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60719 0%, #cf091f 20%, #cf091f 80%, #a60719);"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웨식스 왕조 | |||
애설스탠 | 에드먼드 1세 | 이드리드 | 이드위그 | |
웨식스 왕조 | 크누트 왕조 | |||
에드거 1세 | 순교왕 에드워드 | 애설레드 2세 | 스웨인 | |
웨식스 왕조 | 크누트 왕조 | |||
애설레드 2세 | 에드먼드 2세 | 크누트 | 해럴드 1세 | |
크누트 왕조 | 웨식스 왕조 | |||
하다크누트 | 참회왕 에드워드 | 해럴드 2세 | 에드거 2세 | |
노르만 왕조 | 블루아 왕조 | |||
윌리엄 1세 | 윌리엄 2세 | 헨리 1세 | 스티븐 | |
노르만 왕조 | 블루아 왕조 | 플랜태저넷 왕조 | ||
마틸다 | 스티븐 | 헨리 2세 | 리처드 1세 | |
플랜태저넷 왕조 | ||||
존 | 헨리 3세 | 에드워드 1세 | 에드워드 2세 | |
플랜태저넷 왕조 | 랭커스터 왕조 | |||
에드워드 3세 | 리처드 2세 | 헨리 4세 | 헨리 5세 | |
랭커스터 왕조 | 요크 왕조 | 랭커스터 왕조 | 요크 왕조 | |
헨리 6세 | 에드워드 4세 | 헨리 6세 | 에드워드 4세 | |
요크 왕조 | 튜더 왕조 | |||
에드워드 5세 | 리처드 3세 | 헨리 7세 | 헨리 8세 | |
튜더 왕조 | ||||
에드워드 6세 | 제인 | 메리 1세 필립 | 엘리자베스 1세 | |
스튜어트 왕조 | ||||
제임스 1세 | 찰스 1세 | 찰스 2세 | 제임스 2세 | |
스튜어트 왕조 | 영국 국왕 → | |||
메리 2세 | 윌리엄 3세 | 앤 | ||
}}}}}}}}}}}}}}} |
{{{+1 {{{#fff 잉글랜드 왕국 {{{#c8102e 관련 문서}}}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color=#c8102e><colbgcolor=#fff> 역사 | <colcolor=#000,#fff>잉글랜드 내전 · 청교도 혁명 · 잉글랜드 연방 · 명예 혁명 · 영국 통일 |
정치 | 잉글랜드 국왕(역대 잉글랜드 국왕) | |
왕조 | 노르만 왕조 · 플랜태저넷 왕조 · 랭커스터 왕조 · 요크 왕조 · 튜더 왕조 · 스튜어트 왕조 | |
종교 | 가톨릭 · 성공회(성공회/역사) | |
경제 | 무역 | |
언어 | 영어 | |
지리 | 잉글랜드 | |
전쟁 | 잉글랜드 왕국의 대외전쟁 · 내전 | |
인물 | 올리버 크롬웰 · 리처드 크롬웰 · 역대 잉글랜드 왕비 · 역대 잉글랜드 국서 | |
상징 | 성 조지의 십자가 | |
민족 | 잉글랜드인 | }}}}}}}}} |
깃발 | 문장 |
리처드 1세부터 에드워드 3세까지의 치세인 1198년부터 1340년까지 사용했으며, 이후에는 프랑스의 백합 문장을 넣어 삼사자와 삼백합을 섞은 것을 기본형으로 하고, 왕에 따라 개인적인 상징을 집어넣는다. 영국/국장 문서에 나오는 디자인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다른 시대 깃발은 이곳 참조.
