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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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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FC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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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소속 선수
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축구 안정환 감독 -
씨름 이만기 선수 49
농구 허재 선수 90
야구 양준혁 선수 10
육상 이봉주 선수 41
체조 여홍철 선수 7
레슬링 심권호 선수 55
사격 진종오 선수 5
격투기 김동현 부주장/선수(GK) 8
테니스 이형택 주장/선수 3
배구 김요한 선수 25
빙상 모태범 선수 89
수영 박태환 선수 11
야구 김병현 선수 18
유도 김재엽 선수 88
태권도 이대훈 선수 77
배드민턴 하태권 선수 2
배드민턴 이용대 선수 45
펜싱 최병철 선수 9
연예 김용만 선수 19
연예 김성주 중계/선수 28
연예 정형돈 해설/선수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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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 불낙스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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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현주엽 해설/코치 -
쇼트트랙 김기훈 선수 7
체조 여홍철 선수 15
유도/격투기 윤동식 선수 11
배구 방신봉 선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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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이형택 선수 36
야구 홍성흔 선수 22
야구 김병현 선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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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김동현 선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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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김용만 선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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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박준용 선수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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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김용식 선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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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승엽 박찬호 안정환 박세리 홍명보
6위 7위 8위 9위 10위
허재 박지성 차범근 이종범 선동열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박지성 김연아 이승엽 박태환 박찬호
6위 공동 7위 10위
김태균 이용대, 이종범, 박세리 안정환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 손연재 박태환
6위 7위 8위 9위 10위
손흥민 이승엽 추신수 박찬호 기성용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손흥민 류현진 김연아 박지성 추신수
6위 7위 8위 9위 공동 10위
이대호 박찬호 기성용 차범근 이승엽, 이동국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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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安貞桓|Ahn Jung Hwan
파일:kK1NVab6cXPIyabFeNfd7v3ePxg.jpg
<colbgcolor=#40e0d0><colcolor=#ffffff> 출생 1976년 1월 27일 ([age(1976-01-27)]세)[조기입학]
경기도 파주군
(現 경기도 파주시)[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7.9cm[3], 85kg[4], AB형[5]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미드필더 / 은퇴)[6],
축구 해설자,
방송인,
사업가[7]
소속사[8] 뭉친프로젝트
소속 <colbgcolor=#40e0d0><colcolor=#ffffff> 선수 부산 대우 로얄즈-아이콘스 (1998~2002)
AC 페루자[9] (2000~2002 / 임대)

시미즈 S펄스 (2002~2003)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4~2005)
FC 메스 (2005~2006)
MSV 뒤스부르크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부산 아이파크 (2008)
다롄 스더 (2009~2011)
해설 MBC / MBC SPORTS+ (2014년~)[10]
국가대표 71경기 17골 (대한민국 / 1997~2010)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40e0d0><colcolor=#ffffff> 본관 순흥 안씨 (順興 安氏)[11]
종교 개신교[12]
학력 서울본동초등학교 (전학)
서울대림초등학교 (졸업)
남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공업고등학교 (건축과 / 졸업)
아주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13][14]
MBTI ISFJ
데뷔 [[축구 선수|
축구선수
]] 대우 로얄즈 (1998년)
참가 대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번호 8번[15], 9번[16], 10번[17], 11번[18], 19번[19], 26번[20], 30번[21], 36번[22]
주발 오른발(양발)[23]
가족
<colbgcolor=#40e0d0><colcolor=#fff> 배우자 이혜원(2001년 결혼 ~ 현재)
자녀 안리원(2004년 5월 3일생)[24][25]
아들 안리환(2008년 12월 25일생)[26][27]
부모 어머니 안금향[28]
친척 외사촌 누나 안희정
반려동물 반려묘 깡패(2017년 분양)
서명
파일:안정환서명.svg
}}}}}}}}} ||

1. 개요2. 생애3. 기록
3.1. 대회 기록
3.1.1. 국가대표
3.2. 개인 수상3.3. 수훈
4. 안정환에 대한 말, 말, 말5. 멘탈甲 & 대인배6. 외모7. 여담8. 논란 및 사건 사고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방송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미드필더.

현역 시절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중앙에서 좌우로 열어주는 정확한 패스, 반 박자 빠르고 정교한 슈팅으로 데뷔 때부터 뛰어난 활약을 선보여 판타지스타라고 불리는 선수였다.[29] 이러한 활약과 더불어 도저히 운동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까지 갖춰 수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다.[30]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한때 아시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3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32강 본선 1차전에서 박지성이 1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었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32강 본선 2차전과 3차전에서 손흥민이 2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평생 까임방지권을 획득했다고 여겨지는 몇 안 되는 선수가 되었다. 더불어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 대륙을 상대로 A매치 득점에 성공했다.[32]

2. 생애

2.1. 유년기

수려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33]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34],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외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하는 등, 그가 직접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이야기한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

사실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외갓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갓집이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35]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가 고파서[36] 무랑 배추서리를 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옷이 없어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는 것은 기본에다가,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하고, 방생 기간에 방생되는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되팔아 돈을 마련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러냐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얘기했으며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이라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37] 안정환의 힘든 유년 시절을 정리한 기사

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가뜩이나 잘 못먹는 애라서,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봐 걱정해서였다고 한다.[38] 그래도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단순히 또래 애들보다 달리기가 조금 빨랐을 뿐인 어린 안정환은 그렇게 축구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어렵게, 굶주린 배를 잡고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을 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다행히 그해 마지막 경기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안정환을 다른 학교에서 유일하게 스카웃했다고 한다. 나머지 애들은 축구를 관뒀다고 한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39]를 거치면서 축구를 하지만 선배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매일같이 피곤한 몸에 여전히 배곯는 고달픈 생활들이 이어진다.

