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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9:01:53

모계 성 따르기


1. 개요2. 상세
2.1. 성씨의 등장2.2. 모계성의 등장2.3. 모계성의 현재2.4. 특이사례
3. 논점
3.1. 부성(父姓)주의는 성차별인가?3.2. 부성우선주의는 성차별인가?3.3. 모계 성 따르기는 외조부 성 따르기인가?
4. 해당 인물
4.1. 실존 인물4.2. 가상 인물
5. 관련 문서

1. 개요

아이의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인류의 모든 문화권에서는 보통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성씨를 따른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로 어머니의 성씨를 물려받는 경우가 있는데, 본 문서는 모계 성을 따르는 경우에 대하여 서술한 문서이다.

2. 상세

2.1. 성씨의 등장

짐승조차도 서로를 구분하는 방식이 있으며, 일부 고등 짐승들 중에서는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추정[1]되므로 이름은 인간이 언어를 쓸 수 있게 된 시점[2]에 이미 존재해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이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성씨의 경우에는 좀 다른데, 성씨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고 원시시대 후기, 즉 석기시대 말에서 청동기시대 초에 생겨 났을 것이라는 비교적 확실한 추정을 할 수 있다.

학론에 따르면 성씨는 사유재산의 등장과 함께 생겼을 것이라고 한다. 원시시대 초에는 영장류들이 그러듯이 굳이 짝을 맺지 않고, 남녀가 자유롭게 관계를 맺어왔고, 따라서 부부라는 개념도 없었으나, 이러한 문화는 무리사회를 이루는데 큰 방해가 되었을 것[3]으로, 인류는 서로 짝을 맺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4] 하지만 결혼이라는 행위가 생긴 이후에도 성씨가 바로 생긴 것은 아니다.[5] 성씨가 등장한 것은 인간사회에 계급과 재산이 등장한 이후이다. 원시 공동체사회[6]에서는 공동육아를 했으며 제도적인 차별없이[7] 아이들을 함께 길렀고, 애초에 집단간 족외혼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구성원이 가족인 씨족사회[8]였기 때문에 성씨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잉여생산물의 등장으로 사유재산이 등장하자 성씨가 등장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잉여생산물은 계급재산권을 발생시켰다. 20세기 이후와 다르게 원시사회에서 재산을 발생시키는 모든 행위는 중노동을 수반[9]하는 생산[10] 밖에 없으므로 재산권은 남성의 전유물이 되었고, 이를 계승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사항이 되었다. 즉 상속이란 개념이 생기고 이것이 인간사회의 중요한 문제가 된 것[11]이다.

그리고 남성들에게도 여성들[12]에게도 '저 아이가 내 아이다.'라는 사실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임을 인정하는 절차로써 성씨가 등장했다.[13]성씨는 아버지로 추정되는 여성의 남편이 그 여성이 낳은 아기를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성씨의 발명은 여성은 자신이 임신하기에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할 수 있지만, 남성의 경우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신뢰가 있어야만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할 수 있음으로 생긴 것이다.[14]

2.2. 모계성의 등장

성씨가 대물림되면서, 성씨에 대를 잇는다라는 개념이 추가되었고, 성씨에는 권력과 자산 뿐만이 아니라 가문 즉 혈통을 상속한다는 개념이 포괄되었다. 원시시대가 끝나고 고대시대에 이르러, 부족사회와 도시국가가 귀족사회와 정복왕국으로 발전하자 가문이란 개념도 생겨났다.

혈통이란 개념을 포함한 가문의 경우에는 그 가문을 잇는다는 명분 또한 생겨났으므로, 여성의 성씨를 물려받을 여지가 생겼다. 즉 여성이 가문을 잇고, 그 '가문의 주인(가주)'가 된다면 당연히 그 자식도 가문을 이어야하므로 여성의 성을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권한국의 경우에는 여성이 결혼한 후에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므로[15], 아이가 여성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많지 않았으나[16], 유럽의 경우에는 봉건사회라는 가문이 중요한 사회로 발전했기 때문에 데릴사위제가 발전했고, 데릴사위의 경우 남편이 여성의 성을 따르기 때문에, 가문을 잇는 여성의 모계성을 받는 경우가 흔했다.