1. 웨식스의 왕
자세한 내용은 웨식스 문서의 왕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 잉글랜드 국왕
잉글랜드 왕국 문장(1399~1603) |
2.1. 노르만 정복 이전
이름 | 왕조 | 재위기간 | 비고 |
애설스탠 | 웨식스 | 927 ~ 939 | 잉글랜드 국왕은 927년부터 |
에드먼드 1세 | 웨식스 | 939 ~ 946 | |
이드리드 | 웨식스 | 946 ~ 955 | |
이드위그 | 웨식스 | 955 ~ 959 | |
에드거 1세 | 웨식스 | 959 ~ 975 | '평화왕' |
순교왕 에드워드 | 웨식스 | 975 ~ 978 | |
애설레드 2세 | 웨식스 | 978 ~ 1013 | |
스웨인 포크비어드 | 덴마크 | 1013 ~ 1014 | '갈고리 수염 스웨인(스벤)' |
애설레드 2세 | 웨식스 | 1014 ~ 1016 | 복위 |
에드먼드 2세 | 웨식스 | 1016 | |
크누트 대왕 | 덴마크 | 1016 ~ 1035 | 선출 |
해럴드 1세 | 덴마크 | 1035 ~ 1040 | '토끼발 해럴드' |
하레크누드 | 덴마크 | 1040 ~ 1042 | |
참회왕 에드워드 | 웨식스 | 1042 ~ 1066 | |
해럴드 2세 | 웨식스 | 1066 | |
에드거 2세 | 웨식스 | 1066 | 헤이스팅스 전투 후 색슨족 잔존 세력에 의해 옹립 되었다. |
2.2. 노르만 정복 이후
이름 | 왕조 | 재위기간 | 권리 | 비고 |
윌리엄 1세 | 노르만 | 1066 ~ 1087 | - | '정복왕', '사생아왕' |
윌리엄 2세 | 노르만 | 1087 ~ 1100 | 윌리엄 1세의 3남[1] | |
헨리 1세 | 노르만 | 1100 ~ 1135 | 윌리엄 1세의 4남 | |
스티븐 왕 | 블루아 | 1135 ~ 1141 | 윌리엄 1세의 외손자 | 마틸다와 왕위 다툼. |
마틸다 | 앙주/플랜태저넷 | 1141년 | 헨리 1세의 딸 | Lady of England로 통칭. 즉위식을 못 치러서 논란이 있음. |
스티븐 왕 | 블루아 | 1141 ~ 1154 | 복위 | |
헨리 2세 | 앙주/플랜태저넷 | 1154 ~ 1189 | | 공동왕 청년왕 헨리는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으므로 보통 정식 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
리처드 1세 | 앙주/플랜태저넷 | 1189 ~ 1199 | 헨리 2세의 아들 | '사자심왕' |
존 | 앙주/플랜태저넷 | 1199 ~ 1216 | 헨리 2세의 아들 | 영지 없는 왕(흔히 '실지왕'이라 불린다) |
헨리 3세 | 플랜태저넷 | 1216 ~ 1272 | 존 왕의 아들 | |
에드워드 1세 | 플랜태저넷 | 1272 ~ 1307 | 헨리 3세의 아들 | '롱생크'로 불림. 우리말로는 '장신왕' |
에드워드 2세 | 플랜태저넷 | 1307 ~ 1327 | 에드워드 1세의 아들 | |
에드워드 3세 | 플랜태저넷 | 1327 ~ 1377 | 에드워드 2세의 아들 | |
리처드 2세 | 플랜태저넷 | 1377 ~ 1399 | 에드워드 3세의 장남 흑태자 에드워드의 아들 | |
헨리 4세 | 랭커스터 | 1399 ~ 1413 | 에드워드 3세의 4남 곤트의 존의 장남[3] | |
헨리 5세 | 랭커스터 | 1413 ~ 1422 | 헨리 4세의 아들 | |
헨리 6세 | 랭커스터 | 1422 ~ 1461 | 헨리 5세의 장남 | '광인왕' |
에드워드 4세 | 요크 | 1461 ~ 1470 | 에드워드 3세의 3남 라이오넬의 5대손[4] | |
헨리 6세 | 랭커스터 | 1470 ~ 1471 | 복위 | |
에드워드 4세 | 요크 | 1471 ~ 1483 | 복위 | |
에드워드 5세 | 요크 | 1483 | 에드워드 4세의 아들[5] | |
리처드 3세 | 요크 | 1483 ~ 1485 | 에드워드 3세의 3남 라이오넬의 5대손(에드워드 4세의 동생) | |
헨리 7세 | 튜더 | 1485 ~ 1509 | 에드워드 3세의 4남 곤트의 존의 외현손자 | |
