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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01:38:05

효은태자

고려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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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 왕후 · 왕태후 · 왕태자
왕자 : 국조 ~ 문종 · 선종 ~ 공양왕
왕녀 : 태조 ~ 문종 · 선종 ~ 공양왕
※ 작호가 있거나 성년까지 생존한 사람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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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4. 대중매체

1. 개요

고려의 왕자. 태조와 동양원부인 유씨(유금필의 딸)의 차남으로, 효목태자(孝穆太子) 왕의(王義)의 동복동생이다. 본명은 왕원(王垣)이고, 봉호는 동양군(東陽君)이다. 개성 왕씨 동양군파의 시조다.

2. 생애

성품이 험하고 사나웠던 효은태자는 여러 사람과 사귀며 속으로 다른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이복 형 광종이 사사해 죽임을 당했고, 효은태자의 두 아들은 도망쳐 종친 대접을 받지 못하고 구걸하며 연명해야 했다.

3. 가족관계


효은태자의 두 아들은 현종 때 왕실 부흥책의 일환으로 작위와 노비, 전장을 받았으며 종실의 적에 편입될 수 있었다. 그의 후손 중에 왕재가 있는데, 왕재의 손자로 왕흥왕미가 있다. 왕미는 왕씨 몰살에서 살아남아 조선시대에 크게 번성했고, 대한민국의 왕씨 인구 대부분이 효은태자의 후손이 된다.[3][4]

4. 대중매체

대하드라마 제국의 아침에 등장. 박진형이 연기했다. 기록에 남은 모습과는 달리, 방종하고 용렬하며 줏대가 없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인물로 묘사된다[5]. 혜종조부터 묘사하는 작품에서 일찌감치 출연하기 시작했음에도 광종이 즉위하고 왕권 강화책을 추진할 때까지는 비중이 별로 없다가, 이에 불만을 품은 평주 가문의 박씨 삼형제가 다음 왕으로 효은태자를 점찍기 시작하면서 비중이 늘어난다. 평주 세력이 추진했던 첫 번째 거사는 조기에 발견되어 무마되었는데, 자비를 베풀라는 탄문과 균여 등의 말을 받아들인 광종은 자신을 직접 시해하려 했던 인물들[6]만 처벌하고 효은태자는 용서받았다. 이에 그는 왕궁에서 숨 죽이며 사느니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이 고향이라는 곳이 바로 평주[7].

이후 광종의 왕권 강화책이 급물살을 타면서 평주 가문은 완전히 세력을 잃고 낙향하며, 몇 년 뒤 광종은 서경 순행에 나선다. 고향에서 조용히 살 수밖에 없었지만 내심 자신들의 처지에 불만을 품고 있던 평주 박씨 삼형제는 광종을 시해하기로 결정하고, 효은태자를 억지로 끌어들여 다음 왕으로 추대한다[8]. 당시 광종은 안정적인 치세를 이어나가고 있었기에 박씨 삼형제가 거짓으로 환대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고, 평주 본가가 아닌 으슥한 곳에 있는 별장으로 안내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간다[9]. 이후 삼형제는 별장을 습격하고, 광종은 무사히 살아나왔으나 유신성을 비롯해 대전 내관과 내군 장군 등 근위 세력 수뇌부들이 희생하고 만다. 이후 광종은 반역 음모를 눈치챈 장단열이 이끌고 온 중앙군과 서경 총관 왕함순이 급히 이끌고 온 군대를 동원하여 반란을 진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거사는 실패한 것 같으나, 그래도 용포는 한 번 입어 보셔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삼형제의 강요로 억지로 용포를 입은 효은이 반란군의 선두에 선 것을 목격한다.

반란을 진압한 광종은 효은태자의 친모인 동양원부인[10]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를 거열형에 처했으며, 간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절망한 동양원부인도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한편 혜종의 아들 흥화군과 정종의 아들 경춘원군도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며, 이들의 구명을 간청했던 혜종의 딸이자 광종의 후궁 경화궁부인도 자결로 생을 마친다.

