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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의 섬. 키슘으로도 표기된다. 호르무즈 해협 서쪽 및 반다르아바스 남쪽에 위치한, 페르시아 만과 이란 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은 1,491 km2로 서울특별시의 두배 크기이며, 제주도보다 조금 작다. 이란의 제주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란 내부에서는 유명한 휴양지이다. 섬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는 2주 무비자 혜택이 주어진다. 해외에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케슘 시내에는 포르투갈 제국에서 세운 성채가 있고, 근처 해안에서는 돌고래 투어와 패러글라이딩 체험이 가능하다. 섬 자체도 고래 모양이라 그런지 인근 바다에는고래가 서식한다.
케슘 섬의 상당 부분은 황량한 사막 지대지만, 종종 보이는 바위산들은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특히 섬의 서남부에 있는 탕게 차쿠 협곡은 16세기 현지인들이 포르투갈 식민주의자들을 피해 은거하던 곳으로, 섬 동부의 스카르간 (별 광산) 협곡과 함께 석회암 지형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섬 북쪽의 장갈레 하라는 중동 최대의 맹그로브 숲으로, 배편을 예약해야 둘러볼 수 있다. 교통편으로는 섬의 중남부에 있는 케슘 국제 공항이 있으며, 연륙교 건설이 계획 중이다. 실제로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의 거리는 불과 2km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지만, 17세기 사파비 왕조 & 잉글랜드 연합군과 포르투갈 제국, 19세기 카자르 왕조와 오만 제국 & 영국 연합군 간의 전투가 벌어졌던 것을 제외하면 큰 사건은 없었다. 그러다가 1988년 7월 케슘 섬 남쪽 상공에서 이란항공 655편 격추 사건이 벌어져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약 15만에 이르는 섬의 주민들은 주로 어업과 관광업에 종사한다. 내륙의 주민들 중에서는 아랍인, 특히 과거 노예 무역의 영향으로 흑인계 아랍인이 많다. 이들은 아프리카 토착 문화가 가미된 흥겨운 노래와 제례 의식을 거행하여 주류 페르시아 문화와 비교하여 신선함을 준다. 케슘 섬의 기온은 연중 16 ~ 40도 정도로 온난한 편이다.
2. 해당 섬에 위치한 동명의 도시
시가지 전경
섬 동쪽 끝에 자리한 인구 4만의 도시. 반다르 케슘으로도 표기된다. 동북쪽의 호르무즈 섬과는 불과 12km 거리로, 포르투갈 제국 시절 호르무즈를 바라보는 곳에 성채가 세워졌다. 섬 최대의 도시이자 케슘 군의 치소로, 관광 산업 덕에 도시 규모에 비해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아자드 이슬람 대학교 케슘 캠퍼스는 서쪽으로 15km 떨어진 다르간에 있다. 서북쪽 외곽의 톨라에는 고급 리조트 단지가, 그 서쪽에는 공단이 있다. 2005년 11월에는 지진으로 시가지와 성채가 일부 파괴를 겪었다.
2.1. 포르투갈 성채
호르무즈 섬이 포르투갈 령이 된지 1세기가 지난 1619년 5월, 약 2천의 포르투갈 군이 케슘에 상륙해 5개월 반에 걸쳐 성채를 건설했다. 이는 (이베리아 연합의) 경쟁국인 잉글랜드가 인근 반다르 자스크에 거점을 마련한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1620년 12월 자스크 해전에서 잉글랜드 함대는 포르투갈 함대를 격퇴했다. 1621년 말부터 사파비령 쉬라즈 총독인 이맘 콜리 칸이 성채를 9개월간 봉쇄했고, 비단 교역을 위해 당도한 잉글랜드 함대와 합류해 공격을 강화했다. 도움의 대가로 잉글랜드는 (점령에 성공할 시) 호르무즈 성채의 통제권 및 무역 특권이 주어졌다. 협상이 결렬된 후 1622년 2월에 잉글랜드 함대는 케슘 성채를 포격하기 시작했고, 수비대는 곧 항복했다.
뒤이어 4월에는 호르무즈 성채 역시 함락되었다. 1629년 포르투갈 함대의 재침에 이맘 콜리 칸은 평화를 대가로 연공 납부에 합의했으나 곧 그가 처형되며 연공 납부는 중단되었다. 1645년에는 사파비 왕조와 무역 협상이 잘 안되던 네덜란드 함대가 케슘 성채를 공격했고, 함락에 실패했으나 협상에 진전을 이끌어냈다. 포르투갈은 1673년까지 케슘에 대한 연공을 요구했으나 결국 네덜란드에게 축출되었다. 1741년 나디르 샤는 오만 원정에 있어 케슘을 중간 거점으로 활용했다. 1806년에는 오만 제국이 케슘을 공격했고, 1807년에는 협정에도 불구하고 현지 셰이크 몰라 호세인이 오만군에 사로잡혔다. 1807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전함 Alert가 케슘 성채를 장악했으나 셰이크 솔탄 사크르에게 축출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이 이루어져 중국산 도자기, 베네치아산 유리 등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