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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9 19:34:28

익비 한씨


고려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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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D592><colcolor=#3F6864>
고려 공민왕의 제3비
익비 한씨 | 益妃 韓氏
출생 연대 미상
사망 연대 미상
능묘 미상
재임기간
고려 익비
1367년 1월 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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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D592><colcolor=#3F6864> 본관 개성 왕씨
부모 부친 - 덕풍군 왕의
(德豊君 王義, ? ~ ?)
모친 - 기록 미상
배우자 공민왕
홍륜
자녀 홍씨(홍륜의 딸)
종교 불교
봉작 익비(益妃)
}}}}}}}}} ||

1. 개요2. 생애3. 평가4. 여담5.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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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의 제3비.

여말선초, 공민왕 시대를 다루는 매체에서는 노국대장공주, 정비, 반야 다음으로 나오는 횟수가 많은 어느정도 인지도 있는 왕비이다. 그러나 공민왕 강간미수 사건에서 왕비들 중에서는 유일한 피해자로 남았으며 그리하여 낳은 유일한 딸은 우왕 대에 반역의 씨앗이라하여 주살당하고 훗날에 평가도 좋지 않은 개인사로만 놓고 보면 정비 안씨 못지않은 비운의 왕비이다.

2. 생애

왕실 직계에서 먼 종실 출신 덕풍군 왕의(德豊君 王義)의 딸로 1367년 죽성군 안극인의 딸과 함께 입궐하였다.

그러나 입궁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공민왕의 비행은 점점 심해지고 어느날 그는 자제위들을 이끌고 왕비들의 처소에 그들을 데려가 동침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혜비, 정비, 신비는 죽기를 각오하고 거부를 하니[1] 공민왕의 그녀들의 궁에서 물러났다고 기록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익비궁으로 행했을때는 칼을 빼들고 갔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익비도 다른 왕비들과 마찬가지로 거부를 하였으나 칼로 겁박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홍륜과 동침을 하여 홍륜의 딸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다음은 공민왕 시해사건참조.

그 후에 공민왕 사망이후 그녀에 대한 기록이 일체 남아있지 않은데 추정 상 혜비신비의 정업원 출가 전후로 함께 사가로 딸과 함께 출궁한 듯 하다.

이후 마지막 기록에서는 함께 출궁한 홍륜의 딸, 홍씨가 우왕 대에 반역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주살당하게 된다. 이 이후로 그녀에 대한 기록은 일절 없다.

3. 평가

공민왕의 부인들 중에서 본인포함 노국대장공주, 혜비 이씨, 정비 안씨, 신비 염씨, 순정왕후, 반야 7명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평이 좋지 않은 여인이다. 아무래도 공민왕 시해사건에 중심에 위치한 여인이니 그럴 듯 하다. 또한 다음 왕조 조선시대에서도 정절을 지키지 못한 왕비에 자제위들과 간통까지 즐겼다고 여겨 더욱 평가가 박한 편이다. 물론 공민왕 자제위 강간사건에서 그녀는 왕비들 중에서 유일한 피해자이다. 그로 인한 그녀 본인의 평가에는 현대적인 시선이 필요할 듯 하다.

4. 여담

본래 종실공녀 출신으로[2] 개성 왕씨이나 사성으로 한씨 성씨를 받았다. 다만 모계 정보가 없어 어디에서 따온 성씨인지는 모른다.

다른 왕비들과 다르게 정보가 정말 극악할 정도로 없다. 오죽하면 입궁한지 몇년 채 되지않아 공민왕이 시해되어 혜비와 함께 정업원으로 출가한 신비 염씨보다 기록이 적은 편이다.[3]

그녀의 유일한 딸 홍씨의 주살 이후 몇 십년 후인 공양왕 대에 그녀는 아니고 그녀의 사가에 대한 정보가 딱 한 줄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공양왕의 왕녀 양육에 대한 보답으로 세록보다 격이 낮은 토지 하사로 대우했다 하였다. 그러나 이전에 진상을 하다가 강등된 것인지, 녹봉을 주다가 강등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애초부터 대우가 없다가 토지를 지급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같이 토지를 하사받은 신원필의 경우, 대우가 없다가 토지를 지급받기 시작한 케이스이다.[4]

그리고 혜비정비, 신비와 다르게 공상을 파했다는[5]서술이 없는데, 이것이 창왕 재위기 적통으로 인정돼서인지, 아니면 불륜으로 인해 아내로 간주되지조차 않아서인지는 불명이다.[6][7]

5. 대중매체에서

1983년 KBS 대하드라마 《개국》
배우: 최정실
2005년 MBC 주말 특별기획 《신돈》
배우: 이지은
2014년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배우: 이소윤
파일:익비 송지효.jpg
2008년 영화 《쌍화점》
배우: 송지효[8]

[1] 그중 정비는 목까지 매려했다는 극단적인 기록이 남아있다.[2] 덕풍군 의[3] 굳이 상상해보자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기록을 없앴을 수도 있다.[4] 아마 대우가 없다 토지를 지급받기 시작한 케이스로 추정되는 바이다.[5] 정실부인이 아님[6] 전자의 경우는 공과 사를 놓고 보면 공민왕비들 중 유일하게 족내혼으로 인해 입궁한 왕실의 피가 이어진 왕비이다. 즉 혈통으로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다는 뜻이다하여 적실로 인정을 받은 것일 수 있다.[7] 후자의 경우로는 자제위와의 간통으로 아예 왕비에서 박탈을 당해 작위 거론조차 안 된 것일 수도 있다.[8] 극 중에서는 왕후라고 나온다. 극중 명은 연탑실리라고 하는데 모티브가 노국대장공주익비 한씨가 합친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