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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맘루크 기병들 그림 |
영어로 Mamluk(맘루크) 또는 Mameluk(마멜룩), 아랍어로는 مملوك (맘루크, mamlūk), 복수형은 مماليك (마말리크, mamālīk)
옛 이슬람 국가들에 존재하던 정예 부대의 이름이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노예 군인으로만 구성되었으며, 맘루크는 소유된 자를 뜻한다. 비슷한 뜻의 굴람(غلام, Ghulam)이라고도 불린다. 맘루크는 주로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아랍어권 지방에서 쓰였고, 굴람은 이란 너머 중앙아시아 페르시아어권 및 이슬람계 인도 국가쪽에서 쓰였던 표현이다. 아랍어권에서는 흑인 노예병과 백인 노예병을 구분하여 백인 노예병은 맘루크, 흑인 노예병은 아브드나 지하디야라고 불렀으며 흑인 노예병들은 거의 보병이었다.
중동계 기병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후기의 중장기병에 해당한다. 사막에서 풀 먹고 자라는 기병을 키우는 것은 매우 힘들었기에 돈과 권위의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2. 기원
중앙아시아와 캅카스에서 끌려온 튀르크계 노예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 군사 훈련을 시켜 맘루크로 육성했다. 이들의 시초는 서기 9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바스 왕조의 제8대 칼리파 알 무타심은 모친이 튀르크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튀르크족 노예 군인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이들을 사병화하면서 페르시아계 군벌들과 권력 다툼을 벌였다. 이들은 노예로 매매되는 과정에서 가족과 흩어졌고, 어디 도망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칼리파에게 절대 충성했고, 칼리파가 이들을 아랍인 군인들보다 더 신뢰하자 아랍인 병사들과 튀르크인 병사들은 자주 유혈 충돌을 벌였다. 심지어 아랍인 시민들과 튀르크계 맘루크들이 바그다드에서 유혈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이 시점을 계기로 아랍인은 중동 이슬람 왕조의 군대 주력에서 점점 밀려나게 되었다.맘루크 중 상당수가 튀르크인이었으며, 자신들을 고용하고 훈련시킨 고용주 외에는 아랍-이슬람 제국에 별다른 연고가 없었기 때문에 자력으로 높은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신분이었다. 따라서 반역을 일으키지 않는 충성심 높은 군인으로서 아랍 군주들에게 각광받았다. 튀르크인 이외에도 체르케스인,[1] 슬라브인[2]도 많았으며, 캅카스의 튀르크인 중에는 슬라브계 백인과 혼혈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 출신의 흑인 기사와 이슬람 제국의 백인 맘루크가 싸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중세 초 후우마이야 왕조에서는 슬라브인 노예병들이 많았고, 후우마이야 왕조가 분열된 이후 슬라브계 맘루크 출신 군인들이 베르베르인이나 아랍인 군벌들과 전쟁을 치르며 독자적인 왕조를 세우기도 했다(타이파). 근세 이란의 쉬아 계열 12이맘파 제국인 사파비 왕조 초기에는 '키질바시'라는 광신도 집단에 의지했으나 키질바시들이 말을 잘 안 듣고 종파가 다른 지방 주민들을 학살하자, 대제 아바스 1세 이후, 조지아인 노예 병사, 즉 굴람들이 선호되었다.
11~13세기 아바스 왕조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돈으로 세금을 거두어 군인들에게 돈으로 봉급을 주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유럽 봉건제도와 유사하게 군인들에게 토지 수조권을 배부하면서[3] 지방에 할거하는 군벌 세력이 되었다. 아예 나라를 세우고 지배층이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중에는 인도 북부의 델리 술탄 왕조와 이집트에서 아이유브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맘루크 왕조가 있었다.
3.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정예 기병대
종종 '맘루크'라는 어휘는 중동 전반에 걸친 노예병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십자군 전쟁 시대 이후, 발흥한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맘루크 기병으로 한정하여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그만큼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맘루크 기병대는 '맘루크'의 대명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일대를 장악했던 맘루크 왕조의 맘루크는 기사의 장•단점을 보완한 중세 최강의 무력집단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부대였다. 수습생들은 전사로 인정받기 위해 마술, 창술, 검술, 궁술 등 4가지를 완벽하게 체득해야 했으며 이 중 하나라도 결점이 보이면 전사가 될 수 없었다. 특히 기마궁술은 여러 자세에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히도록 훈련받은 덕에 방향을 바꾸거나 활의 반대편에 있는 적도 몸을 비틀어 쏠 수 있었다. 물론 백병전 능력도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십자군과 몽골군이라는 당대 최강의 강적들을 모두 격파한 위엄쩌는 군대였다. 그리고 싸움만 잘하는 무식한 전사들이 아니라 기본적인 전술은 숙지해야 하고, 고위 장교들은 전략도 요구받아서 당대 이슬람 국가들의 참모나 책사, 공무원으로도 종사 했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티모시 메이는 이들을 "현대로 치자면 네이비 씰이나 그린베레 같은 존재들이었다"라고 호평했다.
