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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나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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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알바 왕국 국왕
키나드 1세
Cináed I
파일:키나드 1세.jpg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야코브 데 베트 2세(Jacob de Wet II)가 그린 상상화.[1]
이름 스코틀랜드 게일어: Cináed mac Ailpin (키나드 막 아일핀)
영어: Kenneth I(케네스 1세)
출생 810년
사망 858년 2월 13일 (향년 47~48세)
재위 달 리어타 국왕
841년 ~ 848년
픽트 국왕
843년 ~ 848년
알바 국왕
848년 ~ 858년 2월 13일
아버지 알핀 막 에흐다흐
형제자매 돔날 1세
자녀 카우산틴 1세, 아드 막 키나다

1. 개요2. 생애
2.1. 기원2.2. 달 리어타 국왕 등극과 픽트랜드 병합2.3. 알바의 왕2.4. 계승
3. 가족4. 후대의 전승

[clearfix]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픽트랜드달 리어타의 국왕이다. 별명은 언 페르바삭(An Ferbasach), 우리말로 정복왕이다. 최초로 현재 스코틀랜드의 서부 지역과 동부 지역을 합쳐 한 나라로 만든 왕으로써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부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2. 생애

2.1. 기원

후대에 작성된 <스코틀랜드 국왕 계보>에 따르면, 키나드 1세의 증조부는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을 장악한 달 리어타의 제29대 국왕 아에드 막 에흐다흐이고, 조부는 에오차이드 4세, 아버지는 알핀 막 에흐다흐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의 학계에서는 11세기 말에 게일어로 작성된 두안 알바나흐(Duan Albanach: 스코틀랜드의 노래)와 <얼스터 연대기> 등 달 리어타의 국왕들을 다룬 초기 기록에는 에오차이드 4세와 알핀 막 에흐다흐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삼아, 기록은 후대의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며, 에오차이드 4세는 가공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키나드 1세의 아버지 알핀 막 에흐다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중세 후기 기록인 <달 리어타 왕 목록>에는 그가 841~843년에 통치했다고 명시되었지만, 이 목록에는 많은 필사 오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통치한 시기가 불명확하다. 13세기 스코틀랜드 수도자 포던의 존이 집필한 <헌팅던 연대기>에 따르면, 알핀은 831년 갤러웨이에 군림했으며, 3년간 통치하다가 834년 픽트족과 앵거스 마을 인근에서 전투를 치렀다. 이 전투는 픽트족 왕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고, 달 리어타가 마침내 승리했다. 그러나 "높은 가문과 고귀한 업적을 가진 새로운 왕이 픽트족의 왕으로 추대된 뒤 갤러웨이에서 알핀 막 에흐다흐를 물리치고 생포한 뒤 많은 달 리어타 귀족과 함께 처형했다. 그의 머리는 깃대에 박힌 뒤 픽트족의 행진 때 따라갔고, 마침내 그들의 주요 도시인 에버네시에서 장대에 매달린 채 전시되었다고 한다.

헌팅던 연대기는 알핀 막 에흐다흐가 831년에 집권해서 834년에 죽었다고 밝혔지만, 9세기 아일랜드 얼스터 수도원에서 집필된 <얼스터 연대기>는 이 시기에 카우산틴 막 페르구사, 옹구스 2세, 아에드 막 보안타가 달 리어타의 국왕으로 군림했다고 밝혔다. 또한 839년 아에드 막 보안타가 픽트족의 왕 에오간과 함께 바이킹과 맞서 싸웠으나 끝내 패하고 에오간과 함께 전사했다고 기술했으며, 키나드 1세는 841년에 달 리어타의 왕으로 군림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학자들은 알핀 막 에흐다흐가 달 리어타의 왕이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839년부터 841년까지 재위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2.2. 달 리어타 국왕 등극과 픽트랜드 병합

10세기 카우산틴 2세 대에 집필된 <알바 왕들의 연대기>에 따르면, 키나드 1세는 810년경 아이오나 섬에서 출생했으며, 달 리어타의 왕이 된 뒤 픽트랜드로 진군하기 전 2년간 달 리어타를 통치했으며, 픽트족을 "파괴"한 뒤 16년간 픽트족의 땅을 통치했다고 한다. <멜로즈 수도원 연대기>는 키나드 1세가 843년에 픽트족의 왕이 되었다고 밝혔다.