결국 모계성이란 가문이란 개념이 생기고 발전하면서 함께 등장하고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2.3. 모계성의 현재

모계성 문제는 오직 한자 문화권에서만 유난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유럽권의 경우에는 데릴사위라는 개념이 이미 중세시대 때부터 있어서, 가문을 여성이 물려받는다면 오히려 남편이 성을 갈고 여성의 성을 물려주는 경우가 있었고, 생각보다 흔했다. 아랍권과 힌두권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너무 낙후되어서 문제가 되고 있지 않으며, 그 외의 지역은 유럽권에 기존 문화가 갈린 상태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자권 중에서 특히 한국에서 논란이 많다. 유럽의 성씨는 씨족사회를 기반으로 발전해서 조상을 특정지을 수 없는 것에 반에 한자권의 경우에는 성씨가 부족사회를 기반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성씨에 지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조상을 특정지을 수 있다.[17] 그리하여, 성씨를 물려주는데 있어서 타협이 없어왔고[18], 1960년 대한민국 민법이 제정 시행되면서 입부혼인(入夫婚因)을 통해 모의 성씨를 따를 수 있는 법적인 방법이 생겼지만, 유교적 가치관이 완고한 시절이었기에 첫 사례는 8년이나 지난 1968년에야 나왔다.# 이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제781조가 개정되어 (2008년 시행) 부성(父姓)주의 원칙의 예외로서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는 부분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한국에도 페미니즘이 격화되자 이에 영합하는 한국 정치권에서 성씨를 물려줌에 있어서 부성주의 원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논의가 창출되었다. 2021년 당시 부성 우선주의를 법률상 폐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이미 관련 제도가 존재함으로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검토를 중단[19]하였다. 이미 제도상 부부가 어머니의 성씨를 따르기로 합의한 경우라는 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22년에 11월에 법무부는 합헌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녀의 성을 어머니 쪽으로 하는 협의를 하여 혼인신고한 가정은 2021년 기준으로 전체 혼인건수의 0.2%에 불과하다.[20]

게다가 후술할 레디컬 페미니즘의 부계성의 성차별 주장에 따른 모계성 따르기 강조를 하는 모습 때문에 남초 집단에서는 모계 성 따른다는 것이 한부모 가정 내지 극성 페미니즘 사상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는 바람에 문담피한 사람 급으로 인식이 나빠졌다.

2.4. 특이사례

고려에서는 족내혼을 하는 경우 여성들이 어머니나 할머니의 성씨를 따랐다. 반대로 경순왕에게 시집간 낙랑공주와 부인 왕씨 자매 등 족외혼을 한 경우는 부계 성을 따랐다. 고려의 관습이 신라를 이은 것으로 보고 이에 근거해 신라의 관습을 이해하는 관점도 있다. 원 간섭기에 왕실과 관료 가문의 친가 내 족내혼 풍습이 금지되면서 이러한 사례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고려 멸망 후 조선 왕실에서는 왕씨 학살을 단행했는데, 이때 실제로 죽인 것은 비교적 직계에 가까웠던 100여 명뿐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왕씨를 버리고 모계의 성씨로 바꾸도록 명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모계가 한국인인 상당수의 혼혈 한국계 외국인들은 한국식 이름을 지을 때 모계의 성을 따라서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21]

현대 중국에서는 어머니 성씨를 따라도 합법이라서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경우[22]가 많지만 그냥 딸이라서[23] 어머니 성을 받는 경우도 많으며 그냥 둘째라서[24], 데릴사위의 자식[25]이라서 또는 아버지의 성이 너무 희귀한 성씨라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 중국 현대극 드라마의 클리셰 중 하나가 사이좋은 친남매인데 성씨가 달라서 커플, 내연관계로 오해받는 상황이다.

3. 논점

3.1. 부성(父姓)주의는 성차별인가?

모계 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고 확대되면서, 인류사에서 당연하게 '아버지의 성씨를 따르던 것'에도 명칭이 따로 붙었는데, 그것을 부성(父姓)주의라고 한다.

