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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6 14:28:58

이규보

문순공에서 넘어옴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사(高麗史)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calc(1.5em + 6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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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세가(世家)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670000,#fedc89> 1·2권 3권 4·5권
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성종 · 목종 현종 · 덕종
<rowcolor=#670000,#fedc89> 6권 7·8·9권 10권
정종靖宗 문종 · 순종 선종 · 헌종
<rowcolor=#670000,#fedc89> 11·12·13·14권 15·16·17·18·19·20권 21권
숙종 · 예종 인종 · 의종 · 명종 신종 · 희종 · 강종
<rowcolor=#670000,#fedc89> 22·23·24권 25·26·27권 28·29·30·31·32권
고종 원종 충렬왕
<rowcolor=#670000,#fedc89> 33·34·35권 36권 37권
충선왕 ·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 충정왕
<rowcolor=#670000,#fedc89> 38·39·40·41·42·43·44권 133·134·135·136·137권열전 45·46권
공민왕 우왕 · 창왕 공양왕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 지(志)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표(表) ]
86·87권 「연표(年表)」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후비·종실·공주 열전(列傳)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88권 「후비1(后妃一)」
89권 「후비2(后妃二)」
90권 「종실1(宗室一)」
91권 「종실2(宗室二)」·「공주(公主)」
태조
신혜왕후 유씨 · 장화왕후 오씨 ·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 신정왕태후 황보씨 · 신성왕태후 김씨 · 정덕왕후 유씨 · 헌목대부인 평씨 · 정목부인 왕씨 · 동양원부인 유씨 · 숙목부인 · 천안부원부인 임씨 · 흥복원부인 홍씨 · 후대량원부인 이씨 · 대명주원부인 왕씨 · 광주원부인 왕씨 · 소광주원부인 왕씨 · 동산원부인 박씨 · 예화부인 왕씨 · 대서원부인 김씨 · 소서원부인 김씨 · 서전원부인 · 신주원부인 강씨 · 월화원부인 · 소황주원부인 · 성무부인 박씨 · 의성부원부인 홍씨 · 월경원부인 박씨 · 몽량원부인 박씨 · 해량원부인
태자 왕태 · 문원대왕 왕정 · 증통국사 · 대종 왕욱 · 안종 왕욱 · 왕위군 · 인애군 · 원장태자 · 조이군 · 수명태자 · 효목태자 왕의 · 효은태자 · 원녕태자 · 효성태자 왕림주 · 효지태자 · 태자 왕직 · 광주원군 · 효제태자 · 효명태자 · 법등군 · 자리군 · 의성부원대군 · 안정숙의공주 · 흥방궁주 · 대목왕후 · 문혜왕후 · 선의왕후 · (정덕왕후 소생 공주) · 순안왕대비 · (흥복원부인 소생 공주) · (성무부인 소생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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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왕후 임씨 · 후광주원부인 왕씨 · 청주원부인 김씨 · 궁인 애이주 문공왕후 박씨 · 문성왕후 박씨 · 청주남원부인 김씨 대목왕후 황보씨 · 경화궁부인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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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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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후 왕윤 · 경화왕후 · (사숙태후 소생 공주) · 수안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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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후 왕필 · 원명국사 징엄 · 대방공 왕보 · 대원공 왕효 · 제안후 왕서 · 통의후 왕교 · 대령궁주 · 흥수궁주 · 안수궁주 · 복령궁주 승덕공주 · 흥경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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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이씨 · 폐비 이씨 · 공예태후 임씨 · 선평왕후 김씨 장경왕후 김씨 · 장선왕후 최씨 광정태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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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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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권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 최언위 (최광윤 최행귀 최광원) · 왕유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 왕순식 이총언 견금 윤선 흥달 선필 태평 · 공직 · 박영규
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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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fedc89>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rowcolor=#670000,#fedc89>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rowcolor=#670000,#fedc89>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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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rowcolor=#670000,#fedc89>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
121권
<rowcolor=#670000,#fedc89>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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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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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제 · 이녕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
123권 「폐행1(嬖幸一)」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2(嬖幸二)」
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1(姦臣一)」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2(姦臣二)」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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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fedc89> 130권 「반역4(叛逆四)」 131권 「반역5(叛逆五)」
한순 다지 · 홍복원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6(叛逆六)」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신창(창왕)) }}}}}}}}}}}}

