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알마그로에서 얻어서 기른 아이였기 때문에 그 지명이 이름이 되었으며 1515년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원정대를 이끌기로 한 <엠페르사 데 레반테>(Empersa De Lebente)라는 구두조약을 맺고, 피사로와 함께 남아메리카 해안을 탐사하면서 그 지역들을 정복했을 때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한 쪽 눈을 잃었다.
피사로와 함께 잉카 제국의 사람들을 발견하자 직접 가서 파나마 총독에게 많은 병력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의 허가를 받아 1533년에 피사로와 함께 잉카 제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수많은 원주민을 학살했다.
그러나 잉카 제국의 정복으로 얻은 재산을 피사로가 챙겨 그 자신과 형제 및 후견인들에게만 분할하자 피사로와 대립하게 되었고, 1534년에 스페인 국왕인 카를로스 1세가 내린 <식민지 페루 분할령>으로 피사로가 북쪽의 누에바 카스티야를, 알마그로가 남쪽의 누에바 톨레도를 맡게 되자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1535년 7월 3일에 칠레 원정을 하기 시작하여 안데스산맥을 넘는 등 갖은 고난을 겪다가 마푸체족을 발견하자 레이노웰렌 전투를 벌였지만 크나큰 피해를 입는 등 원정이 실패하자[2] 1536년 9월에 쿠스코로 돌아갔다.
1537년에 쿠스코를 장악하려고 당시 황제였던 망코 잉카 유판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지만 이에 실패하고 피사로의 동생인 에르난도 피사로에게 패배한 후, 붙잡혀서 1538년 7월 8일에 참수되었다. 이후 알마그로파의 생존자들은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급습해 암살했다.
[1]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이 마푸체족은 스페인 식민제국 시기가 끝날 때까지 스페인에게 정복되지 않았으며, 사실상 반 독립 상태를 유지하다가 이후 칠레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 칠레군에 의해 정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