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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알바 왕국 국왕 막 베하드 Mac Bethad | |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야코브 데 베트 2세(Jacob de Wet II)가 그린 상상화. | |
이름 | 중세 게일어: Mac Bethad (막 베하드) 스코틀랜드 게일어: MacBheatha (막바허) 영어: Macbeth (맥베스) |
출생 | 1005년경 |
사망 | 1057년 8월 15일 (향년 51~52세) |
재위 | 스코틀랜드 알바 국왕 |
1040년 8월 14일 ~ 1057년 8월 15일 | |
부모 | 아버지: 핀들라크 막 루어드리 어머니: 도나다? |
배우자 | 그루오크 잉겐 베터 |
의붓자녀 | 룰라흐 막 길레 쿰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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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알바 왕국 제19대 국왕. 모레이 왕조 초대 국왕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실존 인물로 유명하다.2. 생애
1005년경 모레이의 모르마르[1]인 핀들라크 막 루어드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알바 국왕 말 콜룸 2세의 딸 도나다라고 한다. 헌팅던 연대기는 막 베하드를 말 콜룸 2세의 "nepos"라고 했는데, 이는 조카 또는 손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말 콜룸 2세의 손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편, 중세 연대기 작가 윈튼의 앤드류는 막 베하드를 돈카드 1세의 자매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티거나흐 연대기>에 따르면, 아버지 핀들라크 막 루어드리가 형제인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와 말 콜룸 막 말 브리티가 선동한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 뒤이어 모레이 모르마르에 오른 말 콜룸 막 말 브리티는 1029년에 사망했고, 뒤이어 모르마르에 오른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는 1032년에 거주지에서 일어난 화재로 수행원 50명과 함께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일부 학자들은 말 콜룸 2세가 유력한 왕위 계승자인 그를 질시해 음모를 꾸며서 그를 암살했다고 주장했고, 다른 학자들은 막 베하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고 추정한다. 이후 막 베하드가 모레이의 모르마르가 되었다. 그는 이 시기에 말 콜룸 2세의 형제인 보이테 막 키나다의 딸이며, 전임 모레이 모르마르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의 아내였던 그루오크 잉겐 베터와 결혼했다. 그루오크는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와의 사이에서 아들 룰라흐 막 길레 쿰가인을 낳았지만, 막 베하드와의 사이에선 자녀를 낳지 못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크누트 대왕이 1031년에 스코틀랜드로 원정했을 때, 막 베하드는 말 콜룸 2세와 함께 그를 알현하고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막 베하드가 다스리는 모레이 지역은 알바 왕국과는 독립적인 위치를 점유했기에 개별적으로 충성 맹세를 했다고 주장했고, 다른 학자들은 말 콜룸 2세에게 종속된 봉신으로서 크누트 대왕에게 충성을 서약했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맥베스는 1032년까지 모레이의 통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누트 대왕에게 '모레이 영주' 자격으로 충성을 서약할 수 없었다. 이에 일부 학자들은 이 기록에 등장하는 막 베하드는 모레이의 막 베하드가 아니라 아일랜드의 작은 섬에 있는 교회의 수장 막 베하드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 기록이 여러 해에 걸쳐 벌어진 사건을 하나로 축약했을 뿐이라서 막 베하드 본인이 충성을 서약한 게 맞다고 본다.
1034년 11월 25일, 말 콜룸 2세가 사망했다. 던켈드의 평신도 수도원장이자 아솔의 모르마르인 크리난은 알바 왕국 내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갖췄기에 자기 아들 돈카드 1세를 왕위 계승자로 밀어붙일 수 있었고, 말 콜룸 2세도 생전에 그를 후계자로 낙점했기에, 돈카드 1세가 무난하게 알바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막 베하드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돈카드 1세는 1038~1039년 노섬브리아의 더럼을 포위했다가 크게 패했고, 노섬브리아 백작 이드울프가 알바 왕국에 편입된 옛 스트래스클라이드 영토를 파괴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돈카드 1세는 오크니 제도의 통치자 토르핀 2세 시구르드손의 지배하에 있던 스코틀랜드 북부 두 지역인 케이스네스와 서덜랜드를 정복하기 위해 2차례 원정대를 보냈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노르드족에 의해 격파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군사 원정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자, 돈카드 1세에게 불만을 품은 알바 귀족들은 막 베하드 쪽으로 기울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돈카드 1세는 1040년 원정군을 조직해 모레이를 침공했으나 파멸을 맞이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돈카드 1세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왕들의 목록>에 따르면, 이 일이 보스나고완 전투[2]에서 벌어졌으며, 전투 날짜는 8월 14일이라고 한다. 그 후 막 베하드는 알바 국왕으로 등극했다 1045년, 돈카드 1세의 아버지 크리난이 아들의 원수를 갚고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둔켈드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때 돈카드 1세의 남동생 말드레드도 함께 전사했으며, 돈카드 1세의 자식들은 어머니와 함께 잉글랜드 왕국으로 망명했다.