헨리 8세 | 튜더 | 1509 ~ 1547 | 헨리 7세의 차남[6] | |
에드워드 6세 | 튜더 | 1547 ~ 1553 | 헨리 8세의 장남 | |
제인 그레이 | 그레이 | 1553 | 헨리 7세의 외외증손녀[7] | '9일 여왕' |
메리 1세 | 튜더 | 1553 ~ 1558 | 헨리 8세의 장녀 | 후대에 '피의 메리'로 잘못 알려짐 |
엘리자베스 1세 | 튜더 | 1558 ~ 1603 | 헨리 8세의 차녀 | 잉글랜드의 전성기를 개막하고 대영제국의 기반을 마련한 왕, 처녀왕 |
제임스 1세 | 스튜어트 | 1603 ~ 1625 | 헨리 7세의 외증외현손자[8] | 이하 스코틀랜드의 군주와 동일 |
찰스 1세 | 스튜어트 | 1625 ~ 1649 | 제임스 1세의 차남[9] |
3. 잉글랜드 연방의 호국경
잉글랜드 연방 호국경 깃발 |
잉글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이 세워진 곳은 잉글랜드인데, 언약도 성립에 따라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도 흡수해 모두 호국경을 국가지도자로 옹립하고 국호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이 되었다.
이름 | 재위기간 | 비고 |
올리버 크롬웰 | 1653 ~ 1658 | |
리처드 크롬웰 | 1658 ~ 1659 |
4. 잉글랜드 국왕(왕정복고)
이름 | 왕조 | 재위기간 | 비고 |
찰스 2세 | 스튜어트 | 1660 ~ 1686 | 왕정복고 |
제임스 2세 | 스튜어트 | 1685 ~ 1688 | |
메리 2세 · 윌리엄 3세 | 스튜어트 · 오라녜 | 1689 ~ 1694 | 공동국왕,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2세 |
윌리엄 3세 | 오라녜 | 1694 ~ 1702 |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2세 |
앤 | 스튜어트 | 1702 ~ 1707 | 1707 ~ 1714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초대 국왕 |
5. 아일랜드 국왕
아일랜드 왕국 국장 (후기)
1171년 노르만 왕조 헨리 2세의 정복 이래, 1177년 (후에 왕이 되는) 존 왕자의 영지가 되었다. 이후 영국 왕의 영지로서, 지배자는 잉글랜드 왕과 동일.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영주들과 켈트 토착 세력이 남아있어 있어 "귀족령"으로 여겨졌고, 실질적 정복, 즉 "아일랜드 왕국"이 선포 된 것은 1542년 헨리 8세의 정복부터였다. 이후 동군연합의 형태로 사실상 잉글랜드 속령에 속하게 되었으며, 올리버 크롬웰의 1625년 원정 이후 1660년 이후로는 잉글랜드 연방의 일원으로서 다스려지게 되었다. 윌리엄 3세의 1694년 원정으로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지배는 확고하게 되었다.
[1] 두 형이 살아 있었으나 왕위 계승 경쟁에서 밀려나 윌리엄이 즉위했다.[2] 앞서 언급했다시피 마틸다는 즉위식을 치르지 못해 영국의 왕인지 논란이 있다.[3] 자신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계 계승을 부정하였다.[4] 에드워드 4세의 증조부인 에드먼드 계열은 곤트의 존 계열보다 부계로 서열이 낮기 때문에 자신이 라이오넬의 진외증손녀가 자신의 할머니라는 것을 이용해 아버지 대부터 왕위 싸움을 시작했다.[5] 리처드 3세는 에드워드 5세가 사생아라고 주장하며 폐위시켰다.[6] 형인 아서는 요절했다.[7] 메리, 엘리자베스, 메리 1세(스코틀랜드)에게 왕위 계승 순위가 밀렸으나 귀족들이 옹립하여 즉위하였다.[8] 헨리 7세의 장녀 마거릿-마거릿의 아들 제임스 5세-제임스 5세의 딸 메리 1세[9] 형은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