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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키스타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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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강력한 정복 요인
2.1. 문자2.2. 화약2.3. 기병대2.4. 무기와 무술2.5. 병력과 외교2.6. 병원균2.7. 조선술과 항해술
3. 이에 해당하는 사람4. 창작물5. 아메리카 이외의 사례

1. 개요

Conquistador[1]

파일:external/www.clker.com/12795743151702834408spanish_conquistador_helmet_1.jpg

콩키스타도르의 상징인 모리용(Morion) 투구.

파일:스페인의 아즈텍, 마야 정복.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07c21bae39e51a4bffe6db9228c84477.jpg

파일:Conquistador_Bastard.jpg

당시 콩키스타도르의 무장과 의복. 맨 좌측의 군인은 로델레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15-17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스페인인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존재하는 여러 국가의 조상이기도 하다. 포르투갈 출신 정복자를 포함시키기도 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타 지역을 침략한 정복자를 포함시키기도 하지만[2] 보통은 아메리카를 침략한 스페인계 정복자를 말한다.[3]

콩키스타도르는 스페인어정복자[4]라는 뜻이며 어원상 레콩키스타와도 약간 연관이 있다. 이베리아 '본토 수복'은 재정복, 신대륙은 정복.[5] 콩키스타도르는 남성형이며 탐험대에 여성도 소수 동행했기 때문에 여성형인 콩키스타도라(Conquistadora)도 종종 쓰였다. 복수형은 콩키스타도레스(Conquistadores).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국가들과 800년간의 레콩키스타 전쟁을 진행하는 동안 스페인은 막대한 수의 군인들을 유지해야 했으며 이슬람 세력과의 지속적인 전쟁 때문에 병사의 전투력은 월등하게 높아졌다. 그런데 그라나다를 함락하여 일단 레콩키스타를 완수하고 나자, 전쟁은 소강 상태가 되고 레콩키스타에 참가하던 군인들은 일자리가 없어졌다.[6][7]

그 와중에 스페인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하였고, 인도에는 금은이 곳곳에 잔뜩 쌓여 있다는 정보가 퍼지게 된다. 이들 용병은 과감하게 배(船)를 사서, 콜롬버스를 따라하여 대서양을 건너 금을 찾아 그들이 '인도'라고 믿고 있는 신대륙으로 모험을 떠났다. 그 결과 단 수백 명의 스페인 용병이 아즈텍 제국잉카 제국, 마야 문명, 중남미의 여러 원주민 부족을 토벌하고[8]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전역에 스페인 식민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식민제국에서 스스로 왕을 칭하거나 귀족으로 칭하면서 온갖 횡포를 부렸고 현지인을 마구잡이로 약탈, 학살을 벌였다. 그러다가 수탈할 물자가 없어지면, 원주민을 노예로 부려먹으며 그들의 농장이나 광산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부를 얻으려고 하였다. 스페인 중앙정부에서 이를 제지하였고 많은 콩키스타도르의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몇몇 콩키스타도르는 스페인 중앙 정부에 반항하지만 이들은 진압당했고, 결국 정복지에 중세 유럽의 장원과 비슷한 엔코미엔다(Encomienda)를 받고 엔코미엔다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며, 엔코미엔다에서 거둔 세금을 본국에 납부할 의무를 부여받았다.[9] 하지만 본국과의 거리가 멀었던 탓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원주민 인권 문제도 제기되자 급기야 스페인 왕실조차도 바야돌리드 논쟁 이후, "그만해라, 이제 인디오도 제국의 신민인데 마음대로 죽이고 그러지 마라."라고 통첩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본국에서 보낸 관료들로 말미암아 중앙정부의 간접적인 영향력 안에 놓인 지역은 안정된 정치 체제 하에 놓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 제국 정부에서는 콩키스타도르가 세습 영주가 되는 것을 경계하여 부왕을 임명하고 직접 통치로 전환했다. 본토에서 파견된 고관들은 페닌술라르였고 콩키스타도르 후손을 포함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출생한 유럽인은 "원주민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으니, 순수한 유럽인은 아니다."라는 논리로 크리오요로 구분했는데, 수 세기 동안 크리오요는 불만을 품다가 19세기에 와서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자결권 논리를 자기들에 맞게 차용해서는 스페인을 아예 몰아내어 현재의 중남미에 독립국가들을 세운다.

크리오요는 통제하던 스페인에서 벗어나자 대놓고 원주민들을 탄압하며 토지를 빼앗았고,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극단적인 혼란은 이런 콩키스타도르가 만들어낸 산물이다.[10] 콩키스타도르의 초기 근거지였던 쿠바푸에르토리코는 남미/중미 본토와는 달리, 스페인이 좀 더 오래 지배하지만 결국 미국-스페인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잃는다.

에르난 코르테스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한 콩키스타도르들은 신분이 거의가 하급 귀족이나 그저 입에 풀칠만 할 정도의 하류층 출신으로 학식이 매우 얕았다. 이 점에선 19세기 후반 골드 러시 때의 개척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어느 나라든지 식민지로 이주하는 본국인이 상류층 출신인 경우는 드물다.[11] 코르테스도 가난한 하급 귀족이나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살라망카로 유학을 가서 (대학교육을 받았다, 법학사 자격을 땄다, 법원 서기로 근무했다 등등 주장이 엇갈려서 확정할 수가 없지만) 고등교육을 받았고, 아메리카로 넘어온 뒤 20대를 고스란히 행정 관료(시청 서기로 시작했다.)로 보내서, 고급 어휘와 수사법, 행정능력과 정치 감각을 두루 겸비했다. 이걸로 카를 5세의 환심을 얻었으며, 자기 아래 원주민들을 대하는 방식도 여느 콩키스타도르들과 달라서 봉건제하의 영주와 영민 관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잉카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서명도 못 해서 자기 이름을 새긴 판에 잉크를 묻혀 서명을 찍을 정도의 문맹이었다. 대개 하층민 출신들이 신분 상승을 추구했다는 점 때문인지 칠레 역사학의 거장 중 한 명인 가브리엘 살라사르(Gabriel Salazar) 교수는 이들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왕, 교회, 대상인들의 점점 더 심해지는 억압 앞에 무너져가는 이베리아 반도 촌락 민주주의를 아메리카에서 되살린 민주주의의 중흥자'라는, 원주민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2015년 7월 9일, 볼리비아 원주민 대표들과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콩키스타도르 시대부터 교회가 원주민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지른 중대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2. 강력한 정복 요인