한 번은 축구부원 숫자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어버리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구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 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정환은 밥 먹듯이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하게 된다. 본인이 말하길 "이 시기에 축구가 즐거워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실제 조직폭력배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공사판을 전전했었는데 당시 수도권 전철 5호선 목동역 건설이 이루어질 때 안정환이 인부로 투입되어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 #[40]

심지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것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41]

그렇게 힘들게 축구를 했지만 고교시절 엄청난 두각을 나타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대우가 잘나가던 시절이라 아주대학교에 진학을 한다. 안정환은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 축구단에 입단하는 대학교 선배들을 보고 2학년 때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대2로 지던 팀을 5: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후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된다.

2.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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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해설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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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방송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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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록

3.1. 대회 기록

통산 <rowcolor=#FFFF1E> 365 131

3.1.1. 국가대표

<rowcolor=#ffffff> 연령 출전
U-17 0 0
U-20 4 2
U-23 0 0
A대표 71 17
종합 <rowcolor=#FFFF1E> 75 19

3.2. 개인 수상

3.3. 수훈

4. 안정환에 대한 말, 말, 말

파일:안정환 2002.jpg
이탈리아 골대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를 왜 빼겠는가?[45]
안정환은 여러모로 호마리우를 닮았다. 건드리면 반응한다. 나는 그런 선수를 좋아한다.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정환은 마치 5단 기어와 같은 선수이다.[46]
거스 히딩크
안정환은 폴란드 수비진을 마치 뒷마당에서 어린 동생 데리고 노는 듯했다.
플라넷 풋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폴란드전 직후 인터뷰)
정말 아름답다. 안느는 아름다운 플레이어다.
BBC (우디네세 칼초와의 경기에서 혼자 두 골을 몰아치는 안정환의 경기해설 중에서)
안정환은 기술적인 면에서 페루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다.
당시 AC 페루자 칼초 사무국장 알렉산드로 가우치
한국 선수들이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특히 미드필드와 공격 쪽에 좋은 선수가 많은 것 같다. 안(안정환)은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선수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前 스페인 국가대표
안느는 우리에게 후이 코스타를 대신할 선수다. 안느가 유럽 출신이였다면 그는 후이 코스타처럼 되었을 것이다.
당시 ACF 피오렌티나 구단주 디에고 델라 벨레
내가 인테르의 첫 훈련에 들어갔을 때 인테르의 코치진이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은, 내가 아니라 전 동료 안느의 계약사항이었다. 나 또한 그와 플레이하길 바라고 있다.
마르코 마테라치
안느는 굉장한 재능을 가진 선수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를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많은 기회를 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왜 한국의 부산 아이콘스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그의 완전 이적을 두 번이나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가 완전한 페루자의 일원이 된다면 난 주저없이 그를 주전으로 활용하겠다.
세르세 코스미 (당시 페루자 감독)
안정환이 방출된 후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는 영리한 선수였고, 우리는 구단주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상대팀 선수로서 우리를 상대로 중요한 골을 넣었지만 그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 수줍음이 많은 선수였지만, 우리는 안정환을 훌륭한 축구선수로 생각했다.
파비오 그로소
페루자는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insane) 의식이 지배하는 팀이다. 분명히 그런 부분이 안정환을 궁지로 내몰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한국에서 온 유일한 세리에 A 선수 꼬레아노 안을 훌륭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토토 스포르트지, 비토리오 오레시아 기자
방한기간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코리아인들이 자신의 판타지스타인 안느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안느는 유럽에서 파울레타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의 화려한 커리어가 보이지 않는가? 아무나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 골을 넣을 수는 없다.
에우데르 크리스토방(Helder Marino Rodrigues Cristovao) 파리 생제르맹 FC 수비수
안의 플레이를 보면 그의 출신지역이 아시아인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 아시아에서 그런 유연한 몸놀림을 슈팅력을 보일 수 있는 스트라이커는 없을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수준 급에 속하는 유연함과 슈팅력이다. 볼을 조금 끄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장점들이 충분히 커버해주고 노력한다면 고쳐질것이다. 그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골들은 그가 한국축구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는 아마 다음 월드컵에서도 한국 대표 스트라이커로 뛰게 될 것이다. 그때는 과연 안이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기대가 된다. 만약 2006년 독일 월드컵 후에도 이러한 글을 부탁받는다면 그를 순위에 올리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요한 크루이프
안정환의 슈팅은 정상적인 궤도보다 15도 정도 오른쪽을 향해 골키퍼가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태리 RAI 스포츠 TV 해설자
안은 헤더를 전혀 하지 않았던 선수에서 1년 만에 유럽에서 가장 멋진 헤더 골을 만드는 선수가 되었다.
ESPN 유럽리그 이 주의 골 중에서.
그는 그의 능력에 비해 좋은 팀을 만나지 못했다.
루이 사하
테크니션 그 중에 판타지스타 성향을 가진 선수를 여럿 봤다.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팀 플레이에 맞춰지는 단순한 플레이에는 호흡을 맞출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판타지스타는 감독이 활용할 줄 모르면 미움을 받거나,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국과 경기를 했을 때 AC 페루자에서 뛰고 있다는 안느를 봤다. 우리 팀의 델피에로와 무척 닮았더라. 그러나 저 선수를 다룰 만한 감독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스코틀랜드전에서 인상 깊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치오를 맡았을 때 만났던 선수다. 안정환은 유럽 수준에 근접한 선수로, 앞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스벤예란 에릭손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2년 방한 당시)
스코틀랜드전에서 두 골을 넣었던 긴 머리 선수가 인상깊었다. 그의 두 번째 슛인 로빙슛은 정말 일품이었다.
호나우두 前 브라질 국가대표
안정환을 위해 350만 불의 이적료를 준비했고, 마지막까지 워크퍼밋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안정환이 드와이트 요크와 함께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길 원했는데 무척이나 아쉽게 됐다.
블랙번 로버스 FC 관계자 (워크퍼밋 최종 반려 이후)
안느! 우리에게 와라! 우리에겐 판타지스타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당신을 열광적으로 맞아줄 서포터가 있다! 라치오로 간다면 너는 인종차별에 울어버릴 거다!
