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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2:27:22

스티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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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국 노르만 왕조 제4대 국왕
스티븐
Stephen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tepan_Blois.jpg
<colbgcolor=#cf091f><colcolor=black> 왕호 스티븐
(Stephen)
출생 1092년 혹은 1096년
프랑스 왕국 블루아
사망 1154년 10월 25일 (향년 57-62세)
잉글랜드 왕국 켄트 도버
재위기간 불로뉴 백작
1125년 ~ 1152년 5월 3일
잉글랜드의 왕
1차 1134년 12월 22일 ~ 1141년 4월
복위 1141년 11월 ~ 1154년 10월 25일
노르망디 공작
1135년 ~ 11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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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f091f><colcolor=#fff> 이름 스티븐
(Stephen)
배우자 파일:800px-Blason_comte_fr_Boulogne.svg.png 불로뉴 여백작 마틸다
(1125년 결혼/1152년 사망)
자녀 볼드윈, 마틸다, 외스타슈 4세, 기욤 1세, 마리 1세 외 서자녀 3명
아버지 파일:800px-Blason_comté_Champagne_ancien.svg.png 블루아 백작 에티엔
어머니 파일:800px-Arms_of_William_the_Conqueror_(1066-1087).svg.png 노르망디의 아델
종교 가톨릭 }}}}}}}}}

1. 개요2. 생애3. 재위 기간의 의문점4. 여담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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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프랑스어: Estiene (에스티엔)
프랑스어: Étienne (에티엔)
영어: Stephen (스티븐)
라틴어: Stephanus (스테파누스)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노르만 왕조의 마지막 국왕.[1] 윌리엄 1세의 딸 아델라와 블루아 공 에티엔의 삼남으로, 특히나 헨리 1세가 총애하던 조카였다.

2. 생애

헨리 1세는 하나뿐인[2] 아들 윌리엄이 죽자,[3] 우선적으로는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 재혼을 했지만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기에, 만일을 위해 유일한 적장녀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의 황후였던[4] 마틸다[5]여왕으로 즉위시킬 계획을 차선책으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잉글랜드에는 여왕을 옹립한 역사가 없었기에 다른 왕족이나 귀족이 반발할 가능성이 컸고, 헨리 1세도 그걸 우려해서 생전에 스티븐을 비롯한 귀족들에게 마틸다에 대한 충성 서약을 시켰고, 마틸다를 같은 노르만계인 플랜태저넷 가문의 앙주 백작 이자 예루살렘 왕국 풀크 1세의 아들 조프루아 5세와 재혼시켜 뒷배로 삼았다.[6] 하지만 헨리 1세 말년에는 마틸다가 왕위 계승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기 위해 아버지 헨리 1세를 압박하자, 불쾌하게 여긴 헨리 1세가 이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계승권이 불투명해졌으며, 마침 헨리 1세가 노르망디에서 사망하자, 당시 앙주에 있던 마틸다를 제치고 스티븐이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해 버렸다.

왕위를 찬탈당한 마틸다 왕녀는 남편인 앙주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의 군사를 빌려 배다른 오라비[7]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와 손잡고 내전을 개시했으며, 이는 무정부시대라고 불리게 된다.[8] 마틸다 본인은 군사적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이복형제인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에게 뛰어난 군사적 재능이 있었고 그가 잉글랜드 전장에서 사실상 사령관 역할을 했다.[9] 그 덕에 한때는 마틸다 측의 우세로 스티븐은 글로스터 백작의 포로가 되고 폐위되었지만, 스티븐의 아내인 블로뉴의 여백작 마틸다(불로뉴의 마틸다)가 켄트에서 군사를 일으켜 글로스터 백작을 포로로 잡고 남편과의 교환을 요구했다. 마틸다는 눈앞의 승리를 놓치기 힘들었지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며 전쟁을 이끈 이복형제인 글로스터 백작을 내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포로 교환이 성립되었고 스티븐왕은 구사일생했다.

이후, 결국 스티븐왕이 마틸다를 잉글랜드 서부로 밀어내지만 사촌간의 내전으로 잉글랜드 국내는 쑥대밭이 되어버리고 봉건 영주인 힘있는 가신들과 힘의 공백을 틈타 사실상 국내는 분열되고 스코틀랜드웨일스의 침공을 받는 등 내우외환이 그치질 않았다.

