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역대 태묘 배향공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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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800080> 對 조위총 임시 군단 원수 윤인첨 | |
시호 | 문정공(文定公) |
본관 | 파평 윤씨 |
이름 | 인첨(鱗瞻) |
자 | 태조(胎兆) |
가족 | 아버지 윤언이 어머니 광양군대부인(光陽郡大夫人) 김씨[1] 아내 대흥군부인(大興郡夫人) 한씨[2] 장남 윤종악 (?~1170) 차남 윤종회 삼남 윤종함 사남 윤종양 (1143~1188) 장녀 윤씨[3] |
생몰연도 | 음력 1110년 ~ 11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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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중기의 문신[4]이자 무신.[5]파평 윤씨 가문의 일원으로 문무를 겸비한 선비였다. 하지만 무신정변으로 인해 죽기 전까지 무관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비운의 인물이다.
2. 생애
충선왕 제정 재상지종 15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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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무반을 이끌던 윤관의 아들이자 김부식과 칭제건원 문제로 대립했던 유명한 윤언이의 장남으로 1110년에 태어났다[6].
1132년 인종 연간에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지공거 최자성의 출제 오류 때문에 급제가 취소될 뻔했는데, 윤인첨의 장인 한유충 등의 노력으로 급제자 신분을 유지하게 됐다. 의종 때 시어사(侍御史)가 되었으나 고관에게 잘못보여 좌사원외랑(左司員外郞)으로 강등되었다가 기거주(起居注)가 되었다. 그 후 형부시랑이 되었고, 서북면병마부사가 되었는데 이 때 변경에서 금나라와 관련된 일을 당했으나[7]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 1169년 우간의대부가 되어 다시 내직으로 복귀하였다.
이때까지 보면 평범한 문신의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1170년에 일어난 무신정변으로 그의 인생은 급변하게 된다. 1170년 무신정변이 발생한다. 이 때 상당수 문신이 화를 당했으나, 윤인첨 본인은 김부식과 대립하였던 윤언이의 장남이었는데다 별무반을 이끌었고 무신들에게 명망이 높았던 윤관의 손자였던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동안 나이에 비해 상당히 낮은 관직을 전전했던 것[8]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명종이 즉위하자 국자감대사성에 올랐다가 지추밀원사와 참지정사, 판병부사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로 승진하였고, 1172년 동북면병마판사 - 행영병마판사 겸 중군병마판사[9]가 되었다. 1173년 김보당의 난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유응규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곧바로 수태사에 오르고 상장군이 되어 중방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위총의 난 토벌군 | ||||
원수(元帥) | ||||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윤인첨 | ||||
부원수(副元帥) | ||||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기탁성 | ||||
<rowcolor=#fff> 중군(中軍) 병마사(兵馬使) | 좌군(左軍) 병마사(兵馬使) | 우군(右軍) 병마사(兵馬使) | 전군(前軍) 병마사(兵馬使) | 후군(後軍) 병마사(兵馬使) |
상장군(上將軍) 최충렬 |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진준 |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경진 | 상장군(上將軍) 조언 | 상장군(上將軍) 이제황 |
<rowcolor=#fff> 지병마사(知兵馬使) | 지병마사(知兵馬使) | 지병마사(知兵馬使) | ||
섭대장군(攝大將軍) 정균 | 섭대장군(攝大將軍) 문장필 | 사재경(司宰卿) 하사청 | ||
기타 지휘관 | ||||
동로 가발 병마부사(東路加發兵馬副使) → 후군 총관사(後軍摠管使) 두경승 |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 지병마사(知兵馬事) 이의민 |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이 일으킨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군의 원수로 임명되어 10월에 삼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섰으나 오히려 궤멸당하는 패배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싸우다 죽으려 하였으나 정균이 말려 겨우 죽음을 면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이 과정 중에 이의방이 직접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려 손수 나섰다가 추위로 인해 실패했고, 또한 정균과 그와 모의한 승려 종참에 의해 제거되는 변란이 발생되기도 했다. 11월에 더 규모가 커진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공격에 나섰고, 1176년 두경승의 도움을 받아 서경을 함락시키고 조위총을 처형시켰다.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추충정란광국공신 - 상주국 - 감수국사[10]가 되었다. 하지만 당해 그는 세상을 떴고, 수태사 - 문하시중이 추증되었다. 차후 명종의 묘정에 배향되어 문정공 시호를 받았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윤종악(尹宗諤)은 대부주부(大府主簿)를 지내다가 정중부의 난에 휩쓸려 죽었다. 차남 윤종회(尹宗誨)는 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 삼남 윤종함(尹宗諴)은 국자좨주(國子祭酒), 사남 윤종양(尹宗諹)은 형부시랑(刑部侍郞)을 각각 지냈다. 윤종함과 윤종양은 대가 이어지지 못하고, 윤종악과 윤종회의 후손들이 파평 윤씨 문정공파(文定公派)를 이루어 윤인첨을 파조(派祖)로서 모시고 있다.
3. 경력
조위총의 난 진압 후 관작 | |||
공신호 | 추충정란광국공신(推忠靖亂匡國功臣) | 조위총의 난 제압 후 하사받은 광국공신호 | |
직위 | 문관직 |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 감수국사(監修國史) | 평장사는 중서문하성 차관, 감수국사는 사관의 장관 |
무관직 | 상장군(上將軍) | 최고위 무관직. 어느 부대 소속인지는 알 수 없다. | |
수직 | 수태사(守太師) | 수직은 행수법에 따라 붙힌 것이다. 태사는 삼사 직 중 가장 높은 직위이다. | |
훈위 | 상주국(上柱國) | 최고위 훈위 |
사후 추증된 관작 | ||
공신호 | 추충정란광국공신(推忠靖亂匡國功臣) | 명종이 준 광국공신호 |
직위 | 문하시중(門下侍中) | |
수직 | 수태사(守太師) | |
훈위 | 상주국(上柱國) | |
시호 | 문정공(文定公) |
4. 대중매체
자세한 내용은 윤인첨(무인시대) 문서 참고하십시오.2003년작 KBS 드라마 《무인시대》 - 윤인첨 (김인태 분)
[1] 광양 김씨(光陽 金氏) 김약온의 딸[2] 대흥 한씨(大興 韓氏) 한유충의 딸[3] 연안 차씨(延安 車氏) 차약춘(車若椿)의 부인[4] 생전 최종 문관직은 평장사,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5] 생전 무신정권의 영향으로 정3품 최고위 무관직인 상장군에 임명되어 중방 회의에 참여했다.[6] 태어나고 1년 뒤 할아버지 윤관이 별세했다.[7] 고려사에 따르면 금나라에 영토를 빼앗기는 것을 수치로 여겨 금나라 황제의 명을 거부하여 금나라가 사람들을 잡아갔다. 이후 금나라에 요청하여 잡아간 사람들을 다시 돌려 받았다고 한다.[8] 1169년 정4품 우간의대부가 되었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환갑이 다 되었던 시점이었고, 부친 윤언이가 그의 나이대에 종2품 정당문학에 올랐던 것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지가 김부식과 대립하였고, 의종 대에 총신이었던 김돈중이 김부식의 아들이었다는 점이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9] 외직(外職)으로 국경에 직접 나아가 국방을 담당하는 직위들이다.[10] 사관의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