 문서에서 그의 후계자 임명을 취소하라고 권고하는 여러 총독의 요청서를 발견하고, 이들을 전원 해임했다. 그 후 아들 알 하캄과 우스만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한편, 그는 지난날 히샴에게 해임되었던 나스르 아븐 사야르를 호라산 총독으로 복권시켰다. 그리고 삼촌 유수프 이븐 무함마드를 메디나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이리하여 오래도록 갈망했던 칼리파가 되었지만, 그는 곧 수많은 이의 미움을 샀다. 그는 매일 포도주를 탐닉했고 수많은 여자를 후궁으로 들여서 방탕한 삶을 살았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그의 별궁인 쿠세이르 암라에는 비키니 입은 여성 그림 등 비이슬람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특히 노예 후궁 나와르에게 예배를 인도하게 해 모두를 경악시켰다. 칼리파는 통치자이기 전에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의 종교적 역할이 더 중요했는데, 어느 날 무엣진[2]이 와서 이맘의 직무 수행을 청하자 만취 상태였던 그는 나와르에게 이를 맡겼다. 나와르가 칼리파의 복장을 한 채 모스크의 미흐랍에 나타나자 대중은 경악했고, 수많은 무슬림들은 그가 이슬람교의 우두머리인 칼리파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카와리즈파가 쿠파를 장악한 뒤 이라크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여기에 시아파마저 가담할 기미가 보이자, 그는 시아파를 회유하기 위해 지난날 히샴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진 뒤 방치되었던 자이드 이븐 알리의 유해를 수습하여 화장한 뒤 유프라테스 강에 뿌렸고, 자이드의 아들 아히야 이븐 자이드를 석방했다. 그러나 이라크 총독 나스르는 아히야가 이라크에 접근하자 도주 중인 것으로 믿고 체포하려 들었었다가 아히야의 추종자들에게 격퇴되었다. 아히야는 이라크로 가는 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호라산으로 이동했다가 그곳에서 피살당했다. 아히야의 유해는 아부 무슬림 알-주라사니이가 반란을 일으킬 때까지 교수대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부 무슬림은 아히야를 정중하게 매장해줬지만, 왈리드 2세가 나중에 이라크 총독에게 명령하여 유해를 파헤친 뒤 불태우게 했다.

744년 초, 그는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술라이만 이븐 히샴을 체포하여 감옥에 수감했다. 이에 분노한 이들은 칼리파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들이 할리드 이븐 아브드 알라에게 접근하여 함께 하자고 제안했지만, 할리드는 이를 거부하고 왈리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왈리드는 격분하여 음모자들을 모조리 죽였지만, 할리드 역시 음모에 가담했을 거라고 의심해 유수프 벤 오마르를 시켜 가혹한 고문을 가해 죽게 했다. 이에 우마이야 왕족들 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다.

744년 7월 17일, 사촌 마르완 이븐 무하마드는 왈리드가 다마스쿠스 외곽의 알 아그다프 요새에 머무는 틈을 타 군대를 선동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여 술라이만을 석방시킨 뒤 왈리드가 머물고 있던 알 아그다프 요새를 포위 공격했다. 그는 이에 맞서 싸웠으나 결국 피살당했다. 이후 왈리드 1세의 아들 야지드 3세가 새 칼리파로 등극했다.


[1] 요르단 동부 쿠사이르 아므라에 남아있는 왈리드 2세의 프레스코화[2] 기도 알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