부성주의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여성운동이 탄생하면서, 여성[26]과 여성이 낳은 자식이 남성의 성씨를 당연하게 따르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생겨났다. 동아시아에서 귀족제도가 빠르게 붕괴했던 것[27]과 다르게 유럽의 귀족제도는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유럽사회를 지배[28]했기 때문에 가문 단위의 사회에 익숙했고, 따라서 여성이 가문을 잇는다는 개념 또한 중세시대 초에 이미 등장했기 때문에, 모계 성 계승사례가 상당히 많았고, 그에 따라서 부성주의에 대한 논란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사에서는 고대부터 중세 중기까지 가문이란 개념은 왕실과 중앙귀족같은 극소수의 최고지배계층의 전유물[29]이었고, 한국에 유의미하게 가문정치가 있던 시기는 고려시대의 문벌귀족시기와 조선시대 중기부터 구한말 초[30]까지이다. 즉 한국은 역사적인 이유로 모계성을 이어야할 환경이 주어진 바가 적었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한국에 페미니즘이 전래된 이후, 한국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는 부성주의를 '남성우월주의'의 핵심으로 봤으며, 그 때문에 부성주의를 남존여비의 상징, 여성을 소유화하려는 악질문화, 여성을 도구화하는 문화라고 주장했다. 특히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은 파괴해야할 가부장제의 상징이라고 주장했고, 유럽의 반례를 무시하고, 어거지로 불교문화유교문화의 폐해라고 주장했다. 그 주장의 결론으로 모계 성을 따르는 것만이 성차별을 해결할 방책이라고 귀결시켰다. 이러한 주장은 페미니즘이 강세가 되기 전에는 아버지성과 어머니성을 붙여서 이름을 짓기도 했으나, 페미니즘이 강세가 되고,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를 기피하기 시작하자, 이러한 이름은 '''낙인이 되어서 이러한 이름을 짓는 대신, 여성의 성을 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은 "혈통이 남자를 통해서만 계승되며, 이는 여자를 대를 잇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이는 한국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19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남성우월주의 그리고 부성주의와 연결시킨 행보로 이어진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주장은 무식함을 드러내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부성주의는 여성이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실질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31][32] 그러한 상황에서 남성의 성씨를 여성이 낳은 아이에게 부여하는 것은 아이를 해당 남성의 자식으로 인정하는 절차이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는 달리 남성에게 아이와 여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아이가 아버지의 성씨를 잇는 것은 남성에게 여성과 아이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남성의 입장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는 보면, 남성 중에서는 성교 후, 아이가 생겼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책임을 지지 않는 남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 혹은 임신 후, 남성이 재난이나 전쟁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남성의 성씨를 아이에게 부여 한다면,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아이의 친부가 누구로 되어 있는지 손쉽게 특정지을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친부에게 아이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거나, 사망한 남편의 친족에게 아이에 대한 부양의 협조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부성주의란 내가 낳은 이 아이는 너의 자녀이니 네가 책임져야할 대상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남성의 성씨를 아이에게 부여하는 것은 남성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 생겨났다는 뜻도 된다. 이러한 사실의 근거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모든 문화권에서 아이의 성은 아버지를 잇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이다. 문화란 것은 그 나라나 민족에게 주어진 환경역사적 사건의 진행 등에 영향을 받아서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어느 지역이나 아버지 성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리하다라는 뜻이다. 페미니스트의 주장인 인간사는 남성을 위주로 기록되어 왔다.라는 것은 모계사회조차도 부성주의를 따른다는 사실에서 반박된다.

사실, 정말로 아버지의 성씨를 물려받는 것이 가부장제의 잔제로 성차별 문화하고 생각한다면, 여성의 성씨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성씨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맞다. 당연하지만 여성에게는 성씨가 필요하지 않다.[33]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여성에게 불리하다.[34]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사전조사도 안해보고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35]은 그들 자신에게도 결국 손해로 돌아온다.

즉 정리하자면, 각 문화마다 국가마다 성씨를 물려주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성 성씨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문화는 보편적인 문화이며, 이러한 남성의 성씨를 물려는 것은 남성에게 특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자녀에게 의무와 책임을 지니게 하기 위한 것이 크다.[36] 따라서 남성의 성을 물려주는 것을 성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무식하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으로,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누군가는 시대가 달라졌고, 전통적인 가족도 해체되는 추세에, 과거에 그랬다는 사실만으로 계속 부성주의를 유지해야하는가?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유전자 일치 확인이 가능해진 시대이기 때문에 성씨의 역할이 약해졌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기존 성씨제도를 없앤다면 그 성씨제도가 주던 의무와 해택도 없애버리는 것이 맞다. 당연하지만 어떤 남성도 자신의 아이인지 확신할 수도 없고,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단도 없는데도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성씨하나로 남성에 대하여 의무를 부과하던 것이 사라진다면 남성의 결혼기피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37]

3.2. 부성우선주의는 성차별인가?

