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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1 19:01:55

돈카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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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알바 왕국 국왕
돈카드 1세
Donnchad I
파일:돈카드 1세.jpg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야코브 데 베트 2세(Jacob de Wet II)가 그린 상상화.
이름 스코틀랜드 게일어: Donnchad mac Crinain (돈카드 막 크리난)
영어: Duncan I (던컨 1세)
출생 미상
사망 1040년 8월 14일(향년 미상)
재위 알바 왕국 국왕
1034년 ~ 1040년
부모 아버지: 던켈드의 크리난
어머니: 베토크
형제 말드레드
배우자 수타인?
자녀 말 콜룸 3세, 돔날 3세, 멜마르

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알바 왕국 제18대 국왕. 둔켈드 왕조 초대 국왕이다.

2. 생애

던켈드의 평신도 수도원장이자 아솔의 모르마르[1]인 크리난과 말 콜룸 2세의 딸인 베토크의 아들이다. 형제로 알러데일(Allerdale)의 남작이며 1034/1035년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의 섭정을 맡은 말드레드가 있었다. 출생년도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학자들은 대체로 1000년대 초반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알바 국왕 말 콜룸 2세에게는 본래 아들이 있었다. 동시대에 활동한 부르고뉴 출신 연대기 작가 라울 글라버는 1026년 이전에[2] 크누트 대왕이 말 콜룸 2세의 갓난아들의 세례를 참관했으며, 아기를 직접 '성스러운 세례 샘'에 넣어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아이는 1030년대엔 이미 사망했다. 말 콜룸 2세의 성명이 알려지지 않은 딸은 오크니 제도 통치자 시구르드 2세 흐로도비르손과 결혼해서 아들 토르핀 2세 시구르드손을 낳았지만, 게일인 계열인 알바 귀족들은 노르드족의 피가 흐르는 토르핀 2세를 왕으로 받들고 싶어하지 않았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말 콜룸 2세에게는 도나다라는 딸이 있었는데, 모레이의 모르마르 핀들라크 막 루어드리와 결혼해 막 베하드를 낳았다고 한다. 헌팅던 연대기는 막 베하드를 말 콜룸 2세의 " nepos "라고 했는데, 이는 조카 또는 손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말 콜룸 2세는 막 베하드 대신에 자기 딸 베토크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인 돈카드 1세를 후계자로 낙점했다.

역사가들은 말 콜룸 2세가 돈카드 1세를 후계자로 여겼다는 증거로 1018년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의 군주인 에오건 2세가 사망한 후 그가 이 왕국의 브리튼인에게 돈카드 1세를 새로운 통치자로 인정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돈카드 1세가 스트래스클라이드의 왕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아들 말 콜룸 3세가 1054년 노섬브리아의 지원을 받아 막 베하드와 전쟁을 벌인 사실을 설명한 잉글랜드 사료에서 말 콜룸 3세가 스스로를 "컴브리아의 왕의 아들"이라고 지칭했다고 밝혔다는 것에 근거한다.

사실 돈카드 1세 외에도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만한 이들이 여럿 있었다. 알바 왕국은 키나드 1세 이래로 카우산틴 1세의 후손인 '카우산틴 막 키네다 씨족'과 아드 막 키나다의 후손인 '아드 막 키나다 씨족'이 왕위를 차례로 계승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말 콜룸 2세는 카우산틴 1세의 후손이었고, 아드 막 키나다 씨족의 마지막 대표자는 1005년 말 콜룸 2세와 내전을 치르다 죽은 키나드 3세였다. 키나드 3세는 기록상에는 자녀를 두지 못했다고 하는데, 일부 학자들은 말 콜룸 2세가 키나드 3세의 자녀마저 살해한 뒤 존재 자체를 지워버렸을 거라고 추정한다. 또한 키나드 2세의 아들이자 말 콜룸 2세의 형제인 보이테 막 키나다에게는 손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1033년 말 콜룸 2세가 외손자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그 아이를 죽여버렸다고 한다. 또한 보이테에게는 딸 그루오크 잉겐 베터가 있었는데, 모레이 모르메르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와 결혼해 아들 룰라흐 막 길레 쿰가인을 낳았고, 길레 쿰가인이 1032년에 살해된 뒤 남편의 사촌안 막 베하드와 재혼했다.