이규보(李奎報)
파일:이규보 표준영정.jpg
시호 문순공(文順公)
본관 황려 이씨(여주 이씨)
이름 인저(仁氐) → 규보(奎報)
춘경(春卿)
지헌(止軒),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백운거사(白雲居士)
출생 1169년 1월 15일 (음력 1168년 12월 16일)
양광도(楊廣道) 원주(原州) 황려현(黃驪縣)[1]
사망 1241년 10월 8일 (음력 9월 2일) (향년 74세)
강도(江都)[2] 강화군(江華郡) 사택(私宅)[3]

1. 개요2. 경력3. 생애
3.1. 초기3.2. 관직 생활3.3. 최후
4. 작품5. 기타6. 대중매체
6.1. 드라마6.2. 게임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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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중기의 문관으로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나 영웅서사시 동명왕편 등을 썼으며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즉흥시를 쓰기로 유명했다.

최씨 무신정권에 지나치게 아부를 한 아첨꾼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벼슬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이해해주는 입장도 있다.

한국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문인인 동시에, 몽골과의 외교에서도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규보는 74세까지 즉 사망하기 하루 전까지 외교문서를 다룰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또 무신정권의 책임자인 최우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는 황제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표문보다는 서한식 외교문서를 통해 거침없는 대몽외교를 펼쳤고 외교적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안장리. 이규보의 대몽외교문서에 대한 문학적 분석. 고려시대 외교문서와 사행시문. 118P.[4]

이규보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이규보 열전, 이규보 묘지명, 『동국이상국집』 등 풍부하다.

2. 경력

묘지명에 기록된 사후 관작
시호 문순공(文順公)
문산계 품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종 2품.
직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 수문전 대학사(修文殿 大學士) - 한림원사(翰林院事) - 수국사(修國史) - 판예부사(判禮部事) 평장사는 중서문하성의 차관, 수문전 대학사는 수문전에서 강의를 맡은 직위, 한림원사는 한림원[5]의 장관, 수국사는 사관의 차관, 판예부사는 상서성 예부의 장관이다.
수직 수태보(守太保)
태자삼사 태자태보(太子太保) 태자의 자문관, 태자의 스승.

3. 생애

3.1. 초기

경기도 여주시 출생으로 여주 이씨 가문 소속이다. 증조부는 이은백(李殷伯), 조부는 이화(李和), 아버지는 이윤수(李允綏), 어머니는 금란군군(金蘭郡君) 김씨다.[6]

본래의 이름은 인저(仁氐)로 부친은 호부낭중을 역임한 중앙 관료였다. 초년기에는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인데 어렸을 적부터 시문에 뛰어나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실전에서는 약했는지 과거 시험에 3번이나 떨어진 경력이 있다. 본인도 공부 안 했다는 걸 인정했는지 이 때는 때문에 망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적으면 N수생 이미지일 듯한데 15세, 18세, 20세 때 과거를 치렀다.

22세 때 4번째로 과거를 보게 되었는데 시험 전날 에서 문장을 관장하는 별인 규성(奎星)의 화신이 나타나서 "합격이요."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결국 과거에서 규성의 말대로 장원으로 합격했는데 이후 '규성이 결과를 알려준 은혜를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규보(奎報)'로 바꾸었다고 한다.

진사 시험에 합격하기는 했는데 합격자들 사이의 석차가 꼴찌였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합격을 취소하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고 전례도 없었기 때문에 취소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합격을 해서 당시 축하 파티를 벌였는데 이규보가 자리에서 "내가 지금은 꼴찌지만 나중에 혹시 문생들 양성할 사람이 될지 어찌 알아요?"라고 주사를 부려 손님들이 비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데 결국은 문생 양성하는 사람, 곧 좌주(지공거: 과거시험관)를 4번이나 역임했다고 한다.