위의 부성주의를 원칙적으로 따르는 것을 '부성우선주의'라 한다. 한국의 현행 친족법(민법 제781조 등)에서 자식은 원칙적으로 어머니의 성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만 하며, 예외적으로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에 어머니의 성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다면 자식은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즉,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처럼 부성주의를 법적인 원칙으로 못박은 것이 타당한지는 위 문단의 논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다룰 여지가 있다. 부성주의에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부성우선주의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견해가 있다.

부성우선주의가 아직 법적인 의무로 남아있는 한국과 다르게, 중국이나 서양은 부성주의가 법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서양의 부부동성도 개인의 선택에 맡길 뿐이며 역시 법적인 의무는 없어서 관습일 뿐이다. 일본에서 계속 부부동성 제도가 논쟁거리가 되는 것도 부부동성 문화 자체 때문이 아니라 법으로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부부동성 문화권에서 대체로 결혼 후 여성이 남성 쪽 성을 따르지만, 반대도 불가능한 건 아니고 일본의 법도 어디까지나 부부가 같은 성을 쓰라고 되어있지, 꼭 여자가 남자 쪽 성을 따라야만 한다고 요구하진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의 법이 국민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계속 법 개정 요구와 개정 움직임이 있고, 최근에는 위헌소송도 있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에도 부부동성이라는 제약이 엄연히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며 이 경우 자기 성을 유지할지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거다. 사회라는 체계 안에서 모두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할 수는 없고, 부부별성 자체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페미니즘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서양은 물론 일본의 경우에도 98% 이상이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고 있으며 예외는 정략결혼이나 가업유지 등의 이유로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건 10세기 전부터 있던 풍습이므로 새로울 것도 없다.

한국의 현행 혼인신고서에서는 부부에게 "자녀의 성ㆍ본을 모(母)의 성ㆍ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고 묻는다. 여기서 부부가 "예"라고 답한다면 자식은 반드시 어머니의 성만을 따르게 되고, "아니요"라고 답한다면 아버지의 성만을 따르게 된다. 즉, 앞서 언급된 법무부의 2022년 견해와 달리 실제로 형제의 성, 본이 달라질 염려는 웬만해서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을 혼인신고 시점에 내려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결정을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부성주의가 지배적인 한국에서는 이러한 선택지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신혼부부들이 허다하며, 자식의 미래가 달려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 결정을 출생신고도 아닌 혼인신고 때 요구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 남편이 아닌 아내의 성을 물려준 부부의 비율이 불과 0.2%밖에 되지 않는 현상은 이러한 문제점을 잘 대변해준다.

오늘날 국민감정은 양성이 평등하다는 점을 기본적인 상식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러한 태도는 법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에는 고인의 제사를 누가 주관할지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고인의 장남, 장손, 차남 이하 아들, 장녀 순으로 정해졌다. 이는 오랫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종법 질서를 따른 것인데,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수십 년이 지난 2008년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러한 종법을 따라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15년이 지나고 대법원이 2023년 5월 11일에 선고한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이러한 법리가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보았다. 시대가 변하여 이제는 제사에서마저도 남성 우선주의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현행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재검토 역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3.3. 모계 성 따르기는 외조부 성 따르기인가?

일단 성씨라는 것의 속성상, 여성에게는 본래 성씨가 필요하지 않다.[38][39] 즉 여성에게는 성씨가 필요없으므로 여성이 성씨를 갖는 것은 그 아버지로부터 친자라는 사실을 공인받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하여, 모계 성도 결국 여성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는 것이니, 외조부의 성을 따르는 것 뿐이라는 의견이 대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주장에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닌데, 특히 좌익 진형[40], 진보 진형, 그리고 페미니스트 진영 등에서 반론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2020년 07월 04일에 양현아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한겨례와의 인터뷰에서 모계를 따를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 외할아버지의 성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반론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계의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 되었기에 그렇게 보일 뿐, 여성이 아버지의 성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성을 물려받는 것을 남성의 성을 세대 건너뛰기 형식으로 물려받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편부모 가정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고 이러한 차별은 일종의 성차별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모계성을 계속해서 잇게 된다면 2대~3대를 넘어서 따르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므로, 당장 외조부성 따르기라는 식으로 막아버리면 '모계 성'계승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런 식의 주장이면 2대, 3대로 이어진 경우에도 외외증조부[41]의 성씨를 이어받은 것일 뿐이다, 외외외고조부[42]의 성씨를 이어받은 것일 뿐이라는 논리로 이어질 뿐이다.