파일:궁극적_요인.jpg

콩키스타도르의 연속적인 승리에 대해서 단순히 남미 원주민 동맹 세력의 협조 때문이라든지, 스페인의 무기나 말(馬)이 인디오들에게 생소했던 데 기인한 심리적 효과 때문이라고, 또는 잉카 인이 콩키스타도르를 비라코차 신(神)의 현신(現身)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 물론 초기에 피사로와 코르테스가 성공을 거두었을 때 원주민 동맹 세력이 모여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콩키스타도르는 처음에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여러 차례 놀라운 대승을 거두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원주민들로 하여금 저항은 부질없는 짓이며 차라리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편에 붙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을 심어주지 못했다면 그 원주민들의 대부분은 아마 동맹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콩키스타도르가 승리를 거두게 된 직접적 원인에는 총기, 철제 무기, 말(馬)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 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 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 집권적인 정치 조직, 문자 등이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 균, 쇠>는 그러한 직접적 요인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 요인들 덕분에 근대의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요인들은 인류가 총기나 철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일부 비 유럽계 민족들이 팽창한 배경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살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어째서 그와 같은 직접적 이점들이 북미, 중남미보다 유럽에 더 편중되었을까? 어째서 잉카인은 총과 강철검을 발명하거나, 말 못지않게 빠른 짐승을 타고 다니거나, 유럽인들에게 저항력이 없는 질병을 지니거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와 발전된 정치 조직을 만들어내거나 수천 년에 걸쳐 기록된 역사로부터 경험을 얻거나 하지 못했을까? 그와 같은 의문들은 궁극적 인과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이다. 이는 곧 훨씬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 수를 의미했다.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겨났고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그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는 중앙 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는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는 복잡하고, 기술적으로는 혁신적인 정주형(定住型) 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가축화/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철제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거나 끝내 발달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궁극적인 원인이 된다.[12]

2.1. 문자

콩키스타도르가 중남미에 올 수 있었던 또 한 가지의 요인은 문자의 존재였다.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보다 문자를 사용할 때 훨씬 더 멀리, 더 정확히, 더 자세히 전파할 수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와 코르테스의 아스텍 정복에 대한 정보가 곧 스페인으로 전해지면서 콩키스타도르가 남미로 몰려들었다. 반면 아즈텍 제국상형 문자(라고 할 만한 ), 잉카 제국결승 문자[13]로 정보를 기록하거나 전달하는 데 그쳤다.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원주민도 종이와 서적의 개념까지는 알고 있었지만[14] 오로지 지배층에서만 향유되었으며 널리 퍼지지도 못했고, 인쇄술도 발달하지 못했다.

편지나 소책자 등은 남미로 가고자 하는 동기뿐만 아니라 항해에 필요한 상세한 지식도 제공했다. 피사로의 업적을 최초로 출판한 보고서는 그의 동료였던 크리스토발 데 메나의 저서로 아타우알파가 처형된 지 9개월 이후인 1534년 4월에 출간되었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유럽 각국의 언어로 신속하게 번역되었고, 그로 인해 스페인의 이주민들이 남미에 더 많이 유입되어서 현지에서의 피사로의 지배력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2.2. 화약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31px-Harquebus_(PSF).png

널리 알려진 대로 콩키스타도르의 화약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거의 마술이나 신의 힘과 같이 보였으며, 몇몇 경우에는 단지 화약을 터트려서 폭음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무릎 꿇릴 수 있었다.

하지만 원주민들도 이들과 계속 싸우면서 익숙해지자 화약에 일방적으로 겁먹지는 않았다. 압도적인 화력과 우세한 기술력으로 원주민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15~17세기의 총과 대포는 파괴력과 연사 속도가 좋지 않았고, 이 조잡한 화약 무기들은 습한 기후 속에서 신뢰성이 떨어졌으며, 본국과의 거리 때문에 부품 보급도 힘들었다. 애초에 그 시대의 느려터진 화약무기의 장점은 갑옷을 관통하는 파괴력인데, 떡장갑을 두르는 유럽인들과는 달리 금속 갑옷 자체가 없는 원주민에겐 과잉화력이었다. 또한 가지고 온 화약의 양 자체가 제한적이었기에 결국 그들은 화약을 만들기 위해 화산에 올라 유황초석을 채취해야 했고, 포탄이 떨어지자 임시로 돌을 깎아 만든 사석탄을 써야 했다. 특히, 떨어지는 연사력 때문에 쏘고 나서도 근접전으로 싸워야 했다. 거기다 총기도 부족했기에 석궁을 대타로 써야 했다. 게다가 원주민들은 활을 잘 쏘고, 창 투척 솜씨도 뛰어나 스페인군의 쇠뇌와 총에 생각만큼 밀리지 않고 싸웠다.

유럽인들이 순전히 화력만으로 원주민을 완전히 압도하게 된 것은 전염병으로 인구가 그들보다 많아지고[15] 기관총자동소총이 발명된 19세기 후반 이후이다. 마찬가지로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아메리카 백인 정권이 남부의 원주민들을 완전히 복속시킨 것도 그때의 이야기이다.

2.3. 기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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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은 보병보다 행동 반경이 훨씬 넓었고, 기습 공격도 가능했으며, 방어 병력이 더 우세해지기 전에 재빨리 퇴각할 수도 있었다. 군마(軍馬)가 있었기 때문에 콩키스타도르는 소수의 탐험가를 이끌고 아즈텍 및 잉카 제국을 전복시킬 수 있었다.