키나드 1세가 집권한 9세기 전반 달 리어타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왕국의 영토는 불편하고 좁은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국한되었으며, 그 주변 지역은 대부분 산악지대였다. 게다가 그의 영토는 여러 면에서 압박받았다. 남쪽에는 브리튼인 왕국 스트래스클라이드가 있었고, 동쪽에는 알반 산맥이 있어서 교통이 불편했으며, 스코틀랜드 서해안 인근 해브리디스 군도에 정착한 바이킹이 달 리어타 해안을 종종 습격해 피해를 입혔다. 많은 학자들은 키나드 1세가 이러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픽트랜드 병합을 꾀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당시 픽트랜드는 839년 바이킹의 침략으로 에오간 왕이 전사한 뒤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헌팅던 연대기>는 에오간 사후 '데인족 해적'이 자국을 수호하던 픽트족을 대규모 학살을 통해 파괴했으며, 키나드 1세는 살아남은 픽트족의 영역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픽트 연대기>에 따르면, 839년 에오간 왕이 달 리어타 국왕 아에드 막 보안타와 함께 바이킹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뒤, 우라드가 집권해 3년간 통치했고, 우라드의 세 아들 브리데이 6세가 842년에 집권했지만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알바 왕들의 연대기에서 키나드 1세가 842년 픽트족을 파괴하고 픽트랜드를 통치했다고 밝힌 것을 볼 때, 브리데이 6세는 키나드 1세의 침략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픽트 연대기는 브리데이 6세 사후 형제 키니오드 2세가 집권해 1년간 군림했으며, 브리데이 7세가 뒤이어 왕위에 올라 2년간 통치했고, 키니오드 2세의 또 다른 형제 드레스트 10세가 브리데이 7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3년간 통치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볼 때 픽트족은 키나드 1세가 픽트랜드 상당수 지역을 지배한 뒤에도 끊임없이 자기들만의 국왕을 내세워 저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12세기에 집필된 '베르한의 예언'과 웨일스의 수도자 제럴드가 쓴 라틴어 문학 <왕자의 지시대로>(De instructione principis)에 따르면, 키나드 1세는 픽트족 왕좌에 대한 권리가 있는 모든 인사들을 스콘에서 열린 회의에 초대했다. 그 후 비밀리에 무장한 게일인들이 습격해 드레스트 10세와 픽트족 귀족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베르한의 예언은 키나드 1세가 그들을 칼날 구덩이로 몰아넣었다고 하며, 왕자의 지시대로에서는 픽트인들이 술에 잔뜩 취하자 게일인 군대가 그들이 앉아있던 의자의 볼트를 풀어서 밑에 숨겨져 있던 흙구덩이에 떨어뜨렸는데, 그 함정에는 칼날들이 세워져 있어서 전부 찔려 죽었다고 밝혔다.

일명 '막알핀의 배신'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의 진위는 불분명한데, 여러 학자는 게일인이 픽트족을 대체하여 스코틀랜드의 지배자가 된 것을 암시하는 전설일 뿐,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추정한다. 다만 키나드 1세가 단독 군주로 군림하기 위해 왕위 경쟁자들과 추종자들을 모조리 척살했을 가능성은 높다. 픽트 연대기는 드레스트 10세 사후 키나드 1세가 픽트랜드의 군주가 되었다고 설명했는데, 이에 따르면 드레스트 10세가 사망한 848년 이후로 픽트족은 키나드 1세의 집권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키나드 1세의 어머니가 픽트 공주이며, 외종조부가 알핀 1세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키나드 1세가 픽트랜드 왕위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서 분명하지 않다.