ACF 피오렌티나 서포터즈 걸개 현수막
그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주전을 확보했다. 지금보다 앞으로 더욱 가능성이 많다. 안느는 지난 1년 동안 발전속도가 놀라운 선수이다.
AC 페루자 칼초 동료, 브라질 前 국가대표 제 마리아 선수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내한 당시)
"안정환은 정말 헌신적인 선수다. 팀의 공수 밸런스와 볼흐름을 위해 경기내내 정말 헌신적인 플레이를 했다."
프란츠 베켄바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포르투갈전 이후)
"안정환은 내가 본 역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요한 크루이프를 보는 듯했다."[49]
펠레
"안정환의 기술을 흉내내고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테크닉면에서는 완벽한 선수였다."
박지성
"초등학교 4학년때 했었던 한일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배님의 플레이를 보고 축구선수로서 꿈을 키웠고 어릴적 나의 영웅이었다."
손흥민
"축구선수로서 동작할때 선이 정말 아름답다. 경기장에서 몇 번이고 넋을 놓고 봤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선수들 있잖아요, 유럽에서 정말 최고의 선수들하고 다 합쳐도. 제가 본 선수 중에서 가장 우아한 선수였어요. 이거는 제가 정말 이게 칭찬이 아니라 대한민국 150년 축구 역사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한 선수예요. 그건 분명해요.
정말 축구 선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작이 나와요. 터닝을 한다든가, 돌아선다든가 볼을 터치할 때 그 느낌... 우아한 느낌으로 차는 스타일이어서 '선이 아름답다'라는 그런 표현...(이 절로 나와요)
이영표
"안정환은 전형적인 판타지스타 성향의 선수이다. 내게 기회가 있었다면 난 그를 활용할 수 있었다. 다음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안정환을 어떻게 활용하는 데에 한국의 월드컵 운명이 달려있을 것이다. 그는 마치 후이 코스타와 같은 플레이를 할 줄 안다. 나에게 가장 욕심나는 한국 선수를 뽑으라면 그건 단연 안정환과 이관우다. 그들이 포르투 출신이라면 이미 그들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안정환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심지어 같은 위치에서 뛰는 델피에로도 원톱으로는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쓰리톱을 사용한다면 조재진이동국을 최전방에 포진하고 차라리 중앙의 안정환을 쳐진 스트라이커로 놓겠다. 박지성과 안정환 중 프리롤을 선택하라면 나는 안정환을 선택하겠다. 박지성은 세계적인 선수지만 안정환만큼 아름다운 플레이를 할 수는 없다."
움베르투 코엘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한국과의 경기(5월 31일)에서 보여준 안정환의 플레이가 아직도 머리에 많이 남아 있다. 안정환은 후반 교체 투입된 뒤 짧은 시간을 뛰면서도 찬스가 올 때마다 과감하게 슛을 날리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안정환같은 적극적인 마인드 없이는 패배가 되풀이 될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그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지쿠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동아시안컵 당시)
"정환이는 팀 기여도가 높은 선수이다. 우리가 월드컵에서 이기려면 안정환이 필요하다."
홍명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최종엔트리 발표에 관한 질문에서)
"어차피 승부를 거는 상황이라면 안정환이다."
딕 아드보카트 2006 FIFA 월드컵 독일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
"현재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안정환이 기억에 남는다. 안정환의 테크닉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며, 개인 드리블 능력과 슈팅능력은 그 당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테크닉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티에리 앙리 프랑스 前 국가대표 (EPL에서 뛰는 한국 선수 중 누가 인상적이냐는 질문에)
"한국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안정환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안정환의 스타일은 한국을 대표했던 스트라이커 차범근, 황선홍 등과 다르다. '새로운 스타일'이란 뛰어난 신체조건으로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치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와 달리 현란한 기술을 바탕으로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플레이메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위협적인 공격을 선보이는 형태를 말한다. 안정환이 국제무대에서 많은 경기(32경기 8득점)를 뛰지는 않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프로 데뷔 2년차인 1999년 21골 7도움으로 MVP에 선정됐고, 세리에 A의 페루자로 이적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지만 결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AFC 풋볼 아시아 BREAKING THE MOULD (형식을 파괴하라) 중에서.
"솔직히 안정환이 이번 월드컵에서 이런 수준으로 경기할 줄은 몰랐다. 나는 그의 주목할 만한 기술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그것을 표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 페루지아에서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안정환, 다시는 돌아오지마!" 사람들은 마치 배신자 취급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정 훌륭한 골을 뽑아냈고 최선을 다했다."
지오반니 테데스코 (2002년 당시 AC 페루자 칼초 주장)
"같은 아시아권에서의 플레이어를 떠올리면 한국의 안정환이 인상에 남는다. 물론 그 역시 내가 목표로 삼는 선수는 아니다. 단, 그가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다."
알리 카리미 이란 前 국가대표
"안정환을 주목해서 봤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이탈리아에 패배를 안겼다고 해서 소속팀 페루자가 결국 그를 이적시킨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말 페루자는 어리석은(stupid) 짓을 했다. 현재 나카타, 나카무라 등 기술 좋은 일본 선수들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안정환은 기술과 체력을 함께 겸비한 훌륭한 선수였다."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지, 알베르토 세루티 기자
"안정환은 키가 크지는 않지만, 공중볼 장악에 뛰어나고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어쩌면 하츠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레인저스 사령탑을 맡았을 때는 그를 몰랐지만, 만약 알았다면 주저하지 않고 계약을 했을 것이다."
딕 아드보카트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람들은 안정환에게 골 결정력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언제나 결승골의 주인공은 안정환이다."
박항서
"한국의 미디어는 안정환의 부드러운 면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강한 선수이다. 나는 그의 강한 면을 좋아한다."
라디보예 마니치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동료)
"안정환은 영웅의 기질을 가진 선수이다. 그의 한 골 한 골은 각본이 있는 드라마와 같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진다."
일본의 한 축구전문지
"어느 나라도 쉽게 가지지 못하는 판타지스타를 소유하고도 활용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 그게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그를 평범한 선수로 만들고 있다."
휴 사토시
"아시아 선수 중에 정말 이런 선수가 있었나? 그는 나에게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중압감을 줬다. 나는 경기 내내 마치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착각에 빠졌었다. 분명히 델피에로는 우리팀인 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릴리앙 튀랑
"지금 생각해도 안정환만큼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 선수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처럼 조기 유학도 없었고, 제대로 축구를 배울 시스템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안정환은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노력도 많이 했지만 정말 천부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안정환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축구를 제대로 배웠다면, 정말 엄청난 선수가 됐을 것이다."
부산 대우 로얄즈 사무국장 김석현
"안정환은 지난 66년 북한박두익에 이어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BBC