3.2. 관직 생활

명종 말년에 자기 스스로 추천서를 써서 재상들에게 보냈고 재상들 역시 이규보를 명종에게 추천했으나 이규보를 싫어했던 사람이 있어서 등용되지 못했다. 그후 몇 년 간 저술 활동을 하다가 32세 때 전주의 하급관리로 임명되어 벼슬을 얻었는데 1년 3개월 만에 교체되었다. 상관이 재물을 탐하는 것에 대해 굽히지 않고 간언하다가 높으신 분들 눈 밖에 나버렸다.

그렇게 30대를 보냈는데 이규보 본인이 문집에서 밝힌 바로는 30대에 이미 귀 밑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그 사이 경상도 지역에서 김사미와 효심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아직 임관되지 못한 사람 중에서 종군 문관을 뽑으려고 했는데 이규보는 여기 자원해서 약 1년 정도 반란 토벌군에서 종군했다. 정식 직함은 '병마녹사 겸 수제'. 그런데 반란군 토벌 후 돌아온 뒤에 다른 사람들은 다 논공행상으로 벼슬이나 포상을 받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규보만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보다 못한 관리들이 왕에게 추천하여 직한림원에 임명되기는 했는데 그나마도 임시직. 실무는 모르면서 글만 좋은 백면서생도 아니고 나름대로 간언도 하고 일선에서 고생해가며 공을 세웠는데도 여주 출신 한미한 가문 소생이라는 이유로 바닥을 전전하며 젊은 시절이 다가버렸다.

이렇게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던 이규보에게 인생을 뒤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니, 이의민 이후 당대 최고 권력자에 오른 최충헌이 이규보에게 문장을 적게 했는데, 특유의 문장력을 선보이며 최충헌을 감탄시켰던 것. 최충헌은 이규보의 한림원 벼슬을 정규직으로 바꿔주었고 이후로도 최충헌의 초청을 받아 문장을 지어 올림으로써 최충헌의 신임을 받았다. 이후 계속 승진하여 마침내 이규보가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고려몽골전쟁기에 고려 조정을 총괄하는 재상 직에 올랐다. 재능에 비해 비교적 늦게 출세한 대기만성형 인물.

하급직이나 전전하다가 최씨 정권 눈에 들어서 출세한 이력 때문인지 고위직에 올라서는 과도하게 최씨 정권을 찬양했다.
오랑캐 종족이 완악하다지만 어떻게 물을 뛰어건너랴.
저들도 건널 수 없음을 알기에 와서 진치고 시위만 한다오.
누가 물에 들어가라 명령하겠느냐. 물에 들어가면 곧 다 죽을 텐데.
어리석은 백성들아, 놀라지 말고 안심하고 단잠이나 자거라.
그들은 응당 저절로 물러가리니 나라가 어찌 갑자기 무너지겠는가.
- 동국이상국후집 권 5 고율시 89수

위의 에서 볼 수 있듯 '최비어천가'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시의 내용이 현실과 너무 괴리감이 심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완전히 무시되는 등 최씨 정권 관련 찬양 정도가 매우 심했다. 정작 고려몽골전쟁 동안 최씨 정권은 백성들의 삶을 망가뜨리는데 누구보다도 앞장 선 내부의 적이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고려 몽골전쟁을 제대로 이끌어 항쟁하는 것이나 고려 몽골전쟁에서 빨리 항복이라도 해서 피해 최소화를 노려볼 생각도 없었다. 당시 최씨 정권이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 몽골과 대립하면서 질질 끈 이유는 몽골이 진짜로 이길 경우 권력을 잃을까봐 무서웠기 때문이었다.[7] 그래서 몽골이 쳐들어와서 국토와 백성들의 삶을 짓밟고 최씨 정권이 질 좋은 병사들은 죄다 사병화를 시켜버려서 나머지 관군들의 질적 저하가 이어졌다. 실제로 관군화된 최씨 정권의 사병들(야별초)은 최씨 정권이 실권을 쥔 동안 몽골군과 대치한 적이 5번 정도인데, '한계성 전투'의 경우 고려몽골전쟁 시기에 같은 고려인끼리 싸운 것들이다. 사병들 중에서도 사병에서 벗어나 몽골군과 싸우는 관군에게 참여하려던 사람들이 있기는 했으나 최씨 정권에게 막혀서 이들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사례는 최씨 정권이 몽골에게 왜 어중간한 태도로 저항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최우의 글씨를 칭찬하며 '신품사현(神品四賢)'으로 추켜세운 사람도 바로 이규보였다.

