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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왕국 스튜어트 왕조 제5대 국왕 제임스 3세 James III | |
왕호 | 제임스 3세 (James III) |
출생 | 1451년 7월 10일 또는 1452년 5월 10일 |
스털링 또는 세인트 앤드류스 성 | |
사망 | 1488년 6월 11일 (향년 36세) |
스코틀랜드 왕국 소치번 | |
재위 |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 |
1460년 8월 3일 ~ 1488년 6월 11일 | |
배우자 |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1469년 결혼 / 1486년 사망) |
자녀 | 제임스 4세, 제임스, 존 |
아버지 | 제임스 2세 |
어머니 | 헬러의 마리아 |
형제 | 알렉산더, 데이비드, 존, 마거릿, 메리 |
[clearfix]
1. 개요
중세 스코트어: Iames III스코틀랜드 게일어: Seumas III
영어 & 스코트어: James III
스코틀랜드 왕국 스튜어트 왕조의 제5대 왕으로 제임스 2세의 아들이었다.
2. 재위
제임스 2세가 록스버러 공성전 도중 대포 폭발 사고로 사망하자 6살의 나이로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되었다. 즉위 3년 간 그의 모후 메리가 섭정으로 통치하였고 그녀가 죽은 뒤 세인트앤드루스의 대주교 케네디가 섭정을 맡았다. 케네디는 노련한 정치로 국정을 잘 이끌었으나 얼마못가서 사망했고 귀족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당시 귀족들의 수장인 보이드 경이 섭정이 되어 사실상 스코틀랜드를 통치했는데 그들은 권한을 남용하고 전횡을 일삼았다. 그래서 제임스 3세는 성년이 되자 바로 보이드 경과 그의 일가를 모두 숙청하여 친정을 시작한다.2.1. 잉글랜드와 관계
즉위한지 얼마 안된 1461년 겨울에 스코틀랜드군은 잉글랜드의 요충지인 버윅 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장미 전쟁으로 한창이던 잉글랜드에서 요크 왕조의 에드워드 4세가 랭커스터 왕조의 헨리 6세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며 잠시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잉글랜드 국내 정치가 안정되며 국력에서 열세였기에 더 이상 정복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던 제임스 3세는 에드워드 4세와 동맹을 추진했다. 결국 그의 아들 제임스가 에드워드 4세의 딸과 약혼이 이루어져 양국 간에 일단락 평화가 찾아왔다.사실 스코틀랜드 입장에선 상당히 합리적인 정책이었지만 로버트 1세 때부터 이어진 철천지 원수 같은 사이였던 잉글랜드와 하루아침에 결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을 스코트인들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일수 없었다. 이에 국경지대 귀족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제임스 3세의 인기는 순식간에 떨어졌다.
2.2. 또다시 전쟁
결국 1479년 잉글랜드와의 동맹은 수포로 돌아갔고 1482년 에드워드 4세의 동생 글로스터 공작[1]과 제임스 2세의 동생 올버니 공작 알렉산더[2]가 이끄는 잉글랜드 군대는 스코틀랜드를 침공했다. 미리 알버니 공작과 내통한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국왕을 체포해 에든버러 성에 감금했다. 그 사이 잉글랜드 군은 버윅 성을 다시 탈취했고 제임스 2세가 있던 에든버러로 진군했으나 포위 공격할 여건이 되지않자 잉글랜드로 돌아왔다.2.3. 그 후
제임스 3세는 감금되었으나 나중에 탈출하여 올버니 공작의 세력을 붕괴시키고 복귀에 성공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정으로 귀족들의 지지를 잃고 가족들과 사이도 틀어지자 결국 그의 아들을 주축으로 반란이 일어났고 제임스 3세는 반란을 진압하려다 소키번 전투에서 패배해 사망했다.[3]3. 기타
그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세[4]의 딸과 혼인했는데, 크리스티안 1세가 딸의 혼수로 노르웨이 영토인 오크니(Orkney)와 셰틀랜드 제도(Shetland Islands)를 주면서[5], 그동안 노르웨이의 영토였던 이 영토를 더해 지금의 스코틀랜드 국토가 완성됐다.[1] 후에 리처드 3세가 된다.[2] 반역죄로 제임스 3세가 처형하려했으나 프랑스로 도주해서 잉글랜드 편에 붙었다.[3] 패배하여 말을 타고 도주하다가 낙마하여 부상을 입었는데 민가에서 치료받던 도중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고 신부를 데려오게 했는데 그 신부가 귀족들이 보낸 암살자였다. 그래서 제임스 3세는 그 암살자의 칼에 찔려 죽었다.[4] 정확히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왕이었다.[5] 정확히는 지참금을 내기 전에 맡긴 담보였다. 그런데 어째선지 크리스티안은 시간이 지나도 지참금을 주지 않았고, 결국 그대로 스코틀랜드 영토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