이 문단은 2018년 10월 6일 방송된 '대화의 희열' 안정환 편에서 진행자 유희열이 핸드폰으로 나무위키를 참고하며 '안정환에 대한 코멘터리'를 소개하는 중 TV 방송에 언급되기도 했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

5. 멘탈甲 & 대인배

사커라인 유저가 작성한 안정환의 고생 일대기. 억울함 또는 부당한 대우와 처사에 관해 대인배나 다름없는 안정환의 멘탈을 보여주었다. 이쯤 되면 안정환의 슬픈 선수 생활은 운명이라는 말밖에 설명이 안 될 정도다. 썩은 멘탈로 인해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 후배 축구 선수들에게 두고두고 귀감이 될 선수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의리의 상남자. 다만 이런 성격의 사람들이 가지는 단점, 불같이 욱하는 성질머리 또한 겸비하고 있긴 하다.[50]

출처: 사커라인

6. 외모

파일:안정환 리즈.gif
선수 시절 안정환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실력이나 인성도 있지만 축구선수를 넘어 웬만한 남자 연예인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수려한 외모였다. 그래서 리즈시절 대표 별명이 테리우스였고 덕분에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안정환의 외모가 얼마나 수려한 것으로 유명했었는지 한국의 전설적인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한 앙드레 김의 패션쇼 무대에도 초청되었을 정도였고, 피날레 무대에서 아내 이혜원씨와 처음 만난 인연으로 2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할 때가 많았다. 이천수는 안정환을 상당히 어려워했다고 회고했는데, 처음 보고 축구 선수를 할 얼굴이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자신은 딱 운동만 하고 산 것처럼 생겼는데, 안정환은 CF까지 들어올 만큼 너무 잘생겨서 부럽기도 하고 열등감까지 느껴졌다고.[56] 이영표 역시 안정환의 외모를 처음 봤을 때 그 잘생긴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57] 거스 히딩크 감독도 안정환을 회상할 때 외모가 화려했고 아름다웠다고 언급했다. 박지성도 안정환의 외모가 부럽다고 했으며, 반면 안정환은 박지성의 인생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안정환 본인이 말한 바로는 장발이 스타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구단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미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TBS에서 방송한 '그때 굉장했던 사람, 일류 운동선수가 놀랐던 그 사람 대추적' 편에서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오쿠보 요시토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사람으로 뽑혔었는데 그 이유가 너무 잘생겨서였다.[58][59] 이렇듯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미남임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독보적이다. 안정환도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어느 정도 의식은 하고 있었던 것인지, 최용수 등 현역 시절 동료였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안정환은 늘 향수와 로션을 갖고 다니면서 외모 관리와 치장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한국에 뛰어난 실력과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미남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정환을 능가하는 미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60] 현재 예능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그냥 미중년 상의 동네 아저씨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으나 현역 선수 시절에는 어지간한 연예인들마저 씹어 먹는건 당연지사이며, 배우 현빈과도 비교되는 미모를 자랑했다. 그래서 리즈 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미녀 배우들인 현빈, 김재원, 한고은 등 수많은 인기 스타들과 CF를 연달아 찍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과 비교하여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안정환의 외모와 그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압도적 포스에 연예인까지 기가 눌려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스럽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이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장동건,원빈,안정환 세명이 일본 방송에 나온 적이 있는데, 적어도 그 방송에서만큼은 안정환이 둘을 압도하는 외모 클래스를 보여줬다.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사진이다. 그렇게 의류, 향수, 화장품, 스포츠 용품 등 안 찍어본 CF가 없었다. 젊은 시절 김재원과 함께 찍은 남성용 화장품 광고는 이미 전설이다. 다른 일화로 전성기 시절에 한국 최고 미남으로 손꼽히는 장동건, 원빈과 함께 일본의 예능에 출연한 적도 있었는데 과장 하나 없이 외모로 그들에게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한 마디로, 안정환은 운동선수치고 잘생긴 정도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서 연예인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외모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런 잘생긴 외모는 자녀들한테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들 안리환도 아버지를 닮아서 잘생겼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는 얼굴이었는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각종 해외 투표에서 외모로 최상위권을 차지한 설문조사가 아직도 남아있다.#[61] 하지만, 칼같은 미남 외모와는 정반대로 성격은 옛날 말투, 아재개그를 자주 시전했다고 하며 굉장히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팀 후배 선수가 외모와 실력에 압도되어 눈치만 보다가 아침식사 때 안정환이 숭늉을 마시면서 "숭늉이 들 우러났다 야." 