모계성을 따르는 것이 실질적으로 외조부의 성씨를 따르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을 외조부의 성을 받는 것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부계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는 편견 및 고정관념이 타파되지 않을 단편적인 관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이것을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편견 및 고정관념인건지는 모든 개인들이 각자 생각해볼 일이다.

애초에 여성에게 성씨가 필요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자신의 성씨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자신의 자식에게 성씨를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남성을 찾아 결혼하여 아이를 보거나, 미혼으로 자식을 낳으면 된다. 사실 페미니스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창씨를 해서 자신이 1대 여성 가주가 되는 것인데, 한국의 민법상 귀화인 1세대가 아닌 이상 창씨를 할 수 없어서 논외로 한다.

애초에 대대로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는 집안이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외조부성을 물려받는 것이냐는 논지는 불필요할 수도 있다. 애초에 성씨란 시조와 본관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인데, 아직 여성이 시조인 성씨가 없다. 즉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든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는 어느 남성시조의 자손인지를 밝히는 것이지, 어떤 여성을 시조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구조를 바꿀려면 근본적으로 여성이 창씨를 해서, 여성이 최초의 시조이면서 그 성씨를 남성계승 없이 오직 여성계승으로만 하는 집안이 나와야하는데[43], 한국의 법률상 성씨를 새로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것과 현 사회구조로는 그러한 여성계승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불필요한 논지라고 할 수 있다.

4. 해당 인물

4.1. 실존 인물

4.2. 가상 인물

아버지가 데릴사위인 인물
가문 자체가 모계 사회인 경우
어머니랑 사는 이혼가정 혹은 아버지가 모종의 이유로 없는 상황
아버지가 외국인인 혼혈
@ 기타 특수한 상황

