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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D592><colcolor=#3F6864> 고려 정종의 제3부인 청주남원부인 | 淸州南院夫人 | |
생몰년 | 미상 |
성씨 | 청주 김씨 |
부모 | 부친 - 원보 김긍률(元甫 金兢律) |
부군 | 정종 |
형제 | 2녀 중 차녀 언니 - 청주원부인(혜종의 제3부인) |
자녀 | 기록없음 |
직위 | 부인(夫人) |
작호 | 청주남원부인(淸州南院夫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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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제3대 국왕 정종의 제3부인. 청주의 호족 원보 김긍률의 차녀이다.[1]2. 생애
청주는 신라 오소경 가운데 서원경(西原京)이 있던 곳으로 일찍부터 지방관부와 학교를 따로 설치, 운영할 수 있을 만큼 독자적 지방세력이 그 기반을 구축하여 왔던 곳이었다.그리고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직후 청주인의 반란이 여러 차례 시도되었을 정도로 반고려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태조는 여러 차례 청주에 행차하여 이 지역의 민심수습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청주지방 호족의 딸이 왕실과 혼인을 맺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태조의 노력이 결실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혜종은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의 처제를 동생인 왕요와 혼인시켰는데, 이는 당시의 정국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945년(혜종 2)에 왕규(王規)가 왕의 아우인 왕요와 왕소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참소하자, 혜종은 아우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자신의 딸인 공주를 둘째아우인 왕소에게 출가시켰다고 하였다.
따라서 혜종은 자신의 처제를 왕요의 배필로 삼게 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궁원은 청주남원(淸州南院)인데 언니의 궁원인 청주원(淸州院)에서 남쪽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