고려 초기를 다루는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태조 왕건의 9황자[11]로 등장해 온갖 악행을 일삼는 3황자 왕요를 지지하며, 시종일관 왕소해수를 괴롭히다가 결국 마지막회에서 반역을 도모하다가 들켜 사약을 받고 죽는다. 여주인공 해수의 몸종 채령과의 러브라인도 있었다. 배우는 윤선우.

[1]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불교에 귀의.[2] 유방은 유금필의 손자이고, 왕씨 부인은 유금필의 진외증손녀(딸의 친손녀)이므로 5촌 간 혼인이다.[3] 목종 시기,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대량원군(현종)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면 왕건의 자손은 반역자로 몰린 효은태자의 자식 단 둘밖에는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목종이 동성애로 인해 후사를 보기 어려웠기에, 만약 대량원군이 제거되었다면 아예 왕씨 고려가 멸망했을 수도 있고, 강조와 같이 왕씨 고려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이 효은태자의 자식들을 어찌저찌 데려와서 왕위에 올렸을 가능성 또한 있다.[4] 강조는 현종을 보위에 올리면서 효은태자의 두 아들과 가족들을 찾아 종실에 입적시켜 현종 유고 시의 대안을 마련해놓았다. 현종이 아들을 보지 못하고 일찍 붕어하거나, 자신의 의중에 반하는 행동을 하여 부득이 폐위시켜야 될 상황이 온다면 남게 되는 마지막 남계 왕손이 효은태자의 직계자손들이며 그들 중 하나를 왕위에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권신이었던 강조가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현종의 오랜 재위와 함께 그의 직계자손(덕종, 정종, 문종, 정간왕)이 번창하면서 효은태자의 자손들은 평범한 종친으로 남게 되었다.[5] 실제 효은태자의 성격이나 행적은 평주 가문의 박씨 삼형제에게 옮겨갔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삼형제에게 광종의 다음 왕으로 추대된 인물" 이라는 부분을 빼면 효은태자의 극중 비중은 공기에 가까워진다.[6] 내봉성 사인이었던 준홍과 왕승. 광종이 야간 사냥을 나온 자리에서 그를 습격하기로 했는데, 누가 봐도 국왕을 시해하려는 정황이 명명백백했기에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7] 광종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평주로 내려가던 길에 광종의 최측근 관료 중 하나였던 유신성과 잠시 마주쳐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효은태자를 눈으로 배웅하던 유신성은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것까지는 생각 잘 했는데, 하필이면 평주로 가느냐..." 라며 혀를 쯧쯧 찬다. 그 전에 친모인 동양원부인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효은태자를 만류하는 장면도 있는데, 효은태자는 설마 하는 반응을 보인다.[8] 참가하기 싫다고 하는데도 말 그대로 강제로 참가하게 된 것. 이 때문인지 광종을 제거하고 다음 왕이 될 생각보다 광종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할 생각만 하는 모습을 보인다.[9] 본가는 건물이 오래되어 낡았으니, 넓고 깔끔한 별장에서 모시겠다는 것. 이에 대해 유신성이 "아무리 낡았어도 그렇지 본가에서 영접하는 것이 예의인데..." 하며 혼자 의아해하는 장면도 있다. 실제로 본가에 있던 삼형제의 아버지 박수경과 그 형 박수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이미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을 때에야 삼형제의 반란을 눈치채게 된다.[10] 유금필의 딸로, 혜종조에 혜종과 정종+광종 세력 사이에서 간을 보다가 신명순성왕후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부정적인 장면이 잠깐 나오기는 하나 효은태자에 비하면 훨씬 개념인으로 등장한다.[11] 판타지 사극 따위가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만 실제 고려에서 쓰지 않았던 표현으로, 원이나 청 등 유목민족들이 세운 중국 왕조에서나 쓰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