5. 관련 문서



[1] 물론 '이름'이라는 개념은 오직 인간 밖에는 없다.[2] 인간이 언제부터 언어를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나, 적어도 호모 계통의 종이 등장했을 때는 언어를 쓸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3] 보통 강한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차지하는 것이 짐승세계의 법칙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컷들 사이에 협력이 안되므로 무리를 늘릴 수 없다. 실제로 무리를 이루는 짐승 중에서는 강한 수컷이 무리의 암컷을 차지하거나 강한 암컷이 무리의 모든 수컷을 차지하고, 심지어 미어캣처럼 우두머리 암컷만 새끼를 낳을 권리가 있는 짐승도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는 무리가 커지는 것을 방해한다. 경쟁자 수컷이나 경쟁자 암컷을 무리에서 배제해야하기 때문에 수장은 무리의 수를 제한하는데, 인간이 이 따위로 사회를 유지했으면 부족사회도 진입하지 못했을 것이다.[4] 문화권에 따라 결혼제도가 달랐던 것을 보면, 인간의 결혼이란 것은 뻐꾸기탁란이나, 개미, 등의 여왕같이 DNA에 의한 행위가 아니다. 인간은 NTR, NTL, 탁란같은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인류는 사회유지를 위해서 이런 행위를 도덕규범을 통해 으로 규정하여 통제한다.[5] 그 증거로 중세사회가 될 때까지도 성씨가 귀족호족의 전유물이었던 사회가 많았다. 한국사에서도 조선시대 초까지만해도 성씨가 전혀 없던 사람들이 많았다.[6] 혹자는 원시 공산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잉여생산물이 없어서 씨족 내에서 사유재산없이 자급자족했기 때문이다.[7] 당연하지만 아무리 씨족사회여도 내 새끼가 먼저인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차별이 완전히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8] 사유재산이 발생한 후에 부족사회로 발전했기 때문에 부족사회는 경우에서 예외이다.[9] 농경, 목축, 사냥, 전쟁 모두 여성이 하기는 힘든 일이다.[10] 원시사회에서는 서비스직이 존재할 수 없다. 즉 모든 이익창출은 노동생산 밖에 없다. 산업사회 후반기에나 노동 외의 소득창출의 규모가 유의미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11] 21세기 민주 사회하면 상속이란 일반적으로 재산만을 의미하지만 사실 구시대에서 상속은 권력과 이권을 포함했고 사실 이게 더 중요했다.[12] 사실 여성들에게 더 중요한 사실이었다. 20세기 이전에 여성의 인권보장에 문제가 있고, 남아선호사상이 있던 이유는 대부분의 생산을 남성이 담당했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내 남편이 죽었는데, 자신의 남편의 재산을 자신과 자신의 자식이 상속받지 못한다면 자신과 그 아이는 최소한 비참해지거나 어쩌면 죽음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중대한 사유였다. 역사에서도 여자가 남편 사망 후에 권력과 재산을 남편의 다른 여자나 남편의 부모형제에게 빼앗기고 사라져야만 했던 경우가 많다.[13] 유럽에서는 더 나아가 여성이 남성과 결혼하면 여성의 성을 남편의 성으로 갈고, 심지어 자식이나 손자가 부모나 조부모의 이름을 물려받는 경우도 흔하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루이라는 이름이 대표적이다.[14] 즉 여성은 성씨가 필요없다. 유럽의 여성들이 결혼 후에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이유가 그와 같다.[15] 여성을 차별하는 단어로 오해받는 '출가외인'이라는 단어가 이 때문에 생겨났다. 남편의 성으로 바뀌는 유럽은 여성이 외인인 것을 확실히 할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부모성을 물려받고 바뀌지 않으므로 재산권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문의 경우 상속자가 많을 수록 재산이 적어져서 가문이 약해진다.[16] 결국 여성의 성을 따르는 것은 성씨의 본래 목적인 아버지를 인정하는 기능이 사라진다. 서양의 경우에는 데릴사위가 여성의 성으로 성을 갈아버리므로 여성의 성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를 인정하는 기능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차이점이다.[17] 예를 들어서 '김해 金'씨는 김수로왕의 자손, '순흥 安'씨는 '안자미'의 자손, '경주 朴'씨는 박혁거세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씨에 조상이 내포되어 있다.[18] 조선 초 때까지만 해도 윤회봉사 등 남녀평등기조가 강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모계성의 사례는 희귀사례다. 애초에 가문을 잇는 사람에게나 모계성을 물려주는데, 한국은 남성 자식이 없으면 형제의 남성자식에게 가문을 물려주고 그마저도 없으면 친척에게 그냥 넘겼다. 유럽과 달리 귀족사회가 일찍 사라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가 정착했다.[19] 페미니즘 측에서는 법률로써 여성성을 물려받는 것을 제도화하여 강제하려고 했으나, 정치권에서 이를 관철하는데는 무리가 많았다.[20] 외국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이 혼인하여 아이를 낳는 경우 여성의 한국성을 물려받게 해주는데, 이를 제외한 수치이다.[21] 대표적으로 한국 이름이 전소미인 에닉 소미 다우마(Ennik Somi Douma).[22] 중국 연예인 중에 유역비, 모효동, 왕초연, 감청자, 란잉잉, 장자닝 등이 이 경우.[23] 중국 연예인 중 장몽첩, 야오안나가 이 경우.[24] 치웨이의 둘째가 이 경우.[25] 화웨이 회장 런정페이의 아들과 첫째 딸이 해당. 아들은 나중에 부계성으로 고쳤다.[26] 한자권 밖에서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보편적인 문화다. 기혼여성의 성씨를 보전해주는 한국은 오히려 여성에 대한 근본을 부정하지 않는 여성존중 문화라고 할 수 있다.[27] 일본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귀족이란 계층은 14세기 이전에 사라졌다. 