물론 맘루크라고 무적은 아니어서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한테 패배하기도 했다. 1516년의 마르지 다비크 전투에서 맘루크군 80,000명 가운데 90%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오스만군은 모두 합하여 65,000명이었다. 다만 이것은 군사의 기량이라기보다 화약무기 대 기병이라는 무기 체계 때문이었으며, 예니체리를 뽑는 데브시르메 제도 자체가 맘루크 선발 과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었다. 중세의 군대가, 그것도 명장의 지휘를 받는 근세 르네상스 군대를 만나 패배한 것이지 맘루크가 약졸들이라 패배했으면 맘루크 왕조는 무너져도 현지 실권자들로서 맘루크 군부의 위세가 나폴레옹 시대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것이다.[4]
13세기에도 중앙아시아 호라즘 제국의 굴람 기병들이 칭기스 칸 군대에게 무력하게 대패한 경우도 있었으나, 이후 몽골이 시나이 반도까지 쳐들어 온 아인잘루트 전투 당시에는 십자군과 상대하면서 실력을 키운 이집트의 맘루크들이 몽골군을 쳐부수는 활약을 하기도 했다. 본래 몽골은 러시아로 쳐들어가면서 벌이가 시원치 않아 포로들을 노예로 팔아먹었는데, 이때 팔려간 노예들이 맘루크가 되어 몽골군과의 전투경험을 살려서 후일 쳐들어온 몽골군을 상대로 잘 싸웠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맘루크의 구성원은 대부분 튀르크족이었다. 러시아에서 유입된 인원들도 거의 킵차크 튀르크족 출신의 전직 용병들이었지 슬라브인은 적었다. 다만 몽골의 지배기를 거치면서 러시아인들의 전투방식이 변한 것은 사실. 이런 이야기가 퍼진 계기는 5대 술탄이자 전쟁영웅인 바이바르스 때문으로 그가 몽골군에게 포로로 잡혀 노예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크림 반도 출신의 튀르크계 킵차크인[5]이었다.
맘루크 왕조는 약 250년간 존속되었지만, 군주의 권한이 약하다보니 평균 군주 지배기간이 7년이라 할 정도로 암살이 빈번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의 맘루크 기병들 |
왕국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에 병합당했으나 맘루크들은 오스만 치하에서도 기득권을 계속 유지해 갔다. 18세기 말엽까지 베이, 즉 총독으로써 이집트를 중심한 아라비아 반도의 군벌로 잔존했는데, 이때의 맘루크는 시대에 뒤떨어진 전투능력과 전술을 갖춘 집단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핵서 군사 혁신을 거부하는 편이었다. 한 번은 맘루크 왕조에서 이집트 남부에서 납치한 흑인 노예들로 구성된 화승총병 부대를 구성하여 전력을 보강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맘루크들이 바로 폭동을 일으켜 훈련을 마치기도 전인 흑인 노예병들을 마구 학살하면서 없던 일이 된 적이 있었다.[6] 군사 기술 혁신이 계속 지체되면서 결국 19세기 초반 이집트 원정을 온 프랑스의 코르시카 출신 시골뜨기 황제한테 귓밥도 안 되고 발렸다.
나폴레옹의 맘루크 근위대 |
하지만 이들을 이끈 무라드 베이(1750~1801)는 포기하지 않고 영국과 손잡아서 공격하면서 프랑스를 곤란하게 만들었기에 이들의 용맹성이 인상이 깊었는지 나폴레옹은 자신을 따라 프랑스로 온 소수의 맘루크에 프랑스 출신 기병을 모아서 맘루크 근위대를 만들었다.[7][8] 이후 나폴레옹이 프랑스 본국내에서 벌어진 반발로 인하여 부랴부랴 프랑스로 가고[9]이 쇠한 틈을 타 독립을 선포해 맞서 싸웠으나 19세기 초 이집트 총독인 메흐메드 알리의 중재로 이집트가 독립을 얻어낼 때 알리에 의해 숙청[10]당하면서 거의 몰락하다시피 했고 그 와중에도 일부가 용케도 오늘날의 수단 지역인 세나르 술탄국으로 도주, 정권을 탈취하고 기회를 노리다가 1820년 다시 이집트를 공격했지만 끝내 패하고 역공을 당하며 완전히 몰락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 - 이집트 문명에서 드래군 기병을 대체하는
뜬금없게도 중기병이 아닌총기병으로, 노예병이라고 번역되었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 노예병이라고 번역되었다. 다만 2의 경우 유닛 디자인이 실제 맘루크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11] 그나마 3에서는 고증에 맞는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2에선 '사라센족'의 특수유닛으로, 3에선 용병으로 나온다.