콩키스타도르가 말을 활용하여 얻은 엄청난 장점은 목격담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기마병은 인디오의 파수꾼이나 정탐꾼이 배후의 아군에게 알리기 전에 간단히 앞지를 수 있었으며, 도망가는 인디오 역시 금방 쫓아가서 쓰러뜨리고 죽일 수 있었다. 말이 돌진하여 부딪힐 때의 엄청난 충격, 조종하기 쉽다는 점, 그리고 신속한 기동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탁 트인 곳에서 인디오 보병들은 거의 완패당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가져다 준 효과는 맨 처음 말에 맞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잉카인의 대반란이 있었던 1536년 무렵에는 잉카인도 기병대에게 대항하는 요령을 알게 되었다. 험한 계곡 위에 매복하고 있다가 바위를 굴려 스페인 기병대를 전멸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보병처럼 잉카인 역시 넓은 개활지에서는 기병대를 이길 도리가 없었다. 아타우알파의 뒤를 이은 잉카 황제 망코 잉카 유판키의 가장 뛰어난 장군 키소 유팡키는 1536년에 리마에서 콩키스타도르를 포위하고 그 도시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기병대 두 부대가 평지에서 훨씬 더 많은 인디오에게 돌격을 감행했고 첫 공격에서 키소를 비롯한 휘하 지휘관들을 모두 죽여서 잉카군을 몰아냈다. 그리고 망코가 쿠스코에서 콩키스타도르를 포위했을 때는 26명의 기마병이 돌격하여 황제의 친위대 중에서도 최정예 병력을 초토화시켰던 일이 있었다.

따라서 철제 무기를 갖지 못한 잉카 보병들에 비해 콩키스타도르가 말, 철제 무기, 갑옷 등에서 얻은 이점들을 고려해볼 때 콩키스타도르가 엄청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그닥 놀라운 일도 아니다.

2.4. 무기와 무술

파일:external/www-tc.pbs.org/battle_image.jpg

어쩌면 화약이나 말(馬)보다도 더 강하고 실용적이었던 무기는 바로 철제 창칼, 갑옷이었다.[16]

유럽에서도 고품질로 명성이 높았던 스페인강철 갑옷은 콩키스타도르의 가장 든든한 무기였다. 그 명성이 고대 로마 시대로부터 이어지는 톨레도 강사이드 소드는 휘두를 때마다 원주민의 팔다리를 손쉽게 잘라냈으며, 이렇게 절단된 팔다리가 뒹구는 지옥도에 대한 공포는 아즈텍인이 그린 기록화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원래 유럽에서는 호신용/암살용이 아닌 전투용 창검은 갑주에 부딪혀서 칼날이 이가 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날을 그렇게 예리하게 세우진 않았는데, 중남미에서는 어차피 원주민이 입을 수 있는 갑주라고 해봤자 면과 새의 깃털 등으로 만든 갑옷인 틀라우이스틀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갑옷째 베어버릴 수 있었다.[17] 그래서 콩키스타도르들은 자신들의 창검을 면도칼 수준까지 날을 세울 수 있었고, 몽둥이나 돌칼 정도밖에 없던 석기시대의 한복판에 등장한 날선 강철검은 가히 파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18] 여기에 콩키스타도르는 원래 강철 갑옷을 착용하였으나, 나중에는 무겁고 덥다는 이유로 가죽이나 천으로 된 패딩형 갑옷을 갈아입기도 하였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원주민의 무장에 대한 방어력은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더운 기후에 그런 패딩형 갑주도 제대로 안 차다가 큰 피해를 입었으며, 등갑(라탄)같은 재질이 있었으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가공이 끝난 라탄 공예품은 현대의 칼과 가위로도 해체가 매우 어렵다. 자세한 것은 등갑병 참조.

반면에 스페인의 철기에 맞서는 원주민은 그 당시에도 신석기 시대 또는 동기 시대 수준의 무장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의 무기는 나무이었고 방어구는 가죽이나 직물으로 된 것이었다. 전사 계급에게 최상의 무기는 흑요석 무기였는데, 이 흑요석 자체는 오늘날 외과수술용 도구에도 사용하는 예가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고 따라서 원주민끼리의 전쟁에서는 충분히 살상력이 높은 무기였으나, 강철 갑옷을 입은 상대에게는 피해를 거의 주지 못했다.[19] 결국 원주민으로서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콩키스타도르의 강철제 무장과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도 중남미에 철광석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20] 분명히 철광석은 매장되어 있었고 금은을 채굴, 제련하여 수준 높은 금속공예를 이룩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철광석을 캐서 주물을 만들어 무기를 제작하는 기술은 미처 익히지 못했던 것이다. 청동기를 흔하게 사용했던 원주민 문명인 타라스칸(푸레페차) 왕국이 있었지만 청동기의 상용화 및 무기화에는 실패했다.

원주민은 슬픔의 밤에서 콩키스타도르로부터 화기와 무구를 대량으로 노획하기도 했지만, 콩키스타도르가 사용법을 철저하게 비밀로 했기에[21]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대포가 주어졌어도 사용법을 몰라 쓸 수가 없었으며, 알았더라도 화약을 제조하는 방법도 몰랐으므로 어차피 지속적인 사용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은 검술을 몰랐던 탓에 막대기에 매달아 처럼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쇠뇌 역시 사용법을 몰라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술 개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당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검술은 오로지 적을 인정사정없이 죽이기 위한 실전 검술이었다. 특히나 대다수의 콩키스타도르는 본국에서 700여 년간 지속된 레콩키스타에 참여[22]해온, 단련된 최정예 용병들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전통적인 아즈텍 군대의 전략과 전술은 적을 생포하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 전투는 반드시 상대를 죽이지 않더라도 기량의 격차를 확인하면 승패가 결정되었고, 불복하더라도 두들겨패서 기절시켜 포로로 만들었다.

이러한 전투 문화가 발달한 까닭은, 대규모의 인신공양 풍습을 가지고 있던 아즈텍 문화의 특성상, 적을 죽이는 것보다 생포하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신공양이 아니더라도 포로를 생포해서 그 노동력을 이용해야 했다. 아즈텍은 유라시아와는 반대로 같은 대형 가축이 없었기 때문에 농사와 운송을 전적으로 인력에 의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포로를 죽이는 것보다는 투항시키는 것이 더 유리했던 것이다. 구대륙에서는 적의 군대까지 다 살려서 잡아가는 것보다는 일단 적국 군대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어서 무력화시켜 민간인들을 몽땅 노예로 잡아가거나 약탈, 혹은 장기적 지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아예 행정구역에 편입을 시켜버려서 지속적으로 세금을 내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겠지만 아즈텍인은 지속적으로 노예를 빨아먹을 농장을 만든다는 괴상한 국가 운영을 했다. 이는 스파르타에서도 사용했던 방법이지만, 많은 비율의 노예가 인신공양으로 실질적인 의미 없이 녹아서 없어져버리니 스파르타보다도 훨씬 노예에 쪼들리는 상태가 되고, 결국 이러한 방식의 군대까지 나오게 된 셈이다.

