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राजस्थान 라자스탄 | Rajasthan | |
문장 | |
위치 | |
국가 | 인도 |
면적 | 342,239km² |
인구 | 7,712만명 |
종교 | 힌두교 88.49%, 이슬람교 9.07%, 자이나교 0.91%, 기독교 0.41%, 불교 0.02%, 기타 0.01%, 불명 0.01% |
주도 | 자이푸르 |
공용어 | 라자스탄어, 영어 |
차량코드 | RJ |
HDI | 0.621 (29위) |
1인당GDP | 1,685$ |
GDP | 1,300억 $ |
주지사 | 칼라지 미쉬라 (Kalraj Mishra) |
주총리 | 바잔 랄 샤르마 (Bhajan Lal Sharma) |
주부총리 | 디야 쿠마리 (Diya Kumari), 프렘 찬드 바이르와 (Prem Chand Bairwa) |
주 정부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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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자스탄 주는 인도 서북서 쪽에 위치한 주로 면적은 342,239 km2로 남한의 3.4배에 달하는 인도에서 가장 큰 주이다. 인구는 2017년 기준 75,984,317 명으로 한반도 전체의 인구와 비슷하다. 서북부에는 타르 사막이 넓게 펼쳐저 있다. 주도는 자이푸르.라지푸트라 불리는 용맹한 전사집단이 활동한 곳으로, 라자스탄(Rajasthan)이라는 명칭도 이들에게서 유래했다. 서부에 사막을 끼고있는 반건조 지대로 중근세 남북을 연결하는 상업 루트가 되기도 했다.
2. 지리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b/India_Rajasthan_locator_map.svg인도 서북부 국경지대를 포함하며 파키스탄 펀자브 주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인도에 걸친 타르 사막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사막으로 타르 사막 동부에 해당하는 라자스탄 상당수 지역에는 어느 정도 농업이 가능하기에 우기를 이용한 수수 같은 잡곡 재배 및 유목이 행해지고 있다. 영양과 단봉낙타도 서식하고 있다.
동부지역은 서부지역에 비해 덜 건조한 반건조(BSh) 기후로, 평균 기온은 높지만 몬순의 영향을 받아 여름 집중 강우가 내리기 때문에 농업이 활발하다.
사막이 있음에도 인구 밀도는 세계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은 남한의 반이나 된다. 그래도 인도에서는 그나마 한적한(?) 땅이기에 1974년 이곳에서 인도 최초의 핵실험이 행해졌다.
북쪽으로는 인도의 곡창지대 펀자브 주와 하리아나 주, 우타르프라데시 주를 맞대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구자라트와 마디아프라데시 주와 맞대고 있다.
3. 역사
자이살메르 성채
고대부터 중앙아시아 출신 유목민들이 꾸준히 침공하던 지역으로 사방이 평원에 초원과 사막 지형이라 유목민들의 침공에 상당히 취약했다. 이 지역은 힌두교도 민족집단 중에서도 유목 생활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라자스탄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자트족과 구자르인 등은 중앙아시아가 이슬람화 되기 이전 라자스탄을 포함한 인도 북서부에 정착한 소수 민족의 후손이다.
지금의 라자스탄 주 명칭의 유래는 타르 사막의 여러 유목민 집단들과 힌두 현지인 부족들을 합친 전사 집단 씨족 공동체 라지푸트에서 기원했다. 라자스탄 명칭 자체는 왕들의 땅이라는 뜻인데, 라자스탄의 실세 라지푸트인들의 명칭은 "왕자들"에서 기원했다. 라지푸트인들이 자신들이 다 왕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기 보다는 근세 인도에서 말 탄 전사들을 관용어로 왕자라고 부른데서 기원한 이름이다. 외지인들의 침공이 빈번했던 지역으로 전통적인 라즈푸트 사회는 가장의 권위가 중시되었으며, 군인들의 체력 유지를 위해서인지 힌두교도 상층 카스트들의 경우도 육식을 허용하는 편이었다.[1]
라자스탄의 여러 힌두 유목민들은 인도 서부의 펀자브 주나 신드 주의 북부 타르 사막 지대 등 각지에 퍼져있었으며, '라자'라는 이름의 여러 번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북부의 엠버 왕국, 중남부 치토르(Chittor)의 메와르 왕국으로, 인근에 여러 봉신국을 거느리기도 했다.
이후 11세기 북인도에 자리를 잡은 델리 술탄 왕조를 시작으로, 중세 ~ 근세 내내 북쪽의 무슬림 정복 왕조들과 계속 전쟁을 벌였다. 최종적으로는 17세기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때 정복되었다. 악바르는 라자스탄 번왕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라자스탄 왕족과 정략 결혼을 맺었으며, 악바르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은 황후이자 자한기르의 어머니인 마리암 웃 자마니(Mariam-uz-Zamani) 역시 라자스탄 북부 엠버왕국의 출신이었다.