인도 왕조 DLC 발매 이후 전면 리워크 된 힌두스탄의 특수 유닛인 굴람은 페르시아어 문화권(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이란)의 이슬람 왕조의 맘루크로 인도 왕조 DLC 발매 이전의 힌두스탄의 특수유닛이었던 코끼리 궁사를 대체한다.
-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시리즈 - 일 칸국에 맞서 싸운 바이바르스가 등장. 원조비사 때는 시나리오 3에 등장하는 주제에(이땐 징기스칸 사후라 왠지 다들 고만고만하다) 전투가 A이다. 징기스칸 4에선 전투가 무려 95라는 괴물 같은 수치이다(시나리오 3에선 최강이다). 참고로 전투력만 보면 징기스칸과 동급. 싸우게 되는건 아바카 칸인데 아바카가 능력이 고만고만하기 때문.
또한, 모티브가 된 병과 역시 시리즈 내에서 ‘돌격기병’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튼튼한 방어력과 강력한 근접공격력으로 준수한 성능을 보여준다.
- 마운트 앤 블레이드 워밴드 - 아랍 문명을 모티브로 하여 추가된 '사라니드 술탄국 (Sarranid Sultanate)'의 최종 테크트리 기병으로 등장한다. 사라니드의 실질적인 밥줄로, 상대적으로 보병과 궁병 전력이 다소 애매한 점을 맘루크라는 중기병이 보완해준다. 고증과 게임성이 비교적 좋은 게임답게 맘루크 자체 전투력과 방어력은 상당이 우수하다. 중형 랜스를 거의 다 무장하고 있고 말도 대부분 마갑이 있는 사라니드 돌격마를 타고 다니므로 중기병 끝판왕인 스와디아 기사와 견줄 수 있는 유일한 기병이다. 무엇보다 일정 확률로 양손 둔기를 부무장으로 지니므로, 포로 획득에도 유용하다. 당연히 내가 쓰면 좋지만 야전에서 적으로 만나면 진짜 골치 아프니 맘 단단히 먹어야 한다.
- 토탈 워 시리즈
- 미디블: 토탈워 - 이집트의 고유 병과로 등장한다. 다만 후속작이나 다른 대중매체들과는 달리, 스펙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서방의 고위 기병들과 싸우면 밀려난다.
- 미디블2: 토탈 워 - 전작처럼 이집트의 주요 병과로 등장한다. 맘룩 궁기병대-맘룩 중기병대-로얄 맘룩 삼종세트로 등장하며 특히 맘룩 궁기병대는 도시에서도 뽑을수 있어 이집트의 주력 유닛이 된다. 맘룩 중기병대나 마갑을 입힌 로얄 맘룩도 ap가 돼서 근접 깡통 따기는 좋지만 주무기가 랜스가 아닌 콘토스 즉 고대 기병창이라 돌격력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 그래서 랜스를 장비한 호라즘 용병을 충격기병으로 이들은 대기병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 엠파이어: 토탈 워 - 오스만 제국의 유닛으로 등장한다. 경기병으로 분류 되며 경기병 답지 않은 높은 능력치를 지녀 중반의 주력 기병이나 비싼 게 단점.
- 나폴레옹: 토탈 워 - 이집트 캠페인에서 등장. 초반 프랑스의 주적인 팩션이다. 유닛 능력치 자체가 그 그캠의 호구 오스만 제국 하위호환이라 더욱 약하다. 오히려 베두인 상대하기가 더 어렵다 느껴질 정도. 유닛으로도 있는데 경기병 치곤 좋은 능력치다. 역사적 전투인 피라미드 전투에서 가장 짜증나는 유닛으로 자칫하면 얘들한테 포병 다 썰릴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그 외에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도 맘룩 근위 기병대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유닛으로 나온다.