하는 것을 보고 "저 선배도 보통 사람같은 면모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운동선수가 그렇듯 은퇴 이후에는 얼굴이나 몸에 살이 꽤나 붙은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미중년이라 불릴 만하다. 쌍꺼풀선도 생겼는데 본인 말로는 살이 쪄서 생긴 거라고 한다. 살찌면 쌍꺼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다만 나이들어 생기는 쌍꺼풀은 대개 눈 지방층이 얇아져서 생긴다. 본인의 말로는 운동선수 때 너무 먹는 걸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은퇴한 지금은 원없이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살이 찌고 수염을 약간 기르게 되면 뭔가 이탈리아, 혹은 중남미 스타일의 얼굴이 된다는 게 웃음 포인트. 그래서 생긴 별명이 그 유명한 슈퍼마리오다. 저 별명은 아빠! 어디가? 시즌2에서 부인 이혜원이 마리오가 그려진 가방을 보고 아들에게 "이거 누구야? 아빠야. 뚱뚱해져서 이렇게 됐어. 옛날에는 테리우스였는데 (지금은) 개뿔" 이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래도 가끔 가다 다이어트를 해서 옛날의 날렵한 얼굴을 되찾을 때가 있는데, 위대한 배태랑 등의 프로그램이나 시상식 등의 특정 기간에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오곤 한다. 사실 슈퍼마리오 소리 들을 때도 리즈시절과 너무 달라져서 그렇지 미중년 느낌이 났었다.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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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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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입학] [2] 실질적인 성장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내 이혜원과 같이 출연한 승승장구에서 돼지감자를 먹고, 흑석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말했다.[3] 뭉쳐야 찬다 31회에서 177.9cm로 측정되었다. 사실상 178로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아빠! 어디가? 시절 측정된 키는 178cm이었다. [4] 뭉쳐야 찬다 31회에서 90kg로 측정되었으나, 뭉쳐야 찬다2 0화에서 85kg이라고 밝혔다. 선수 시절 체중은 73kg 정도였으며 2002 월드컵 당시 71kg.[5] 다음 프로필 기준.[6] 세부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황선홍을 제외하면 마땅한 원톱이 없어서 원톱의 위치에 서긴 했지만 수행했던 롤은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웠고 포스트 플레이는 좌측 윙포워드였던 설기현이 중앙으로 올라와서 대신했다. '측면 미드필더'로서는 트레콰르티스타에 가깝다. AC 페루자 시절에는 측면 자원인 제 마리아가 부상을 당하자 세르세 코스미 감독이 측면에 기용하기도 했다고 본인이 직접 말한 적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본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중계 영상 및 정보 영상에서는 MF로 표기. K리그 베스트11만 봐도 MF로 표기. 안정환은 2선에서 1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플레이에 능했지, 1선에서의 플레이에는 능하지 않았다. 포워드로 뛸 때도 2선에서 1선으로 들어가는 플레이가 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공격 포인트가 0.5를 넘은 이유는 탁월한 온 더 볼 + 오프 더 볼 능력과 슈팅 기술에 힘입은 결과다.[7] 치킨 사업가로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절친 현주엽에게 창업 조언을 해줬다. # 어쩌다 FC 초대, 2대 감독[8] 연예 매니지먼트 전담[9]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역전 골든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방출된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많은데 사실 내막을 알고보면 좀더 복잡한 상황으로 팀을 나가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안정환/선수 경력 참조.[10] 2014년 1월, MBC와 전속 해설위원 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지도자 연수를 위해 해설위원 자리를 내려놓았다. 월드컵 해설 중 틈틈이 경기 소감을 밝히면서 자신의 마지막 해설위원 활동임을 밝혔다.# 그러나 2023 U-20 월드컵에서도 해설위원 활동 하는것으로 확인되면서 당분간 해설위원 직을 이어가게 되었다.#[11] 뭉쳐야 찬다 3 7회에서 밝혔다.[12] <연예가 중계> 출연 당시, 성시경이 리포터 옷을 보고 스님 옷을 닮았다는 애드리브를 쳤고, 정형돈이 그에 대해 안정환에게 "저런 순발력 멘트를 해야한다고!"라 했을 때 안정환이 "난 기독교야~"라며 받아친 적이 있다.# <뭉쳐야 뜬다>에서도 같은 크리스천인 김용만과 함께 사원 참배를 하지 않았고, <사심충만 오!쾌남>에서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 근처를 방문하기도 했다. 선수 은퇴식에서도 자신은 선수로서 운이 좋았다며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13] 94학번으로, 당시 체육특기자는 합격만 하면 면허가 나오는 과를 제외하고 원하는 곳으로 학적을 넣어주던 때였다. 물론 수업은 졸업 필수과목 외에는 아무도 안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아주대는 당시 대우그룹 재단 예하 학교로 부산 대우 로얄즈 입단을 앞두고 입학해 경험을 쌓았다.[14] 하석주 아주대 감독도 아주대학 경영학과 출신으로 안정환의 직계선배가 된다.[15] 8번은 아주대학교,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아이콘스, AC 페루자 칼초, 부산 아이파크에서의 번호.[16] 9번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번호.[17] 10번은 AC 페루자 칼초,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의 번호.[18] 11번은 2000 CONCACAF 골드컵에서의 번호.[19] 19번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시미즈 S펄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FC 메스, MSV 뒤스부르크, 다롄 스더에서의 번호로 예능프로 뭉쳐야 쏜다 상암 불낙스에서도 사용했다.[20] 26번은 시미즈 S펄스에서의 번호.[21] 30번은 다롄 스더에서의 번호.[22] 36번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의 번호.[23] 참고로 원래는 왼발을 잘 안 썼으나 오른발에 부상을 당한 이후로 왼발을 미친듯이 연습해서 양발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다비드 비야와 비슷한 케이스.