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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0F25><colcolor=#fff> 노르망디 공작 리샤르 3세 Richard III | ||
이름 | 리샤르 3세(Richard III) | |
출생 | 1008년경 | |
노르망디 공국 페캉 | ||
사망 | 1027년 8월 6일 (향년 18~19세) | |
노르망디 공국 루앙 | ||
지위 | 노르망디 공작 | |
1026년 ~ 1027년 | ||
아버지 | 리샤르 2세 | |
어머니 | 주디트 | |
형제 | 로베르 1세, 기욤, 아델라이드 | |
배우자 | 아델 | |
자녀 | 알릭스, 니콜라(사생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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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망디 공국 2대 공작.2. 생애
1008년경 노르망디 공국의 페캉에서 노르망디 초대 공작 리샤르 2세와 브르타뉴 공작 코난 1세의 딸인 주디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초기 생애는 알려진 바 없지만, 일찍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1026년, 리샤르 2세는 샬롱쉬르손에 포로로 잡혀 있던 사위 부르고뉴 백작 르노 1세를 구출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먼저 샬롱 백작이자 오세르 주교인 위그 드 샬룡에게 그를 석방해달라고 요청했고, 위그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죄수의 경비를 강화하자 아들 리샤르 3세에게 군대를 소집해 그를 응징하도록 했다. 그러나 샬롱 침공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인 1026년 8월 19일에 페캉에서 사망했고, 리샤르 3세가 브르타뉴 공작에 선임되었다.리샤르 3세는 즉위 직후 이아모아 백작을 맡은 남동생 로베르 1세의 반란에 직면했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에서 반란군을 포위했고, 로베르 1세는 곧 항복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리샤르 3세는 이에 만족해 동생이 직위와 영지를 유지하도록 해줬다. 그 후 아버지 생전에 명령받은 대로 원정을 속행하기로 마음먹고, 1027년 초 부르고뉴로 진입한 뒤 샬롱으로 접근했다. 11세기 노르만 연대기 작가 기욤 드 쥬미에쥬(Guillaume de Jumièges, ? ~ 1070)에 따르면, 그는 멜리낭드 성을 점령한 뒤 그곳에서 항전했던 기사들과 주민들 상당수를 산채로 불태웠다고 한다. 이후에도 각지를 약탈하던 그는 샬롱 성을 포위했고, 위그 드 샬롱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르노를 풀어줬으며, 담보와 인질을 넘겼다.
샬롱 원정을 마치고 귀환한 리샤르 3세는 프랑스 국왕 로베르 2세의 딸 아델과 결혼해 조부 리샤르 1세부터 이어진 카페 왕조와의 우호 관계를 이어갔다. 그는 아델에게 셰르부르 성, 홀무스 성, 브루오툼 성, 쿠탕스 시, 오몬빌, 바르플뢰르, 베르, 세렌세스, 아공, 발로뉴 일대를 수여했다. 그러나 1027년 8월 6일, 그는 돌연 급사했다. 기욤 드 쥬미에쥬에 따르면, 그는 독살당했다고 한다. 몽생미셸 수도원장이자 노르만 연대기 작가 로베르 드 토리니(Robert de Torigni, 1110 ~ 1186)에 따르면, 그를 독살한 자는 남동생인 로베르 1세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로베르 1세가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노르망디 공작을 꿰찬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유해는 루앙의 생투앙 수도원에 안장되었고, 로베르 1세가 노르방디의 새 공작으로 등극했다.
3. 가족
- 프랑스의 아델(1009 ~ 1079): 프랑스 국왕 로베르 2세의 딸. 리샤르 3세 사후인 1028년 플란데런 백작 보두앵 5세와 재혼했고, 플란데런 백작 보두앵 6세와 윌리엄 1세의 왕비가 될 플랑드르의 마틸다를 낳았다.
- 사생아
- 니콜라(1027/1028 ~ 1092): 루앙의 생투앙 수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