<오크네잉가 사가>(Orkneyinga Saga)[3]에 따르면, 오크니 제도의 통치자이자 말 콜룸 2세의 외손자 토르핀 2세 시구르드손은 외조부로부터 케이스네스 지역을 수여받고 스코틀랜드인과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나 조부가 사망한 후,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등극한 '칼 헌다손(Karl Hundason)'이 케이스네스를 도로 회수하려 들었고, 이전에 스코틀랜드 왕에게 지불되었던 것과 동일한 세금을 받으려 했다. 토르핀 2세는 케이스네스가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며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칼 헌다손은 자기 조카인 마단(또는 맘탄)을 파견해 케이스네스를 접수하게 했다.
이후 칼 헌다손은 배 11척을 이끌고 해안을 따라 북상했고, 마단은 육로를 통해 케이스네스로 진군했다. 토르핀은 이에 대항해 바다에서 칼 헌다손을 격파하고, 케이스네스에서 마단을 격파하고 살해한 뒤, 토프니스(Thorfness) 전투에서 칼 헌다슨을 처단한 후 오크니에서 파이프 지역까지 이어기는 스코틀랜드 전역을 정복했다. 그 후 조카 로그발드 브루사손과 함께 8년간 통치했지만, 나중에 두 사람이 최고 권력을 놓고 분쟁을 벌인 끝에 내전을 벌이다가 토르핀이 로그발드를 살해했다고 한다. 현대 학계에서는 이 기록에 대해 토르핀 2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했다는 건 다른 기록들과 교차검증되지 않으므로 왜곡되었으며, 단지 알바 왕국의 침공을 격퇴했을 뿐이라고 추정한다. 일부 학자들은 토르핀 2세와 전쟁을 벌인 칼 헌다손이 막 베하드와 동일인물이라고 추정하고, 다른 학자들은 돈카드 1세라고 추정한다.
막 베하드는 교회와 수도원에 막대한 후원을 했다고 알려졌으며, 수도자들은 그런 그를 "왕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정의를 실현한 군주"라고 호평했다. 1050년, 막 베하드는 로마 순례를 떠났는데, 한 연대기 작가에 따르면 여행 중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기를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했다고 한다. 그가 로마로 왕래하는 여러 달 동안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는 건 알바 왕국을 확고히 장악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잉글랜드 왕국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1052년, 잉글랜드에서 반 노르만족 봉기가 일어나면서 에드워드 참회왕의 궁정에 자리잡은 노르만족이 추방되었다. 이때 추방당한 이들 중 일부는 막 베하드의 궁정으로 망명했다. 노섬브리아 백작 시워드는 이를 구실 삼아 돈카드 1세의 아들인 말 콜룸 3세를 지원하기로 했다. 1054년, 시워드의 군대는 알바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그 해 7월 27일 타이 강 북쪽 퍼스셔 지방의 던시네인 언덕에서 양군이 격돌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인 3,000명과 잉글랜드인 1,500명이 전사했으며, 시워드의 아들 오스베온과 조카 시워드가 전사했다고 한다.
12세기 연대기 작가 헌팅던의 헨리에 따르면, 시워드는 승리를 거둔 뒤 알바 왕국 각지를 약탈해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했으며, 막 베하드는 시워드의 요구에 따라 말 콜룸 3세에게 땅과 지위를 줘야 했다고 한다. 말 콜룸 3세가 받은 땅이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막 베하드가 여전히 마운트 강 북쪽 지역을 통제하는 가운데 말 콜룸 3세가 포스강과 클라이드 강 남쪽 지역을 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1057년, 말 콜룸 3세와 막 베하드간의 전쟁이 재개되었다. 그 해 8월 초, 막 베하드는 룸파난 전투에서 말 콜룸 3세에게 패배해 목숨을 잃었다. <베찬의 에언>에 따르면, 말 콜룸 3세는 룸파난 전투 며칠 후인 8월 15일에 스콘에서 남쪽으로 60마일 떨어진 지점인 케어나마운트 고개에서 부상이 악화되어 죽었다고 한다. 그 후 막 베하드의 의붓아들인 룰라흐 막 길레 쿰가인이 알바 국왕이 되었지만, 1058년 3월 17일에 스트라스보기의 라이니 인근 에시에서 말 콜룸 3세에게 피살되었고, 말 콜룸 3세가 알바 국왕으로 등극했다.
후대 작가들과 달리, 당대의 어떤 사료도 막 베하드를 폭군이라고 규탄하지 않았다. 말 콜룸 3세 통치 시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알바나흐(Duan Albanach: 스코틀랜드의 노래)는 그를 "저명한 막 베하드"라고 칭했으며, <베찬의 예언>은 그를 "포트리우의 관대한 왕"이라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붉은색의 키 크고 금발인 그는 그들 사이에서 기분 좋은 존재가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격노하는 붉은 자의 통치 기간 동안 서쪽과 동쪽이 넘쳐날 것이다.
3. 매체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는 이 인물의 생애를 다룬 것이다. 줄거리는 역사와 비슷하다.[1] Mormaer, 중세 스코틀랜드의 지역 통치자를 지칭하는 용어[2] 현재 스코틀랜드 모레이 주의 피트가베니로 추정된다.[3] 오크니 제도와 셰틀랜드 섬의 역사와 노르웨이와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다른 지역 세력과의 관계를 다룬 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