1034년 11월 25일 말 콜룸 2세가 사망했을 때, 돈카드 1세의 아버지인 크리난의 파벌이 알바 왕국 내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갖췄고, 말 콜룸 2세도 생전에 그를 후계자로 낙점했기에, 돈카드 1세는 무난하게 알바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며, 모레이 모르마르 막 베하드도 이를 용인했다. 크누트 대왕 역시 그의 집권을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크리난이라는 이름이 크누트 대왕 통치 초기(1017~1023)에 발행된 동전 일부에 나타났는데, 이는 크리난이 이 시기에 잉글랜드 국왕의 궁정에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크리난의 둘째 아들이자 돈카드 1세의 동생인 말드레드는 애설레드 2세의 아들이자 노섬브리아 백작 우트레드의 딸 에지타(에드기푸)와 결혼해 1067년부터 노섬브리아 백작이 될 고스페트릭 1세를 낳았는데, 이 결혼 역시 크누트 대왕의 승인 아래 이뤄졌을 것이다.

돈카드 1세가 알바 국왕이 되면서 본래 맡았던 스트래스클라이드(컴브리아)가 알바 왕국에 병합되었고, 알바 왕국의 국경이 솔웨이 해협과 트위드 강까지 남족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1035년 크누트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놓고 내전을 벌이면서, 평온했던 브리튼 제도는 혼란에 휩싸였고, 알바 왕국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1038년, 노섬브리아 백작 뱀버러의 에돌프가 스트래스클라이드를 침공하여 황폐화시켰다. 이에 격분한 돈카드 1세는 1039년 노섬브리아를 침공해 더럼을 포위했다. 그러나 그는 곧 패퇴하여 알바 왕국으로 귀환했다. 12세기 초에 작성되었지만 11세기의 서면 및 구술 자료도 포함된 <시작에 대한 소책자>(Libellus de exordio)에 따르면, 더럼 수비대가 돈카드 1세의 기병대에 피해를 입혔고, 알바군이 무질서한 퇴각 과정에서 도망치던 보병 중 많은 수가 사망했다. 이후 살해된 알바인의 머리는 더럼 시장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돈카드 1세는 오크니 제도의 통치자 토르핀 2세 시구르드손의 지배하에 있던 스코틀랜드 북부 두 지역인 케이스네스와 서덜랜드를 정복하기 위해 2차례 원정대를 보냈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노르드족에 의해 격파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군사 원정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의 위상은 추락했고, 많은 알바 귀족들은 모레이에서 강력한 위세를 떨치던 막 베하드를 대안으로 점찍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돈카드 1세는 1040년 원정군을 조직해 모레이를 침공했으나 파멸을 맞이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돈카드 1세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왕들의 목록>에 따르면, 이 일이 보스나고완 전투[3]에서 벌어졌으며, 전투 날짜는 8월 14일이라고 한다. 그의 유해는 엘긴 성에 안장되었고[4], 2세기 후에 그의 후손인 알락산더르 2세가 그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거행하고 엘긴 대성당에 사목부를 설립했다. 그곳에 근무하는 목사는 그의 영혼을 위해 매년 미사를 드리는 대가로 엘긴 자치구의 왕립 수입에서 차출한 3마크를 매년 받았다.

이렇게 돈카드 1세가 죽은 뒤, 막 베하드가 알바 국왕이 되었다. 당시 여전히 살아있었던 돈카드 1세의 아버지 크리난은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1045년 반란을 일으켰지만, 막 베하드가 파견한 토벌대에 의해 던켈드에서 살해되었고, 크리난의 둘째 아들이자 돈카드 1세의 동생 말드레드도 피살되었다. 돈카드 1세의 자식들은 알바 왕국을 떠나 잉글랜드 왕국 왕실을 피난처로 삼았다. 그 중 장남인 말 콜룸 3세가 1054년 노섬브리아의 지원을 받아 던시네인 힐 전투에서 막 베하드를 물리치고 테이 강 남쪽의 스코틀랜드 일부를 확보했으며, 1057년 8월 15일에 재차 막 베하드를 물리치고 처단했다. 일부 알바인들은 막 베하드의 의붓아들인 룰라흐를 왕으로 옹립했지만, 1058년 3월 말 콜룸 3세가 룰라흐를 살해하고 알바 왕위에 올랐다. 그 후 돈카드 1세의 후손들은 1290년까지 알바 왕국을 통치했다.

3. 가족



[1] Mormaer, 중세 스코틀랜드의 지역 통치자를 지칭하는 용어[2] 라울 글라버는 1031년이라고 표기했지만, 현대 학자들은 1026년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3] 현재 스코틀랜드 모레이 주의 피트가베니로 추정된다.[4] 일부 사료는 아이오나 섬에 묻혔다고 기술했지만 신빙성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