아즈텍 전사는 뛰어난 운동 능력과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주변국과 벌인 '꽃 전쟁'에서는 대개 승리했지만, 그들의 무술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생포한다는 규칙 안에서만 효과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때까지 해왔듯이, 콩키스타도르의 급소를 노려서 죽이기보다는 완력으로 제압하거나 기절시켜서 데려가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에 아즈텍 전사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게다가 기껏 적을 제압하더라도 후방으로 끌고 가던 와중에 다른 적들이 달려와 구출해버려서 놓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코르테스 본인도 한 전투에서 3번이나 이 일을 겪었다. 결국 아즈텍인들도 후기에는 생포를 고집하지 않고 살생을 위주로 한 전투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수백년 동안 발전한 구대륙 전쟁 기술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무엇보다도 적을 그 자리에서 살해하기보다는 생포하려는 오랜 관습을 하루아침에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기 때문에, 콩키스타도르를 잡았다가 놓치는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2.5. 병력과 외교

비록 콩키스타도르의 무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기는 했지만,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은 어마어마한 인구수라는, 대단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23] 게다가, 원정군은 본국과의 거리가 멀어 본국의 보급과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반쯤 고립되어 싸웠다. 콩키스타도르의 정복이란 재향군인회민간군사기업이 원주민 영토로 우르르 몰려가서 깃발 꽂고 본국에 보고하는 형태였다.[24]

압도적인 숫자의 원주민 속에서 콩키스타도르들은 강력한 무기를 가졌음에도 항상 고전해야 했다.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대는 슬픔의 밤 때 인구수 수십 만인 테노치티틀란에서 그들을 쫓는 수만의 분노한 군중들 속에서 추격을 뿌리쳐가며 달아났으며, 피사로의 잉카 원정대는 망코 황제가 쿠스코를 포위공격했을 때, 스페인인+동맹 부족의 도움으로 겨우 버텼다. 오히려 객관적인 시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죽을 만큼 고생했다. 중과부적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들은 주변 부족들과의 갈등내분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는 영리한 정치적 술수를 썼다. (일종의 디바이드 앤 룰) 에르난 코르테스는 이 전략의 일환으로 부족 족장의 딸인 말린체와 결혼하고 슬하에 득남까지 했다.[25] 코르테스뿐만 아니라 다른 콩키스타도르들도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거나 첩으로 두곤했다. 그러다보니 중남미의 인구 과반수를 차지하는 메스티소들이 이때부터 탄생했다.

게다가 콩키스타도르들은 아즈텍 제국에 반기를 드는 부족, 즉 같은 적을 둔 동맹으로 회유가 가능할 법한 부족들에게 그들이 이전에 먹어보지 못한 멋진 음식을 대량으로 베풀었는데 그게 바로 돼지고기였다. 아즈텍 일대에는 대형 동물이 적었기 때문에 고기를 맛보려고 인신공양까지 감수하던 상황이었는데, 원정군이 제공한 맛도 좋고 양도 무지막지하게 많은 돼지고기를 보자, 당연히 눈이 휘둥그래질 수밖에 없었고[26]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서라도 콩키스타도르와 친분을 맺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은 콩키스타도르들의 정복에 어마어마한 도움을 주었다. 원주민들은 서로가 같은 민족, 공동체라는 관념이 없었다. 아즈텍도 명목상으로는 제국이라지만, 실상은 테노치티틀란이라는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텍스코코, 틀라코판의 3개 도시가 동맹을 맺어 타 부족들을 무력으로 복속시킨 형태로, 실질적으로 도시 연맹에 지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동맹조차 중심인 테노치티틀란이 스페인인들에게 밀려 위기에 처하자, 텍스코코는 동맹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콩키스타도르 측에 가담할 정도로 결속력이 없었다. 게다가 복속된 나머지 부족들은 무력으로 제압된 데다가 인신공양에 막대한 공물까지 착취당했던지라 아즈텍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특히나 인간 목장 취급당한 틀락스칼텍은 절대로 코르테스를 배신하지 않을 정도로 아즈텍을 무너뜨리기 위해 철저히 협조했다.

아즈텍이 하나의 통합된 정치 체계가 되어 맞섰다면야 콩키스타도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즈텍에게 틈만 나면 공격당해서 잡아먹히거나 잉카에게 강제로 복속당한 부족들은 노예 취급당하며 그들의 압제에 시달려서[27] 증오하고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맞설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즈텍과 잉카 내부도 황위 다툼으로 자신들끼리 내전을 벌이다 보니 단합이 더욱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외부 세력인 콩키스타도르들이 원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약탈만 하고 다녔다면야 남미 원주민들이 모두 뭉쳤겠지만 콩키스타도르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자신들이 살아남아 이득을 볼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부족 간의 갈등 관계를 훌륭하게 이용할 줄 알았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즈텍에 반기를 든 원주민들은 콩키스타도르가 어떤 능력을 지닌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어떤 무시무시한 도구와 기술을 가졌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무서움을 믿고 콩키스타도르에게 협력했다.

잉카에서도 잉카 제국에 강제로 복속된 부족들이 콩키스타도르와 협력하였다. 피사로 형제와 알마그로가 도착한 시점에 병으로 급사한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들인 우아스카르아타우알파가 벌인 내전[28]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민심이 흉흉한 정세와, 안데스 산지를 막 평정한 잉카[29]에 복속된 부족들의 불만을 이용했다. 잉카는 아즈텍보단 오래 버텼으나, 망코 잉카가 일으킨 대규모 봉기가 실패한 이후로는 빌카밤바망명정부를 세우고 연명해야 했다.

