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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1 16:11:39

흥복원부인


고려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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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제12부인
흥복원부인 | 興福院夫人
생몰년 미상
성씨 홍주 홍씨
부모 부친 - 삼중대광 홍규(三重大匡 洪規)
부군 태조
자녀 슬하 1남 1녀
장남 - 태자 왕직(太子 王稷)
장녀 - 왕녀 홍씨(王女 洪氏)[1]
직위 부인(夫人)
작호 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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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창업군주 태조의 제12부인. 홍주의 호족 삼중대광 홍규의 딸이다.

2. 생애

홍규의 활약상을 알 수는 없지만, 홍주 지방은 934년(태조 17) 후백제 견훤과의 싸움에서 전취한 지점이다.

이로 인하여 공주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에 자진 내항할 정도로 후백제와의 겨룸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이곳은 또한 충청도에서 서해로 나가는 출구로서 중국사신의 접대와 영송(迎送)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태조는 중요지점의 지방세력가의 딸을 후비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태조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태자 왕직(王稷)인데 후손이 없었고, 왕녀 홍씨는 태조의 제3비 신명왕후(神明王后) 소생의 장남, 태자 왕태(王泰)에게 출가하여 고려왕실의 족내혼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신명왕후의 차남인 정종, 삼남인 광종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장남으로 기록된 태자 왕태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보아 아마 요절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태조의 후비 23명 중 왕후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다. 만약 혜종이 승하할때까지 왕태가 살아있다면 그가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그녀의 딸도 왕후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도 신정왕후, 정덕왕후 예처럼 마찬가지로 왕후의 반열에 추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3. 가족관계


[1] 신명순성왕태후의 장남 태자 왕태와 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