[24] 인스타그램[25] 서울국제학교 졸업 후 뉴욕 대학교 스포츠매니지먼트학과에 진학했다.[26] 인스타그램[27] 2022년 12월 8일, 미국 카네기 홀 웨일 리사이틀 홀에서 최연소 트럼펫 연주자로서 공연했다. 기록은 만 13세 348일. 안정환이 예체능을 극구 반대했으나 11살에 시작하여 싱가포르에 있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연주하고 뉴욕 국제 음악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하고싶다는 거 다 해보라 하고 싶어서 막지는 않고 있지만 아직도 예체능 전공은 말린다고.[28] 과거 출연한 CF에 실명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빚투 운동'에서 밝혀진 내용이다.[29] 실제로 로베르토 바조와 플레이 스타일이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받았고, 프란체스코 토티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고 평가된다.[30] 당시 대우 로얄즈 단장이었던 안종복은 안정환을 스카우트하려 대학 경기에 왔는데, 안정환을 보고 두 번 놀랐다고 자신의 저서 '비상'에서 적었다. 한 번은 실력에 놀라고, 외모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31] 현재는 AFC로 넘어온 호주팀 케이힐이 5골로 최다 기록. 허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OFC 소속으로 출전한 거라 대회 당시 넣었던 2골을 제외하면 3골로 동률이다. 그리고 일본혼다 케이스케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골,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1골,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1골로 총 4골로 1위로 올라섰다.[32] 참고로 전 대륙 최초 득점 선수는 황선홍(1988.12.6 일본(아시아), 1989.8.13 미국(북아메리카), 1990.2.4 노르웨이(유럽), 1994.2.26 콜롬비아(남아메리카), 1994.5.4 카메룬(아프리카), 2001.6.3 호주(오세아니아), 전 대륙 상대 대한민국 최초 득점에 성공)이다. 이동국박주영도 전 대륙 상대 득점자다.[33] 다만 오렌지를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 처음 먹어봤다는 얘기는 불우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렌지도 오렌지 '향' 탄산음료나 주스 등으로 단어가 친숙했다뿐이지, 본격적으로 대량 수입되기 전에는 실물로 볼 일이 없는 귀한 과일이었다. 안정환이 본인의 유투브 채널에서 오렌지 얘기를 직접 언급했다. 나무위키에 적힌 본인의 문서를 직접 읽어보면서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을 때 오렌지를 처음 먹어봤다. 이런 과일이 있었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나나도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수입 과일들은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로 수입자유화가 되기 전까지 무시무시하게 비쌌기 때문에 그가 못 먹어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34]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씨를 따른 안정환은 어린 시절 후레자식이란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고 한다.[35] 이후로도 그의 어머니는 나중에 도박중독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안정환의 생애 내내 민폐를 잔뜩 끼쳤다. 안정환이 축구 선수가 되고 프로 입단을 한 뒤에도 안정환이 축구선수라고 떠벌리면서 도박판을 돌아다녔다가 빚이 엄청나게 불어난 통에 안정환이 뒷처리를 하느라고 이래저래 맘고생을 해야 했으며, 안종복이 어머니 입장에서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안정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했으며, 이것 때문에 안정환과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기사 참고.[36] 그래서 그는 어느 방송에서 '배고픈 게 싫어서' 은퇴 후 딱히 체중 관리를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필요하면 체중 조절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굳이 깡말랐던 시절로 돌아갈 정도로 식단을 하고 싶지 않은듯.[37] 물론, 차두리는 차두리 대로 '아버지가 차범근' 이라는 부담감을 은퇴할 때까지 안고 살았으며 차범근이 차두리의 은퇴식에서 "차범근 아들로 태어난 거 이제 후회 안하지?" 라고 물어볼 정도였다.[38] 할머니의 걱정이 괜한것이 아닌것이 운동 선수들은 식사량이 엄청나다.[39] 고등학교 진학 에피소드도 의리의 상남자임을 알 수 있는데, 상위 랭크의 명문고에서 스카웃하기로 했는데 안정환이 뽑혔다. 하지만 같이 동고동락한 친구들과 같이 하기 위해 스스로 명문고 스카웃을 포기했다고 한다. 의리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여기서 감독이나 학부모의 입김까지를 추론하는 건 사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현재도 이런 경우는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 그 동기는 어린 선수의 착한 마음에 기인한다. 최소 3년을 매일같이 얼굴보고 같은 훈련과 목표를 가지고 동고동락했으니 이들은 사실상 이 시점에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이다. 예체능계 19살 청소년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해, 쓸데없이 감독이나 학부모의 입김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타 대학에 들어가면 타 대학 감독의 산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고등학교 감독의 입김도 우스운데 학부모의 입김은 거의 소설 같은 얘기다.[40] 모 예능에서 수도권 전철 5호선 목동역을 갈 일이 있었는데, 본인이 여기 내가 지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41] 같은 2002년 대표팀인 최태욱과 비슷하면서 대비되는 일화이다. 최태욱의 경우도 축구가 즐거워서 하지 않았고 맞으면서 했기 때문에 싫었다고 하며 스스로를 재능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안정환은 본인의 승부욕과 더불어, 최소한 축구선수로서 동기부여를 받을 능력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좋은 스승을 만났던 듯하다.[42] 편애중계 팀인 서장훈, 김병현과 공동 수상.[43] 나 혼자 산다기안84와 공동 수상.