물론 콩키스타도르들이 항상 신사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라서 경우에 따라 협박을 쓰기도 했다. 특히, 원주민 마을을 침략해서 여성과 아이들을 전부 인질로 잡고는 원주민 남성들에게 '우리 말 안 듣거나 길 안내 안 해주면 얘네들 다 죽일 거야'라고 협박하는 방식을 많이 썼다. 이에 일부 원주민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고 거짓말로 속여서 엉뚱한 곳을 소개해 그들을 지치게 하거나 돈낭비를 하도록 만들었다. 원주민이 정말 길을 제대로 몰라서 헤맨 경우도 있었지만.[30] 더 심하게는 매복하여 콩키스타도르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콩키스타도르 역시 바보가 아니라서 딴맘먹는 원주민들의 속셈을 곧잘 눈치챘고, 속을 때마다 본보기로 속인 원주민들을 공개처형하거나 군견밥으로 던져주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반항 의지를 꺾었다. 게다가 매복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면 나중에 군대를 조직하여 해당 마을을 철저하게 아작냈다.[31]

2.6. 병원균

정복 전쟁에서 말(馬)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가축화된 동물과 더불어 인간 사회에서 진화한 병원균이었다. 질병은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므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 중 물리적인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에서 발생한 병원균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 전쟁사는 한 가지 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건 바로 가장 치명적인 병원균을 적군에게 잘 퍼뜨리는 군대가 승리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세균도 기본적으로 다른 생명체와 똑같이 생존하고 번식한다. 번식의 과정은 가장 효과적으로 새끼를 낳아 그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장소에 전파시킬 수 있는 숙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세균을 말할 때 '전파'라는 용어를 수학적으로 정의한다면 원래의 환자 한 명에 대해 새로 생겨나는 감염자의 수라고 할 수 있다. 감염자가 설사 또는 기침, 재채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질병의 증상'이지만 병원균의 관점에서 보자면 병원균을 퍼뜨리기 위한 영리한 전략이다. 가끔 병원균 때문에 숙주가 죽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일 뿐이다. 그러나 환자가 살아있는 동안 다음 피해자에게 감염되는 세균이 대량 유포된다는 이점이 있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은 원래 동물에게 퍼져 있던 매우 유사한 조상 병원균에서 나온 것인데, 각각 돌연변이를 거쳐 인간의 병원균으로 특수화되었다. 동물을 가축화한 사람들은 새로 변이된 병원균에 제일 먼저 희생되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곧 새로운 질병에 대하여 상당한 면역력을 발달시켰다. 그렇게 부분적으로나마 면역성을 지닌 사람들이 일찍이 그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없었던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당장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여 심한 경우 전체 인구의 99%까지 몰살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가축화된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은 나중에 유럽인이 미주, 호주, 남아공, 폴리네시아 등지의 원주민을 정복할 때에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수렵 채집인은 야영지를 자주 옮겨서 세균이나 기생충의 알이나 유충이 축적되어 있는 분뇨 더미를 남겨두고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농경민은 정주형 생활을 하면서 오물 옆에서 살았기 때문에 각종 병원균이 한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식수로 옮겨가기도 쉽다. 자연히 수렵채집인에 비해 농경민이 더 자주 전염병에 시달렸고 그렇게 희생을 치르면서 면역력이 높아진 것이다.

2.7. 조선술과 항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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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키스타도르는 본격적인 대양 항해용 선박(캐러밸, 갤리온 등)[32]을 거느렸으며 이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원주민들을 게릴라 전술로 공략하면서 배로 도주한 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달아나는 전술을 쓰기도 했고, 조선술과 항해술이 뛰어났던 콩키스타도르가 현지에서 직접 배를 건조해서 굴리기도 했다. 특히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었는데 그걸 콩키스타도르들은 배로 주파하기도 했다. 반면, 원주민들의 선박 기술은 콩키스타도르들의 상대조차 될 수 없을 만큼 조잡해서 바다를 항해하기는커녕 기껏해야 카누를 만드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원주민들은 캐러밸을 처음 봤을 때 흡사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과 같았다고 묘사했다고.[33]

3. 이에 해당하는 사람

4. 창작물

온라인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유저 가문이 모험을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이쪽은 실제 역사처럼 원주민들을 썰고 다니는게 아니라 각종 몹들을 썰고 다닌다.

게임 문명 시리즈에서는 고유 유닛이라는 시스템이 처음 생긴 문명 3 이래 최신작 문명 6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의 고유 유닛으로 개근했다.

문명 3에서는 탐험가를 대체하는 중세 시대 정찰 유닛인데, 생산 비용이 훨씬 비싼 대신 전투력이 없는 탐험가와 달리 약간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원판인 탐험가도 맵을 대부분 탐험한 뒤에야 나오는 유닛이라 딱히 쓸 일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콩키스타도르도 별로 뽑을 이유가 없다. 전투력을 보고 뽑자니 이게 고대 시대 유닛인지 중세 시대 유닛인지 헷갈리는 수준이고.

문명 4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기병 유닛인 퀴라시에를 대체하는데, 기병 유닛임에도 지형에 따른 방어력 보너스를 받으며 근접 유닛을 상대로 강력한 전투력 보너스를 받는다. 이쪽은 아직 중세인데 이웃집 스페인이 콩키스타도르를 중심으로 쳐들어왔다면, 막아내기란 정말로 어렵다. 기병 계통 유닛을 상대하라고 있는 유닛인 장창병을 데려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전투 코끼리를 뽑을 수 없다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다만 다음 유닛인 기병대를 생산할 때까지 연구할 기술이 얼마 없기 때문에,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은 게 흠이다.