유교문화의 순기능으로 유교라는 철학자체에 능력주의평등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보니, 유교가 강해질 수록 귀족이라는 혈통중심의 지배구조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28] 놀랍게도 유럽의 사회구조는 양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의미하게 바뀌지 않았고, 따라서 귀족이라는 계층이 매우 강했다. 제국의 무덤이라는 1차 대전에서야 귀족계층이 유의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고, 귀족계층이 힘을 못 쓰게 된 것은 2차 대전으로 유럽사회가 뒤집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조차도 1980년대까지 구(舊)귀족들을 귀족 대우했다.[29] 당연하다. 한국도 봉건제도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지만, 체계적인 봉건제를 한적이 없다.[30] 대한제국은 기존의 제도에서 서구적인 귀족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라가 일본에 넘어갔다. 이후 한국에 법률상 인정되는 작위귀족(귀족가문)이란 말은 민족반역자라는 말과 동일시되므로 터부시된다.[31] 이것은 부계불확실성 현상과 결혼 제도 발생과 유지에도 관련이 있다.[32] 현재는 DNA 검사 기법이 나왔기 때문에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검사를 해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서로간 신뢰가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에, 잘 하지 않는다.[33] 성씨가 없는 민족도 있다. 그 사례로 미얀마가 있다.# 즉 남성의 성씨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면 성씨 자체가 필요없다.[34] 지금 당장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차별이니 불공정하니 이유를 붙여서 바꾼 규칙이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성평등을 이유로 남성에게 주어진 권리를 제거한 일련의 행위들이 젊은 남성들의 의무감을 함께 지워버려서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한 희생을 자처하는 문화가 사라진 사례나, 집안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공헌을 법률로 보장하여 돈을 벌어오는 남성과 동등하게 바꿔서, 이혼시에 남성의 기존재산까지 포함해서 재산분활을 하는 제도를 만들자, 남성이 결혼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을 만들어서 결혼을 원하는 여성들도 곤혹을 치루게 만든 경우가 대표적이다.[35]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X페이스북 등지에 싸지른 글을 믿고 그러한 잘못된 정보를 서로 재생산해 근거가 없는 사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은 흔한데, 그것에 놀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36] 애초에 성씨의 등장이 재산권의 등장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면, 상속문제와 연관이 크다.[37] 실제로 전통적인 성역할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의 부작용 중 하나가 결혼기피이다. 젊은 남성들에게는 도대체 저 여자가 뭔데 나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가?라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제사문화에 대한 고의적인 손상으로 가문이란 개념을 파괴하면서 대를 잇는다.라는 개념을 삭제한 이후, 남성들이 출산에 대한 의무감을 상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38] 임신을 하는 것은 여성이며, 출산을 하는 것도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아이에 대하여, 친자를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성씨를 부여하여 자신의 아이임을 공인할 필요도 없다.[39] 그 증거로 유럽은 결혼을 하면 여성의 성씨를 남편의 성으로 갈아버린다.[40] 한국의 좌익은 대부분 진보로 규정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진보와 좌익은 다르다.[41] 외할머니의 아버지.[42] 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43] 당연하지만 남성이 그 시조여성의 성씨를 물려받아서 남성계승을 해버리면 또 모계성 계승이란 취지는 사라진다. 즉 해당 가문의 남성은 다른 가문의 여성과 결혼할 때, 자신의 성씨를 물려주면 안된다.[44] 남성의 경우는 대한민국에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조건이 추가로 붙는다. 병역의무를 거부하려면 대한민국 국적도 포기해야 한다.[45] 다름과 나름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성을 따랐으나 나름은 아버지의 성씨로 고쳤다.[46] 이쪽은 본래 성씨는 그대로고 활동명의 성씨만 모계 쪽으로 바꾼 것이다.[47] 이 집안은 좀 특이한 것이, 아버지 자체가 사토 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간 데다, 형인 노부스케가 친가인 기시 가의 대를 잇기 위해 친가에 양자로 들어가 기시 성을 되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좀 있는 집안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양자를 들였다 양자를 보냈다 하면서 대를 잇고 있다.[48] 반면 아들은 아이 아빠의 성씨를 따랐다.[49] 동성 연인인 시드니 버나드 와 결혼했을 때 체외수정으로 낳았다[50] 같이 배우로 활동하는 연년생 언니와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51] 어머니 타나카 아츠코 생전에는 모자관계임을 철저히 숨기고 활동했다가 어머니 사후에야 본명이 공개되었다. 