후대 유학자들에게 본인 특유의 문장력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민생과 부국강병을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이익 사수에만 급급했던 최씨 정권을 찬양한 이력과 겹쳐 이규보는 행보나 성품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듣진 못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문학적, 현실적으로 가치가 높아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자주 실리는 편이다. 앞서도 언급되었지만 낮은 직책 전전하며 고생하고, 토벌군에 종군하여 참담한 실상도 봤던 이규보의 글에는 문인으로서는 현실을 다룬 이야기가 많다. 자신도 그렇고, 문학 세계도 그런 편이다. 다만, '최씨정권'이라는 강력한 벽으로 인해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뿐.

3.3. 최후

고려몽골전쟁 당시 조정과 함께 강화도로 피난을 와 전쟁이 한창이던 1241년(고려 고종 28) 10월 8일(음력 9월 2일) 향년 74세(고려사』 열전 기준)로 세상을 떠났다.(『고려사』 기록) 당시 벼슬은 '문하시랑평장사'로 지금으로 치면 부총리급의 고위직이었는데, 링크를 건 기록이나 '열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죽기 5년 전부터 표문을 올려 사직을 청해 치사(致仕)했으나 사명(辭命, 한 나라의 사신(使臣)이나 사자(使者)로서 명령(命令)을 받들어 외교(外交) 무대(舞臺)에서 응대(應對)하는 역할)은 오히려 모두 그에게 맡겼으며 녹봉도 예전처럼 했다고 전할 정도로 조정에서 그의 문장력을 높이 산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상 황희의 선배?

그의 묘는 현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길직리 산 115)에 자리잡고 있으며 인천광역시 기념물(제15호)[8]로 지정되어 있다. 슬하에 아들 네 명(이관(李灌)·이함(李涵)·이징(李澄)·이제(李濟))을 뒀으며, 손자 이익배(李益培)는 따로 열전이 있다.

4. 작품

좋게 보면 이국의 유명인을 흉내내기 좋아하는 허세와 허영을 풍자한 것이지만 어쨌건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이들을 별 이유도 없이 심하게 조롱한 것이고, 후일 이규보 자신도 이런 행적을 약간은 민망하게 여겼는지 '젊은 시절에는 미친 짓을 하고 다녔다'고 기록한 것이다. 다르게 보면 젊은 시절 관운이 잘 풀리지 않던 이규보의 방황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또 이렇게 보면 후일 출세운이 트이고 난 이후 이규보의 행적은 남들보고 혹시 위선자가 되지 않겠느냐고까지 조롱하던 젊은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이 씁쓸한 점.

5. 기타


이규보가 과거에 낙방하고 있을 때에, 집 문에 이 글귀를 붙였다. 왕(대부분은 명종이 언급된다)이 암행을 나갔을 때, 이 글을 보고 그 뜻을 알 수 없어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노래를 잘 부르는 꾀꼬리에게 까마귀가 찾아와서 두루미를 심판으로 노래 대결을 하자고 청했다. 꾀꼬리는 쾌히 승락하고 3일간 노래 연습을 했는데, 까마귀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논밭을 뒤지면서 개구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잡은 개구리 3마리를 두루미에게 주었다. 3일 후, 노래 대결을 하자 두루미는 승자를 개구리 까마귀라고 했다'

라는 것이다.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과거를 열면서 '유아무와 인생지한'을 시제로 내걸어서 이규보가 장원을 했다.||
라는 일화가 떠돌고 있다. "내 한 몸은 있으되 개구리(뇌물)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과거제가 비리로 얼룩져 있어 뇌물이 없는 자신은 급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풍자한 것. 물론 이건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두루미 혹은 학이 악역이라는 것이다.