이후 한 세기가 지나고 무굴 제국이 급속도로 쇠퇴하자, 라자스탄 번왕들은 마라타 동맹과 함께 무굴 제국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켰으며 결국 마라타 동맹에 정복당하고, 이후 대영제국의 동인도회사의 점령지가 되어 식민 지배를 받았다. 나중에는 대영 제국의 일부인(...) 인도 제국의 자치령인 '아즈메르-메르와라 왕국'으로 존재했었다. 여담으로 하리아나의 라즈푸트인들이 카슈미르 일대를 시크교도로부터 정복한 것이 오늘날 카슈미르 분쟁의 기원이 되는 카슈미르 번왕국의 기원이다. 그러다가 1947년부터 1956년까지는 아즈메르 주로 존재했다가 1956년 11월 1일 드디어 라자스탄 주가 생긴 것이다.
00년대에는 라자스탄 주의 구자르인 힌두교도들이 자신들의 카스트를 바이샤에서 불가촉천민으로 강등시켜달라고 유혈 폭동을 일으켜서 해외 토픽에 황당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애초에 이 지역은 인도의 유일한 대륙과의 통로나 다름없어서, 여기를 거점으로 하는 상인집단 마르와리는 구자라트의 구자라티, 파르시와 함께 인도 역사에 대표적인 상인집단으로 유명하며, 락시미 미탈의 아르셀로미탈,바르티 에어텔, 힌두자 그룹등 인도 거대 재벌회사의 1/3 이상을 쥐고 있는 인도 최고의 갑부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다보니 라자스탄에는 크샤트리아 같은 상층 카스트가 많아서 남인도와 다르게 바이샤 카스트가 지역 사회에서 메리트도 없는데다가, 불가촉천민 인구가 부족한 상황이라 불가촉천민 공무원 할당 쿼터를 받으면 생계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자세한 내용은 구자르인 문서 참조
4. 문화
2011년 통계에 따르면 라자스탄 인구의 88.49%는 힌두교를 믿으며, 9.07%는 이슬람을 믿는다. 인도 공화국의 무슬림 인구가 14.2%라는 것을 감안하면 파키스탄 인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인구 비중이 평균보다 적은 셈이다. 시크교 인구는 주로 자트족 혹은 펀자브인 상인들을 중심으로 1.27%에 해당하며, 도회지를 중심으로 자이나교 인구도 0.97% 거주한다.[2]기독교가 상당히 약세인 지역으로 0.14%인데 기독교인 인구가 자이나교 신도보다도 적은 지역이다.같은 해 조사된 모어 관련 통계에서 라자스탄 인구의 36.88%는 라자스탄어를 사용하며, 27.34%는 힌디어를 사용한다. 라자스탄어의 방언으로도 분류되는 마르와리어 사용자도 9.05%에 달한다. 모어 말고 실생활에서는 힌디어가 사실상 중심이 되는데 2001년 통계에서 지역 주민 대부분이(90.97%)이 힌디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조사되었다. 라자스탄 지역의 방언들이 힌디어랑 유사점이 많은데다가 문맹 주민들도 볼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힌디어 어휘들을 익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힌디어 대신에 우르두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으나, 우르두어와 힌디어는 문자랑 종교 용어만 다른 용어고, 일부 신드어, 펀자브어 사용자들도 대부분 상인 출신들이라 힌디어로 소통하는데 별 문제는 없는 편이라고 한다.
중근세 라자스탄의 왕국들은 외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지형을 이용한 거대한 성채를 많이 쌓았는데, 현재도 많은 수가 남아있다.
한국인이 인도풍이라고 한다면 흔하게 떠올리는 아라비안 나이트스러운 것들은 주로 라자스탄 지역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라자스탄은 힌두 문화권임에도 인접한 펀자브의 이슬람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식문화도 중앙아시아식 케밥, 몽골식 만두, 인도 커레와 라씨가 공존한다. 다만 간이 세서 한국인 입맛에도 맵고 짠 편이다.
[1] 인도 힌두교에서는 상층 카스트일수록 육식에 대한 터부나 금기 기준이 더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많다. 힌두교의 자티(카스트) 계급 간의 차별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마누 법전에 따르면 불가촉천민의 경우 인도혹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어도 아무 제한이 없지만, 브라흐민이나 크샤트리아가 흰 인도혹소, 원숭이 혹은 돼지나 개의 고기를 먹었을 경우 계급을 강등시키는 조항이 나와있다.[2] 특히 자이살메르 왕국의 경우 왕족들이 자이나교를 믿었기 때문에 관련 유적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