문명 5에서는 중세 시대의 기병 유닛인 기사를 대체한다. 생산 비용이 비싸지만 시야가 넓고 도시를 공격할 때 전투력 페널티를 받지 않으며 승선 시 방어력이 증가하고 스페인의 수도가 없는 대륙에서는 도시를 세울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단독으로 다른 대륙으로 이동해 야만인이나 뒤처진 문명들을 때려잡다가 도시를 세우는 등 정복자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아낸 유닛으로, 시야가 넓다는 것도 주요한 지점 부근의 언덕에 몇 기 세워 놓으면 쏠쏠하게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전투력 부분에서는 보너스가 없다시피하다는 것. 물론 도시 공격 페널티가 없긴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영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시야가 넓다는 것도 몇 기 뽑으면 그만인지라 생산 비용이 비싸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문명 6에서는 3편에서 처음 나온 이래 처음으로 말에서 내려, 르네상스 시대의 머스킷총병을 대체하는 보병 유닛이 되었다. 생산 비용이 약간 비싸지만 전투력도 높으며, 종교 유닛과 같은 타일이나 인접한 타일에 있을 경우 전투력 보너스를 추가로 받고 도시를 점령하거나 점령할 때 인접한 타일에 있다면 그 도시에 스페인의 종교를 바로 퍼뜨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도자인 펠리페 2세에게 다른 종교를 믿는 문명과 전투 시 전투력 보너스를 제공하는 특성이 있고, 여기에 위대한 장군의 보너스에 종교 교리에서 나오는 전투력까지 챙기면 어마무시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상 그렇다는 얘기고, 실제로 써먹자니 종교도 창시해야지 선교사를 뽑을 신앙도 모아야지 콩키스타도르를 뽑을 질산칼륨도 모아야지 이것저것 신경쓸 게 산더미다.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에 등장하는 종족인 쿠나리가 여러모로 콩키스타도르와 유사하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의 2와 3에서 유닛으로 등장한다. 각각 스페인의 고유 유닛, 원주민 건물인 예수회와 동맹맺으면 생산이 가능한 고유 유닛으로 등장.

만화 블리치에 등장하는 아란칼의 모티브는 콩키스타도르로 보인다. 스페인어 용어가 쓰이고, 만화판 22권의 부제가 정복자들이다.

대체역사물 작가인 해리 터틀도브의 초기 단편 가지 않은 길에서는 콩키스타도르 수준의 무기체계와 문명을 가진 테디 베어형 외계인들이 초광속 항행 기술과 중력 조작 기술을 익혔고[39], 이후로 원시적 범선형 우주선을 만들어서 열등한 행성을 정복해나가다 인류와 맞닥뜨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작중 묘사를 보면 다른 소위 발전한 외계 문명들도 기술 수준이 잘해야 테디 베어와 비등비등한 수준이라는 뉘앙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한 열등한 야만인으로 가득차 보이는[40] 행성은 바로 2039년의 지구. 결국 각국에 투입된 화승총 부대가 겁도 없이 인류 사절단에게 선제 공격을 가하고, 곧바로 인류의 제트 전투기와 최신 자동소총에 쳐발리고 억류, 우주 항해 기술과 중력 제어 기술을 털려서 온 우주의 외계인들에게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가 펼쳐진다.[41]

Hand of Fate에서는 분명 게임 배경이 칼과 마법이 판치는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인데 유독 스켈레톤 진영만 시대를 앞서간 콩키스타도르 무장과 무기를 쓰는 문명을 가지고 있다. 모리용을 쓰고 화승총을 발사하는 스켈레톤 화승총병들과 레이피어로 무장한 스켈레톤 퀸은...

가면라이더 갓챠드에서 글리온이 '콩키스타 케미 돌'로
연금 소체 즉, 부식이나 열화 등 모든 상태 변화를 배제한다.

페그오에서 레지스탕스의 라이더의 스킬로 나왔다.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가 이들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가 콩키스타도르를 모티브로 만든 게임이다. 카리브 해 일대의 스페인 정복 이후를 다룬 대항해시대 4의 가상 인물 디오고 데 에스칸테가 이러한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애니메이션 합신전대 메칸더 로보에서 적 세력의 명칭인 콩키스타 군단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미니어처 게임 Warhammer(구판)에서는 독스 오브 워 캐릭터인 마르코 콜롬보, 엘 카다보, 페르나도 피라초가 콩키스타도르 컨셉이다. 단, 마르코 콜롬보는 모티브인 콜럼버스보다는 우호적으로 리자드맨과 접촉해 틸레아 식민지 섬을 개척하는데 성공했지만 엘 카다보와 페르나도 피라초는 리자드맨들과 교전을 벌였다.[42]

토탈 워: 미디블2에서는 이베리아 팩션(포르투갈, 스페인)이 신대륙에 진출시 양성 가능하다. 보병 버전(하마 콩키스타도레)과 기병 버전(콩키스타도레)이 있고 모두 1티어급 성능을 자랑한다. 다만 신대륙에서밖에 생성이 불가능한 것이 유일한 단점. 이를 심화시켜 확장팩인 킹덤즈에서는 '아메리카즈'라는 독자덕 캠페인이 있으며, 에르난고 코르테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아즈텍, 마야, 아파치 등 중남미 부족들과 겨룬다. 본국에서 받는 물자는 한계가 있어 세력등급을 올려야 고급병종이 사용가능하며, 대부분의 병력들이 항구를 무조건 요구하고 내륙에는 제대로된 내정/군사건물을 지을 수 없다.

토탈 워: 워해머 2에서는 마르쿠스 불프하르트가 콩키스타도르 기믹을 장착했다. 문제는 이게 마르쿠스는 올드 월드에서 활약한 인물이라 콩키스타도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이터널스에서 나온다. 이들이 아즈텍을 침공하는 것을 보고도 규정 때문에 자신의 정신 지배 능력으로 이를 막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 드루이그와 이카리스의 갈등이 시초가 되어 함께 살던 이터널들이 따로 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도 네이머 등의 탈로칸인들이 고향을 등진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된다.

5. 아메리카 이외의 사례

16세기 무렵 스페인중국명나라에 대해 침략과 정복을 시도하려 했으나, 필리핀조차 제대로 평정하지 못한 상황이라 실행되지는 못했다. 애초에 스페인과 기술 수준이 똑같았던 포르투갈도 이런 이유로 인도중동 지역의 몇몇 무역항만 점령할 수 있었고, 그것도 인도 현지의 토착 세력은 물론이고 당대 최강대국 중 하나인 오스만 제국 및 이들의 수족이던 여러 무슬림사략해적들과도 혈투를 벌여서 간신히 이뤄낸 성과였다.