- 코삭(게임) - 후반기 맘루크를 다루는 만큼. 기병총도 들고 나온다. 특히 2편에선 황혼기 맘루크라는게 무색할 만큼 최강급 기병 스펙을 들고 온다. 나폴레옹이 용병으로 채용했다는 설정덕에 프랑스 진영에는 라이트 맘루크가 등장하는데, 본래 진영인 이집트 진영의 헤비 맘루크보다 다소 떨어지는 스펙으로 나온다.
- 크루세이더 킹즈 2 - 단 다른 역사전략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는 특정 세력이 사용하는 기병계 병과나 유닛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달리, 이집트의 봉신 용병단으로 등장한다. 봉신 용병단 특성상 이집트 술탄(왕급 작위)만 사용할 수 있으며[12], 일반 용병보다 고용비 및 유지비가 저렴하다. 그리고 특정 '병종'이 아닌 고용 가능한 '용병단'이라는 특성상 전원 중기병은 아니고 다양한 병종이 섞여있는 부대로 등장한다. 대략의 비율은 중기병 8% 궁기병 25% 경기병 33.3% 중보병 16.6% 궁병 16.6%.(경보병과 창병은 없다.) 기마술과 검술, 창술, 궁술에 능통한 엘리트 중장기병이 맘루크의 정체성인데 중기병 비율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의문이 당연히 들겠지만, 어쨌건 게임 내에서는 두 번째로 중기병 비율이 높은 용병단이다.(1위는 11%인 바랑기안 가드) 대신 기병 비율은 아주 높은 편이고, 게임의 병과 시스템상 토탈워마냥 각각의 유닛마다 별개의 스텟을 부여해줄수는 없으니... 어차피 현실의 맘루크도 전원이 항상 충격기병 임무를 담당한 것은 아닐 테고, 충격기병 역할을 하는 병사가 있으면 사격기병 역할을 담당하는 병사도 있고 기동성을 살려 정찰이나 추격 임무를 담당하는 경장기병도 모여서 부대의 유기적 구성을 이루었을테니 그런 부대 구성을 병종비율로 표현한 게임적 리얼리티라고 보고 용서해 주도록 하자. 부대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유닛'이 아니라 맘루크 자체가 하나의 대규모 부대로 등장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부대 총 인원에서 8%가 중장기병인 것은 충분히 높은 비율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도 중장충격기병만으로 이뤄진 부대를 운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당연히 이들을 보조할 기동성 있는 경장기병이나 보병도 함께 운용하긴 했을 것이다.
어쨌건 비잔티움의 바랑인 친위대와 함께 서유럽에 비한 동방세계의 번영을 잘 보여주는 요소이고, 이집트 플레이시 전략적으로 큰 이점을 안겨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바랑기안 가드와 함께 연이은 너프를 겪으며 부대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전술 발동에서도 중기병이 너프되면서 초기 버전과 같은 수준의 강력함은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고급병과 다수로 이뤄진 용병단을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강력한 이점이다. 특히 십자군을 자주 얻어맞는 이집트의 특성상 더욱 소중한 전력이지만, 십자군 시스템이 버프받으면서 맘루크가 있어도 이집트가 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작위(술탄위) 계승이나 클레임/파벌등을 통한 찬탈의 경우에는 계속 봉신 상태가 유지되지만 정복으로 이집트 왕위를 강탈한 경우에는 봉신에서 해제되니 주의할 것. 봉신 관계가 해제된 경우에는 고용비와 유지비 모두 훨씬 비싸진다. 그리고 봉신 상태인 경우, 실제 역사처럼 맘루크가 해당 국가의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예를 들어 이슬람 열린 상속제가 아니라 선거 상속제로 변할 정도로 왕권이 무너진 경우, 다른 영주들의 추대를 받은 맘루크나 굴람이 왕위를 먹어버리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실제 역사에 비한다면야 맘루크의 정치 개입이 거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덤으로 페르시아에는 자매품격인 굴람도 구현되어 있다. 단 굴람의 경우 맘루크보다 중기병 비율이 낮고 경기병 비율이 높은 편.
- 문명 6 - 아라비아의 고유 유닛으로 등장하며 기사를 대체한다. 일반적인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체력 회복 명령을 따로 내리지 않아도 매 턴이 끝날 때마다 체력을 자동으로 회복한다[13]. 즉 작정하고 체력 회복 관련 보너스를 챙겨 주면 다 죽어가던 녀석이 불과 1~2턴만에 쌩쌩한 상태로 전선에 복귀한다는 뜻이며, 전투력 보너스를 제공하는 술탄 살라딘이 사용하면 더욱 강력해진다.