생년이 아직도 비공개인 것도 그 이유.[52] 그 유명한 로널드 레이건의 딸로, 커리어를 위해 어머니의 혼전 성을 사용.[53] 아버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가정부와에 사이에서 사생아 조셉 바에나를 낳자 이에 대한 항의성 표시로 SNS에 한동안 어머니의 성씨인 패트릭 슈라이버로 소개한 적 있다. 허나 법적으로 성씨를 바꾼 것은 아니다.[54] 한국인의 경우 거의 100%의 확률로 아버지가 외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다.[55] 더빙판 한정.[56] '황정남'은 라디오 방송을 보낼 때 쓰는 가명이며 본명은 '황제인'이다. 영화 결말부에서 아버지 남현수를 따라 '남제인'으로 개명하면서 해당 속성은 사라졌다.[57] 미혼모 가정이라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영화 결말부에서 어머니가 남씨로 개명함에 따라 본인도 '남기동'으로 개명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모계 성씨를 쓰는 중이다. 아버지의 성을 따르면 '박기동'이 된다.[58] 알렉스 카레브의 여동생[59] 알렉스 카레브와 그의 전처 리지 스티븐스 사이의 딸들[60] 본명은 '곽영희'였으나 친부 곽필협이 살인범으로 잡혀 들어간 뒤 할머니에 의해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는데 친부에 의해 사망한 어머니의 이름이 '천지연'인 것을 보면 어머니 성씨로 개명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61] 부모가 이혼한 이후에 태어났기에 엄마 예빈의 성씨를 따랐다. 다만 에피소드 에필로그에서 부모가 재회하면서 재결합 할 가능성이 높아 아빠 세준의 성씨를 따라 이세빈이 될 가능성이 높다.[62] 중반에 부모가 재결합하면서 아빠 정지헌의 성씨를 따라 정예나가 되었다.[63] 세계 자체가 모계사회이다. 세계관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64] 엔딩에서는 부모가 재결합 하면서 친아버지 장판수의 성을 따라 장현정이 되었다.[65] 드로우, 즉 다크엘프는 기본적으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모계사회다.[66] 더빙판은 불명. 아버지랑 사는 형 이시다 야마토는 아버지의 성이다.[67] 아버지랑 사는 동생 미나모토 코우지는 아버지의 성이다. 참고로 더빙판은 원판과 달리 형제의 성이 같다.[68] 일본판 한정. 일본판에서는 길규온이 명소민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다.[69] 린다 마틴과 아메나디엘 사이의 아이.[70] 2018년 마일스의 코믹스에서 밝혀진 바로는 아버지 제프 데이비스가 마일스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자기 형제의 나쁜 영향을 전달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어머니의 성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71] 어머니인 루치아가 인어라 가명을 쓰는데도 의외로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72] 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어왔다는 언급이 나온다. 즉, 아라이데는 친모인 치아키의 성씨다.[73]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고 직접 언급된다.[74] 가문을 나온 후 모계성으로 바꿨다 예전 성은 보드.[75] 설정상 세레니티 가문은 모계로 가문을 이어나간다고 한다.[76] 모친의 이름은 안 나왔지만 모친은 한국인 부친은 독일인인 혼혈이라 모계성을 따랐다고 추측된다.[77] 모친이 17살 때 낳았다. 친부는 누군지 모른다 한다.[78] 가문 자체가 모계 가문이며, 아버지들은 자식이 태어나면 떠나버린다.[79] 정확히는 호적상 외조부의 아들로 입적되어서 외조부의 성을 따른 경우.[80] 적면포창 이라는 남자만 걸리는 질병 때문에 남자 후계자를 새울 수 없어 여자들이 가문을 잇게 된다.[81] 에이프릴 워너 와 롭 스탠튼 사이의 아이.[82] 링링은 남편들을 종마 취급하고 버리거나 죽였다.[83] 다만 어머니인 오연두가 가족 몰래 도망친 후에 낳은 것이다.[84] 그의 환생인 아쿠아의 언급을 보면, 그의 성 아마미야는 어머니 성씨일 가능성이 높다. 즉, 전생과 현생 모두 모계 성을 따른 셈.[85] 존 키니의 형[86] 호적상으로 아버지 성이지만 사실 부모가 결혼을 하면서 서로 호적을 바꾼 것이다. 즉, 실제로는 외가 쪽 성씨.[87] 아버지 피웨이의 성씨는 피피루에게, 어머니 루옌의 성씨는 루씨씨에게 주어졌으며 피피루의 가족은 함께 모여 사는 묘사가 있을 정도로 온화한 분위기의 가족으로 묘사된다.[88] 다만 어머니는 본편 시점에서 사망했다.[89] 묘하게도 이작품은 신전사인 세츠나가 이세계인이라 가명을 쓰는걸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쓰는 프리큐어가 한명뿐이다.[90] 본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엄마성을 쓰는 이유가 암시되지 않는다.[91] 본작 홈스턱에서 생물학적 친형제들이 서로 다른 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조이도 동생과 달리 모친의 성을 따른다.[92] 생물학적 모친이자 양조모, 생물학적 형제이자 양부의 성을 따름. 긁힘 이후에도 양모의 성씨 크로커를 씀.[93] 긁힘 이후 한정. 양모의 성씨 크로커를 쓰다 잉글리시로 개명.[94] 긁힘 이후에는 록시가 로즈의 딸이 되었다.[95] 긁힘 이후의 양조모이자 생물학적 친딸의 성씨를 따름[96] 트롤들은 조상이라는 개념만 있기에 이들은 조상의 성을 따른다. 따라서 자기 조상이자 긁힘 전 후손인 성을 따른다.[97] 현재는 결혼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어서 그렇지 처녀적 성으로 따져보면 모계 성을 따른 건 맞다.[98] 본작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서양식으로 표기되었고 일본식 이름은 아이시 아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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