동남아시아 역시 유럽 열강의 침탈 과정이 순조로운 건 아니라서, 필리핀식민지배했던 스페인도 오늘날의 민다나오 지방에 있던 술루 술탄국은 뒷날 미국-스페인 전쟁의 패전으로 인해 필리핀을 뱉어낼 때까지 건드리지도 못했고, 16세기에는 브루나이와 합작해서 태국을 침공했다가 무참히 개발살난 흑역사도 있었다. 포르투갈믈라카를 정복하고 요새를 세웠으나, 믈라카의 왕실이 세운 망명 정부인 조호르 술탄국과 혈전을 벌이느라고 인도네시아 방면으로의 진출이 지지부진해졌다가 17세기에 뒤늦게 나타난 네덜란드에게 믈라카와 인도네시아의 여러 거점들을 빼앗기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 네덜란드도 막상 인도네시아 각지의 여러 국가들의 맹렬한 반격에 시달리는 통에, 20세기 초반에야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령 지역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었다. 이곳 역시 쳇방이나 른타카 등의 화포를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훨씬 이전부터 제작해서 전쟁용으로 사용한 데다, 고대로부터 중국계나 일본계, 말레이계, 베트남해적들이 무수하게 활동하던 곳이라서[43], 현지인들의 선박이나 도시도 숱하게 약탈당하는 와중에 유럽인들의 배나 무역 거점들도 덤으로 같이 털리는 판국이다보니, 유럽 열강들의 본격적인 침탈은 19세기 말쯤에 가야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이곳 역시도 온갖 전염병의 온상이다보니[44], 동남아시아 각국을 침공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군대가 현지의 풍토병에 궤멸되는 일이 속출하였기에, 이 지역의 정복 과정은 더더욱 어려움이 많았다.

물론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오스만 제국이 콩키스타도르들이 그렇게나 아메리카를 쉽게 정복하는 이유를 모르는게 당연하다. 하다못해 스페인도 마냥 아메리카를 순탄하게 정복한건 아니어서, 타라스칸같이 무력을 이용한 직접적인 정복은 부담이 되어 감히 하지도 못하고 외교로 굴복시킨 곳도 있으며, 마푸체족같이 아예 아메리카 식민지를 몽땅 잃고 철수할 때까지 정복하지도 못하고 격퇴당한 사례도 있었다.