[44] 파일:맹호장_안정환.jpg[4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에서 왜 안정환을 교체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46] 정환 전술로 칩샷으로 골을 넣은 스코틀랜드전 직후 인터뷰[47] 안정환이 AC 페루자 칼초 시절에 유벤투스 FC와 경기하여 MOM을 차지했을 때. 이때 필리포 인자기도 유벤투스에 있었다.[48] 다만 안정환은 인자기보다는 로베르토 바조와 흡사한 판타지스타에 가깝다.[49] 여담으로, 안정환은 본인의 유투브 채널에 펠레가 직접 자신을 극찬하는 이 문서의 내용을 읽어보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고 좋아하면서 "펠레는 지구 최고의 선수" 라고 치켜세웠다.[50] 특히 뭉쳐야 찬다에서 가끔 욱하거나 빈정상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선수 시절 그렇게까지 욱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다. 본인 피셜로 선수 시절 싸운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51] 상술된 각주에 있듯이 안정환 책임이라고 여길 만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안종복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분명히 비정한 행동거지를 보였지만, 안정환에게 고의라고 판단되는 귀책사항이 없었다면 저 엄청난 빚더미를 개인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안정환은 당시 안종복을 비롯한 다른 계약 관계자들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한 부분이 있으므로 일방적 배신이라기보다는, 사회에 어둡고 순진한 젊은 축구 선수들이 저지르기 쉬운 뼈저린 실책이라고 보는 편이 맞는다.[52] 이게 계약조건이었다. 빚을 청산해주는 대신 계약금은 지급하지 않음+연예계 활동을 군말없이 할 것이었다.[53] 야구해설가 마해영이 지은 책 '야구본색'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54] 참고로 신해철은 구단에 응원가를 헌정할 정도로 열혈한 FC 서울의 팬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서울 지지를 철회했다.[55] 실제로 굉장한 주당이다. 뭉쳐야 찬다에서 지방간 판정을 받고 술을 줄이고 있다.[56] 안정환은 거꾸로 이천수의 외모를 보고 다른 의미로 놀랐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너무 못생겼는데도 축구를 잘해서...[57] 이영표도 젊은 시절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훈남이었다. 이영표는 특이하게도, 은퇴 후 젊은 시절에 비해 체중 증가로 외모가 꽤 많이 바뀐 안정환과 달리 얼굴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58] 오쿠보가 미남에 너무 멋졌다고 했고, 나레이션도 미스코리아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엄청난 미남에 확실히 모델 뺨치게 외모가 근사하다고 말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너무 잘생긴 천재 스트라이커'로 소개되었다.[59] 이외에도 히카루의 바둑에서 고영하의 비주얼 모델이기도 하다. 때문에 인물 모델인 박영훈 기사에게 동료 기사들이 찾아가 작가에게 뇌물을 얼마냐 먹였냐고 농담조로 따지기도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60] 다른 종목에서도 훌륭한 실력을 가진 미남 운동선수들은 많지만, 이들 역시 안정환만큼의 외모와 스타성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61] 반면에, 이천수는 해외 투표로 못생긴 축구선수 설문조사에서 2등을 했다. 사실, 이것은 한국의 이천수 안티들과 일본, 중국의 축구팬들이 몰표를 한 것이다.[62] 유럽 활동 당시 그의 성 'Ahn'을 '안느'라고 발음하던 것에서 유래.[63] 반지에 키스를 하는 골 세레모니를 자주 해 붙여진 별명이다.[64] 마침 이 시기에는 앙드레 김의 사무실에 리볼버 권총이 배달되었고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당한 사건이 방송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다.# 실제로, 앙드레 김의 패션쇼 무대에 섰던 적이 있었던 안정환은 이 사건을 듣자마자 뭔가 기억났다는 듯이 "언제부턴가 앙드레 김 선생님에게 수많은 경호원들이 모여있었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라고 증언했다.[65] 방송 중 장난스럽게 머리 스타일 때문 아니냐는 말도 나왔는데 장난은 장난일 뿐이며 헤더 못하는 선수가 억지로 했다간 공 소유권도 위태로워지며 심할 경우 본인과 주변 선수들도 다칠 수 있다.[66] 사실 헤더는 단순히 머리만 갖다대는게 아니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 파악과 상대 선수와의 신체적 경합 등 오히려 상당히 어려운 동작이며 부상위험도 크다. 실제로 헤더 경합 중이나 헤더 후 착지 실패로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추가로 스포츠 의학이나 뇌신경외과 전문의 중 지속적인 충격에 따른 뇌 손상을 우려하여 헤더 금지를 진지하게 제안하는 의료인도 없지 않다.[67] 그래도 유럽 나이트 얘기도 풀어주는 등 이탈리아인들과 제법 어울렸으니, 비슷한 나이대인 이동국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했을 당시 클럽의 선수들은 안정환과 말을 안섞어본 선수가 다수라 하며, 독일 시절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은 소극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68] 단군 이래 김일성 다음으로 욕을 많이 먹었을 거라는 말을 본인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했다. 한때 개발 공격수의 대명사로 황선홍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정도다.[69] AC 페루자 칼초(사실 이쪽은 팀 전력보다 구단주가 문제된 케이스), FC 메스, MSV 뒤스부르크[70] 안정환은 대졸 신인이고 이동국은 고졸 신인이라 4년 차이가 나며, 안정환 쪽은 빠른 생일이라 실제 나이는 3살 차이가 난다.[71] 이동국은 정통 스트라이커지만, 안정환은 공격수 자리에 뛰긴 했어도 스스로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생각한다.[72] 이 시기에 서로 향수병이 있는 둘은 중간 지점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73]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누가 더 활약을 못했냐?"라면서 서로 장난스럽게 주고 받은 디스전에서 나온 이을용의 촌철살인의 한마디. 실제로 안정환과 이을용은 서로 절친한 사이다. 기사[74] 이 시기에 평가전을 한다고 훈련소에서 구르고 있던 안정환을 국가대표로 차출하기도 했다. 물론 경기에 뛸 만한 컨디션은 아니었기에 벤치만 지켰지만, 안정환 본인 입장에서는 이득을 봤다고 할 만하다. 