6. 대중매체

6.1. 드라마

6.2. 게임

7. 관련 문서



[1]경기도 여주시[2] 원래는 고려 양광도 강화현이었지만 이 곳으로 천도하면서 도(都)로 승격되었다. 이는 광종이 개경을 황도(皇都), 서경을 서도(西都)로 개명했던 전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3]인천광역시 강화군[4]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0년 06월 30일 제1판 1쇄 발행[5] 임금의 칙령, 조령, 제령 등을 서문화하는 부서.[6] 이상 이규보 묘지명 기록.[7] 이 당시 제왕허수아비였고 실권을 쥔 최우는 몽골의 1차 침공 때 방어선 역할을 하던 귀주성과 자주성에게 항복을 강요했는데 권력을 잃을게 무서워서였다. 귀주성과 자주성에 수도개경병력을 보태면 1차 침공을 시전하던 몽골군을 물리칠 여력이 있었는데 이길 기회를 스스로 날려먹은 것. 이래놓고 최우는 몽골의 2차 침공의 빌미를 스스로 만들어놓고서는 몽골의 3차 침공 당시 강화도에 틀어박혀서 국가 사정은 뒷전으로 하고 사치부리고 놀았다. 이규보는 이런 최우에게 열심히 아첨해왔던 것이다.[8] 2021년 문화재에 부여된 지정 번호 폐지.[9] 흔히 '본풀이'라 불리는 서사무가(巫歌)는 엄밀히 말해서 구전되다가 근래에 와서야 기록된 노래이기 때문에 서사시가 아니다. 서사시는 기록문학이기 때문.[10] 사실 한문 문화권 전반적으로 서구에 비해 서사시 전통이 별로 발달하지 못했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동북아의 보편문자인 한자가 장편 서사시를 쓰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자는 내용(의미)를 보존하는 데는 훌륭하지만 음성을 보존하기엔 상당히 어려웠다. 한시가 압운이니 평측이니 자수니를 따지며 극단적으로 간결하고 형식적인 장르로 발달한 것도 그러한 글자의 태생적 약점을 극복하고 운율을 구성해내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 반대로 이렇게 많은 의미가 글자 하나하나마다 들어있고 한 글자 한 글자가 중시되다보니 함축의 기법은 극도로 발달하였고, 한 단어나 심하면 한 글자만으로 전대의 역사적 사례 및 경전의 구절과 함의 등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전고적 상징 기법이 필수요소화 되었다. 한시는 짧은 5언절구 하나도 대부분 그 안에 중국사 전고나 전통적 상징, 이전 명 시인의 글귀 등을 읽어낼 수 있는 문학적 코드로 빽빽한데 이는 이러한 문화권의 보편문자가 지니는 특성에 기인한다.[11] 오세재[12] 동도는 당시 동경으로 불렸던 경주로, 오세재의 외가가 있었다. 오세재는 이곳으로 가서 말직을 지내다가 생활고로 죽었다. 경주로 놀러간 것이 아니다.[13] 이담지[14] 혜강과 완적은 7현중에서 비교적 일찍 죽었다. 특히 혜강은 관직에 오르지 않고 사마씨 정권에 항거하다가 처형당했다.[15] 이를 죽림칠현의 핵심이 될 인물이라고 오역한 글도 있다. 그것도 문학사 관련해서. 사실은 본문에도 나오지만 왕융의 고사이다. 왕융은 자기집 자두를 팔면서 그 씨를 가져다가 싹을 틔울까 싶어서 자두 씨에 모두 구멍을 뚫었다는 쪼잔한 일화가 유명할 정도로 죽림칠현의 이름에 먹칠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죽림고회에 참석한 이들 보고, 지금은 나름대로 관직을 떠나서 유유자적한다고 하지만 뒤에 왕융처럼 행동할 인물이 없으란 보장이 있느냐고 돌직구를 던지는 장면이다.[16] 이규보의 키가 180cm나 되는 것이다.[17] 그런데 고려고종과 동일한 얼굴이다. 그나마 비스코 정식발매판에서 새로 추가된 것이고 원판 파워업키트에서는 클론무장 얼굴로 뜬다.[18] 내수판에서는 유저 시나리오에서도 등장한다.[19] 무카리는 정확히 말하면 자무카의 영역인 고르고낙의 재야 장수라서 보통은 자무카가 징기스칸보다 먼저 영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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