[1]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후기에는 대개 체르케스인 노예가 맘루크가 되었다.[2] 주로 중세 초기 이베리아 반도의 알안달루스 지방에서 활용되었다.[3] 농민들과 농민들이 농사짓는 땅을 세트로 관리시키고, 세금을 대신 받아(수조) 봉급을 충당하게 한 것이다.[4] 해당 전투에서도 맘루크 중기병들은 오히려 오스만 기병들을 교전 초반에 박살내며 오스만 본진까지 밀고가는 등 승리할뻔 했으나 오스만군의 노련한 유인후 집중포격으로 간신하 전황을 뒤집을수 있었다.[5] 눈 색상이나 머리카락 색상 관련한 기록을 볼 때 슬라브계 혼혈로 추정[6] 당시 맘루크 입장에서는 위협을 느낄 만 했던 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수입되는 노예들의 가격은 캅카스 지역에서 수입되는 백인 노예에 비해 평균 시세가 1/10~1/20밖에 안 될 정도로 매우 쌌다. 또한 화승총 사격술을 가르치는 것이 마상무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적게 드는 것도 당연하다보니(이는 오늘날 총병이 보병의 스테레오 타입이 되게 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걸 놔둔다면 기병들인 자신들의 가치가 떨어질 것은 자명했고 그랬기에 개혁을 못하게 폭동까지 일으킨 것이다.[7] 이들은 독일에 주둔 중이던 당시 한 마을에서 향수병 걸린(...) 아랍인 양탄자 상인과 만난 적이 있다. 그 상인은 반가움에 맘루크 기병대원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에게는 불행히도 이들은 단지 아랍인처럼 군복을 입고 있는 제2 맘루크 중대의 프랑스인들이었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아랍어라곤 '알라'라는 말밖에 할 줄 몰랐다. 서로 신성하게 '알라, 알라'거리기만 할 뿐 그 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하는 상황이 한동안 이어진 후, 그 아랍인 상인은 맘루크 대원들이 '너무 경건해서 세속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한편 맘루크들이 스페인에 파견되었을 때에는 가톨릭 정체성이 매우 강한 데다 레콘키스타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아랍이라면 이를 가는 스페인인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출처: 나폴레옹의 제국 근위 기병대 (4) - 마멜룩[8]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직후인 1789년 9월 7일, 8세에서 16세 사이의 모든 어린 맘루크인들 그리고 같은 나이의 맘루크인들의 하인과 노예들에게 프랑스군한테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후 수개월에 걸쳐 약 200명의 맘루크인들이 프랑스군에 편입되었다. 그들은 나폴레옹을 따라 프랑스로 왔는데,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한 후 몇 년 동안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러시아 원정에서 탁월한 용맹성을 발휘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프랑스로 온 맘루크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통치를 종식시킨 나폴레옹에게 남다른 충성심을 보였다.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 프랑스군의 맘루크인들은 41명 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들은 과거 피라미드 전투에서 그랬듯이 중과부적인 것을 알면서도 나폴레옹을 지키기 위해 영국 기병대를 향해 돌진했다. 출처: 검은 몽테크리스토/ 톰 라이스 지음/ 한정은 번역/ 영림카디널/ 346쪽[9] 남은 프랑스군은 2년 가까이 저항했지만 오스만, 맘루크, 영국군의 공격에 휘말리고 덤으로 페스트까지 발병하면서 줄줄이 죽어나가 결국 전군 항복. 한편 이 패배로 로제타 석은 영국이 꿀꺽했다.[10] 메흐메드 알리의 아들 출정식에 초대한다고 맘루크들을 죄다 초대한 다음에 대학살을 벌였다. 심지어 그 자리를 피한 맘루크들까지 추적해서 잡아죽였을 정도.[11] 복장 자체는 좋게 말하면 고증에 얼추 맞으나, 공격방식이 검을 투척한다는 실제 역사의 맘루크와 다른 공격방식을 자랑한다. 심지어 공격타입은 근접 공격인데 사거리가 달려있는 원거리 기병인건 덤(...).[12] 단 일부 시나리오에서는 이집트의 술탄을 겸하는 칼리프(대표적으로 파티마조 시아 칼리프)의 봉신으로 등장하지만, 시스템상으로는 이집트 술탄위(k_egypt)의 봉신으로 처리되어 있다.[13] 체력 10을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많은데, 수치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체력 회복 명령으로 회복할 때와 같은 값을 적용받는다. 즉 중립 영토에서 10을 회복하지만 우호적인 영토에서는 15, 자신의 지구에서는 20, 적의 영토에서는 5 회복한다. 여기에 사제 진급이 있는 사도 유닛이나 위대한 과학자 아부알콰심 알자라위가 있다면 효과가 중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