남들 2년 군생활 하는 거 4주 단축하는데, 그 와중에 휴가까지 받았다.[75] 실제로 슛포러브에서 음료수 내기라고 밝혔다.#[76] 예술체육요원, 면제로이드 문서에서 설명했듯이 면제도 아니고 4주 기초군사훈련만 받는다고 끝이 아니며 규정 기간이 끝나면 예비군훈련 대상이 된다. 운동선수들 중에 해당 법령에 나온 규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77] 안정환이 빠른 76년생이라 75년생들과 친구 사이다.[78] 안정환의 말에 의하면 이을용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라고 한다.[79] 과거 이을용과 김남일 이 둘이 크게 다투고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는 찌라시가 있었다.[80] 최연소 트럼펫 연주자로 美 카네기홀 무대에 선다.#[81] 과거에는 안해령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도박 사기 사건으로 실명이 공개되었다.[82] 집에 VTR이 없어 친구네 집에서 봐야했다고 한다.[83]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은 것과 주전 경쟁에서 우디네세보다 메츠가 나을 것이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84] 사실 월드컵이 아무나 가는 곳도 아니고 월드컵을 간다고 하면 그 누구라도 저런 선택을 했을 것이기에 이 일을 순박하다고 보긴 좀 어렵다.[85] 이는 사실 어리숙한 게 아니고 그만큼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만일 그에게 제대로 된 에이전트라든가 히딩크같은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더라면 안정환 본인의 인생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86] 사실 대화의 희열에 나와 밝힌 바에 따르면 거스 히딩크는 이영표와 박지성을 데려가기 전 안정환도 자신이 거두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안정환 본인도 당연히 너무 좋다고 했지만 당시 치솟아 있던 안정환의 몸값을 히딩크의 팀 아인트호벤이 감당할 수 없었기에 무산되었다고 한다.[87] 공을 받아 한 쪽 발에 멈추게 하고 그대로 진행하던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공을 수비 선수의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빼고 돌파하는 양자택일 기술이다. 수비수를 속이기 좋지만 공을 받자마자 급제동과 급회전을 하기 때문에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는 기술이다.[88] 뭉쳐야 쏜다에서 조금만 무리하거나 안느턴 시연을 해보이고 나면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무릎 상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89]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참가했던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였다.[90] 사실 일본에서는 한 분야의 고수는 평생 그 일만을 파고드는, 소위 "장인정신"이 큰 덕목으로 여겨진다. 거기다 우상이란 우러러봐야 하고,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은 대상이다. 혹 친근감이나 가벼움을 느끼면 격이 떨어졌다 생각하기도 한다. 축구인으로서 축구가 아닌 예능에서 성공을 거둔 자신의 우상 안정환을 보며 오쿠보가 실망을 하는 것은 일본 정서상 무리가 아니다. 한국에는 운동을 그만두고 방송 활동을 하는 선수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강호동(씨름)과 서장훈(농구). 하다못해 유튜브 같은 접근이 쉬운 플랫폼으로 활동을 이어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형택(테니스), 정찬성(격투기), 하승진(농구), 김병지(축구), 양준혁(야구). 이 외에도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하나같이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급들이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호감을 산다는 점은 양국의 극명한 인식 차이를 보여준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다만 이것도 일반론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일본 프로야구 출신 중에서 와이드쇼를 넘나들며 한 마디씩 얹는 야구선수들은 또 상당히 많다.[91] 근데 아내 말로는 아침은 잘 안 먹는다고 한다.[92] 나머지 봉송주자들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 리스트 전이경,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 금메달 리스트 박인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멤버인 대한민국의 박종아와 북한의 정수현. 마지막으로 성화 점화자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93] 일설에 의하면 원래는 박지성으로 계획되었으나 당시 박지성이 모친상을 당한 직후인지라 안정환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지성은 개최국 첫 번째 주자로 성화봉송을 하였다.[94]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안정환이 성화대로 뛰어올라가는 훈련 장면이 있다.[95] 실제 상호명은 '치킨선수'이나, 간판에는 버젓이 '안정환 치킨선수'로 표기하고 있어 안정환 본인이 사장인 듯한 이미지를 준다.[96] 이만기도 고지혈증 확진 판정 및 지방간 전단계 판정을 받았다.[97] 게다가 현주엽은 백보드를 박살낸 적이 있을 정도로 농구계에서 강력한 파워가 자랑인 선수였던 반면 안정환은 오히려 축구계에서 피지컬이 약점이라는 평가를 듣던 선수였다.[98] 애초에 월드컵 우승은 길고 긴 축구 역사에서 전 세계 모든 나라들 가운데 단 8개 나라만이 경험해 본 영광이고 축구인이라면 안정환 뿐만 아니라 모국이 피파컵을 들어보는 걸 로망으로 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99] 대체적으로 솔샤르와 폴 스콜스를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들은 박지성은 솔샤르는 공격수 라고 말했고 솔샤르 본인은 자신은 스트라이커라고 대답했다.[100] 본인 입으로 어렸을 땐 축구가 재밌던 적이 없다고 했다. 신이 내 팔자를 이렇게 꼬아놓고 얼굴과 몸뚱이를 줬구나 생각하면서 축구를 했다고 한다.[101] 그리고 현재 딸 안리원은 뉴욕대 스포츠매니지먼트학과에 재학중이며 아들 안리환은 트럼펫 연주를 공부하며 카네기홀에 역대 최연소 연주자로 참여하는 등 둘 모두 직접적인 운동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면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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