[1] '콘키스타도르'라고도 하지만 스페인어는 영어처럼 /nk/ 발음이 [ŋk\]로 변하므로 '콘키스타도르'보다 '콩키스타도르'가 원음에 더 가깝다. 외래어 표기법/스페인어 문서 참고.[2]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3]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차지한 브라질 지역은 아마존 유역의 부족사회 정도로 중남미에서 스페인 식민지들에 비해 문명 발달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언급되는 일이 드물며 포르투갈 정복자의 아시아나 아프리카 침공은 맥락이나 진행 방식 자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콩키스타도르로 묶기보다는 그 지역의 역사를 설명할 때 따로 언급하는 편이다.[4] 영어로는 conqueror(컨쿼러)이다.[5] 실제로 레콩키스타가 그라나다의 함락으로 끝난 게 1492년이다. 그리고 그 해에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콩키스타도르의 시대가 도래했다.[6] 레콩키스타의 최종 목표는 로마 제국의 아프리카 강역인 마그레브 지역까지 다시 그리스도교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이는 제국주의 시대에 가서야 이루게 되며 유럽 문화권에서 분리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식민지 독립 이후 여전히 아랍 문화권으로 남게 되었다.[7] 게다가 스페인과 바로 마주보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만 해도 상당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어서 1580년 모로코를 정복하려 무모하게 원정을 간 세바스티앙 국왕이 친히 이끈 포르투갈 군대가 오히려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했고 왕도 전사했다.[8] 다만 틀락스칼텍같이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의 식민지 세력 확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적대 부족 세력을 제거하는 데 동참하던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도 있었다.[9] 엔코미엔다는 이후 대농장인 아시엔다(Hacienda)/파젠다(Fazenda)로 바뀌어 라틴아메리카는 대농장 지주가 수많은 소작농을 거느리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경영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10] 베네수엘라/콜롬비아/볼리비아/페루/에콰도르를 해방한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파에스, 칠레를 해방한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아르헨티나를 해방한 호세 데 산 마르틴과 마누엘 벨그라노 등 남미의 식민지 독립 운동 지도자마저 남미 원주민을 극심하게 차별하거나 적대시했었다. 물론, 이들이 유럽계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11]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선으로 건너간 일본인 역시 하류층 또는 경제적으로 조선인과 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12] 그리고 남미의 문명들은 서로 간에 접촉이 없거나 드물었다. 당장에 동시대에 존재했던 아즈텍과 잉카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 반면 유럽과 중국은 장거리 무역로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당장 대항해시대가 열린 이유 중 하나도 튀르크 제국에 의해 막힌 중동 지역 무역로를 대신할 신항로를 개척하여 인도와 중국으로 직접 가서 교역하자는 의도였다.[13] 여러 색깔과 길이의 끈에 매듭을 지어 정보를 표시하는 형태의 문자.[14] 아마테 나무의 목피지로 코덱스를 만들었다.[15] 원주민들은 구대륙의 전염병에 면역이 없었고 이 때문에 많이 죽어나갔다.[16] 어찌 보면, 한국사의 임진왜란에서 왜(倭)의 조총이 워낙 깊은 충격을 남기긴 했지만 실은 센고쿠 시대를 거치며 차곡차곡 쌓아온 실전 경험과 무술, 전술이 더 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과 아주 비슷하다. 원주민으로서는 안타깝게도, 그들과 콩키스타도르 사이의 격차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격차와는 달리,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17] 틀라우이스틀리는 사실상 네일 배트나 다름없는 흑요석 무기의 공격은 어느 정도는 막아주지만 강철검에는 단번에 팔다리와 같이 썰려 나갔다.[18]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네이티브 아메리칸 박물관도 철제 무기가 정복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면서 당시 무기들을 전시하고 있다.[19] 콩키스타도르는 흑요석 무기보다 투석구를 더 두려워했는데, 사실 투석구는 소년 목동 다윗이 전신 갑주를 입은 거구의 전사 골리앗의 머리를 깨서 쓰러뜨릴 때 썼다는 전승이 있을 만큼 구대륙에서도 유서 깊은 비대칭무기였다. 코르테스도 투석구에 머리를 맞고 두개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어 거의 죽다 살아났다.[20] 은 지각 질량의 5%나 차지한다. 철광석이 없는 대륙은 없다. 심지어 남미 국가 중 하나인 브라질은 현대에 와서는 철광석 생산량으로 5위 이내에 드는 자원부국이다.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 페루 역시 철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된 편이다.[21] 코르테스는 현지처였던 말린체에게도 화약 제조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22] 게다가 이들이 상대한 적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비하면 제대로 조직되고 무장한 데다 콩키스타도르만큼이나 호전적이기까지 한 베르베르 전사였다. 그러니 그들을 상대해온 콩키스타도르 소속 병사의 전쟁에서의 태도는 사납기 이를 데 없었고, 적을 향한 반인륜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23] 이 당시, 본국인 스페인의 인구 수가 700만에 불과했으며, 특히나 원정군은 수백 명, 많아봐야 1~2천 명이었다. 반면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숫자는 수천만이나 되었으며, 전투 시에는 최소 수천 명, 많으면 20만으로 수적으로 최소 수십대 1이었다.[24] 콩키스타도르들은 정말로 민간군사기업 쪽에 더 가깝다. 이들은 무기나 장비 모두를 개인의 돈으로 사서 써야 했고, 심지어 정복을 하러 원정을 떠날 때에도 자신들이 미리 돈을 투자해야 했다. 그래서 원정이 성공하면 투자한 금액만큼 약탈한 재보를 차지할 권리가 생기는데,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기마병이 그만큼 약탈한 재보에서 많은 양을 차지했고 반면 보병들은 그보다 적은 금액을 받았다고 한다. 기마병은 사람보다 더 많이 먹고 관리하는 데 돈이 더 들어가는 말을 돈 주고 사야 했으니 자연히 투자한 돈이 더 많고 그만큼 많은 액수의 노획물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25] 아버지를 에르난 코르테스로, 어머니를 말린체로 둔 이 아들은 어른이 되자, 아버지의 후광으로 스페인군 기병대 장교가 되었다. 거기다가 코르테스는 자기 자식들을 모두 아꼈기에 원주민 사이에서 얻은 사생아들도 정식 자식들로 인정받으려고 끊임없이 로비를 벌였고 몇명은 실제로 정식 자식으로 인정받았다. 덕분에 코르테스에게는 메스티소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26] 사실 아즈텍이나 잉카가 사하라 사막이나 아라비아 반도와 같은 사막 지역이었다면 별 쓸모가 없었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이 지역들은 돼지를 기르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27] 인신공양이나 전쟁을 안 할 때는 막대한 양의 공물을 수탈했다.[28] 내전은 아타우알파의 승리로 끝났고, 아타우알파는 우아스카르의 혈족 및 추종자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이때 도망쳐서 숨어지내던 다른 형제인 망코 잉카는 스페인의 괴뢰황제로 옹립된다.[29] 파차쿠티가 즉위한 1438년부터 아타우알파가 죽은 1533년까지 5대 95년이며, 잉카가 영토 굳히기를 시작할 시점에 역병이 퍼지고 스페인의 침략을 받았다.[30] 일례로 코르테스는 부하 크리스토발 데 올리드(Cristobal de Olid)가 멕시코 남부 온두라스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기 위해 3천의 원정대를 조직했으나, 원주민 안내자들이 길을 모르는 바람에 코르테스의 원정대는 6개월 동안 밀림지역을 헤메고 말라리아와 풍토병을 앓아야 하는 생고생을 했다. 그러다 원정대가 겨우 길을 찾아 도착했을 때 반란을 일으킨 올리드는 이미 살해당해 있었고 반란군도 항복하는 바람에, 코르테스는 결국 엄청난 재산만 탕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혈진압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31] 일례로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아타하치 부족에게 속아서 그들의 매복으로 피해를 입자 후일 군대를 이끌고 와서 아타하치 부족민 11,000명을 전부 학살하고 그들의 거주지 모빌라를 콩가루로 만들어 아타하치 부족 자체를 멸망시켜 버렸다.[32] 사진은 캐러벨(맨 앞, 맨 뒤)과 카락(중간)이다. 산타마리아, 니나, 핀타인 듯.[33] 당시 유럽의 조선술은 굉장히 뛰어났으며, 오죽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포르투갈갤리온을 구매해서 임진왜란에 투입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34] 지금의 아르헨티나우루과이를 점령, 정복했다.[35] 현재의 칠레를 정복했다.[36] 코르테스와 함께 아즈텍을 멸망, 정복했으며 아즈텍이 멸망한 이후에는 마야 문명권이던 과테말라와 멕시코 남부 지역을 정복하였다.[37] 영화 <인디아나 존스 4: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이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다.[38] 서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으로 포르투갈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콩키스타도르가 되어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에 참가한다.[39] 연구원들에 의하면 이 기술은 인류사 동안 누구든지 알아낼 수 있었을 정도로 간단한 기술이라고 한다.[40] 중력 조작 기술이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 온 행성이 전깃불로 환한 것에 의아해한다.[41] 테디 베어 외계인들은 우주에서 무척 승승장구하던 부강한 종족이었다. 그런데 고작 콩키스타도르 수준의 문명이 그렇게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다면, 탄탄한 산업 기반과 온갖 전쟁용 병기와 더불어 핵무기를 가진 21세기 인류 문명이 무슨 짓을 벌일 수 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42] 엘 카다보가 세운 정착지인 카다보는 분노한 마즈다문디에게 파괴되어 폐허가 된다. 페르나도 피라초의 경우, 리자드맨들이 피라초의 길 잃은 군단이 쉽게 무너지지 않자 포위망 한 쪽을 풀어주고 뱀파이어 코스트의 좀비 파이러츠를 공격하도록 유도했다.[43] 이 중에서 말레이해적은 오늘날에도 종종 활약을 해서, 동남아시아 각국의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44] 훨씬 뒤인 20세기 후반의 일이지만, 필리핀에서 토착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견되어서 의사들과 생물학자들을 뒤집어지게 한 적도 있다. 천만다행히도 원숭이들에게나 치명적일 뿐이지 인간에게는 아무런 질병도 발병시키지 못하는 무해한 바이러스였다지만, 그래도 동남아시아가 온갖 위험한 병원체들이 퍼지는 위험지대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킨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