2.3. 알바의 왕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키나드 1세가 픽트랜드를 달 리어타에 병합한 후, 게일어 이름인 '알바'(Alba)로 불리는 새로운 왕국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나중에 스코틀랜드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왕국의 최종 통일은 반 세기 후에 이뤄졌으며, 키나드 1세는 그저 스코틀랜드 전체를 통치하고자 한 새로운 왕조를 창설했을 뿐이라고 본다. 픽트 연대기는 키나드 1세 집권을 끝으로 끝나지만, 달 리어타 왕들의 목록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끝났다. 이는 달 리어타에 더 이상 독립적인 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나드 1세와 그의 행정부는 픽트랜드의 중심지인 스콘으로 이전했으며, 달 리어타에 살던 게일인들도 픽트족의 땅으로 대거 이주했다. 알바 왕 연대기에 따르면, 키나드 1세는 848년 또는 849년에 바이킹의 끊임없는 습격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아이오나 섬의 버려진 수도원에 있던 유물을 스코틀랜드 교회의 중심지가 된 던켈드로 옮겼으며, '운명의 돌'을 아이오나에서 스콘으로 옮겨서 대관식 왕좌 기단에 두었다고 한다. 10세기 이전의 <아일랜드 연대기>는 키나드 1세와 후손들이 픽트족의 왕이라는 칭호를 썼다고 밝혔지만, 이는 픽트족이 계속해서 독립을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픽트족의 민법과 교회법 체계는 달 리어타의 법 체계로 대체되었으며,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알바 왕 연대기는 키나드 1세의 통치 기간 중 일어난 다른 사건들은 날짜를 언급하지 않고 그저 나열하기만 했다. 이에 따르면, 그는 삭소니아[2]를 6차례 침략해 멜로즈와 던바를 공략하고 불태웠다. 하지만 그 사이에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이 침략하여 던블레인을 불태웠으며, 바이킹이 클루니와 던켈드까지 침략해 상당한 파괴를 자행했다고 한다. 멜로즈 수도원 연대기는 키나드 1세가 스코틀랜드의 첫번째 입법자이지만, 그의 연대기는 연대기가 집필된 시대에 이르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2.4. 계승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키나드 1세는 858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알바 왕 연대기는 그가 포르테비오트에서 종양으로 인해 2월 13일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오나 섬에 묻혔다고 하며, 동생인 돔날 1세가 왕위를 계승했고, 돔날 1세가 사망한 뒤 키나드 1세의 아들인 카우산틴 1세아드 막 키나다가 잇따라 왕위에 올랐다. 그의 가문은 '막알핀 왕조'로 일컬어졌으며, 11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를 통치했다.

3. 가족

4. 후대의 전승

1570년대에 조지 뷰캐넌이 쓴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키나드 1세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현재 대중적으로 알려진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 스코틀랜드를 건국했다는 키나드의 전설이 최초로 완성된다. 이 기록들은 19세기 말 윌리엄 스콘 등의 연구에서 재검토되는데, 스콘은 픽트족의 왕사를 연구하다 픽트족의 모계 상속 전통을 밝혀냈고 이를 통해 모계가 픽트 왕족이라 픽트 왕위에 오른 게일인들의 선례를 찾아내면서, 키나드 1세 역시 모계를 통해 픽트족의 왕위를 얻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역사가 알렉스 울프는 이 연구결과를 계승해, 키나드가 스코틀랜드라는 정체성은 아직 없었고 그를 픽트 왕이라 보는 것이 더 부합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키나드 1세의 어머니가 정말로 픽트족의 공주라는 걸 분명히 드러내는 사료는 전혀 없기 때문에, 그가 무력을 동원해 픽트족을 정복했다는 중세 기록들을 부정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1] 그는 찰스 2세 시기 스코틀랜드 궁정에 들어가 110여 점의 스코틀랜드 군주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 시대의 상상화가 그렇듯 고증오류가 돋보인다. 일단 17세기 당대의 복장에 중세 스코틀랜드 느낌을 내려고 그레이트 킬트를 착용한 모습이다.[2] Saxonia. 색슨족이 사는 땅이란 뜻으로, 학자들은 노섬브리아에 속한 로디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