1151년 9월 마틸다의 남편 조프루아 플랜태저넷이 사망했고, 따라서 앙주 백작령을 상속받은 장남 헨리 플랜태저넷이 1153년 1월에 모친 마틸다를 돕기 위해 군을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해 전쟁이 재개되었다. 내전이 계속되던 중 스티븐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했던 아들 외스타슈[10]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실의에 빠져 헨리와 윌링포드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11] 조약 내용은 스티븐의 왕위 승계는 인정하되 마틸다의 아들 헨리를 공동 왕으로 삼아 다음 왕좌를 물려준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스티븐은 켄트주의 도버에서 사망하며 파란만장한 생을 끝마쳤고, 윌링포드 조약에 따라 마틸다의 아들 헨리가 단독 통치자로서 즉위하였으니, 플랜태저넷 왕조의 시작이었다.

3. 재위 기간의 의문점

참고로 스티븐의 재위 시기는 약간 애매하다. 어떻게 보자면 1141년엔 마틸다가 그를 폐위시키고 잠시 즉위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여왕'이 아니라 'Lady'로 즉위했었기 때문에, 군주로는 분류해도 왕으로는 분류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왕의 정통성에 있어서 중요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대관식을 치르지 못했기에 마틸다는 여왕(Regina)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여군주(Domina Anglorum, Lady of England)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잉글랜드 전체의 (여성) 지배자"라는 의미였다. 스티븐과 평화 협정을 맺은 후에는 이 칭호를 그만두고 다시 '황후'를 공식 칭호로 사용했다. 그녀의 왕호는 왕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애매모호한 칭호.[12] 허나 이러한 호칭이 있어도 마틸다는 자신을 전남편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의 부인으로서, 황후(Empress)라고 불러주기를 원했고 스스로도 자신을 황후라고 칭했다.

4. 여담

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1] 아버지가 노르만 왕가가 아니므로 블루아 왕조라고도 한다.[2] 정확히 말하면 아들이 하나뿐인 건 아니다. 적자가 하나뿐이었을 뿐이다.[3]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는데, 배 다른 누이 마틸다 피츠로이[14]의 비명을 듣고 탈출 전에 그녀를 구하려다 같이 익사했다. 이를 백선 참사라고 하는데 많은 수의 귀족이 탑승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븐 역시 이 배에 탑승하고 있었으나 과도한 음주로 인해 출항 전에 내려서 참사를 피하게 된다.[4] 하인리히 5세는 1125년에 사망했고,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5] 이 때문인지 독일식 이름인 '모드'라고도 불린다. 역사서에 모드 황후로 나온다면 바로 이 마틸다.[6] 그러나 조프루아는 마틸다보다 12세나 어렸고, 당연하게도 부부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7] 즉 헨리 1세의 사생아.[8] 애시당초 앙주 백작과의 재혼 자체가 만약을 우려한 헨리 1세가 딸에게 군사적 배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시킨 결혼이다. 마틸다 본인은 재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9] 사생아 출신인 로버트는 헨리 1세에게 글로스터 영지의 상속녀와의 결혼과 백작위 수여 등 많은 힘을 부여받아 초대 글로스터 백작이 되었는데, 이 또한 마틸다와 앙주 백작의 혼사처럼 헨리 1세가 마틸다의 친위 세력으로서 로버트를 키워준 거다.[10] 스티븐이 블로뉴의 여백작 마틸다와 결혼하여 낳은 3남 3녀 중 장남. 너무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당대 사람들은 그가 신의 분노로 죽었다고 여겼다고 한다. 외스타슈 사망 당시 스티븐에게는 윌리엄이라는 아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불로뉴의 백작이 된다.[11] 마침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도 사망한 까닭에 마틸다 측도 군 지휘관을 잃은 상황이다.[12] 양판소 등에서의 묘사와는 달리 흔히 공후백자남의 순서로 외워서 알고 있는 유럽 봉건 군주의 호칭은 계급이나 신분의 고하로써 위계가 정해지지 않는 유의어이다. 호칭 자체의 끗발로 따지자면 Lord나 Duke 등에 비해 King(Queen)을 훨씬 더 먹어주는 게 사실이지만, 각자의 영지는 독립 국가나 다름없었고 영주는 자기 영지 안에서 말 그대로 왕이나 다름없는 지배자였다. 물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작위가 계급처럼 활용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마틸다는 호칭이 애매하지만 이 경우에는 Lady라는 호칭이 여왕으로 통한다고 봐야 할 것이고 비슷한 예로 후일의 레이디 제인이 있다.[13] 본인만 포기한 게 아니고, 당시 십자군을 지원하러 오던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에게 십자군은 이미 망했으니 뒤늦게 가서 피해만 늘리지 말고 후퇴하라고 조언했는데, 이를 믿은 황제가 후퇴해 버리면서 이후 십자군의 역사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