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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19:24:24

로베르 2세(노르망디)

파일:노르망디 문장.svg
노르망디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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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urthose. 문서 제목의 '로베르'는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그의 모어였을 고대 노르만어(old norman) 발음으로는 '로베르트'였을 것으로 보인다. 노르만 정복 이후 중세 영어와 여기에서 파생된 초기 스코틀랜드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복왕 윌리엄 1세의 장남. 별명 Curthose는 짧은 스타킹이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줬다고 한다.

아버지와 형제들과 어렸을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원래대로라면 윌리엄을 이어 왕이 되었었겠지만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에게 상속권 일체를 박탈당하고 프랑스로 추방당했으나 윌리엄이 죽어가면서 그래도 아들이라고 내어준 노르망디 공작 자리에 올라 로베르 2세가 되었고 제1차 십자군 전쟁에도 참가했다.

아버지와 동생 윌리엄 2세 사후 4남 헨리 1세가 왕이 되자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침입하여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왕위계승자라고 주장하였는데 헨리의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귀족들은 대부분 로베르 2세의 편에 섰다. 하지만 헨리는 수많은 봉건 귀족들과 특히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대주교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확보해 로베르와 대등한 싸움을 벌였으며 결국에는 타협안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 타협안으로 로베르 2세는 잉글랜드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는 대신 노르망디 지방의 영토와 막대한 연금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로베르 2세의 통치는 노르망디 사람들의 불만을 가져왔고 노르망디 귀족들의 부탁을 받은 헨리 1세는 프랑스의 묵인 아래 1106년 노르망디를 정벌하여 탱슈브레 전투에서 로베르의 군대를 격멸하고 노르망디를 수중에 넣는다. 이후 패배한 로베르는 포로가 되어 잉글랜드로 압송되었고 엄중한 감시 속에 여생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