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金泉 | |
본명 | 김천 |
출생 | 1243?,1244?[1] |
명주 | |
사망 | 미상 |
미상 | |
본관 | 강릉 김씨 |
가족 | 아버지 김종연, 동생 김덕 |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출신지는 명주(溟州: 강릉). 어릴때는 김해장(金海莊)이라고 불렸고, 커서도 그렇게도 불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김종연(金宗衍)이고 동생은 김덕린(金德麟)이다. 조부는 김자릉이다.
6차 여몽전쟁(1258~1259년) 당시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다고 한다. 이때 김천은 어머니가 죽은줄 알고 제사를 지냈는데, 14년 후 요양에서 어머니가 노비로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찾아가려고 했으나 번번히 좌절되고 6년 후에 겨우 갈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 어머니가 너무 늙고 더러워 못알아봤다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알게 되어 울었다고 한다. 이때 어머니와 동생까지 둘다 살아있었는데, 바로 구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한달,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귀환한 후 또 6년이 지나서야 구할수 있었다고 한다.
수십년을 걸쳐 가족들을 모두 데려온 김천은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효자로 전해진다.
사족으로 그의 남편 김종연도 아내가 고려에 귀환할때 까지 살아있어서 아내가 살아서 귀환했다는 소식에 마중나와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부 김자릉도 당시 79세[2] 고령으로 살아있었는데, 딸이 돌아온 것을 보고는 너무 기뻐 쓰러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