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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03:26:28

우아이나 카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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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사파 잉카
우아이나 카팍
Wayna Qhapaq
파일:Retrato_de_Huayna_Cápac.jpg
잉카 제국 제3대 황제
<colbgcolor=#DAA520><colcolor=#fff,#fff> 출생 1468년
페루 쿠스코
사망 1527년 (향년 58~59세)
에콰도르 키토
재위 기간 제11대 사파 잉카
1493년 ~ 1527년 (34년)
전임자 투팍 잉카 유판키
후임자 우아스카르
칭호 만인의 말을 들어주는 자
부모 아버지 : 투팍 잉카 유판키 황제
어머니 : 마마 우클루
종교 잉카 종교

1. 개요2. 상세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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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카 제국의 제3대 황제이자 제11대 사파 잉카.[1]

재위 기간은 1493년에서 1527년까지로,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재위하면서 사실상 잉카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2. 상세

당시 잉카 제국은 선황인 파차쿠티투팍 잉카 유판키의 오랜 정복 활동으로 세력이 정점에 이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위에 오른 우아이나 카팍은 부황의 유언에 따라 여동생이었던 코야 쿠실마이와 결혼했으며,[2] 제위를 찬탈하려는 반역자를 처단하는 등 안정적으로 황권을 강화해나갔다. 또한 할아버지인 파차쿠티의 치세때부터 시작한 정복활동을 이어받아, 온 방향으로 정복군을 파견하고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남쪽으로는 현대의 칠레아르헨티나까지 진출했으며, 북쪽으로는 에콰도르키토까지 정벌했다. 특히 키토의 여왕과 결혼동맹을 맺어 훗날 황제가 되는 아타우알파를 갖기도 했다. 우아이나 카팍은 이 키토 지방에 굉장한 애착을 쏟으면서 키토를 쿠스코에 이은 제국의 제2의 수도로 만들려 노력했고, 거대한 곡물 창고나 천문대를 지으면서 에콰도르 지방의 발전에 힘을 많이 쏟았다.

그러나 그가 키토에 머무르는 동안 북쪽 지방으로부터 전염병이 돌자 격리 생활을 하고 단식을 했으며, 키토까지 전염병이 퍼지면서 천연두에 걸려 피부 발진이 일어나고 몸이 쇠약해져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다가[3], 신의 계시를 통해 상서로우면 니난 쿠요치 또는 우아스카르에게 제위를 물려주도록 했다. 야마를 죽여 허파를 꺼내 혈관이 뻗어나간 모양을 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 운명이 좋지 못했는데, 귀족들이 그 소식을 알리려고 했을 때, 우아이나 카팍은 이미 병으로 붕어한 상황이었다. 이후 귀족들은 맏이였던 니난 쿠요치에게 제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니난 쿠요치 역시 똑같이 천연두로 사망하면서 결국 우아스카르가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우아스카르의 제위 계승에 불만이 많았던 아타우알파가 키토와 제국 북부 지방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키면서 잉카 제국은 본격적인 대규모 내전의 수렁텅이에 빠져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잉카 제국은 이 우아이나 카팍 황제의 재위기간에 영토적, 군사적, 문화적 정점을 찍었다. 당시 잉카 제국은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까지 총 6개국에 걸친 대제국이었고, 곳곳에는 험준한 산맥에 바위로 지은 거대한 요새들과 고르게 깔린 석조 포장도로들이 있었다. 또한 수많은 도시들과 신전들이 새롭게 지어졌으며, 제국에 속한 200여 개에 달하는 민족들이 각기 엄청난 규모의 산중 계단식 밭들을 경작했다. 당시의 잉카 제국은 남북으로 그 길이가 3,500km에 달하면서 남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을 대부분 장악했고, 덕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그가 살았던 궁전의 터에는 현재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회가 건설되어 있다.

3. 기타



[1] 타 민족들을 정벌하여 실질적인 제국을 개창한 파차쿠티 때부터 제국의 황제이고, 파차쿠티 이전의 잉카 지도자들은 모두 쿠스코 왕국의 군주였다.[2] 잉카 제국은 고대 이집트나 중세 유럽처럼 황족의 근친혼이 매우 성행했다. 우아이나 카팍의 황자인 제13대 황제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인들에게 살해될 때 스페인인들이 씌운 죄목에 근친혼이 있었다.[3] 아마도 스페인 세력의 도래 이후에 스페인인 콩키스타도르와 접촉했던 부족을 통해 천연두가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